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 - 개정2판
모티머 J.애들러 외 지음 / 멘토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인터파크 블로그 친구로부터 소개받은 책...  이 책이 처음 출판된 때가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40년 초이고 내가 읽은 책은 1972년 3월에 재판으로 발간한 책을 번역한 것이다. 한반도가 일제의 강점에서 시름하면서 한글마저 말살되고 있던 때에 유럽인들은 ’독서법’에 관련된 책을 출판했다는 이야기다.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동양이나 한국보다 앞선 그들의 문화와 기술이 가끔 부럽다...
 
나는 2008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300권이 넘는 책을 ’미친듯이(?)’ 읽었다. 대부분 내가 처음 읽은 책들이고(두 번째나 세 번째로 읽은 것은 5%도 채 안된다) 그 300권 중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두 세번 읽은 책 역시 10%가 채 되지 않는다.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지만, 아무튼 작년부터 책을 읽는 것과 관련하여 두 가지가 늘 고민이었다. 첫 번째는 ’셀 수 없이 많은 책 중에서 어떤 것을 읽을 것인가’였고 두 번째는 ’어떻게 효과적이고 성과적으로 책을 읽은 것인가’였다. 법정스님의 추천도서를 읽기 시작한 것과 공부모임에 참여한 이유 중 한 가지가 첫 번째를 해결하기 위함이었고 이 책을 읽은 것이 두 번째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빠른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책을 선택하는 방법, 이해력을 높여주는 독서법,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여러 권의 책을 비교하며 읽는 방법 등 적절한 독서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또 독서의 성공여부는 ’저자가 전하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독서의 수준을 4단계(기초적인 읽기 - 살펴보기 - 분석하며 읽기 - 통합적인 읽기)로 나누어 올바른 독서법에 대해 설명하고 실용서적, 문학서적, 역사서적, 철학서적 등 각 분야에 맞는 독서법을 제시한다. 
 
저자의 ’독서법’을 읽고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까지 대부분 책을 읽는 과정이나 책을 읽은 후 정리하는 습관, 서평을 남기는 전 과정이 아무래도 ’주먹구구’에 가까워 보인다. 특히 책을 읽는 과정에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질문을 미리 준비하여 유지하는 것과 ’살펴보기’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책을 집어든 후 두서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버리는 내 독서 습관을 돌아보게 했다. 저자는 책 읽기를 위한 4가지 질문을 제시한다. "1. 전반적으로 무엇에 관한 글인가? 2. 무엇을, 어떻게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가? 3. 전반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볼 때 그 글은 맞는 이야기인가? 4. 의의는 무엇인가?"  

책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 저자가 개념으로 정리한 ’책 분류하기’, ’꿰뚫어 보기’, ’저자와의 협약’, ’메시지 찾기’, 그리고 ’공정하게 비평하기’ 역시 앞으로 책을 읽을 때 내가 취해야 할 관점과 방법론에 도움이 되었다. "1. 주요 단어를 저자가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 파악하라. 2. 중요한 문장들을 통해 저자가 이야기하는 주요 명제를 파악하라. 3. 연결된 문장들 속에서 명제를 찾거나 연결시켜 저자가 주장하는 논증을 파악하라. 4. 저자가 해답한 문제와 해답하지 못한 문제를 검토하고, 해답하지 못한 문제를 저자 자신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파악하라."
’분야별 책 읽기’에서는 평소에 소설책을 읽는데 있어 그다지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도움을 받았다. "소설을 읽을 때는 빨리 그리고 완전히 몰두한 채 읽으라. 이것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충고이다. 한 권을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어 내려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p.234)"
’통합적인 읽기’ 역시 비슷한 주제나 문제에 대한 책을 함께 읽을 때 비교하여 분석할 수 있는 특을 제시해 주었다.
저자의 독서기술이 생각보다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늘 ’독서법’을 염두에 두고 수 십 차례에 걸쳐 시도하고 검증하고 되풀이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책을 가장 효과적으로 읽기 위한 ’독서법’을 다루고 있지만, 그와 함께 책을 읽는 이유와 목적, 어떤 책을 읽어야 할 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과 기준을 제시한다. 저자는 진정한 독서란 단순히 정보와 지식을 취득하기 위함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깨달음’은 교육기관에 들어가 수동적으로 배우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스스로 읽으면서 연구, 조사, 깊은 사고를 통해 생각을 넓히고 지헤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혜와 ’깨달음’을 위한 책 선택 기준은 "능력 밖에 있는 책, 자신의 머리를 넘어서는 책을 읽어야만 생각을 넓히고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자신이 고전이라고 분류한 137권을 책의 말미에 추천했다.
 
책은 읽는 내내 제법 흥미를 주었다. 생각해 볼만 한 점도 많이 제시되어 있고 여러가지 관점이나 기술적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저자의 ’독서법’을 비평할 수준은 못되는 것 같다. 아마 이 책을 비평할 수준이 되려면 1,000권 이상을 정독하여 읽어야 할 것이고 읽는 것 뿐 아니라 내가 직접 책을 집필하여 출간해보아야 ’비평’ 수준이 될 것이다. 그 전까지는 ’서평’도 아닌 ’독후감’ 정도의 수준일 것이고...^^ 
 
저자가 책의 서문에서 지적했듯이 서구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학생들이나 성인들에게 ’독서법’이 제대로 알려지거나 가르쳐지지 않는 것 같다. 오래전 일이기는 하지만, 대학에서도 1학년 교양과정에서 아주 짧게 작문을 가르치는 정도(아마도 리포트나 논문 때문이겠지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논술세대들은 좀 다르기를 기대해본다.
 
* 추천 서양고전(古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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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1-06-29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읽기'에 관한 책 가운데 이만한 책도 드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 붙여둔 '137명의 저자들과 저서들'도 참 좋더군요.
붉은구름님께서 이미지로 덧붙여 주셔서 새삼 고전들의 목록을 되짚어 보게 되는군요.

좋은 글 잘 있었습니다.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양장) - Rules for Radicals
S.D.알린스키 지음, 박순성 외 옮김 / 아르케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에 이어 이 책은 내일 공부모임에서 이야기할 교재다. 공부모임에 참여 중인 박순성교수님이 직접 제안하셨고 공부모임 참가자들의 동의로 교재로 채택되었다.
 
