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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강이 끝나고 3주가 지나서야 이루어진 이 강의를 많이 기다렸다. 여러 출판사를 거친<토지>가 마지막 닻을 내린 곳이 바로 나남출판사였기 때문이다. 조상호 나남 사장님은 사모님과 따님을 데리고 오셨는데 박경리 선생님이 계실 때부터 늘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나중에 보니 출판사 편집장을 비롯해 직원도 몇 분 와서 강의를 듣고 계셨다. 토요일 아침 원주까지 달려온 그분들의 정성을 30년 동안 나남을 일군 사장님에 대한 존경심으로 해석하고 싶었다.

 우리 센스쟁이 교장선생님은 나남 사장님을 위해 선물 두 가지를 준비하셨다며 강의 전에 드렸다. 하나는 나남에서 맨 처음, 아니 사장님 말씀에 의하면 0순위로 나왔던 러셀의 <희망의 철학>이라는 책이었다. 교장샘이 전국의 중고서점을 다 뒤져서 구했다고.

 두번째 선물은 나남 사장님이 사모님과 함께 박경리 선생님을 뵈러 와서 이 방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조상호 사장님은 교장샘이 특별한 방식으로 사람으로 감동시키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자리에 앉자마자 박경리 선생님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저 사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몇 년 전 선생님의 영정 사진을 만들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선생님의 허락하에 고른 사진인데 사진을 찍은 이를 알 수 없었다고. 저작권 문제가 있어 사방으로 알아보았고 나중에라도 나타나겠지 했는데 아직까지 "내가 찍은 사진이오!" 하고 나타나는 이가 없다고... "저 사진 찍으신 분 빨리 연락하세요!"

사장님은 원주, 박경리, 토지와의 인연을 들려주시는 것으로 강의를 대신했다. 친하게 지내던 김지하 시인과의 인연으로 따님 김영주의 <한국미술사>를 내게 되었는데 이를 고맙게 여긴 박경리 선생님이 <김약국의 딸들> 출판을 권해 왔다고 한다. 30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니 화제가 되지 않겠느냐며...  

그때까지 한번도 뵌 적이 없는 박경리 선생과의 인연의 시작이었고, 언론 매스컴 전문 출판사에서 문학 책이 나온 계기였다고. 1993년 1월에 첫 출간한 <김약국의 딸들>은 지금도 소리 소문 없이 팔리는 스테디셀러란다. 자식의 일을 도와주었다고 마음이 움직인 걸 보면 박경리 선생님도 천상 '어머니'였구나 싶다. 

그리고 그후 따님 김영주가 솔출판사에서 나오다 인지 문제로 중단된 <토지> 출판 의향을 물어왔다고 한다. 솔직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대표 작품을 출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니 그런 제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듯했지만 나남 사장님은 그 제안이 있고 10년이 지난 후에야 <토지>를 출간했다. 성공이 보장되는 출판이었지만 당시는 박경리 선생의 책을 출판할 정도로 문학적 출판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고 하니 참으로 양심적인 출판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10년 동안 조지훈 전집을 출판하는 등 문학적 기반을 다져놓고서야 <토지> 출판에 당당할 수 있었다고.  

나남에서의 <토지> 출판은 여러 가지 면에서 화제였단다. <토지>를 계약하면서 당시 출판계에서 당연시되던 인지 계약을 하지 않고 5년 동안의 선인세(5년 동안 김약국의 딸들을 판 대금과 맞먹는 금액)를 지급해 오히려 박경리 선생의 걱정까지 들었단다. 두번째는 당시 소설책 표지 형식을 파괴하고 양장본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박경리 선생의 권위를 최대한 살려주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다고 한다. 요즘 소설책에서는 양장이 당연시되고 있으니 자신이 유행의 선구자라며 껄껄껄...   

