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디 얀다르크 - 제5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염기원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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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황상벌청년문학상 수상작

꺼지지 않는 구로디지털단지의 불빛 이 시대 프로야근러가 보여주는 시원한 한 방!

월급에 삶을 저당 잡힌 직딩 노예 사이안. 모두의 워라벨을 위해 구디의 잔다르크가 되다!>>

책의 뒷표지에 한 문학평론가가 <구디 얀다르크>는 21세기형 노동소설이라고 써놓았는데, 읽고 나니 아~! 싶었다.

구디 가디 가 무슨 말인지 몰랐다.

구디는 구로디지털단지, 가디는 가산디지털단지 였다.

두 곳 모두 디지털단지 라는 이름이 붙었으나 첨단도시라는 이름과 상반되는, IT업계의 가장 밑바닥 노동층이 존재하는 동네이기도 했다.​

공단 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때는 공장이 즐비하고 공장노동자가 넘쳐났던 동네는, 디지털단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어도 소규모 월세오피스들이 다닥다닥 붙은 곳에서 비정규직 젊은 인력이 소모되고 있는 동네로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이 작품은 구디와 가디를 오가며 IT업계에서 위아래를 오르내리는 직업을 전전한 프로야근러가 어느새 잔다르크의 후예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사이안. 줄여서 이얀언니라 불리고 나중에 잔다르크와의 합성어인 얀다르크 라는 별칭을 갖게 된 직장인이다.

그녀는 어느날 잔다르크 꿈을 꾼다. 조국에게 버려진 채 적진에서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하는 순간까지 의연했던 잔다르크는 이안에게 속삭인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네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볼게">>

잔다르크 꿈을 꾸고 불려나간 술자리에서 부지불식간에 그녀는 참전을 하게 된다. IT 업계의 노동인권전쟁속으로.


이안은 행복하지 않았다. 아니 행복한 적이 별로 없었다.

평범했다고 생각했던 가정은 IMF의 직격탄을 맞았고, 그 여파는 가족의 파괴로 이어졌다. 그녀는 늘 혼자였다. 혼자였지만 끊임없이 일했다. 아니 혼자였기에 끊임없이 일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된 방한칸 차한대 가지지 못하고 마흔이 되었다.


처음 직장생활은 그래도 남부럽지 않은 회사에서 시작했다. 나름 성취의 맛도 보았고 승진도 해보았다. 하지만 곧 실력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투명한 어항 속 한가득 담은 깨끗한 물도 검은 잉크 한 방울에 더러워진다. 그 더러워진 물을 정화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물 한 방울이 뛰어 들어가봤자 깨끗해지지 않는다. 그 물 한 방울도 금세 수많은 검은 물방울 중 하나가 될 뿐이다. 그 어항을 깨끗하게 하려면 정말 많은 물이 필요하다. 차라리 물방울이 아닌 작고 뾰족한 망치가 필요하다. 어항을 깨뜨려 더러워진 물을 모두 빼낸 후 새 어항에 깨끗한 물을 붓는 게 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 기록된 위대한 인물은 뾰족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대중은 뾰족한 것보다는 부드럽고 쉬운 것에 끌린다. 어항을 깨자는 과격한 사람보다 더러운 물을 한 숟갈씩 떠내고 깨끗한 물을 한 숟갈씩 넣자는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하던 사람에게 권한을 이양해주었다. 그렇게 권한을 얻은 이가 더러운 물을 떠낸 적도, 깨끗한 물을 넣은 적도 없다. 물이 더럽다고 하는 이의 뒤통수를 망치로 후려갈겨 조용히 시킨 후 깨끗해지고 있다고 소리칠 뿐이다.>>


이 어항속 물과 한숟가락의 물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속 노동현장과 그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관통한다. 현실을 드러낸다.


이안에겐 친구가 한 명 있다. 속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친구. 그 친구는 진주.

진주의 신혼집에서 친구와 친구의 남편될 사람과 화기애애한 술자리를 하며 나오는 이안의 속내는 편하지가 않다...

<<무릎이 튀어나온 트레이닝 바지에 솜으로 누빈 패딩 점퍼 차림, 그리고 질끈 묶은 숱 많은 머리. 대학 시절 내내 보여줬던 그녀의 모습과 달라진게 없다. 단과대 학생회장을 맡아  서울까지 올라가 피켓을 들었던 투사는 이제 반지하 신혼집에서 생계와 투쟁하게 될 것이다. 같은 단칸방이지만 그래도 풀옵션 오피스텔에 사는 나와 달리 자본주의 생태계에서 도태된 것처럼 보였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풀옵션 원룸에서 쾌적하게 살 때 이안은  진주가 도태된 것 같았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이안의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능력도 없이 성추행이나 일삼는 상사를 벗어나 이직했을 때만 해도 그녀의 이력은 화려했고 갈 곳도 많았다. 함께 일했던 동료의 제안으로 스타트업 회사에 들어가서 새로운 직무를 할때는 비전도 있고 의욕도 있었다. 하지만 IT 업계의 변화는 너무 빨리 진행되었고, 작은 사무실들은 무너져 갔으며 남은 것은 거대기업에서 하청에하청에하청을 받아 일하는 피라미드같은 문어발세계의 비정규직 임시노동 뿐이었다.


