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온 미술관 - 길 위에서 만나는 예술
손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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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혼자 가지 않아도 좋은

일상을 예술로 바꾸는 거리 미술관 산책

2020년 한 해 동안 <국민일보>에 연재되었던 칼럼 '궁금한 미술'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은 우리가 평소에 잘 알지 못했던 한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그것은 바로 '굳이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일상 속에 미술품이 있다는 것. 하지만 언제든 볼 수 있다고 해서 그 작품의 작가, 제작 경위, 미학적 가치, 시대사적 맥락을 두루 알기란 쉽지 않다. 이 책은 거리 위 조각물과 건축물이 누구의 손을 거쳐 탄생했는지, 설치된 배경은 무엇인지, 어떤 점이 멋진지 등을 궁금해할 이들에게 '친절한 거리예술 안내서'가 될 내용을 담았다. - 책표지 앞날개 내용 中-

예술작품이라 하면 박물관이든 미술관이든 어딘가 좀 격조 높은? 곳에 있을 것 같고, 그런 곳의 야외전시장에서 보는 작품들 조차 실내에서 보는 작품들에 비해 대충보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공공미술'을 막상 의식하고 나면 내가 사는 아파트 주변 길거리 곳곳 도심의 한복판에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궁금했다. 내가 봤더라도 그냥 스치고 지나갔을 그리하여 봤어도 기억나지 않을 그렇게 예.술.작.품. 인지 몰랐을 작품들이 무엇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건지.

첫번째 소개 작품은 광화문 흥국생명 건물앞에 있는 <해머링 맨> 이었다. [ 흥국생명은 당시 '1%법'에 따라 이 작품을 주문했다. (중략) 흥국생명은 2008년 <해머링 맨>의 인체 윤곽이 멀리서 더 잘 보이도록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도로 쪽으로 5m 더 빼는 결단을 내렸다. 이 거대한 철제 조각상은 망치질하는 데 드는 전기료, 보험료 등 유지비만 1년에 7천만원 가량이 든다고 한다. 설치와 이전, 유지 과정에서 보여준 행보는 기업 오너의 미술 애호가 거리의 공공조각의 수준을 어떻게 업그레이드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p. 27) ] 그랬구나... 광화문에 가면 당연하게 눈에 보이는 그 거대한 입상이 수많은 사람들의 출퇴근길에 일의 기쁨과 슬픔을 느끼게 해주는 공공미술작품이었구나... 이 작품에 비하면 두번째 소개되는 청계광장의 <스프링>은 그야말로 공공미술의 폐해애 가까웠다.

올덴버그에게 제시된 작품 가격은 무려340만달러 (당시 환율로 35억원). 해외 미술 시장에서도 보기 드문 거액이었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지속 가능한 녹색 성장 시대로의 이륙을 선언하는 기념비적 상징물을 외국인 작가에게 빼았겼다는 허탈감이 미술계를 휘정었다. 서울시는 다슬기 모양이라고 설명하지만, 소라를 닮은 게 분명한 조각의 형태도 생뚱맞았다. 그리고 설사 다슬기가 맞다고 해도 거기 왜 다슬기 모양의 조각이 들어서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던 미술인들 (p. 35) <스프링>을 제작하던 당시에는 이 과정이 없었다. 외국 유명 작가의 작품을 일방적으로 내리꽂은 것이다. 그때 여러 미술 단체에서 '외국 작가의 작품이 선정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공론화 과정이 빠진 것이 문제'라고 일제히 비난했다. <스프링>에 대해 미술계가 반감을 가지는 또 다른 이유는 올덴버그가 작품을 제작하는 동안 청계천을 찾은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올덴버그는 한국을 단 한번도 찾지 않고 <스프링>을 디자인했다. (p. 38) 2007년 대선이 코앞인 시점이었다. 천천히 제대로 개울을 복원하고 조각물을 세우는 것은 대권 가도에 걸림돌이 될 게 뻔했다. 그는 '빨리빨리'를 거듭 외쳤을 것이다. 그 결과, '길게 누운 분수대' 거대한 시멘트 어항'으로 불리는 청계천이 탄생했다. 복원된 자연 하천이 아닌 한강과 지하수를 끌어와 흘려보내는 인공하천이다. 그러니 청계천 초입에 놓인 <스프링>은 허구이자 위장이다. (p. 40)