1969년 9월 <현대문학>으로 시작해서 1994년 완간되기까지 수많은 잡지와 출판사를 거치면서 방황(?)하던 <토지>가 이런 과정을 통해 나남출판사에 안착하게 된 것. 표지 제작 과정 등 <토지> 출판에 얽힌 감동스런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본인이 쓴 <언론 의병장의 꿈>이라는 책에 다 나온다며 학생들에게 한 권씩 선물해 주셨다.  (2010년 7월10일 강의)

  나남 사장님과 함께. 오른쪽에 붉은 빛깔의 옷을 입으신 분은 사모님.

 *** <언론 의병장의 꿈>은 나남출판사 조상호 사장님이 30년 동안 출판하면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린 책이다. 출판가의 뒷이야기들이 아주 흥미롭고도 재미있어서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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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7-28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남과의 만남은 그런 인연이었군요~ 자식 일에는 어느 어미나 같은 맘인가 봐요.^^
언론 의병장의 꿈...기회되면 볼게요.

소나무집 2010-07-29 15:18   좋아요 0 | URL
나남 사장님이 박경리 선생 덕분에 돈도 많이 번 모양이에요.김여주 선생과는 지금과 여전히 누나 동생으로 지낸답니다.

꿈꾸는섬 2010-07-28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상세한 이야기 재밌어요.^^

소나무집 2010-07-29 15:18   좋아요 0 | URL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너무 길어져서 그만했어요.^^
 

단구동 선생님의 옛집 2층 사랑방에 들어서니 미모의 젊은 교수님이 강의를 준비하고 계셨다. 중앙대학교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고 계시는 최유희 교수님. 긴 설명 없이 바로 수업에 들어갔다. 수업 주제는 <여성 인물의 일과 직업으로 토지 읽기>. 


교수님은 토지를 작고 소소한 데 관점을 두는 미시적인 눈으로 읽어보기를 권했다. 토지에는 최참판댁 여성 삼대와 평사리 농촌 여성들, 기생과 카페 여급, 신여성과 여학생 등 수많은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현미경을 통해 보듯 자세히 보면 토지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것. 토지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니 우리 근대 여성들의 다양한 삶과 변화되어가는 의식이 함께 보였다.  

평사리 시대의 윤씨부인, 별당아씨, 함안댁 등은 익명의 노동을 요구하는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특히 윤씨부인은 바우나 간난할멈, 월선네처럼 최씨 문중의 시종으로 평생을 살았지만 구천이를 임신함으로써 최씨 가문에 동화되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한마디로 최씨 가문의 경영자로서의 삶을 살았지 여성으로서의 개인적인 삶을 산 것은 아니라는 얘기.  

또 중인 신분으로 몰락 양반인 감평산에게 시집와서 고생만 하면서도 부덕을 닦으려 하고 결국 남편이 최치수 살해범으로 밝혀지자 따라서 자살하는 함안댁도 유교라는 큰 틀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남편을 따라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사회의 보이지 않는 강요라는 것이다.     


용정 시대를 대표하는 여인 최서희는 장사치로 변신해서 자본주의 사회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양반의 계율을 어기고 평민인 길상이와 결혼을 하고, 부를 축적하기 위해 땅투기와 매점매석을 하고, 최씨 가문을 지키기 위해 친일도 한다. 이렇게 당차게 변신하는 서희도 시대를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는데 양반가인 최씨 가문의 정체성을 잇기 위해 김길상을 최길상으로 바꾸는 시도가 그것이었다. 

토지 3부 이후에는 다양한 신여성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스스로 이혼을 결심하는 모던걸 강선혜, 역관의 딸이자 식민지 시대 교사인 임명희, 이혼의 충격을 극복하고 직업전도사로 변신한 길여옥 등은 남자 지식인들 속에서 당당하게 담론을 펼친다. 드디어 여성의 삶이 가문과 남성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주체성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사랑보다 대의명분을 더 중요시 여긴 유인실은 박경리 선생이 추구하는 진취적인 신여성의 모습이란다.  

