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세우스의 배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9
이경희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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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을 담은 사이버펑크 액션 스릴러

치밀하게 채워진 암투와 반전, 첨단 과학과 철학적 사유의 흥미로운 결함 (표지 中)

 

 

그래비티북스의 새로운 SF시리즈인 GF시리즈 중 <꿈을 꾸듯 춤을 추듯> 을 읽었었는데, 신선하고 좋았었다. 그런데다 내가 좋아하는 그리스 신화를 연상시키는 제목을 보고 바로 흥미가 일었다. 그리고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책이었다.

테세우스는 알겠는데, 테세우스의 배는 무엇일까?

테세우스는 그리스 신화속 인물이다.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 왕의 혼외 자식으로 성장하면 아버지가 정해놓은 미션을 수행후 찾아오라는 말을 남기고 아버지는 떠났고 테세우스는 미션을 성공하고 아버지를 찾아갔다. 고구려 왕 주몽과 아들 유리왕의 일화와 흡사한 셈이다. 왕자의 성장기 랄까.

왕자 테세우스는 인신공양을 요구하는 크레테의 왕을 찾아가 미로 속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귀환하지만, 떠나기전 자신이 살아돌아오면 흰돛을 펼치고 오고 죽으면 검은돛을 펼치고 오겠다고 말한 것을 깜빡하고 승리감에 취해 검은돛을 바꿔달지 못한채 돌아오는 길, 멀리서 돛의 색깔만 보고 좌절한 아버지 아이게우스는 바다에 몸을 던진다. 그 바다가 아이게우스의 바다 즉 에개해 이다. 이 신화 속 배가 테세우스의 배 일텐데... 배가 무슨 의미가 있었나? 내가 아는 신화에서 배에 대해 별다르게 언급한 것을 읽은 기억이 없다.

이 배에 대한 의미는 1장 / 2장 / 3장 을 구분하는 검은 속지 속의 내용에서 알 수 있게 되는데, 1장 앞 검은 속지의 글자는 희랍어 같긴 해지만 뜻모를 글자였고, 2장 앞 검은 속지의 글자는 영어였지만 패스했고, 3장 앞 검은 속지에 와서야 한글로 된 내용을 읽으면서 앞의 두 검은 속지 내용도 같은 내용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장의 제목이 컨티넘 CONTINUUM, 2장의 제목이 BODY, 3장의 제목이 MEMORY 인 것도 그 의미도 그제야 나름의 깊은 뜻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멋진 발상이다.

아테네인들은 젊은이들과 함께 귀환한 테세우스의 배를 팔레론의 디미트리오스 시대까지 보존했다. 그들은 배의 판자가 오래되면 그 낡은 판자를 떼어버리고 온전한 새 판자로 교체했고, 그 결과, 이 배는 철학자들 사이에서 성장과 변화에 관한 논쟁의 살아있는 본보기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그 배가 처음과 같은 배라고 주장했고, 어떤 이들은 배가 다른 것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3장 앞 검은 속지 내용)

위 인용 문구는 2장의 초반 내용과 연결되고 이 책의 핵심질문과도 연결된다.

그는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해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렸다. 생일 선물로 받은 블록 조립 장난감에 관한 기억이었다. 어린 아이였던 그는 몇 날 며칠 동안 블록들을 쌓아 배를 만들었다. 손수 바느질한 돛을 달고, 해적 깃발도 올렸다. 자신만의 배를 갖게 된 그는 기뻤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아버지에게 가져갔다. 하지만 아버지는 기뻐해주지 않았다. '누가 이따위 것에 시간을 써도 된다고 했지?' 아버지는 배를 집어 던졌다. 조각조각 블록들이 산산히 흩어졌다. 떨리는 손으로 블록을 주워 담은 그는 이불 속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펑펑 눈물을 쏟다 잠이들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아침에 눈을 뜨자 배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인가 영문을 묻자 가사 안드로이드는 그에게 진실을 알려주었다. 엄마가 밤을 꼬박 새워 산산이 조각난 배를 다시 하나하나 조립했다는 거였다. 가사 안드로이드의 메모리까지 확인해가며 재현해낸 해석선의 조립상태는 완벽했다. 하지만 더는 기쁘지 않았다. 진실을 알게 된 순간 그 배가 전혀 다른 배처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p. 123~124)

 

이 소설은 SF이면서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책이다. 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연속성? 몸? 기억?

트라이플래닛이라는 거대 기업의 화장 석진환은 어느날 사고를 당하고 6개월 후 눈을 뜬 순간 온몸이 기계화 되어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를 죽이고자 하는 여동생 석미진은 오빠의 신체조직들로 몸을 부활시키고 그 몸의 석진환은 백지상태로 깨어난다. 그리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준비해둔 절차에 따라 비밀리에 저장해둔 메모리기억은 실체는 없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자신이 진짜 석진환이라고 주장한다. 세 명의 아니 세 종류의 석진환, 그 중 진짜 석진환은 누구인가?

트라이플래닛의 주요 사업은 크게 두가지 갈래다. 플래닛 전자와 바이오메디컬 로 의족, 의수, 인공장기 같은 의체를 개발하는 전자 쪽과 DNA 조작이나 신약개발을 하는 바이오메디컬은 둘다 인간과 관련된 첨단산업의 결정체이다. 뇌는 그대로 두고 인공신체를 갖는 것과 병든냉동보관신체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것은 역시 인간의 존재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어야 하는가를 묻고 있으며, 동시에 거대재벌기업이 독점하는 사회의 폐단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서야 블록체인금융에 대해 이해가 가기 시작했고, 뉴럴링크 니 실리카나노셀 이니 등에 대해, 그외 여러 신기술들에 대해 꼼꼼이 달린 주석을 읽으며 이런 기술까지 있었나 싶어 놀라하며 읽었다. 과학적 근거가 분명한 SF는 현실감을 높인다. 중국 SF작가 류츠신의 소설을 읽을 때 신빙성 높은 기술들에 대한 해박한 묘사에 감탄했었는데, 우리나라 SF소설도 그에 못지 않은 묘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쁘고 이제껏 알지 못해 미안했다. 탄탄한 과학적 근거들에 대한 설명에 푹 빠져들어 읽느라 다 읽을 때까지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의체를 교환하는 동안 그는 영생의 꿈을 꾸었다 사실 꿈이라기보단 상상에 가까웠다. 그는 잠이 들지 않는 뇌를 가졌으니까. 상상과 꿈의 경계 속에서 그는, 몸이라 부를만한 모든 것들이 녹아내리고, 작디작은 뇌만이 블랙박스에 갇힌 채 우주를 유영하고 있었다. 죽음을 정복한 그의 정신은 상자 속에서 영원히, 끝없는 미래까지 존재를 이어갔다. 하지만 더는 이 상황이 달콤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이제 알았다. 영겁에 가까운 삶을 이어가기 위해선 온전히 세계를 누빌 육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또한 그 육체를 매만져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p. 148)

