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만세 - 걸쭉한 넉살, 삐딱한 불온함, 끝내 가슴 뭉클한 프랑스대혁명 이야기
마크 스틸 지음, 박유안 옮김 / 바람구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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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마크 스틸(Mark Steel) 저,  < 혁명 만세 : 걸쭉한 넉살, 삐딱한 불온함, 끝내 가슴 뭉클한 프랑스대혁명 이야기 >를 읽고 / 2008. 12, 349쪽, 바람구두

2년 전 후배에게 선물받은 책인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에 '프랑스혁명'에 대해 공부하는 기회에 책꽂이에서 꺼냈다. 작년 초에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고 나서 이 책을 읽어야지 생각했다가 또 미뤘는데 이제야 겨우 읽었다.

프랑스에서는 18세기 말부터 약 100여년 간 부르조아지와 소작농민, 빈민들이 살인적인 봉건왕조와 악덕지주의 예속과 수탈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과 자유와 평등을 향해 프랑스혁명을 전개했다. 
저자는 프랑스혁명을 이 책 안에 흥미롭게 담아 냈다. 이 책은 딱딱하고 어려운 사회과학 논문도 아니고 지루하게 사실을 나열하는 역사서도 아니다. 프랑스대혁명 시기에 벌어진 사람들의 힘든 삶과 문화, 혁명을 결심하고 행동에 나서는 사람들, 왕조와 귀족과 부르조아지와 상퀼로트와 빈민들과 농민의 이야기를 책의 부제처럼 '걸쭉한 넉살'과 '삐딱한 불온함'과 '끝내 가슴 뭉클'하게 엮어냈다.

직전에 읽은, 피에르 세르나(Pierre Serna) 등이 펴낸 <무엇을 위하여 혁명을 하는가>를 보면 프랑스 내에서도 기득권 우익세력의 프랑스혁명에 대한 폄하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마크 스틸은 영국에서도 프랑스혁명에 대한 왜곡과 폄하가 대대적으로 벌어져 왔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1970년대 후반 BBC방송의 어린이 프로그램 <블루 피터>에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화려한 옷과 보석에 대한 취향 때문에 프랑스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라고, 그리고 프랑스혁명을 '곱게 봐줄 구석이라곤 전혀 없는 끔찍한 이야기'라고 설명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런 식으로 영국에서는 소설, 다큐멘터리, 영화 등 여러 매체들이 다루는 프랑스혁명 이야기는 제대로 된 평가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마크 스틸을 말한다.

마크 스틸은 영국 내에서 프랑스혁명에 대한 왜곡과 평가절하가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영국이 엘리자베스 왕족이 존재하는 입헌군주국 문화가 지속되어 있는 현실과 영국 내 기득권층들이 자본과 언론, 문화계를 장악하여 프랑스혁명에 대한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프랑스에 대한 영국인의 감정을 이용한 비합리적인 폄하를 유도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학자나 지식인들 역시 프랑스혁명에 대한 진실을 전하고 혁명에 대한 평가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1789년 프랑스대혁명 전야의 앙시앙레짐(구체제)의 모습에서부터 나폴레옹이 쿠테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공화주의가 무너지는 1799년까지의 프랑스대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때로는 재미있게 전개한다.

"인권선언('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은 귀족의 특권, 국내 관세, 무역의 독점 따위를 없애버렸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게 되었다. 프랑스인은 반란을 일으킬 권리가 있다는 게 헌법에 의해 보장되었고, 단두대가 물레바퀴를 대신해 처형 도구로 쓰이게 되었다. 이참에 아예 사형 자체를 없애자는 시민대표도 한 명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로베스피에르였다."(p.111)

마크 스틸의 위 문장은 프랑스혁명의 특징 몇 가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귀족의 특권, 국내 관세, 무역의 독점'을 폐기한 것은 프랑스혁명의 시작이 부르조아지들의 이익을 절대적으로 보호하는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반란을 일으킬 권리'는 주권자인 인민으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천부적인 권리가 국가나 정부보다 앞선다는 것을 의미한다.(프랑스와 한국의 결정적인 차이다.) 
기요틴 박사가 발명했다는 단두대는 자유주으적 조치로서 도입되었다. 그 전까지의 인기 처형법은 물레바퀴에 매달아 척추가 부러져 죽을 때까지 돌려대는 방법이었는데, 그에 비하여 한결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형 자체를 아예 폐지하자는 로베스피에르는 현재에도 '극악한 통치자'라고 오명을 받고 있는 1793~1794년 시기 공화국의 공포정치를 주도한 산악파의 핵심 정치인이었다.