<<그녀가 도움을 구하기 위해 찾아왔을 때 나는 가디에서 시작한 SI업체 유랑기를 마친 뒤였다. 수많은 공장노동자가 근무했던 가리봉동, '공순이'가 눈물을 흘리며 미싱을 돌리던 동네다. 가산동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높은 빌딩이 들어섰지만, 공장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미싱 대신 노트북으로 장비가 교체됐고 섬유 공장이 IT 공장으로 변했다. 나 역시 노트북 하나를 받아 파워포인트나 엑셀과 씨름하며 하루 열다섯시간씩 노동했다. 여행 사이트를 구축하고 쇼핑몰 앱을 만들었다.>>


이안은 세상이 변한 것 같지만 변하지 않은 것을 진즉에 깨달았다.


<<우리 세기말 학번에게 운동권은 개그나 조롱의 대상이었다. 민주화 시대의 거대담론과 80년대 선배들의 구호에 비하면 등록금 투쟁 같은 건 우리에게 와닿지 않았다. 신입생 환영회부터 시작한 술자리마다 학회 선배들은 레이더를 켜고 쓸 만한 인재를 찾았다. 쉽게 동요되고 '아싸'인 애를 등용해 수족으로 부리려는 것이다. 연애와 동아리 모두에 실패한 애들 몇이 짜장면과 소주, 근로장학생으로 뽑아준다는 유인책에 넘어가버렸다. 등록금 투쟁을 한다더니 몇 학기 뒤에 신입생과 함께 전공필수 과목을 재수강하던 그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진주는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리더십을 증명한 애였다. 첫 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을 맞아 서울 집에 온 그녀가 과대표가 됐다고 했을 때 탐탁지 않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진주 외에 내가 아는 그 누구도 학생회와 가깝지 않았다. 그녀는 거대 담론 아래 깔린 학내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투쟁하고 있다고 했다. 계급이니 혁명이니 하는 단어가 나오지 않아서 듣기 불편하지 않았다. 진주는 늘 이상을 꿈꿨지만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디딘 아이였다.>>


이안은 99학번이다. 90년대 후반의 학번들에게 학생운동은 역사속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 학번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늘 관심을 갖게 된다. 롤러코스터에 오르막과 내리막과 속도구간이 있듯이 90년대 초반까지 올라가기만 했던 학생운동은 90년대후반 바닥으로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급격한 하강은 순식간에 이루어졌으며 이천년대 이후 학번들은 아마도 학생운동의 롤러코스터가 뭔지도 모른채 취준생으로 대학생활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어서 그들의 이야기는 늘 궁금했다.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고자 했는지...

민주화 투쟁은 끝났을지 몰라도 노동자의 투쟁은 끝날 수 없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다. 취업을 한다는 건 직장인이 된다는 건 노동자가 된다는 것이기에 노동자로서 얼만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의식을 갖고 사회에 나오는 건지 늘 걱정이 됐다...


이안은 동료들과 노동조합을 만들게 되고 팟캐스트를 진행하게 된다. 그 팟캐스트에서 '구디 얀다르크' 라는 그녀의 두번째 인생의 이름을 얻게 된다. 꿈에서 만났던 잔다르크가 떠올라 소름돋았던 본능은 현실에서 배신으로 확인되었다.


<<노조를 만들며 정의를 말하던 이들 안에 정의가 없었다. 민주주의를 말하던 집행부 안에는 민주가 없었다. 진보를 말하던 정당에는 진보가 없었다. 모든 게 가짜였다. 구디 얀다르크, 나 역시 잔다르크가 아니었다. 가짜다. 잔다르크라면 이토록 허무하고 처참하게 전쟁에 패해 남은 날을 세는 신세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 꿈에 나와 나를 부처겼던 잔다르크가 원망스럽다. 그녀는 왕을 옹립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왕게게 죽임을 당했다. 그 왕 역시 교황의 눈치를 보느라 그랬다. 나 역시 노조를 만들었지만, 정치 구호를 외치는 이들에게 숙청당했다. 그들 역시 명문대를 나온 운동권 출신 기득권의 눈치를 보느라 그랬다. 잔다르크는 마녀재판 혹은 이단재판에 회생됐고, 구디 얀다르크는 정치적 이유로 탄핵당했다. 내가 들은 그녀의 목소리는 혹시 악마의 속삭임이 아니었을까?>>


소설은 다양한 사건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한다.

오랜 기간 IT 업계에서 일했다는 저자의 경험을 살려 IT 업계의 생태를 굉장히 능동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해서 현실감이 높았다.

소설은 다양한 입장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스쳐간다.

IT 업계 관계자의 다양한 입장들을 현실정치와 노조와 노조내의 정치성까지 아우르며 폭넓게 등장시킴으로써 문제의식을 넓혔다.


그런데 너무 빠른 속도는 인물들의 심리에 깊이있게 다가갈 수 없었고 너무 많은 문제는 현실속의 희망을 찾아낼 수 없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화형을 받아들였던 잔다르크 보다, 남자때문에 스스로의 화형을 멈춘 이안의 마지막 선택은 좀 급작스럽고 아쉬웠다.

마녀재판을 받아들이고 모두를 용서하라는 성녀 잔다르크도, 현실에 산재한 수많은 문제들을 피하려고 했다가 남자의 사랑으로 갑자기 세상을 살만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얀다라크도, 비현실적으로 남았다. 소설속에 등장한 수많은 현실보다 더적나라한 현실들이 갑자기 개인의 사랑으로 꿈이었던 잊혀져 버렸다.