소설은 인간의 존재를 규정하는 기준에 대한 질문과 함께 로맨스도 빠트리지 않고 있다. 아무리 인공화되어 가고 기계화되어가도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도 '포스트 휴먼'을 등장시킴으로써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평범한 인간처럼 생각하지 않는 포스트휴먼의 사랑.

이 소설은 외부적 묘사보다는 내부적 묘사가 많아서 미래사회를 연상하게 하는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의 상상력을 부추긴다. 지금과 같은 듯 다른 방식으로 벌어지는 기업내부에서 벌어지는 친족들간의 암투, 인간과 직결된 미래산업에 대한 전망, 인간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은 SF가 이렇게도 상상하게 만들 수 있구나 싶어 놀라웠다.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프로그래밍을 배웠고, 철학을 좋아했지만 결국 경영학을 전공했다는 저자의 이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젊은 작가답게 뒤에 붙여진 '작가의 말은' 시작부터 참신했다. '작가의 말' 을 읽어보며 웃어보긴 또 처음이다.

[강력 경고] 세상에는 책을 펼치자마자 맨 뒤로 달려와 후기부터 읽어대는 폭주족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페이지에는 강력한 스포이러가 포함되어 있사오니, 부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맨 앞으로 돌아가 첫 장부터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p. 312)

이런 발랄한 경고를 보았나 ㅎㅎㅎ

작가는 작품으로만 이야기해야 한다는 믿음이 세간에 널리 퍼진 듯합니다만, 30년 남짓 독자로 살아온 저는 항상 이런 전통이 불만이었습니다. 무릇 작가라는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이 태산보다 높게 쌓인 사람들이며, 독자라는 사람들은 작가의 깊은 마음을 캐내고 싶어 안달 난 광부들이 아니겠습니까. 블루레이 디스크마다 담겨있는 코멘터리 영상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요. 오늘은 저만의 공간을 얻은 기념으로 마음껏 길게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p. 312)

이어지는 작가의 말 또한 이 책을 상상해온 작가의 생각들을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책 내용은 진지하게 읽었는데 작가의 말에서 웃어가며 읽은 것도 처음이지 싶다. 여러모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게 해준 책이다. 그리고 그 경험들이 다 좋았다. 작가의 새로운 작품이 나온다면 찾아 읽고 싶고, 다른 GF시리즈도 읽어보고 싶다는, 독서의 폭을 넓혀준 좋은 SF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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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아들은 처음이라 - 첫 아들을 키우는 엄마를 위한 심리학 수업
안정현 지음 / 꼼지락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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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들을 키우는 엄마를 위한 심리학 수업

아들과 잘 지내는 엄마는 무엇이 다른가!

15년차 심리상담가 안정현 대표가 전하는 엄마와 아들 자존감 성장 프로젝트 (표지 中)

저자는 15년차 심리상담가로 현재 '마음달 심리상담센터' 대표를 맡고 있다. 이 책은 아들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엄마들과의 상담 사례를 통해, 엄마와 아들이 함께 성장하는 대안을 모색한 책이라고 한다. 이 정도의 소개가 있는 책들은 대부분 다 읽었을때 저자의 상담센터로 오라는 얘기인가 싶은 경우가 많았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아서 좋았다. 상담사례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왠지 상담하러 가야할 것만 같은 위화감을 주지 않고 사례를 최소한으로 정리하여 이야기하면서 엄마의 마음상태를 표현해보고자 애쓰는 것이 느껴져서 좋았다.

아들은 커갈수록 남자가 되어가고 엄마는 나이들수록 꼰대가 되어간다. 남자의 뇌로 성장하는 아들의 행동과 말은 여성의 뇌로 고정된 엄마의 사고방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하물며 치유되지 못한 내면의 아이를 마음에 숨긴 엄마라면 더욱 아들을 자식으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욕구충족대상으로 보게 된다.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엄마와 아들이 서로 심리적 거리를 둘 때 아들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라는 저자의 말은 엄마와 아들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자식은 손님처럼 키우라는 말이 있긴 하다. 어차피 떠날 존재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힘든 일인지라 빈둥지증후군이니 소외감/우울중에 시달리는 엄마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나마 딸은 나이들수록 친구가 된다는데, 아들은 그야말로 남같은 존재가 되기 마련이다. 원래 무뚝뚝하던 남편과 달리 애교에 귀여움이 넘쳐나던 아들과 소원해지면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엄마는 아들과 일찍부터 심리적 거리를 두는 것이 꼭 필요하다.

변화는 상대를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타인의 감정을 "그랬구나" 라고 앵무새처럼 따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에서 상대가 그럴 수밖에 없는 타당성을 읽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상담자 또한 내담자들의 구체적인 정보를 알게 되고 대화하게 되면서 내담자가 지각하는 세계를 바라보게 되면 '당신은 그럴 수밖에 없었군요' 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아울러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공감받는 경험을 하면 스스로에 대해 통찰하는 순간이 옵니다. (p. 19)

육아상담프로가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하물며 개그코드로까지 번진 그 멘트! "그랬구나~" 는 사실 그 말 자체 보다도 그 말을 하는 상황에서의 태도나 인지방식이 중요하다. 여성은 공감으로 이해하고 남성은 논리로 이해한다고 하는데, 아들은 '그랬구나' 하며 공감하는 것보다도 '그럴 수 밖에 없었구나' 라고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는 상담사에게 아이를 고치는 방법에 대해서 물어봅니다. 하지만 아이는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p. 21)