"그렇지만 당통은 이용당한 자유주의자가 아니었으며, 아늑한 혁명만을 꿈꾸면서 미치광이들에 맞서 혁명을 지키고자 애쓴 인물도 아니었다. 그는 제2차 혁명과 국왕 타도에 있어 그 누구보다도 핵심 장본인이었다. 법무장관으로서 그는 9월 대학살에 면죄부를 주기도 했다. 그는 왕의 처형을 위해 동분서주한 로비스트였고, 혁명군대의 창설을 주도한 핵심인물이었으며, 자신의 체포 직전까지도 거의 모든 혁명 조치들을 적극 지지한 혁명가였다.
오늘날 그가 주장한 내용의 절반 정도를 외치는 인물이 있다면 아마 '미친 개같은 맑스주의 무정부주의자로서 탈레반을 지지하는 똘아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가 체포된 이유는 혁명력 제2년의 진보 프로그램을 지켜내기 위해 여러 기구들을 해체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반면 로베스피에르는 이들 기구의 유지를 주장했다. 그랬다가가는 혁명력 제2년의 진보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와해될 게 너무나 뻔했기 때문이다.
로베스피에르가 온갖 욕을 먹는 반면 당통이 한껏 대접 받는 또 다른 이유로는 그가 혁명가의 전형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전형이란 건 원래 일부분만의 진실만을 담아낼 뿐이다. 어떤 운동, 어떤 캠페인에든, 단호하고 유머를 모르는 로베스피에르형 인물이 있고, 피켓을 들고오기로 했으면서 두 시간씩이나 늦게 빈 위스키병 들고 비틀비틀 나타나는 당통형 인물들도 있는 법이다. 
눈여겨볼 만한 가치를 지닌 어떤 사회운동이든 이 두 가치를 모두 포용해야만 한다. 한쪽이 다른 쪽 머리를 잘라버리는 사태가 벌어지면 정말 곤란한다."(p.273)

위 문장은 프랑스혁명 과정을 주도한 두 가지 유형의 혁명가들의 모습과 그에 대한 간략한 평가, 두 유형의 혁명가들의 포용과 연대의 필요성을 말해준다.

"혁명이 성사되려면 수백만도 넘는 사람들이 옛 질서에 맞서 일어서야 한다. 혁명의 성패는 이런 이들이 얼마나 힘차게 맞서느냐에 달렸다. 그러니까 텔레비전 뉴스에서 이런 멘트가 흘러나올 리는 만무한 것이다. '오늘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결과는 수백만이 넘는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흥, 대통령 그 양반 정말 밥맛 아니니?'라고 생각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오로지 이런 생각들이 힘찬 행동으로 가시화될 때라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머리 맞대고 격론을 벌여,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자신들을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고, 목수네 가게로 튀어가 널빤지를 얻어와 근처 향수가게 지붕에 올라가 들러올린 다리의 쇠사슬을 끊으려고 드는 실행의 힘이 있어야, 시큰둥한 분노들이 비로소 혁명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이치로, 열정이 식어, 새 사회가 기능하겠다는 희망과 믿음이 다시 의문스러워지면, 혁명의 걸음걸이는 덜컹대고 자빠진다."(p.280)

위 문장은 혁명에 대한 마크 스틸의 탁월한 해석이다. 술집에 모여 독재자를 비웃고 조롱하고 정치인을 싸잡아 욕하고 손가락질 하는 것으로는 천만 명이 있어도 혁명은 불가능한 것이다.

