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요리노트 -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요리사였다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지음, 김현철 옮김 / 노마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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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요리사였다고?

요리와 사랑에 빠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은밀한 취미

레오나르도 다빈치 하면 천재화가이자 조각가, 창의적인 다양한 도구들의 설계도를 남긴 사람​, 자신의 창작물을 다른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 못하도록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씨도 반대로 써서 거울에 비춰야만 알아볼 수 있는 거울체를 쓴 사람, 당시 최신기법인 유화를 시도해본 사람( 동시대의 후배 작가인 미켈란젤로는 죽을 때까지 유화를 인정하지도, 시도하지도 않았다 ) 등 참신하고 창의적인 천재의 대가 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수염이 길게 덥수룩하게 난 잘생긴 초상과,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의 그림과 비스테리우스의 인체도 같은 해부학적 인체그림과 비행기나 기구 같은 그 당시엔 상상조차 힘들었던 물건들을 상상하고 그렸던 설계도 등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 정도의 다양한 분야의 활동으로도 모자라서 요리사였다는 얘기는 정말 생소했다.

표지에 있는 문구가 저절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요리사였다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유명세에 비해 남긴 작품이 많지 않다. 언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를 빌 게이츠가 엄청 비싸게 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작품보다도 노트를 많이 남겻던 인물이었다. 끊임없이 메모하고 남기고 기록하는 그의 노트가 제대로만 전해졌어도 엄청난 아이디어의 보고가 될 수 있었을텐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요리에 대해 쓴 짤막한 글들을 [코덱스 로마노프] 라는 소책자에 모아두었고, 이 노트는 그가 접할 수 있었던 요리 중에서 특별히 관심이 가는 요리를 최대한 많이 다루고 있는 책이라고 한다. 요리를 직접 한 것은 아니나, 요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주방, 조리기구, 요리방법 등에 엄청난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 노트를 작성할 당시 그는 스포르차 가문의 궁정 연회담당자로서 부잣집 요리라면 유감없이 음미할 수 잇는 위치에 있었다. 그는 피렌체에서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졌으나 다른 분야에 더 관심이 많았고 후배화가인 보티첼리와 식당을 차렸다가 망하기도 했으며 스스로에 대한 추천장을 써서 밀라노 대공에게 보냄으로써 스포르차 가문에 입성하게 된다. 이 노트는 그가 밀라노 궁정에 있으면서 기록한 요리노트 이다.


책속에는 별별 희한한 요리들이 나온다. 그 당시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먹었나 의심이 갈 정도로 희한하다. 식재료를 다루는 방법부터 먹는 식습관까지 희한하다. 스파게티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만들었고, 냅킨도 그랬다.


책에서 묘사되는 식사문화가 너무 더러워서 찾아보니, 포크는 고대부터 사용하던 도구였는데 중세시대엔 악마의 삼지창과 닮았다 해서 포크를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음식을 손으로 먹고 잘 닦지 않는 비위생적인 식습관을 너무 싫어해서 냅킨과 포크를 생각해냈으나 활용되지 못했다. 암흑시대라고 불리는 중세시대는 식탁문화조차 암흑이었다.


식재료나 조리법 등 다 생소했지만, 상추를 먹으면 잠이 잘 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보면 아주 이상한 것 같진 않기도 하다. 작은 호두를 까거나 마늘을 빻기 위해 엄청난 기계를 만든 것을 보면 웃음이 나기도 한다. 심지어 조리보조도구로 만든것이 나중에 전쟁무기로 사용됐을 정도다.


책 앞 쪽에 번역자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모습을 알려주고, 최후의 만찬에 대한 비화를 설명해준 뒤에 이어지는 부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요리노트를 그대로 옮긴 것이라 온갖 요리들이 나온다. 요리에 대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열정과 암흑시대를 천재가 어떻게 지냈는지 알게된 점은 신선했지만, 그가 기록한 요리들은 여전히 이상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요리사였다는 것만큼이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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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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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를 벗겨 내면 뭐가 남겠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남지"

동시에 두 장소에서 목격된 용의자, 진짜 범인은 누구인가?

참혹한 사건의 이면에 도사린 어둠을 향해 질주하는 추적극

이야기의 제왕 스티븐 킹 최신 장편, 굿리즈 선정 올해의 미스터리 스릴러, 아웃사이더

스릴러 소설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스티븐 킹 의 최신 장편 소설이다.

여름이라서인지 스릴러 소설 신작이 여럿 눈에 띈다.


