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만세 - 걸쭉한 넉살, 삐딱한 불온함, 끝내 가슴 뭉클한 프랑스대혁명 이야기
마크 스틸 지음, 박유안 옮김 / 바람구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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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마크 스틸(Mark Steel) 저,  < 혁명 만세 : 걸쭉한 넉살, 삐딱한 불온함, 끝내 가슴 뭉클한 프랑스대혁명 이야기 >를 읽고 / 2008. 12, 349쪽, 바람구두

2년 전 후배에게 선물받은 책인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에 '프랑스혁명'에 대해 공부하는 기회에 책꽂이에서 꺼냈다. 작년 초에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고 나서 이 책을 읽어야지 생각했다가 또 미뤘는데 이제야 겨우 읽었다.

프랑스에서는 18세기 말부터 약 100여년 간 부르조아지와 소작농민, 빈민들이 살인적인 봉건왕조와 악덕지주의 예속과 수탈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과 자유와 평등을 향해 프랑스혁명을 전개했다. 
저자는 프랑스혁명을 이 책 안에 흥미롭게 담아 냈다. 이 책은 딱딱하고 어려운 사회과학 논문도 아니고 지루하게 사실을 나열하는 역사서도 아니다. 프랑스대혁명 시기에 벌어진 사람들의 힘든 삶과 문화, 혁명을 결심하고 행동에 나서는 사람들, 왕조와 귀족과 부르조아지와 상퀼로트와 빈민들과 농민의 이야기를 책의 부제처럼 '걸쭉한 넉살'과 '삐딱한 불온함'과 '끝내 가슴 뭉클'하게 엮어냈다.

직전에 읽은, 피에르 세르나(Pierre Serna) 등이 펴낸 <무엇을 위하여 혁명을 하는가>를 보면 프랑스 내에서도 기득권 우익세력의 프랑스혁명에 대한 폄하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마크 스틸은 영국에서도 프랑스혁명에 대한 왜곡과 폄하가 대대적으로 벌어져 왔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1970년대 후반 BBC방송의 어린이 프로그램 <블루 피터>에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화려한 옷과 보석에 대한 취향 때문에 프랑스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라고, 그리고 프랑스혁명을 '곱게 봐줄 구석이라곤 전혀 없는 끔찍한 이야기'라고 설명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런 식으로 영국에서는 소설, 다큐멘터리, 영화 등 여러 매체들이 다루는 프랑스혁명 이야기는 제대로 된 평가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마크 스틸을 말한다.

마크 스틸은 영국 내에서 프랑스혁명에 대한 왜곡과 평가절하가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영국이 엘리자베스 왕족이 존재하는 입헌군주국 문화가 지속되어 있는 현실과 영국 내 기득권층들이 자본과 언론, 문화계를 장악하여 프랑스혁명에 대한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프랑스에 대한 영국인의 감정을 이용한 비합리적인 폄하를 유도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학자나 지식인들 역시 프랑스혁명에 대한 진실을 전하고 혁명에 대한 평가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1789년 프랑스대혁명 전야의 앙시앙레짐(구체제)의 모습에서부터 나폴레옹이 쿠테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공화주의가 무너지는 1799년까지의 프랑스대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때로는 재미있게 전개한다.

"인권선언('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은 귀족의 특권, 국내 관세, 무역의 독점 따위를 없애버렸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게 되었다. 프랑스인은 반란을 일으킬 권리가 있다는 게 헌법에 의해 보장되었고, 단두대가 물레바퀴를 대신해 처형 도구로 쓰이게 되었다. 이참에 아예 사형 자체를 없애자는 시민대표도 한 명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로베스피에르였다."(p.111)

마크 스틸의 위 문장은 프랑스혁명의 특징 몇 가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귀족의 특권, 국내 관세, 무역의 독점'을 폐기한 것은 프랑스혁명의 시작이 부르조아지들의 이익을 절대적으로 보호하는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반란을 일으킬 권리'는 주권자인 인민으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천부적인 권리가 국가나 정부보다 앞선다는 것을 의미한다.(프랑스와 한국의 결정적인 차이다.) 
기요틴 박사가 발명했다는 단두대는 자유주으적 조치로서 도입되었다. 그 전까지의 인기 처형법은 물레바퀴에 매달아 척추가 부러져 죽을 때까지 돌려대는 방법이었는데, 그에 비하여 한결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형 자체를 아예 폐지하자는 로베스피에르는 현재에도 '극악한 통치자'라고 오명을 받고 있는 1793~1794년 시기 공화국의 공포정치를 주도한 산악파의 핵심 정치인이었다.

"그렇지만 당통은 이용당한 자유주의자가 아니었으며, 아늑한 혁명만을 꿈꾸면서 미치광이들에 맞서 혁명을 지키고자 애쓴 인물도 아니었다. 그는 제2차 혁명과 국왕 타도에 있어 그 누구보다도 핵심 장본인이었다. 법무장관으로서 그는 9월 대학살에 면죄부를 주기도 했다. 그는 왕의 처형을 위해 동분서주한 로비스트였고, 혁명군대의 창설을 주도한 핵심인물이었으며, 자신의 체포 직전까지도 거의 모든 혁명 조치들을 적극 지지한 혁명가였다.
오늘날 그가 주장한 내용의 절반 정도를 외치는 인물이 있다면 아마 '미친 개같은 맑스주의 무정부주의자로서 탈레반을 지지하는 똘아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가 체포된 이유는 혁명력 제2년의 진보 프로그램을 지켜내기 위해 여러 기구들을 해체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반면 로베스피에르는 이들 기구의 유지를 주장했다. 그랬다가가는 혁명력 제2년의 진보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와해될 게 너무나 뻔했기 때문이다.
로베스피에르가 온갖 욕을 먹는 반면 당통이 한껏 대접 받는 또 다른 이유로는 그가 혁명가의 전형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전형이란 건 원래 일부분만의 진실만을 담아낼 뿐이다. 어떤 운동, 어떤 캠페인에든, 단호하고 유머를 모르는 로베스피에르형 인물이 있고, 피켓을 들고오기로 했으면서 두 시간씩이나 늦게 빈 위스키병 들고 비틀비틀 나타나는 당통형 인물들도 있는 법이다. 
눈여겨볼 만한 가치를 지닌 어떤 사회운동이든 이 두 가치를 모두 포용해야만 한다. 한쪽이 다른 쪽 머리를 잘라버리는 사태가 벌어지면 정말 곤란한다."(p.273)

위 문장은 프랑스혁명 과정을 주도한 두 가지 유형의 혁명가들의 모습과 그에 대한 간략한 평가, 두 유형의 혁명가들의 포용과 연대의 필요성을 말해준다.

