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 역사, 형식, 이론 북캠퍼스 지식 포디움 시리즈 1
한스 포어랜더 지음, 나종석 옮김 / 북캠퍼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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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정체(政體)가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아마도 거의 무의식적이다할만큼 자동적으로 민주주의다 라고 모두들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잠깐 멈추어 생각해보면... 정말 그런가? 하면서 의문점이 꼬리를 남기지 않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과연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시대인가? 아니라고 해도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일단 민주주의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너무나 근본적 질문 같지만 혼란스러울 수록 다시 근본부터 차근차근 따져봐야 하니까.

민주주의 시대는 1989, 90년에야 진정으로 시작된 듯 보였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되고 민주주의는 개가를 불렀다.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모델은 체제 경쟁에서 경쟁자를 물리친 듯 보였으며 많은 이들이 보기에 이데올로기적 논쟁의 '역사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 했다. 현실 사회주의 독재가 종식되면서 나치즘, 파시즘, 공산주의와 같이 20세기를 '극단의 시대'(홉스봄)로 만든 역사적 대안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주의 개선 행진은 멈출 수 없었다. 민주주의 정부 형태는 몇 차례의 물결 속에서 반대자들에 맞서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p. 5) 하지만 이 같은 양상은 최근 퇴색되었다. -서문 中-

'민주주의 정부 형태가...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이 문장에서 눈길을 끈 것은 과거형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보였지만 사실은 아니란 얘기, '서문'에서 제시한 몇몇의 사례들 만으로도 그 승리감은 '퇴색된'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니 더욱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무엇이 민주주의인가? 민주주의가 과연 올바른 방향이었나? [플라톤에 따르면 아티게 민주주의가 그토록 위대했을지언정 소크라테스 한 사람도 감내하지 못했다. 아티케 민주주의는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p. 8)]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무엇을 감내하지 못하고 있는가? [고대로부터 제기되어온 오래된 문제가 근대에 새롭고도 더욱 시급하게 떠올랐다. 민주주의란 모든 시민이 정치의 심의, 결정, 집행 과정에 포괄적으로 참여해야 함을 의미하는가? (p. 11)] 민주주의는 사실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그러니 이제라도 우리는 되짚어 봐야 한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는가'

도시에 독재자보다 더 해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네.

무엇보다도 그런 도시에서는 공공의 법이 없고,

한 사람이 법을 독차지하여 자신을 위해 통치를 하기

때문일세. 그리고 그것은 이미 평등이 아닐세.

하지만 일단 법이 성문화되면 힘없는 자나

부자나 동등한 권리를 갖게 된다네.

그러면 부유한 시민이 나쁜 짓을 할 경우

힘없는 자가 비판을 할 수 있으며,

약자도 옳으면 강자를 이길 수 있다네.

자유란 이런 것일세. "누가 도시에 유익한 안건을

갖고 있어 공론에 부치기를 원하십니까?"

원하는 자는 이름을 날리고, 원치 않는 자는 침묵하면

된다네. 도시에 이보다 더한 평등이 어디 있겠는가?

'누가 이 나라의 독재자요?'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1 [탄원하는 여인들]>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2018 (<민주주의> p. 17)

위와 같은 테세우스의 웅변에 테바이에서 온 전령은 아래와 같이 군주정에 대한 찬가를 부른다.


(...) 나를 보낸 도시에서는 군중이 아니라

단 한사람에 의해 통치권이 행사되며, 허튼소리로

우롱하며 순전히 제 이익을 위해 도시를 때로는 이리로,

저리로 끌고 다니는 자는 아무도 없으니까요.

(...) 제대로 연설도 할 줄 모르는 주제에

백성들이 어떻게 도시를 바르게 다스릴 수 있겠어요?

지식이란 단기간이 아니라 오랜 경험에서 얻어지는

것이지요. 설사 가난한 농부가 멍청한 바보는

아니라 하더라도 일에 쫓기다 보면 정치에

주의를 기울일 수가 없지요. (...)