상담센터까지 가게 되는 상황은 사실 갈등의 정점까지 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렇게 된 상황이 자녀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 외에도 여러 (상담사례를 바탕으로 한) 심리서들을 읽어봐도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말은 '아이는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문장만 잘 기억하고 살아도 상담센터까지 가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경계선이 없는 어른들은 자녀나 친척의 일을 자신이 다 해줘야 한다고 믿으며 오지랖을 부립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자신의 열등감을 해소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불안한 마음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어른은 타인을 좌죄우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녀를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p. 43)

자녀 수가 많았을 때는 할래야 할 수 없었겠지만, 한명 내지 두명 정도의 아이를 키우는 요즘 시대는 그야말로 아이 중심으로 살게 되기 마련이다. 아이를 왕처럼 모시고 산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왕은 명령을 하는 사람이지 명령을 수행하지 않는다. 아이가 왕인 집에서도 부모는 아이를 통제하기 마련이다. 잘 가르치고 잘 키우겠다는 일념하에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그 완벽함을 아이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흠을 내는 것 같으면 부모는 화를 낸다. 하지만 실패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 갑작스럽게 경험하는 작은 실패들에도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더구나 주도권 이나 승부욕이 강한 아들이라면 더욱 이러한 통제를 감당해내지 못한다. 아들에게 점점 조금씩조금씩 선택권을 주도권을 주는 것은 천천히 오랜 기간 해야 엄마도 겨우 제대로 완전히 넘겨줄 수 있는 때가 온다.

많은 신화들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가진 어머니를 두고 떠납니다. 어머니 품에서 자라던 아이는 아버지가 누군지 알고 싶어서 아버지가 남긴 물건을 찾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있는 고향을 두고 모험을 떠납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아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합니다.

아들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서 어머니를 떠나야만 합니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람은 어머니의 사랑에서 아버지의 사랑으로 이행될 때 정신적 건강과 성숙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자녀에게 따뜻하고 온전한 사랑을 주는 근원입니다. 아들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거나 뛰어남을 증명하지 않아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풉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사회적 상황에서 인증된 방식, 그의 아들이라는 증표를 증명해야 하는 조건적인 사랑을 베풉니다.

만일 신화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찾지 않았다면 고향에서 어머니와 함께 적당히 만족하며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들이 자신이 왕의 아들임을 알기 위해서는 어머니를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들을 보내야 합니다. 품에 낀 아들이 아니라 남자로서 성장한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결국 어머니의 역할인 것 같습니다. (p. 103)

주몽의 아들 유리왕이 그랬고 고대그리스의 아이게우스 왕의 아들 테세우스가 그랬다. 그러고보니 정말 옛날 신화에서 부터 아들은 어머니를 떠나야 성장했다. 아들의 손을 잡고 걷다가 어느날 아들이 손잡고 다니기를 거부할때 엄마는 슬슬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하나보다. 모험의 세상속으로 아들을 떠나보낼 준비를...

심리학자 칼 로저는 부모가 아이를 양육할 때 아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양육되면, 아이는 부모의 긍정적인 면을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부모도 어린 시절을 생각해볼 때 자신의 부모가 어떠한 모습으로 나를 대했을 때 즐거웠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p. 125)

아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양육한다는 것이 아이가 해달라는 데로 다 해준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이에게 맞고 아이가 편안해 하는 방법의 양육방식을 말하는 것일 텐데, 예를 들어 아이에게 운동을 시키고 싶을때 밖에서 몸을 부딪히며 뛰어다니는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을 것이고, 먼지 없는 실내에서 몸싸움없이 단독승부를 벌일 수 있는 탁구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을 것이다. 아이가 원하는 종목으로 운동욕구를 충족했을때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더 들 것이다.

양육법에는 정답이 없고 어떻게 해도 미진한 것 같아서 답답하기만 합니다. 아이의 마음을 잘 따라가고 싶어서 아이가 이것저것 해달라고 하는 대로 하다 보면 결국 한계에 이르게 되어 아이를 다그치게 됩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 또 아이에게 잘못한 것 같아서 스스로를 자책합니다. (p. 185)

희생적인 엄마에 대해 아이도 부담스러워 합니다. 정서적인 짐을 지게 될 때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채무 관계가 됩니다. 아이를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엄마가 자신의 성장을 위해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을 가지는 것 또한 필요합니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아닌 자신이 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자녀에게 벗어나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p. 192)

저자는 <엄마의 주례사> 라는 책을 쓴 김재용 작가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이야기해주고 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갈등이 심화되어 갈때 이 작가는 자기만의 공간인 책상을 마련했다. 책상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듬어 갔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작가는 필요한 사람들과의 만남만을 이어갔다고 한다. 만나서 힘이 되고 서로가 성장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면 정리했다.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고 난 후인 오전시간에 동네엄마들과의 만남은 해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마지막으로 거절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부당한 시댁의 요구에 거절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신을 지키면서 가족을 지켰고 작가가 되었다.

좋은 엄마가 되는 방법은 결국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딸을 키우건 아들을 키우건 자녀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이고 배려이다. 특별한 내용도 아니고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이었지만 차분하게 읽히는 분위기가 좋은 책이었다. 아이를 낳는 순간 엄마의 나이는 아이와 동갑이 된다. 그렇게 아이가 성장하면서 엄마도 성장한다. 다만 엄마는 이런 책을 읽으며 자신의 성장을 먼저 주도할 수 있다. 아이와의 아들과의 관계가 힘들다고 생각될때 나 자신부터 먼저 살펴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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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
이향규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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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제임스 그리고 아버지...

오래된 사진과 일기 속에 감추어져 있던 이야기

잊힌 전쟁을 살아낸 이들에게 보내는 진솔한 마음 (표지 中)

 

이 책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픽션처럼 읽히는 논픽션인데... 일기도 아니고 다큐도 아닌데...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이 느껴지는 이 책은... 진심이라고 해야할까...

저자는 함경도에 고향을 둔 실향민 아버지 의 딸이고

1987년 민주화의 뜨거운 열기를 대학교2학년일때 경험한 세대이며

북한교육사를 연구한 북한전문가로

현재는 영국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는 영국가정의 한국인 며느리이다.