"혁명이 성사되려면 수백만도 넘는 사람들이 옛 질서에 맞서 일어서야 한다. 혁명의 성패는 이런 이들이 얼마나 힘차게 맞서느냐에 달렸다. 그러니까 텔레비전 뉴스에서 이런 멘트가 흘러나올 리는 만무한 것이다. '오늘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결과는 수백만이 넘는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흥, 대통령 그 양반 정말 밥맛 아니니?'라고 생각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오로지 이런 생각들이 힘찬 행동으로 가시화될 때라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머리 맞대고 격론을 벌여,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자신들을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고, 목수네 가게로 튀어가 널빤지를 얻어와 근처 향수가게 지붕에 올라가 들러올린 다리의 쇠사슬을 끊으려고 드는 실행의 힘이 있어야, 시큰둥한 분노들이 비로소 혁명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이치로, 열정이 식어, 새 사회가 기능하겠다는 희망과 믿음이 다시 의문스러워지면, 혁명의 걸음걸이는 덜컹대고 자빠진다."(p.280)

위 문장은 혁명에 대한 마크 스틸의 탁월한 해석이다. 술집에 모여 독재자를 비웃고 조롱하고 정치인을 싸잡아 욕하고 손가락질 하는 것으로는 천만 명이 있어도 혁명은 불가능한 것이다.

"자코뱅은 몰락 이후 단두대에서 희생되었을 뿐만 아니라 역사에 의해서도 '선택적 탄식 신드롬'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상태에 바진 사람들은 어떤 특정 사건에 대해서는 엄청난 공포를 느끼면서도 다른 곳에서 벌어진 엇비슷한 사건에 대해서는 희한하게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타가 무너지는 걸 보고 비탄에 잠긴 수많은 정치가와 언론인들이 실은 체첸에서 5만의 민간인이 죽어도, 니카라과에서 수만이 희생되어도, 레바논 수용소에서 1,800명이 살육된 사건에 대해서도, 꿋꿋이 평상심을 유지하던 이들이었다.
프랑스대혁명 기 공포정치야말로 가장 고전적인 사례다. 역사학자, 영화제작자, 교과서 집필자 등은 로베스피에르에게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하지만 왕당파 군대에 의해 살해되거나 자코뱅을 타도하고 집권한 세력들에게 희생된 더 많은 사람들은, 소설에서건 영화에서건 전면적 취급은 고사하고 자잘한 관심도 받지 못했다."(p.291)

위의 문장은 단순히 '신드롬'이라는 식으로 넘겨버릴 게 아니라 오히려 방송과 신문, 영화와 소설, 교육과 교과서 등을 장악한 기득권 문화권력의 의식적 무의식적 결탁을 보여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베토벤에게 프랑스대혁명은 개인성의 승리를 상징하는 사건이었으며, 오스트리아 주재 프랑스 대사가 그의 3번 교향곡을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라고 제안하자 아주 기뻐했다. 혁명군의 승리를 담아내고 옛 가치의 몰락을 예찬하는 장송곡 등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최초의 작품이었다. (중략)
어쨎든 그 교향곡은 작곡되었고 완성된 악보를 막 인쇄소로 넘기려는 찰라 한 친구가 들어와 나폴레옹이 공화국을 허물고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했다. 사태를 파악한 베토벤은 분노에 찬 나머지 헌정 페이지를 찢어내버리고 '보나파르트'란 말을 어찌나 박박 긁어냈는지 종이가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았다."(p.320)

베토벤의 3번 교향곡 [영웅]이 나폴레옹 개인이 아니라 프랑스혁명을 일으킨 혁명의 모든 영웅들을 위한 교향곡이었음을, 나폴레옹이 군사독재자가 되었을 때 베토벤은 나폴레옹 이름을 짖이겼음을 이번에 알았다.

저자는 영국 연예인이다. 그쪽에서는 '삐딱한' 코미디언으로 알려져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마크 스틸의 사례를 보면 영국사회가 한국사회보다 '열려'있고, '이성적' '지성적'이며,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인 것 같다.

그 이유는 마크 스틸이 TV에서 오로지 걸쭉한 입담으로만 '혁명 6부작'을 진행할 정도로 인문학과 코미디를 접목시키는 일에 열심이라고 출판사가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혁명, 성혁명, 러시아혁명, 산업혁명, 미국혁명, 진화의 혁명이 그 6부작의 면면인데, 마크 스틸 특유의 새로운 역사교육 장르가 형성되고 있다는 영국 언론의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또한 마크 스틸은 진보정당 후보로서 런던시의원에 출마한 경력까지 있을 정도로 정치활동에도 열정적인 사람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가 영국 방송계나 연예계에서 아무런 출연거부나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것이 한국 헌법이 말하는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직업의 자유, 정치의 자유라 할 것이다.

한국은 진보정당은 커녕 보수정당인 민주당을 지지하거나 정부정책에 대해 호불호만 표현해도 방송국에서 퇴출시킨다. 시그렇게 보면 한국은 자유 국가도 아니고 민주주의 국가도 아닌 것이다.
또한 한국 방송계나 예술계의 특성상 인문학과 사회과학, 철학적인 수준을 갖추고서 공중파에서 연예인이나 예술가 활동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김제동 등 몇몇 정도일 것이다. 실제 인문학과 사회과학, 철학, 역사의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법조인, 언론인, 정치인, 관료들에게서도 그런 기초 수준이 보이지 않는데 연예인이나 예술인에게 바란다는 것이 내 잘못일 것이다. 물론, 그들이 '지성' 대신 유흥이나 접대, 뇌물, 조작, 거짓말, 폭탄주의 전문가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주권자가 어떤 정치를 원하느냐는 주권자가 정치에 얼마나 참여하고 어떤 인물을 대리인으로 선출하느냐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비슷한 처지의 계급계층이 아닌 개인이나 소수의 이익을 위해 정치와 정당에 개입하는 이들은 이익과 권력의 화신들이 장악하는 정치, 정당에 대해 불평불만을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이 그런 정치와 정당을 만들었으니...

프랑스 인민들이 대혁명을 일으키던 때, 한반도에서는 조선 22대 임금 정조가 집권하여 일부 개혁적인 사대부들과 함께 왕조, 봉건제 또는 농업관료제를 개혁하려고 시도하다가 좌절되었으며, 그후 약 100년간 세도정치와 부정부패로 인해 인민들의 삶이 극한까지 파괴되었다. 인민항쟁(반란)은 끝없이 일어났으나 무능하고 기회주의적인 지식인들은 끝내 인민들을 외면했다.
2014년 대한민국은 19세기 ~ 20세기 중순의 조선을 반복하느냐 아니면 18세기 후반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 정신을 되살리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책임과 역할이 운동가들과 지식인, 깨어있는 인민들에게 주어져 있다. 그들이 무능하고 탐욕스럽고 기회주의적일 때 역사는 반동으로 귀결될 것이다. 200년 넘게 잃어버린 혁명을, 혁명정신을, 혁명의지를 되살려 내야 앙시앙레짐을 벗어 던질 것이다.

