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 차별과 배제, 혐오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하여
악셀 하케 지음, 장윤경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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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배제, 혐오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하여

공존을 위한 포용과 연대, 품위 있는 삶에 대한 고민

 

 

무례하다 라는 말을 체감하며 살고 있는 시대이다. 무례, 말 그대로 예의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품위 라는 단어가 그에 상응하는 말인 것일까? 품위 -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

무례 를 예의가 있다 없다 로 구분할 수 있다면 품위는 예의를 아우르는 그 무언가 가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세운 높은 기준에 도달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높은 기준은커녕 일반적으로 괜찮다고 여겨지는 최소한의 수준에조차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가 여기에서 다루려는 이야기는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의 기본적인 예의와 품위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p. 11)

저자는 어려운 철학적 담론이나 심오한 삶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겪고 살아가고 있는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건넨다. 무심코 지나쳤던 시간들을 다시한번 생각해보라고.

얼마 전부터 품위가 상실된 언행과 현상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그저 한번 몰아치고 마는 파도가 아니라 온 세상을 뒤덮을 정도로 광란의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현재 우리는 인간적 품위가 결여된 한 남자가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지 못한 세상에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이끄는 정부는 스스로의 비열한 언행을 숨기기는커녕 오히려 과시하는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가 해온 그 모든 불쾌한 언행들은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그가 쏟아낸 너무나도 많은 혐오의 언행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p. 12)

무례의 대표적인 예가 트럼프 대통령이다. 일상을 이야기하려 하지만 일상은 정치나 사회문제와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시사평론서는 아니지만 현실칼럼으로 다양한 실제적 무례한 경우들을 끄집어낸다. 소설이든 사회비평서든 여하튼 현실을 반영한 책을 읽다보면 트럼프가 자주 등장한다. wow 이렇게 세계적으로 욕먹는 대통령이 또 있었던가 싶다. 실은 그렇기 때문이 더 위기일수 있다. 반면교사를 훌륭한 교사인줄 알고 따라하는 이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을 보면.

예의 없는 사람, 배려 없는 사람 그리고 거칠고 폭력적인 사람 등 행태는 각기 다르지만 이들이 결국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이 겪은 불쾌한 일화는 수많은 이야기가 되어 하나의 역사를 이룰 것이다. 현재 우리의 일상이 역사로 남게 된다고 생각하면 조금 두렵기까지 하다. 그러면서 몇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지금까지 풍요로운 사회에서 궤도를 이탈한, 예의와 품위가 결여된 언행이 유독 늘어난 이유가 무엇일까? 그동안 인류가 쌓아올린 문명이 상실되고 있는 오늘날의 현상은 단순히 생존 경쟁의 산물이 아닌, 시대적 위기로 보아야 옳지 않을까? 지금 우리 시대가 마주한 절박한 문제는 과연 무엇일까? (p. 15)

이 책의 원제는 Über den Anstand in schwierigen Zeiten und die Frage, wie wir miteinander umgehen 이다.

나는 독일어를 모르므로 당연히 번역기에 물어봤다. '어려운 시기에 품위 있는 것에 관하여 질문하다, 우리가 어떻게 상대하는지' 정도로 해석되는 듯 하다.

그렇다. 이 책의 원제에서 핵심은 '질문'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한국어판의 제목은 '-는 법' 이라는 답이 되었는가?

저자는 지금을 일상을 대화하듯 말하면서 툭툭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그 질문들이 질문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 '답'으로 변할 수 있었던 이유인듯 싶다. 일종의 소크라테스적 방법이랄까? 한번에 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을 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품위는 법도 아니며 도덕도 아니라고 괴테르트는 이야기한다. 이렇게 설명하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즉 품위는 "유행과 유사하면서 이를 넘어서는 개념으로, 해가 바뀔 때마다 (반드시) 입어야 하는 옷이 있듯이 각각의 시대에 발생하는 문제를 매번 새로운 생각으로 해결하는 방식" 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여기서 몇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 지켜야 하는 품위는 과연 무엇일까? 지금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며, 지금 우리가 마주한 문제는 무엇일까? (p. 39)

