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 - 세계 문명을 단숨에 독파하는 역사 이야기 30개 도시로 읽는 시리즈
조 지무쇼 엮음, 최미숙 옮김, 진노 마사후미 감수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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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역사책을 자주 읽는 편이지만 일본인이 쓴 역사책은 읽지 않는다. 세계사에 대한 그들의 책은 자국중심의 편향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책들이 많아서 언제부터인가 조심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도시여행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겠거니 싶어서 관심이 갔다. '조 지무쇼'라는 이름을 흘려보면서 일본저자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책을 펼쳐들고 나서야 일본내의 기획·편집 집단 명칭이라는 것을 알았다. 책의 내용을 감수한 이는 일본내 유명입시학원의 세계사 강사였다. 아차차;;;

{세계사는 도시 문명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세계 주요 도시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모습에 이르렀는지 살펴보는 것은 세계사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라는 저자의 말에 일부 공감한다. 그런데 문제는 세계사를 주름잡았던 30개의 도시를 선별한 기준이 무엇이냐는 점이다. {수천년 세계사의 주요 흐름을 도시 이야기를 통해 한눈에 펼쳐내} 는 시도도 좋고 {세계 문명을 단숨에 독파하는 역사 이야기} 도 좋은데, 그 역사이야기 속에서 얼마나 객관적 중심을 잘 잡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 하지만 15세기에 스페인인이 등장할 때까지 아메리카 선주민 문화에 말과 수레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안정적인 교통망이 발달하지 못하고 공통 문자도 확산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테오티우아칸의 문화는 주변지역으로 전해지지 못한 채 단절되고 말았다. (p. 66) >>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고대도시로 언급하는 '테오티우아칸'에 대한 시각은 다분히 서구중심적 혹은 서양역사우월적 이다. 교통수단과 가축은 해당지역의 자연환경과 토착동물이 어떠한지를 살펴봐야 한다. 자연환경과 기존에 살고 있던 동물이 다른 상태에서 같은 기준으로 다른 도시의 발달을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더구나 사라진 이유가 수수께끼인 테우티우아칸 보다 침략에 의해 멸망한 고대문명인 잉카와 마야의 도시를 알려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려면?

30개의 도시 중 '일본의 중심이었던 '천년의 수도' 교토' 처럼 '천년'이라는 긴 세월을 수식어로 붙인 도시는 교토가 유일하다. 다른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들보다 '천년'이라는 직접적인 수식어가 붙은 교토가 마치 더 유구한 역사의 도시라는 것처럼.

교토의 생성과정도 당시 동양의 선진국이었던 중국 당나라의 도시 '장안'을 참고하여 건설했음을 말하며

<< 이후 교토는 2차 세계대전에서 전화를 모면했고, 지금도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천년의 수도로서 축적해온 유산으로 전 세계의 관광객을 매료시키고 있다. (p. 128) >>

라고 중국에서 일부 참고했지만 자체적으로 유구한 세월을 발달해 왔다는 듯 설명한다. 역사속에서 중국과 일본을 연계했던 한반도의 역사는 1도 끼워넣지 않았다. 나로서는 '천년의 고도' 하면 경주가 떠오르는데 말이다. 교토가 그렇게 역사적인 유산으로 전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었던가? 교토에 대한 설명은 지극히 교토우월주의적인 입장으로 보였다.

<< 같은 해 5월에 일본해군의 소형잠수함이 미국 해군도 이용하는 시드니 연안을 습격해서 연합군 함정을 격침시켰다. 처음으로 이러한 직접적인 외국의 공격을 받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 (p. 319) >>

라며 욱일기를 배경으로 거대한 일본병사가 발바닥 아래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의 오스트레일리아 섬을 그린 포스터를 제시한다. 시드니 라는 도시를 설명하면서 굳이 일본군이 그 먼곳까지 가서 이기고 그 나라 국민을 충격에 몰아넣었다며 전쟁포스터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자신들의 전쟁성과를 과시하는 듯 보이는 것은 나의 편협한 시각인 것일까.

<< 상하이의 조계 시대를 끝낸 것은 일본이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상하이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중화민국과 대립했다. (p. 337)

본격적으로 중일전쟁이 시작되자 일본은 상하이를 점령하여 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다. (p. 338) >>

상하이는 2차대전에서 각국의 조계지가 있던 국제도시였다. 상하이의 역사에서 전쟁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상하이를 아시아의 교두보로 삼은 선례를 굳이 언급했다는 점이 굳이 필요했을까 싶은 의구심은 어쩔 수 없다.

<< 오늘날 두바이에서 이와 같은 도시개발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제공하는 노동력과 더불어, 강력한 권한을 가진 통치자의 철저한 준비성과 지도력이 있기 때문이다. (p. 349) >>

라는 문장을 마지막으로 책은 끝난다. 두바이의 상징 '버즈 칼리파'를 칭찬하면서도 그 건물 건설에 한국기업 건설사가 참여했다는 말은 당연히 없다. 왕권 중심으로 흘러갔던 과거의 역사는 강력한 통치자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시대에 도시개발의 성공원인이 '강력한 권한을 가진 통치자의 철저한 준비와 지도력' 에 있다는 시각을 어찌 해석해야 할까.

로마와 중국의 도시를 설명하면서 슬쩍 일본의 이야기를 집어넣고, 천년의 세월은 교토에만 붙였으며, 30개의 도시 중 제국주의에 의해 침략을 당하고 피해를 입은 도시가 드러나지 않는 다는 것을 어찌 보아야 할까? 세계대전의 책임이 있으나 철저한 자기반성을 거친 독일의 도시는 일체 언급하지 않고 이슬람 문명의 도시들은 상대적으로 빈약하게 다루고 있는 것을 어찌 보아야 할까?

세계사를 통사가 아니라 편집된 책으로 읽을 때는 그 기획의도와 관점을 항상 주의하며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물론 일본내에서 편찬된 책이고 따라서 일본인들이 읽을 것을 예상하고 기획한 책이므로 일본인이 아닌 사람이 읽었을 때 다른 입장으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세계사는 세계의 역사가 아닌가. 제대로 된 세계사라면 세계인 누가 읽어도 받아들여질 만한 객관성을 담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이 이 책을 역사서로서 세계사로서의 책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관광지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훑어보는 용도로 읽고 넘기거나 관광지에 가서 유적지의 안내문을 읽으며 흘리듯 그렇게 읽고 넘어가는 용도로 가볍게 읽을 책으로서의 유용성만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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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bgos 2020-08-17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별 생각 없이 구매했다가 실망이 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