- 마지막 문장 :

"마오쩌둥의 참모였던 저우언라이는 프랑스대혁명에 대해 아주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 혁명의 파급효과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걸 애기하기엔 너무 일러요."
그럴듯하지 않은가? 당시 혁명가들이 맞서 싸웠던 것들과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혁명의 물결은 그 후 100년이 넘도록 퍼져나갔다.

오늘날의 기득권 집단에게 있어 프랑스대혁명은 평등을 떠들어대는 무리들이 권력을 잡게 되면 어떤 혼란이 펼쳐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본보기와도 같다. 그래서 우리는 은연중에 대혁명에 대해 썩 좋지 않은 인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살육의 아수라장만 부각시키면서 대혁명을 소개하는 데는 뭔가를 경고하려는 저의가 확실히 배어 있다. "지금 그대로가 좋은 겁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저항하라고 하는 사람들의 꼬드김이 참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지요. 그렇지만 그 사람들 말대로 했다가는 쇼핑센터 한복판에서 창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머리통들을 구경하게 될 겁니다."

기득권층은 무엇에 기대고 사는가? 그건 바로 수동성이다. 혁명의 정반대인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지상의 온갖 부당한 일들에 맞서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싸우지 않을 이유야 끝도 없이 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설령 이에 맞서 싸우는 경우에도 사람들의 생각은 대개 이렇다. "대통령이 바뀌면, 혹은 세계은행 총재가 바뀌면 좀 더 공평해지겠지..."
어느 누구도 본인 스스로 사회를 운영해야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5년 동안은 그렇지 않았다.

이 일, 즉 수백만의 사람들을 한번도 가능하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 속으로 적극 뛰어들게 한 이 사건으로부터 당신이 어떤 결론을 끄집어내건, 이 프랑스대혁명의 이야기는 인간이 빚어낸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스펙터클한 이야기이다. 희망과 저항, 희극과 비극의 이야기이다.
혁명은 놀라운 등장인물들을 수십 명이나 탄생시켰고, 또 거의 그 전부를 궤멸시켰다. 그 젊은 목숨들을 대가로 수백 년 동안 지속될 혁명의 명성이 쌓이게 된 것이다. 로베스피에르, 당통, 데물랭, 마라, 생쥐스트, 브리소, 롤랑 부부, 바뵈프, 프바, 구통 등...
거의 모든 주요 인물들이 자신들이 쓰던 드라마 속에서 죽어갔다. 겨우 미국으로 건너간 토머스 페인조차도 필라델피아의 알거지 신세로 최후를 맞았다.

왕당파 희생자들도 마찬가지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왕족은 모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프랑스혁명의 지도자들이 그토록 경멸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너무나 드문 일을 해치웠기 때문이 아닐까?
보다 공정한 사회를 그리면서 이들은 그런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다했다.
진보주의의 대변자였던 이들은, 잘 차려입은 지역 정치가로 잽싸게 변신하여 지역 텔레비전에서 상공인들과 악수나 나누는 장면 따위는 연출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들은 공격 받을 때마다 무장한 인민들의 힘을 총동원하여 적들에 맞서는 길을 택했다.

이름도 알 길 없는 수백만의 혁명 참가자들에게 있어 거창한 대의명분과 작디작은 과제는 따로 떨어진 게 아니었다. 그들에게 "다음 달에 먹을 걸 어떻게 든든히 장만해둘 것인가?"라는 문제는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야 할까, 우리는 어떤 권리를 타고 나는가, 신은 존재하는가 따위의 문제들과 서로 얽혀있는 것이었다.
이웃들을 이끌고서 가게를 점거함으로써 가격 인하를 꾀했던 시민들과, 여성 인권의 신장을 주장하는 팸플릿을 찍어낸 시민들은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발미의 언덕을 굳게 지켰던 사람들, 혹은 베르사이유궁으로 왕족들을 잡으러 가며 격렬하게 요동치는 가슴을 심호흡으로 진정시키던 사람들은 다름 아니라 천문학의 역할이나 가장 효율적인 영농기업, 혹은 혁명 후에도 스포츠가 있을까 없을까를 두고 밤새도록 토론하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게 대혁명의 가장 꾸준한 파급효과가 아닐까 싶다. 한 예를 들자면, 1840년대에 이르러 대혁명의 영웅들이 초창기 노동운동의 영웅으로 다시 떠올랐다.
머서티드빌의 역사를 다룬 1860년대의 어느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인권론]과 [이성의 시대]를 높이 평가하던 몇몇이 산속의 모처에 모여 큰 돌 밑에 감추어두었던 그 책들을 꺼내 아주 뜨겁게 함께 읽곤 했다"
아주 뜨겁게는 고사하고, 조금이나마 뜨겁게라도 읽으신 분이 대체 있을까/ 최근에 나온 영국 정치인이 쓴 글들을?

어느 인터뷰어가 토니 블레어에게 뭘 꿈꾸는지 물은 적이 있는데, 그때 블레어의 대답은 21세기 초 주류 정치가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잘 요약해 보여준다. "요즘 전 잠 잘 시간도 없어요. 꿈꿀 시간은 더 없지요."
꿈도 못 꾸는 게 무슨 자랑거리란 말인가. 게다가, 꿈꾸는 시간 때문에 잠 자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건 도대체 말이 안 된다. 10분짜리 꿈을 꾼다고 10분 더 늦게 일어나 이렇게 외치진 안는다 이 말이다. "으악, 안 돼. 그 망할 놈의 꿈 때문에 기차를 놓쳤네."

프랑스대혁명은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쪽을 응시하도록 만들었다. 무제한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혁명은 또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원대한 것이든 사소한 것이든, 만물은 서로 얽혀 있다는 것, 상호의존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했다.
이제 모든 개념을 의심해볼 수 있게 되었다. 상상력의 나래가 펴지고, 인간의 창조성의 모든 잠재력이 활짝 펼쳐지게 되었다. 프랑스대혁명은 이런 인식이 모든 대륙으로, 모든 노예들의 땅으로, 혁명의 소식이 전파된 곳 구석구석 퍼지게 했다.
꿈꾸는 법을 까먹은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이쪽 끝이라면, 프랑스대혁명은 저쪽 끝이다.