저자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됐을때인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는 장면을 영국에서 티비뉴스로 본 저자는 마음이 몹시 들떴었다. 곧 정전이 선언되고 통일준비를 할 것만 같아서 잔치라도 벌이고 싶은 심정이었고, 친정아버지의 생애가 유언이 떠올라 마음이 분주해졌다. 저자가 아버지를 떠올리며 잊혀진 6.25전쟁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은 역사에 묻힌 개인사의 고난을 묘한 울림으로 전하고 있었다.

2018년 2월 26일, 아버지는 폐렴으로 돌아가셨다.

그의 고향은 함경남도 북청군 신포음이다. 그는 1950년 12월에 어머니와 남동생을 집에 두고 고향을 떠났다. 열다섯살 난 소년은 부산항에서 부두노동을 하면서 전쟁을 넘겼다. 가난한 이에게 친절하지 않은 세상에서 모질게 공부했고, 온전히 혼자 힘으로 훗날 대학교수가 되었다.

겨우 2년전에 눈치를 챘다. 그에게 무슨무슨 교회에서, 무슨무슨 단체에서 보내는 카톡 알림음이 끊임없이 울린다는 것을. 알림음이 나고 몇초 후에는 늘 대한민국을 빨갱이들로부터 구하자는 날선 웅변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때마다 슬그머니 방문을 당았다.

아버지가 의식없이 병상에 누워 있을 때, 그의 핸드폰을 열어봤다. 그에게 지난 몇년 간 끊임없이 말을 걸어주었던 것이 그들이었음을 알았다.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이 그들의 생경한 목소리로 채워진 것이 너무 슬프고 화가 난다. 그런데 그들에게 화가 나는 건지 나에게 화가 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는 생전에 남북이산가족찾기 신청을 하지 않았다. ... 혹시라고 남쪽에 형이 있다는 것이 알려져서 '월남자의 가족'으로 불이익을 당할까봐 걱정해서였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아버지 생각이 나서 울었다. 너무 오래 걸렸다. 70년 세월, 그건 정말 한평생이다. 많은 이들이 그 시간을 다 기다리지 못했다.

남북정상회담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니 누가 '열일하는 대통령'이라고 썼다. 나도 내 몫의 일을 하고 싶어졌다. 그게 뭘까?

저 멀리 있는 멋진 일을 꿈꾸면서 정작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상의 실천은 소홀히 하는 것, 익숙한 함정이다. 그래, 지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한국전쟁 영국군 참전군인'을 찾아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게 '한국' '전쟁' '영국' 을 조합했을 때 가장 쉽게 떠오로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곳에서 더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전쟁터에 나갔던 노인들과 그런 이야기를 같이 나누는 것이 종전을 염원하는 제 나름의 의식이라고 믿었습니다.

(p. 20, 21, 22, 23, 24, 28, 29)

 

실향민 아버지의 죽음과 판문점에서의 남북정상의 만남은 그렇게 저자에게 뭐라도 해야할 것만 같은 자신의 몫을 찾게 했고, 그렇게 찾아다닌 저자의 발자취는 이 한권의 책이 되어 나왔다.

저자는 템즈강변에 '런던 한국전쟁참전기념비'를 찾아가 본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희생에 감사한다는 문구를 보자 어릴 적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자유, 민주주의, 수호 이런 말들 때문입니다. 의문이 들었습니다. '수호라는 것은 지킨다는 뜻인데, 무엇을 지키려면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1950년 대한민국에, 수호할 자유와 민주주의가 있었을까?

그렇다고 이 젊은이들의 희생이 무용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 참전군인들에게 빚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만약 기념비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면 제 마음속의 저항은 훨씬 적었을 것 같습니다. "영국군 장병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발전할 기회를 갖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p. 39, 40)

 

저자가 처음 만난 영국군 참전군인은 짐 그룬디씨이다. 매년 한국을 방문하고 있고 죽으면 부산의 유엔공원에 묻히고 싶다는 노병에 대한 기사를 읽고 그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시신수습팀으로 6.25를 겪었다.

세계1,2차 대전을 전후한 시기는 영국에서도 의무징집을 하던 때였다. 영국 청년들은 열여덟살이 지나면 입영통지서를 받았고, 한국전쟁에 파병된 장병 대부분은 의무징집병이었다. 많은 이들이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지만, 국내의무복무가 아닌 해외파병의 급여가 높았던데다, 먼나라 전쟁터에 대한 모험적 상상력을 지닌 많은 청년들이 한국전쟁을 선택했다. 하지만 영국내 어느 신문이나 텔레비전에도 한국전쟁은 보도되지 않았고, 가족들조차 그 전쟁에 대해 잘 몰랐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물었다. "한동안 안 보이던데 어디 갔었어?"

"한국에 있었어"

"아, 그랬구나"

그것뿐이었다. 아무도 내가 무엇을 겪었는지 묻지 않았다. 사람들은 한국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관심이 없었고 알지도 못했다. 나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영국은 전사자를 본국으로 데려오지 않았다. 미국과 필리핀은 시신을 고향으로 데려갔는데 영국군 전사자는 모두 부산에 묻혔다. (p. 58, 59)

 

짐 그루디씨가 힘겹게 수습했던 영국군 병사들은 모두 부산의 유엔공원에 묻혔고, 본인도 그곳에 묻히고 싶어한다. 한국인에게는 아직까지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는 한국전쟁은 한발짝만 떨어져 바라봐도 이렇게 잊혀진 전쟁이었다. 당연한 현실일텐데도 기분이 묘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영국군 병사에 대한 수소문을 하던 중 저자의 딸이 다니는 학교의 졸업생중에도 참전군인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저자는 그렇게 참전군인 '마이클 호크리지' 에 대한 자료를 모으게 되고, 짐 그루디씨가 전사자의 사진을 모아 유엔기념공원에 얼굴없이 묻힌 묘지에 사진을 붙이는 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마이클의 사진을 전해주게 된다.

짐그루디씨는 '어차피 죽은 사람인데 시신을 수습하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 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전장에 나간 병사들이 전투에서 승리하면 기쁜 것처럼, 우리에겐 시신을 수습하는 게 '빅토리'였습니다. 그건 전쟁터에 시신을 버려둔 북한군에 대한 우리의 빅토리였고,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은 어머니를 위한 빅토리였고,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완수한 것에 대한 빅토리였습니다" (p. 98)

저자는 검색한 신문기사에서 알게된, 한영수교 130주년 및 한국전쟁 휴전 60주년을 기념한 한국전 참전용사 수기 공모전에서 수상한 데이비드 해먼드씨를 만난다.

