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MBTI가 같네요! MBTI 테마소설집 3
김홍 외 지음 / 읻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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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에 한 발 뒤처지는 정도가 아니라 유행이 뭔지도 모르는 채로 살고 있는지라. 그러다 뒤늦게 눈치 없는 애처럼 뭐야, 뭐야 그게 뭐야 한다. 나도 좀 알자 이러면서. 열풍인 MBTI도 그랬다. 유행일 땐 관심도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지겨우니까 MBTI 이야기는 그만하자. 이럴 땐 난 MBTI에 과몰입해 있다.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신난다. 나도 잘 모르는 나를 알파벳 네 개로 알려준다니. 혈액형 한 글자로는 부족했지. 암 그렇고말고. 좀 더 많이 알려줘야지. 종이 검사지로 해본 나의 MBTI는 ISFP이다. 침대와 한 몸. 계획은 세우기만 할 뿐. 귀찮아라는 말을 수시로 하고 상대의 말에 아 진짜?와 그렇구나로 돌려 막는다. 선택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낀다. 특히 물건 살 때. 얼마간의 고민 끝에 두 개를 다 사고 후회하는 타입.


MBTI 테마소설집 『우리 MBTI가 같네요』는 귀찮음의 대명사 그렇지만 미워할 수 없는 ISFP 이야기가 있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이주란이 썼다. 이주란도 ISFP란다. 어쩐지. 소설을 읽어갈수록 극공감 되어 나중에는 울고 있더라니. 성향이 비슷해서 그런 거였다. 신기방기 동방신기.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감정형 F들을 그린다. 


첫 번째 소설 「여기서 울지 마세요」는 제목부터 나를 울린다. 나이 때문도 아니고 원래부터 나는 눈물이 많았다. 소심하고 예민해서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나는 내가 ISFP라는 걸 아니까 괜찮아졌다. 너의 그런 모습을 MBTI로 책임을 돌리지 말라고 혹자는 말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너는 이렇다고 세상 친절하게 알려주는데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울지 말라고 했지만 「여기서 울지 마세요」를 읽고 울고 다음 편 「9」를 읽으며 대책 없는 계획에 또 한 번 눈물바람. 드디어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ISFP 소설 「안경」 차례. 성향이 비슷한 두 친구의 일상 이야기는 나의 모습 그 잡채. 귀찮아와 다음에 할까를 연발하며 그럭저럭 하루를 얼렁뚱땅 넘기는 나를 사찰하여 쓴 소설이다. 「양지바른 곳」은 독특한 인물이 나온다. 흡혈인 조황주의 내일이 궁금하다. 


나랑 딱 하나만 다른 ISFJ 이야기 「수호자」는 목에 올라탄 귀신과 함께 할 수밖에 없을 주인공 때문에 웃프다. 현실에서 이 말을 꼭 해보고 싶다. 우리 MBTI가 같네요. 같은 ISFP인들을 만나서 맞아, 맞아, 그래, 그래, 아 진짜를 연발해 보고 싶다. 침대와 이불, 베개 정보를 묻고 어떤 자세로 누워 있을 때가 편한지 조언도 좀 듣고 말이다. 


여행 이야기는 금물. 내일 뭐 할까 묻는 것도 금물. 아무 이야기 안 해도 괜찮고 뭐 먹고 싶어요라고 계속 질문하는 ISFP인들의 만남을 호응해 주시라. 원래도 누워서 읽지만 『우리 MBTI가 같네요』는 시작부터 끝까지 누워서 읽었다. 잠깐 앉아 있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귀찮지만 타인의 곤란함에 대해서는 모른 척하지 않고 어떻게든 도우려고 한다. 다른 성격학 검사도 있다고 하지만 당분간 MBTI로 나를 위로할래. 칭찬만 해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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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적 낙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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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유일하게 살아 있는 생물이란 스투키 화분 하나이다. 기억을 더듬어 가보자면 2021년 봄 집 앞에 있는 화원에서 데려왔다. 선인장도 죽이는 사람이라 무얼 들여놓기가 어려웠다. 오래 살 수 있는 걸로 추천해 주세요. 사장님은 스투키를 권했다. 과습 때문에 죽는 아이라 잎을 만져보고 홀쭉해져 있으면 물을 주면 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나름 신경을 쓴다고 일정 간격으로 물을 줬다. 잘못이었다. 잎이 노랗게 변해버렸다. 가지치기 그런 것도 모르고 그냥 잎을 잘라버렸다. 그 후로 방치. 다섯 개의 잎으로 지금까지 살아있다. 살아있, 는 게 맞을까. 아무튼 잎은 초록색이다. 선인장처럼 대우해 주고 있다. 키우고 돌보는 건 어렵다. 마음을 쓰는 일에는 재능이 없다. 