그 모든 핏빛 공포에도 불구하고 혁명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영감을 자극했다. 부유층 360명이 극빈층 20억 인구와 같은 부를 차지하고 있는 이 사회의 구성 방식이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혁명은 농부나 노예, 우체부나 세탁부 여인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그럼으로써 자신들도 바꿀 수 있다는 걸 일깨워주는 증거가 되었다. 귀족이나 성직자, 왕보다 이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p.328~331)

[ 2014년 3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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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
노명식 지음 / 책과함께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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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노명식 저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를 읽고 / 2011. 06., 446쪽, 책과함께

이 책은 1789년 프랑스혁명과 복고 왕정, 1848년 2월 혁명과 나폴레옹 3세의 제2제국, 그리고 파리 코뮌의 발발과 실패까지 100년에 가까운 프랑스 혁명사를 알기 쉽게 풀어쓴 입문서다. 특히 저자는 프랑스 근대사가 영국이나 미국과 다른 노정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추적했다.

개인적으로 프랑스혁명과 그후 100년사는 늘 언젠가 한 번 공부하고 싶었던 역사였다. 프랑스와 조선은 비슷한 시대에 봉건제 절대왕조라는 엇비슷한 사회체제였는데, 프랑스에서는 18헤기 말 시민혁명 또는 사회혁명이 발생한 후 100년간 혁명과 반혁명이 이어지면서 근대국가로 이어졌고, 조선에서는 19세기 초부터 세도정치가 100년간 이어지다가 급기야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미나 교재로 채택된 이 책과 피에르 세르나 등이 발간한 <무엇을 위하여 혁명을 하는가 : 끝나지 않은 프랑스혁명>, 마크 스틸의 < 혁명 만세 : 걸쭉한 넉살, 삐딱한 불온함, 끝내 가슴 뭉클한 프랑스대혁명 이야기 >, 그리고 프랑스혁명의 주역들이 영감을 얻은 책인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연달아 읽었다.
루소와 더불어 프랑스혁명의 주역들에게 영향을 끼친 토머스 페인의 <상식>과 <인권>은 한두 달 전에 이미 읽었고...

제1장 ~ 제4장은 프랑스대혁명을 불러일으킨 18세기 프랑스의 사회경제적 토대과 사상적 배경, 대혁명의 직접적인 원인과 국민의회, 공화정의 수립과 루이 16세의 처형을 가져온 입법의회와 국민공회, 데르미도르파의 반동과 로베스피에르의 실각, 그리고
부르주아 공화국이 흔들리는 과정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프랑스 혁명의 궁극적인 원인은 "번영 속에서 불거진 계급 간의 불균형"이었다. 프랑스혁명의 배경과 원인에서 한국사회의 소위 지도층과 재벌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난 19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 역시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와 마찬가지로 "번영 속에서 불거진 계급 간의 불균형"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그리고 지난 10년 역시 재벌과 기득권들의 번영과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소득악화의 연속이었다는 것이다.

1장 ~ 4장을 통해 새롭게 알게된 흥미로운 사실은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는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점거나 프랑스 혁명 직후 처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루이 16세는 혁명 후 3년 6개월 후인 1793년 1월 20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프랑스 혁명 직후 국민의회와 인민들은 루이 16세가 공화정을 인정하고 따르면 입헌군주제로 정착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루이 16세는 겉으로는 헌법을 존중하고 공화정 수립을 인정하는 채 했지만, 뒤로는 왕당파와 외국 왕조와 결탁하여 반혁명을 추진하다가 발각되었고, 그에 따라 의회에서 '공화국의 적'으로 판결되어 처형된 것이다.

제5장 ~ 제9장은 나폴레옹 시대의 개막과 몰락(15년), 제1/2차 복고 왕정(15년)과 7월 왕정(19년), 제2공화국의 탄생과 좌절(5개월), 제2제국의 탄생(23년)과 프로이센 대 프랑스의 전쟁, 그리고 코뮌 혁명의 발발과 실패를 서술하고 평가한다. 프랑스 역사에서는 파리코뮌의 좌절과 함께 프랑스의 3공화국이 시작된다.

프랑스 혁명이 꾸준히 이어지지 않고 반혁명 - 쿠테타 - 군사독재 - 왕정복고 - 제2공화국 - 제2제국 - 파리코뮌이라는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 데 있어 큰 분기점은 혁명가 마라의 암살과 당통파의 실각, 그리고 로베스피에르와 산악파의 실각이었다.
저자는 로베스피에르의 산악파에 대한 데르미도르의 반동을 "프랑스의 민주 공화주의를 100년간 후퇴시킨 반혁명"으로 규정한다.

한국의 대다수 교과서나 책, 그리고 인터넷의 기록에 의하여 한국인들은 로베스피에르라고 하면 당연히 '공포정치'와 '독재'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혁명정파인 산악파가 집권했을 때의 프랑스 현실은 프랑스혁명을 완성시키기 위한 강력한 중앙집권이 필요했다.
5장을 통해 처음 알게된 사실은 로베스피에르가 세상에 알려진 소문과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그를 "냉철한 성격과 대담한 용기, 예리한 통찰력과 사람들을 압도하는 웅변, 탁월한 조직력과 완전한 공평무사"하다고 평가한다. 로베스피에르의 예리한 통찰력은 1792년 독일 군주들에 대한 혁명정부의 전쟁을 반대한 것으로 나타난다. 로베스피에르는 "전쟁이 일어난다면 반드시 군사독재자가 나타나서 프랑스를 반혁명과 패전으로 이끌고 갈 것"이라며 전쟁을 반대함으로써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출현(1799년)을 예고했던 것이다.
또한 로베스피에르와 산악파의 혁명정책은 "빈민에게 토지를 분배하여 시민의 경제적 사회적 독립을 성취하고 그 독립을 기반으로 하여 진정한 민주주의와 자유를 세우려던 평등과 덕의 공화국 프로그램"이었다. 그들이 실각한 이후 그런 정책이 프랑스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100년 이상이 더 필요했다.(소설 <장발장>과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은 1829년 7월 혁명 후 설립된 7월 왕정 기간 중인 1832년 6월 봉기를 소재로 한 것이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프랑스 혁명이 프랑스만을 근대국가로 전환시킨 역사적 사건이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프랑스혁명은 낡은 전제주의 유럽 여러 나라에 자유와 평등, 국민주의와 자유주의,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새 씨앗을 뿌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프랑스 혁명은 그 자체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입헌 군주주의의 시도도, 민주 공화주의의 실험도, 심지어 나폴레옹 제국마저도 다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데이비드 톰슨과 뷔리의 입장을 소개하면서 프랑스대혁명 100년의 마지막을 장식한 파리 코뮌의 실패를 프랑스의 "공화적, 혁명적 전통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20세기 사회혁명의 모델로 보았던 마르크스의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평가에 무게를 두고 있다. 파리 꼬뮌의 처절한 경험이 사람들로 하여금 폭력에 의한 혁명의 기도를 포기하게 하여 제3공화국 체제라는 평화적 타결과 화해의 길을 열게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어째서 영국이나 미국처럼 순조롭게 시민혁명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피로 얼룩진 혁명과 반혁명을 되풀이해야 했을까?"라는 저자의 질문에 어떤 해답을 내릴 수 있을까? 사실 이 책을 모두 읽은 다음에도 쉽사리 그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과연 저자의 질문은 타당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영국 시민혁명은 왕권과 지주권력의 타협이 1차 혁명이고 부르주아와 왕권-지주권력의 타협이 2차 혁명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영국에서 진짜 "일하는 사람들"인 인민의 권력에 대한 타협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이 시민혁명이라 주장하기에는 영국 등 유럽대륙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1천만 명이 훨씬 넘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하고 차지했다는 점에서 원초적으로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다. 미국의 시민혁명은 고작 영국이라는 식민지 본국에 대한 식민지인들의 독립투쟁일 뿐이었다고 폄하할 수도 있다.
또한 미국과 영국의 시민혁명의 주요 주체인 부르주아 세력의 경우 해외에 광범위한 식민지를 개쳑(?)한 후에 식민지에서 수탈한 부를 통해 정치권력을 분배받고자 하는 투쟁이었다는 점에서 정당성이 결여된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소위 '신식민지' 방식으로 군사 경제적 수탈을 계속하고 있지 않은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말까지의 한국현대사도 거칠게 표현하면 혁명과 반혁명이 반복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1894년 갑오농민혁명에서부터 1997년 IMF까지... 그 사이에는 1910년 일제에 의한 식민통치 굴욕과 1919년 기미인민항쟁(3.1운동), 1928년 원산총파업과 1929년 광주학생항쟁, 1948년 4.3항쟁과 5.10 단독선거, 1950~53년 한국전쟁, 1960년 4월 혁명과 61년 반혁명 군사쿠테타와 1972년 유신 친위쿠테타, 1979년 부마항쟁과 12.12 반혁명 쿠테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과 1987년 6월항쟁, 1995년 전두환 구속과 1997년 IMF 경제붕괴까지 프랑스만큼 파란만장한 100년이었고 그 과정에서 민중들의 피와 땀이 물들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선거를 통한 혁명을 시도한 것이고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선거를 통한 반혁명을 시도한 것이라면 너무 과도한 규정일까??