저자인 알린스키에 대해 한국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시 민주당 예비선거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때문이었다. 미국 대선을 전후하여 언론에 힐러리와 오바마의 공통점 중의 하나가 알린스키를 존경한다는 것이 기사로 보도된 적이 있다. 
힐러리의 경우 웨슬리 여대 학생회장 시절인 1968년 알린스키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힐러리는 제안을 거부했다. 힐러리의 경우 웨슬리 여대 학생회장 시절인 1968년 알린스키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힐러리는 제안을 거부했다. (힐러리는 졸업논문은 알린스키와 관련된 것이다.) 반면 오바마는 알린스키 사후인 1985년 알린스키의 이론을 추종하는 단체로부터 같은 제안을 받았다. 당시 컬럼비아대 졸업생 오바마는 박봉을 무릅쓰고 시카고 흑인 공동체 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저자인 알린스키가 1940년대 이후 미국 시카고 지역 등에서 직접 진행한 지역빈민운동의 경험을 기초로 하여 지역운동 활동가들이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어떻게 대중들에게 다가갈 것인지, 조직할 것인지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이론을 정리한 것이다. 저자는 활동가들이 처음에는 올바른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의욕적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지만, 잘못된 언행을 보이고 조직화와 전술 운용에서 부적절함을 보이면서 좌절하거나 고립되는 상황을 개선시키고자 이 책을 쓴 것이다.("나는 이 책이 오늘날의 급진주의자들의 교육에 기여하기를 그리고 거칠고 감정적이며 충동적이지만 무기력하고 절망에 빠진 열정이 계획적이고 목적지향적이며 효과적인 행동으로 바뀌는 데에 공헌하기를 희망한다." p.42)
 
미국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전운동을 비롯하여 흑인인권 개선운동과 기타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었고 전국의 대학에서 많은 학생들이 활동가로 참여하였다. 알린스키는 "미국 전역의 수 백개 대학 캠퍼스에서 열린 밤샘 모임에서 너무나 많은 젊은이가 나에게 물어왔던 경험과 조언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은 전투에, 곧 인생에 투신하고자 하는 바로 그 젊은 급진주의자들을 위한 것이다."라고 서문에 썼다.
 
[지향]에서 알린스키는 이 책을 쓰는 목적이 힘(권력 Power)을 얻기 위하여 어떻게 조직하여 힘을 얻고 사용할 것인지에 대하여 제안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역으로 모든 사람에게 삶의 수단을 보다 균등하게 나누어 주기 위하여 힘을 사용하는데 실패하게 되면 곧바로 혁명이 종말함과 동시에 반혁명이 시작됨을 강조한다. 이 장에서 알린스키는 미국에서의 1970년대 뿐 아니라 21세기 한국 상황에서도 동일하게 강조할 수 있는 몇 가지 원칙적인 관점과 방향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 번째는 어떤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활동할 것이냐에 대한 것이다. 그는 보통 활동가들이 신념으로 삼고 있는 기성종교나 00주의가 아니라 ’민중에게 행동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것은 활동하는 사람들이 항상 독단과 교조를 뛰어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사회에 맞추어 자유롭고 유연하고 유동적이고 활동적으로 사고하고 움직여야 함을 말한다. 두 번째는 활동가들은 자신이 바라는 사회나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보는 것이 전제조건임을 말한다. 활동가들이 버려야 하는 가장 중요한 환상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사물의 양면성을 분리시켜 파악하는 인습적 사고방식’이라고... 이 말은 매우 철학적인 세계관을 의미하는 것인데, 다시 말해 "모든 긍정에는 부정이 있으며, 반드시 뒤따라 오는 부정적인 것 없이는 어떠한 긍정적인 것도 없고 부정적인 측면을 갖지 않은 어떠한 정칙적 낙원도 없다.(p.55)"
 
[수단과 목적]에서 알린스키는 활동가가 가장 중요하게 고민해야 할 질문은 "이 특정한 목적이 이 특정한 수단을 정당화하는가?"라고 했다. 예를 들어, 그는 어렸을 때 친구들과 음식점에서 빵을 훔친 것과 관련하여 ’생존은 부의 증식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에 훔친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 장을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며 ’수단과 목적’에 대한 활동가들의 11가지 규칙을 제시한다.
첫 번째. 수단과 목적의 윤리에 대한 사람의 관점은 이슈에 대한 그의 개인적 이해관계에 비례한다.
두 번째. 수단의 윤리에 관한 판단은 판단을 내리는 사람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좌우된다.(레지스탕스의 테러 등)
세 번째. 전쟁에서는 목적이 거의 모든 수단을 정당화한다.
네 번째. 판단은 행동이 일어난 바로 그 시점의 맥락에서 이루어져야지 전후의 다른 유리한 시점을 기준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다섯 번째. 윤리에 대한 관심은 이용 가능한 수단의 숫자에 비례해서 커지며, 그 역 또한 성립한다.
여섯 번째.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덜 중요할수록, 사람은 수단에 대한 윤리적 평가에 관여할 여유를 더 많이 갖게 된다.
일곱 번째. 일반적으로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것이 윤리의 주요 결정요인이다.
여덟 번째. 수단의 도덕성은 그 수단이 패배가 임박한 순간에 사용된 것인지, 혹은 승리가 임박한 순간에 사용된 것인지에 따라 좌우된다.
아홉 번째. 모든 효과적인 수단은 반대세력에 의해서는 자동적으로 비윤리적이라고 평가된다.
열 번째. 네가 가진 것으로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나서, 그것을 윤리적으로 포장하라.
열한 번째. 목표는 ’자유,평등,박애’, ’공공선을 위하여’, ’행복의 추구’, ’빵과 평등’ 등과 같은 일반적인 용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단어들에 대해]에서 알린스키는 정치언어(힘, 권력, 자기이익, 타협, 갈등, 대립등)가 대중적으로 왜곡,변형되어 있는 상황을 인정하고 대신 본래의 뜻을 되새기고 활동에 맞게 규정해야 함을 강조한다.
 
[조직가의 교육]에서 알린스키는 활동가들을 조직하는데 있어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관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경험과 소통, 겸손, 호기심, 불경(不敬), 상상력, 유머감각,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약간의 희미한 전망, 조직화된 인격체, 정치적으로 분열적이지만 동시에 잘 융화된 존재, 자존심, 자유롭고 편견 없는 마음과 정치적 상대성, 창조성 등이다.
 
[의사소통]에서 알린스키는 활동가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자질은 ’의사소통’이라고 규정한다. "누구든지 조직가의 자질 중 부족한 것이 있을 수 있으며, 그래도 여전히 조직가로서 유능하고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자질 중에서 하나는 예외이다. 바로 ’소통의 기술’이다.(p.138)" 아마도 ’소통’의 중요성은 활동가, 조직가에게 뿐 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될 것이다. 부모와 자식간에, 선생과 학생간에, 비지니스 사이에서, 단체와 모임에서 등 사람이 함께하는 사회는 언어를 기본으로 하는 의사소통으로 모든 대화와 활동이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 사이의 갈등이 나타나고 해결되지 않는 기초적인 이유가 소통 문제가 된다. 특히, 정치를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유권자들과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상당히 큰 문제가 발생될 수 있다. (이명박정권처럼...ㅋㅋ)
 
[시작의 순간]에서 알린스키는 활동가들이 대중 속에 들어가서 시작할 때 주의해야 할 점과 방법론 등에 대해 세세하게 다룬다. 다시 말해 그는 대중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에 대해, 기성질서가 자신을 공개적으로 ’위험한 적’으로 공격하도록 만드는 것에 대해, 주민들과 주민단체로부터 초대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세부적인 지침과 방법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조직화하는 과정과 조직화 이후의 행동 등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한다.
 
