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 개정판
법정 지음 / 이레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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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님은 송광사 불일암에 암자를 지어 20년을 산 뒤 강원도 산골에 화전민이 살던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셨다. 불일암에서 사신 지 오래되었고 글과 여러 지인들을 통해 거처가 알려지심에 따라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불임암에 찾아와 스님의 수행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강원도 산골로 옮기신 후부터 쓰시던 글을 정리하여 발간한 것이다.
 
책의 내용은 스님이 직접 쓰신 서문으로 요약될 수 있다.
"여기 모은 이 글들은 산골의 오두막에서 홀로 지내며 그때 그때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내 삶의 뜨락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듯 스스럼없이 열어보인 것이다.
한 해가 저무는 길목에 서니 헤치고 왔던 길이 잎이 져버린 숲길처럼 휑하니 내다보인다.
나는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다시 묵은 허물을 벗는다.
이 책을 대하는 이마다 마음에 위로와 평안을 얻었으면 한다."
 
1.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는가?
"시계도 없고 라디오도 들을 수 없다. 비로소 시간 밖에서 살 수 있게 됐다. 배가 고파야만 끼니를 챙기고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온 후에라야 잠자리에 든다. 자연의 흐름을 따라 먹고 자고 움직이니 마음이 넉넉해지고 태평해진다.(p.22)"
 
첫 번째 장에서는 새로운 오두막에서 살아가기 위해 흙방을 만드시고 불일암과 달리 시계와 전기, 전화를 없애신 후 자연을 벗삼아, 자연과 함께 지내면서 자연의 일부가 되는 삶을 통해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던지신다.
문명과 습관이 보이게, 보이지 않게 강요하는 소유욕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각 개인이 스스로를 자각하는데 있어 가장 절실한 것이라며...
 
2.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직업이 있다. 그런데 그 일이 참으로 좋아서 하는 직업인이 얼마나 될까?
대개는 그 일이 좋아서, 그리고 하고 싶었던 일어어사가 아니라, 수입과 생활의 안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에 애착도 지니지 않고 책임감도 느끼지 않으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일가 사람이 겉도는 불성실한 직업인이 될 수 밖에 없다.
사람이 일을 하지만 그 일에 흥미가 없으면 일가 사람은 하나가 될 수 없다.
자신이 하는 일에 흥미를 가지고 책임을 느낄 때 사람은 그가 하는 일을 통해서 인간이 되어간다.(p.75) (중략...)
당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라. 그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이라. 그래서 당신의 인생을 환하게 꽃피우라.(p.77)"
 
사람이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 일에 몰입하게 되면, 스님의 말씀처럼 '일과 하나가 되는 것' 이전에 스스로의 하루하루가 신날 것이다.
 
작년에 유명한 모 소설가의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읽는 내내 책 제목처럼 같이 지루했다. 세인들은 모두 그 소설가가 '성공'한 사람이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아마 스스로가 어느 정도 정상에 올랐다고 생각해서 매너리즘에 빠진 것일 수도 있고 마케팅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소설가도 힘들고 어렵게 글을 써내고 세인들에게 인정받았음에도 다시 '하고싶지 않은 일'이 되버렸을 수도 있고...
 
나 역시 지금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언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3. 안으로 귀 기울이기
"우리는 말하기 전에 주의깊게 생각하는 습관부터 길러야 한다. 말하는 것보다는 귀 기울여 듣는 데 익숙해야 한다. 말의 충동에 놀아나지 않고 안으로 곰곰이 돌이켜 생각하면, 그 안에 지혜와 평안이 있음을 그때마다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말을 아끼려면 될 수 있는 한 타인의 일에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을 두고 아무 생각 없이 무책임하게 제삼자에 대해서 험담을 늘어놓는 것은 나쁜 버릇이고 악덕이다.
거듭 말하는 바이지만, 당신가 나 인간 개개인이 변화하지 않고는 세상은 결코 변화될 수 없다.
현재의 이 사회와 세상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 사회가 우리를 만들고 있다. 그것은 우리를 어떤 틀 속에 밀어놓고, 또 그 틀은 사회라는 구조 속으로 우리를 밀어붙인다.(p.117)"
 
이 이야기 속에는 단순하지만 깊고 넓은 스님의 기본적인 세계관과 철학이 엿보인다.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 자연과 사회와 인간이 모두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 인간이 사회를 만들고 그 사회가 다시 인간을 만들어 간다는 것, 마치 '뫼비우스의 띠'나 <여섯 개의 수>에 나오는 '오우라보루스'처럼 인과관계가 이루어지고 만물이 영향을 끼친다는 것...
어찌보면 '윤회'와도 같은 이 사슬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면 그것은 바로 한 사람, 한 사람부터 시작해야 한다.
 
결국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이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시 묻게 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스님은 지금의 자신을 안으로 살피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절실한 과제라고 강조한다.
 