"자코뱅은 몰락 이후 단두대에서 희생되었을 뿐만 아니라 역사에 의해서도 '선택적 탄식 신드롬'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상태에 바진 사람들은 어떤 특정 사건에 대해서는 엄청난 공포를 느끼면서도 다른 곳에서 벌어진 엇비슷한 사건에 대해서는 희한하게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타가 무너지는 걸 보고 비탄에 잠긴 수많은 정치가와 언론인들이 실은 체첸에서 5만의 민간인이 죽어도, 니카라과에서 수만이 희생되어도, 레바논 수용소에서 1,800명이 살육된 사건에 대해서도, 꿋꿋이 평상심을 유지하던 이들이었다.
프랑스대혁명 기 공포정치야말로 가장 고전적인 사례다. 역사학자, 영화제작자, 교과서 집필자 등은 로베스피에르에게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하지만 왕당파 군대에 의해 살해되거나 자코뱅을 타도하고 집권한 세력들에게 희생된 더 많은 사람들은, 소설에서건 영화에서건 전면적 취급은 고사하고 자잘한 관심도 받지 못했다."(p.291)

위의 문장은 단순히 '신드롬'이라는 식으로 넘겨버릴 게 아니라 오히려 방송과 신문, 영화와 소설, 교육과 교과서 등을 장악한 기득권 문화권력의 의식적 무의식적 결탁을 보여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베토벤에게 프랑스대혁명은 개인성의 승리를 상징하는 사건이었으며, 오스트리아 주재 프랑스 대사가 그의 3번 교향곡을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라고 제안하자 아주 기뻐했다. 혁명군의 승리를 담아내고 옛 가치의 몰락을 예찬하는 장송곡 등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최초의 작품이었다. (중략)
어쨎든 그 교향곡은 작곡되었고 완성된 악보를 막 인쇄소로 넘기려는 찰라 한 친구가 들어와 나폴레옹이 공화국을 허물고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했다. 사태를 파악한 베토벤은 분노에 찬 나머지 헌정 페이지를 찢어내버리고 '보나파르트'란 말을 어찌나 박박 긁어냈는지 종이가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았다."(p.320)

베토벤의 3번 교향곡 [영웅]이 나폴레옹 개인이 아니라 프랑스혁명을 일으킨 혁명의 모든 영웅들을 위한 교향곡이었음을, 나폴레옹이 군사독재자가 되었을 때 베토벤은 나폴레옹 이름을 짖이겼음을 이번에 알았다.

저자는 영국 연예인이다. 그쪽에서는 '삐딱한' 코미디언으로 알려져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마크 스틸의 사례를 보면 영국사회가 한국사회보다 '열려'있고, '이성적' '지성적'이며,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인 것 같다.

그 이유는 마크 스틸이 TV에서 오로지 걸쭉한 입담으로만 '혁명 6부작'을 진행할 정도로 인문학과 코미디를 접목시키는 일에 열심이라고 출판사가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혁명, 성혁명, 러시아혁명, 산업혁명, 미국혁명, 진화의 혁명이 그 6부작의 면면인데, 마크 스틸 특유의 새로운 역사교육 장르가 형성되고 있다는 영국 언론의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또한 마크 스틸은 진보정당 후보로서 런던시의원에 출마한 경력까지 있을 정도로 정치활동에도 열정적인 사람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가 영국 방송계나 연예계에서 아무런 출연거부나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것이 한국 헌법이 말하는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직업의 자유, 정치의 자유라 할 것이다.

한국은 진보정당은 커녕 보수정당인 민주당을 지지하거나 정부정책에 대해 호불호만 표현해도 방송국에서 퇴출시킨다. 시그렇게 보면 한국은 자유 국가도 아니고 민주주의 국가도 아닌 것이다.
또한 한국 방송계나 예술계의 특성상 인문학과 사회과학, 철학적인 수준을 갖추고서 공중파에서 연예인이나 예술가 활동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김제동 등 몇몇 정도일 것이다. 실제 인문학과 사회과학, 철학, 역사의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법조인, 언론인, 정치인, 관료들에게서도 그런 기초 수준이 보이지 않는데 연예인이나 예술인에게 바란다는 것이 내 잘못일 것이다. 물론, 그들이 '지성' 대신 유흥이나 접대, 뇌물, 조작, 거짓말, 폭탄주의 전문가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주권자가 어떤 정치를 원하느냐는 주권자가 정치에 얼마나 참여하고 어떤 인물을 대리인으로 선출하느냐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비슷한 처지의 계급계층이 아닌 개인이나 소수의 이익을 위해 정치와 정당에 개입하는 이들은 이익과 권력의 화신들이 장악하는 정치, 정당에 대해 불평불만을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이 그런 정치와 정당을 만들었으니...