[전술]에서 알린스키는 조직화한 이후의 힘(권력)의 전술에 대한 원칙과 적용방법을 제시한다. 전술의 규칙,
첫 번째. 힘(권력)은 당신이 가진 것 뿐만 아니라, 당신이 가지고 있다고 적이 생각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당신 편인 사람들의 경험을 결코 벗어나지 말아라.
세 번째. 가능하다면 어디에서든 적의 경험을 벗어나라.
네 번째. 적이 그들 자신의 교본에 따라 행동하도록 만들어라.
다섯 번째. 비웃음은 인간의 가장 효과적인 무기다.
여섯 번째. 좋은 전술은 당신 편의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전술이다.
일곱 번째. 너무 오래 끄는 전술은 장애물이 되고 만다.
여덟 번째. 여러 상이한 전술과 행동으로 압력을 계속 가하라.
아홉 번째. 보통 협박은 전술 핸동 자체보다 더 위협적이다.
열 번째. 전술을 위한 대전제는 상대에 대해 끊임없이 일정한 압력을 계속 가할 수 있는 활동의 전개이다.
열한 번째. 만일 당신이 어떤 하나의 부정을 필요한 만큼 강하게 그리고 끝까지 밀고 나가면, 그 부정은 반대푠으로까지 뚫고 들어갈 것이다.
열두 번째. 성공적 공격의 대가는 건설적인 대안이다.
열세 번째. 표적을 선별하고, 고정시키고, 개인화하고, 극단적인 것으로 만들어라.
저자는 이 장의 규칙들을 설명하기 위해 그동안 자신이 활용했던 몇 가지 전술의 사례를 보여주는데, 정말이지 그 전술들은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기발하고도 창조적이다. 특히 연주회장에서 집단적으로 방귀 뀌기, 국제공항 화장실 집단 점령, 백화점 집단 쇼핑 및 택배주문, 집단적인 은행계좌 개설 및 해지 등의 전술은 읽으면서도 저자의 기발함과 유연함에 감탄하면서 동시에 킥킥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위임장 전술의 기원]에서 알란스키는 당시 이스트만 코닥회사에 대한 고용에 있어 인종차별 철폐투쟁을 진행 중에 중산층을 투쟁에 동참시킴과 동시에 중산층이 직접적으로 투쟁에 참여할 수 있는 전술로 주주총회 위임장을 대학재단, 기업, 금융기관, 공공기관, 단체, 개인들에게 모집하는 사례에 대해 설명한다.
 
[가야할 길]에서 알린스키는 미국 내 중산층의 조직화 및 급진화를 강조하면서 중산층 출신이 대부분인 활동가와 조직가들의 각성과 노력을 당부한다. 
 
알린스키에 대해 한국에 알려진 것은 많은 부분이 잘못된 정보나 과장된 정보에 근거해 있다. ’히피 선동가이자 미국 최대 노동조합의 창립자’,  ’시카고의 갱 두목 알 카포네의 부하 출신’ 등... 그가 알 카포네 밑에서 잠시 일한 것은 대학에서 범죄학을 전공하던 그가 단순히 책상에 앉아 학문을 연구하기보다 폭력단과 어울려 그들의 삶을 직접 체험해보기를 선택한 것이다. 이 일은 알린스키의 삶의 자세와 사물에 대한 접근방법을 보여주는 한 에피소드이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많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절망의 늪에서 헤매게 되었을 때, 알린스키는 지역사회 조직가들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한편 가난한 지역사회를 조직하는 데 전념했다. 이후 그의 빈민조직 활동은 미국사회에서 신화를 만들어 갔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뿐 아니라 인종적, 문화적 차별, 사회적 천대, 종교적 멸시를 받아 바닥에 처져있는 사람들에게 알린스키는 신화적인 존재였다.
 
알린스키가 주장한대로 이 책의 발간시점인 1970년 미국의 시대상황과 사회의 조건을 2011년 한국의 상황과 조건에 그대로 맞출 수도 없고 맞추어서도 안될 것이다. 미국과 한국은 역사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정치경제적인 구조나 사회적인 분위기도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가 활동가에게 원칙과 기준으로 제시했던 많은 것들은 여전히 지금도, 이 땅의 활동가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즉, 이 책에서 제시하는 "현실적 급진주의자를 위한 실천적 규칙"은 현대 한국사회 시민운동가들 본인이 살고 있는 현실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가져야 할 실천적 지혜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알린스키가 강조하는 ’사물의 양면성’과 ’독단과 교조의 거부’가 크게 다가온다.
’사물의 양면성’은 우리가 보통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모습만 선호하는 자세,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상황, 긍정적인 측면만을 바라보게 했던 지난 날의 각종 교육과 철학적 자세, 그로 인해 사고와 행동을 분리시켜 왔다. 저자 말대로 어둠이 없는 빛도 없고, 밤이 없이 어떻게 낮이 존재할 것인가.. 악이 있음으로 해서 선이 존재하는 것이고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값진 것이다. 우주와 우리의 삶은 서로 반대되는 것들의 짝이라는 당연한 개념이 실제 삶과 활동에서는 분리되고 만다. 앙면성, 이원성, 상보성, 태극, 음양, 모순 등... 저자는 이러한 원리와 개념을 사회현상에서도 일깨워준다. 과거 미국 노동자들의 최고 투사였던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가 나중에 기성질서를 방어하는 요소의 하나가 되었고 베트남 전쟁을 지지하였다. 한국의 현실은 미국과 다를까? 1970~80년대에 목숨을 걸고 대의를 위해 싸웠던 선배들과 노동운동가들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독단과 교조의 거부’는 1980년대 이후 한국의 학생, 재야, 노동 등 사회운동가들이 보여준 노선투쟁과 파벌싸움, 그리고 ’주사파’나 ’민혁당’ 등의 조직에서 보여준 독단적이고 교조적이었던 기억들이 아프게 떠올랐다. 2008년 3월 민주노동당에서 집단적으로 탈당하여 진보신당을 만드는 과정, 2010년 지자체선거시 연합공천을 둘러싼 유시민씨와 진보신당의 태도, 제정당 사회단체 내부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노선과 이념과 파벌의 잔재들, 1980년대 이후 그런 내부갈등과 싸움의 잔재가 21세기인 현재에 와서도 여전히 486세대 내에서 남아있는 모습을 보면서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무엇을 인정하고 무엇을 극복할 것인지 많은 생각과 논의와 실천이 따라야 할 것이다.
 