4. 눈고장에서 또 한 번의 겨울을 나다.
"스님은 강원도 그 산골에서 혼자서 무슨 재미로 사세요?"라고 누가 물어보자 스님은 "시냇물 길어다 차 달여 마시는 재미로 살지요."라고 대꾸했다고 한다.(p.184)
 
우리는 이미 다시 돌아가기 어려운 도시에 살고 있어 잘 모르지만, 자연은 봄은 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자신의 멋과 풍류를 보여준다고 한다.
나무와 풀, 산짐승과 물소리, 바람과 햇볕, 달빛과 눈빛... 그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
 
5. 새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다.
"밤에는 동해바다 일대에 오징어잡이 배들의 집어등이 장관을 이룬다. 어족들은 눈부신 등불을 보고 무슨 잔치인가 싶어 몰려들었다가 잡혀 한 생애를 마친다. 등불에 속는 것이 어찌 고기떼 뿐이랴. 밤의 수상한 불빛에, 과장된 그 불빛에 속지 말아야 한다.(p.258)"

스님의 거처는 대외비다. 강원도 산골에 몇 년간 살다가 바닷가 가까운 곳으로 내려왔다.
연로하셔서 '영하 20도의 그 팽팽한 긴장감'이 이젠 만만치 않아 잠시 피한한 것이다.

이 책 속의 스님의 에세이들은 단순한 은둔자의 감상이 아니다.
몸은 홀로 있지만 인간과 자연과 사회에 대한 명민한 통찰이며, 스님이 추구하는 도의 일부다.
그리고 스님은 중생들로부터 배우고 얻는 것들에 대한 댓사로서, 마땅한 도리로서, 중생들의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행동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섣불리 탈출을 결행할 수 없는 도시인들에겐 크나큰 위안이요 자극일 수 밖에 없다.   
 

<아름다운 마무리>와 <산방한담>,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에 이어 법정스님의 저서를 네 번째로 읽었다. 이 책은 서점에 나온 스님의 저서 중에서 초기인 1998~1999년에 쓰신 글들이다. 

[ 2011년 2월 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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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시민 불복종 세계를 뒤흔든 선언 3
앤드류 커크 지음, 유강은 옮김 / 그린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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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도 지난 주(1월 25일) 공부모임의 부교재 중의 하나였다. 저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불복종]을 주제로 하여 [시민불복종]의 등장배경과 지은이 소로의 정치사상적인 입장과 초월주의에 대한 소개, 당대의 소로에 대한 평가, 소로에 대한 진실, 그리고 [시민불복종]의 유산과 현대로 이어지는 소로 신념의 여파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의 내용이 그리 길지는 않지만, 저자는 [시민불복종]을 매개로 하여 소로에 대하여, 전후 여파에 대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역자는 당초 에세이의 제목이 [시민정부에 대한 저항]이었던 [시민불복종]이 미국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단편일 것이라고 말한다. (원래 강연제목은 "정부에 대한 개인의 권리와 의무")
지금까지 수십 종의 판본이 출간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의 각급 학교와 대학의 커리큘럼에도 올라있다고...
 
저자의 생각으로는 소로의 정치사상적인 토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탄생과정을 알아야 한다. 저자는 미국의 탄생과 당시 사회역사적인 배경을 이렇게 말한다. "1775년~1783년의 독립전쟁으로부터 태어나 토머스 제퍼슨, 존 애덤스, 조지 워싱턴 등 건국의 아버지들이 작성한 건국 문서 위에 세워진 미국은 이상적인 국가, 즉 국민을 위한 국민의 창조물이라는 점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새로운 대륙에서 새로운 출발을 한 미국 앞에는 정복을 기다리는 험악한 변경이 놓여있었고 국민들은 그들이 가진 자원을 바탕으로 어떠한 도전에도 응전할 태세가 되어 있었다."
 
미국의 독립 선언서와 미국 헌법, 권리장전에는 소로의 사상과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몇 가지 개념들이 있다. 그것은 '행복추구권'과 '인민으로부터의 권력' 개념이다. 이는 소로에게 있어서 '개인에 대한 강조'를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근거가 되었다.
 
당시의 초월주의 역시 소로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세기 초반 미국에서는 엄격한 청교도주의와 칼뱅주의에 대한 반발로 유니테리언주의가 탄생하였고 랠프 왈도 에머슨은 이러한 유니테리언주의에서 종교적인 배경을 벗어나 초월주의를 창시했다. 소로는 에머슨을 처음 만나 제자가 되었다.
 
소로와 에머슨의 관계는 복잡하다고 전해진다. 처음 만난 후 에머슨이 소로의 스승이었고 후원자 역할을 하면서 소로를 많이 도와주었다. 하지만 반대로 에머슨의 사상은 소로의 열정과 독창성에 자극받은 것이었고 문화적 계몽이 실현되리라는 소로의 통찰력도 에머슨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철학이 다른 길로 가기 시작했고 초기에 나타난 서로에 대한 존경과 이상이 사라졌다.
 
[시민 불복종]이 당시에 특별히 독창적인 것은 아니었다. 국가와 개인의 적절한 관계에 대하여, 개인의 양심과 국가의 법과의 상충 문제, 사회의 질서와 개인의 자유의 양도에 대한 문제 등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많은 입장과 관념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로의 독특한 점은 그의 '문체가 가진 힘'과 '몸소 행한 실천의 상징적인 힘'이었다. 소로는 자연을 중심으로 사고만 하지 않고 직접 '월든'에 들어가 2년 넘게 생활하였고 노예제와 멕시코 전쟁에 대한 부당성을 글과 강연으로 주장하였으며, 부당한 정부에 대한 항의로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고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단 하루일지라도...)
 