MB의 대권 야망 속에 서둘러 마무리된 청계천 공사와 공공미술 작품은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건만은 그의 위풍당당한 자랑질에 우리가 너무 쉽게 넘어갔던 것이 아닐까. 비싸게 들여온 외국작가의 작품들이 흉물 취급 당한 작품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들이 있다고 해서 공공미술일지라도 소위 '작품'이려면 반드시 외국작가의 작품이어야만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DDP 앞에 서있는 거대한 인간꽃처럼 보이는 조형물의 작가는 김영원 조각가였다. 아무리 예술성이 높더라도 말도많고 탈도많은 건물인 DDP에 비해 나는 이 조각상의 예술성이 훨씬 더 마음에 와닿는 것 같았다. 앞선 사례들에서도 확인되지만 건물앞에 서있는 예술작품은 동상인 경우가 많다.

동상은 통치자가 국민에게 통치이념을 선전하기 위해 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서구에서는 19세기에 엄청나게 생겨났다. 민족적 우월감으로 영토를 넓혀가던 제국주의 시대는 애국주의 물결이 거셌고, 이런 애국주의를 고취시키는 수단은 영웅화된 인물의 동상을 공공장소에 높이 세우는 일이었다. 이성의 시대인 근대는 동상을 통해 영웅적인 인물의 강인한 정신력과 실천력을 보여주려 했다. (p. 62) <이순신 동상>자리에 예정돼 있었던 4·19기념탑은 5·16군사정변 이후 지금의 국립4·19민주묘지가 있는 곳으로 밀려나고, 그 자리에 <이순신 동상>이 세워진 것이다. 그리하여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은 박정희 시대 상징이 되었다. 이것은 동상에 따라붙는 오명이기도 하다. (p. 65)

권력이 독재일때 그 권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는 분야는 없었다. 예술계도 마찬가지라서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 조각상과 건물은 그 모양을 달리하게 되곤 했다. 공공미술이 아니라 권력자의 선호도에 맞춘 그런 작품들을 과연 공.공.미술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앞서 언급했던 '1%법'을 만들었기에 그나마 그런식의 공공미술이나마 확장되게 되었다.

때는 1983년. 서울시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건축 심의 조례를 강화했다. 핵심은 서울의 미관지구 안에 11층 이상, 건축면적 10000㎡이상 건물을 신축할 때 건축주가 공사비의 1% 이상을 조각과 벽화 등 '미술장식'에 쓰도록 한 것이다. 이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준공검사를 받을 수 없도록 했다. ('건축물 미술장식'이라는 용어는 2011년부터 '건축물 미술작품'으로 변경되었다.) 정부는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을 제정하면서 도시환경을 개선하고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돕기 위해 제13조에서 건축물 미술장식의 근거를 마련했다. 이는 권고 사항이었지만, 서울시가 선제적으로 '미술장식'을 의무화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1995년부터 의무화되면서 '1%법'으로 통칭되었으나, 2000년부터 설치 비용이 건축비의 1%에서 0.7%이하로 경감됐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은 거리 조형물 시장의 분수령이 된 계기였다. (p. 71)

공공미술작품이 흔해지는 만큼 그 작품성에 대해 둔감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없을때 뭔가 들어서면 초집중하여 보게 되지만 여기에도 하나 저기에도 하나 있게 되면 그냥 뭔가 있는가보다 하면서 지나치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지나친 공공미술 작품들 중에 은근 작품성 높은 작품들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고나서 좀 놀랍기도 했다. 저자는 도심 안의 또 다른 예술로 '건축'이야기도 풀어놓는다.

"객실 수는 많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수익은 적게 나도 좋습니다. 버킷 리스트에 올릴, 그런 건축물을 지어주세요. 우리나라에도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그런 건축물 하나쯤은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2015년 봄, 코오롱 그룹으로부터 리조트 설계를 요청받은 김찬중 대표는 이 같은 주문이 믿기지 않았다. (p. 117)

울릉도에 있다는 '코스모스 리조트' 는 2개동을 합쳐봐야 총 객실 수가 고작 12개. 리조트로서 경제성은 한참 떨어진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게 작고 소박하게 지음으로써 울릉도의 절경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풍광이었다. 여기... 꼭 가보고 싶다!!