 
 * 책 속의 문장
- 처칠, 간디, 링컨 그리고 제퍼슨을 포함하는 모든 위대한 지도자들은 ‘자유’, ‘모든 인간의 평등’, ‘인간이 만든 법보다 높은 법’ 등과 같은 치장으로 벌거벗은 이기심을 감추기 위해 언제나 ‘도덕적 원칙’에 호소했다. 목적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것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국가적 위기의 상황에서조차 이는 마찬가지였다. 모든 효과적인 행동은 도덕성이라는 통행증을 필요로 한다. [...] 소극적 저항은 다른 모든 전술이 선택되는 이유와 같은 실용적인 이유에서 선택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필요한 만큼의 도덕적, 종교적 장식물로 꾸며지게 된다. (p.87-88)
-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은 당신이 그들에게 애써서 전달하려는 것을 그들이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일어난다. [...]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에 비추어서만 사물을 이해한다. 이는 당신이 그들의 경험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p.138)   
 
[ 2011년 3월 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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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 -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
마르셀 로젠바흐 & 홀거 슈타르크 지음, 박규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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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는 정보의 주인과 정보공개에 대한 의사결정, 정보공개에 따른 책임, 정보 민주주의에 대한 인류의 위대한 도전이다.
 
지난 3월 31일 [평화나눔아카데미]의 두 번째 강연 주제였던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혁명, 위키리크스'를 수강하기 위해 읽은 다니엘 돔 샤이트-베르크의 <위키리크스와>와 책의 이름만 같은 책이다. 저자는 독일의 대표적 주간지 [슈피겔]의 두 기자이며, 다니엘은 위키리크스의 내부자로서 위키리크스의 취지와 목적, 내부 구조와 시스템, 소통방식과 의사결정 구조 등을 이야기한 것이라면, 이 책은 부제 [위키리크스: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에서 의미하는 것처럼 위키리크스라는 폭로 사이트의 정치적, 사회적 의미와 위키리크스를 탄생시킨 줄리안 어산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아프간, 이라크 전쟁 관련 기밀문서와 이집트 반정부 시위를 유발한 비리 공개까지, 2010년을 거쳐 2011년까지 그 여파가 몰아치고 있는 위키리크스에 대한 지지자와 비판자 양쪽의 인터뷰를 모두 담아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보에 대한 국가의 일방적인 통제를 인정할 수 있는가? 그나마 국가의 3권분립이 이루어진 서구를 놓고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만이 정보의 공개여부를 결정해도 되는가? 3부의 권력 엘리트들은 과연 어떤 정보가 국가의 비밀이 되는지, 언제 어떻게 공개할 지를 결정할 정당한 권한이 있는가? 정보 공개와 관련하여 어디까지가 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까?
위키리크스는 위 질문들에 대해 'NO'라고 대답하면서 아무것도 계속 비밀에 부쳐질 수 없으며 모든 것이 대중에게 공개될 때만이 민주주의가 더 성숙되고 그것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이를 실천했다. 그렇다면 먼저 국가가 공개하지 않아야 하는 정보가 있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정보가 인류와 개인들의 재산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은 그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핵무기나 화학무기 개발 기술은 인류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고 자동차 엔진기술은 특정 회사나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 특정한 정보의 경우 테러리스트가 입수하게 되면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2007년부터 위키리크스가 폭로하여 세계적으로 논란을 불러 일으킨 대표적인 사례들(율리우스 베어은행, 사이언톨로지, 카우프싱 은행, 미군의 이라크 민간인 학살, 아프카니스탄 전쟁 기록, 미국 국무부 외교문서 등)을 살펴보면 '인류의 재산과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유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미국과 여러 국가의 정부가 위키리크스와 어산지를 반역자,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면서 체포하려고 하는 이유는 더욱 '인류의 재산과 생명의 보호'와는 거리가 멀다.
 
위키리크스는 모든 것이 다 정당하고 적합한가?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위키리크스의 문제의식과 취지, 주요한 폭로 내용과 방식, 취재원의 보호, 금전처리 원칙 등에 대해서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전폭적으로 지지,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위키리크스의 내부자였던 다니엘의 주장이나 위키리크스 비판자들의 애기 중 몇 가지는 위키리크스와 어산지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가장 중요한 고려 대상은 어떤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지 누가 결정할 것이냐에 대한 것이다. 위키리크스의 경우 어산지 개인이 모든 의사결정을 담당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정보독점'인 것이고 결국엔 '권력독점'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취재원 보호다. 아직까지 위키리크스의 취재원이 위해를 당한 사례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정보독점을 지켜내고 어산지와 취재원을 추적하는 극우파와 정보기관들의 폭력적인 행태가 확산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어느 언론에서 표현한 것처럼 위키리크스는 민주주의의 축복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저주가 될 것인가? 전 세계 부패 정치인들과 강대국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이 웹사이트의 정체와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
위키리크스의 등장은 권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새로운 정치주체의 출현을 의미한다. 위키리크스는 정보 권력 즉, 정보의 독점적 소유를 문제 삼고 있다. 권력에 의해 진실이 은폐되고 나아가 거짓을 진실처럼 포장하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권력투쟁인 셈이다. 위키리크스는 각국 정부들로부터 정치적 통제권을 빼앗으려는 의도는 없지만, 정보에 대한 국가의 일방적 통제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무엇이 비밀에 부쳐져야 하는가를 ‘함께’ 결정하겠다는 새로운 정치주체가 갑자기 출현하면서 이제 우리는 판단과 선택의 갈림길에 서있게 된 셈이다.
 
저자가 보기에 위키리크스가 분명히 비상하고 특출한 아이디어이지만 또한 디지털 혁명의 논리적 귀결이기도 하다. 비밀 폭로 플랫폼의 컨셉은 새로운 게 아니며 다양한 형태의 선구자들이 있다. 그러나 민주적 공공성과 최선의 제보자 보호를 위한 인터넷의 가능성을 어산지와 그의 협력자들만큼 실행에 옮기며 단기간에 국제적 명성을 쌓은 사람들은 일찍이 없었다. 저자는 위키리크스가 저널리즘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것을 변화시킬 수는 있다고 판단한다. 위키리크스를 바라보는 언론의 태도와 입장은 예상되는 바이기도 했고 많이 실망한 측면도 있다. 위키리크스가 태동한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가 기존 언론의 역할이 수요자와 시민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임에도 기존 언론들은 스스로 변하기 보다 위키리크스를 활용하여 자신들의 기사 확보와 돈벌이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존 언론들이 기성 권력과 너무 접근하여 또 다른 권력의 범위안에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한국과 같은 민주주의가 부족한 나라의 경우에는 '권력의 범위'가 아니라 '권력' 그 자체가 되었기 때문에 이미 언론의 기능과 역할을 기대할 수도 없지만...
 