소로의 정치학의 토대는 도덕률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절대적인 요구, 인간 속에 있는 신성, 인간 영혼의 진리성 등이다. 국가에 대한 그의 저항은 이러한 삶의 방식이 불가능하게 되는 지점에서 나타난다. 소로가 콩코드 문화회관에서 [시민불복종] 강연을 한 이유는 미국 북부에서 노예제 지지전쟁이라고 비판한 1846년의 멕시코전쟁과 노예제에 대한 가슴속에서 우러난 반감 때문이었다.
 
소로의 글은 당대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19세기 내내 그리고 20세기에 접어들어서까지 철저히 무시되었던 소로의 작품이 미국에서 폭넓은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920년대에  주로 야생 자연의 찬양자이자 자립적인 삶과 '자연으로의 회귀'를 옹호하는 낭만주의자로 알려졌다. 하지만, 소로가 정치사상가로 미친 파급력은 유럽과 인도에서는 지대했으나 미국에서는 1960년대의 급진운동을 통해 그의 글이 널리 알려지기 전까지는 미미한 정도에 머물렀다.
 
영국에서 소로에게 영향을 받은 인물은 사회주의 언론인이자 독립노동당의 창건자인 로버트 블래치퍼드, 사회주의동맹에 가입했던 에드워드 카펜터, 신생활협회 회원인 헨리 솔트 등이 있다. 간디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소로의 저작을 처음 접한 이후 1906년 경 [시민불복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고 '진리의 힘'이라 불리는 간디의 [사티아그라하]를 이끌어냈다. 간디는 감옥에 들어갈 때마다 소로의 저작을 읽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소로에 대한 대접은 극과 극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에 미국에서 일어난 '매카시즘' 광풍은 전세계 미국 문화원에서 소로의 저작을 폐기하도록 만들기도 했고 1960년대에 일어난 반전운동과 마팅 루터 킹 목사의 민권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소로의 영향은 21세기에 들어서도 줄어들지 않았고 911 테러전쟁 이후 시민저항 운동의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시민불복종] 뿐 아니라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과 미국의 역사와 국가/국민 개념이 다소 다르다 하더라도, 나는 정부와 시민(국민)에 대한 관념과 입장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직 한국에서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관계 정립, 개인과 집단간의 관계, 정부의 정당성과 부당성의 한계,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질서(법)의 경계, 부당한 정부에 대한 시민의 대응, 비폭력과 폭력의 경계와 구분 등에 대해 폭 넓은 사회적 공감대나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회적 논의나 공감대는 정부나 정치권, 언론이나 학계가 먼저 공론화시키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1세기는 바야흐로 개인의 인식과 행위의 완결성이 점점 커져가는 시대다.
한 사람 한 사람부터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와 개념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공개하고 서로가 의견을 나누면서 전체적인 공감대를 키워야할 것이다. 
  
[ 2011년 1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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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을 멈춰라 - 체르노빌이 예언한 후쿠시마
히로세 다카시 지음, 김원식 옮김 / 이음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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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4월 26일)는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폭발된지 25주년 되는 날이다. 

이 책은 1987년 일본에서 처음 초판이 발행되었고 1989년 재판을 발행한 후, 이번 일본 북동부 대지진과 쓰나미 발생으로 인한 후쿠시마 핵(원자력)발전소 사태를 맞이하여 다시 복간된 것이다. 1986년 소련(현재는 우크라이나 지역) 체르노빌 핵(원자력)발전소 폭발사건이 유럽과 전지구에 가져다준 충격과 피해를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한 책으로 24년 전에 후쿠시마 핵(원자력)발전소 사태를 예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1987년 발간된 후 이 책은 일본의 반핵, 반원자력 운동에 엄청난 회오리를 일으켰다고 한다.
 
그 사건은 1986년 4월 26일 운명의 금요일 한 밤중에 일어났다. 우크라이나 평야 한가운데서 천지를 뒤흔드는 대폭발음과 함께 체르노빌 원자로가 폭발한 것이다. 저자가 초판을 발행할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그 비극의 진상은 아직 지구상에 생존하는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았다. 당시 체르노빌 핵발전소는 세계에서 가장 최첨단의 우수한 핵발전소로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주의 체제의 우수성을 주장해오던 소련 지도부는 핵발전소 폭발사고를 국내외 정부나 사람들에게 알리기 싫어했던 것이다.(일부에서는 당시 소련 지도부 역시 핵발전소 관리 담당자들로부터 미미한 사고가 일어난 것이며 빠른 시일 안에 핵발전소를 정상화시킬 수 있다고 허위 보고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핵발전소 폭발이나 방사능 유출과 같은 재해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사람들에게 질병으로 나타난다. 엄마 뱃속에서 자라는 태아를 덮치고 엄마 옆에서 소꿉장난을 하던 어린이를 덮치고 미래의 사랑과 희망을 꿈꾸는 젊은이를 덮친다. 그들 중에서 누군가가 병에 걸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의 인생은 절망 속에 빠지고 만다. 저자는 체르노빌 폭발 사고를 통해 핵발전소의 위험과 방사능의 피해에 대해 섬뜩한 경고를 알려주고 있으며 핵발전소과 방사능의 불안정성과 위험을 감추고 알려주지 않는 구조적인 이유와 세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1부. [체르노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에서는 1986년 당시 체르노빌 폭발 사고의 자세한 경위와 사고 원인을 분석하고 언론 및 자료에서 나타난 사건 경위를 통해 사고의 여파와 피해상황을 도출한다. 그리고 IAEA와 소련 크렘린에서 사고에 얼마나 무책임하게 대처하고 사고를 감추기 위해 애썼는지 등에 대해 말한다.