변해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삶 속에서 세세히 보여주는 토지 4, 5부를 읽다 보면 한국 여성사를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2010년 6월 19일 강의)


이 날 수업이 끝난 후에는 교장선생님이 박경리 선생님 텃밭에서 키운 상추와 오이, 열무김치를 곁들인 점심을 마련해서 학생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박경리 선생님의 손길이 묻어 있는 듯해서 정말 특별했던 상추쌈과 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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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7-27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어째 맨날 먹는 것만 보이나 몰라요.ㅠ.ㅠ
상추와 오이 너무 싱싱한게 맛나보여요.^^

소나무집 2010-07-28 16:58   좋아요 0 | URL
정말 맛있었어요. 소설 토지학교에 다니면 저런 행운도 있답니다.

순오기 2010-07-27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지학교, 원주가 부러운 또 하나의 이유!^^
여성들의 삶이 토지 안에 다 들어있지요~
누가 제일 맘에 드는 인물인지 골라보는 것도 괜찮을 듯...
상추와 오이~ 박경리 선생의 손길처럼 느껴지네요.

소나무집 2010-07-28 16:59   좋아요 0 | URL
토지학교, 정말 부럽지요?
박경리문학공원 소장님이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일을 잘해내는 분이세요. 돈 같은 것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거요.
 

한 달에 한두 번 소설 토지학교 수업이 있는 날마다 다른 일이 꼭 겹치곤 한다. 5월 8일 어버이날에도 수업이 있어서 친정에 가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야만 했다. 5강을 맡으신 분은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30년 동안 계셨던 김형국 교수님이었다.  


박경리 선생의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가지런히 놓인 돌이 예쁘다. 이 돌은 선생이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나가셔서 직접 주워다 깔았다고 한다. 돌을 밟을 때마다 그 분의 손길이 느껴져서는 뭉클해진다. 요즘 선생의 집 마당도 서서히 신록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연휴 때문인지 차가 많이 막혀서 교수님이 30분이나 늦게 오셨다. 5강의 제목은 박경리 주변에서 오고 간 말, 말, 말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미리 준비된 강의록을 살펴보니 남편도 들으면 좋을 것 같아 직원들에게 허락을 받은 후 불러서 함께 강의를 들었다.  


교수님에 대한 첫 인상은 단정함과 깐깐함 그 자체였다. 도시 계획을 하는 분이 박경리 선생과 어떤 인연으로 만났을지부터가 궁금했다.  

교수님은 <토지>가 드라마로 나오고 있을 때 처음 소설을 읽으셨다고 한다. 당시 나온 3부를 세 번이나 읽은 후 군부 세력에 의해 폐간된 <뿌리깊은나무> 최종호(1980년 6,7월 합병호)에 <토지> 속 주요 인물들의 행적 연대기를 현대도시이론으로 추적한 <소설 토지의 주인공들과 오늘의 도시 생활>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원주에 와서 처음 박경리 선생을 뵈었는데, 선생은 당신이 기록해둔 주인공의 연보와 꼭 일치하는 걸 확인하시더니 문학평론가 중에도 <토지>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평을 쓰는 이가 있다는 말로 교수님을 칭찬하셨다고 한다. 첫 만남에서 박경리 선생과 김형국 교수님은 어머니와 아들 같은 인연을 맺었고, 토지 개발로 단구동 집이 헐리게 되었을 때 교수님의 활약 덕분에 선생의 집이 지켜질 수 있었다.  


합죽선에 박경리 선생이 친필로 적어준 시가 있다며 보여주셨다. <토지> 4부를 쓰던 무렵 선생의 심경이 드러난 시 같다고. 빈 들판에/ 비들기/ 한 마리/ 가을비에 젖는다.

