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홈트 입체 미로 - 가상도시 3D 미로 탈출 게임 브레인 홈트 (Brain Home Training)
토마스 래드클리프 지음 / 폴더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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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도시 3D 미로 탈출 게임

이제 미로게임도 3D로 즐긴다!>>

 

이 책은 그림책 크기의 커다린 미로게임 책이다.

차를 타고 이동한다거나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린다거나 등등의 잠깐의 시간적 틈이 생길때 요즘은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그 몇분 혹은 몇십분의 시간도 알뜰히 스마트폰을 이용하려고 든다.

하지만 그런 아이를 그런 상대방을 마주보는 입장에선 썩 달갑지 않은 경우가 많다.

눈나빠지는데... 혹은 대화를 하지... 싶으면서도 이미 스마트폰에 관심을 돌린 이후엔 그 어떤 말도 소용이 없다.

그럴때 일종의 플레이북이 유용할 때가 있다.

책을 펼치면 책장 한가득 흑백의 도시가 나타난다.

네모표시에서 출발해서 동그라미표시로 가면 되는데

훌쩍 뛰어넘으면 될것 같은 저 거리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꼬불꼬불 돌고돌다 보면 어느새 책장만 뚫어져라 보게 되고 집중해서 길을 찾게 된다.

너무 어지럽고 헤깔리다고 중도포기하려 한다면, 잠깐!!! 뒤에 해답이 있다. 기서 힌트를 조금 얻어 다시 해보는 것도 ㅎㅎ

숫자를 좋아한다면 스도쿠나 말하기를 좋아한다면 단어퍼즐이나 끝말잇기를 해도 좋겠지만

이것도저것도 아니라면 누구나 만만하게 해볼 수 있는 것이 미로찾기 가 아닐까?!

게다가 입체 미로찾기다 보니 중고등학생이나 어른이 하기에도 쉽지 않다.

쉽지 않은 것을 해보라고 줘야 해결했을 때 더 뿌듯하고 하는 내내 긴장감이 있기 마련이다.

스마트폰 좀 그만했으면 싶을때, 차안이나 기차안에서 식당이나 카페에서 (누가 보면 열심히 공부하는 것처럼 보일것 같은) 이 책을 펴놓고 미로찾기를 해보게 하는 건 어떨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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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하는 뇌 - 뇌과학자와 예술가가 함께 밝혀낸 인간 창의성의 비밀
데이비드 이글먼.앤서니 브란트 지음, 엄성수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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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자와 예술가가 함께 밝혀낸 인간 창의성의 비밀

다빈치부터 피카소, 아인슈타인부터 잡스까지... 창조적 예술품과  혁신적 발명품들 속에서 '창조하는 뇌'의 놀라운 작동 원리를 찾아내다!>>

데이비드 이글먼 은 세계적으로 촉망받는 뇌과학자라고 한다. 이 책을 바탕으로 제작한 과학다큐 '창의적인 뇌의 비밀'이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고 하는데 아직 나는 보지 못했다. 다양한 매체에 최신 과학 이슈를 꾸준히 소개하고 있는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 라고도 한다. 또 한명의 저자인 앤서니 브란트 는 작곡가로 예술과 과학을 접목한 연구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관련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고 한다. 과학과 예술...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두 분야는 비슷한 점이 의외로 많은가 보다. 


나는 번역된 책을 읽을 때 원제를 관심있게 보는 편이다. 이 책의 원제는 'THE RUNAWAY SPECIES' 다. 도망친 종(種) 정도로 해석하면 되려나;;;

다윈의 '종의 기원' 할때 그 '종' 인데 runaway 를 앞에 붙였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분류되어 있는 혹은 알고있는 '종' 아닌 무언가를 말하는 가 보다. 책을 읽고나니 인간만의 고유한 특징으로서 창의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창조의 다른 표현으로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표준적인 틀을 깨부수는 것은 뇌 속에서 작동하는 기본적인 소프트웨어의 결과라고 말한다. 인간은 뇌 속에서 움직이는 알고리즘 속 진화적 변화 덕분에 세상을 흡수해 '만일~라면 어떨까'하는 가정 버전을 만들어 내는데, 이 책은 그 창의적 소프트웨어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특히 자신의 기대를 깨뜨리고 싶어 하는 욕구가 어떻게 인류의 '일탈하는 창의성'으로 발전하는지 보여주려고 한다. 다시말하자면, 지금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들로부터 달아나야 새로운 것을 창의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나 할까.


크게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이다.


>>혁신은 '옳은' 것의 문제가 아니라 '다음은 무엇인가' 의 문제다. <<첫장부터 명문장이 나왔다. 인간은 과거를 기억하며 오늘을 살고 내일을 준비한다. 좀더 나은 내일을 살고자 하는 인간의 바람은 결국 혁신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신기술은 계속 나타나 새로운 기준이 되고 곧 보편화한다.>> 혁신은 기술의 발전을 통해 직접적으로 확인된다. 십원짜리 동전 두개로 공중전화를 걸던 시대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모두들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 그 스마트폰도 2년의 약정기간이 다 되기 전에 새기계가 나와서 바꿔달라고 유혹하는 시대가 되었다. <<무언가를 잘 이해할수록 우리는 그것을 덜 생각한다. 한마디로 익숙함은 무관심을 낳는다. 반복 억제가 일어나 관심이 줄어드는 것이다>>. 항상 새로운 문물을 만들어 내고 사용해오고 어느새 너무 익숙해져서 무덤덤해져가는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옳건 그르건 혁신은 미래를 만들고 혁신의 주기가 짧아질수록 인간의 창의성은 절실히 필요한건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창조물은 이전에 나온 것과 대체로 비슷해 보이지만 실은 모두 변화한 것이다. 지나치게 예측 가능하면 사람들은 관심을 거둬들이고 뜻밖의 놀라움이 너무 크면 갈피를 잡지 못한다. 창의력은 그러한 긴장감 속에서 생명력을 얻는다.>>

 

스마트 폰으로 책을 볼수 있는 시대가 됏지만, 스마트폰 속에서의 책도 책장에서 골라볼 수 있게 해놓곤 한다. 서점에서 책을 골라사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볼때 자주 보는 책장이 스마트폰속에서 준비되어 있을때 우리는 익숙하게 전자책을 고른다. 마치 내집 책장에서 책을 고르듯이. 스마트폰속에 책장이 아니라 아주 새로운 형태로 책을 고르게 해놓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처럼 전자책이 읽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실과 다른듯 비슷해야 사람들은 관심을 갖고 놀라워한다. 현실과 너무 다르면 놀라워할뿐 곧 잊혀지고만다.