 
2부. [재해의 예측과 현실]에서는 1945년 일본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를 전후하여 미국 등에서 진행한 핵 실험에 참가한 이후 방사능에 피폭된 ’아토믹 솔저(atomic soldier)’의 이야기, 남태평양 비키니섬 핵 실험 여파, 미국 네바다 핵 실험 후 피해상황, 체르노빌 사고가 유럽 전역에 끼친 피해, 쓰리마일 핵발전소 사고 등의 경위와 방사능이 동식물에게 단기적, 장기적으로 어떤 피해를 입히는지 다룬다.
  
3부. [일본에 대사고가 일어나는 날]에서는 핵발전소의 구조와 위험, 위협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함과 동시에 그 위헙을 둘러싼 일본 정부와 기업계, 연구소와 IAEA의 인식을 다룬다. 지진대에 올라서 있는 일본으로서는 대지진과 쓰나미 등의 자연재해를 통해 얼마든지 핵발전소에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4부. [원자력 산업과 저널리즘의 정체]에서는 핵발전소를 명분으로 내세우는 에너지 문제에 대한 허상을 지적하고 핵발전소와 에너지를 둘러싼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스차일드, 이스라엘, 모건과 록펠러 등의 세계적인 음모와 범죄행위를 폭로한다. 또한, 일본에서 핵발전소를 둘러싼 이해관계 세력들과 저널리즘을 상실한 저널리즘의 행태에 대해 밝힌다.
 
비키니섬 핵 실험, 네바다 핵 실험, 아토믹 솔져(atomic soldier), 쓰리마일 사고, 체르노빌 사고, 후쿠시마 사고,... 이 모든 핵 관련 재앙의 피해는 사고 순간부터 수 십년에서 수 백년 동안 주변 수 백~수 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에서 인간을 비롯한 동식물들에게 질병을 일으킨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질병들이 유전자속에 숨어 있다가 후대에 걸쳐 영원히 질병과 장애와 돌연변이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과학기술이 현대에 이르러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핵 발전 과정에서 ’완벽한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으며, 고농축 핵폐기물 처리에 대해서는 현재 어느 국가도 제대로 된 처리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핵 발전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이성적으로도, 합리적으로도, 인권의 차원에서도, 생태계의 차원에서도 우리는 ’핵 발전 포기’라는 결론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00%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과학기술을 남용해서는 안된다. 자동차나 비행기가 100% 안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피해는 제한적이다. 하지만 핵발전소의 피해는 너무도 광범위하고 파괴적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전쟁에 반대하는 이유처럼 핵발전을 반대해야 한다. 우리가 이 위험에서 살아남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의 아이들, 후손들에게 그 위험을 떠넘기는 것에 다름 없다. 그들이 그런 위험과 피해를 당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독일처럼 사회 전체적으로 핵발전 포기를 분명하게 합의하고 계획되거나 추진 중인 핵발전소 건립을 취소해야 한다. 가동 중인 핵발전소는 기한을 정해 단계적으로 폐기해야 하고 가동기간이 종료된 핵발전소는 가동 연장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지식경제부와 원자력 관계자들, 한국전력과 관련 산업 종사자들이 핵(원자력)발전소를 통한 전기량 충당율이 40% 가까이 되는 한국의 경우에 전국적으로전기부족으로 큰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을 제기할 것이다. 하지만, 태양력, 풍력, 바이오매스 등 재생가능한 에너지 개발에 집중 투자하고 전기사용에 일대 혁신을 일으키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주장하고 있다. 1980~90년대 한국에서 유휴전기량이 남아돌던 때가 있었던 것을 상기하면 심야전력 할인과 산업전기 할인 등을 취소하고 전기요금을 선진국처럼 현실화함과 동시에 전국적으로 불필요한 전력을 절약하고 절전제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충분히 가능한 상황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더 많이, 더 크게, 더 높이, 더 빠르게, 더 편하게"를 삶을 추구해왔다.
그 결과 오히려 ’더 많이, 더 크게’ 질병과 스트레스를 받고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해 왔고 과도한 소비생활과 부채를 가졌으며,
빈부격차와 소득불균형을 만들어 내고 물가와 대학등록금과 사교육비를 ’더 높게’ 만들고,
비정규직 증가와 청년실업율, 국가채무와 가계채무를, 공동체 와해와 환경파괴를 ’더 빠르게’ 늘리고,
그리고 ’더 편하게’ 살아감으로써 운동부족과 건강부실, 대화의 소통의 부재, 자연과 멀어지고 있다.
행복과 건강, 더불어 삶과 웃음과 희망을 위해 우리는 좀 더 적게, 작게, 낮게, 느리게, 불편하게 삶을 살아야하지 않을까????
 