<토지> 5부가 완간되었을 무렵 단구동 토지개발사업이 한창이었고, 선생의 집도 수용 위기에 처해 있었다. 선생의 집이 사라지면 안 된다는 문인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토지개발공사에서는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즈음 단구동을 찾았다가 불도저 소리가 낭자한 꼴을 직접 목격한 교수님은 서울로 돌아와 토지개발공사 관계자를 만났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토개공 부사장이 문학을 좋아하는 분이었고, 단구동 집이 지금처럼 보존될 수 있었던 것. 문학의 가치를, 그리고 선생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가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고마운 일인가 모르겠다.

시끄러웠던 단구동 집 수용 과정 때문에 감정이 많이 상해 있던 박경리 선생은 토개공 부사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냉담했는데, 넉살 좋은 토개공 부사장의 한마디에 바로 마음이 풀리셨다고 한다. "선생과 토개공은 동업자입니다. 선생은 소설 <토지>를 팔아 살아가고, 우리 토개공은 대지 조성 사업으로 꾸려갑니다." 단구동 집을 둘러싸고 내내 말로 상처를 받던 선생의 마음을 녹인 것도 바로 마음을 알아주는 말이었던 것이다. 토개공은 그후 선생이 매지리 토지문화관을 조성할 때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다음은 선생이 써놓은 토지문화관 조성 연혁이다. 

천구백구십육년 한국토지공사(사장 이호계 김윤기)의 뜻깊은 출자금 사십억원과 작가(박경리)의 희사금 칠억오천만원, 김형국 교수의 노력을 기간으로 삼아 토지문화재단을 구성하고 토지문화관 건립을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건물 부지는 토지공사 현장소장(김재성)이 선정하였으며, 설계는 동우건설(임금배)이, 시공은 현대건설(김충식)이 맡아 천구백구십팔년 십일월 준공을 보게 되었다.

얼핏 도시계획이 문학과 거리가 먼 분야처럼 보이지만 문학적 감수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도시의 질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문학에서 위로를 받듯 문학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탄생한 도시라면 그곳에서 사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당시 관련자 중에 문학을 좋아하는 이가 없었다면, 그리고 김형국 교수가 없었다면 내가 박경리 선생의 단구동 집에 앉아 강의를 듣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개발도 도시를 만드는 것도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4대강처럼 사람의 마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에는 행복도 위로도 없을 것 같다.  (2010년 5월 8일 강의)


강의가 끝난 후 조별 활동으로 원주시의 도시 계획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조에서는 박경리문학공원을 사색이 가능한 공간으로 넓고 여유 있게 설계했다.  

도랑물이 흐르는 넓은 공원에 도서관과 창작이 가능한 공간도 하나씩 만들어놓아서 누구든지 산책길에 들러 책도 보고 글도 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해 보았다. 그리고 시민들이 직접 가꾸는 텃밭을 만들었는데 박경리 선생처럼 농사를 지으며 생명을 느끼고 작은 것의 소중함을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 있다. 우리 조장님이 결석을 해서 얼떨결에 내가 마이크를 잡았다. 

*** 김형국 교수님은 미술에도 조예가 깊은 분이었다. 수업중에 장욱진 화백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길래 집에 와서 찾아보니 나무숲에서 나온 어린이 미술관 시리즈 <날고 싶은 화가 장욱진>을 쓰신 분이었다. 그 외에도 장욱진 화백에 관한 책이 여러 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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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0-05-18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번 강의 잘 읽으면서 감사 말씀은 제대로 전하지 못했네요.
소나무집님. 이번에도 잘 읽었습니다 ^^

소나무집 2010-05-19 08:50   좋아요 0 | URL
아는 만큼 사랑한다더니 이제야 토지랑 박경리 선생에 대해 진짜 애정이 솟네요.