비록 시대가 다르고 조건도 다르고 역사도 다르기 때문에 프랑스혁명 이후 100년사를 한국현대사를 일대일로 맞대응하거나 비교할 수는 없어도 프랑스혁명 후 100년사에서 우리 역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 인상 깊은 문장 :

"8월 10일 사건은 파리 시의회 즉 파리 코뮌을 프랑스의 실권자로 만들었다. 입법의회는 파리 코뮌의 요구대로 왕권의 일시 정지를 선언하고 보통선거에 의한 새 국회인 국민공회의 소집을 가결했다. 왕권은 우선 잠정적으로 정지되었지만 결국 영원히 폐지될 터였다. 왕은 탕플에 유폐되었다. 그는 거기서 다섯 달을 더 살다가 처형되고 만다. 라파예트는 8월 10일 사건에 반격을 시도하여 일선 군대를 파리로 회군시키려다 실패하여 벨기에로 도망했다. 왕정을 수호하여 입헌군주 체제의 테두리에서 혁명을 성취하려던 사람들은 이제 라파예트와 함께 몰락하였다. 8월 10일 사건의 주동 세력은 온건한 부르조아가 아니라 파리의 노동자와 빈민과 영세 상인이었다. 이들이 앞으로 혁명을 한결 더 과격하게 만든다. 이들은 귀족이 입는 퀼로트라는 바지를 입지 않는다고 하여 '상퀼로트'라 불렸는데, 이제 이 상퀼로트가 파리 코뮌의 실권자로 나타났다."(p.126~127)

"돌격을 알리는 북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무장 군인이 의사당을 점령하였다. 총검이 500인회 의원들을 쫓아냈다. 저녁 7시경 원로원은 앞서 500인회가 결의한 나폴레옹의 추방을 취소하는 조건으로 보나파르트, 시에예스, 뒤코스의 3인으로 구성되는 임시 통령정부의 조직을 공포하였다. 총재정부는 폐지되고 새 통령들에게 행정권이 위임되었다. 루시앵은 30~40명의 500인회 의원들을 긁어 모아놓고, 원로원의 결정을 승인하고 62명의 자코뱅파 의원을 제명하고 12월 22일까지 6주일간의 휴회를 결의하였다. 밤 2시, 세 사람의 통령이 의회에서 공화국에 대한 충성을 선서하였다.
이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라고 한다. 지난 1792년에, 혁명정부가 전쟁을 시작하면 혁명은 결국 군인 독재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리라던 로베스피에르의 말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10년간의 혁명은 이제 한 군사 모험가의 지배로 그
막을 내렸다.(p.207)

"3월 28일 정식으로 파리 코뮌이 선포되었다. 약 2만 명의 방위대와 수만 명의 시민이 운집한 시청 광장에서 의원으로 선출된 방위대 중앙위원회의 랑비에가 “인민의 이름으로 코뮌을 선언한다”고 외치자 “공화국 만세! 코뮌 만세!”의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방위대의 행렬이 프랑스 국가 ‘라마르세예즈’의 주악에 맞추어 의원들의 사열대 앞을 보무도 당당히 행진하면 민중의 미친 듯한 갈채가 우뢰처럼 터져 나왔다. ……
분명히 파리의 민중은 이제 자신이 자신의 생활과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감동과 의욕에 넘쳐서 코뮌 선포의 날을 축제의 날로 지샜다. 민중의 소박하고 약동하는 해방감이 코뮌의 파리를 뒤덮었다."(p.417~418)

[ 2014년 2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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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의 철학 이야기 일하는 사람의 철학 이야기 1
김세준 지음, 소희 그림 / 615(육일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추천 [서평] 김세준 저 <일하는 사람의 철학 이야기>를 읽고 / 2011. 12., 261쪽, 도서출판615

이 책은 20년 이상 후배에게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관점에 대해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을 소개해주기 위해 지인에게 추천받아 읽은 것이다. 칸트나 헤겔, 니체나 플라톤의 책은 읽어보라고 소개하기에는 노력 대비 얻을 게 많지 않을 것 같아서 큰 틀에서 철학 또는 세계관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주기 위해 선택했다.