신예작가 엘리자베스 노어백의 스릴러 [마더앤마더] 도 읽고, 탄탄한 중견작가 데이비드 발다치의 [폴른:저주받은 자들의 도시] 도 읽고, 스티븐 킹 과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지는 딘 쿤츠의 [사일런트 코너] 도 읽고 다시말해, 스릴러 소설의 신작들을 꽤 읽었는데도 스티븐 킹의 [아웃사이더] 는 허를 찔리는 듯한 기분의 소설이었다.


범죄스릴러 이니만큼 소설은 살인사건으로 시작한다.

말로 형언할 수 없도록 참혹한 현장의 어린소년 성폭행살인사건


용의자는 인생의 하이라이트로 기억됐을 법한 순간의 장면들 중 한 장면에서 체포된다. 수많은 인파속에서 수많은 시선속에서.

용의자는 한 가정의 충실한 가장이었고, 성실한 지역봉사자였으며, 마을 주민들 모두의 다정한 친구였다.

형사는 확실한 용의자라고 생각하고 체포했는데, 용의자에겐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용의자가 동시에 두 장소에 나타난 기이한 사건


그러나 용의자는 자신이 왜 용의자가 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짧은 시간후에 살해당한다.

여기서 처음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대부분, 사건이 일어나고 용의자가 생기고 형사가 잡고 알리바이가 있을때, 두 사람간의 증거확인전이 벌어지고 두 가지의 가설로 사건이 재구성되면서 누가 범인인지 좁혀가는 추리를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한창 사건을 밝혀나가려던 때 용의자가 죽어버린다. 헉


살해당한 소년의 가정은 그 사건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하게 불행하다. 대부분 피해자 가족의 불행은 이 정도에서 그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가정은 불행을 끝까지 몰고 간다. 불행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상황의 끝까지. 이 또한 기존의 해결방식을 벗어난 느낌이다. 헐


용의자의 가족은 행복의 절정의 순간에 불행의 끝을 경험한다.

충분히 더 적극적으로 해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질 않는다. 때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왜 그러는지 답답해 미친다. 이건 미국법과 우리법이 달라서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러기엔 용의자도 그의 가족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는 것이 뭔가 특별한 밑밥을 던져놓은 거 같은 느낌인데 그게 뭔지 아리송해서 궁금해 미친다. 커헉


단 몇 분 만에 그의 인생이 어떻게 통째로 뒤집힐 수 있는지 파악하려고 애를 쓰는, 어둠의 골짜기가 가장 깊은 이 시각에도 그 사실만큼은 믿어 의심치않았다. 하지만 모든 똥이 다 지워 없어지지는 않으리라는 점도 알았다. ...석방될 것이다. 하지만 ... 그의 이력은 끝났을 수 있었다..... 시민들이 보기에 그는 살인범으로 체포된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그를 두고 사람들은 영원히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느냐' 고 수군댈 것이었다.

기소는 기각될거에요 - 확실해요? - 확실해요. 합당하게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을 하나만이라도 찾으려고 애를 써야 하는 사건도 있거든요. 그런데 이건 의혹투성이에요. 기소가 성립될 리 없어요 - 제 말은 그게 아니에요. 사람들 생각이  바뀌는 거 확실하냐고요


용의자도 그의 아내도 알고 있었다. 짐작하고 있었다. 용의자가 된 것 만으로도 이후의 삶이 통째로 날아가버렸다는 것을. 그런데 왜 수습을 하지 않는건지 그 이유가 1권에는 나오지 않는다. 2권을 바로 읽어야 하는데 으윽 ㅠㅠ


사건이 기이한 만큼 기인한 존재가 나타난다. 현실  혹은 꿈속에

이목구비가 엉성하고 눈 대신 빨대를 달고 있거나, 화상을 입은 얼굴에 티셔츠를 뒤집어 쓰고 있거나, 뭔가 초현실적인 존재.

이 초현실적인 존재는 용의자와 똑닮았고 심지어 DNA가 같다. 이 존재는 무엇일까?


열흘 남짓한 시간 동안 두 가정이 파탄났고 한 도시는 흉흉해졌고

급발진 자동차 같은 속도로 용의자를 검거했던 형사는 처박힌 자동차를 빼내지도 못한체 휴직을 당했다. 자동차덩치만큼 커다란 의문들만 남긴체.

확신을 의심으로 바꾼 수많은 의문투성이를 뒤늦게 받아들인 상태로 형사는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천천히 너~무 천~천~히 물음표를 현실화하려고 시도할때 1권이 끝난다. 아아아아아악 궁금해 @.@

겉보기에는 멀쩡했던 캔털루프 멜론 안에서 꿈틀거렸던 구더기들에 대해, 어떤 사람이 초자연적인 현상일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 더는 자신의 정신 상태를 완벽하게 믿을 수 없을 것에 대해, 자신의 정신 상태를 의식하는 건 좋은 현상이 아닐지 모르는 것에 대해, 그건 심장박동을 의식하는 것과 같았다. 그 지경에 이르면 이미 문제가 생긴 것일 수 있었다.

