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는 요일 (양장)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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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사람이 하나의 신체를 공유하는 미래

사랑의 기억을 되찾으려는 여정이 시작된다


창비 소설Y클럽을 통해 박소영 작가의 <스노볼>을 재밌게 읽었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신작이 또다시 소설Y클럽을 통해 내게 닿았다. 소설Y클럽 서평단 참여시 가제본과 함께 받게 되는 작가의 특별한 편지와 함께.

이번 작품의 프롤로그에선 독특한 서식이 눈에 띈다. 바로 '인간 7부제 사전 동의서'


주요 내용: 일곱 명이 신체 하나를 하루씩 돌아가며 사용한다. 공유되는 신체 외의 나머지 신체는 (뇌를 제외하고) 폐기한다.

시행 목적: 인간 개체 수를 적정하게 유지해 환경 파괴와 식량난 등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인류의 공멸을 막는다.


그렇다. 일곱명의 자아가 하나의 신체를 공유한다는 일종의 각서 같은 동의서가 '인간 7부제 사전 동의서' 였다. 가상의 어느 시대, 더이상 많은 인간 개체 수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이 개발해 낸 기술은 하나의 신체를 공유하여 일주일에 한번만 현실 세계에서 살고 나머지 6일은 뇌를 업로드 시킨 가상의 낙원에서 사는 것. 하지만 이런 시대에도 '7부제'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의 신체로 평생을 살아가는 일명 '365'가 존재했다. 결국은 재력, 돈이 곧 힘이었다.


일곱 사람이 공유하는 신체가 임신을 하면 어떻게 될까? 간단하다. 임신의 주체만 남고 나머지는 방을 뺀다. 보딜리스 신세가 된 이들에게는 새로운 신체가 배정되고, 임신부는 출산할 때까지 매일 오프라인에서 지내게 된다. 보디메이트들이 사라진 신체를 오롯이 혼자 사용하면서, 환경 부담금을 내기는 커녕 오히려 각종 혜택을 지원받으며. 출산 이후에는 아이를 바로 공공 보육원에 보낼 수도 있고, 36개월까지 직접 양육할 수도 있다. (p. 55)


김달과 젤리 그리고 현울림은 공공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절친들이다. 각자의 사연들로 부모를 잃고 공공 보육원에서 친해진 그들은 열일곱이 되어 7부제에 소속되었을 때 각자의 다른 공유신체의 모습으로 만나서도 여전히 절친이었고 이들은 모두 수요일에만 현실세계를 살 수 있는 수인들이었다. 늘 그랬듯 일주일만에 수요일에 다시 모였을 때 김달은 임신했음을 알렸고 아기와 함께 365로 살기위한 인생계획을 친구들에게 밝혔다. 하지만,


'현실'이라 부르는 이 세계가 굴러가는 법칙은 간단했다.

노력은 쉽게 틀어지고 간절한 바람은 가볍게 짓밟힌다.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으며 아름다운 것은 찰나의 순간. 사랑하는 것에도 반드시 끝은 있다. (p. 61)


김달은 공동양육자로 현울림을 선택했다. 현울림은 가상의 세계보다 현실에서의 삶을 더 좋아했고 누구보다 김달을 아껴줄 존재였기에.

하지만 울림과 신체공유를 함께 하는 화요일의 자아 강지나 가 문제였다. 강지나와 현울림은 고등학교 시절 지독한 악연으로 얽혀 있었는데 7부제로 인해 하나의 신체로 엮이는 그것도 화요일에서 수요일로 이어지는 기막힌 인연으로 다시 얽히고 난 후 불화를 거듭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렇기에 공동양육자로 김달과 함께 현실세계에서 쭉 살게 된다면 더이상 강지나와 으르렁 거릴 이유도 없어지므로 울림은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다. 그러나 드라마라는게 다 그렇지 않나, 가장 행복해지기 직전에 가장 큰 불행이 닥친다. 강지나가 현울림을 정확하게는 공유신체를 살해한다. 당연히 울림과 김달, 젤리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재판을 시작했으나...


비행기 추락 직전 혼만 낙원으로 탈출한 사람도, '묻지마 칼부림'에 찔려 죽어가며 가까스로 혼이 빠져나온 사람도 신체를 잃어 억울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보디메이트에 의한 사망은 다른 차원이었다. 이는 7 부제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였다. 오프라인에서 사망 처리가 확정되기 전 문제의 보디 메이트끼리 재판정에 서서 죽음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기회가 주어졌다. (p. 83)

"나도 네가 당한 일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구쳐서 이러다 유산하는 거 아니가 싶을 정도야. 근데 우리가 뭘 어쩔 수 있어? 걔네 엄마는 낙원코리아 대표고 걔네 아빠는 학계에서 내로라하는 뇌과학자라며. 걔 부모한테는 돈, 사회적 영향력, 인맥이 다 있어. 네가 걔 건드려 봐야 다치는 건 너라고. 너랑 걘 출발선이 다르다는 거 정말 아직도 모르겠어?" (p. 104)


사실 강지나는 7부제에 속하지 않아도 될 최상위계층의 365 였다. 하지만 365에서 7부제에 속한 신체로 살아가게 된 사건에 현울림이 엮여 있었기에, 다분히 계획적이었고 그렇기에 재판은 시작부터 이미 울림이 이길 수 없는 판이었다. 억울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울림은 이제 현실 세계에서 어느 요일의 사람으로도 살 수 없게 되었고 낙원에서의 삶도 점차 감각을 잃어가게 될 상황이 되었다. 그때 '여울시'에 대해 알게 됐다. 불법적인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곳, 심지어 신체도 살 수 있다는, 알려지지 않았고 찾을 수도 없는 곳, 여울시.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그 여울시에서 울림은 강이룬을 만난다.


"이룬이는 아빠 연구소랑 파트너십을 맺은 미국 연구소의 과학 특기생인데, 특별 교류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왔어. 너희가 학교에 갈 때 이룬이는 아빠랑 같이 연구소에 가서 이런저런 연구와 실험을 진행할 거야"

강지나는 강이룬을 향한 아빠의 다정한 눈빛을 빤히 보았다. 느낄 수 있었다, 아빠가 저 유기견을 꽤나 아낀다는 것을. (p. 169)


사실 현울림은 어린시절 강지나의 집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사고로 현울림의 부모가 세상을 뜨자 엄마의 친구였던 강세영이 울림을 자신의 집에 데려갔고 딸인 강지나와 잘 지내라고 학교도 같은 곳으로 옮겨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강지나는 울림을 자신이 길들인 유기견 대하듯 했고 유기견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현울림에게 은밀한 폭력을 휘둘렀다. 그러던 중 강이룬의 등장은 새로운 변곡점이 되었던 것이다. 누구보다도 현울림에게. 그 시절 갑자기 사라진 이룬이 여울시에 있을 줄이야.


울림의 복수는 가능할까, 이룬은 왜 갑자기 사라졌던 것일까, 강지나는 왜 그토록 현울림을 죽이고 싶어했나, 낙원이라 불리는 가상세계의 삶이 과연 낙원일 수 있을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새로운 궁금증이 솟아나고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읽어 나갈수록 사건은 장면을 거듭 빠르게 전환한다. 이 흡인력 강한 작품이 디스토피아와 스릴러에서 어느 순간 로맨스로 마무리되는 것을 보며 슬며시 웃음도 짓게 될 것이다. 다른 모든 이유들을 제치고 일단 재밌다. 쉽게 읽히면서 재밌는 영어덜트 소설을 찾는다면 창비의 소설Y 시리즈는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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