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저자는 베트남의 민 카이 마을에 대한 현장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위와 같은 살펴보는 시선을 독자 스스로 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나름 철저하게? 분리수거 하면서 뿌듯함을 느끼거나 환경에 대한 미안함을 덜어내곤 한다. 하지만 그 쓰레기들이 정말 재활용되고 있는 것이 맞을까?
거시적으로 모든 재활용 시스템을 살펴볼 순 없지만 베트남의 민 카이 마을 한곳을 세세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재활용에 대한 기대는 허상이고 거품이었음이 드러난다.
세계의 재활용 쓰레기들은 자국에서 처리되지 않고 타국으로 수출된다. 그 쓰레기들을 수입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가난한 나라들이다. 그 나라들에는 쓰레기 마을이 있다. 쓰레기 마을에서는 온갖 악취와 더러움 속에 쓰레기산을 헤집으며 다시 쓰레기를 골라내고 그중 일부가 재활용품으로 재생되지만 그 사용처 또한 그 쓰레기마을에서 순환될 따름이다. 쓰레기를 버린 나라들에서는 깨끗한 원재료로 깨끗한 재활용 봉투를 만들어 재활용하지 않고 그저 버린다면 그 쓰레기를 받은 나라들에서는 더러운 원재료로 믿을 수 없는 재활용 봉투를 만들어 나름 재사용하지만 그 사이 환경과 건강은 빠른 속도로 나빠지고 있으므로 그것이 과연 재활용인 것인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고나 할까. 그 대표적 예시가 플라스틱 마을이라 불리는 민 카이 였다.
결국 재활용의 문제는 환경의 문제라기 보다는 정치의 문제였고 불평등의 문제였다. 누군가의 친환경을 위해 누군가의 환경은 철저히 파괴되고 있었다. 지금은 서로 연관없어 보이는 그 장소들이 사람들이 과연 계속 연결되지 않을거라 장담할 수 있을까? 바닷물은 돌고돌고 대기는 돌고돌고 전염병도 돌고도는데?!
현재의 재활용 시스템은 전혀 친환경적이지 않았다. 지금 내 눈앞에서 더러운 쓰레기가 사라진다고 해서 내가 계속 깨끗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과신하지 말자. 어차피 모두 지구에서 살고 있다. 내가 버리고 더럽힌 것은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하자. 재활용이 진정 재활용이라는 단어에 어울릴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우리는 좀더 신경써야 할 것이다.
ps. 프랑스와 영국은 오랜 역사에서 서로 경쟁관계에 있었다. 대부분 서로 앙숙인 관계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프랑스학자인 저자는 민 카이 마을에서 찾은 쓰레기들 중에서 유독 영국과 아일랜드의 것을 콕 집어내고 친환경적이지 않은 재활용업체들 중에서 유독 영국 기업을 콕 집어낸다. 험담을 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세계의 쓰레기와 세계의 모순적 기업들 중에서 유독 영국것을 예로 든 것은 인류학자라는 저자의 직업에서 갖춰야할 중립성이 조금은 흔들려 보여 아쉬웠다. 또한 르포라면 상세한 르포로, 프로가 아니라면 좀더 확실한 연구데이터로 논리를 세워 전개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자신이 눈으로 본것 베트남 사람들을 몇명 만나 대화를 나눈 것으로 넌즈시 읊조리고 있는 이 책은 너무 모호한 내용이라 '쓰레기 식민주의'라는 거대한 모순을 파헤쳤다거나 제대로 드러내주지 못한 것 같아서 이또한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