현대 사회는 결속과 분열이 동시에 이루어지는데, 그 한가운데에 이른바 '중간 세계'가 있다. "이 중간 세계에서 개인은 타인과 서로 조율하고 화합하며, 서로를 받아들이면서 (사적 영역을 존중하며) 나란히 성장해 간다"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품위가 존재해야 할 곳은 바로 이 영역이다. (p. 41)

품위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책을 읽는 내내 다른 형식으로 자꾸 등장한다. 이것이 품위인가? 아니 저것이 품위인가? 그렇게 읽는이에게 품위가 무엇인지 생각의 업그레이드를 시켜나간다. 질문을 통해.

판타지소설을 읽으면 중간계가 등장하곤 한다. 신들이 사는 천상계와 괴물비슷한 여하튼 암흑적 존재가 사는 지하계와 그리고 중간계. 인간은 늘 이 중간계에 산다. 품위를 중간계에 놓고 보니 얼핏 이해가 더 되는 기분이 든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도 이처럼 '중간 세계' 가 있다. 저~ 꼭대기도 아니고 저~ 밑바닥도 아닌 이 중간세계가 중심을 제대로 잡아야 사회가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한동안 타인과 공존하는 방법을 고심하지 않았다. 이제는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 사는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더불어 지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며 공론화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여기에는 타인과 대화할 때 지켜야 할 어조와 성량 그리고 단어 선택까지도 퐘된다. 즉 타인을 대하는 모든 태도와 자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p. 48)

지금 우리가 왜 품위를 생각해야 하는가? 함께 살기 위해서다. 사회는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다. 무례 라는 단어 자체가 상대방으로 부터 경험되어지는 것이다. 사회가 분열될 수록 불안감이 높아질수록 공존의 방법은 평화적이어야 한다. 그 방법의 핵심으로 저자는 품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주제는 법이 아니라 공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법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이 새로운 세계에서 타인과 더불어 살려면 각 개인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자세와 배려이다. 이에 더해 우리 모두가 각각 한 명의 시민으로서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이를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p. 77)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무례의 경우를 이야기하는데 저자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그 예중에 2017년 3월 부산에 사는 미국출신 교수 로버트 켈리의 BBC 인터뷰 영상이 있었다. 당시 탄핵관련 주제로 한국에 사는 정치학 교수로서 그를 인터뷰한 것이었는데, 내용보다도 인터뷰도중 등장한 켈리의 아이들과 아내로 인해 화제가 됐었다. (집에서 스카이프로 인터뷰했었다) 나도 기억이 난다. 귀여운 해프닝으로 티비에서 소개가 됐었다. 그런데 저자는 이후의 댓글논쟁에 집중한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을 두고 '보모' 라는 표현이 언급되면서 동양인 아내는 왜 보모로 인식하냐며 댓글로 갑론을박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듯이 이러한 댓글논쟁에서 품위는 커녕 존중이나 예의는 찾아볼 수 없기 마련이다. 인터넷 사회에서의 품위에 대해 저자는 더욱 심각하게 문제임을 지적한다.

우리 사회는 지위나 권위가 높은 이들의 태도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즉 그들의 언행을 품위나 예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일상에 스며들어 습관으로 자리하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받아들이고 또 무엇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까? (p. 97)

또다시 트럼프의 일화를 등장시켜서 그 악영향을 우려하며 저자는 트럼프 외에도 다른 지도자급 인물들의 걱정스런 일화들을 알려준다. 다양한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의 파급력은 무시해서는 안된다. 누가 따라하겠느냐고? 의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댓글에서 누군가 함부로 말하는 순간 그렇게 누군가 시작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험한 댓글들이 쏟아지는 것을 수시로 볼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익명의 한사람에게도 이렇게 영향을 받는데 하물며 사회의 리더가 수시로 그런 행동을 보인다면?

지금 우리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현재 우리는 지금 처한 상황이 무언가 잘못되었으며, 어딘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하며 또 어디로 가지 말아야 하는지도 다들 인지하고 있다. 그럼 이쯤에서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왜 우리는 그것을 알면서도 솔직하게 시인하지 않는 것일까? (p. 112)

이 사회가 역행하고 있는가? 과연 그럴까? 과거가 지금보다 더 품위있었다고? 지금이 더 무례하다고?