꿈꾸는섬 2010-05-18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지 5강도 잘 읽었습니다.^^
오늘은 비가 촉촉히 내려 참 좋아요.^^

소나무집 2010-05-19 08:55   좋아요 0 | URL
6강은 1박 2일 수학 여행이랍니다. 새벽 5시 출발이래요.
5월 29, 30일에 가는데 모든 일 제쳐놓고 간다고 했어요.
통영이랑 하동 다 다녀올 것 같아요. 기대 만발~

꿈꾸는섬 2010-05-28 20:11   좋아요 0 | URL
와, 내일 가시는군요. 전 통영은 다녀왔는데 하동은 아직 못 가봤어요.
잘 다녀오세요.^^ 통영도 아이들 크면 다시 가보고 싶어요. 소나무집님 페이퍼 또 기대되요.^^

순오기 2010-05-19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는 '뿌리깊은 나무' 1980년 2,3,4월호 갖고 있어요. 5월호 이후는 왜 안 샀는지 생각나지 않아요.ㅜㅜ 그리고 나온 '마당'은 81년 창간호부터 10.11. 12월호까지 갖고 있는데, 여기에 토지 4부가 실렸지요. 젊은 날의 박경리 선생도 나오고요. 생각해보면 나도 토지와 인연이 깊어요.^^

소나무집 2010-05-20 09:25   좋아요 0 | URL
저는 이런 잡지들 이사할 때마다 정리하면서 버렸는데 지금 생각하니 아까워요. 그냥 놓아두었으면 모두 좋은 자료가 되는 건데 말이죠.... 언제 원주 한 번 오세요.

순오기 2010-05-28 19:44   좋아요 0 | URL
언제 갈지 모르지만, 소나무집님의 토지 안내는 최고겠지요!^^
 

금요일부터 제주에서 시부모님이 올라와 계셔서 4강을 들으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강의를 맡으신 분이 문학평론가 정현기 교수님이라는 사실 때문에 아침을 먹으면서 시어머니께 양해를 구했고, 부랴부랴 토지학교로  달려갔다. 정현기 교수님의 유명세를 알고 있었기에 가까이에서 뵙고 강의를 꼭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댁이 있는 광주에서 새벽 차를 타고 와서 사우나에 잠깐 들렀다며 몹시 피곤하다고 하셨지만 강의를 하는 두 시간 동안 피곤한 기색은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열정적이셨다. 교수님은 전두환 시절 작가의 사위인 김지하 시인을 두 달간 숨겨준 죄로 해직당했다가 1988년에 복직하셨는데 그 일로 박경리 선생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후 교수님은 박경리 선생을 어머니처럼 스승처럼 모셨다고.    


복직 후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계시면서 <토지>에 대한 연구는 물론 <토지>를 연구하는 후학들도 많이 배출하셨다.

강의 내내 MBC에서 촬영을 하고 있어서 교수님의 유명세를 더 느낄 수 있었다.  

정현기 교수님은 <토지, 약육강식의 소설 세계사 읽기>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셨는데, 현 정부와 미국 추종자들에 대한 비판에 얼마나 속이 후련했는지 모른다. 그런 강의는 하루 종일 들어도 신이 날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요즘의 한나라당은 일진회보다 더 하다고 해서 수강생들 모두 통감을 하며 웃었다. 교수님은 당시 시대 설명을 하면서 안중근과 윤동주, 염상섭 등의 이야기를 길게 하셨고, 이인직 같은 이는 문학적 첩자라고 일갈하셨다. 일본 정치 학교를 졸업한 이인직을 신소설의 최고봉이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코미디란다.

<토지>가 시작된 1897년 무렵은 세계적으로 힘센 나라가 힘이 약한 나라를 주워삼키려는 야욕으로 가득한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시대였다. <토지>가 시작되기 백여 년 전부터 서양은 산업혁명에 의해 사람의 삶이 바뀌고 있었는데 기계 덕에 소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생산된 물건들을 팔 시장이 필요해지자 제국주의라는 괴물이 탄생하게 된 것. 일부 재산가들이 만들어낸 지구 전제를 싹쓸이하려는 생산 체제는 지구를 몸살을 앓게 만들었고, <토지> 탄생의 배경 또한 거기에 있다고 교수님은 해석을 하셨다. 