하지만 이 작품은 21세기형 노동소설이 맞다.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라는 말이 있을 때는 블루칼라만 노동운동하는 것 같았겠지만,

이제는 화이트칼라 그중에서도 최첨단직종이랄수 있는 IT업계의 직딩들이 얼마나 고된 노동현실 속에 있는지 이 작품만큼 정확하게 묘사한 소설은 없었다.

노동소설은 정확한 현실묘사와 있을법한 허구적 인물이 잘 어우러질 때 높은 직관력을 선물해준다.

이 소설은 가리봉동과 구로공단이 가산디지털단지와 구로디지털단지가 됐어도 여전하다는 것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단결하라 노동자들이여 라는 구호가 연대하자 프리랜서들이여 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혼자 사는 세상이 된 것 같지만, 누구도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함께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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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가까운 사람의 심리적 학대에서 벗어나는 법
샤논 토마스 지음, 송지은 옮김 / 사우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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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의 은밀한 심리적 학대에서 벗어나는 법

눈에 보이지 않는 은밀한 학대를 알아차리고 나를 조종하는 사람에게서 벗어나 부서진 삶을 복구하는 6단계 로드맵

심리적 학대 최고 전문가가 들려주는 다정하고 명쾌한 조언>>

​이 얇은 책이 이렇게 강한 인상을 남길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1장과 2장이 본문이라고 할 수 있고 3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저자의 안내에 따라  써보는 노트이기 때문에 본문은 178페이지까지이다.

200쪽도 안되는 얇은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한장한장의 글들이 충분히 많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저자가 말하듯 심리적 학대는 눈에 보이는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

멍이 들지도 않고 뼈가 부러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삶이 망가진다.

망가지기 시작하거나 망가지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자신이 심리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음을.


그 심리적 상처가 심리적 학대가 자신에게서 가장 가까운 이에 의해 이루어졌기에 일찍 알아챌 수 없었고 알아채고 나서도 벗어나기 힘들고 벗어난 후에도 회복하기 힘들다.

저자는 시원시원하게 말해준다.

그 사람은 독이 되는 사람이라고. 독이되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거리를 두거나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심리적 학대를 당하는 사람은 약한 사람이 아니라고. 오히려 공감능력이 높고 자아성철능력이 높은 사람인 경우가 많다고.

공감능력이 높아서 가해자의 입장을 공감해주려고 노력하고, 자아성찰능력이 높아서 가해자가 한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자신이 받아들이려고 하다보니 더욱 깊고 오래 심리적 학대를 당하게 되는 거라고.

피해자를 생존자라고 지칭하면서 생존자의 탓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해준다.


저자는 자기자신 또한 심리적 학대의 피해자였다고 말한다.

생존자로서 극복하고 심리치료사가 되었다고 자신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사실 치료는 치료자가 그 상처를 직접 겪어보았을 때 가장 큰 공감을 할 수 잇는 것 아니겠는가? 글로 배우는 것보다 몸으로 배우는 것이 더 효과가 큰 법이다. 아무리 유명한 심리학자이고 정신과의사이고 심리치료사라고 해도 학문으로만 배웠다면 그 사람은 평생 진정한 치료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정말 얼마나 힘든 상처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전문가보다 힘든시간을 공유했던 사람이 더 큰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글은 심리적 학대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 같다. 6단계 로드맵을 완성하지 못하더라도. 그 공감의 깊이 만으로도... 위안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처음 읽고 3장의 노트에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문제를 좀더 명확히 해결할 수 있을 테지만, 그게 어려우니까 그렇게 못하니까 심리적 학대를 당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1장과 2장의 내용을 다시 읽고, 때로는 필요한 부분만 조금씩 읽어가며, 언젠가 3장의 노트부분에 자신의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을 때, 그때 극복의 에너지를 갖게 되는 것일지도... 책장에 꽂아두고 그 기운을 계속 느껴야 하는 책이다. 저자의 응원이 필요할 때 꺼내 볼 수 있도록...

 

ps. 밑줄치고 싶은 문장이 참 많았다. 생각날 때 다시 읽어볼 수 있도록 여기에 조금 적어놓아 본다.

 

학대 피해자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을 바꾸고 싶어서 상담을 받으려고 한다. 반면 심리적 학대의 가해자는 다른 사람이 변하길 기대한다. 자신은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독이 되는 사람' 이라는 용어가 간간이 사용될 것이다. 이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나르시시스트)와 반사회적 성격장애(소시오패스 또는 사이코패스)의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나르시시스트,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진단 기준에 부합하는 이들은 대부분 정식으로 진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들 중 자발적으로 상담을 받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가 임상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 나르시시스트는 당신의 차를 들이받고는 당신이 자기를 방해했다며 질책할 것이다. 당신이 어떻게 해서 자기 차를 망가뜨렸는지 끝도 없이 불평할 것이다.

- 소시오패스는 당신의 차를 들이받고는 당신이 자기를 방해했다고 질책하며 히죽댈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혼란을 보며 속으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 사이코패스는 치밀하게 계산된 방법으로 당신의 차를 들이받으면서 웃는다. 그리고 피해를 최대로 주기 위해 다시 들이받는다.

성격장애의 차이점은 얼마나 극심한 해를 가하느냐에 달렸다. 이들은 타인에게 진정한 애착을 갖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고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가해자는 자신에게조차 정직하지 않으며 자신의 거짓말을 진짜로 믿는 사람이다.