그리고 이 문제적 웹사이트를 만든 사람은 대체 어떤 인물인가?
그 어떤 저널리즘에서도 시도한 바 없고. 역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이 폭로 사이트 또는 매체를 탄생시킨 사람은 바로 호주 출신의 기이한 해커, 줄리언 어산지라는 남자였다. 저자가 어산지를 처음 만났을 때, 어산지는 배낭과 여행가방 하나만 들고 있었으며 이것이 끊임없이 이동하면 살아가기 위해서 그에게필요한 전부였다. 그런 어산지의 모습과 방식은 68혁명 세대 출신의 어머니와 함께 살아오면서 그가 체득한 그 만의 방식이었다. 어산지는 컴퓨터의 귀재다. 뿐 만 아니라 그는 몇 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자신의 300달러짜리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며 또 하나의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어산지는 급진적인 인물이다. 그는 정치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보통의 상식과 기준을 다르게 정의한다. 그의 생각과 행동은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극단으로 치닫는다. 어산지에게는 비전과 카리스마가 있다. 어산지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불러 일으키고 그들을 열광시키고 추종자로 만드는 재능이 있다. 저자는 그의 비상한 카리스마가 분열과 대립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서도 대중을 사로잡는 매력을 발산하는 정치가들을 연상시킨다. 

저자의 어산지에 대한 평가는 너무 한 쪽에 치우쳐 있다. 슈피겔이 위키리크스와 밀월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저자들은 기자로서의 중립성을 상실한 측면이 있다. 나는, 정보독점과 권력분산이라는 어산지의 이념과 취지는 충분히 인정하고 동의할 수 있지만 어산지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 결정하는 방식,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어산지가 동일한 방식을 계속 고집할 경우, 위키리크스가 네티즌과 취재원 또는 내부 협력자들에게 외면당하거나 위키리크스와 어산지가 또 다른 '독재권력'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나는 이 조직의 심장이고 영혼이며, 창립자이고 대변인이고 최초의 프로그래머이고 기획자이고 자금조달자이고, 그로 나머지 전부다. 이게 싫으면 네가 떠나라" (줄리언 어산지가 자신을 비판한 아이슬란드의 위키리크스 자원봉사자에게 채팅에서 던진 말) (p.225) 
 
* 책 속의 문장
- 위키리크스 조직의 역사를 우리는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추적해왔다. 처음에는 경쟁상대로서 관찰을 시작했다. 탐사보도 저널리즘(investigative journalism)의 핵심 분야에 새 경쟁자가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위키리크스 사이트와 그 운영자들에게 좀 더 진지하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스위스 은행그룹 율리우스 베어(Julius Baer)의 원본자료들을 위키리크스가 인터넷에 올리고 은행 측이 이를 불법으로 고발한 2008년에 들어서 분명해졌다. 2009년에 우리는 위키리크스가 독일연방정보국 에른스트 우를라우(Ernst Uhrlau) 국장과 교환한 편지들을 읽어보았다. 그것은 위키리크스보다 연방정보국에 훨씬 더 당혹스러운 내용이었다. 우리는 그때 처음으로 위키리크스의 독일 대변인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Daniel Domscheit-Berg: 2010년 늦가을에 사퇴)와 접촉하였으며, 그 이후 줄곧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p. 7)
 
* 책 속의 책 : 쉴렛 트레이퍼스 <언더그라운드>, 스티븐 레비 <해커, 그 광기와 비밀의 기록>

[ 2011년 4월 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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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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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는 어떤 직장인의 통화 내용...
"잘 사냐구? 나야 잘 살고 싶지만, 이렇게 치열한 사회(경쟁)에서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겠냐? 직장 다니랴 가족들 챙기랴 친구 만나랴 바쁘기만 하고, 무슨 일을 해도 재미가 없어(권태). 스트레스 풀려고 어제는 친구 만나서 화끈하게 놀았는데(자극) 오늘은 견디기가 더 어렵고 짜증이 나네(피로). 안 그래도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글쎄 오늘 나보다 실력이 한참 딸리는 직장 동료가 대박을 터뜨렸다고 기세가 등등하지 않겠어?(질투) 보란 듯이 내 앞에서 부장님한테 칭찬 받은 이야기는 하던데, 혹시 부장님 앞에서 날 깍아내린 건 아닌지 몰라(피해의식). 난 왜 이렇게 안 풀리나 몰라. 어렸을 때 부모님 말씀 안 듣고 뺀질뺀질 놀았던 벌을 받나 봐. 요즘도 친구들 만나서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 얼굴을 못 보겠다니까.(죄의식) 서른이 한 참 넘었는데도 결혼 안 하고 비실거리는 자식 보는 어머니 속이 오죽하겠니. 난 결혼하기 싫은데, 독신으로 살면 남들이 괴팍한 성격이라 그렇다고 욕 하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여론에 대한 두려움)..."
 
이 책은 작년 7월 법정스님의 저서 < 내가 사랑하는 책들 >에 소개된 책 50권 중 <소로우의 무소유 월든>에서 <끝없는 여정>까지 여덟 권에 이어 아홉 번째로 읽은 책이다. 러셀이 이 책을 처음 출간한 것은 1930년, 그가 58세 되던 해였다.
 
즉, 지금으로부터 무려 80년 전에 처음 세상에 나온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 긴 세월을 뛰어넘어 21세기 한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깨달음과 울림을 전해준다. 그리고 러셀의 이야기는 프랑수아 를로르의 <꾸뻬씨의 행복여행>에서 꾸뻬씨가 지적한 ’행복의 비결’과 비슷하며, 두 가지 모두 법정스님의 말씀에 맞닿아 있다.
 
법정스님이 러셀의 저서 중에서 이 책을 추천도서 목록에 포함시킨 이유는 러셀이 이 책을 통하여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대지와 통해야 하고 온갖 생각을 내려놓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시간을 갖는 데서 싹터온다고 말한다. 이는 스님이 <버리고 떠나기>에서 "욕망을 채워 가는 삶은 결코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없다. 가치 있는 삶이란 의미를 채우는 삶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러셀의 불안의 원인과 행복의 정복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이야기는 결국 스님의 ’욕망’과 ’가치있는 삶’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 되는 것 같다. 
 
사춘기 때에는 삶을 증오하여 늘 자살할 생각을 품고 있다가 수학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자살 충동을 피할 수 있었다는 러셀은 당대에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석학 중의 한 사람으로 분석철학의 창시자라 불리웠음에도 학자나 특정한 지식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책을 썼다. 러셀은 "불행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노력하기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에서 "일부만이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진단하고 거기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찾기(p.09)"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서문에서 말한다. 그는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책과 같이 ’행복을 정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것...
 