한마디로 <토지>는 문명이라는 이름의 재앙이 한국에 달려든 모습을 보여주려고 시작된 소설이라는 것이다. <토지>는 힘이 약한 조선이 일본에게 먹혀 들어가는 과정을 민중들의 삶을 통해 세세히 보여주고 있으며, 제국주의란 남을 이용해서 나만 잘 살아보겠다는 더러운 심보인데, 소설 <토지> 속에는 그 시대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5대째 부를 이어오던 평사리 최부자집이 왜놈의 상징인 조준구에게 망하지만 용정에서 곡물 장사로 돈을 번 최서희가 다시 평사리로 돌아오는 과정이 그려진다. 그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속엔 제국주의로 인해 망한 최부자집이 있고, 다시 자본주의 방식으로 성공해서 집안을 일으키는 최서희가 있다. 교수님은 제국주의, 자본주의, 세계화, 글로벌리제이션은 식민주의의 다른 말이라며 언어의 포장에 속지 말라는 당부도 하셨다. 

<토지> 속에서 선생이 보여주고 있는 여러 삶의 모습은 그들의 삶을 통해 얽어매고 옥죄며 이래라 저래라 하는 더러운 제국주의 계급 의식을 한데 묶어 그것들이 모두 없애버려야 할 것이라는 속뜻을 담고 있다. 사실 내가 몇 년 전 <토지>를 읽을 때는 스토리만 따라가며 읽기에도 바빠 이런 속뜻까지 헤아릴 생각조차 못했다. <토지>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또 불끈 솟는다. 


강의를 마치고 교수님과 함께. 강의를 듣는 내내 느낀 것은 정현기 교수님은 박경리 선생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친 분이라는 것이었다. 정릉 집을 팔아 원주로 오실 때 집 사고 남은 돈 500만원을 주시며 빚을 갚으라 한 이야기, 박경리 선생의 단구동 집을 드나들며 서쪽으로 창이 난 부엌 밥상에 앉아 곰국을 먹던 이야기 등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셨다.  (5월 1일 강의)


4강의 조별 활동은 원주, 박경리, 토지,박경리 문학공원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넣어 마음대로 글쓰기였다. 우리 조에서는 시를 써서 일등을 먹었다.  



소설 <토지>를 읽고 박경리 선생을 흠모했네!/남 몰래 그리워하다 박경리문학공원에 오게 되었네!/소설 <토지>를 내 마음에 담고 나니 원주를 떠날 수가 없네!

 *** 정현기 교수님의 토지론을 엿볼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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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5-09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좋은 강의 들으셨네요. 부럽다....저도 토지 다시 읽고 싶어요.
근데 소나무집은 누구실까???

소나무집 2010-05-10 09:03   좋아요 0 | URL
작품을 알고 읽는 것과 모르고 읽는 것에는 많이 차이가 있음을 새삼 느끼고 있어요. 교수님 뒤에~

세실 2010-05-20 21:21   좋아요 0 | URL
아 맨 아래 발표하시는 분? 참 단아하세요.

같은하늘 2010-05-11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정말 부러워요. 전 소나무집님 바로 보이는데요~~ㅎㅎ

소나무집 2010-05-12 14:46   좋아요 0 | URL
저도 정말 좋은 강의 듣고 있어서 행복해요. 바로 알아보셨군요.^^

꿈꾸는섬 2010-05-12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새 4강이네요.ㅎㅎ

소나무집 2010-05-13 09:15   좋아요 0 | URL
지난 주 토욜에 5강 수업도 했어요.
이번 주 안에 5강도 올리야 할텐데...

순오기 2010-05-13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원주로 간 건 정말 복이에요~ 부러워라!!
정현기 교수님 강의는 어제 MBC에 나올까요?