<<희망은 일종의 창의적인 추측이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자신이 바라는 대로 상상한다. 이를 깨닫지 못하는 우리의 삶의 상당 부분을 가정 영역 속에서 살아간다.>>

 

창의적인 생각은 매일매순간 일어난다고도 할 수 있다. 내가 만약... 하는 가정의 상황을 상상할때 그러한 상상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품고 있을수도 있다.


<<척색동물 멍게는 기이한 행동을한다. 어려서는 헤엄쳐 다니다가 결국 따개비처럼 붙어 있을 장소를 찾고 나면 영양분 섭취를 위해 자신의 뇌를 흡입한다. 멍게의 뇌는 정착할 장소를 찾고 그곳에 정착할 결심을 하는 데 필요할 뿐이며 그 임무가 끝나면 뇌의 영양소를 다른 장기로 보낸다. 한마디로 멍게의 뇌는 무언가를 찾고 결정하는 데 쓰인다! 어떤 장소에 정착하는 즉시 뇌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인간은 하루종일 소파에 들러붙어 감자칩을 먹으며 TV만 보는 게을러빠진 사람조차 자기 뇌를 먹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멍게 같은 최종정착지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늘 틀에 박힌 일상을 거부하려 안달하며 인간에게 창의력이란 생물학적 지상 명력이나 다름없다.>>

 

멍게가 되를 먹는지 몰랐다;;; 나름 충격적인 에피소드 였다. 뇌가 필요없어질 때가 있고 그때가 되면 뇌로 보내는 영양소를 줄이기 위해 뇌를 먹는다니... 다른 동물보다 뇌가 커지면서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오를 수 있었던 인간에게 뇌가 끊임없이 필요하다는 것은 정말 생존본능인건지도 모르겠다.


<<대개 발명은 한순간에 이뤄진다고 상상한다. 발명가에게 갑자기 '유레카!'를 외치는 순간이 찾아오고 놀라운 계시 같은 걸 받는다고 말이다. 사실 기술 분야에서 일어나는 괄목할 만한 발전에는 정확한 출발점이 거의 없다. 처음에는 발명을 앞두고 이런저런 사람과 아이디어가 한데 모이면서 힘을 축적한다. 그렇게 몇 개월이나 몇 년을 거치며 그 힘이 점점 강해지고 분명해지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추가되는 것이다.>>


이 책에는 사진자료가 꽤 많이 등장한다. 아이폰 같은 기계부터 그림이나 시 까지 모든 창조물에는 그 이전의 창조물들이 있었다. 그이전의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기계와 명화들이 나올 수 있었다. 아이팟이면 아이팟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면 유명한 그림 등등으로 결과물만 알고 있었는데 그 결과물 이전에 존재했던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되는 구절구절마다 신기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번개가 내리쳐 불타오르는 게 아니라 뇌 속의 거대한 어둠에서 번쩍이는 수십억 개의 미세한 불길에서 생겨난다.

인간의 창의력은 기적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로 간의 협력으로 뇌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 사회 안에서 평가받는 창의적인 행동은 그 이전에 어떤 창의적인 행동이 있었는지에 영향을 받는다. 결국 상상력의 산물은 그 사회 역사에 따라 생겨난다.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바뀌고 사회는 계속 발전해간다. 우리는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여지를 만든다.>>


2부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뇌 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들이 차근차근 설명된다.


<<우리는 과거의 거인 때문에 위협받기 쉽지만 그 거인은 현재의 도약판이기도 하다. 뇌는 불완전한 것은 물론 사랑받는 것도 리모델링한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완벽한 악기라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지금 현재 신소재로 만든 저렴한 바이올런을 켜본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구별해 내지 못했다.


'무기여 잘 있거라' 가 무려 47가지의 서로 다른 결말을 담은 초안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작품 외에도 지금 우리에게 알려진 작품이 있기까지 수많은 초안들을 작가들은 다 시도해보았었다.


<<한 가지 해결채개에 과잉 투자하는 것은 멸종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인류도 정신적으로 다양한 것을 추구하는 힘을 발휘한다.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인간은 단순히 한 가지 답이 아니라 다양한 답을 내놓는다.

백미러로 뒤를 보면 진보는 종종 발견과 발전의 직선 도로처럼 보인다. 그건 착각이다. 역사의 모든 순간은 이리저리 뻗어 나간 좁은 흙길과 다름없으며 그 길이 합쳐져 다시 몇 개에 불과한 포장도로가 된다.>>

 

사람들은 쉽게 결과물들만 기억한다. 그 결과물을 향해 오롯지 한우물만 팠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에 지방국도가 있었고 지방국도가 있기 전에 시와시를 연결하는 길이 있었을 텐데 고속도로만 다니다 보면 길은 그길 뿐인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논두렁길이 평평한 흙길이 되고 흙위에 시멘트를 깔았다가 콘크리트를 깔기까지 그 모든 길들이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갑자기 등장하는 결과물은 없다. 대표적으로 남은 결과물 이전엔 항상 수많은 시행착오들이 초안들이 있었을 것이다.


<<창의적인 결과물은 대개 많은 시도가 실패한 끝에 나온다. 인류 역사에 등장한 아이디어는 대부분 실패를 용인하는 환경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라는 격언이 괜한 말은 아닌가 보다. 무수한 실패들이 있어야 제대로 된 성공이 따라올 수 있음을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저자는 알려주고 있었다.


<<창의성이라는 소프트웨어는 인간의 하드 드라이브에 아예 설치되어 있어 언제든 주변 세상을 휘고 쪼개고 섞게 해준다. 또한 우리의 뇌는 늘 새로운 가능성을 뽑아내며 대개는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지만 일부는 실현한다. 동물의 왕국 안에서 그러한 활력과 고집으로 세계를 재편하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동물은 인간 외엔 없다.