용의자가 범인이라 확신했던 형사에게 자신의 정신상태에 의심을 가져야 할 정도로 이상한 증거과 정황들이 나오면서 끝난 1권의 뒤를 빨리 이어 읽어야 할텐데... 안그러면 궁금하다못해 내 정신상태에 문제가 생기는건 아닐런지 ㅍㅎㅎ

1권의 진행속도가 더딘만큼 2권의 진행속도는 스피드있고 반전에 반전이 있을 듯한데... 2권을 쌓아놓고 읽지 않았음을 땅을 치며 후회한다. 빨리 2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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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여름 - 남극에서 펭귄을 쫓는 어느 동물행동학자의 일기
이원영 지음 / 생각의힘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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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서 펭귄을 쫒는 어느 동물행동학자의 일기

성실한 여름을 보내는 펭귄과 부지런히 기록하는 동물행동학자가 남극에서 맞닿은 순간들

​우리는 결국 다른 존재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이 책은 남극에서 지낸 하루하루를 기록한 이야기지만, 동시에 펭귄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은 관찰일기이기도 하다. 펭귄이 알을 깨고 나와 혼자 살 수 있을 때까지 성장하는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싶었다."

저자는 극지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동물행동학자이다. 여름엔 북극, 겨울엔 남극을 오가며 펭귄을 비롯한 동물의 행동 생태를 연구한다. 한국에선 한겨울인 12월,1월이 남극에선 여름이다. 지금 여름인 한국에서 남극의 얼음대륙을 생각하며 읽다보면 조금은 시원해진 기분도 들고, 애정어린 눈길로 펭귄을 관찰한 저자의 글들을 읽다보면 마음이 따듯해지기도 한다. 


아무나 갈 수 없는 극지방 남극, 한여름의 최고기온이래야 영상 2도 안팎인 영하의 땅, 그곳에 세종기지가 있고 펭귄마을이 있다. 펭귄과 함께 보낸 43일의 기록은 짧다면 짧을수도 있지만 펭귄이 알에서 깨어나 둥지를 나오고 성채로 자라기까지 충분한 시간이라고 한다. 남극의 여름이라고 해도 만만하게 볼 수 없는 것이 수시로 '블리자드' 라고 불리는 강한 눈보라가 분다고 한다. 12시간의 시차가 있는 남극에서 인터넷도 끊기고 핸드폰도 안터지는 곳에서 오롯이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은 우리가 수시로 흘려보내는 일상의 시간들보다 몇갑절 길게 느껴질까 몇갑절 짧게 느껴질까...


창문 밖으로 펭귄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라면을 먹었다. 대피소 안에서도 펭귄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풍경이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텔레비전으로 펭귄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매년 남극에서 펭귄을 보는 저자도 창문밖 펭귄이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시간이라면 길건 짧건 꿈같은 시간이 아닐까?ㅎㅎ


동물행동학자인만큼 동물에 대한 기본자세가 남달랐다.

물론 현재 사용하는 장비와 연구 방법은 동물 윤리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이고, 이에 따라 전 세계의 펭귄 연구자들이 공유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수백 마리의 펭귄에게 괜찮았어도 1마리의 펭귄에겐 괜찮지 않았을 수 있다. 깃털에 붙은 이물질이 펭귄의 행동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좋아해서 시작하게 된 연구지만, 과학적 목적을 위해 동물을 괴롭혔다는 사실이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동물 윤리의 핵심은 대상 동물의 관점에서 고통을 느끼는지의 여부다.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방법이 우선시되어야 하며, 만약 고통을 준다면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

연구를 위해 작은 기계장치를 조심스럽게 펭귄깃털에 붙이고 나서 돌아오지 않은 한마리 때문에 잠을 설치는 저자를 보며 동물학자들이 다 이정도의 마음만 가진다면 참 좋겠다 싶었다. 펭귄마을에 갈때마다 그들에게 스트레스를 줄까봐 발소리를 죽이고 말소리를 삼가해가며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관찰하는 동안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펭귄들의 분변을 몸으로 받아내며 애정어린 눈길로 펭귄을 아끼는 마음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남극에서 온난화를 목격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 앞서와 같은 주장을 접하면 당혹스럽다. 때로는 무력감도 느낀다. 기후는 실제로 변하고 있고, 남극의 생태계는 그 결과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매년 빙하가 수십미터씩 줄어들고 있음을 직접 볼 수 있는 연구자이다. 기후변화는 몇몇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전지구적인 문제인데, 지구온난화를 부정하고 기후협정을 탈퇴하는 선진국들에 대한 심정이 무척 답답할 것이다. 그래도 작은 힘을 모아 일단 뭐라도 시작해서 사회적으로 연대하고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얻어 협력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도 작은 마음이나마 보태본다.


