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를 좋아한다. 역사이전의 시대를 다룬 고고학도 좋아한다. 그러니 신석기시대사를 한권으로 볼 수 있는 그것도 신석기시대를 세계여성사로서 한권으로 볼 수 있는 이 책에 대한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하드커버의 양장본에 두툼한 사이즈가 학문적 분위기를 진하게 풍기면서 고급스런 표지디자인까지 책에 대한 첫 인상이 무척 좋았더랬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1955년 중국 출생으로 중국문단에 데뷔한 소설가이다. 중국작가협회 회원이며 흑룡강 조선민족출판사 편집을 역임했다. 이러한 이력으로 보건데 저자는 중국어를 모어로 활용하는 조선족계 문인인듯 하다. 단편 70여편 중편 10여편 장편 7부를 출판했다는데 검색해보니 국내출판된 소설은 몇 권 안되는 것으로 보아 작품활동은 중국에서 주로 한것 같다. 그런데 국내 출판된 저자의 책들은 대부분 학술서 였다. 그중에서도 고대사.
물론, 전문적 학자가 아니어도 학술서를 쓸 수 있다. 시중에도 학자가 쓰진 않았지만 학자못지않게 전문적인 내용을 뽐내는 학술서를 꽤 여러권 찾아 볼 수 있다. 더구나 자료수집과 개연성 있는 구조 엮기에 있어서 탁월한 소설가가 쓴 책은 가독성면에서 오히려 더 좋을 때도 많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의 소설가적 면모를 느끼지는 못했다.
제목이 쓰여진 페이지를 넘기면 '들어가며' 가 나오는데
"집필의 수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실과 유리된 채 아득한 석기 시대로의 시간여행을 하면서 문자 그대로 심신이 지치고 피폐해졌다. 타이틀이 여성사임에도 시대적 국한성에 포로가 된 필자는 본의 아니게 '고고학자'가 될 것을 강요당했으나 소설가에게 그 직분은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p. 5)
라는 첫문장으로 시작한다. 첫문장부터 깜짝 놀랐다. 소설가인 저자에게 '고고학자'가 될 것을 강요하며 심신히 지치고 피폐해질 만큼 '집필의 수요' 가 있었단 말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해서 일부러 찾아 읽는 편이지만 제목부터 전문적으로 보이는 이 책과 같은 학술서를 읽고자 원하는 이들이 많았단 말인가? 저자에게 이러한 험난한 집필을 요구한 그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그런데 바로 뒤 페이지에서
"갈수록 심각해지는 출판계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쾌히 출판을 허락해주신 사장님의 용단에 다시한번 감사할따름이다" (p. 6)
라고 사의를 표한다. 그렇다. 출판계가 어려워진지는 오래되었다. 일년에 책한권도 읽지않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이러한 학술서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본적이 없다. 저자는 이 책의 출판을 허락해주어서 고맙다고 출판사에 인사를 한다.
출판사가 용기 있게 출판을 허락해준 책 과 심신이 피폐해질정도로 어쩔 수 없이 이 책을 쓰도록 한 집필의 수요 사이에서 아이러니를 느낀다면 내가 이상한건가?
'들어가며' 로 책을 시작했는데 그 뒤에 '책머리에' 가 나오고 그 뒤에 '서문' 이 나온다. 음???;;;
들어가며 와 책머리에 와 서문 이 다 같은 의미 아니었나? 대개의 책에는 이중 하나의 소제목이 붙은 글만 존재하지 않던가? 이 책의 시작은 세번에 걸쳐 진행된다. 이렇게 시작글이 세번 있고나서야 차례가 나오고 본문이 시작된다.
독특한 세번의 시작과 다르게 마무리는 '나가는 말' 한번으로 끝난다. (수미일관의 균형을 이루려면 '나가는 말 '다음에 '책말미에' 다음에 '종문' 뭐 이런식으로 세번 마무리를 했어야 하지 않나 라는 괜한 생각을 해봄;;;)
책은 크게 2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신석기시대 서양여성 과 2부 신석기시대 아시아여성 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실 서양여성사와 아시아여성사를 묶어서 세계여성사라고 할 수도 없는 거지만, 서양여성사 부분이라고 해봐야 메소포타미아지역 일부였고 아시아여성사 부분이라고 해봐야 한중일 특히 중국과 한국만을 주로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저자의 포부가 큰 것은 좋지만 제목은 솔직히 과하다 싶었다. 그리고 저자가 여성사를 말하기 위해 농업사를 풀어낼 수 밖에 없다고 여러차례 밝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사라고 하기엔 많이 빈약했다. "사" 가 붙으려면 시대를 굽이치는 흐름과 변화가 읽혀져야 하는데 이 책은 그정도라기보다는 신석기시대 속 여성의 역할을 밝히는 것뿐이었다. 따라서 저자가 책말미에도 정리하듯이 이 책의 주제는 한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정도다. (그 한문장은 이 글의 마지막에 쓰는 걸로...)