* 책 속의 문장 : 
- 이제부터 시도하고자 하는 작업은 다음과 같다. 우선 20세기에 일어난 다양한 중대 사건들을 추려낸 후, 각 사건에서 도발적으로 행동을 일삼았거나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의 이름을 차례로 적어본다. 다음으로, 이들의 표면적인 직함을 걷어내고 한 사람씩 가계도를 정리해본다. 이것은 이들이 자본가와 대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함이다. 그리고 예측한대로 결과가 나온 인재들이 모아지면, 그들의 행동을 역사적 사실 위에 순서를 세워 짜 맞추어 간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진상을 ‘자본의 언어’로 다시 써보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씌어진 역사서와는 매우 다른 실상이 눈앞에 펼쳐지지 않을까? (/ 본문 중에서)

- 역사책 어딘가에 하나의 커다란 금기가 있다면 모두들 그곳을 피해서 지나간다. 그러나 어쩌면 그 금기만이 진실이며, 그 금기를 자유자재로 조작하는 자야말로 우리가 보다 평화로운 세계를 위해 필연적으로 맞서야 할 유일한 대상이 아닐까? 기존의 역사 해석의 중대한 과오는 이미 오래 전부터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기업 패밀리, 요컨대 자본가 구성원의 계보에 대하여 단 한번이라도 정밀하고도 체계적인 조사를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역사를 그려나간 최고 책임자를 여지껏 한 차례도 분석해 본 적이 없는 인류.. 결국 지금까지 우리는 이성을 키울 만한 지식을 제대로 접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는지.. (/ 본문 중에서)
 
[ 2011년 4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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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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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월 두 번째(25일) 공부모임 교재 중 하나였다.
 
이 책은 국가와 인간(시민,국민) 사이의 관계정립에 대해 항상 고민했던 나에게 큰 깨달음과 지침을 주었다.
 
무릇 국가와 사회, 개인과 시민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꼭 한 번씩 읽기를 권한다.
특히, "정의롭지 못한 정부에 대한 시민의 저항"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이 책을 통해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과 더불어 박홍규 교수의 <나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월든>을 함께 읽으면 자유인, 자연인, 초월주의자, 그리고 선각자로서의 소로의 삶과 생각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의 서평을 쓰기 보다 오늘 공부모임에서 발제를 맡으신 한양대 법대 박찬운 교수님이 오마이뉴스에 내보낸 서평을 보내는 것이 더 적확할 것 같아 소개한다.

이 글을 빌어 공부모임 교재에 이 책을 추천해 주시고 친히 발제 & 토론해주신 박교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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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미쳐 돌아갈 때 당신은?
[이시대에 읽어야 할 명저⑥]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의 불복종>

출처 :  
국가가 미쳐 돌아갈 때 당신은? - 오마이뉴스

국민으로 살 것인가, 인간으로 살 것인가



얼마 전 국방부에서 시중 서점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책들을 금서로 정한 다음 군인들에게 읽지 못하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에 대해 뜻있는 군법무관들이 그런 것은 헌법상의 사상·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헌법재판소는 이를 기각하였다. 결국 국방부의 그런 조치가 대한민국 땅에서 허용된다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은 이에 동의하는가. 만일 동의한다면 더 이상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 글은 독자 여러분을 위한 것이다.

나는 위 사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국민으로 살 것인가, 인간으로 살 것인가."

만일 당신이 어떤 책을 보고 싶은데 국가가 그 책을 불온도서로 규정하였다 치자. 이때 그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철저한 ’국민’이다. 이런 사람은 국가가 읽지 말라는 책을 왜 읽느냐고 오히려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또 이런 사람도 있다. 내가 책을 읽는데 국가의 승인을 왜 받아야 하느냐고. 도대체 국가가 무엇이건대 내 책 읽는 일까지 참견하느냐고. 이런 사람은 책을 읽는 것은 전적으로 ’나’ 개인의 일이지 국가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 사람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런 생각을 좀 연장하면 우리의 국가보안법의 정당성 여부에 이른다. 국보법은 금서를 인정한다. 어떤 책이 ’반국가단체(북한)를 이롭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면 그것은 금서이며, 그것을 읽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다. 그것을 위반하면 국가의 엄격한 제제(형벌)를 받게 된다. 그러니 이 법률을 당연시한다면 당신은 철저한 ’국민’이다. 이 법률을 반대한다면 당신은 ’인간’으로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는 대가가 따라온다. 감옥에 갈지도 모를 무시무시한 대가이다. 이제 독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국민으로 살 것인가, 인간으로 살 것인가."
<시민의 불복종>이 나오기까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
ⓒ 이레
시민의 불복종

이와 같은 문제에 좋은 성찰을 제공하는 한 권의 책을 소개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쓴 <시민의 불복종>(강승영 옮김, 이레)이다.  

소로가 이 책을 쓴 시점은 미국이 멕시코와 전쟁을 하던 때(1846~1848)이다. 이 당시 미국은 텍사스의 병합문제로 멕시코와 전쟁을 하였고, 그 결과 단 1500만 달러로 텍사스, 뉴멕시코, 캘리포니아를 양도받았다. 소로는 이 전쟁을 악한 전쟁으로 보았고 강력히 비판하였다.  

한편, 소로는 노예제를 반대하였다. 그는 이와 관련된 글, <자유의 호소, Herald of Freedom>를 콩코드 학파의 기관지격인 <다이얼>에 기고하였을 뿐만 아니라 노예제를 반대하는 강연을 하는 등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소로는 <월든>의 배경이 된 호숫가 통나무집에서 사는 동안 콩코드 시내에 나왔다가 친구인 세금 징수원으로부터 세금 독촉을 받는다. 그러나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의 반대를 몸으로 실천하는 그는 세금 납부를 거부한다. 이러한 배경을 지닌 시민 불복종이 처음 <미학, Aesthetic Papers>에 게재되었을 때는 그 제목이 <시민 정부에 대한 저항, 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이었으나 그 후에 <시민의 불복종, Civil Disobedience>이라고 고쳐졌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thoreausociety.org
헨리 데이비드 소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1817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였지만 부와 명성을 좇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 속에서 글을 쓰며 일생을 보냈다.  
그가 활동한 19세기 중반의 미국은 산업혁명의 여파가 몰아치는 상황이었으므로 어느 때보다 물질주의적 사고가 지배하는 시대였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당시 여전히 노예제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멕시코와의 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혀 가는 제국주의 국가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로는 고향 선배인 랠프 월도 에머슨과 함께 물질에 대한 정신의 우위를 주장하는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 철학자로 살아간다.  