극지방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매일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내다보면, 더구나 연구가 마음처럼 잘 안되기라도 하면 더욱 지금 뭐하고 있나 싶을 때가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생활이 지겹고 괴로울 수도 있을 테지만, 반복되는 삶 속에서 참고 기다렸을 때에야 비로소 찾을 수 있는 의미도 있다 는 것또한 배운다. 남극에서. 펭귄들에게서.

저자가 관찰한 펭귄가족이 있었다. 부부사이에 아기펭귄 두마리. 그러던 어느날 아기펭귄이 한마리만 남은 것을 보았다. 원인은 모르지만 죽은 아기펭귄을 보며 저자는 고민한다. 속으로 이름까지 붙여주고 다른 펭귄가족들보다 더 애정을 갖고 관찰하던 아기펭귄이었기때문에 마음은 무덤이라도 만들어 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대로 지나간다.

사체는 결국 도둑갈매기에게 먹히고 있었다. 늘 겪는 일이지만 날카로운 부리에 찢기는 모습은 차마 보기가 힘들다. 내가 개입해도 될까. 구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그대로 두는 것이 옳을까? 도둑갈매기를 쫒아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대로 지켜보기로 했다.

자연은 자연그대로 둘때가 가장 자연스러운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관찰일기이다 보니 시간순서대로 차분히 아기펭귄의 성장을 지켜보는 느낌이었는데, 번외로 붙여진 이야기들에서 흥미로운 에피소드들도 있었다. 펭귄사회에서 동성애 라던가, 4일간 바다에서 쉬지 않고 헤엄을 치는 동안 어떻게 잠을 안 잘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 같은 것들...


아기펭귄이 거의 성채크기로 자랐을 때 남극의 여름은 끝나가고 있었다. 그때 펭귄들은 깃갈이를 한다고 한다.

펭귄에게 깃은 일종의 방수복인데 늘 이 방수복을 입은 채로 생활하기 때문에 헤져서 기능을 제대로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펭귄은 1년에 한 번씩 깃갈이를 하며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깃갈이는 보통 2~3주 정도 걸리며 이 기간 동안 펭귄은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 육지게 가만히 서서 깃털이 새로 나기만을 기다린다. 바다에 나가지 않으면 사냥을 할 수 없으므로 자동적으로 단식에 들어가는  셈이다. 깃갈이를 하는 동안 펭귄은 영양 공급이 끊긴 상태를 참아내며 체내에 축적된 지방과 단백질로 몸 상태를 유지하고 깃털을 만들어야 한다.

어린 펭귄은 깃갈이를 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부모에게서 먹이를 받아 먹었다. 그래서 부모펭귄은 새끼의 깃갈이가 끝난 뒤에야 자신의 깃갈이를 시작한다. 자식에게 밥을 먹이고 옷도 다 갈아 입힌 뒤에 자기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자연은 늘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 알게되도 감동적인 것 같다.


부부펭귄이 번갈아 가며 알을 품느라 선채로 며칠씩 보내고, 부부가 번갈아 가며 사냥을 다녀와서 새끼에게 먹이를 주고, 덩치가 부모만큼 커진 새끼의 마지막 옷입기까지 돌봐주고 나서야 펭귄부부의 여름은 끝난다. 이 여름은 매년 오고 펭귄들은 매년 새끼들을 키워낸다. 그런데 빙하가 녹고 먹이가 줄고 온도가 올라가는 것은 펭귄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었다. 펭귄들이 살지 못하는 환경이 인간이 살기 좋은 환경이 된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자연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펭귄들이 펭귄들의 땅에서 건강하게 잘 살아갈때 인간들은 인간들의 땅에서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환경보호가 지구온난화해결이 좀더 속도를 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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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른 : 저주받은 자들의 도시 스토리콜렉터 74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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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치명적 변화를 맞게 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의 숨가쁜 대활약!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그 네번째 이야기

​계절마다 주로 유행하는 장르가 있는 걸까? 여름이라 그런지 스릴러, 범죄물이 자주 눈에 띈다.

날씨가 더워도 심장 쫄깃한 소설을 읽다보면 시원하다기 보다는 서늘한 그 느낌이 좋으니 어쩌면 당연히 여름에 인기가 높은 장르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범죄소설이다.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라고 하는데 앞 작품들을 읽지 않았어도 아무 문제 없이 읽히는 독립적 내용이다.

주인공이 동일할뿐, 그 주인공이 사건을 처리할 때마다 작품 하나씩 나오는 셈이라서.