"한편 기나긴 석기시대는 물론 대충돌시기에도 신체상의 열세와 육아 때문에 여성들은 대부분 시간을 캠프에서 지냈다. 아이를 돌보고 남자들을 위해 끼니를 장만해야 하기 때문이다." (p. 61)
석기시대때부터 이렇게 명확히 남녀의 역할이 구분되어 있었다는 말인가? 동굴에서 끼니를 준비하느라 여성은 밖에 못나갔다고? 그때 끼니가 지금의 요리수준도 아닐터인데 거참...;;;
"나무가 없는 농업 발상지 자그로스 산맥과 메소포타미아 지역" (p. 106)
이라며 현재의 자그로스 산맥과 메소포타미아 지역 사진을 실어놓았는데, 저자는 석기시대가 지금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하는 건가? '길가메시서사시' 라는 수메르문명이 남긴 토판내용을 보면 울창한 숲과 벌목에 대한 내용이 여러차례 언급되는데, 저자는 그 지역이 석기시대에도 지금처럼 나무가 없는 지역이라서 벌목이 필요없었기 때문에 농업이 발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해수면높이를 비롯하여 토지와 동·식물 자원 모두가 지금과 석기시대가 같을 수 없지 않을까?
"인류의 문명은 신석기시대 초반 여성의 혁신적인 농업 선택과 정착에 의해 그 굳건한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가히 단언할 수 있다. 다름 아닌 이 지점에서 여성은 여신의 영광스러운 황금옥좌에 당당하게 올라가 앉을 만한 자본을 거머쥐게 된 것이다." (p. 109)
저자는 농업을 시작한 것이 여성이며 농업이 수렵을 대체했던 서양의 신석기시대에 여성의 지위향상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그런가? 어떤 향상?? 모계사회가 되었다는 것이 어떤 권력을 누리게 했나? 신화속에서 여신으로 남아 추앙받게 된것이 여성에게 무슨 이득이었을까??
"홍수에서 권력이며 가옥이며 가졌던 모든 것을 잃고 목숨 하나만 달랑 건진, 몇 안되는 가련한 여성 혹심한 기아와 굶주림과 온역에 노출된 여성은 죽음의 문턱에서 어쩔 수 없이 남성이 세우고 곡물을 마련해 둔 집을 찾아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여성은 자연재해에 직면하거나 타고난 체력의 열세 하나 때문에 남성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백수가 된 채 비굴하게 빌붙어서 목숨을 부지해야만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p. 190)
저자는 혜성의 대충돌로 사냥중이던 남성들이 대거 사망하면서 동굴안에 있던 여성들이 많이 살아남아 성비불균형으로 모권이 상승하고 사냥을 하지 못하는 여성이 식량생산을 위해 농업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러다 홍수에 의해 모든 것을 잃은 여성이 남성에게 의탁하게 되었다고 한다. 남성이 곡물을 저장하는 동안 여성은 한톨도 저장해둔것이 없단 말인가? 여성은 주로 캠프에서 생활했다면서? 홍수가 쓸어간 것은 여성의 농작물과 여성의 목숨 뿐이란 말인가? 남성이 주로 바깥 활동을 해서 대충돌때 목숨을 잃었다면서? 홍수는 남성을 피해 덮쳤다는 말인가?
"신석기 시대 여성은 진흙을 반죽하여 태토를 준비하고 그릇 성형작업뿐 아니라 아직 남성들이 운영하는 토기가마 등장하기 전까지는 소성 작업에 이르기까지 문자 그대로 토기 제작의 모든 과정을 소화하는 노동의 주체였다." (p. 215)
신석기시대 여성은 농업도 들여오고 토기도 만들며 채집도 하는 노동의 주체였다는 것이 지위향상인가? 여성이 이러한 노동을 하는 동안 남성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남성의 활동과 여성의 활동에 대한 비교는 좀더 동시적으로 비교할수있도록 충실했어야 하지않을까?