덕분에 나 역시 오래간 만에 철학, 세계관 또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지천명을 앞 둔 나이에...^^

저자는 "왜 철학이 필요한가?"라는 질문과 함께 철학이야기를 시작한다. 특히 저자는 21세기 들면서 한국사회의 젊은 세대들의 정신적 혼란과 무기력, 일베나 자살(절망)과 같은 극단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를 '철학의 빈곤'에서 찾는다.
"대한민국을 '자살공화국'으로 만든 1차적 원인은 물론 경제적 빈곤이다. 하지만 철학적 빈곤도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이다"(p.04)

한국에서 청년과 청소년들의 자살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한국은 현재 정신과를 찾는 인구 역시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죠) 가운데, 자살이 늘어나는 경제적 빈곤과 빈부격차, 불공정 사회를 바꾸어 희망과 가능성을 심어주는 것이 젊은이들의 자살행진을 멈출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은 그냥 바꾸어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하며, 자신이 바꾸기 위해서는 저자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철학은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지적 무기입니다."(p.06)

저자는 고대사회에서 철학이 출현한 배경과 소크라테스 등 유명 고대철학자, 햄릿이나 오이디푸스 등 그리스 희곡, 중국의 사상가에서부터 칸트, 니체와 같은 근대 철학자의 철학이론을 소개하면서 지금까지 인류가 다루어 온 철학이 어떤 사회적 배경이나 계급계층의 필요에 의해 나타났는지 살펴본 후, 철학이 다루는 근본적인 문제를 정리한다.
그가 제기하는 대표적인 철학의 근본문제는 "세계는 무엇으로 구성되었고 어떻게 움직이는가"라 할 수 있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물질과 정신의 문제 또는 존재와 의식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물질과 정신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철학을 분류하면 유물론과 관념론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근대 이후 엄청난 진전을 만들어낸 자연과학의 성과로 인해 물질과 존재가 정신이나 의식에 앞서고 세계를 구성한다는 것과 세계는 끝없이 변한다는 것이 철학의 근본임을 지적한다.
물론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철학을 모두 유물론과 관념론으로 간단하게 분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류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개인들과 사회집단,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지닌 지구상에서는 유물론과 관념론 뿐 아니라 그 이외에 유물론과 관념론의 중간 어디엔가 위치한 철학도 존재할 것이다. 또한 철학의 근본문제를 물질과 정신의 관계, 존재와 의식의 관계, 또는 세계의 인식가능성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제기하는 철학사조도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점차 진화한 역사를 돌이켜보면 철학은, 철학이라는 단어의 유래인 '진리에 대한 사랑' 즉 세계에 대한, 세상에 대한, 진리에 대한 추구임에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철학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인류에게 그리고 각 개인에게 여전히 남는 문제는 철학적 물음의 시작인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즉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문제, 어떻게 살 것이냐의 문제, 개인과 집단의 운명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기존 철학의 답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사람과 세상과의 관계, 사람이 사회나 공동체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냐의 문제는 각 개인에게는 행복과 생존을 다투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철학이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제기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철학들이 사람 개개인의 판단과 의사결정, 행위와 운명에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사람들이 판단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철학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일하는 사람의 철학 이야기>는 서론과 본론의 중간쯤 가다가 멈추었다는 느낌이다. 예상대로 저자가 애초부터 2부작이나 3부작으로 책을 준비했다는 것이고 서점에는 <일하는 사람의 철학 이야기 2>가 출판되어 있다. 이 책을 읽고나니 2부도 읽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도 이 책은 철학의 기원과 개념, 철학의 탄생과 변천, 철학이 다루는 문제, 철학이 인류에게 끼친 영향,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대해 독자가 가져야 하는 관점, 기존 철학이 해결한 문제와 남긴 문제, 개인의 판단과 행위에서 철학이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20대 젊은이에게는 많은 정보와 관심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플라톤이나 칸트, 니체, 헤겔, 마르크스 등 철학을 이끌어온 철학자들의 이론이나 저서를 읽게되었을 때, 독자들이 철학이라는 중심 주제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작은 토대를 마련해줄 것이다.

○ 인상 깊은 문장 :
-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들에게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황금만능주의와 소비지상주의, 자유주의와 쾌락주의 등 온갖 비인간적 가치를 주입하고 있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주입된 자본주의의 가치들을 마치 영원불변의 진리처럼 맹신하여 자본의 노리개가 되어 서로를 적대하고 경계하며 삶을 소비하고 있습니다."(p.38)

- "자연과 세계에 대한 사람의 무지와 그로부터 비롯된 공포가 종교를 틴생시켰습니다. 원시적인 종교적 관념은 세계를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지만 미지의 공포로부터 원시인류를 구원해 주었습니다."(p.46)

-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자신보다 신을 더 믿었기 때문에 성립됩니다. 오이디푸스는 신탁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신탁을 따랐기 때문에 인류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이디푸스 왕은 운명을 거부한 자의 비극이 아니라 운명의 노예가 된 자의 비극입니다"(p.75)

- "유대인대학살은 니체의 철학적 상상력과 히틀러의 정치적 실천력이 빚어낸 인류 역사의 훙측한 괴물입니다. 공교롭게도 지금은 유대인들이 신의 이름으로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에게 똑같은 범죄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p.93)

- "사람은 물질적 존재이지만 자체에 의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의식의 세계는 오직 사람과 사람의 실천을 통패서만 현실로 나타납니다. 때문에 세계를 물질과 의식의 두 측면으로 나누면 사람과 사람의 실천을 위치가 애매해집니다."(p.119)

-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물질뿐입니다. 세계에는 물질 이외에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계는 물질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의식은 물질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 물질운동의 특수한 결과일 뿐입니다. 의식은 사람의 두뇌작용에 의해서만 발생합니다."(p.150)

- "지구는 시속 1,670km의 속도로 자전하면서 동시에 시속 108,000km의 놀라운 속도로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습니다. 지구 위에 지구보다 빠른 물체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태양계는 우리 은하계의 중심을 초속 230km로 돌고 있습니다. 지구는 적어도 3가지의 회전운동을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지난 45억년 동안 단 1초도 멈추지 않았고, 앞으로 50억 년 동안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지구가 운동을 멈춘다면 그 순간 지구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운동은 지구의 존재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인류도 마찬가지입니다."(p.197)

- "영화뿐 아니라 사람의 모든 창조물은, 그것이 전적으로 사적인 노동의 결과물일지라도,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것입니다. 그 어떤 뛰어난 개인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창조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탁월한 천재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새로운 발견도, 획기적인 발명도, 천재적인 창작도 인류가 차려놓은 밥상에 그저 숟가락만 얹은 것 뿐입니다."(p.245)

[ 2014년 2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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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권력 - 견제받지 않는 사법 관료, 사유화된 검찰 권력
최재천 지음 / 유리창 / 201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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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최재천 저 <위험한 권력 : 견제받지 않는 사법 관료, 사유화된 검찰 권력>을 읽고. 2011. 11., 310쪽, 유리창


이 책은 '권력기구 개혁' 관련 세미나를 위해 사법개혁 책을 인터넷에서 구하다 발견한 것이다. 예전에 권력기구 개혁과 관련하여 김희수, 서보학 등 공저 <검찰공화국, 대한민국>(2011 삼인)과 문재인과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2011 오월의봄)를 읽었다.