프랑스 인민들이 대혁명을 일으키던 때, 한반도에서는 조선 22대 임금 정조가 집권하여 일부 개혁적인 사대부들과 함께 왕조, 봉건제 또는 농업관료제를 개혁하려고 시도하다가 좌절되었으며, 그후 약 100년간 세도정치와 부정부패로 인해 인민들의 삶이 극한까지 파괴되었다. 인민항쟁(반란)은 끝없이 일어났으나 무능하고 기회주의적인 지식인들은 끝내 인민들을 외면했다.
2014년 대한민국은 19세기 ~ 20세기 중순의 조선을 반복하느냐 아니면 18세기 후반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 정신을 되살리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책임과 역할이 운동가들과 지식인, 깨어있는 인민들에게 주어져 있다. 그들이 무능하고 탐욕스럽고 기회주의적일 때 역사는 반동으로 귀결될 것이다. 200년 넘게 잃어버린 혁명을, 혁명정신을, 혁명의지를 되살려 내야 앙시앙레짐을 벗어 던질 것이다.

- 마지막 문장 :

"마오쩌둥의 참모였던 저우언라이는 프랑스대혁명에 대해 아주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 혁명의 파급효과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걸 애기하기엔 너무 일러요."
그럴듯하지 않은가? 당시 혁명가들이 맞서 싸웠던 것들과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혁명의 물결은 그 후 100년이 넘도록 퍼져나갔다.

오늘날의 기득권 집단에게 있어 프랑스대혁명은 평등을 떠들어대는 무리들이 권력을 잡게 되면 어떤 혼란이 펼쳐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본보기와도 같다. 그래서 우리는 은연중에 대혁명에 대해 썩 좋지 않은 인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살육의 아수라장만 부각시키면서 대혁명을 소개하는 데는 뭔가를 경고하려는 저의가 확실히 배어 있다. "지금 그대로가 좋은 겁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저항하라고 하는 사람들의 꼬드김이 참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지요. 그렇지만 그 사람들 말대로 했다가는 쇼핑센터 한복판에서 창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머리통들을 구경하게 될 겁니다."

기득권층은 무엇에 기대고 사는가? 그건 바로 수동성이다. 혁명의 정반대인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지상의 온갖 부당한 일들에 맞서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싸우지 않을 이유야 끝도 없이 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설령 이에 맞서 싸우는 경우에도 사람들의 생각은 대개 이렇다. "대통령이 바뀌면, 혹은 세계은행 총재가 바뀌면 좀 더 공평해지겠지..."
어느 누구도 본인 스스로 사회를 운영해야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5년 동안은 그렇지 않았다.

이 일, 즉 수백만의 사람들을 한번도 가능하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 속으로 적극 뛰어들게 한 이 사건으로부터 당신이 어떤 결론을 끄집어내건, 이 프랑스대혁명의 이야기는 인간이 빚어낸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스펙터클한 이야기이다. 희망과 저항, 희극과 비극의 이야기이다.
혁명은 놀라운 등장인물들을 수십 명이나 탄생시켰고, 또 거의 그 전부를 궤멸시켰다. 그 젊은 목숨들을 대가로 수백 년 동안 지속될 혁명의 명성이 쌓이게 된 것이다. 로베스피에르, 당통, 데물랭, 마라, 생쥐스트, 브리소, 롤랑 부부, 바뵈프, 프바, 구통 등...
거의 모든 주요 인물들이 자신들이 쓰던 드라마 속에서 죽어갔다. 겨우 미국으로 건너간 토머스 페인조차도 필라델피아의 알거지 신세로 최후를 맞았다.