우리의 뇌는 신축적이다. 뇌는 딱딱한 돌에 새기듯 고정불변을 지향하기보다 끝없이 그 자체의 회로망을 바꾸며 변화를 추구한다. 우리 뇌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신축성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 놀라움을 안겨 준다. 뇌 속의 회로의 끝없는 재창조로 우리 삶은 날로 노련해지는 작품처럼 발전한다. 그러니까 창의력으로 가득한 삶은 뇌의 신축성으로 유지해주며 우리는 주변 세상을 리모델링하면서 우리 자신도 리모델링한다.>>

 

책을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창의적인 생각이라는 것이 너무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집안의 인테리어를 바꾸고, 책을 읽고나서 뒷얘기를 상상해보고, 쇼핑할때 어떤 물건이 좋을지 선택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때 호기심을 갖고, 반찬을 할때 재료를 바꿔보는 등등 일상에서의 소소한 작은 변화들도 어찌보면 창의성과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작은 변화들을 생각해보고 실행해보는 모든 것이 결국은 창의성이 아닐까.


3부 창의성의 탄생 에서는 구체적인 실행방법들을 생각하게 한다. 대표적인 장소로 기업과 학교에서의 지향점들을 설명하고 있다.


창의적인 기업들의 도전사례들을 보며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한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꼭 이윤추구 때문이라기 보다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방법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가장 먼저 시도해보고 있는 곳이 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많은 아이디어를 확보한 뒤 그 대부분을 포기하는 것이 보다 현명한 접근 방식이라는 것을 직접 해보는 기업들을 보니, 소비자로서 그 제품이 나오기까지의 숨겨진 도전들도 알아채줘야 겠구나 싶었다.


<<뭐든 돌에 새기듯 고정하지 마라. 지금 잘 통하는 모델도 5년 후에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모델도 절대 영원히 통하지는 않는다. 창의적인 기업은 반복 억제를 피하고 많은 옵션을 만들며 지금 잘 돌아가는 것이 싫증나기 전에 바꾸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혁신은 틀에 박힌 것을 뒤집는 데서 에너지를 얻는다.>>

 

혁신적인 기업이야기를 많이 하는 뇌과학자인 저자는 과학에서의 창의성에 대해서는 의외로 많이 이야기 하지 않는다. 과학보다는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아마도 창의적인 생각이라는 것이 과학적 발견으로 이어진다라는 고정관념 때문인걸까? 아니면 대중서로 쓰다보니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례들을 드느라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저자는 학교에서의 교육에서 지금보다는 좀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교육환경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창의적인 성인이라면 사회 번영을 위해 학생들에게 오답을 두려워해 움츠러들지 말고 과감히 위험을 감수하라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모든 지적 자본을 성공을 보장받는 안전한 일에만 투자하는 게 아니라 보다 다양하고 위험한 일에도 투자하게 해야 한다.>>

 

정말 교육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모두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문제는 현실이다. 당장 먹고살기 힘들때 무작정 도전해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회가 실패를 받쳐줄 수 있을때 아이들에게도 실패를 권해줄 수 있을텐데 말이다...


<<젊은 학생이 창의적인 사고를 하려면 예술이 필요하다. 예술이 그 공개적인 특성 덕분에 혁신의 기본 툴을 가르치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더 나은 예술은 더 나은 엔지니어를 만든다. 그렇지만 예술이 중요한 더 깊은 이유는 따로 있다. 예술이 과학 발전을 유도하는 것을 넘어 문화까지 움직이기 때문이다.>>

 

예술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생각의 탄생' 이라는 책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생각의 탄생' 에서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생각도구 13가지를 알려주면서 천재들의 사례들을 통해 예술과 과학이 얼마나 윈윈했는지 보여준다. 책의 결론부분에서는 '전인교육' '통합교육' 을 강조하는데, 그 내용이 이 책에서 말하는 교육과 무척 비슷하다. '생각의 힘' 이 과거에서 찾은 창의력 향상 교육이라면 이 책은 현실을 바탕으로 한 미래기반 창의력 향상 교육을 지향한다고나 할까.


<<많은 경우 교육은 과거를 돌아보고 널리 인정하는 지식과 결과를 찾는 데 집중한다. 사실 교육은 아이들이 디자인하고 만들고 살아갈 미래 세계를 지향해야 한다. >>

 

교육은 어쩔 수 없이 과거를 배우는 과정이다. 문제는 그러한 과거를 바탕으로 얼마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느냐 이다. 저자도 말했다시피 그냥 뚝 떨어진 발명품은 없었다. 조금씩 조금씩 여기저기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개발하다 보면 어느새 대단한 발견이 눈앞으로 다가와 있곤 했다. 과거를 배우는 교육이지만 그 과거들이 미래를 생각할 수 있도록 힌트를 주는 교육이 되어야 할텐데.. 그게 참... 현실에서는 어렵다;;;


<<뇌는 언제나 단조롭고 예측 가능한 것을 거부하라고 우리를 닦달해 이미 아는 것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게 만든다. 그래서 인류는 늘 따분한 현상 유지에 만족하지 않는다. 뻔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그 힘이 바로 창의력의 토대다. >>

 

아이들이 어리면 어릴수록 집중력의 시간이 짧다. 금방 지루해 하고 그렇기 때문에 금방 호기심을 갖는다. 어쩌면 지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계속 무언가를 발견하고 질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반복되는 일상이 길어지는 어른이 되어가도 쳇바퀴 돌듯 똑같은 매일을 사는 것 같은 어른이 되어가도, 어른도 자주 지루하다. 그래서 어른도 지루함을 벗어나기 위한 창의력 뿜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나이가 더 들어도 인간은 계속 창의적일 수 있다. 왜냐면 인간은 계속 지루함을 느끼게 되므로. 지루함을 벗어나고 싶어하므로.