러셀은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 또는 행복이 사람들 곁은 떠난 이유를 9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1930년 당시 서구 상황에서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가 80년이 지난 현재에도 비슷하다는 것을 아는 순간 영원히 풀기힘든 인간의 고독과 불완전함을 느끼게 되고 종교적인 단어인 ’고역’과 ’고행’이 떠오른다. 그 9가지는 1장 각 단락의 소제목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각각 자기 안에 갇힌 사람, 이유 없이 불행한 사람, 경쟁의 철학에 오염된 사람, 인생의 끝 권태, 걱정의 심리학, 질투의 함정, 불합리한 죄의식, 모두가 나만 미워해, 세상과 맞지 않는 젊은이다.
 
그리고 러셀은 사람들이 행복으로 가기위한 길을 역시 2장의 소제목으로 달았는데, 이는 각각 인간이 느끼는 행복, 열정이 행복을 만든다, 사랑의 기쁨, 좋은 부모가 되려면, 일하는 사람이 더 불행하다, 폭 넓은 관심 튼튼한 인생, 노력과 체념 사이, 나는 행복한 존재 등 8가지로 되어 있다.

러셀이 이야기하는 불행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알랭 드 보통의 <불안>과 비슷하고 행복을 '쟁취'하는 방법도 <불안>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책을 읽는 내내 ’과연 1930년 러셀이 지적한 불행의 원인과 행복의 정복방안이 21세기 한국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부분적으로 적용이 곤란한 단락이나 구절이 있음에도(특히, 종교적인 죄의식 등) 러셀의 지적은 현재에도 타당하다고 본다. 더욱이, 러셀이 이 책에서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 사회적, 제도적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최근 평균적인 30~40대가 대학까지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거나 자영업(전문직 포함)을 영위하고 있고 사회적인 분위기가 개인들을 더 험하게 몰아가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은 개인적, 가족적인 차원에서 불행과 행복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러셀의 생각을 살펴 보는 데 있어서는 조금 주의가 필요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불행의 원인과 정복 방안을 모두 모두 개인적인 차원에 국한하여 다루었다. 그것은 저자가 이 책을 발간하기 전에 이미 <결혼과 도덕 Marriage and Morals(1929)>, <정치 사상 Political Ideals(1917)> 및 <사회 개조의 원리 Principles of Social Reconstruction(1916)> 등에서 사회적, 제도적인 불행의 원인과 처방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속에서 이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겪는 여러 가지 불행은 일부분은 사회제도에, 일부분은 개인적인 심리에 그 원인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개인적인 심리도 사회제도의 산물이다.(P.15)"고 지적하고 있다. 이 구절을 놓친 후 책을 계속 이어서 읽다 보면 저자가 불행의 원인과 책임을 너무도 개인에게만 묻는다고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러셀이 사회 제도를 떠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불행과 행복을 다뤘다고 밝혔음에도 이 책이 크게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은 것은 객관적이니 현실 때문일 것이다. 사회와 제도를 떠난 현대인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러셀과 같은 대학자나 종교인, 성인, 철학자가 아닌 이상 사회와 제도를 떠나 개인적으로 행복을 정복하기 위하여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즉, 러셀은 독자를 ’일반인’으로 삼아 글을 썼으나 일부 지식인 정도가 이 책을 이해하고 동감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내가 ’버트런드 러셀’ 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이 책에 대해 조금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고 따라서 당연하게도 내가 기대가 컸던 만큼 책을 모두 읽고 난 후 그 만큼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러셀의 다른 작품을 마저 읽고나서야 러셀에 대한 실망이 존경으로 돌아설 것 같다...^^ 
 
[ 2011년 3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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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 - 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지식갤러리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2007년부터 위키리스크는 전세계의 ’위험한 진실’을 폭로하기 시작했고 2010년에는 대형 폭로들을 잇달아 터트리면서 세계를 뒤흔들었다. 위키리크스의 등장으로 전세계적으로 언론의 자유 및 알권리와 국가기밀의 보장이라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미국을 필두로 하여 여러 국가의 정부는 위키리크스와 줄리언 어산지(위키리크스 창립자이자 대표격)를 ’디지털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공격하고 있다. 위키리크스 자체가 또 하나의 권력이 되었음을 인정하는 의견도 상당하다.
 
저자는 2007년에 위키리크스에 합류한 이후 몇 년간 공개적인 대변으로 활동하면서 ’2인자’로 불리기도 했으며 어산지와 가깝게 지냈으나 권력 남용을 폭로하고 정보 공개를 추진하는 위키리스크의 내부 문제를 제기한 후, 어산지와 논쟁을 벌이다가 위키리크스를 떠났다. 이 책은 한 때 세계적인 ’권력’의 비밀을 폭로한 위키리크스에서 주요 활동을 전개한 저자가 위키리크스의 내부를 폭로하고자 써낸 것이다.
 
이 책은 [평화나눔아카데미] 3월 31일 강연(강사 안병진 경의사이버대학 미국학과 교수)의 주제인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혁명, 위키리크스’를 듣기 위해 급하게 구하여 읽은 2권 중 첫번 째 책이다. 작년에 위키리크스가 미국 국무부의 대규모 비밀 외교문서를 폭로하여 전세계적으로 파란을 일으켰고 그 폭로가 부분적인 이유가 되어 중동에 ’재스민 혁명’이 발발하였다는 소식에 위키리크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의 주요 내용은 미국 최대의 시스템컨설팅회사에서 네트워크 보안 전문가로 근무하던 저자가 우연히 호기심으로 위키리크스에 발을 들이는 1장 [만남]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위키리크스에 발을 들인 후 얼마되지 않아 위키리크스에서 2인자가 되었다고 말하고 2007년 말 유럽에서 가장 큰 해커 그룹인 카오스컴퓨터그룹(CCC)이 개최하는 카오스커뮤니케이션콩그레스에서 처음 어산지를 만났다.
 
2장 [율리우스 베어은행]은 위키리크스가 처음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폭로였다. 위키리크스는 스위스 법정에 기소를 당하지만 여론의 힘으로 무죄판결을 받는다. 3장 [사이언톨로지]는 두 번째로 이름을 알린 폭로였다. 위키리크스는 그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사이비종교(라고 여러사람들이 규정하는...)’ 사이언톨로지의 비밀성경과 관련 기업, 단체를 고발한다.
 
3장 [언론의 생리를 터득하다]는 언론파트너의 필요성을 느끼고 처음으로 언론과 협력하는 과정과 폭로자료의 저작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5장 [줄리언과의 동거]에서는 2009년 두 달간 줄리언 어산지가 저자의 집에서 머문 동안에 함께한 모습과 어산지의 독특한(괴상한?) 성격과 행동방식을 알게 된다. 6장에서는 위키리크스의 재정문제를, 7장에서는 인터넷 검열에 대한 전세계적인 전쟁을, 8장에서는 아이슬란드 최대 은행인 카우프싱 은행의 내부 자료 폭로와 아이슬란드를 ’언론자유 무역항’으로 만들고자 했던 노력을 이야기한다.
 