[에우리피데스는 테바이 전령을 민주주의 비판의 대변자로 삼았다. 인민은 '천민'으로, 민주주의는 선동가와 수다꾼들의 행사로, 평범한 사람은 정치할 능력이 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p. 19)] 테세우스의 말도 테바이 전령의 말도 다 논리적이지 않은가? 이래서 어떤 사상이나 개념에 대한 근본부터 차근차근 짚어보려면 고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저자는 [하지만 아테나이에 거의 200년 동안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민주주의가 있었다는 사실은 테바이인의 몰이해로 바뀌지 않는다. (p. 19)] 라고 말하지만 글쎄... 요즘 사람들은 이런저런 쓸데없는 말들에 피곤이 쌓인 요즘 사람들은 어느 쪽에 더 마음이 갈까? 나는 왠지 테바이 전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그러니 이 시대가 민주주의도 아닌 독재도 아닌 어중간한 폭력의 시대로 변해가고 있는게 아니겠는가... 흉악범죄가 늘어나고 있다는건 그런 죄를 저질러도 아니 그보다 더한 죄를 저질러도 아무 처벌 받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그렇다면 나도 혹은 나쯤은 하며 범죄를 저지르는게 아닐까... 범죄의 악순환이 시작된거 같아서 무서운 시대가 되버렸다. 요즘은...

아테나이의 폴리스 집회 민주주의는 의회 민주주의도 아니었고 현대 민주주의국가들과 같은 정당 민주주의도 아니었다. 폴리스 민주주의의 중심에는 논쟁, 즉 숙의 행위를 통한 결정의 저울질이 있었다. 따라서 숙의 민주주의는 현대 민주주의 이론을 통한 그 르네상스가 시사하는 것처럼 21세기의 발명품이 아니다. 그것은 아테나이 민주주의의 자기 이해와 작동 방식을 나타낸다. (p. 45)

저자는 민주주의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을 아테네 민주주의부터 차근차근 설명한다. [아테나이인들이 이해한 평등은 개인적 권리, 특히 인격적으로 이해된 권리의 평등과 동일할 수 없었다. 개인은 아테나이 폴리스의 구성원으로서 정의되었으며 폴리스 안에서 자유롭고 평등했다. (p. 50)] 폴리스 민주주의는 경계가 분명했을 뿐만 아니라 그 발전에 이바지하는 많은 조건이 전제되어 있었다. (p. 52)] 수천년전의 정체와 지금의 정체가 '민주주의'로 퉁쳐질 수 있는 게 아님을 책을 읽으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민주정과 과두정의 결정적 차이는 민주정은 빈민의 지배를, 과두정은 부자의 지배를 반영했다는 데 있다. (p. 57)] 지금 시대가... 과두정인줄 ㅋ 여하튼,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매 시대마다 그 모습을 변형시켜왔다. 하지만 그 어느 시대에서도 최선의 혹은 최고의 정치체제로 인정받지는 못한것 같다. 고대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혼합정체를 제안했다. 민주주의는 태동부터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정체였다. 그러니 고대그리스 이후 민주주의 맥이 끊겼다가 새롭게 다시 등장한 근대 민주주의 시대가 되어서는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로마 자체는 민주정이 아니었다. 공화정 시대의 정치에서 시민의 역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로마공화정은 귀족 지배라기보다 과두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p. 60)] 미국은 로마의 공화정을 이은 것처럼 보이던데... 역시 지금 시대는 과두정이었나...ㅋ

공화정은 무엇보다도 제후의 지배와 군주정에 대한 제한 및 반대 개념이었다. 이 개념은 그 자체로서 합의에 의해 보호되는 시민 통치라는 중세 말의 이상을 가리켰다. 그것은 이중적 의미에서 자유에 기반한 통치였다. 한편으로는 군주의 통치를 받지 않고 제후의 군주적 개입으로부터 독립성을 지키고자 하는 자유국가가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자유는 시민의 자치를 의미했다. 이 두 가지가 자유로운 삶이라는 이상에서 결합되었다. (p. 70)