<<지금 혁신이 해일처럼 밀려들 여건이 무르익고 있지만 그것이 현실화 하려면 사회 도처에 적절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아이의 창의성을 키워주지 못할 경우 인류가 소유한 장점을 십분 활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상상력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

 

상상력에 투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자라나는 새싹들에 대한 교육이다. 창의성을 키워주는 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창의성은 주입시킬 수 없는 건데 창의성도 학원에서 문제집에서 가르치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장 기본적인 교육현장인 학교에서 아이들이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참 좋을텐데...


과학책인가 싶었는데 자기계발서 인가 싶다가 교육지원서 같은 마무리의 이 책은 여하튼 인간의 창조성과 그 창조성을 만들어내는 뇌의 특성을 강조하고 있다. 원서의 제목처럼 일탈하는 새로운 인류의 종 으로 인류는 끝없이 생각해야하는 숙명을 타고난 것 같다. 앞으로 점점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해야 살 수 있는 시대라고 하는데, 이 책을 통해 창의적인 결과물들이 어떻게 창조됐는지 가볍고 쉽게 읽고나니 나의 뇌도 조금은 창의적인 쪽으로 방향을 잡았기를 기대해 본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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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잘 살면 왜 안 돼요? - 교실 밖 실전 사회 탐구
이치훈.신방실 지음 / 북트리거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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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도 벅찬 인생, 동병상련은 없다!

혐오, 내 일이 아니니까 신경 끌래요. 비트코인, 부자가 되기 위해 투자할 거에요. 플라스틱, 편해서 쓰는 건데요. 그런데......

나만 잘 살면 왜 안돼요?>>

 

처음에 제목을 읽었을 땐, 나만 잘살면 왜! 안돼요? 라고 읽었다. 이 경우 나만 잘 살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책을 읽고 보니, 나만 잘살면 왜안돼요? 였다. 이 경우 나만 잘 살면 안된다는 의미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읽은 책이, 이 책의 출판사인 북트리거 의 [수상한 질문, 위험한 생각들] 이었다.

연달아 읽을 생각은 정말 전~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돼버렸다;;; 이 책 목차를 보고서야 음? 하는 느낌에 다시 표지를 보니 앗! 했다는...


두 책은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고, 저자의 이력도 비슷한 언론계이다. 이 책의 저자는 KBS다큐전문PD다.

읽고 보니 저자의 이력은 책에서 내용을 풀어내는 방식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수상한 질문, 위험한 생각들] 이 기자다운 재기발랄함이 있다면, [나만 잘 살면 왜 안돼요] 는 다큐다운 해설이 있다고나 할까.

[수상한 질문, 위험한 생각들] 이 발칙한 생각을 제안한다면, [나만 잘 살면 왜 안돼요] 는 변화된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도록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책의 네 시간에 나누어 수업하듯 구분되고 있다.

첫째시간 - 다양한 사회, '약자'는 무시해도 될까? 에서는

한국사회를 집어삼키고 있는 혐오와 나홀로족시대로서 혼자가 편한 사람들과 세계에서 한국까지 번져온 페미니즘 물결과 함께사는 우리를 위한 다문화 사회 에 대하여 풀어내고 있다.

혐오를 할 수도 있고, 나혼자 편하게 살 수도 있으나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한국인과 비한국인이 평등하게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해준다.


둘째 시간 - 경제와 자본주의, '나'만 혼자 잘 살면 될까? 에서는

새로운 세상으로 일컬어지는 4차산업혁명 시대와 투자와 투기 사이에서 인식되고 있는 가상화폐와 핫플레이스에 드리운 그늘인 젠트리피케이션 과 다양한 방법으로 개인이 노출되고 있는 감시사회 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새로운 시대가 어떤 식으로 열리고 있는지, 가상화폐 보다 그 기본적인 블록체인 기술을 어떻게 구분지어 생각해야 하는지,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재생이 어떻게 반복되고 있는지 기술이 발달할 수록 개인의 정보에 대해 어떤 준비가 필요할지 알려주고자 한다.


셋째시간 - 자연과 인간, 무조건 '편리'한 게 좋을까? 에서는

바다롤 떠도는 죽음의 알갱이라 불리는 미세플라스틱과 저개발 빈민국에 필요한 적정기술과 재앙이 되어 지구를 덮치고 있는 환경호르몬의 심각성과 식량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고취시킨다.

플라스틱이 얼마나 위해한지 함께사는 세계인으로서 어려운 국가들을 위한 진정한 착한 기술은 무엇인지 환경호르몬과 GMO 작물과 식량산업의 문제성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며 반성하게 된다.


넷째시간 - 대중문화, '재미'만 있으면 모든 게 용서될까? 에서는

청소년들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돌, 언어파괴, 유튜브혁명, 온라인게임 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점들을 시사하고 있다.

아이돌의 팬덤문화 변화와 특정집단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파괴의 유행과 넘쳐나는 유투브 영상과 중독이 염려되는 온라인게임에 대해 겉으로 보이는 현상들을 파고들어 깊게 생각해야 할 기준들을 생각해보길 권하고 있다.


세상 모든 것엔 양면이 있는 듯 하다. 다 나쁘기만 한것도 다 좋기만 한것도 없다.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일부는 장점이고 일부는 단점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양면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항상 양쪽을 다 바라볼 수 있는 관점, 그것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하는 책이었다.

청소년 학생을 둔 학부모나 청소년 또래가 읽으면 세상을 판단할 객관적 기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경험을 시켜줄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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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조선을 바꾼 한 권의 책
백승종 지음 / 사우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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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서술 목적은 [중용]이 조선 사회에서 과연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한손에 [중용]을 들고 떠나는 문화사 산책이라고 보아도 좋겠다.​ >>

저자는 역사가이자 역사 칼럼니스트 라고 한다. 독일과 한국의 여러 대학에서 역사 강의를 하면서 펴낸 책들도 다 역사관련 책들이다. 책들을 살펴보니 특히 조선시대 중반부에 해당하는 시기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중용] 이라는 책이 등장한 것은 적어도 2400년 전이라고 한다. 조선의 굵직한 선비들은 다른 책들을 먼저 공부한 후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 [중용]을 꼽았다고 한다. 3천500여 글자수로 이루어진 비교적 얇은 편에 속하는 학문서적인 [중용]이 조선시대를 관통하며 학자들에게 꾸준히 읽혔던 이유는 무엇일까 를 연구하다 보니 조선시대의 학문적 흐름을 깨달은 저자가 펴낸 이 책은, [중용]을 철학적으로 깊이 분석하고 해설하는 데 목적을 둔 책이 아니라고 한다. 철학적 논의가 없는 것은 아니나 [중용]의 본문인용과 해설은 일부분일 뿐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학자들이 어떻게 해석했는가를 살펴보며 시대적 의미를 되짚어보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조선처럼 엄격한 제왕학 수업은 없었다.>>


