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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달님만이
장아미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평점 :
종이책을 좋아해서 온라인으로 소설을 본 적이 없다보니 몰랐는데, 브릿G라는 온라인 소설 플랫폼이 있다고 한다. 브릿G에 연재됐던 인기작들이 출판되고 있는데, 얼마전 '피어클리벤의 금화' 라는 판타지 소설을 정말 재밌게 봤었다. 같은 출판사 같은 플랫폼 에서 나온 이 소설은 한국형 판타지를 표방하고 있어서 어떤 책일지 기대가 됐다. 전래동화 느낌이 나는 표지에서 판타지라니~?
처음 접하는 신세계였다. 전래동화적 요소들로 이렇게 판타지소설을 쓸 수도 있구나 싶은 것이 놀라웠다.
몰락한 집안, 한 마을의 수령(사또), 인신공양, 무당, 호랑이, 용 등 익숙한 배경과 소재들로, 정말 지극히 한국적인 요소들로 판타지소설이 쓰여지다니.
게다가 재미있었다.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아무래도 재미 아니겠는가.
영화속에서 주인공은 죽지 않을걸 알면서도 주인공에게 총알이 빗발치거나 사고가 나면 가슴이 조마조마하듯이 이 소설속에서도 등장인물이 낯설지 않고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이 가면서도 빠져들어 읽게 된다. 그렇게 첫장부터 끝장까지 한번에 쑤욱 읽고나니 간만에 소설이 주는 개운한 재미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얼마만에 느끼는 해피엔딩의 개운함인지 ㅎㅎㅎ
작은 섬마을에 자매가 유배된다. 갑작스런 집안의 몰락에서 겨우 살아남은 어린 자매는 서로를 의지하며 작은 섬마을에서 겨우겨우 삶을 이어간다.
어느날 마을에 기괴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진다. 마을의 무당은 범신께 제물을 올려야 한다며 굿을 하고, 마을의 수령은 호랑이를 잡으러 산으로 떠난다.
수령은 행방불명 된채 마을에서 네번째로 뽑인 제물이 바로 자매의 언니인 희현. 그러나 희현에게는 아기가 있었고 동생 모현에게 자신을 대신해 줄것을 부탁한다. 모현은 홀홀단신 이므로 그 부탁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제물로 검은산에 오르게 된다. 그렇게 산에 올랐던 모현은 다음날 행방불명 됐다던 수령의 등에 업힌채 마을로 돌아오게 되는데...
물웅덩이에 비친 달그림자가 바닥에 떨어뜨려 산산조각이 난 면경처럼 불길하게 흩어졌다. (p. 9)
범상해 아까운 줄 몰랐던 하루하루가 앞치마에 담은 달걀처럼 모현에게 더없는 온기로 다가왔다. (p. 11)
동화의 향기가 전혀 나지 않는 것은 작가의 문체덕분이다. 한문장한문장 고심해서 썼다는 느낌이 드는 정결한 문장들이었고, 시대에 맞는 고어들을 골라 쓰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두드러졌다.
"그대였어. 그대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지. 잘 왔다. 소녀야. 이로써 예언은 이루어졌으니" (p. 25)
판타지의 핵심 소재는 '예언' 아니겠는가. 초반에 등장한 예언은 누구에게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마지막까지 운명적인 사랑으로 잘 연결된다.