나르시시스트,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는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양육에 필요한 기본적인 공감 능력과 희생적인 면모가 없다. 아이보다 자신의 필요를 먼저 챙기면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된 자녀가 분노하는 것은 정당하다. 가해자인 부모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어째서 우리 집은 다른 집처럼 화목하지 못한지 궁금해 한다. 독이 되는 부모는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성찰하지 못한다.

심리적인 학대를 가하는 가족은 표적이 되는 희생양이 없이는 살지 못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에 직면해야 할 테니 말이다.


생존자는 독이 되는 가족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게 된다. 무언의 요구이든 말로 표현하는 요구사항이든 간에 말이다. 자신의 안전과 평화는 중요하지 않다고 배우며 자란 사람이 특히 의무감이 강하다.

가족들의 학대에서 치유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생존자의 깊은 믿음을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의 학대에서 회복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이해하는 게 치유에 큰 도움이 된다.


독이 되는 사람들은 연기력이 뛰어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관계를 좌지우지하려고 한다.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눈물을 이용하기도 한다. 달라진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을 땐 감정을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생존자를 조종해서 자신이 주도하는 게임으로 다시 끌어들이려는 수작이다. 남을 이용하는 자들은 온갖 감정 연기로 주변 사람들을 조종하려 한다. 눈물 뿐만 아니라 죄책감을 이용하기도 한다. 생존자가 경계를 설정하려고 하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든다.

가해자는 자신의 의도를 감추려고 애쓴다. 거짓말을 하고 생존자에게 책임을 돌린다. 수많은 사건을 통해 깊은 상처를 받고 나서야 학대의 패턴이 보인다. 심리적인 학대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독이 되는 사람은 의도적으로 생존자에게 의존함으로써 생존자가 경제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게 만든다.

 


심리적 학대의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독이 되는 사람들은 생존자를 이기적이라고 비난하기를 좋아한다. 가해자 없이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수치심을 준다면, 생존자는 즐거움을 누리는 데 대해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학대에서 벗어나기 전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가해자의 응징이 두려워 나가서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의 망상에 가까운 거대한 자기 이미지는 보호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가해자는 자신이 항상 옳다는 착각에서 깨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가해자에게 진심에서 우러나는 후회란 있을 수 없다.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이 상처가 된다는 걸 단호히 부인할 것이다.


조울증이나 자폐를 가진 채 태어날 수는 있지만, 성격장애는 선천적인 문제가 아니다. 성격장애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주양육자와 건강한 애착이 형성되지 못함으로써 발생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을 안타깝게 여긴다. 제발 그러지 마시라. 사랑 없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많다. 대부분은 공감 능력이 높고 타인을 배려한다. 그런데 독이 되는 사람은 다르다. 어린 시절 양육자가 자신에게 진정한 애착관계를 형성해주지 못했으므로 삶이 자신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만족할 줄 모르는 습성을 갖게 된다. 이들의 삶 속에는 '주는 사람' 으로 가득하고 자신은 '가져가는 사람'일 뿐이다.


애착 결핍이 가해자의 성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문제와 상관없이 이들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해가 되는 행동을 계속해 나간다는 게 핵심이다. 이들은 항상 남을 비난하며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뭐하려 달라지겠는가. 이들의 눈에는 남들에게 큰 결함이 있고 남들이 달라져야 하는데 말이다.


보이지 않는 학대의 생존자 대부분은 자존감과 회복탄력성이 매우 높은 사람들이다. 심리적 학대를 가하는 자들은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이 자신의 장점이라고 여기는 바로 그부분을 이용한다. 생존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성격적 특징으로 자아성철 능력을 들 수 있다. 독이 되는 사람은 생존자에게 퍼부은 비난이 생존자를 깊게 관통한다는 걸 알고 있다. 생존자가 그 말이 사실인지 내면을 들여다보며 성찰하게 만드는 것이다. 생존자는 가해자와 연락을 하지 않거나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고 건강하지 않은 환경이 야기하는 문제에 대한 대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통제력을 갖게 되면 자존감을 되찾는다.

가해자가 당신의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하고 있다면 더 이상 맞추려고 애쓰지도 말고 낙담하지도 말라. 당신은 최선을 다했을 테니 말이다.


생존자는 가해자를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그게 자신을 위하는 길이다. 생존자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이 대우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을 대하겠는가? 아니라고 답한다면 학대관계라고 볼 수 있다. 부정하지 말라. 진실을 보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 대부분 독이 되는 행동을 유발하는 정신건강 상의 문제가 없다. 가끔씩 감정기보기 있다고 해서 모두 나르시시스트이거나 소시오패스, 또는 사이코패스인것은 아니다. 정신건강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심리적인 학대를 가하는 나르시시스트,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와는 매우 다른 내적 동기가 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독이 되는 사람은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변 사람들과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이다. 따라서 절대로 이들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


심리적 학대를 이해하는 사람들을 만다는 것이 생존자에게 힘이 된다. 안전한 사람들을 만나서 많은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는데, 오프라인 독서 모임이 적절한 예가 아닐까 싶다. 보이지 않는 학대의 생존자는 고립되기 쉽다. 때로는 누군가의 따뜻한 미소가 필요하다. 이 세상에서 안전한 장소를 찾을 필요도 있다. 미소와 체온을 나누는 일은 온라인에서는 할 수 없다.