9장부터 14장까지는 오프라인 모금활동, 아이슬란드 언론보호 관련 법 추진과정을, 이라크에서 미군 아파치 헬기를 민간인을 저격 살인한 ’부수적인 살인’ 비디오의 폭로, ’부수적인 살인’ 비디오를 내부자료로 올린 브래들리 매닝의 체포, 아프카니스탄 전쟁기록과 ’최후의 심판’ 파일의 공개, 어산지의 스웨덴 여성 성폭행 혐의에 대한 고소와 수배 과정을 이야기한다.
 
저자의 이야기는 자신과 줄리언 어산지가 최초로 외부적인 갈등모습을 보인 것은 아이슬란드에 4주간 머무는 기간동안이었다. 그 사건 이후 어산지와 저자는 화해하지 못했고(저자는 어산지가 화해를 거부했다고 말한다.) 둘 사이의 골을 점점 깊어간다. 줄리언 어산지는 위키리크스 설립자 타이틀에 대한 소문으로 저자를 못미더워하고 미행 강박증도 심해진다.
 
위키리크스의 핵심 멤버들 사이에 본격적인 갈들이 발생한 것은 ’성폭행 혐의건’이었다. 저자와 몇몇은 어산지가 당분간 은신한 것을 제안하지만, 어산지는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제안을 주도한 저자를 정직처분시킨다. 위키리크스 핵심 멤버 여러명이 위키리크스를 떠난 것은 결국 저자의 정직 처분에 대한 내부 논란이 주요 원인이 되었다. 위키리크스에 가장 큰 시련이 닥친 것은 외부가 아닌 내부로부터였다.
 
위키리크스가 폭로자를 보호하거나 폭로기술이 아닌 위키리크스의 활동과 정책, 자금과 의사결정 등에 대해서 백악관이나 펜타콘처럼 베일에 쌓여있게 되면 위키리크스도 또 하나의 ’빅 브라더(Big Brother)’(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거대 권력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한 진실 여부, 저자가 위키리크스를 탈퇴한 동기나 향후 거취에 상관 없이 위키리크스 내부를, 내부의 논쟁과정을, 위키리크스와 어산지에 대한 비판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역은 없어야 한다.
 
책 속에서 이야기하는 저자의 주장이 모두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위키리크스는 ’위키리크스’라는 조직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밀과 정보의 투명한 공개’라는 상징과 아젠다로써 의미가 있는 것이고 따라서 제2, 제3의 위키리크스는 당연히 등장해야 하며 웹2.0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 나타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저자는 위키리크스를 함께 탈퇴한 동료들과 ’오픈리크스’를 준비 중이다.
 
한국정부와 권력층은 미국의 좋은 측면보다 나쁜 측면을 더 배워왔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당연하게 국민에게 알려할 권리마저 정부와 권력층이 통제하는 부분이 훨씬 많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도 경향리크스와 같은 노력이, 또 다른 IT 전문가들의 노력이 계속 등장하기를 원한다.
 
[ 2011년 4월 6일 ] 
 
* 책 속의 문장 
- 혹시 위키리크스도 몇 달 사이에 종교적 숭배처럼 변하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았다. 솔직히 내부비파닛스템에 있어서는 거의 종교적 숭배 수준이다. 뭔가 잘못 되면 그것은 외부 원인 때문이다. 지도자에게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 외부의 위험이 항상 우리를 공격하기 때문에 우리는 내적으로 더욱 강하게 응집하여야 한다. 너무 비판적인 사람은 벌로 채팅에서 퇴장당하거나 문책을 받게 된다.(p.66)
 
- 나중에야 비로소 줄리언이 나의 친절을 복종으로 이해했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저 배려 차원에서 그렇게 했을 뿐인데, 줄리언은 나를 자기보다 한참 낮은 사람으로 여긴 듯 싶다.(p.95)
 
- 그(줄리언)가 위키리크스의 설립자이고 위키리크스에 대한 권리가 그에게 있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에게도 그것은 명확했다. 하지만 나 또한 성공에 대한 내 몫을 갖고 싶었다. 나는 열심히 일했다. 내 몫을 요구하지 말아야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p.151)
 
- 받은 자료를 즉시 공개하는 것 그리고 독립적 결정이라는 우리의 고유한 원칙은 한낱 우수갯소리로 전락했다. 언론은 원했던 대로 우리를 자기들 발밑에 두었다. 우리의 손이 묶여 있는 동안 이들은 독점기사를 판매했다. (p.227)
 
- 위키리크스와 달리 오픈리크스는 더 이상 문서를 발행하는 사이트가 아니며, 대신 전체 폭로 과정에서 처음 절반에만 집중한다. 제보자는 익명으로 자료를 제출하고 당연히 안전을 보장받으며 협력파트너는 받은 자료를 분석하여 발행할 수 있다. (p.319)
 
* 책 속의 책 : 피에르 조제프 푸르동 <재산이란 무엇인가>, 제레미 스캐할 <블랙 워터>, P. W. 싱어 <전쟁대행주식회사>, 구스타프 란디우어 <혁명>, 닐 스티븐슨 <크립토노미콘>, 솔제니친 <제1원 First Cir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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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31일 안병진 교수 강의 요지 ]
http://www.nanum.com/site/153905  

 위키리크스의 폭로 : 모든 권력은 비리와 음모로 유지된다
글쓴이 | 안병진 조회수 231 2011.04.04 02:33 http://www.nanum.com/site/153905


“세계는 지금 ‘제1차 세계 정보전쟁’에 돌입했다” - 영국 일간지 <가디언>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은 위키리크스와 줄리안 어산지

2010년 4월.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동영상 한 편이 인터넷에 공개되었습니다.

17분 남짓의 영상에는 마치 전자게임을 즐기듯 이라크 민간인을 사살하는 미군의 모습이 담겨있었는데요.
전쟁의 추악한 실상과 진실을 드러낸 이는 다름아닌 ‘위키리크스’, 그 설립자인 줄리안 어산지였습니다. 

“전쟁을 전자게임 즐기듯 하는 이라크 민간인 살상의 모습은 가장 충격적인 영상이었습니다.

평범한 미군 병사들이 그저 낄낄 웃으면서 민간인을 살육하던 모습이 생생하게 전달되면서 전쟁이 만들어 내는 추악한 실체와 전쟁을 수행하는 자들의 ‘사이코패스’같은 면모가 드러났던 겁니다.
이 영상은 죽고 죽이는 전쟁에서는 상대를 자신과 같은 삶의 의미를 지니는 인격체가 아니라,
전자오락기에 있어서 그냥 제거해야 될 대상으로 여기게 만든다는 사실을 전해줬습니다.”