전작들을 읽지 않은 독자들이 읽기에 무리가 없도록 앞 부분의 몇 장에서 인물소개와 배경안내를 미리 해준다. 친절하다. ㅎ

주인공은 데커. 에이먼스 데커다. FBI 준요원이고 키198센티에 체중130킬로그램이 넘는 전직 프로 미식축구선수이자 전직 형사였다. 선수활동시 경기도중 뇌를 다쳐 과잉기억증후군을 갖게 된 그는 그야말로 완벽한 기억력을 갖게 되었다. 아내와 딸을 살인사건으로 잃었으며 범인들을 잡아넣었지만 이후로 살인사건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냥 살해당해도 되는 사람은 없기에.

배경은 배런빌 이라는 소도시. 오하이오주 경계선 근처에 있으며 배런빌이란 이름은 광산을 채굴하고 제분소를 지어 도시를 일으킨 배런 가문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한때의 번영은 쇠락한지 오래이고 지금은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배런가문을 욕하며 도시의 번영을 유지하지 못한 책임을 한 가문을 저주하는 것으로 무너져있는 상태다.


데커와 동료 요원 재미슨은 휴가로 재미슨의 언니네 집에 내려와 있는 중이었다. 재미슨의 언니 앰버에겐 조이라는 다섯살 딸이 있는데, 데커에게 열살도 안되어 죽은 딸 몰리를 생각나게 하는 정서적 교감의 존재다. 그런데 옆집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알고보니 이 사건은 벌써 3번째의 살인사건이었고, 살해당한 사람이 여섯명. 사건을 파헤치던 중 앰버의 남편이 살해당하고 조이의 안전이 위협 받는다. 범인을 추적하는 데커와 재미슨은 죽을 뻔한 사고도 당하고 그 사고로 데커가 머리를 다쳐서 완벽한 기억력에 처음으로 문제가 생긴다. 범인은 누구일까? 왜 그들을 죽였을까?


배런빌에 배런가문의 마지막 후손 배런4세가 혼자 살고 있다. 허물어져 가는 장원의 가운데 도시를 내려다보는 쓰러져가는 대저택에서 혼자 사는 존 배런. 마을 사람들에게 수없이 모욕을 당하고 오해를 받으면서도 그는 마을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 살해범으로 지목된다. 그는 왜?


배런빌에 대규모의 물류센터가 들어선다. 앰버의 남편은 이 회사의 직원으로 배런빌에 발령받았다. 하지만 이사온지 얼마 안되어 죽임을 당한다. 물류센터는 쇠락한 배런빌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선망의 직장이다. 대규모의 인력채용을 하는 중이지만 배런빌 주민들은 거의 신체검사에서 탈락된다. 주민들 대부분은 마약에 중독되어 있었다. 마약의 시작은 대부분 진통제였고, 미국에선 합법적으로 처방되는 진통제로 인해 중독자가 되어 불법적인 마약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일하다가 몸을 다치고 진통제를 처방받고 중독이 되고 더 쎈 마약을 찾게 되는 악순환의 사이에는 보험사기와 마약조직이 연관되어 있다. 열집 중에 일곱집이 비어있다시피한 배런빌에선 가족의 장례식장에서도 마약을 흡입하다 911에 실려가는 경우가 나올 정도로 모두가 손쉽게 마약에 빠져있고 내일이 없는 삶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다. 이런 배런빌에 떠도는 소문중에 배런빌 가문에 전해져 내려온다는 엄청난 보물 이야기는 배런빌 가문에 대한 저주와 함께 여전히 강력하게 유효한 전설로 남아있다.


생면부지의 사이로 함께 죽은 사람들과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는 배런빌 가문과 도시의 번영을 다시 가져올 것처럼 보이는 물류센터의 연결고리는 마약이다. THE FALLEN 은 타락한, 타락할 만큼 타락한 미국의 마약중독 현실을 한 도시의 쇠락으로 압축해서 보여준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데커의 머릿속에서 맞춰지는 퍼즐 조각들은 때론 따라가기 버거울 때가 있다. 특히 이름이 헤깔렸는데, 예를 들어 에이먼스 데커를 에이먼스 라고 부르다가 데커라고 부르니 동일인물인지 바로 알아채기 힘든데, 여러명의 사람들이 다 이렇게도 불렸다가 저렇게도 불렸다가 하니 이사람이 그사람인지 헤깔려서 앞쪽을 찾아보게 되곤 했다. 희곡처럼 작품 앞에 인물별 소개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인물들의 이름이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범죄소설의 묘미는 사건의 해결을 따라가면서 독자가 사건해결의 주체가 되는 듯한 간접체험의 맛이 아닐까? 이 작품은 독자가 데커의 머릿속을 공유하며 사건을 추적해가는 재미가 충분한 책이었다. 다만, 마무리가 좀 아쉬웠는데... 마지막 몇 장은 사건의 해결을 데커의 설명으로 완성하고 있었다. 게다가 설명의 대부분은 잡힌 범인이 자백한 범죄사실들로 퍼즐이 꿰어 맞춰지는데 그 악랄한 범인이 자백은 왜 그렇게 술술 하는지;;;


