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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시민 불복종 ㅣ 세계를 뒤흔든 선언 3
앤드류 커크 지음, 유강은 옮김 / 그린비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도 지난 주(1월 25일) 공부모임의 부교재 중의 하나였다. 저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불복종]을 주제로 하여 [시민불복종]의 등장배경과 지은이 소로의 정치사상적인 입장과 초월주의에 대한 소개, 당대의 소로에 대한 평가, 소로에 대한 진실, 그리고 [시민불복종]의 유산과 현대로 이어지는 소로 신념의 여파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의 내용이 그리 길지는 않지만, 저자는 [시민불복종]을 매개로 하여 소로에 대하여, 전후 여파에 대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역자는 당초 에세이의 제목이 [시민정부에 대한 저항]이었던 [시민불복종]이 미국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단편일 것이라고 말한다. (원래 강연제목은 "정부에 대한 개인의 권리와 의무")
지금까지 수십 종의 판본이 출간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의 각급 학교와 대학의 커리큘럼에도 올라있다고...
저자의 생각으로는 소로의 정치사상적인 토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탄생과정을 알아야 한다. 저자는 미국의 탄생과 당시 사회역사적인 배경을 이렇게 말한다. "1775년~1783년의 독립전쟁으로부터 태어나 토머스 제퍼슨, 존 애덤스, 조지 워싱턴 등 건국의 아버지들이 작성한 건국 문서 위에 세워진 미국은 이상적인 국가, 즉 국민을 위한 국민의 창조물이라는 점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새로운 대륙에서 새로운 출발을 한 미국 앞에는 정복을 기다리는 험악한 변경이 놓여있었고 국민들은 그들이 가진 자원을 바탕으로 어떠한 도전에도 응전할 태세가 되어 있었다."
미국의 독립 선언서와 미국 헌법, 권리장전에는 소로의 사상과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몇 가지 개념들이 있다. 그것은 '행복추구권'과 '인민으로부터의 권력' 개념이다. 이는 소로에게 있어서 '개인에 대한 강조'를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근거가 되었다.
당시의 초월주의 역시 소로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세기 초반 미국에서는 엄격한 청교도주의와 칼뱅주의에 대한 반발로 유니테리언주의가 탄생하였고 랠프 왈도 에머슨은 이러한 유니테리언주의에서 종교적인 배경을 벗어나 초월주의를 창시했다. 소로는 에머슨을 처음 만나 제자가 되었다.
소로와 에머슨의 관계는 복잡하다고 전해진다. 처음 만난 후 에머슨이 소로의 스승이었고 후원자 역할을 하면서 소로를 많이 도와주었다. 하지만 반대로 에머슨의 사상은 소로의 열정과 독창성에 자극받은 것이었고 문화적 계몽이 실현되리라는 소로의 통찰력도 에머슨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철학이 다른 길로 가기 시작했고 초기에 나타난 서로에 대한 존경과 이상이 사라졌다.
[시민 불복종]이 당시에 특별히 독창적인 것은 아니었다. 국가와 개인의 적절한 관계에 대하여, 개인의 양심과 국가의 법과의 상충 문제, 사회의 질서와 개인의 자유의 양도에 대한 문제 등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많은 입장과 관념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로의 독특한 점은 그의 '문체가 가진 힘'과 '몸소 행한 실천의 상징적인 힘'이었다. 소로는 자연을 중심으로 사고만 하지 않고 직접 '월든'에 들어가 2년 넘게 생활하였고 노예제와 멕시코 전쟁에 대한 부당성을 글과 강연으로 주장하였으며, 부당한 정부에 대한 항의로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고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단 하루일지라도...)
소로의 정치학의 토대는 도덕률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절대적인 요구, 인간 속에 있는 신성, 인간 영혼의 진리성 등이다. 국가에 대한 그의 저항은 이러한 삶의 방식이 불가능하게 되는 지점에서 나타난다. 소로가 콩코드 문화회관에서 [시민불복종] 강연을 한 이유는 미국 북부에서 노예제 지지전쟁이라고 비판한 1846년의 멕시코전쟁과 노예제에 대한 가슴속에서 우러난 반감 때문이었다.
소로의 글은 당대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19세기 내내 그리고 20세기에 접어들어서까지 철저히 무시되었던 소로의 작품이 미국에서 폭넓은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920년대에 주로 야생 자연의 찬양자이자 자립적인 삶과 '자연으로의 회귀'를 옹호하는 낭만주의자로 알려졌다. 하지만, 소로가 정치사상가로 미친 파급력은 유럽과 인도에서는 지대했으나 미국에서는 1960년대의 급진운동을 통해 그의 글이 널리 알려지기 전까지는 미미한 정도에 머물렀다.
영국에서 소로에게 영향을 받은 인물은 사회주의 언론인이자 독립노동당의 창건자인 로버트 블래치퍼드, 사회주의동맹에 가입했던 에드워드 카펜터, 신생활협회 회원인 헨리 솔트 등이 있다. 간디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소로의 저작을 처음 접한 이후 1906년 경 [시민불복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고 '진리의 힘'이라 불리는 간디의 [사티아그라하]를 이끌어냈다. 간디는 감옥에 들어갈 때마다 소로의 저작을 읽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소로에 대한 대접은 극과 극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에 미국에서 일어난 '매카시즘' 광풍은 전세계 미국 문화원에서 소로의 저작을 폐기하도록 만들기도 했고 1960년대에 일어난 반전운동과 마팅 루터 킹 목사의 민권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소로의 영향은 21세기에 들어서도 줄어들지 않았고 911 테러전쟁 이후 시민저항 운동의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시민불복종] 뿐 아니라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과 미국의 역사와 국가/국민 개념이 다소 다르다 하더라도, 나는 정부와 시민(국민)에 대한 관념과 입장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직 한국에서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관계 정립, 개인과 집단간의 관계, 정부의 정당성과 부당성의 한계,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질서(법)의 경계, 부당한 정부에 대한 시민의 대응, 비폭력과 폭력의 경계와 구분 등에 대해 폭 넓은 사회적 공감대나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회적 논의나 공감대는 정부나 정치권, 언론이나 학계가 먼저 공론화시키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1세기는 바야흐로 개인의 인식과 행위의 완결성이 점점 커져가는 시대다.
한 사람 한 사람부터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와 개념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공개하고 서로가 의견을 나누면서 전체적인 공감대를 키워야할 것이다.
[ 2011년 1월 2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