이밖에도 국립중앙박물관 이나 한옥의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물 이야기였다. 일명 '달항아리'로 불린다는 이 건물또한 오너가 경제성만을 추구하지 않을때 어떤 미학적 가치가 획득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DDP 건물은... 건축가 본인의 이력에는 상당한 장점이 됐겠지만... 글쎄...

1988년 서초구에 예술의 전당 음악당이 개관하기 전까지 10년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연장 역할을 한 세종문화회관은 남북 체제 경쟁과 대화의 산물로 탄생했다. 그 시절 남북은 군사력·경제력 뿐 아니라 문화적 능력을 두고도 경쟁했다. 21세기인 지금, 그때 그 시절을 증거하고 있는 건축물이 세종문화회관이다. (p. 179)

애초 5층으로 설계됐던 국회의사당은 해방 후 중앙청(5층)으로 쓰던 총독부 건물보다 높아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6층으로 높아졌다. 이렇듯 권력자 입맛에 따라 시공 과정에서 누더기가 된 것이 국회의사당이다. (p. 189)

앞선 에피소드들에서 잠깐씩 이야기되기도 했지만 저자는 한 챕터를 역사이야기로 할애해서 공공미술 혹은 건축물과 관련된 역사를 들려준다. 예술의 전당이 왜 갓을 쓰게 됐는지 세운상가가 왜 '좌절된 유토피아'가 됐는지 등의 이런저런 뒷이야기들 모두 재미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압권은 국회의사당 뒷얘기였다. 건축가 누구도 자신이 참여했음을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기에 지금은 누가 지었다고 말할 수조차 없게된 기형의 건물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회의사당이라니...

오피스텔에 설치된 이 전광판 작품에 주목한 이유는, 이 작품이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에 의해 설치됐기 때문이다. 통상 건축물 미술작품은 조각이나 회화를 주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미디어아트다. 게다가 그걸 전광판 형식에 구현하니 신선하다. (p. 230)

시대가 변한 만큼 공공미술도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공공미술은 관점을 바꾸고 경계를 허물고 있다고 한다. 아파트 조경에서부터 전광판, 길가 혹은 계단 아래 등 작품이 위치하는 공간은 이제 반드시 건물앞이 아니었고 그 형태또한 동상이 다가 아니었다. 그 새로운 작품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서울로7017에 있다는 <윤슬> 이었다. 언젠가 서울로에 가게되면 이곳에 꼭 가봐야 겠다.

광화문 하면 떠오르는 풍경, 인천공항 하면 떠오르는 풍경, 녹사평역 하면 떠오르는 풍경이 곧 공공미술 작품이 녹아든 일상의 풍경이고 거리 갤러리 풍경이다. 제자리에서 빛을 발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발견하는 재미를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길. 공공예술, 공공미술이 멀게 느껴졌던 사람들에게도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p. 296)

이 책은 그야말로 공공예술에 대한 도슨트투어가 맞았다. 이 이게 이런 작품이었어? 하며 새롭고 아니 이런 배경이 있었어? 하며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읽고나니 더 궁금해진다. 거리 곳곳에 또 어떤 예술작품들이 있을지... 저자가 2편을 내준다면 좋겠지만 그건 좀 시일이 걸릴 것 같으니까, 저자의 말대로 공공예술작품들 앞에 안내판이라도 어서 설치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적어도 그게 작.품.인지 정도는 알고 지나치게 될테니 말이다.

ps. 생각해보니 아파트마다 있는 이런저런 조형물들도 대체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건지 모를 것들이 수두룩한데 설치할때 작품설명판도 함께 붙여주면 참 좋을 것 같다. 꼭 대작가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작품일테니 그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사실 내가 궁금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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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08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좋았던 리뷰 ㅎㅎ 축하드립니다 *^^*

LILLY 2022-03-15 11:4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