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여부를 떠나서 성서를 연구하는 거의 모든 학자가 인정하는 예수에 관한 유일한 역사적 팩트를 딱 하다만 꼽자면, 단연 십자가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 십자가가 무엇인가? 페니키아인의 잔인한 고문방식이다. (...) 역사상 십자가형을 받은 로마 시민은 단 한 사람도 없고, 이 형벌은 오로지 반역자에게만 시행했다. 따라서 십자가 죽음은 그 자체로 메시지를 갖는다. 반로마라는 정치성이다. 그런데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p. 29)
바울이 선교할 때만 해도 굳이 나올 필요가 없었던 예수의 '구체적 생애', 복음서 집필이 절박한 당면 과제가 되었다. 예수의 삶과 어록이 아예 없는 바울의 일방적인 교리만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시대가 끝났다. 교리를 뒷받침하는 예수의 구체적인 인간됨이 필요했다. (p. 31)
복음서 저자가 선택한 전략은 두 가지였다. 첫번째로 평화주의자 예수를 강조했다. 두번째로 예수를 죽인 게 악마의 하수인 유대민족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했다. 그래서 예수를 유대민족과 대적하고 로마를 사랑한 인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p. 32)
본토 유대민족은 이미 전쟁에 패해서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이야말로 무슨 말로 해도 괜찮은, 뒤탈 걱정이 없는 희생양이었다. 그래서 유대민족을 상징하는 인물로 가록 유다가 선택되었다. 이게 이른바 복음서라고 불리는, 신약성서의 문을 여는, 예수의 생애를 담은 네 권(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요한복음)의 정체다. '복음', 즉 누군가에게는 기쁜 소식일 수 있겠지만, 유대민족에게는 날조와 저주로 가득한 기소장이다. 결과적으로 완전범죄를 노리며 증거를 지운, 살인자의 진실 은폐 기록이다. 역사는 진실 여부에 관심이 없다. '언제나' 승리자의 편이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고, 서구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면서 복음서가 은폐한 범죄현장은 아예 성지로 탈바꿈했다. (p.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