나는 잘 모르겠다. 늘 무례와 품위가 경쟁하듯 공존해왔다. 어느쪽으로 쏠리느냐에 따라 표면적 모습이 달라 보일 수 있지 않을까.

현실 세계에서는 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며, 누구도 나에게 무언가를 묻지 않는다. 설령 묻는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답을 할 수가 없다. 또한 이 현실 세계에서는 대단하든 미미하든 간에, 인생이 발전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세운다. 현실 세계에서는 자기 자신이 완전히 무의미한 존재로 느껴지기 때문에 이를 견딜 수 없어 확실하고 안전한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p. 141)

자기만의 세계에 대한 규칙이 확고한 사람일수록 사실은 현실에 대한 불안감이 높을 수 있다는 말에는 일면 공감한다. 취업이 안되는 청년이 채식주의자로 변신하여 자신의 일상에서 엄격히 자신을 관리하는 것이 외부적 불안 요소에 대해 자신을 지키는 방법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저자의 사례에도 그럴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자도 말하듯이 어떤 이유에서는 개인화로 자꾸 찢어지기만 하는 것은 사회적 측면에서 봤을때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 파편화된 개인들은 거짓 뉴스에 더 쉽게 휩쓸리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 책을 시작할 때만 해도 품위라는 개념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다다르니 그 개념에 조금은 가까워진 듯하다. 한 인간이 스스로를 통제하는 행위라고 말이다. 아니면 살을 좀 더 붙여서 이렇게 표현하는 건 어떨까. 품위란 다른 이들과 기본적인 연대 의식을 느끼는 것이며, 우리 모두가 생을 공유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라고. 또한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크든 작든 모두 동일하게 중요하며, 이를 일상의 모든 상황 속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p. 207)

저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에 감동한다. 로마제국의 황제임에도 스스로에 대한 검열이 철저했던 그가 남긴 기록은 '명상록'으로 대대손손 가르침을 주고 있지만, 그가 그토록 어렵게 유지했던 품위가 그 자신에게만 지켜졌던 것임을 역사는 (안타깝지만) 이미 알려주고 있다. 지금 이 시대에 로마황제도 지키기 어려웠던 품위를 일상에서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다른 건 물라도, 인간은 자신의 인생만은 제대로 통제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때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가 통제의 한 부분을 담당했지만 오늘날 민주주의는 그 힘을 잃었다. 이제 더 이상 민주주의는 통제를 보장하지 못한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어떻게든 통제의 힘을되돌리려 애쓰고 있다. (p. 225)

"네가 만약 다른 사람을 바꾸려고 한다면 이내 실패하게 될 거야. 실제로 네가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뿐이지. 바로 너 자신.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없어. 그러니까 너 스스로 세상을 보다 호의적으로 대한다면 아주 작은 티끌만큼이라도 세상은 더욱 나아지게 될 거야" (p. 228)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우리는 이들을 존중할 책임이 있다. 또한 이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인정과 배려 그리고 호의와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여기에는 '모든 유형의 인간' 과 연대하려는 의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연대감은 우리가 인간다운 품위라 칭하는 가치의 근본적인 토대이기도 하다. 각 개인의 문제는 곧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p. 244)

인간이 인간이기에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품위가 무엇일까? 인간답다는 것이 무엇일까? 상대적인 개념일수록 쉽게 답할 수 없다.

그렇기에 어쩌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누구에게 보다도 일단은 나 자신에게 계속 질문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품위가 있는 인간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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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 2022-07-16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더 무례한 시대로 역행하고 있다는 주장에는 크게 공감이 안되었어요. 정말 과거에 비해 다름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나? 오히려 그렇지 않기에 다원화된거 아니야? 싶기도 하고요.

정성스러운 리뷰 잘 읽었습니다! ㅎㅎ

LILLY 2022-07-19 12:08   좋아요 1 | URL
공감하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