조선시대의 세자 교육은 철저한 편이었다. 학문을 하는 세자가 임금이 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시대의 학문적 흐름과 당쟁의 판도가 바뀌었다. 그러나

<<독서할 때는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 는 성리학자들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라는 문장을 보며 주입식 교육이 오랜 역사가 있었구나 싶었다. 그러나 외우기만 하고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외우고 나서 신하들과 스승들과 제자들과 그 문장의 진정한 의미를 토론하는 것을 즐겼고 필수로 여겼다. 그런데 암기만 남고 토론은 사라졌다는 것이 갑자기 씁쓸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라면 어느 경우에나 부합하는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려고 애썼을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성리학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경우에 따라서 대응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상황적 또는 상대적인 해법을 강구했다.>>

 

서양의 고대철학이 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았던 것은 아니다.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을 좋아하는 학파가 있는가 하면 세상의 이치와 근본을 탐구하는 학파도 있었다. 이러한 학파는 형이상학적일 수 밖에 없다. 서양의 고대철학에서 다양한 갈래가 생겨나고 자연과학철학이 형이상학철학 못지않게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동아시아의 학자들이 형이상학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기준없이 두루뭉술했던 것도 아니었다. 비록 유교 성리학 이라는 학문이 비대하게 발달하긴 했으나 서양과 동양을 단순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 객관적이다 상대적이다 라는 표현은 대표성을 배제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실록의 기록이라고 해서 반드시 믿을 만한 것은 아니다. 기록은 주관적이다. 기록자의 구구한 변명 또는 자기합리화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사가는 한시도 기록을 떠날 수 없으나, 기록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과 왕의 일기인 일성록을 많이 참고하고 있다. 같은 자료에서 다양한 자원을 발굴해 여러 책을 써온 저자로서의 마인드는 좋은 것 같다.


[중용]이 조선에 수용된 것은 14게 말 이라고 한다. 15세기부터는 선비들의 필수서적으로 자리 잡았고, 이후 이 책은 조선 사회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때마다 중요한 처방전을 제공하며 세상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저자는 태종부터 정조사이의 왕과 학자들을 언급하고 있다. [중용]이 중심에 있던 사회를 다루다 보니 그리 된 것이겠지만,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정조 이후의 조선시대가 더 궁금하다. 정조 이후 학자들은 대체 어느 학문을 숭상했기에 그리 되었던 건가 싶어서....


<<16세기 후반 조선의 선비들은 [중용]을 통해 큰 용기를 얻었다. 조광조 일파의 정치적 실패로 인해 정지,사회적 전망은 어두웠다. 많은 선비들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이때 [중용]에 담긴 희망의 메시지, 곧 '나 한사람의 도덕성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이 책의 주장은 선비들의 가슴에 희망의 불씨와도 같았다. 이제 그들은 추악한 정치,사회적 현실 앞에서도 결코 초라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정신적 자양분을 얻었다.>>


아쉽다. 본인만의 자아성찰에 머무르게 한 그 희망이 조선시대 학자들에게 시대적 실천의 의무에서 떠날수 있는 자유를 준것 같아서...


<<17세기 전반, 조선의 선비들도 형이상학적 사유의 한계를 조금씩 실감했다. 그들이 제아무리 형이상학적 연구에 매달려도 현실은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선비들은 이제까지외는 다른 길을 모색했다. 당장에 김장생의 경우만 해도 그러했다. 그는 예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제창했다.>>


안타깝다. 형이상학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실천지침을 예학에서 찾다니... 예학은 추후 궁내법도에 대해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네마네 초상을 몇년 치러야하네마네 하는 당쟁으로 그 학문의 한계를 드러낸다... 제사를 4대(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까지 지내는 것도 여기 기원을 둔다.


<<17~18세기 조선에는 한 가지 끔찍한 사회문화적 현상이 나타났다. 선비를 '사문난적'이라 손가락질하며 배척하는 사건이었다. 누가 사문난적인가. '사문'은 유교적 질서요, 이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난적'이었다. 그때는 주희를 비판하는 사람이 사문난적으로 몰렸다.

조선 건국 이래 대궐에서는 왕세자를 위한 서연과 국왕을 위한 경연이 수백년 동안 지속되었다. 세월이 흐르자 조선의 왕은 성리학의 믿음직한 수호자로서 선비들의 학문적 논쟁에 대해서도 정확하고 단호한 판결을 내리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국왕은 자신의 위엄을 세우고 권력을 강화할 수도 있었으니, 그가 재판관의 역할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왕이 학문에 공을 들여 경지에 이른 후 신하들에게 학문적 재판관 역할을 했던 시기는 별로 없다. 당쟁을 이용해서 왕의 정치력을 높였던 시기도 길지 않다. 한가지 학문에 집중했던 폐쇄성은 결국 서로의 정적들을 제거하는 권력다툼의 도구가 됐을 뿐이었다. 당시의 학자들은 정치투쟁과 경전해석을 별개의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가치관의 다원성을 인정하기가 불가능한 선비들이 되어있었다. [중용]의 대가 라는 사람들이 [중용]에 반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아이러니


물론 주류가 우물안의 개구리들이 되었다고 해서 모두가 다 그랬던 것은 아니다. 꾸준히 자신만의 해석과 세상에의 적용을 위해 용기있게 목소리를 내는 학자들도 있었다. 다만 항상 소수였다는 것이...