소나무집 2010-05-13 09:36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유일하게 마음을 줄 수 있는 곳이랍니다. mbc에서 어떤 프로그램에 내보려고 찍어갔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이들 학교에서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던 날 진행되었던 수업이다. 두 아이 교실을 왔다갔다 하면서 한 시간쯤 머무르다 달려갔더니 이미 박경리 선생의 초중년기 이야기가 끝나고 벌써 원주에서 <토지 4, 5부>를 쓰던 때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더 궁금했던 건 그 시절 이야기였는데... 3강은 포항공대 이승윤 교수의 박경리 선생의 생애.   



박경리 선생은 일제 중반기인 1926년 경남 통영에서 어머니가 몸이 하얀 용이 나타난 태몽을 꾸고 태어나 모두 아들을 기대했다고 한다. 본명은 금이(今伊). 통영초등학교 시절 박경리 선생은 책보기를 즐겨 책상 밑에 소설책을 숨겨놓고 읽는 불량 소녀(?)였다.  

열네살에 네 살 연상의 아내와 결혼했던 선생의 아버지는 박경리를 낳은 후 바로 딴살림을 났고, 늘 수업료를 걱정해야 했지만 어린 박경리는 당당하고 궁색한 티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수업료를 달라고 찾아간 딸에게 여자가 공부하면 뭣하냐며 뺨을 때린 아버지와의 관계는 끝내 화해를 하지 못했다. 그 덕에 소설의 모든 주인공은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꿋꿋한 여성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와 함께 진주로 옮겨 온 박경리는 진주여고에 입학(17회 졸업생)한 후 일본인 선생들에게 황민화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게 된다. 이 시기에 일본 소설과 시, 일본어로 된 서양 소설을 책방에서 쫓겨날 때까지 읽으며 문학 작품을 통해 의식을 형성해갔다. 하지만 공부에는 신통치 않아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여고를 졸업한 다음 해에 결혼을 했고(1946년) 같은 해에 딸 김영주를 낳았다.  

1948년에 전매국에 근무하던 남편을 따라 인천 금곡동으로 이사를 하고, 아들 김철수를 낳았다. 박경리 선생은 인천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며 행복한 시절을 보내셨는데 저울로 달아 헐값으로 사들인 온갖 종류의 책을 읽으며 차츰 역사 의식을 깨치게 되었다고 한다. 1949년에는 흑석동으로 이주했고, 1950년 서울수도 사범대학 가정과를 졸업, 황해도 연안여중 교사가 되었지만 전쟁으로 6개월만에  교사 생활을 접는다. 이때부터 박경리 선생의 여자로서의 불행도 시작된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고... 

부역 혐의로 수감되었던 남편이 죽자 박경리 선생은 통영으로 돌아와 수예점을 하다가 다시 서울로 가서 1년간 신문사에서 근무를 했으나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었고, 한국상업은행에 근무하던 중 은행 사보에 <바다와 하늘>이라는 시를 발표하셨다. 시를 쓰던 박경리 선생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김동리 선생을 만나면서부터였다. 김동리 선생 집에 고향 친구가 세들어 살고 있어 자주 드나들다 김동리 선생에게 글솜씨를 인정받았고, 본인도 모르는 사이 김동리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계산>이 실리게 된 것. 이때부터 선생은 박금이라는 본명 대신 김동리 선생이 지어주신 박경리라는 필명을 쓰셨다.  

60년대 박경리 선생은 <표류도><성녀와 마녀><김약국의 딸들><파시><시장과 전장>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셨다. 그리고 1969년 9월부터 이 모든 작품을 종합했다고 할 수 있는 <토지>를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 선생은 <토지>를 쓰실 당시 철저하게 외부와 담을 쌓고 집필에만 몰두하면서 작품이 완성된 후에 공개할 생각이었으나 생활고에 시달리다 결국 연재를 선택하셨다고 한다. 1971년 죽음을 예감하며 유방암 수술까지 받았지만 퇴원한 지 보름 만에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다시 원고를 쓰기 시작해서 <토지> 1부를 마치셨다고. 