그는 여러 저작을 남겼지만 두 작품이 특히 주목을 끈다. 하나는 그의 자연주의 철학을 알 수 있는 <월든>(강승영 옮김, 이레)이다. 이는 고향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에서 통나무집을 짓고 2년간 생활하면서 그 경험을 쓴 것인데 19세기에 쓰인 가장 중요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하나가 여기에서 소개하는 <시민의 불복종>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국가에 대하여 개인이 할 수 있는 ’불복종’의 의미를 성찰하였다. 이 책은 톨스토이나 간디에게도 영향을 주었으며 ’세계의 역사를 바꾼 책’으로도 꼽힌다. 소로는 1862년 폐결핵으로 4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개인은 국가에서 어떤 존재인가 

소로는 이 책을 통해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성찰한다. 그에게 있어 국가는 불가피한 존재라 할지라도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책은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는 말로 시작하는 데 바로 이 말은 소로의 국가와 정부에 대한 기본 입장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는 "정부가 그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할 때는 곧 피통치자들이 간섭을 가장 적게 받은 때"라고 설명한다.  

혹자는 이 말만 듣고서 요즘 유행하는 신자유주의와 연계시킬지도 모르겠다. 소로가 자유주의 경제철학을 이야기했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는 완전 오버다. 소로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자유를 누리는 데 국가가 국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간섭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지 불평등을 조장하는 자유주의 경제 철학을 지지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럼 소로에게 있어 국가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개인은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웅변적으로 말한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일이다." (13쪽) 

이 말은 국가의 법은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만일 국가의 법이 정의롭지 못하면 그것에 따를 수 없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 사람들은 국가의 도구도 수단도 될 수 없는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소로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셰익스피어(<존왕> 3막 2장)의 다음과 같은 말을 소개한다. 

"누구의 소유물이 되기에는,

누구의 제2인자가 되기에는,

또 세계의 어느 왕국의 쓸만한

하인이나 도구가 되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고귀하게 태어났다"(16쪽) 

국가가 미쳐 돌아갈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소로에게 있어 당시 미국은 미쳐가는 시기였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당시 다수는 멕시코 전쟁을 지지하고 노예제도를 지지하였다. 미국은 사람들에게 꿈을 주었으며, 사람들은 그 꿈이 실현된다고 믿고 있었다. 미국은 서부로 계속 뻗어 나갔으며 드디어 태평양 연안국이 되었다. 1849년에는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골드러시를 이루며 서부로 달려가는 시대였으니, 참으로 미국은 국운이 날로 성장하는 사회였다. 그러나 소로에게 보이는 미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미국은 국민의 6분의 1이 노예이고 미국은 멕시코를 침략한 불의의 나라였다. 이러한 정부에 대해 소로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노예의 정부이기도 한 이 정치적 조직을 나의 정부로 단 한 순간이라도 인정할 수 없다." (16쪽) 

그러니 소로에게 있어 이런 정부에 대하여 대항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방치해서는 안 되며 정의롭지 못한 행위의 공범이 되지 않으려면 타협하지 말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정부에 대하여 반대를 표시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불가피한 방식은 정부를 부정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강고한 폭압적인 정부를 상대로 어떻게 그 정부를 부정할 수 있을까. 

그는 정의롭지 못한 정부와의 관계 단절을 주장한다. 정부에 대한 충성의 거부와 저항을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비록 그 거절의 과정이 다수가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비록 소수일지라도 행동하라고 요구한다. 그리하면 언젠가는 그가 목표하는 그 양심적 결과가 일어나리라고 확신하였다. 그는 그것을 이렇게 확신어린 어투로 이야기한다. 

"나는 이것만은 알고 있다. 즉, 이 매사추세츠 주 안에서 천 사람이, 아니 백 사람이, 아니 내가 이름을 댈 수 있는 열 사람이라도 노예 소유하기를 그만두고 실지로 노예제도의 방조자의 입장에서 물러나며 그 때문에 형무소에 갇힌다면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31쪽) 

그러한 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나를 감옥으로 보낸다면 어떻게 할까. 소로는 명예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한다.  