최채천은 내가 2011년에 그의 저서 <한미FTA 청문회>(2009 향연)를 읽으면서 인상 깊게 남은 법조인이자 정치인이었다.


<검찰공화국, 대한민국>은 이승만 정권부터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오욕으로 점철된 검찰의 역사를 밝히고, 21세기 들어 본연의 책무를 넘어 국민 여론의 심판관으로 행세하며 임기도 없는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는 모습을 비판한다. 그리고 이미 궤도를 이탈한 검찰 권력을 통제할 방안을 이야기한다. 법무부의 탈검찰화,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대검 중수부 폐지, 검찰권 분권화, 검찰에 대한 시민 감시와 사법적 통제, 감찰권 강화 등을 통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검찰 권력이 더는 폭주하지 않도록 제어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검찰을 생각한다>는 문재인, 김인회 두 저자의 국회의원 출마 선포용 책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문재인 씨의 검찰개혁에 대한 생각을 알고 싶어 읽은 것이다. 저자들은 검찰개혁을 정부의 첫 개혁과제로 할 것을 제안한다. 검찰개혁의 주요한 과제로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 권한의 분산과 견제, 감시 시스템 마련을 제안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의 신설, 검경수사권 조정, 법무부의 탈검찰화, 검찰의 과거사 정리, 검찰행정에 대한 시민의 직접 참여, 검찰의 인권 친화적 개혁 등이다. 아쉬운 것은 저자들이 참여정부의 검찰개혁이 성과적이라고 자화자찬하는 부분과 개혁실패에 대한 책임을 정권 주체가 아니라 검찰과 열린우리당 등 외부에게 전가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권력기구 개혁을 논의하기 위해 위 두 개의 책은 한계가 명확했다. 또한 검찰 관련 문제만 다룬 것들이라 사법부를 포함한 사법권력과 기타 국가권력기구 관련한 책을 찾게 된 것이다.

최재천 의원은 사법부와 사법체계 그리고 사법권력에 대해 많은 정보와 적절한 관점을 제공해주었다. "왜 법률가들이 헌법 해석을 독점하는가?"라는 그의 문제제기는 사법부에 대한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진행 중인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선 심판과도 연기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http://blog.daum.net/hy2oxy/8691788 참조)


최재천의 문제의식과 개혁방향은 헌법의 취지와 민주공화국의 개념에서 상식적으로 출발한다. 인민주권 원리의 민주공화국에서 입법부, 행정부와 달리 사법부는 인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것과 인민에 의해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라는 점에서 사법부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시작되는 것이다. 헌법 중 사법부에 대한 조항은 민주공화국의 취지에 부족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대법원이 정의와 인권의 보루가 되지 못하고 권력과 기득권에 물들면서 권력과 기득권의 편을 들고 있으며, 갑자기 '관습헌법'을 도입하는 등 헌법에 대한 해석을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법률가 몇몇이 독점하는 것이 바로 헌법의 위기요, 민주정치의 위기요, 공화정치의 위기라는 것이다.

그는 사법부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임을 스스로 자각한다면, 주권자인 인민들로부터 신뢰받고 통제받을 수 있도록 자신들이 인민들에게 다가가야 하고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하며, 적어도 인민들에 의해 선출된 권력인 입법부와 행정부에 의해, 특히 입법부와 시민단체에 의해 견제받을 수 있는 장치를 고민해야 함을 지적한다.


검찰에 대한 그의 평가와 처방은 <검찰공화국>이나 <검찰을 생각한다>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글렇지만 그는 제도적인 개혁만이 아니라 문화적, 철학적 토대를 지적하고 검찰과 정치권의 '사법을 통한 정치'와 '정치의 사법화'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한다.

또한 정치적 목적으로 헌법상 표현의 권리를 침해하고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국가보안법을 악용하는 검찰의 행태를 통해 '사유화한 검찰 권력'의 비굴한 모습을 비판한다.


사실 이 책은 사법권력만 다룬 것은 아니다. 최재천이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전에 자신의 블로그와 언론에 기고한 글을 묶은 것(이것도 출마용? ^^)이기에 사법권력에 대한 내용 이외에도 정치, 외고, 군사,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등 다방면에 대한 그의 관점과 주장이 담겨 있다. 다른 분야에 대한 글을 읽어보면 그가 단순히 헌법학자나 변호사가 아니라 

특히 '작전지휘 통제권이 없는 한국군(세부내용은 http://blog.daum.net/hy2oxy/8691798 참조)'에서 그는 나무랄데 없는 군사외교적인 식견을 보여주었고, '로스쿨이 몰고 오는 법학의 위기' 등 몇 개의 글에서 로스쿨의 현실과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법조인이자 정치인으로서 ‘윤리적’ 책임 대 ‘법적’ 책임에 대한 그의 고민이 느껴지는 글도 있고, 6부 '그들만의 교육리그'에서는 한국 제도교육 전체의 문제점을 깊이있게 다루었다.


국내의 현실 정치인 중에서(법조인 출신이든 아니든) 최재천 만큼의 헌법과 법치주의, 인권과 민주공화국에 대해 바른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직접 실천하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으로 뽑기도 힘든 것 같다. 그만큼 최재천은 법조인으로서도 정치인으로서도 괜찮은 인재라 할 수 있다. 법무부 장관, 대법원장, 나아가 헌법재판소장까지 횔동하면서 한국 사법부에 개혁을 일으키고 정착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그가 지금은 무능하면서도 종파적, 보수적인 민주당 안에서 소외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현재 민주당 전략홍보본부장 직책을 맡고 있지만..) 민주당은 공정하고 민주적인 정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접 주권자들과 접촉 기회를 넓히고 자신의 지역구와 지지자들과 함께 '인민주권'의 원리를 구현하여 정당의 특정세력에게 희생되지 않고 스스로 '주권자와 함께 주권자의 대리인'으로 살아남기를 바란다. 나도 그를 응원할 것이다.


○ 인상 깊은 문장


"우리 사회야말로 사법에 대한 헌법적 통제, 민주적 통제가 강력히 요구된다. 좋은 헌법이 있으면 뭐 하나. 헌법을 민주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불행하게도 일부 법률가들의 ‘개인적’ 양심에 의지해야 한다면, 그리하여 지극히 반 헌법적으로 해석되고 그 해석이 우리 사회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헌법의 위기요, 민주정치의 위기요, 공화정치의 위기일 수밖에 없다."