루소는 폴리스 정통을 이어받았으며 사회계약을 통해 성립되는 자신의 공동체를 '공화국'개념으로 정립했다. 민주주의 개념의 역사에서 아이러니는 이처럼 근대 민주주의를 확립할 때 민주주의가 실제로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p. 75)

[르네상스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 뿐만 아니라 특히 표현 예술을 통해 이미 낡은 세계상을 뒤흔들어놓았고, 개인을 그의 자연적, 정치적 환경의 형성자로 보는 새로운 이해의 단초를 마련했다. (p. 81)] 민주주의 발전사에서도 르네상스는 획기적 변혁의 시점이었다. [모든 정치 질서, 특히 민주적 질서는 이제 개인과 그 자유의 관점에서 사유되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개인들의 다양한 이해 관계와 가치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가 숨겨져 있었다. (p. 82)] 그랬다. 민주주의는 정치체제 관점에서만 다뤄질 수 없었다. 바야흐로 상업의 시대가 오고 있었고 그렇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로 함께 설명되어질 수밖에 없는 시대로 되어갔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이제 그 경계가가 불분명해 보인다...

북아메리카에는 아테나이의 모범에 기초한 집회 민주주의인 '순수 민주주의'가 아니라 온건한 대의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다른 체제가 확립되어야 했다. (...)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온건한 옛 공화주의 전통 안에 서 있었다. (p. 95) 개인의 이해관계보다 공동 이익을 우선시하지 않는 사회의 문제를 직접적인 인민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대의제 기구와 '이중으로 안전한' 수직적, 수평적 권력분립 체계를 통해 해결하려 했다. '야망을 상쇄하기 위해서 야망이 만들어져야 했다.' (p. 98) 연방주의자들은 견제와 균형의 체계, 즉 연방 수준 개별 기관들 사이의 그리고 연방 국가와 연방주들 사이의 권력 억제와 권력 균형의 체계를 고안했다. (p. 100)

겉으로만 봐서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들의 정치체제가 다 비슷비슷해 보였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연방제는 잘 이해되지 않았었다. 민주주의 역사를 훑어오는 이 책에서 미국의 연방제가 왜 그런 모습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역시나 역사를 알아야 정치든 철학이든 경제든 뭐든 역사를 통해서야 이해가 된다. 미국 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대표격이라 할만한 영국과 프랑스에서의 민주주의 변화도 살펴볼 수 있었는데, 나라별로 살펴보니 이또한 역시 케바케였음을 알 수 있었다. 민주주의라고 하나로 그저 퉁칠 수가 없는 것이다...


자코뱅의 '덕'의 테러는 독일의 많은 사람이 프랑스식 급진적 민주공화주의와 거리를 두는 이유가 되었다. 독일에서만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p. 112) 독일에서는 공화주의를 반군주정 통치의 한 형식이 아니라 개혁적이고 합법적인 정부 운영 방식으로 이해하는 길이 구상되었다. 이러한 구분을 통해 칸트는 '진정한 공화주의'의 합법적 정부와 전제정치 사이의 오래된 구분을 다시 채택한 급진적 민주공화주의의 완화된 버전을 표명했다. (p. 113)