<<천주교 서적의 전래를 계기로, 조선의 선비들은 초자연적 존재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18세기의 실학자들은 사물에 관해 실증적이고 비판적인 연구방법을 창안했다. 적당한 여건만 갖춰졌다면 그들은 한국의 역사적 운명을 새롭게 개척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역사에 만일은 없다지만, 실학자들의 연구가 좀더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조이후 왕권이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이후에 그렇게 빨리 일본에게 침략당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가정들은 늘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학문을 할 때는 반드시 의심을 품어야 한다. 의심이 없으면 배워도 굳건하지 못하다. 내가 말하는 의심이란 쓸데없이 믿지 않거나 우물쭈물하면서 우유부단하게 구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이러저러해서 옳은 줄을 알면, 반대로 이러저러해서 잘못된 점이 있는 것도 함께 살펴야 한다. 이것이 보고 아는 것이다. 만일 그런 방법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틀린 것을 옳다고 주장해도 나는 대응할 길이 없다.>>

 

저자가 인용한 이익의 글이다. 대학자로서 [중용]을 새로 해석하고 책을 편찬한 깨어있는 지식인의 말은 지금도 의미가 고스란히 다가온다. 나는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는 아니지만, 책을 읽을 때도 가져야 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중용]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읽었지만, [중용]이 어떤 책인지 알려주는 책은 아니었지만, 조선시대 학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학문을 탐구했고 중요하게 여겼던 생각들이 무엇이었는지 그들의 생각이 시대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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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나누었던 순간들
장자자 지음, 정세경 옮김 / 도도(도서출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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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1천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장자자의 최신작

깊은 밤의 이야기꾼 장자자가 들려주는 사랑과 이별에 관한 긴 이야기

원벤진 작은 가게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작은 반짝임>>

학창시절 세계고전문학을 읽고 소설을 꽤 읽었어도 중국소설은 없었던 것 같다. 하긴 세계고전문학에서 세계는 서양과 동의어이긴 하다.

'사람아 아 사람아' 가 기억나는 첫 중국소설이었다. 읽을때 혁명소설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게 이 작품은 그냥 소설일 순 없었다. 그런데 한 방송에서 오상진씨가 아내와 연애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이 책이라고 해서 놀랐었다. 지금은 아내가 된 김소영씨가 추천해주어서 읽게 된 책이었는데 이후로 가까워졌다고... 젊은 세대가 아직 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었고,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했다.

판타지와 SF를 좋아하는 편이라 읽가보니 류츠신의 단편집을 읽게 됐었는데, 과연 떠오르는 SF계의 샛별 다웠다. SF가 아니라 과학소설이라고 따로 불러야할 만큼 탄탄한 기반을 갖춘 작품세계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읽고 나니 과거의 중국소설과 미래의 중국소설을 읽었는데 가운데가 뻥 뚫렸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 그 한가운데를 메꿔줄 작품으로 이 소설을 만났다. 이 소설은 현대의 중국소설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신의 고향은 훗날 하나의 점이 된다고 한다. 언제까지나 한자리를 지키는 외로운 섬처럼 말이다.>>

 

류스산은 작은 산속마을에 사는 소년이다. 작은 가게를 하는 외할머니와 함께 산다. 외할머니는 평생 그 가게를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소년은 늘 도시로 나가는 것을 꿈꾸었다. 하지만 소년에게 고향이 어떤 의미로 자리잡을 지 열살 그때는 알지 못했다.


 

<<"할머니, 하늘은 왜 저렇게 높아?"

"저기 저 구름들 안 보이냐? 저게 다 하늘나라 날개라 그래.">>

 

소년은 아빠가 누구인지 모른다. 엄마는 네살때 소년을 버리고 떠나서 소식이 끊겼다. 소년에겐 외할머니 뿐이었다. 궁금한 것이 생겼을때 물어볼 사람은 외할머닌 뿐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어느순간 부터 할머니에게 더이상 묻지 않았다. 엄마에 대해 물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이후로 아무것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20대의 젊은 뤄 선생은 살면서 이렇게 자율적인 생물을 본 적이 없었다. 그때 이후로 그녀는 이 열 살짜리 소년에게 경외심을 느끼면서도 이 아이의 어린 시절은 이미 끝장났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내용일지라도 작가들의 문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 소설의 작가는 의외의 곳에서 빵 웃음을 터지게 한다. 자율적인 생물이라니 ㅍㅎㅎㅎ 류스산은 독특한 소년이었다. 늘 공책에 적어둔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에만 매진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2003년 여름, 그들은 모두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어린 시절은 동화와 같았고, 이것은 그들의 동화 속 첫 번째 만남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도라에몽의 진구가 됐고, 청샹은 하늘에서 내려온 이슬이가 됐다. 하지만 뜻밖에도 청샹의 본래 역할은 '퉁퉁이' 였다.

"돈 내놔!">>

 

평화롭고 작은 시골마을에 도시여자아이가 전학을 온다. 하얗고 텔레비전 드라마 여주인공 처럼 예쁜 아이. 그런데 전학온 날부터 그 여자아이는 시골아이들을 골려 먹는다. 반전 ㅋㅋ


<<계획에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류스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시장에서 모의고사 시험지를 샀지만 문제를 풀 능력이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모든 문제를 외우는 것뿐이었다. 류스산은 공책에 '중점고등학교에 합격한다'라고 썼지만 이루지 못했고 여기에는 여러 객관적인 이유가 있었다.>>

 

모의고사 문제들을 외운다고 해서 똑같은 문제들이 시험에 나오는 게 아니다. 하물며 모의고사 문제들을 다 외우지도 못한다. 류스산의 문제해결능력은 갈수록 태산이다;;; 자율적인 생물은 너무 자율적이라 모든 문제를 혼자서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만다;;;


<<이도저도아닌 관계로 철저히 일 년을 보내며 2013년 동지가 됐고 무단은 수속을 마치고 이 작은 도시를 완전히 떠나려 했다. 왜 하필 오늘을 선택했을까? 아마도 그녀는 올해의 생일 선물로 이별을 받고 싶었으리라.