"사람 하나라도 부당하게 가두는 정부 밑에서 의로운 사람이 진정 있을 곳은 역시 감옥이다." (32쪽)

"노예의 나라에서 자유인이 명예롭게 기거할 수 있는 유일한 집이 감옥인 것이다." (33쪽) 

물론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감옥이라도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역사 이래로 소수이다. 사회적 소수가 다수를 상대로 싸울 때 사람들은 그들이 납득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혼란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로는 이에 대하여 반대한다. 소로에게 있어 사회 혼란을 막을 책무는 국가나 정부에게 있지 소수에게 있는 게 아니다. 소수는 정부에 대하여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코 다수의 힘에 무력해 져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소수가 무력한 것은 다수에게 다소곳이 순응하고 있을 때이다. … 소수가 전력을 다해 막을 때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된다. 의로운 사람들을 모두 감옥에 잡아 가두든가, 아니면 전쟁과 노예제도를 포기하든가의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면 주 정부는 어떤 길을 택할지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33쪽) 

소수가 전력을 다해 정부에 대하여 "그게 아니다"라고 하면 정부도 결국 돌아선다는 믿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소수자 전부를 감옥에 보낼 그런 정부는 도저히 민주 정부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런 정부에 대해서는 더 큰 시민의 저항권에 직면하게 된다. 프랑스 대혁명이 바로 그게 아닌가(프랑스인권선언 제2조를 보라.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인간의 자연적이고 침해할 수 없는 권리를 보존하는 데 있다. 그 권리는 … 압제에 대한 <저항권>이다.").  

시민 불복종의 핵심은 비폭력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분명히 해두자. 소로가 말하는 ’불복종’과 ’폭력’과의 관계 말이다. 소로는 폭압적인 정권에 대한 폭력적 저항권을 인정하지만 일반적인 시민정부(민주주의적 원칙에 의해 세워진 정부를 말한다)에 대한 ’불복종’은 철저히 ’비폭력적’이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러한 비폭력적 불복종은 많은 이들의 연구에 의해서도 계승되었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정의론으로 유명한 존 롤스이다.  

롤스는 그의 책 <정의론>에서 정부가 정의의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경우 시민 불복종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그 불복종은 "법이나 정부의 정책에 변혁을 가져올 목적으로 행해지는 공공적이고 비폭력적이며 양심적이긴 하지만 법에 반하는 정치적 행위"라고 정의하였다. 롤스는 ’법에 대한 충실성의 한계 내에서 법에 대한 불복종’이 시민 불복종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볼 때 나는 시민 불복종을 ’내가 어떤 특정의 법을 불의라 생각하여 그것을 어기긴 하지만 그 법적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해한다. 즉, 불복종의 결과가 감옥에 가야 하는 것이라면 가겠다는 것이지, 감옥 가는 것을 물리적으로 거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치적 다수에게 나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소로가 보여준 시민 불복종의 참된 모습이라 생각한다.    

소로의 영향

소로의 시민의 불복종은 기본적으로 비폭력 저항을 의미한다. 사악한 정부에 대해서는 그 관계를 절단하고 그 방법으로 세금납부를 거부한 것이다. 이와 같은 비폭력 저항은 톨스토이와 간디에게 영향을 미쳤고 마틴 루터 킹의 시민권 운동 나아가 오늘날까지 비폭력 시민저항 운동의 사상적 뿌리로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톨스토이는 <시민의 불복종>을 1900년경에 우연히 읽고 소로를 찬양하는 한편 미국인은 왜 그런 소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백만장자나 장군 등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느냐고 묻는 글을 썼다.
간디는 런던 유학시절 소로의 전기를 읽었고 특히 <시민의 불복종>에 주목했다. 그는 남아프리카와 인도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비폭력 저항의 사상인 사탸그라하(satyagraha)를 형성하였다. 그는 1907년 그가 발행하던 <인디언 오피니언>에 <시민의 불복종>을 실었고 나중에는 팸플릿으로도 발행했다. 이후 이 책은 간디에게 있어 성경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그는 이 책을 항상 곁에 두었고, 감옥에 갈 때도 가지고 갔다고 한다.

소로가 바라는 세상, 우리가 바라는 세상 

소로가 바라던 세상은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다. 그 세상은 나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사회다. 이런 사회가 뭐 대단한 사회도 아니다. 나의 삶의 방식이 존중되는 사회, 그것이면 족하다. 소로는 이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41쪽) 

이런 삶의 방식이 허용되는 사회란 개인을 한 이웃으로 존경할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국민이 될 것을 강요하지 않고 국가와 상관없이 살 수 있는 인간 본연의 삶을 ’최대한’ 인정하는 그런 사회를 말한다. 그런 국가는 <시민의 불복종> 맨 끝에서 소로가 염원하는 이런 사회를 말한다. 

"그런 국가는, 일부 소수의 사람들이 국가에 대해 초연하며 국가에 대해 참견하지도 않고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살더라도 이웃과 동포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한 그들이 국가의 안녕을 해치는 자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58쪽) 

소로가 바라는 세상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될 수는 없을까. 불복종 운운의 이야기를 했다고 두들겨 맞는 사회가 아니라 이런 말도 우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고견이라고 존중해 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사회, 그것이 과연 나만의 유토피아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언젠가 우리가 반드시 이 땅에서 성취해 내야 할 우리의 본 모습이다. 나는 정령 그런 사회를 소망한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08875&PAGE_CD=19 )
 
[ 2011년 1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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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2011 경제 대전망 - 인터넷 경제 대통령
미네르바 박대성 지음 / 미르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2011년 국내외 경제사정을 예측하는 책들을 통해 한 해의 경제흐름의 시나리오를 머리 속에 두기 위해 관련서적을 읽었다.
그 첫 번째는 <미네르바의 2011 경제대전망>..
 