심리치료사인 나는 인간관계로 인해 서서히 죽어가는 생존자에게 어째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지 않고 가해자를 기쁘게 해주려고 하는지 이야기 해야 한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연락을 끊는 것이 회복되는 유일한 방법이다.  감정적 거리두기나 연락을 끊는 방법을 생각해내야 온전한 당신으로 살 수 있다. 심리적인 학대에서 회복되는 데 이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


생존자가 남은 인생을 망가진 채 보낸단 할지라도 가해자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생존자가 겪는 충격을 가해자는 경험하지 않는다. 가해자는 생존자처럼 고통을 겪지 않고 곧바로 자기 생활을 계속해 나간다.


자유시간을 치유에 대한 공부와 연관 없는 일을 하면서 보내고 싶어하는 단계에 도달하면 생존자들은 그동안 알게 된 새로운 지식으로 인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이것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다. 어쩌면 이런 일이 처음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은 경우라면 말이다. 이 단계에서 생존자는 새로운 취미를 가지려 하고 자신의 삶이 윤택하게 하는 일에 끌린다. 이는 바람직한 형상이며 새로운 모험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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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 크리스토퍼 코어 그림 / 연금술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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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시인의 시집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것처럼'

제목부터 끌렸고, 마음에 드는 시들도 여러편 수록된 시집이었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책은 안읽어봤었는데, 시집을 한번 읽은 이후로 다른 책들도 눈여겨 보게 되었다.


저자의 글은 특징이 강한 편이다.

시적으로 말하면 영혼에 대한 글 이라고 할 수 있고, 평범하게 말하면 깨달음에 대한 글 이라고 할 수 있는, 특히나 인도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고 인도여행에서 얻은 상념들에 대한 글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몸은 한국인일지 몰라도 영혼은 인도인 이라고나 할까.

이 책또한 저자가 인도를 여행하며 만난 인도인들에 대한 깨달음에 대한 에세이 이다.


<<사기꾼과 성자와 걸인, 동료 여행자들이 나의 스승이었다.

그들이 나는 좋았다.

때로 삶으로부터 벗어나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내게는 명상이고 수행이었다.

여행을 떠날 때는 따로 책을 들고 갈 필요가 없었다.

세상이 곧 책이었다.

기차 안이 소설책이었고, 버스 지붕과 들판과 외딴 마을들은 시집이었다.

그 책을 나는 읽었다.

책장을 넘기면 언제나 새로운 길이 나타났다.

책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 책을 읽는 것이 좋았다.

여행은 언제나 좋았다.

내 생의 증거는 언제나 여행에 있었다.

나는 여행이 좋았다.

삶이 좋았다.

생은 어디에나 있었다.>>


저자에게 세상은 인도였고, 인도를 여행하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고, 길거리에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스승이었고, 그들과 함께일때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도를 경험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사실 책을 읽는 내내 스승과  사기꾼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도인들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낯설었다.

저자는 식당에 가서 주문한 메뉴와 상관없는 음식이 나와도 식당주인이 하는 말에서 명언을 발견하고, 여관에 가서 방이 너무 더럽다고 불평할때 어쩔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라는 여관주인의 말에서 깨달음을 얻고, 길가에서 수시로 마주치는 걸인들에게 매번 돈과 물건을 털리면서도 스승을 만난듯 표현한다. 사실 걸인과 '사두' 라고 하는 종교인의 경계도 모호하다. 그 무엇도 소유하지 않고 항상 명상을 하며 길바닥 생활을 하는 그들은 여행자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것을 달라하고 말을 걸어 자신이 엄청난 깨달음의 소유자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보니 그는 단순한 소똥 철학자나 궤변론자가 아니었다. 시종일관 내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라, 그리고 그 일로부터 배우라고 말하고 있었다. 고통이란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인도여행에서는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저절로 깨닫게 되는 것 같다. 기차나 버스가 제 시간에 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고, 숙소가 더러워도 당연하고, 음식이 제멋대로여도 당연한, 모든 것이 다 당연하니 받아들여야 되는 상황인지라, 불평해봤자 소용없다면 혼자 애면글면 자기자신을 닦달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그저 받이들이면 다 편해지고 내려놓으면 여유가 생기는 것을. 하루벌어 하루살아도 행복한 사람들 속에서 여행자가 가지고 있던 욕심은 저절로 버리게 되는 곳이 인도인가 보다.


<<여행자가 가장 힘들 때는 길이 없을 때가 아니라 길이 너무 많을 때다.

"신이 창조한 날은 단지 오늘뿐이란 말이오. 어제와 내일을 만드는 건 바로 우리 자신들이오. 안 그렇소?">>


인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개똥철학자 같고 궤변론자 같지만, 사실은 스승임을 깨닫는 순간 저자에게처럼 인도는 세상이 된다.


<<가난과 인간 고통의 대명사 콜카타. 그곳은 지구의 불랙홀이라 불린다. 전체 인구 천백만 명 중에서 5백만 명이 빈민가에 살고 있고, 또 다른 2백5십만 명은 길거리에서 잠을 잔다. 이들은 아프리카 원주민들보다 훨씬 빈곤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시인이라 여기고, 시와 글을  싣는 잡지가 3천종이나 발단되는 기상천외한 도시 콜카타!>>


세계에서 영화가 가장 많이 만들어지는 곳이 인도라고 하더니, 잡지도 엄청나게 만들어지고 있는 곳이 인도인가 보다.

처음 만난 여행자에게 예술인 같다고 하며 말을 걸고, 어떤 예술을 하냐고 물어 시인이라고 답하니 자기도 시인이라며 얼싸안고 반가워하다가, 가난해서 시집을 못냈다고 시집을 낼 수 있게 돈을 달라고 하는 거리의 시인들 저자의 친구들 저자의 스승들 은 인도에 차고 넘친다.