미영프에 이어 독일에서의 민주주의가 설명되어질 때 저자가 독일학자라서 그런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니었다. [영국에서는 개인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의 관계가 구성적이었지만 독일에서는 그것이 해체되었다. 북아메리카에서 특징적이었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독일에는 법치국가가 있었지만 민주주의는 없었다. 독일 신민은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누렸지만 국가권력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p. 119)] 독일에서의 민주주의가 따로 다루어져야 했던 이유는 히틀러라는 독재자의 등장이 어떻게 가능했는가를 설명하는 배경이 되기 때문이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의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변화를 독일은 보았다. 그 장단점을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바이마르헌법은 위기에 대비하여 대통령 독재의 예비 헌법을 준비해두었다. 이러한 대통령식 해법은 반의회적이고 반정당 국가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위기 시 정부를 구성하는데 주요 의회 정당들이 더는 필요하지 않았다. (p. 125)] 나라를 자꾸 위기에 처해있다고 설파하는 대통령은 그렇게 독재자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나라도 맨날 위기라고 하지 않나? 그렇다면? ㅎㄷㄷㄷ

민주주의가 정당 민주주의로 전환되었다는 것은 사회문제의 정치화를 의미하기도 했다. 정당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갈등 상황을 정치체제 수준에서 묘사한다. (p. 129)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의 민주주의국가들은 장기적으로 안정화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에 기여한 것은 유럽 분할의 결과로 서유럽 자유민주주의와 동유럽 사회주의, 공산주의 독재 사이에서 발생한 거대한 권력과 안보의 갈등이었다. (p. 137)

서구 민주주의국가들은 20세기 후반에 경제적, 정치적 주변 조건들을 통해 진전된 내적, 제도적 안정성을 발전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생활방식, 가치관, 정치적 방향을 둘러싼 상당한 사회적 갈등을 흡수하고 예전에 배제되거나 주변화되었던 문화적, 인종적, 소수자들을 통합할 수 있게 해주는 사회 문화적 역동성도 발전시켰다. (p. 140) 민주주의는 일반적으로 수용된 정부 형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생활양식이 되었다. (p. 141)

안정화된 서구의 민주주의는 사실 반대편의 불안정한 체제들의 덕을 보고 성장한 셈이었다. 민주주의는 정부 형태일 뿐만 아니라 생황양식이 되었지만 이러한 민주주의에는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고대그리스식 민주주의에 필요한 전제조건과 다를지라도 조건은 필요했다. [안정적이고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전제는 사회에서의 다원성, 문화에서의 다양성 그리고 경제에서의 경쟁이다. 이 사회 영역들의 광범위한 자율성, '국가로부터의 거리' 역시 자주 언급되고 있다. (p. 153)] 하지만 요즘 시대는 어떤가? 다원성, 다양성, 공정한 경쟁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세계화'는 자국의 경제를 더욱 봉쇄화 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인터넷발달에 따른 무분별한 미디어의 정보들은 더욱 시대적 위기를 커지게 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다시 되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위기일까?' (p. 184)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이 1947년 11월 11일에 하원 연설에서 했던 발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민주주의는 모든 정부 형태 중 최악이지만 그보다 나은 형태도 없다"

민주주의가 차악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매우 많은 장점을 겸비하고 있기에 알려진 최선의 지배 형태라고 할 수도 있다. (p. 194)

[시민이 정치체제 자체를 제거하지 않고도 통치자를 제재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지배 형태가 민주주의이다. (p. 196)] 라는 저자의 문장에 희망을 갖고 싶지만... 요즘 시대 굴러가는 걸 보면 솔직히 좀 절망적이다... [민주주의의 모든 질병은 어쩌면 더 많은 민주주의에 의해 치료될 수 있을지 모른다. (A. 스미스) p. 205] 라는 옮긴이의 말에도 여전히 그리 희망이 생겨나진 않는다. 하지만 [현대민주주의가 마주한 도전과 위기 상황을 성찰하기 위해 역사의 여정에서 구성되어온 민주주의의 이상과 가치들을 검토 (p. 206)] 저자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은 있다. [<민주주의>에서 포어랜더가 개관한 민주주의의 개념사 그리고 민주주의의 기능과 작동 조건에 관한 분석은 민주주의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독자에게 제공해줄 것이다. (p. 207)] 라는 역자의 말에 그나마의 기대를 걸어본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과 독자가 아닐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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