저자는 2008년 말 리만브러더스 파산을 예측하여 일약 스타덤에 오른 '미네르바'...
그가 권력에 의해 구속(전기통신기본법 47조1항)됨으로써 이명박정권의 강압적 여론 통제의 본질을 또 한 번 드러내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2009년 초에 다음 아고라에 들어있던 미네르바의 글을 읽으면서 전문가 뺨치는 분석과 전망을 보고 놀랐고 한국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경제분야 고위공무원들의 무능과 비리를 비꼬는 글에 강력한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2009년 7월 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고 2009년 1월 그가 헌법재판소에 위헌신청을 제기했던 소송은 작년 12월 헌재로부터 위헌 판정을 받았다.
헌재의 위헌 판정으로 검찰은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 동일한 법률을 적용해 기소한 31명에 대해서도 곧이어 공소를 취하했다.
공권력의 무모한 법 적용에 의한 '표현의 자유'가 법으로부터 보호받은 상징적인 사건이며, 한국사회에서 나름 의미있는 법적 분쟁으로 평가되었다.
 
이 책은 인터넷에서 2011년 세계경제 및 한국경제에 대한 여러 전망 관련 서적을 검토하던 중 눈에 띄어 구입하여 읽은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있었고 사회적으로도 미네르바가 제도권 밖에서 날렸던 그 분석력과 예측력을 서적을 통하여 일반인들에게 시험받는 것이기에...
 
책값 5,000원에 90쪽...
처음부터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다 읽고나니 먼저 실망이 컸다.
책값이 저렴하기는 하지만, 경제전망이라는 것이 데이터와 통계 근거 없이 개인이 임의로 '이렇다, 저렇다.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라고 제시할 수는 없는 법...
그는 무엇이 부족하고 바빴는지 중국, 미국, 유럽 등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 대전망'을, 개요/ 금융/ 상품/ 원자재/ 주식/ 부동산시장을 내용으로 하는 '한국 경제 전망'을 요약하여 정리했다.
내용이 빈약하니 특별한 근거와 분석에 전제한 것이 아니라 단지 '선언' 수준에 그친다.
다음 아고라에 포효했던 그의 열정과 노력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 역시 언론이 과대포장하여 만들어낸 허상인가...
 
아무튼, 그의 책 내용을 요약해 보면,
1. 중국경제의 전망 :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제 금융환경의 판도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전될 것 2. 미국 경제 전망 : 2011년 경기회복세는 어려울 것이며 디플레이션이 우려됨.
3. 유럽경제의 전망 : 독일, 프랑스 중심으로 경기 회복세
4. 한국경제 전망 : 경제성장율은 3.5~4.0% 예상
                           금융기관의 민영화에 따른 새판짜기가 시작됨
                           수출은 줄어들고 내수 소비가 경제성장의 중요 변수가 될 것
                           금, 유가, 철강을 제외한 원자재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세
                           주식시장은 양극화 심화
                           부동산시장은 전세난 가중
5. 2011년 주식투자 포트폴리오 전략
  -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는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지만 금리 인상에 대한 변수와 정부의 환율 하락세 저지를 통한 외국인 자금 이탈로 단기 주가 급락 변수로 인해 한국증시는 2011년 상반기 대규모 조정 후 재 반등의 과정을 밟아 나갈 가능성이 크며 환율하락에 따른 내수주의 수혜는 없을 것이다.
- 해외공사 수주아 주문물량을 받아 실적 상승의 호재가 존재하는 현대건설과 GS건설 같은 대형 건설사가 매수 대상
 
내용이 빈약하고 '선언'적인 것은 그렇다 치고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은 다른 경제 전망서에서 다루지 않았던 관심사를 그가 다룬 점..
책 속에는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전망이 많은 분량을 차지했고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접근도 다른 기관과 조금 달랐다.
물론, 그 내용이 적합하냐, 근거가 있냐, 합리적이냐를 떠나서...^^
 
2011년 쯤에는 그의 진짜 실력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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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의 '미네르바' 에 대한 항소를 취하한 관련 기사
 

檢, 미네르바 무죄 확정...천안함·연평도 관련 공소 취하

2011년 01월 04일 (화) 11:17:03 김종섭 기자 kjs@ithedaily.com


【서울=더데일리】김종섭 기자 = 검찰이 헌법재판소의 전기통신기본법 위헌 판결에 따라 '미네르바' 박대성씨(32)의 항소를 취하했다.

또 천안함과 연평도와 관련해 예비군 동원령 등 허위문자를 날린 혐의자들에 대해서도 잇따라 공소 취하 결정을 내렸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해 12월30일 박씨의 항소심 재판을 심리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부장판사 이상훈)에 항소취하서를 제출했다.

앞서 박씨는 2009년 7월 포털사이트 다음(
www.daum.net) 아고라 경제토론방에 '정부가 환전업무를 8월1일부로 중단하게 됐다'는 허위 내용의 글 등을 올려 구속 기소,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됐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 항소심 재판은 헌재에서 관련 조항에 대해 위헌 여부가 가려질 때까지 보류된 상태였다.

이후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2월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로 허위 통신을 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규정한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검사 김영대)도 북한의 연평도 피격과 천안함 공격 당시 허위 사실을 유포, 전기통신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31명에 대해 법원에 공소취소서를 제출했다.

다만 검찰은 천안한 공격 당시 허위사실을 유포해 기소된 3명 중 2명은 명예훼손 혐의로도 기소된 점을 감안,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소를 취소하지 않았다.

 
(
http://www.ithedaily.com/news/articleView.html?idxno=77090#)  
  
[ 2011년 1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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