<<처음 인도 여행을 꿈꿀 당시 나는 인도라는 나라를 영적인 나라, 깨달음의 나라라고 상상했었다. 그러나 그 환상은 첫 여행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언뜻 보기에 인도는 더럽고 혼란스럽고 믿을 수 없고, 때로는 전혀 대책이 서지 않는 나라였다. '노 프라블럼'의 나라가 아니라, 단지 '노 프라블럼' 이라는 단어가 자주 쓰이는 문제투성이의 나라에 불과했다.

그러나 또다시 여행을 하면서 그 지저분한 먼지 밑에서 반짝이는 보석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무질서 속에서 이 거대한 삶을 움직이는 불가사의한 질서를 차츰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삶의 숱한 문제들 속에 진정한 '노 프라블럼'이 깃들어 있음을 알았다. 반복되는 탈수증과 설사병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서 얻은 소중한 깨달음이었다.

인도는 내게 무엇보다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했다. 세상을, 사람들을, 태양과 열기에 들뜬 날씨를, 신발에 쌓이는 먼지와 거리에 널린 신성한 소똥들을, 때로는 견디기 힘든 더위와, 숙소를 구하지 못해 적막한 기차역에서 잠들어야 하는 어두운 밤까지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것은 나 같은 여행자들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신에게만 의지해 살아가는 방랑 수도승들은 차츰 나의 스승이 되었다.

인도 여행만을 고집함으로써 나는 다른 많은 것들을 놓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 생에선 내가 걸어갈 필요가 없는 길들이었다. 그리고 굳이 걸어갈 필요가 없는 길들까지 다 가야만 하는 건 아니었다. 또 어떤 길들은 다음 생을 위해 남겨 둬야 할 길들이었다.>>


인도는 중국 다음으로 인구가 많고 IT계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핵폭탄도 보유한 나라이다.

인도는 인구의 절반이상이 빈민층이고 수만의 신을 모시는 다신교국가이며 언어만도 수십가지 이상의 방언이 존재하는 곳이다.

집이 있고, 직업이 있고, 첨단을 달리고, 최신학문을 배우며, 권력을 잡은 소수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걸인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그러면서도 신의 뜻이라 받아들여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쉽게 보이는 곳이 인도다.


인도에 매년 여행을 간다는 저자가 경험한 곳은 쉽게 보이는 늘 보이는 자주 보이는 인도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하고 더러워도 신의 뜻을 구하고 명상하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만나게 하는 인도를 저자는 몹시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도는 법적으로 폐지된 카스트제도가 관습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곳이고, 여성의 인권이 존중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어린 신부를 사고팔고, 여자의 선택은 존중되지 않으며, 관습을 어긴 여자는 마을에서 공개처헝하고, 카스트제도 아래의 천민은 맨손으로 똥을 긁어내는 일 같은 것만 해야하는, 직업에 귀천이 분명하고 사람에 귀천이 분명한 곳이다. 그것도 다 신의 뜻인 곳이다.

저자는 인도에서 명상하고 깨달음을 얻는 여행자로서 인도와 인도인을 사랑한다.

그가 느끼는 인도가 주는 영감들은 시적이고 영적이고 행복하고 충만하다.

시인으로서 여행자로서 느끼는 인도에 대한 저자의 글들은 편안하고 시적이고 소소한 깨달음을 전해준다. 이렇게만 읽으면 좋을 책이다.


그러나 나는 이전에 다른 책들에서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대한 여성의 악습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어서 여행자로서 읽을 수가 없었다.

저자가 거리의 스승들 외에, 제도에 구속당하고 악습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어떤 글을 쓸 지 궁금해진다.

이러튼 저러튼 인도라는 나라는 한번도 안간 사람은 있어도 한번밖에 안간 사람은 없는 그런 나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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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뇌과학이 뒤바꾼 자폐의 삶
존 엘더 로비슨 지음, 이현정 옮김 / 동아엠앤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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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스릴러처럼 다음 장면을 갈구하게 만드는 놀랍고도 용감한 감동적인 이야기

자폐의 삶을 뒤바꾼 최신 뇌 치료법 회고록​ 

어느 날 마음 스위치가 켜졌다!>>


자폐의 삶을 뇌과학이 뒤바꾸어 놓았다는 문구에 호기심이 생겨서 읽게된 책이었다.

자폐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대부분 심한 지적장애를 동반한 자폐인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자폐인이 책을 썼고, 강연을 하러 다니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했다는 것이 가능한건가 싶어서 저자의 책이 궁금했다.

일단, 저자가 말하는 자폐와 내가 생각하는 자폐가 달랐다.

저자는 자폐의 한 분류인 아스퍼거증후군을 진단받은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남들과 좀 다르다는 것을 느꼈으나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할 정도의 장애는 아니었다.

저자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를 중퇴했지만, 뛰어난 음향 전문가로 성공했고 취미로 포토그래퍼일도 하면서, 자동차 수리 전문소를 세워 사업을 크게 일으킨 사람이었다. 가정도 있고 아들도 있고 친구도 있었다. 마흔이 되서야 자신이 아스퍼거증후군이라는 것을 진단받고 자신의 삶을 반추한 내용들을 통해 자신과 같은 증세를 가진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활발한 강연과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모든 활동들은 '자폐' 라는 단어를 떠올렸을때 가능한 활동들이 아니었다.