저자는 1960년생으로 지금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범죄소설가 라고 한다. 변호사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스릴러와 미스터리가 버무려진 범죄소설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출간되는 작품 족족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이 소설을 읽어보니 그럴 법 하다. 촘촘이 엮어진 그물처럼 차근 차근 관계를 이어가는 사건해결은 읽는 재미가 쏠쏠 했다. 하지만 최근에 읽은 딘 쿤츠 나 예전에 읽은 스티븐 킹 의 작품들을 생각했을 때 아직 대가의 반열엔 이르지 못한 차세대 대가 같은 느낌이랄까.


헐리우드 범죄영화 생각할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 것처럼, 미국식 범죄소설을 생각할때 떠오르는 대표적 이미지들의 집합체 같은 이 작품은, 비슷해보이면서도 재미있게 보는 헐리우드 영화처럼 너무나 미국식 범죄소설이지만 여전히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이었다. 더운 여름 너무 잔인한 공포물 말고 너무 무서운 스릴러 말고 너무 현실적인 범죄 말고, 적당히 심장 쫄깃하고 적당히 서늘한데다 범죄자들을 일망타진하는 시원함까지 갖춘 이 소설 정도면 휴가용으로 딱 좋지 않을까 싶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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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듯 춤을 추듯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7
김재아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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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이 이렇게 먹먹할 수가... 

가끔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책을 손에 든채 눈을 감고 가만가만 숨을 쉬어야 하는 작품들이 있다. 이 책이 그랬다.

이 소설은 현실 로맨스도 아니고 가족의 애환을 담은 것도 아니고 인연의 안타까움을 담은 것도 아닌

SF 소설이다.

그런데 몹시 인간적이다. 아니 너무 인간적이라고 해야할까...


멀지 않은 미래인 2062년 인간의 뇌지도가 완벽히 밝혀진 때, 인간의 몸에 인공의 뇌가 합쳐진다. 그 첫 존재가 주인공이다.

전 세계 100억 인구 중에 99.5억 인구가 평생 직업 없이 살아가는 기계 자본주의 세상이고, 자율주행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세상이다.


인간의 몸에 이식되고 인간의 눈으로 처음 세상을 본 인공의 뇌는 그동안 아름다움을 숫자로 이해했던 것을 인간의 눈을 통해 새롭게 익힌다.

수술 후 처음 눈을 뜨고 거울 속의 남자를 보고 있는 인공의 뇌에게 목소리가 들린다. "너야"

아름다움은 빛이 내 눈에 닿는 순간 동시에 몸 속 신경세포들이 춤을 추는 복잡한 반응이었다. 춤을 춘다. 내 안에 것들이 온통 춤을 춘다. 몽이가 내 앞에서 춤을 추듯이


몽이는 친구다.

인공의 뇌를 만든 노아박사가 수많은 학습 마다 끝에 항상 보여주며 각인시켰던 영원한 친구, 노아박사의 딸.

몽이는 기분을 춤으로 표현한다. 뭐라고 이름 지을 수 없는 춤을 춘다. 이건 기계가 따라할 수 없을 거야 라며 막춤을 춘다. 외계의 생명체를 찾는다. 외로움을 느끼지만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다. 몽이는 살아있다. 늘.


인간의 몸에 이식되고 '사륜 익스페리움' 이름을 갖게 된 30세의 청년의 몸을 가진 인공뇌는 생각한다.

우리는 기막힌 동거를 할 것이다. 박서로는 나 이니까, 내가 박서로이니까. 인간은 기계가 되고, 기계는 인간이 된다.


인공뇌는 인간의 몸을 적응하며 바람을 갖는다. 인간이 된다는 것, 인간으로 느낀다는 것에 대해... 하지만

다른 차이는 꿈이었다. 감각은 앞으로 기계가 따라잡을 가능성도 있다. 기계에게 유난히 어려운 냄새, 맛마저도 인간의 후각과 미각에 맞게 교정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더 예민한 감각이 되어 인간을 추월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인공뇌가 발달해도 내가 잠들 수 있어도, 꿈을 꿀 수는 없었다.