"저는 이곳에 와서 사람들이 한국전쟁을 '잊힌 전쟁'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는데요, '잊힌 전쟁'이라는 말에 동의하시나요?"

"예, 그럼요!"

"여기서는 잊힌 전쟁이에요. 한국정부는 영국군 참전 군인을 한국으로 초대하고 기억해주는데, 정작 군인들을 전쟁터로 보낸 영국정부는 이를 잊은 것 같아요.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내 손자도 증조할아버지가 한국전쟁에서 싸웠다고 하면, 한국전쟁이 뭐냐고 물어요. 그거 제2차 세계대전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학교에서는 1,2차 대전에 대해서만 가르쳐요. 그건 아주 자세히 가르치고 그 주제로 에세이도 엄청 많이 쓰게 하지요. 손자는 얼마 전에 프랑스와 벨기에에 현장학습도 다녀왔어요. 전적지도 가고 영국 장병들이 묻힌 묘지에 참배도 하고요. 한국전쟁은 그후에 일어난 일인데도 배우지 않습니다." (p. 112)

"그런데 말입니다. 한국전쟁은 왜 시작된 겁니까? 그건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습니까?" (p. 115)

 

영국군 참전용사들은 귀국해서 그 어떤 환영인사도 받지 못했다. 그 어떤 특별대우도 받지 못했다. 그저 직업군인으로 어디 먼 나라 다녀온것 뿐이었다. 그렇게 한국전쟁에서 살아돌아온 영국인 노병이 한국인에게 '그런데 그 전쟁은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냐고' 물으면, 무엇이라 답할 수 있을까... 외국인으로서 나라의 명령으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전쟁이 어떤 전쟁이었는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한 그들에게 한국인으로서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 6.25는 과연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나...

저자가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의 피난시절 일기장을 읽으며 추억하는 아버지는 어린 소년이었고 가난한 시절이었다. 전쟁의 상흔이 개인사에 미친 영향은 죽음이후 남겨진 딸이 아버지를 이해하는데 큰 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진정한 추모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영국에서 11월11일은 추모일 입니다. 영연방국가들과 미국, 프랑스 등 다른 많은 나라도 이날을 기념합니다. 우리로 치면 현충일입니다. 이날이 추모일이 된 것은 1918년 11월11일11시에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매년 이 시각이 되면 2분간 묵념을 합니다. (p. 175)

이곳에서는 '전쟁'이라고 하면 제1차 세계대전을 떠올리는 사람이 제일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게 처음에는 이상했습니다. 100년도 전에 일어난 그 오래된 전쟁을 왜 그렇게 중요하게 기억하는지, 2차대전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1차대전인지... 그건 1차 대전이 사람들에게 준 충격때문일 거라고 했습니다. 현대식 무기 개발로 과거의 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량살상이 벌어진 전쟁, 그전까지 다소 낭만적으로 생각했던 전쟁이 끔찍한 참호 속의 지옥임을 알게 된 전쟁, 정규군으로 시작했으나 중간에 징병제가 실시되어 모든 젊은이가 전쟁터로 나가야 했던 전쟁, 국가간동맹 때문에 뛰어들어서 별다른 명분도 없었던 전쟁, 그래서 1차대전이야말로 전쟁의 비극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일 거라고요.

저는 처음에 '추모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뭔가 빠진 느낌이었습니다. '무엇을' 추모한다는 내용이 없어서 그랬나봅니다. 현충일에는 '충'자가 들어 있어서인지 저는 묵념을 할 때도 자꾸 국가에 대한 충성이 떠올랐는데, '추모'라는 말에는 그저 기억하는 행위만 있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무엇을 추모하는 지 궁금해졌습니다. ... 사람들에게 묻기도 했습니다. ... 대답은 다 달랐고, 가장 많은 답은 그저 '그들'을 기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문이었습니다. 무얼 기억할지는 기억하는 사람의 몫인 것을, 모든 사람들이 '기억해야 하는' 정답 같은 것을 찾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지난해부터 저는 포피를 달면서 한국전쟁 참전군인을 기억합니다. 청년 마이클을 추모하고, 그룬디 씨와 해먼드 씨를 생각합니다. 그 끝에 부두에서 일하는 소년도 따라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p. 177, 178)

 

봄에 영국에서 시작한 저자의 설레임은 여름에 청년병사 마이클을 찾고 가을에 아버지의 일기를 거쳐 겨울에 한국에서의 광화문 촛불집회 참여 와 부산의 유엔기념공원 참배로 잔잔이 가라앉는다. 끊어졌다 이어지는 이 전쟁에 대한 기억찾기 여정은 우리에게 6.25는 어떤 전쟁이었는지 다시 되묻게 한다. 종전과 통일을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서 지나간 전쟁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적어도 11월11일이 막대과자의 날이 아니라 어디선가는 추모의 날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맨체스터에 있는 제국전쟁박물관에 가려고 생각한 것은 '우리가 잊지 않도록?' 이라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특별전시를 보고싶어서였습니다.

제가 이날 본 전시는 '적군의 만행'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적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그에 맞서 우리가 얼마나 용감하게 싸웠는지가 아니라 이 전쟁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줬는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겼는지를 보여주려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한국전쟁을 이렇게 볼 때가 오겠죠. 전투가 아니라 전쟁에 대해 이야기할 날이, 적의 잔혹함이 아니라 전쟁의 가혹함을 이야기할 날이, 오랫동안 끝나지 않았던 전쟁이 사람들에게 남긴 상처를 이야기할 날이, '평범하지 않은 시대를 산 평범한 사람들' 의 이야기를 할 날이요. (p. 200,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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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너머의 통일 - 남북한에 전하는 동서독 통일 이야기
이대희.이재호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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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은 통일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남북통일에 이를 수 있고, 통일 후 우리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30주년을 맞은 동서독 통일 당사자들과 통일전문가, 북한이탈주민들이 전하는 생생한 통일 이야기를 들어본다.

-남북한에 전하는 동사독 통일 이야기- (표지 中)

 

 

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다.

종전이 아니고 휴전중인 상태로 70년이 다 되어간다.

휴전이라는 것은 언제든 다시 개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에 전쟁발발위기라는 이슈는 늘 정치적 뜨거운 감자로 식상하게 존재해 왔다.