​저자는 책에서 계속 '자폐' 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외국과 국내 인식이 달라서인지 모르겠으나 국내 독자가 읽을 땐 용어를 구분해서 생각하며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폐의 70% 이상이 지적장애를 동반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폐도 있다고 한다. 자폐와 아스퍼거 증후군은 같은 뿌리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만 엄연히 다른 병명을 가진 장애라고 한다.

지적장애를 동반하지 않은 자폐와 아스퍼거증후군 과도 다를 것이다.

저자는 자폐라고 계속 표현하지만, 자폐 라기 보다는 아스퍼거 라고 제대로 인식하고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자폐 라는 장애에 대한 이미지는 영화를 통해 좀더 쉽계 이해되는 것 같다.

예전에 "말아톤' 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 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

이 영화속에 나오는 초원이는 지적장애를 동반한 자폐아였다. 자라지 않는 아이어른. 그때까지만 해도 자폐아에 대한 인식은 이랬다. 자라지 않는 아이.

최근 '증인' 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거기 나오는 여고생 자폐아는 지적장애가 없는 자폐아 였다. 감정표현이 안되고 엄마의 얼굴사진을 통해 다양한 감정표현을 외우는 소녀. 소리에 예민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이상행동을 하지만, 고등학교 수업을 따라가는데 무리가 없고 퍼즐풀기를 좋아하고 변호사를 꿈꾸는 여고생. 자폐아에 대한 인식은 영화에서처럼 변화가 있는것도 같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자폐 도 아스퍼거 도 잘 모른다. 나또한 그렇다.


​이 두영화의 사이에 '아스퍼거' 라는 단어를 대중에 퍼트린 살인사건이 있었다. 두 여고생이 놀이터에서 초등학생을 꾀어 살해한 후 감옥에 갇히자 자신을 아스퍼거라고 주장하려 했던... 아스퍼거 라는 단어는 학계에서도 발견된지 얼마 안됐고, 국내엔 2005년에야 들어온 단어라고 한다. 아스퍼거는 지적능력엔 문제가 없으나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으로 싸이코패스와는 또다른 심리장애라는 것에서 논란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아직도 정확한 진단이나 장애인 등록에는 쉽지 않은 과정이 있을 것으로 안다.


저자는 아스퍼거증후군이 있는 사람이다. 자신이 하는 말을 다른 사람이 보면 로봇이 말하는 것 같다고 하는 것에 상처를 받지만 상처를 받은 것이 티가 나지 않고, 상대방의 기분도 읽을 수 없는, 공감능력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강연장에 뇌과학자가 찾아오고 TMS 라는 뇌파자극 실험에 대한 제안을 받는다. 그 실험에 참여하면서 느낀 자신의 변화를 기록한 책이 이 책이다. 자서전처럼 체험수기처럼 읽히는 논픽션이랄까.


아직 연구중이라서 치료법 개발이라고 할 순 없지만, 저자는 그 실험이후 자신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상대방의 기분을 공감하고 눈치챌수 있었던 순간의 경험은 저자가 늘 상상해오던 꿈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것이 좋은 감정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공감능력에는 우울증을 비롯한 슬픔, 고통 같은 안좋은 감정들도 처음으로 느끼게 됐고 그래서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을 느꼈던 시간의 경험이 저자는 너무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연구가 치료법으로 어서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을 계속 표현하고 있었다.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고 공감능력이 떨어져서 무뚝뚝한 사람들은 의외로 참 많다. 장애라고 굳이 생각지 않고 그저 성격이라고 생각하며 살기 마련이다. 자폐라는 단어도 낯설고 아스퍼거라는 단어도 생소하지만,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일상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다. 더구나 AI와 비교하여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을 찾으려하는 이 시대에 공감능력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져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격과 장애의 구분은 여전히 좀 어려운 것 같다. 저자처럼 본인 스스로가 공감능력이 없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심하게 느끼면 장애라고 해야 하는 걸까 싶기도 하고...

 


저자의 개인적 경험을 일반화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고, 저자가 자폐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도 무리가 있다고 보지만, 공감능력이 없던 사람이 공감능력을 경험한 것에 대한 체험기 정도로 읽으면 새로운 관점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장애인들이 가정에 숨어살지 않고 사회에 나와서 함께 사는 사회가 되어야 하듯, 장애 에 대한 표현들이 점점 더 세상에 나오는 과정중에 이러한 책도 나오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여하튼, 어려움을 극복한 이들의 경험은 늘 박수받아 마땅하다. 저자의 성공적인 경험은 박수받아 마땅하지만, '자폐' 극복은 아니었다. '자폐' 치료도 아니었다. 자폐 와 아스퍼거의 의미도 잘 인식되어 있지 않은 국내에서 읽히기엔 단어의 혼용에 아쉬움이 남는다.


모파상의 소설 '여자의 일생' 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고 한다.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한 것도 불행한 것도 아닌가 봅니다'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늘 불행하기만 한 것도 행복한때가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자폐든 아스퍼거든 여튼 감정적 장애도 장애일진데, 장애를 가진 사람이 행복을 느끼고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다른 이를 돕기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행복도 불행도 다 거기서거기 이고 제각각인 사람들의 삶도 다 거기서거기 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의미있게 열심히 사느냐 그것이 제일 중요하달까.