사랑을 잃을 때까지 류스산은 자신이 그리던 미래가 사실은 과거였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요즘 사람들이 어디에 잘 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공장과학소설 작가가 아니라서 자동차가 날아다니는 도시를 그릴 줄 몰랐다. 그는 생물학자가 아니라서 인체 기관이 교체될 수 있는 의료 환경을 그릴 줄 몰랐다. 그는 경제학자가 아니라서 투자 기회가 빠르게 대체되는 자본시장을 그릴 수 없었다. 그는 아는 것이 없어서 모든 사람이 만들어내는 미래 세계에서 자신의 가정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그려낼 수 없었다. 그는 열심히 미래를 약속했지만 자신이 뿌리 내리고 살았던 조그만 진의 생활을 먼 미래인 것처럼 달력만 바꿔 되풀이해서 그리고 있을 뿐이다.>>

 

류스산이 대학생활을 할때 만났던 첫사랑 무단을 그는 너무너무 사랑했다. 하지만 류스산은 도시에 떠있는 섬 같은 자아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그런 스스로에 대해 너무 몰랐다. 도시에 살고 싶어했지만 도시에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자신만 몰랐다.


<<류스산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어째서 할 수 없는 걸까. 어째서 공책에 쓰는 글들은 갈수록 멀어지는 걸까. 어째서 행복하지 않을까. 어째서 동지에는 늘 눈이 내릴까. 어째서 중요한 사람은 꼭 떠나려 할까.>>

 

류스산의 소중한 공책에 써있던 다짐들은 점점 의미가 없어져 간다. 점점 실행되는 것들이 실행할 수 있는 것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류스산은 기억나지 않은 엄마와의 이별도 첫사랑과의 이별도 받아들이는데 오래 걸렸다. 너무너무너무너무 오~래 걸렸다.


<<십 년이 흐른 어느 날, 류스산과 청샹은 다시 만났다.>>

중국판 '소나기' 일 뻔했던 인연은 대학생이 되서 다이 이어진다. 류스산은 그것이 우연인줄 알았다.


<<그는 다른 어떤 남자보다 눈물이 많았다. 즈거도 그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스산, 너 그렇게 울면 부끄럽지 않아?" 하지만 류스산은 즈거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뭔가를 받아들이지 못해 울지만 그는 모든 아픔을 받아들일 수 있어 우는 것이며 눈물은 그러기 위해 장단을 맞추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류스산은 어렸을 때부터 잘 우는 아이였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라는 것을 울 수 있을 때는 몰랐다.


<<류스산은 본래 나약한 인간이었다. 어렸을 때 누가 길에서 싸우고 있으면 맞고 있는 사람이 가장 친한 친구인 니우따텐이라 해도 못 본 척하고 지나갔다. 어른이 된 뒤에도 사과할 수 있으면 사과하고, 굴러야 되면 굴렀다. 그는 무단과 2년을 사귀면서도 물어봐야 할 것조차 물어보지 못했으며 가장 용감했던 때가 바로 어제와 오늘이었다. 이렇게 나약한 자신이 비틀거리다 진흙탕에 자빠져 상고머리 남자에게 두들겨 맞고 있으니 류스산은 분노를 느끼기보다는 마음이 아렸다.>>

류스산은 잘 울고 나약한 남자다. 첫사랑이 떠날때도 울고 그녀가 만났던 진짜 애인에게 얻어터지는 순간에도 분노보단 슬픔이 먼저이고 어렸을때의 정말 첫사랑이 다시 찾아와도 누군지 모르는 멍청한 남자다. 하지만 빗속에서 얻어터지는 류스산에게 두 여자는 서로 우산을 씌어주려 한다.


<<대학생활 내내 류스산은 그의 강의를 들으며 열심히 필기했지만 배먼 F학점을 받았다. 그런 류스산을 보며 교수는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다는 옛말이 무슨 뜻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겨우겨우 지방대학에 갔지만 너무도 성실하게 공부했지만 F학점을 받는 류스산. 교수에게 썩은 나무로 여겨지는 줄도 모르고 사정사정해서 겨우 졸업을 하지만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 대학졸업장은.


<<"류스산 파이팅!" 굳이 고개를 들어 확인하지 않아도 그는 그 누군가가 청샹이란 걸 알았다. 참 무서운 아이였다. 남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할수 있든 없는 그녀는 마음대로 파이팅을 목이 터져라 외치지 않는가. 게다가 그녀는 입으로만 말하는 게 아니라 정말 상대를 질질 끌어서라도 열심히 하게 만들었다. 왠지 모르게 그녀와 함께 있으면 일상이 뒤죽박죽 되는 것 같았다>>.

십년만에 다시 만난 청샹과의 며칠은 뒤죽박죽 된 것 같았겠지만, 그 덕분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는 것을 그만 모르고 있었다. 그만.


<<그는 지금껏 파이팅하며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살아왔다. 그도 이런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으니까. 재수없고, 무능하며, 볼품없는데다 지질하게 눈물이나 흘리는 이런 인생 말이다. >>

류스산은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매순간 정말 너무너무 열심히 했다. 그런데 결국 그렇게나 되고 싶지 않았던 가장 되고 싶지 않았던 모습이 된 자신을 보게 됐다. 무능한 찌질이.


<<"류스산은 잘 울기는 해도 울수록 강해지는 놈이야" >>즈거가 청샹에게 한 이 말은 청샹이 갸우뚱 했듯이 이부분을 읽을 때는 나도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하지만... 정말!


<<"나보고 평생 사귄 친구들 버리고 도시에 가서 모르는 사람 사귀라고? 넌 어떻게 네가 가진 건 필요없다고 하고 왜 없는만 갖겠다고 하냐?" >>

도시로 가자는 외손자에게 할머니가 하는 말은 생각보다 깊이 마음에 박힌다. 이미 가진건 필요없다고 하고 없는 것만 갖겠다고 하는 철부지의 투정... 그런데 우리는 누구나 그런 젊은 시절을 보냈다.