무당이 주장한 것과 같이 제수는 바쳐져야 했다. 인간제물, 그네들은 마땅히 여자여야 했다. 어리거나 보호자가 없거나 집안의 위세가 덜하면 덜할수록 좋았다. 당산나무 앞에 꿇어 앉혀진 여자들 가운데 천이가 처음으로 골라낸 이는 과붓집 둘째 딸이었다. 그 어미는 자기 딸은 절대 내어놓을 수 없다며 눈물로 호소했지만 무섬증에 반쯤 돌아버린 이웃들은 기어코 아이를 끌어내 그집, 우리에 가두었다. (p. 37)
천이는 그들의 입이었다. 목소리였다. 그 무렵 천이는 수령도 없는 마을에서 공포를 무기 삼아 힘 있고 부유한 사내들을 쥐락펴락하는 힘으로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p. 38)
무당 천이는 소설 속에서 악의 축이다. 그런데 천이가 하는 말과 행동들을 보다보면 현실속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든다. 사회의 부조리를 대변하는 인물로서 천이는 늘 존재해왔던 인간유형이다. 천이에게 휩쓸리는 마을주민들의 행태도 익숙하다. 거짓된 믿음에 홀려 단체행동을 하는 우매한 무리로서의 마을주민들 또한 지금도 어딜가든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한참동안 행방불명이었던 수령은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외모는 같으나 성품이 반대로 바뀐듯 딴사람인듯 돌아왔다. 천박하고 몰상식한 성격이 아니라 진중하고 이해깊은 사람으로 돌아온 수령은 모현의 울타리가 되어준다. 그러는 사이 돌아온 범의 신부인 모현을 둘러싸고 마을내 혼란이 거듭된다.
짚신을 신고 초립을 매만지며 김 의원이 뒤숭숭한 심정을 다스렸다. 권세가 하늘을 찌를 지경인 무당과 살아 돌아온 수령, 두 권력 간의 대립과 불화를 헤아리는 그의 속셈이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저 소녀의 처분을 두고 벌어질 설왕설레가 마을에 어떤 소용돌이를 일으킬지 그로서는 도무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p. 64)
선과 악의 두 권력 축에서 혼란스러운 사람들은 상황에 드러나 있는 그 이면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선으로 보이면서 악인것 같고 악으로 보이면서 선인것 같은 혼란속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은 결국 누군가에게 이용당할 빌미를 주게 된다. 이또한 낯설지 않은 설정임에도 글씨로는 옛날 이야기를 읽고 있는 기분의 소설을 보면서 지금의 현실세계를 느끼는 오묘함이 이 소설의 매력중 한가지이기도 하다.
우리 아기, 이렇게 울지 않아서 어쩌나. 그 마음에 못다 흘린 눈물이 차올라서 어째. 아파도 아프다 말할 줄 모르고 슬퍼도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릴 줄 모르니. 걱정이구나. 네가 이렇게 씩씩해서. 이토록 무심하게 굴어서. (p. 128)
천이의 고백, 그 배후의 진실을 단박에 들여다볼 만큼 희현은 영리한 사람이었다. 검은산으로 끌려 올라간 소녀들, 앳된 그 얼굴들이 희현의 눈앞에 하나씩 떠올랐다. 족두리를 쓰고 초록 원삼을 입은 채로 어깨너머로 자신을 더듬어보던 동생의 모습까지. (p. 204)
희현 과 모현 자매의 대비되는 상황들은 예상하듯이 안타깝다. 그 어쩔수 없음 또한 익히 알면서도 안타깝다. 운명이란 것이 확실히 존재하는 소설속에서 운명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인생들은 하나같이 다 마음쓰리다. 그러나 소설이건 현실이건 주연과 조연과 엓트라들은 늘 구분되어 있는 것을...
삶이 무겁고 시간이 버겁고 사람이 힘겨울때 소설이 주는 위안은 소설의 종류만큼 다양하다. 내 경우 이 소설처럼 주제가 가볍고 기승전결 확실하고, 맺고 끊음이 분명하며 마무리는 해피엔딩인 소설을 읽었을 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한여름 푹푹찌는 더위에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처럼, 여전히 더운 여름일지라도 소나기를 맞는 동안은 더위를 잊는 것처럼, 소나기를 맞는 동안 생각했던 빗줄기들은 소나기가 그치면 언제 그랬냐 싶게 까맣게 잊을지라도, 소나기가 주었던 개운함은 새로운 에너지로 남아있게 된다. 내 안 어딘가에.
근래 읽었던 책들에 대해 좀 지쳤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찬바람으로 집안을 환기시킨듯 개운해졌다. 다시 열심히 책을 읽어야 겠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