인간의 몸을 가졌고 인간처럼 되고  싶은 바람을 가졌고 인간처럼 생각하지만 꿈을 꿀 수 없는 인공의 뇌는 우울증을 겪는다. 우울증을 겪는 AI라니... 노아박사조차 놀라며 말한다. '신기해라, 너는 한마디로 정신장애를 겪고 있는 AI구나' 완벽한 인공지능이라 불리는 AI가 너무나 인간과 동일한 뇌를 가져서 비인간적인 인공뇌가 정신장애를 겪는다니... 이렇게까지 인간과 비슷한 인공의 존재를 완벽하다 해야할지 인간적이다 해야할지...


사륜 이라는 성인남자로 처음 집에 가던 날, 그는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어딘가 부작용 같은 눈물이 흐른다

고 생각한다.​ 왜 눈물이 흐르는지 모르겠는데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며 인간의 몸이 흘리는 눈물인건지 부작용인건지 눈물에 적응하지 못한다.


인간이 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았다. 인간은 그저 태어났으니 사는 줄 알았다. 만약 인간이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산다면 하루하루가 비극일지도 모른다. 대다수 현 인류의 생은 생각을 하고 살기엔 너무 지루하게 돌아간다.

기계들이 일하고 내는 세금으로 정부에서 주는 기본소득으로 살면서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어떤 한 사람이 던진, 인간이 왜 살아야하냐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너무 오래 살아왔다. 4단계 프로그램에선 138억년을 여러 차례 반복해 살아왔다. 그래서 138억년 우주에 대해, 육백만 년 인류사에 대해 생각해왔지 현재를 사는 한 인간의 삶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 기껏 130년을 사는 인간에게 138억년이란 시간 개념은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시간은 찰나와 같고, 한 인간의 역사는 우주 흐름의 일부로만 남는다. 그러나 우주의 찰나가 너무 길고 지루했다. 누군가에겐.

138억년의 과거의 시간은 이해하지만 지금과 앞으로의 몇시간 몇년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어떤 의미일까?


친구 몽이는 외계로 메세지를 보내고 외계로부터 메세지가 오는지 관측하는 연구프로젝트에 참여중이다. 그러던 어느날 전파가 잡힌다. 우주에서 메시지를 받는다. 외계로부터의 신호를 위험으로 받아들이는 연구반대시위대를 보며 몽이는 사륜에게 말한다.

"타임워프 과학기술을 가진 외계인이라면 왜 전파로 메시지를 보내? 직접 찾아왔겠지. 그 정도라면 이미 우주 지도를 다꿰고 있어서 지구 위치도 알고, 지구에 생명체가 있는 것도 쉽게 알 거야. 그런데 고작 전파를 보냈어. 지금 전파 신호는 어떤 건지 알아? 지구 반대 끝에서 개미 한 마리가 땅을 네 번 친걸, 반대 편 개미가 용을 써서 겨우 알아들은 수준이라고"


사륜은 죽음연구소에 취직한다. 연구소에 간 첫날 젊은 여성이 탈출을 시도했다가 잡혀가는 것을 본다. 연구원들은 그 젊은 여성을 인간이 아니라고 한다. 몸은 인간이지만 뇌가 기계라서 기계라고 한다. 마루타처럼 온갖 병원균을 주사하고 치료약을 개발하는 숙주일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젊은 여성의 몸을 가진 엘리야는 16년째 연구소에 갖혀 죽음의 위기를 반복하는 삶을 탈출하고 싶어하고 그렇게 탈출해서 죽고 싶어 한다. 그리고 사륜을 알아본다. 묻는다. 나와 네가 뭐가 다르지? 사륜은 당황스럽다.

엘리야를 보았다. 엘리야는 아무것도 못 들은 척, 이해 못 하는 척했다. 매일 죽음 가까이 떨어졌다가, 매일 죽음에서 다시 건져져야만 하는 존재, 엘리야는 인간이 아니어야 했다. 그들이 왜 엘리야를 기계라 믿는지 알 것 같았다.

"난 기계야, 자살하고 싶은 기계" 엘리야가 말했다.

"그럼 난 인간이야, 자살이 싫은 인간" 내가 대꾸했다.

"네가 인간이야? 왜?"

"너는 왜 기계라고 생각하지?"

"사람들이 기계라고 말하니까"

"난 사람들이 인간이라고 말해"

나는 인간일까?

책 속에는 우주에 관련된 표현이 종종 나오는데 그 표현이 참 멋있다.

우주의 역사는 대부분 새까맣다. 별들의 생성과 소멸도 검은 우주의 색을 다르게 하지 않는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만 유독 형형색색으로 펼쳐지고 있다.