왕당파 희생자들도 마찬가지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왕족은 모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프랑스혁명의 지도자들이 그토록 경멸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너무나 드문 일을 해치웠기 때문이 아닐까?
보다 공정한 사회를 그리면서 이들은 그런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다했다.
진보주의의 대변자였던 이들은, 잘 차려입은 지역 정치가로 잽싸게 변신하여 지역 텔레비전에서 상공인들과 악수나 나누는 장면 따위는 연출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들은 공격 받을 때마다 무장한 인민들의 힘을 총동원하여 적들에 맞서는 길을 택했다.

이름도 알 길 없는 수백만의 혁명 참가자들에게 있어 거창한 대의명분과 작디작은 과제는 따로 떨어진 게 아니었다. 그들에게 "다음 달에 먹을 걸 어떻게 든든히 장만해둘 것인가?"라는 문제는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야 할까, 우리는 어떤 권리를 타고 나는가, 신은 존재하는가 따위의 문제들과 서로 얽혀있는 것이었다.
이웃들을 이끌고서 가게를 점거함으로써 가격 인하를 꾀했던 시민들과, 여성 인권의 신장을 주장하는 팸플릿을 찍어낸 시민들은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발미의 언덕을 굳게 지켰던 사람들, 혹은 베르사이유궁으로 왕족들을 잡으러 가며 격렬하게 요동치는 가슴을 심호흡으로 진정시키던 사람들은 다름 아니라 천문학의 역할이나 가장 효율적인 영농기업, 혹은 혁명 후에도 스포츠가 있을까 없을까를 두고 밤새도록 토론하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게 대혁명의 가장 꾸준한 파급효과가 아닐까 싶다. 한 예를 들자면, 1840년대에 이르러 대혁명의 영웅들이 초창기 노동운동의 영웅으로 다시 떠올랐다.
머서티드빌의 역사를 다룬 1860년대의 어느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인권론]과 [이성의 시대]를 높이 평가하던 몇몇이 산속의 모처에 모여 큰 돌 밑에 감추어두었던 그 책들을 꺼내 아주 뜨겁게 함께 읽곤 했다"
아주 뜨겁게는 고사하고, 조금이나마 뜨겁게라도 읽으신 분이 대체 있을까/ 최근에 나온 영국 정치인이 쓴 글들을?

어느 인터뷰어가 토니 블레어에게 뭘 꿈꾸는지 물은 적이 있는데, 그때 블레어의 대답은 21세기 초 주류 정치가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잘 요약해 보여준다. "요즘 전 잠 잘 시간도 없어요. 꿈꿀 시간은 더 없지요."
꿈도 못 꾸는 게 무슨 자랑거리란 말인가. 게다가, 꿈꾸는 시간 때문에 잠 자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건 도대체 말이 안 된다. 10분짜리 꿈을 꾼다고 10분 더 늦게 일어나 이렇게 외치진 안는다 이 말이다. "으악, 안 돼. 그 망할 놈의 꿈 때문에 기차를 놓쳤네."

프랑스대혁명은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쪽을 응시하도록 만들었다. 무제한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혁명은 또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원대한 것이든 사소한 것이든, 만물은 서로 얽혀 있다는 것, 상호의존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했다.
이제 모든 개념을 의심해볼 수 있게 되었다. 상상력의 나래가 펴지고, 인간의 창조성의 모든 잠재력이 활짝 펼쳐지게 되었다. 프랑스대혁명은 이런 인식이 모든 대륙으로, 모든 노예들의 땅으로, 혁명의 소식이 전파된 곳 구석구석 퍼지게 했다.
꿈꾸는 법을 까먹은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이쪽 끝이라면, 프랑스대혁명은 저쪽 끝이다.

그 모든 핏빛 공포에도 불구하고 혁명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영감을 자극했다. 부유층 360명이 극빈층 20억 인구와 같은 부를 차지하고 있는 이 사회의 구성 방식이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혁명은 농부나 노예, 우체부나 세탁부 여인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그럼으로써 자신들도 바꿀 수 있다는 걸 일깨워주는 증거가 되었다. 귀족이나 성직자, 왕보다 이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p.328~331)

[ 2014년 3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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