"남성들이 사냥감을 따라 원정 수렵을 떠난 뒤 임신,육아,채집 등으로 인해 동굴 속에 남은 여성들이 무료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p. 279)
동굴벽화 관련 글이나 그림에서 대부분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를 남자원시인으로 표현했던 것 같은데, 인류 최초의 화가가 여성이었다는 주장은 신선했다. 다만 그 근거가 여성이 동굴에서 심심해서 그렸다는 것은 좀...;;;
무엇보다 문제라고 생각되는 점은, 이 책에서는 연도가 표시되지 않는다. 신석기시대라고 퉁치기엔 기간이 너무 길지 않나? 기원전 몇년부터 몇년엔 이러저러했다가 기원전 몇년 부터 몇년까지 이러저러했다 라고 변화의 추이를 서술했어야 하지 않을까? 신석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여성사 인데?
1부에서 전개했던 내용들은 책의 비중을 1부보다 좀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2부에서 동일하긴 한데 같은 내용의 반복이 많다. 서양부분과 비교되는 동양부분의 일부를 정리해보자면,
"서양의 경우 대충돌로 인한 남성 인구의 소수화는 여성의 생육능력을 신비화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의 경우 하늘이나 조상에 대한 숭배는 있어도 농업에 대한 숭배는 적었으며 남성 인구는 도리어 여성보다 다수여서 생육능력도 신비화될 토대가 없었다. 여성숭배가 당연하게 시초부터 고갈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p. 309)
"놀랍게도 서양학계의 영거드라이어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중국은 대충돌 사건의 영향범위 안에서 제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p. 316)
"설령 중국에서 신석기시대에 서양처럼 모계사회가 존재하였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결코 여성이 사회적 영도권을 장악하지는 못했을 거라는 것이 필자의 논리다. 일단 농업이 보편화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원시농업의 생산 주체마저도 남성이었다. 강력한 모권제의 배경을 상실한 당시 여성에게 사회적 주도권 장악이란 한낱 몽상에 불과한 것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p. 377)
"농업의 존재 여부는 당시 여성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 미리 단정하지만 신석기시대 한반도 여성의 지위와 역할은 중국의 별반 다름이 없었거나 더 위축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의 신석기 시대 상황으로 볼 때 농업이 한국의 경우보다 조금은 앞섰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p. 518)
"농업이 침체된 상황에서 신석기시대 한반도 여성의 지위와 역할은 다시 한번 된서리를 맞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농업을 통한 여성들만의 고유한 문화도 생산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의 주도권도 장악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중국 신석기 시대 여성과 한반도 여성이 짊어질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운명이었다." (p. 531)
"채집 위주 경제패턴을 영위했던 야외노동에서 채집활동은 물론 물고기잡이나 조개잡이에까지 노동영역을 확대했던 일본의 신석기시대의 여성은 같은 시기의 중국이나 한국의 여성에 비해 사회적 지위와 역할 면에서 어느 정도는 우월했을 것으로 예단할 수 있다." (p. 610)
저자는 혜성의 대충돌 지역은 서양이었기에 그 직접적 충돌지역이 아니었던 중국일대 동양에서는 급격한 성비불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혜성은 그렇다치고 홍수도 없었단 말인가? 서양은 혜성과 홍수로 여성과 남성의 성비가 왔다갔다 했는데, 그동안 중국일대는 혜성충돌도 홍수도 없어 성비가 바뀔 일이 없었고, 농업혁명도 지지부진 했기에 쭈욱 남성이 권력을 잡아왔다고 하는데 그것이 좀... 혜성의 직접적 충돌지역이 아니더라도 그로인한 지구전체의 기온저하로 생태계에 큰 변화가 왔었음은 기정사실이다. 그런데 혜성의 직접적 충돌이 없다는 것만으로 서양과 중국일대의 동양을 비교한다는 것이 좀;;;
게다가 모계중심사회문화는 서양보다 동양에 친숙한 문화아닌가? 역사책은 아니지만 '오래된 미래' 라는 책에 나오는 히말라야 산맥부근의 라다크 지역은 여전히 모계중심 사회이다.
무엇보다 어찌되었든간에 신석기시대에 여성의 지위향상이 일부 지역에서라도 있었다고 치더라도 그것이 당시 신석기시대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는 말인가?
농업활동의 중심을 여성으로 이야기하다가도 결국은 남성의 노동력이 농업혁명의 핵심기반이었고, 토기제작에서도 가마가 있기 이전까지만 여성의 활동이 의미있었다. 잠시잠깐으로 보이는 모계중심사회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여성의 지위향상이었다 라는 주장이 어떤 의미가 있다는 걸까?
석기시대의 여성지위향상에 대한 주장은 결국 석기시대의 생활상을 알수없는 현재시점에서 상상력을 동원해야 할 영역속에서나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