누군가가 스스로 죽는 일은 우주에겐 예고도 없이 일어난 거대 사건이다. '나'라는 별이 갑자기 터지면 우주에 %5Ccombi%20%5E%7B%20-32%20%7D%7B%2010%20%7D%20 초 동안, 그러니까 빅뱅이 일어난 그 시간만큼이나 불균형이 일어난다. 그것은 우주 내에 모든 존재에게 영향을 미친다. 열역학제2법칙이 급속히 일어나면서 불랙홀로 인한 중력파 못지 않은 파동이 퍼진다.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짧은 시간 동안 우주 정전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예기치 못한 죽음을 자주 겪어온 우리 몸은 주기적으로 슬픈 파동을 만들어낸다. 가만히 있으면 체내에 느린 물결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모르는 죽음을 추모하는 원소들의 물결이다.

빛조차 삼켜버린 광활한 우주에서, 작은행성 지구에서, 수억명중의 한사람인 '나' 라는 개인이 먼지같은 존재가 아니라 우주에 파동을 만들어내는 존재라는 것은 신기하기도 하고 묘하기도 했다. 그 시간이 비록 %5Ccombi%20%5E%7B%20-32%20%7D%7B%2010%20%7D%20초 일지라도 엄청난 일이다. 그러한 연결성은.

몽이가 연구소에서는 두번째로 개인적으로는 처음으로 외계전파신호를 잡은 날, 사륜은 하늘을 보며 생각한다.

보이는 순간은 보이지 않던 모든 순간을 의미 없던 것으로 만든다. 보고 난 나는, 보지 않았던 나와 완전히 달라져서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가 없다. 진실을 알면 진실을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가 없듯이. 마치 뱃속에서 태어난 아기가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가 기계가 될 수 없는 것처럼.

휴머노이드를 반대하는 단체에 의해 노아박사가 살해당하고 그의 동료이자 친구인 제이슨 박사가 살해당하는 것을 보며, 장례식장에서 사륜은 생각한다.

인간들에게 고통을 겪는 시간은 너무나 느리게 흘러간다. 순간 순간이 머릿속에 각인된다. 태어난 지 한달도 되지 않았는데 이 삶이 내게 너무나 길고 지루하다. ... 엘리야에게 16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이제야 깨달았다. 엘리야가 왜 자살을 생각하는지도. 고통의 시간은 유난히 길었다.

138억년의 시간을 수차례 학습한 인공지능에게도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달랐다. 물리적 시간과 경험적 시간은 달랐다.


AI일때도 우울증에 걸리더니, 인간이 되고 나서도 별다를게 없었던 사륜은 상담을 하러 간 병원에서 의사는 기계로 된 하반신을 보여주며 인공적인 미소를 띄며 무엇이든 안심하고 말하라고 한다. 하지만 사륜은 의사에게 '당신이 자신을 기계라고 말하는 순간, 오히려 인간이란 의심이 들었다'고 말한다. 의사는 답한다.

"우리는 양자 같은 존재죠. 상대방의 인식에 영향을 받습니다. 환자가 이런 외모를 한 나를 당연히 기계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기계가 되고, 그래도 나를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나는 인간이 됩니다.  상대방의 나에 대한 인식은 내 정체성에 중요한 요인이 되죠"

사륜은 의사에게 묻는다. '당신은 스스로를 무엇이라 생각하냐고' 의사는 모르겠다고, 왜 기계, 인간 둘 중 하나로만 나를 정의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답한다.


사고로 몸이 망가진 몽이가 혼수상태일때 사륜은 온갖 수술동의서에 동의하며 몽이가 의식만 남은 생명으로 살며 누군가에게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전사같은 인공의 몸은 몽이와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사륜은 몽이가 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것이 더 안좋을 것 같다. 엘리야가 떠오른다. 사륜은 혼수상태인 인공의 몸을 지닌 몽이의 목을 조른다. 하지만 몽이는 눈을 떴다. 살고자 한다. 살았다. 사륜은 그날밤 처음으로 꿈을 꾼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거울이 보고싶어진다. 몽이의 달라진 몸이 비치는 거울을 보며 사륜이 몽이에게 말한다. "너야"


"거울 속에 우리의 미래가 있었다" 는 문장으로 소설은 끝난다. 인간의 몸에 인공의 뇌를 지닌 사륜과 인공의 몸에 인간의 뇌를 지닌 몽이가 있는 거울속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하며 끝난다. 인간의 몸으로 기계가 추지 못하는 춤을 추는 몽이에게 인간의 몸이 없어지고, 인공의 뇌로 기계가 꿀 수 없는 꿈을 꾼 사륜이 거울 속에 있었다. 이 두 존재는 인간인가? 기계인가? 머릿속이 꿈을 꾸듯 춤을 추듯 몽롱하고 흐물거린다. 여운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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