저자가 자신의 삶을 switched on 시켰듯, 우리는 우리 삶에서 어떤 스위치를 켜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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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
라파엘 몬테스 지음, 최필원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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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진행한 가제본 증정이벤트에 당첨되어 출간되기 전에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비오는 장마기간에 배송되어 책이 젖은체 도착해서 마음아팠지만, 읽고 나서 보니 젖은뒤 마른 얼룩이 왠지 어울려 보인다.

하얗고 깨끗한 표지에서 퍼펙트 데이즈 라는 제목이 깔끔하게 한눈에 들어왔었는데, 얼룩져 내려온 ​무늬아닌무늬가, 퍼펙트했던 표지를 변형시킨 그 무늬아닌무늬가 어울린다. 이 소설과.


가제본이다 보니 홍보문구도 저자에 대한 설명도 없다.

작가 후기를 읽어보니 젊은 신예 작가인것 같고, 전작도 스릴러 소설이었던 듯 하다.

온전히 소설 자체에만 몰두하게 되는 것이 가제본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이 작품은 사랑이야기다. 그런데 스릴러다.

왜냐하면 사랑의 주체가 싸이코패스다. 싸이코패스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완벽한 사랑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사실 싸이코패스는 사랑을 할 수 없다. 사랑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싸이코패스인 거다.

그런데 싸이코패스의 사랑이야기라니! 반전으로 시작해 반전에 반전을 하다가 반전으로 마무리되는 독특한 소설이었다.


<<그는 대화와 음악, 모든 것이 완벽한 이 상황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이 못마땅했다.>>


테우는 자신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테우의 가장 친한 친구는 시체다.

그런데 그 사실을 테우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어머니조차도.

그러던 어느날, 파티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클라리시!

그녀의 사소한 행동이 테우의 모든 감각을  사로 잡았다.

테우는 완벽한 사랑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작부터 테우는 알고 있다.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더 완벽을 추구하게 되고, 퍼펙트한 날들을 쌓아가기로 결심한다. 퍼펙트 데이즈를.


<<테우는 그녀를 공주 모시듯 할 마음이 없었다. 여자들은 가사 노동을 할 때가 가장 여자다우니까.>>


테우는 왜곡된 생각 투성이이지만, 클라리시를 공주모시듯 할 마음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성이 제어하는 한 그녀를 왕비 모시듯 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행동들에 대해 몹시 뿌듯해 한다. 그래서 더욱 인정받기를 원하게 된다. 하지만 클라리시는 납치된 상태다.


<<어릴 적부터 그는 늘 위화감을 느끼며 살았다. 실없이 웃기나 하고 지적 야망이나 고상한 사고가 없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게 무척 불편했다. 크리스마스라는 이유로 한껏 들뜨고, 생일에 옛 친구들을 초대하고, 8개월 아기가 마침내 아빠!라고 부를 줄 알게 됐다는 걸 이웃에게 자랑하는 사람들, 그런 삶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에 테우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연속극에서 그려지는 정상 상태의 개념에 혐오감을 느꼈다. '정상 상태' 에 적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실은 조금의 양보도 없었다. 자기 확신에 찬 채 살아가고 있던 그에게 클라리시가 나타난 것은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세상의 벽을 허물고 나올 수 있었다. 그녀가 길을 잃고 방황하는 그를 붙잡아준 것이었다. 테우는 여전히 인류를 낮춰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하등한 그들에게 초탈한 연민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건 '사랑' 덕분이었다.>>


테우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완벽한 자신 혼자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클라리시를 만난 순간 그의 안에 잠들어있던 본성이 밖으로 표출되게 된다. '사랑' 은 그를 변화시켰다. 정상적으로 보이던 사람에서 싸이코패스임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으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척 연기하고 싶은 욕구, 그에게는 재밌는 놀이였다.>>


테우는 스물두 살의 의대생이다. 그는 진심으로 사람에게 사람과의 관계속에 자신을 몰입시켜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그런척 하는 연기의 달인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클라리시에게는 그런척 하는 연기따위 집어던져 버리게 됐다. 그녀가 쓰고 있던 시나리오 '퍼펙트 데이즈' 라는 시나리오 까지도 자신의 의도데로 만들어가며 클라리시의 모든것을 손아귀에 쥐고 흔든다. 그녀의 정신상태까지도.


<<그는 합당한 조치를 취했을 뿐이지만 세상은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법규와 규칙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테우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테우는 잔인한 살인을 저지르고도 합당한 조치를 취했을뿐인 그를 이해하지 못할 세상을 걱정한다.

완벽한 날들 속에는 완벽한 범죄가 숨겨져 있었고, 완벽한 범죄는 완벽한 사랑 때문이었다.

싸이코패스 테우가 클라리스를 사랑하기 시작하고, 납치해서 여행가방안에 넣은체 여행을 하고, 그녀와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돌아오게 되는 과정은 그냥 그렇게 돌아오고 나서 끝났다면 이미 읽어봤음직한 싸이코패스 스릴러 소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테우가 강력한 뒷통수를 맞으며 끝을 맺는다. 싸이코패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결말.

그 마무리가 싸이코패스의 새로운 등장일지, 범죄를 저지른 싸이코패스에 대한 복수가 될지 뒷얘기를 독자 스스로 상상하게 한다.


익숙하지 않은 나라 브라질을 배경으로, 싸이코패스의 독특한 사랑이야기는 소재도 내용도 결말도 색달랐다.

싸이코패스 가 지냈을 법한 완벽한 날들, 퍼펙트 데이즈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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