<<2016년 초여름, 류스산은 어딘지 모를 곳에서 깨어났지만 어쩐지 고향에 돌아온 듯한 환상이 보였다. >>

환상은 무슨. 첫사랑을 못잊고 직장도 못구하고 빈털터리가 되어 술에취해있던 외손자를 할머니가 트랙터에 묶어 싣고 왔다. 고향집 그의 방에. 정말 대단한 할머니다!!! (할머니에 대한 묘사는 김수미 버전의 욕쟁이 할머니를 연상케 한다. 뚝딱뚝딱 맛난 밥상을 차려내면서 국자를 휘두르고 욕을 쏟아내는 ㅎㅎ)


<<즈거는 언젠가 류스산에게 유행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준 적이 있는데 1선 도시는 현재를 살고, 2선 도시는 거기서 3년 뒤쳐져 있으며, 그 이하의 도시는 거기서 다시 3년 더 뒤처져 있다고 했다. 또한 현에 속한 작은 진들은 적어도 그보다 3년이더 뒤쳐져 있다고, 따라서 산속 마을의 유행이 일어나면 이미 도시에선 유행이 한참 지난 뒤인 셈이다. 즈거는 우울한 목소리로 이는 드넓은 우주와 같아 내가 보는 찬란한 별들이 마음을 사로잡지만 사실 그 별은 무수한 광년을 넘어온 것으로, 자신이 볼 때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뒤 일 수도 있다고, 그래서 즈거는 무수한 광년의 빛을 거슬러 올라 1선 도시에서 성공하고 싶다고, 꿋꿋하게 말했다.>>

중국은 도시에 등급이 있나보다. 시골마을 청년들은 3선도시에 나가서 2선도시로 진출해 1선도시에 살고 싶지만... 별빛이 과거의 빛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뒤쳐진 유행처럼 읽고 나니 별빛이 감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시골에서 도시로의 상경... 그 의미와 기분을 우리도 모르지 않는다.


<<류스산은 어렴풋이 무단과 2년에 걸친 동지가 떠올랐다. 그는 무단에게 밤이면 어디를 가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었고, 그녀에게 들려줄 노래와 기타를 배울 수도 있었으며, 무단이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사실 기다리는 일에만 자신의 모든 힘을 썼다.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상대가 떠나기를 기다린 걸까 아니면 스스로 포기하기를 기다린 걸까?>>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류스산. 엄마를 기다리고 사랑을 기다리는 류스산은 자신의 노력이 기다림 뿐이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거지? 이 멍충이.


<<두 사람과 류스산은 달랐다. 그는 슬품의 침묵이었지만 두 사람은 고집의 침묵이었다. 슬픔의 침묵은 시간이 깨주며 두 줄기 강물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한다. 반면 고집의 침묵은 스스로 깨야 하며 그들의 고집으로 인해 강물이 마를지라도 가로막힌 둑을 무너뜨리겠다는 뜻이다.>>

친구의 커플을 보며 자신의 사랑했던 모습을 생각해보는 류스산. 그의 사람은 한방향으로 결코 모아질 수 없었던 것임을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 서서히 깨닫는 류스산.


고향에 돌아와서 보내는 시간들을 <<류스산은 인생을 좀먹고 있다고 느꼈지만 청샹은 이것이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말했다. >>고향에서 다시 만난 청샹은 여전히 에너자이저 였지만 한번도 그의 곁을 떠난적이 없었다. 그걸 그만 모른다. 아름다운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처럼.


<<멍하니 청샹을 보고 있던 류스산은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린 시절 만났던 여자아이는 그의 자전거 뒤에 타고 작음 얼굴을 그의 등에 기댄 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신은 곧 죽는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제 어른이 됐고 여자아이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밤의 반딧불이가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 하며 날아다니는 것처럼 언제 어둠 속으로 사라져 영원히 보이지 않게 될 지 알 수 없었다.>>

중국판 '소나기' 여주인공은 도라에몽의 퉁퉁이였지만, 여전히 반딧불이였다.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류스산은 어떻게든 안간힘을 쓰며 기어코 산을 올라야 했다. 이런 고된 산행은 그의 인생과 꼭 닮은 것 같았다. 이를 악무는 것도 이미 소용이 없고 쓰러져 죽지 않으며 그렇다고 위로 오를 수도 없는, 스스로 파이팅을 외치며 한 걸음을 옮기는 데에 온힘을 다해야 하는 그의 인생 말이다.>>

류스산의 인생은 열심히 살았지만 열심히 산 인생이 아니었고, 류스산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으며, 류스산이 가졌던 꿈은 꿈일 뿐이었고, 류스산이 하찮게 생각했던 것은 결국 제일 소중한 것이었다. 그걸 아주 힘들게 천천히 깨닫는다. 하지만 멍청할 만큼 순박하고 답답할 만큼 진중한 어설픈 류스산은 겨우 스물네살의 청년이었다. 인생이라는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 빠진 청춘이었다.


소설을 읽으며 이런저런 작품들이 떠올랐다. 어린시절의 에피소드는 '소나기' 가 떠올랐고, 찌질한 사랑은 '사랑의 사막' 이 떠올랐고, 돌아온 고향에서의 일상은 '리틀 포레스트' 와 '고령화 가족' 의 장면들이 혼합되어 떠올랐다. 특히나, 할머니가 해주시는 요리들이 자주 비교적 상세하게 표현될 따마다 그 밥상을 가족이 아닌 식구로 함께 하여 가족의 느낌을 충족시킬 때마다, '리틀 포레스트'의 계절 밥상과 '고령화 가족'에서 윤여정의 끊임없는 밥상 장면이 이 소설의 정서와 굉장히 친밀하게 닿아 있었다. 그런데 그게 나름 잘 어울렸다.


이 소설은 청춘의 성장기 일수도 있고, 한결같은 사랑의 로맨스 일수도 있고,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느끼게 하는 가족소설 일수도 있다. 답답할 만큼 무능해 보이는 청년의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며 한결같은 사랑을 표현하는 아가씨를 보며 동네떠도는 아이까지 거두는 할머니의 밥상을 보며, 때론 화도 났다가 때론 슬프기도 했다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키득키득 웃으며 읽게 되는 이 책은 다 읽고 나서야 한결 편안해진 마음을 느끼게 된다. 모든 소설이 어느 나이에 읽느냐에 따라 다르게 읽혀질 테지만, 청춘을 지나온 내가 읽은 후엔 그땐 그랬지..하며 미소짖게 되는 소설이다. 청년에겐 공감을 장년에겐 아련함을 노년에겐 애잔함을 안겨줄 소설이었다. 중국할머니의 따듯한 고향집 밥상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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