본격적인 통일무드가 형성되나 싶더니 한국의 통일문제는 강국들의 계륵이 되어 정체모드 중이다.

통일을 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통일 해야지 라고 답하면서 떠오르는 나라는 독일일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분단됐던 나라 그러나 분단 30년만에 통일된 나라 분단과 통일의 상징 베를린 장벽

남북한 통일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통일을 흡수통일이리라 당연히 지레짐작하고 드는 마음일 것이다. 지금도 먹고살기 빠듯한데 군식구가 더 생기는 듯한 느낌이라서.

하지만 독일과 한국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통일은 막연한 환상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비로서 깨닫게 되었다.

세계2차대전 후 휘몰아친 냉전시기 동독과 서독, 북한과 남한 은 분단되었다.

그러나 동독과 서독은 분단이후에도 교류가 끊이지 않았고 서로의 티비방송도 보고 친척들 간의 왕래도 가능했다. 정치체제가 달랐을뿐 삶의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모든 인간은 노동해야 한다는 이념아래 일당독재였으나 일인독재는 아니었던 동독은 남녀가 평등하게 노동했고 노동의 대가또한 평등했으며 육아는 국가에서 책임졌고 공동체문화가 확산되었다. 자본주의 서독에서는 돈과 자유가 넘쳐나면서 경쟁이 심화되고 개인주의가 팽배했으며 여성은 집과 육아에 묶였으나 경제적 삶이 빠르게 윤택해졌다.

무엇보다 동독과 서독은 서로간에 내전없이 정치적으로 분단이 결정되었고 그래서 시멘트벽하나 세우는 것으로 분단이 유지되었으며 오랜역사를 지난 종교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은 더이상 참혹할 수 없는 내전 이후 강국들의 결정에 따라 분단되었고 지뢰밭과 철조망이 켜켜이 둘러쳐진 38선으로 분단이 유지되었다.

남북한의 교류는 있을 수 없었고 서로의 고립속에 격차는 더욱 심화되었다. 그렇게 분단의 세월은 독일분단시기의 2배를 넘어섰다.

같은 언어을 쓰는 민족이므로 통일만 되면 그럭저럭 자연스럽게 합쳐질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일 뿐임을 독일의 통일을 살펴보며 알게 되었다.

남북한보다 평화적 관계였고 교류도 있었던 독일의 통일도 아직 진행중이었다. 하물며 우리의 통일은 더 어려움이 있으면 있지 쉬울리가 없다. 서독중심의 흡수통일은 통일의 모델이 아니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것이었다.

책을 읽으며 알게된 동독과 북한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시민의 민주화 운동 이었다.

흔히 한국에서는 동서독 통일을 '독일 통일'로 표기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는 잘못됐다. 독일에서 동서독 통일은 '재통일' 로 표기한다. '독일 통일'은 프로이센 제국에 의한 1871년의 독일 제국 성립을 뜻한다. 독일 재통일을 시간순으로 정리할 때, 서독의 동방 정책만큼 중요하게 거론해야 할 사건이 동독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된 민주화 운동이다. 동방 정책이 행정부 차원에서 주도한 움직이며, 이념 대결의 승리자였던 서독이 주도한 정책인 데 반해 동독 민주화 운동은 인민 스스로 민주주의와 자유 여행을 요구하며 들고 일어난 운동이라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한국이 반독재 투쟁으로 민주 정권을 쟁취하던 때에 동독에서도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p. 23)

민주화 운동은 실제 결실도 낳았다. SED(동독 사회주의 통일당 = 동독 집권당)은 독재를 포기하고 자유선거를 받아들이는 한편, 민주화 운동 대표자들과 함께 새동독 헌법 개정 논의를 위한 시민의회가구 창설안도 받아들였다. 시민의 힘으로 새로운 민주 국가 동독이 만들어질 역사적 수간이 코앞이었다. 하지만 1990년 5월 동서 마르크화 통합이 이뤄짐에 따라 사실상 동서독은 하나가 되고, '민주 동독'을 꿈꾸던 이들은 도둑처럼 찾아온 통일 독일에 적응해야만 했다. (p. 24)

 

동독은 통일을 당했다. 동독이 비록 독재 체제를 유지한 국가이긴 했으나, 인민이 인민으로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북한에 비해 인민권이 강하게 살아있던 사회였다. 그리고 스스로 민주화의 열망을 품고 평화적 민주화 운동을 하던 때에 정치적 결정이 통일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이루어진 통일은 동독인들에게 큰 혼란을 가져왔고 통일이후 30년이 지난 지금도 사회의 주류층은 서독엘리트 들이고 동독인들은 차별을 경험하고 있었다.

"동독에서는 전반적으로 재통일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통일을 통해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이른바 '제2의 시민'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죠. 특히 나이가 많은신 분은 본인이 무엇인가 잘못했기 때문에 동독이 망했다고 생각합니다. 동독 사회에서 소위 '잘나가던' 사람도 재통일 이후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 적응 역시 쉽지 않았고요. 저는 그래서 동독 출신자는 '움직이지 않은 이주민' 이라고 생각합니다." (p. 65)

동독은 민주화 투쟁의 승리로 얻은 자발적 인민민주주의 체제의 성립을 코앞에 두고 서독에 흡수됐다. 이로 인해 동독은 '일 국가 이 체제' 식의 연방제 후 통일 이라는 절차를 밟지 못하고, 서독 체제를 일방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패배자가 됐다. 이 상황에서 기존 자기 체제를 송두리째 부정당한 구 동독인의 열패감이 공동체 개념, 복지 체제 등에 대한 향수로 나타났다. (p. 107)

 

이산가족의 아픔을 어루만지려 하는 통일, 한민족이니까 하는 통일 그런말들은 다 가면적이다. 세금의 대부분을 군비로 쓰는 분단국, 작은 땅덩리에서 자원조차 없는 분단국, 지리적 이용가치로 강국들에게 끊임없이 이용당하는 분단국 의 위치를 벗어나야 하기에 통일은 이루어져야 한다. 심화되는 세계자본주의시대에 경제적우위를 선점하는 방법은 이제 통일 뿐이기 때문에 통일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통일의 구상은 구체적이고 장기적이어야 한다. 경제적 우위를 지녔다는 자만심으로 흡수통일을 쉽게 생각하는 것은 같이 망하자는 것이고, 최대한 빨리 진행하자는 것은 후폭풍의 고난을 간과하는 것이다. 동독과 서독 그리로 하나된 독일의 현재를 면밀히 살펴보면서 남북한의 통일은 세세히 계획되어야 하고 그 주체는 다른 나라가 아닌 우리여야 한다.