이 밖에도 위키리크스는 두터운 장막에 가려왔던 수많은 진실들을 차례로 폭로해왔습니다.

2007년 케냐 대선 당시 독재정부와 야권주자가 야합한 내용의 비리문건을 공개해 대선의 결과를 뒤집었고, 2010년엔 미군의 민간인 학살 등이 담긴 아프간 전쟁 관련 기밀문서 9만 2000여건도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UN 사무총장의 생체정보를 파악하라는 지시내용과 세계 각국 정상들에 대한 원색적인 평가를 담은 미국 국무부의 외교전문까지, 모두 위키리크스를 통해 처음 세상의 빛을 보게 되며 묻혀있던 진실이 하나둘씩 밝혀졌는데요.
위키리크스의 활약으로 이제 우리는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결정권자들의 무능, 부패, 무모함을
보다 실제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구’는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무기’가 된다 

위키리크스의 이런 폭로와 활약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스마트폰’, ‘스마트TV’에 ‘스마트 슈즈’, ‘스마트 워터’까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요즘 ‘스마트’라는 표현이 넘쳐나고 있는데요,
하지만 이 많은 최첨단 기술이 과연 ‘스마트한 개인’을 만드는가에는 회의적인 시선이 더 많습니다.

안병진 교수는 위키리크스의 활동이 인류가 이뤄놓은 기술 진보의 토대 위에서 가능했지만
같은 도구를 가지고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합니다.

“위키리크스의 운동은 어떻게 보면 단순합니다.

낡은 서버와 300불짜리 PC, 그리고 단 두 명의 멤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이 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은 것입니다.
여기 나무젓가락이 있다면, 그것을 제가 들고 있으면 그냥 식사할 때의 나무젓가락이겠지만 이소룡이 들고 있으면 살인무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21세기는 테크놀로지를 누가 어떻게 드느냐에 따라 그것은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순수한 열망이 세상을 바꾸다

‘우리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세상의 중요한 정보들을 어째서

소수의 위정자와 분야 전문가들만 쥐고 있는가’에 의문을 던진 줄리안 어산지.
안병진 교수는 평범한 도구가 진실의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위키리크스는 시대의 흐름 속에 이해해야 한다며
위키리크스 이전에 순수한 열망으로 세상을 바꿔낸 사례들을 소개했는데요. 

 “세계적인 음원공유 사이트 ’냅스터’를 만든 숀 패닝입니다. 그는

‘친구들과 어떻게 하면 서로가 가진 음악을 공유하고 나누면서 살 수 있을까?’
그래서 밤을 새워 만들어 본 것이 음원 공유 사이트 ‘냅스터’죠.
돈을 주고 사서 들어야 했던 음악을 공짜로 주고 받을 수 있게 하자
’워너뮤직 그룹스’와 같은 다국적 음반회사는 어마어마한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세상에! 여드름투성이의 이 청년이 전세계적인 규모의 다국적 회사를 충격에 몰아넣은 겁니다.”

“이 친구는 수익성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냥 친구들과 우정의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단순하고 소박한 꿈이었던 거예요.(웃음)
그것이 이러한 어마어마한 의미를 가질 줄은 꿈에도 몰랐던 거죠.
그러나 그때부터 ‘제국의 역습’이 시작됩니다.
이 어린 청년의 행동을 해적질이라 규정하고, 여러 공격을 가했고 그 전쟁은 현재도 진행 중에 있지요.
물론 이 주제와 관련해 여러 논쟁의 여지는 있습니다만, 그러나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들이 다국적 기업이나 권력에 장악되어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죠.
이런 사람들의 문제제기와 변화의 노력이 있었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유사한 이슈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권력은 비밀과 음모로 유지된다 

그렇다면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진실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안병진 교수는 실상 모든 권위있는 정부와 권력이 비밀과 음모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일깨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들은 왜 끊임없이 기밀을 만들어내고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까요?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임을 자랑하는 CIA에 관한 흥미로운 사례 하나를 소개합니다.

“CIA가 기밀을 유지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찰머스 존슨이라는 세계적 석학이 CIA에서 자문으로 일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하나가 거의 탐정소설 같은 CIA의 기밀 자료들을 보는 일이 너무 흥미로웠다고 합니다.
늦은 밤까지 서재에서 자료를 뒤져본 이 분의 결론은 ‘CIA 의 분석자료 대부분은 그렇게 탁월한 내용이 아니다’라는 점이었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채널들을 통해 모은 정보들일 텐데도 말이죠”

“가령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당시
CIA는 ‘소련이 서둘러 진주해야 한다’는 식의 황당한 정책제안을 한다든가, 사실 우리 같은 일반인들도 알아챌 수 있는, 별로 기밀로 여길 가치가 없는 것들도 모두 기밀로 엮여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분이 한 말은 이렇습니다.
‘CIA가 기밀을 유지하는 진정한 이유는 정보의 분석과 보고서 자체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활동을 자신들의 경쟁 조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국익이나 안보라는 명분에서 기밀을 유지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조직의 기밀을 유지하는 것 그 자체로부터 조직 보호를 꾀한다는 것인데,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소통’이 아니라 ’저항’

“우리가 어산지의 운동을 주목하고,
앞으로 세계는 위키리크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할 만큼 의미있게 여기는 것은 미 제국의 실체를 폭로하고 끊임없이 확장하려고 하는 미국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는 데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저항을 굉장히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만들어냈다는 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세계의 꿈틀거리고 저항하는 뜨거운 영혼들을 위해

안병진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소통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 반대로 우리는 소통을 너무 많이 한다.

우리가 부족한 것은 창조이다. 
우리는 현재에 대한 저항이 부족하다” - 들뢰즈 & 가타리

바야흐로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위키리크스가 이룩한 혁명을 통해
강력한 무기 하나를 쥐게 된 셈입니다.
하지만 무기는 그 자체로 빛을 발하지 않습니다.
어둠을 향해 진실의 탄환을 쏠 때에만 비로소 무기는 빛날 수 있다는 교훈과
그 용기를 가슴에 담아봅니다. 

정리 | 이유만 (대학생나눔문화)

2010년 타임지 온라인 독자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은 ’위키리크스’와 ’줄리안 어산지’였습니다.
이들의 활약으로 지금까지 비밀로 유지되던 수많은 진실들이 폭로되었고, 세계는 위키리크스에 열광하거나 이들로 인해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이후 세계의 수많은 전문가들은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진실의 내용을 분석하고 위키리크스가 불러일으킨 새로운 운동에 주목해 왔는데요. 
 

평화나눔 아카데미 두 번째 강사로 모신 안병진 교수는 ’위키리크스로 새로운 정치운동의 지평이 열렸다’고 합니다.  


특히 위키리크스는 ’끊임없이 확장하려는 미 제국을 향한 자유로운 개인들의 창조적 저항’이었다고 하는데요. 

지금부터 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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