"결국 권력에 대한 견제의 문제요, 국민주권의 실천 문제다. 사법부의 권력도, 헌법재판소의 권력도 당연히 헌법의 범위에서, 국민주권의 범위에서 견제되어야 하고 헌법적 책임의 원칙은 정밀하게 작동되어야 한다. 독립성을 독점성으로 오해하는 이들, 독립성을 책임 회피의 도구로 활용하는 이들 또한 헌법적 책임과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서 결코 자유로워서는 안 된다. 그래서 헌법적 책임, 사회적 책임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 2014년 2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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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 여성주의 정치경제 비판
J K 깁슨-그레엄 지음, 엄은희.이현재 옮김 / 알트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서평] J.K 깁슨 - 그레엄(J.K Gibson Graham) 저, 엄은희/이현재 역 <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The End of Capitalism, as we knew it : 여성주의 정치경제 비판 >을 읽고 / 2013. 11., 427, 알트

저자들이 이 책을 쓴 이유는 "자본주의를 경제의 자연스러운 지배적 형태로, 혹은 사회적 공간과 동격으로 공존하는 완전무결한 경제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사고방식이 사람들의 변혁(혁명) 열망을 어떻게 가로막고 있는지 규명(p.09)"하기 위해서였다 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그런 사고방식의 언저리에 머무르는 한 비자본주의적인 발전 프로젝트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늘 자본주의의 작은 틈새나 미래에 위치한 불가능한 것으로, 아니면 그저 미숙한 예측 정도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염려했다. 달리 말하면, 그런 프로젝트들은 하찮은 주변으로 밀려나 '차일피일의 정치'에서나 목청을 드높이게 될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 연장선 상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주의자들의 담론과 이론이 오히려 '자본주의의 지구촌 지배'를 더 공고화시켰다고 도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맑스주의자들이 오랫동안 자본주의를 비판해 오는 동안,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 비판의 담론이 자본주의 옹호의 담론 만큼이나 자본주의를 막강하게 묘사하고 그 힘을 강화시키는 전제와 논리들을 사용해 왔다는 것이다.
깁슨-그래엄에 따르면, "비판담론이 체제옹호 담론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를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통일된 힘으로 묘사하는 한, 우리는 이 담론 안에 갇힌 채, 자본주의의 지배에 대해 치를 떨며 분노를 표현할 수는 있지만 그 지배를 극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해결방향은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기존의 담론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열정 속에서 분노를 해소시키는 새로운 담론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크게 두가지, 즉 자본주의와 비자본주의 경제형식의 공존과 다양한 계급과정들로 분석한다.

자본주의 비판 담론이 자본주의 체제 옹호에 기여했다는 깁슨-그래엄의 문제의식은 신선하면서도 의미하는 바가 컸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체제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근본주의, 제국주의 또는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 담론은 자칫하면 우리가 풀어가야 할 상대 또는 숙제를 너무나 거대하고 완벽하게 만드는 경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깁슨-그래엄이 새로운 담론을 만들기 위해 선택한 것은 '여성주의적' 관점이었다. 
기존까지 정치경제학자들이 다루는 경제는 시장과 화폐교환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공적' 경제활동 즉 남성 중심의 자본주의적 관계를 중심으로 규정되었고 이런 점에서 여성적 혹은 '사적'인 영역으로 구분되는 가정경제는 담론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깁슨-그래엄은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주로 이루어지는 가정경제를 또 하나의 경제형식으로 구성한다. 그리고 가정경제 뿐만 아니라 시장거래가 아닌 윤리적 공정거래나 협동조합 방식의 교환, 개인적 선물이나 국가적 배분과 같은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로 확장시킨다.

이와 같이 깁슨-그래엄은 기존의 자본중심적 경제담론을 자본주의적 방식과 비자본주의적 방식의 경제형식이 공존하는 사회경제 체제로 재구성한다. 그리고 나서 자본주의 마저 하나의 통일된 형태가 아니라 여러가지 경제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지적하면서 기존에 존재하는 자본주의 경제담론의 '총체성'과 '단수성'과 '통일성'을 해체시킨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더 이상 강력하거나 통일적인 영웅 혹은 최후의 승리자가 아니라, 경제적 차이의 언어 속에서 자본주의는 비자본주의적 경제형식들과의 절합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해 온 하나의 경제형식일 뿐이다.

결국 깁슨-그래엄의 경제담론 속에서 자본주의는 다양한 경제형식 중의 하나로만 존재하게 된다. 또한 깁슨-그래엄의 비자본주의 역시 더 이상 무력한 경제형식이 아니라, 생각보다 우리의 일상에 널리 퍼져 있으며 고유의 힘을 통해 자본주의를 변형시키게 된다.

두 번째 분석틀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본질주의적 계급 모델, 즉 부르주아지 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이분법에 대한 비판이다. 
앞에서 깁슨-그래엄이 위에서 사회경제체제를 자본주의와 비자본주의 경제형식의 절합으로 설명하였기에 계급분석 역시 다양한 게급적 특성들이 그 생산-분배 과정에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 개인의 계급성은 복합적인 과정들이 중층적으로 얽히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계급과정이 단면이라는 것이다.

역자의 후기에 의하면, 깁슨-그래엄의 이론은 구성주의적 분석논리와 계급과정의 모호성 등 여러가지 면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문제제기는 정치경제학자들에게 많은 문제의식과 시사점을 던져줄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일반화의 오류'나 '구체성의 부족' 그리고 '상상력의 부재'에 대해 돌아보게 할 것 같다.

이 책을 온존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21세기 전후까지 이어진 서구 학계의 맑스주의 논의와 여성주의에 대한 사전 지식이 어느 정도는 전제되어야 할 거 같다. 책을 읽는 동안 '대문자 자본주의'와 같은 자주 접하지 않았던 개념과 어휘 그리고 알튀세르나 라캉 등에 대한 사전 학습이 전제되지 않아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자본주의가 어떤 추상적 자기유사성에 의해 통합될 때, 하나의 개념 지대가 모순으로부터 해방된다."라는 식으로 번역한 문장이 다수 등장하는데(80년대 이진경 씨류의 문장 이후 처음인듯..ㅋ), 번역이 후지다고 주장하기에는 나의 관련 지식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을 통해 1990년대 이후 계속되는 서구 좌파학계(또는 영미권 좌파학계)의 혼란과 치열함이 느껴진다. 그와 달리 국내의 맑스주의 또는 좌파 학자들의 움직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정치권, 학계와 대학에서 나타나는 근본적인 문제인 '학문주체성'의 부재이기도 하지만, 그런 흐름이 사대주의가 무척이나 강한 국내 학계(소위 좌파학계 포함)가 언젠가부터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유라고 느껴지고 국내 좌파 중 일부가 생태, 환경, 여성, 협동조합, 자립공동체 등 분산해 가는 이유 중 하나일거라는 생각도 든다.

[ 2014년 2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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