대부분 인터뷰이에게 '당신은 자신을 동독인이라 생각하느냐, 독일인이라 생각하느냐, 유럽인이라 생각하느냐' 고 물었는데, 적잖은 인터뷰이가 자신을 '튀링엔 사람', '예나사람' 이라고들 답변했다. 국가를 정체성의 기본 단위로 생각한 아시아 사람인 필자들과 유럽인의 사고방식 차리를 이런 국면에서 느낄 수 있었다. (p. 157)

독일은 나치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국가' 개념 자체를 경원하는 분위기가 짙다. 독일 행정 체계는 연방제다. 베를린 정체성, 드레스덴 정체성이 국가보다 앞선다. 더구나 독일은 유럽엽합의 거두다. 밀레니얼 세대는 유럽인 정체성 교육을 받는다. 국가주의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반대로, 남북한의 경우 일단 통일이 된다면 사회 통합이 독일보다 쉬울 수 있다. 남북한 사람 모두 국가주의 정체성을 강하게 주입받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p. 192)

"한국 사람들은 흔히 통일을 이야기할 때 한반도 통일이 독일 재통일 과정과 흡사하리라 전제하는 듯합니다. 그건 오류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미 자본주의와하고 있는 북한이 나름의 경제적 성장을 이룬 후에야 통일 프로세스가 시작될 겁니다. 북한이 한국과 비슷한 발전 과정(개발 독재)을 거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은 텅 빈 공간이 아닙니다. 이미 재벌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p. 193)

북한의 내부 취약성, 곧 강고한 독재 체제를 역으로 보자면 오히려 남북 평화 공존이 더 쉬울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 한 사람만 결심해도 대남 태도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김위원장의 결심이 실제 달라진 모습으로 구현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북한은 강력한 관료제의 힘이 작동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이 보여 주는 불확실한 태도의 배경에는 이처럼 바깥의 우리는 이해하지 못할 그들만의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p. 201)

북한 이탈 주민, 나아가 북한은 흔히 정치적 잣대로 양극단의 대접을 받는다. 한편에는 북한을 악마화하는 세력이 있다. 그들에게 북한 이탈 주민은 북한의 악마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존재다. 다른 한편에는 북한과 적극적인 화해를 염원하는 세력이 있다. 그들에게 당장 김정은 정권을 큰 목소리로 비난하는 북한 이탈 주민은 논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저 한국에 들어온 이들을 조용히 지원하는 데 그들은 집중한다. 한편에선 정치적 도구로만, 다른 한편에선 일방적 시혜의 대상으로만 북한 이탈 주민을 소모한다. 일장적 타자화가 진행되는 현실에 북한 이탈 주민의 목소리가 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동독을 흡수한 통일 독일이 동독을 소모한 바로 그 구도다.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도 통일을 완수하지 못한' 독일 사회가 낳은 부작용이 고스란히 예상되는 그 길을 택할 것인가, 우리 사회의 전반의 질을 끌어올릴 기회로 보고 북한 이탈 주민을 동등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북한 이탈 주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점검할 때다. (p. 225)

 

읽을 수록 독일과 한국은 너무 달랐다. 읽을 수록 통일은 정치적인 이슈만은 아니었다. 통일은 미래를 준비하는 모두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되어야 했다. 다만 그 선택을 하는 주체가 정치인들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이어야 한다는 것은 버거운 깨달음이었다. 그러나 필요한 깨달음이었다. 이 책에 담긴 독일인들의 목소리가 통일을 준비하는 이들의 귓가에 제대로 콕콕 박혔으면 좋겠다. 짧고 쉽게 읽히면서도 통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게 하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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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온통 화학이야 - 유튜브 스타 과학자의 하루
마이 티 응우옌 킴 지음, 배명자 옮김, 김민경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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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으로 뭘 할 수 있냐고? 뭐든 다!

 분자 덕후 과학자의 하루를 따라가면 화학이 취미처럼 재밌어진다

 <유투브 스타 과학자의 하루>

 

저자는 화학자이자 과학저널리스트로, 유투브 채널 mailLab 마이랩 을 운영하며 과학을 전염병처럼 퍼트리는 미션을 수행중인 신세대 과학자다.

아침에 눈뜨는 순간부터 저녁파티까지, 하루의 순간순간을 캐치하여 화학으로 연결키는 에피소드들은 통통 튀는 말투와 과학적 지식이 어우러지면서 크게 어렵지 않게 책을 읽어나가게 한다. (물론, 중간중간 전문적인 화학용어들은 자체적으로 패~스 했다. 그러나 내용전개에 무리는 없었다 ^^;;;)

아침에 눈을 뜬다. 거의 자동적으로 커피부터 찾는다. 이때부터 저자의 화학적 일상은 나의 일상과 연결되기 시작한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커피를 내린다. 첫 커피는 잠에서 깬 직후가 아니라 한 시간 뒤에 마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신체가 자체 생산한 각성제, 즉 코르티솔이 침대에서 나올 때 이미 분비됐기 때문이다. 카페인이 하는 역할돌 어차피 몸을 부추겨 코르티솔을 생산하도록 하는 것이다. 눈 뜨자마자 커피를 마시면 결국 아침 코르티솔에 커피 코르티솔을 더하는 것이니 이상적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몸은 그런식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몸은 균형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몸은 자체적으로 아침 각성제 생산량을 줄임으로써 커피가 들어올 것에 대비한다. 그러므로 몸이 할 일을 하게 하려면, 자체 생산하는 코르티솔의 분비가 잔잔해질 때까지 한 시간 정도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 자체 각성제가 효력을 잃을 때쯤 커피라는 각성제 한 잔을 추가하는 것이다. (p. 22)

아침에 눈 뜨자마자 커피를 내리는 일은 사실 쉽지 않다.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가고 아침먹을거리도 좀 준비하고 하다보면 내게 커피마실 수 있는 시간은 대개 일어나서 한시간쯤 지나서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 때 커피를 마셨을때 비로소 머리가 깨이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나도 모르게 나는 커피의 각성제 역할을 가장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었던 거다. wow !