그후 <토지>는 3부가 완성되는 동안 <현대문학>을 거쳐 <주부생활><독서생활><한국문학> 등 여러 잡지를 옮겨 다니며 연재. 그리고 1980년 <토지>1, 2, 3부가 KBS 드라마로 만들어져 대중들과 더 친근해지는 계기가 되었고, 선생은 서울 정릉집을 떠나 딸이 있는 원주로 오셨다. 원주로 오신 선생은 참말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셨다는 걸 선생이 쓰신 시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누구 하나 대작 <토지>를 쓴 작가로 알아주지 않았고, 약간 유식한 시골 노인네 취급이나 했으니 자존심 강한 선생이 얼마나 상처가 되셨을까 싶다. 당시 적막한 집에서 선생을 지탱하게 한 건 오로지 책상 하나와 원고지와 펜이었다고.   

중간에 절필도 선언하시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일제 시대 말기를 살았던 선생은 4부부터는 사명이라는 동아줄에 묶여 초조와 불안에 시달리면서 글을 쓰셨고, 드디어 1994년 8월 15일 집필 26년 만에 <토지>를 탈고하셨다. 그후 <토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영어판, 독일어판, 일본어판도 출간되어 펄벅의 <대지>보다 한수 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선생은 <토지> 집필을 마친 후 단구동 택지 개발로 매지리로 삶의 터전을 옮기셨고, 원주 연세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소설창작론>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2008년 5월 5일 애연가셨던 선생은 지병인 폐암으로 세상을 마감하셨다. (이승윤 교수님이 준비하신 자료집을 중심으로 정리)

수업이 끝나면 항상 학생들의 모둠 활동이 진행되는데 3강의 주제는 "내가 원주 시장이 된다면 박경리와 <토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  (4월 17일 강의) 



진짜 원주 시장이 된 것처럼 열심히 박경리 문학공원과 <토지>를 알리고자 열띤 토론을 한 후 조별로 나가서 발표하는 모습.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았는데 가장 마음에 든 건 <토지>를 원주시에 거주하는 각 가정에 한 질씩 나누어준다는 것.  

우리 조에서 내놓은 의견 중 교수님의 칭찬을 받은 내용은 학교로 찾아가는 토지학교를 운영하자였다. 학교로 찾아가서 아이들에게 토지와 박경리 선생을 알리는 수업을 하자는 것.  


수업이 끝난 후 집에 가다가 주차장에서 만난 고창영 토지학교 교장샘과 이승윤 교수님.

* 박경리 선생의 삶과 문학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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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10-05-07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4강이 진행되었는데 그때 그때 강의록을 올리지 못하는 게으름~
차분하게 앉아 책 한 권 읽을 수 없는 나날이다.

꿈꾸는섬 2010-05-07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잘 읽었어요.^^ 다음 강의도 기대할게요.^^

소나무집 2010-05-10 09:01   좋아요 0 | URL
4강 올렸구요, 지난 주 토요일에 한 5강도 곧 올릴게요.

순오기 2010-05-13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님 덕분에 거실에서 토지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올린 책 중엔 시집 두 권만 봤네요.

소나무집 2010-05-13 09:09   좋아요 0 | URL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사서 보았는데 그때는 무슨 생각으로 읽었는지 기억도 안 나더라구요. 요즘 다시 보고 있는데 요즘 문학하는 사람들이 다시 읽고 곱씹어봐야 할 대목도 많구요. 박경리 선생의 육성을 듣는 착각이 들어요. 제가 원주에 쭉 살았더라면 매지리 연세대에 가서 도강이라도 하고 싶었을 텐데 아쉬워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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