모든 입자와 입자로 구성된 모든 것을 포함하는 우주 전체가 열역학적제1법칙을 따른다. 그것은 에너지보존법칙과 동일하다. 에너지보존법칙이란 에너지가 창조되거나 소멸하지 않고 그저 모습만 바꾼다는 뜻이다. '에너지 총량은 언제나 똑깥이 유지된다' 라고 말해도 된다. ... 그러니 만약 일상에서 사람들이 "에너지를 써서 없앤다" 라고 말하면, 물리학자나 화학자가 크게 화를 낼 수도 있다. (p. 27)

온도가 결국 입자의 움직임이라면, 열역학제2법칙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 법칙은 이렇다. 열은 언제나 따뜻한 곳에서 찬 곳으로 흐름다. 절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콜라 한 병을 얼음이 담긴 양동이에 꽂아두면 콜라가 시원해진다. 이때 보통은 얼음의 냉기가 병으로 흐른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정확히 그 반대다. 즉, 병의 온기가 얼음으로 흐른다. 그 온기로 얼음이 녹고 온기를 잃은 병은 차가워진다. 이제 이런 지식을 얻은 당신은 누군가가 "창문 닫아, 냉기가 들어오잖아" 라고 말하면, 열역학적 헛소리를 참지 못하고 이렇게 대꾸하게 될 것이다. "방의 온기가 나간다는 얘기지?" 또 누군가가 "에너지를 써서 없앤다" 라고 말할 때마다 크게 흥분한다면, 당신은 아주 자연스럽게 과학 괴짜들 틈에 섞여들 수 있다. 바야흐로 당신은 물리화학 입문 과정을 마쳤다. 짝짝짝, 진심으로 축하한다! (p. 30)

 

바야흐로 책 읽기 딱 좋은 가을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다. 이제 슬슬 아침저녁으로 창문을 닫는 계절이 된 것이다. 창문이 열려 있으면 항상 '찬바람 들어오잖아 어서 창문닫아' 라고 말하곤 했는데... 열역학제2법칙에 말도 안되는 말이었다. 온기가 나가는 거였다! 나는 이제 누군가에게 창문을 닫으라고 말하면서 열역학제2법칙을 거들먹거리며 씨익 웃을 수 있게 되었다. ㅍㅎㅎ

커피한잔 하고 창문을 열며 치약에 불소가 왜 있어야 하는지, 욕실의 비누 샴푸 바스에 계면활성제가 왜 있어야 하는지 저자의 설명을 읽다보면 아하~! 하게 된다. 이렇게 책을 열심히 읽느라 한참을 앉아있었는데, 저자는 오래 앉아있는 것은 제2의흡연이라며 움직이라고 하고, 좀 움직이다 다시 책을 집어드니 실험의 기본적인 설정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주기 시작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강의는 그저 청중의 시간을 허비할 뿐이지만, 이해하기 어렵게 작성된 논문은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언제나 누군가 다른 사람을 통해 이해도를 시험하는 것이 가장 좋다. 스스로 시험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안 되는데, 자기 자신은 무엇이 쉽게 이해되고 무엇이 이해되지 않는지를 구별하는 감각을 이미 잃었기 때문이다. (p. 159)

저자는 친구의 논문을 읽어주며 한 말이지만,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저자의 소통방식을 생각했다. 저자는 유투브에 정기적으로 과학동영상을 올리고 수시로 소통한다. 과학자들 사이의 전문가의 덫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뿐 아니라 과감히 그건 덫이라고 일반인들에게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좋은 말들로 쉽게 풀어 설명해준다. 과학의 벽을 없앰으로써 과학의 대중화에 온 열의를 다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과학실험의 의미나 과학자들의 여견등에 대한 이야기들도 신선했지만, 지루해질 수도 있을법한 내용이다 싶으면 바로바로 분위기를 전환하는 재치도 돋보인다. 예를들어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인간이 우주로 우주복 없이 나갔을때 그렇게 얼어붙지 않는 이유나 방귀실험 같은 에피소드들을 풀어놓으며 과학책을 읽는데 키득키득 웃게 만든다.

'케미가 맞다' 라는 표현은 참 흥미롭다. '케미', 즉 '화학'을 가장 긍정적으로 사용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캐미! 비화학자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사랑에서도 화학, 그러니까 과학을 전적으로 믿는다. 너무 낭만적이지 않다고? 글쎄, 정말 그럴까? 세상을 과학적으로 본다고 해서 세상의 마법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p. 263)

'과학적 지식에서 나온 모든 흥미로운 물음에서 더 많은 매력, 더 많은 비밀, 더 많은 기적이 추가됩니다. 언제나 추가만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과학이 뭔가를 없앤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파인먼의 말에 모든 과학자가 열정적으로 박수를 보내며 외친다. "옳소!" 과학자가 아닌 당신도 이제 파인먼처럼 생각하기를, 나는 속으로 조용히 희망한다. 사물을 더 정확히 이해하면 그 사물이 더 매혹적으로 보인다. (p. 264)

 

그러고보니 언젠가부터 일상에서 조화로운 관계에 대해 '케미' 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저자가 '세상은 온통 화학이야' 라고 외치기 전에 우리는 이미 세상을 온통 화학으로 접하고 있었는지도 ^^

<동남아시아인 30~40퍼센트가 유전적으로 술을 못 마신다> 며 독일에 사는 베트남 사람인 저자는 술을 전혀 못마신다고 하면서도, 저녁파티에 와인은 꼭 준비한다고 한다. 그렇게 친구의 잔에는 와인을 자신의 와인잔에는 물을 따라놓고 신나게 건배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넘치는 열정적 객관성을 위하여!"

과학은 객관성의 대표적인 분야이지만, 객관성은 왠지 정리정돈이나 차가운무언가를 떠올리게 하지만, 저자가 알려주는 과학은 열정 그자체였으므로, 저자처럼 뜨거운 과학자의 건배사로 이정도의 적절한 표현이 또 있을까 싶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도 잔을 높이 들고 저자에게 건배하고 싶어진다. "넘치는 열정적 객관성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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