김금희의 산문집 『식물적 낙관』은 식물 하는 사람의 마음의 온기가 적당해 손에 자꾸만 쥐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책은 이상하다. 책은 이해할 수 없던 시간과 기억을 불러와 끝끝내 나를 이해시키고 만다. 형편이 안 좋았음에도 화분 하나씩을 들여와 물을 주고 꽃이 피는 걸 좋아했던 장면이 있었다. 곧 시들어 버리는 비싼 꽃다발은 사지 않았다. 대신 높은 곳에 걸어 두면 아래로 잎을 축복하듯 떨구어 주던 화분들을 샀더랬다. 


그런 낡고 헤진 기억들이 있었다. 무해한 것만을 취하는 꽃과 나무들. 약간의 돌봄만 더해준다면 좀 커다란 기쁨을 선사해 준 것이리라. 뜻대로 되지 않던 일에 치이고 화원 앞을 지나다 그중에 저렴한 화분을 하나씩 사서 집으로 돌아왔으리라. 그건 뜻대로 되던 일이리라. 『식물적 낙관』에 등장하는 식물들의 이름 중 베고니아, 제라늄, 유칼립투스는 반가웠다. 아는 만큼 보인다. 어떤 날들에 그 이름을 가진 식물들과 함께였다.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으로 이어지는 계절에서 식물들은 자라거나 생장을 멈추기도 한다. 누군가의 발코니에서 자라나는 식물들의 사계절을 책으로 만나는 행운을 누린다. 그 애들의 성장을 보다 보면 세상 무수한 복잡한 일도 별것 아닌 것이라 여기는 '식물적 낙관'의 근육이 생긴다. 공기, 햇빛, 물, 바람만으로도 살아가는 식물의 생태계 안으로 인간도 한 발 들어가 함께 하면 어떨까. 그런 마음이 『식물적 낙관』에 곳곳에 놓여 있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식물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는 관심과 사랑이다. 스투키 화분에는 이름을 쓸 수 있는 하트 목걸이가 달려 있었다. 이름을 붙여주자.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꽃이 되고 의미가 되니까. 견딜 수 없는 날들에 무얼 해야 할까. 우리에겐 마스크를 써야 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눈으로만 소통을 해야 했고 코가 간지러워 재채기를 하면 눈치가 보였다. 작가는 그 시기를 식물을 가꾸는 일로 살아갔다.


주먹을 쥐면 손등에 선명한 기미가 보인다. 어느덧 힘들었을 시간을 견딘 그이와 같은 나이가 되어 가고 있다. 화가 나고 슬퍼지는 순간을 돌보고 아끼는 마음으로 대체할 수 있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물 주기와 햇빛 쪽으로 옮겨 놓기라는 행동으로 바꾼다. 절망을 낙관으로 바꾸는 것으로 세계는 무해한 식물로 가득해진다. 공기는 정화되고 배경 이미지는 녹색으로 우리는 다른 별로 이주를 꿈꾸지 않아도 된다. 다 잘 될 거야 하는 터무니없는 낙관의 마음을 가진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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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의 노래
공선옥 지음 / 창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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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선재는 할머니에게 학교에 가는 날이라고 거짓말한 걸 두고두고 후회한다. 할머니는 선재가 같이 장에 갔으면 했다. 할머니 혼자 장에 갔고 선재는 친구 상필이 집에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계란 프라이와 볶음김치로 밥을 먹었다. 배부르게 먹고 나무 위에 올라갔다. 이장이 찾아와 할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공선옥의 소설 『선재의 노래』는 그렇게 한 사람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후회를 그린다. 몰랐지. 몰랐어. 여느 날과 같은 하루인 줄 선재는 알았을 거다. 귀여운 손주와 장에 가고 싶은 할머니의 마음을 알았지만 선재는 다음에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손수레를 끌고 장에 가는 할머니의 그 모습이 살아있는 할머니의 마지막이 될 줄이야. 몰랐다. 


명절, 생일, 어버이날 같은 기념일을 챙길걸. 전화가 오면 짜증 내지 말고 받을걸. 단 얼마라도 꾸준히 돈을 보낼걸. 하는 후회의 마음들이 매일 차곡차곡 쌓인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틈이 있는 빈 공간을 차지해 고여 있다. 고여 있는 시간 안에서 잘못한 기억과 그로 인한 반성의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 너의 한심함에 대해 1,500자 내외로 서술하시오. 문제를 받아들고 빈 종이를 채워나가야 한다. 


열세 살 선재는 할머니가 떠나고 혼자가 된다. 울고 후회하고 그리워한다. 세상천지에 나 말고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이 사무친다. 혼자인 선재는 어떻게 살아갈까. 할머니 없는 선재의 오늘이 걱정되어 죽을 것 같았다. 누가 선재를 돌봐주지. 다행히 동네 사람들이 먹을 걸 챙겨다 주지만 선재의 마음까지는 어쩌지를 못한다. 할머니의 유골함을 챙겨 선재는 길을 떠난다. 


『선재의 노래』는 죽음 뒤에 오는 상실의 순간을 겪어낸 모든 이들을 위로하는 소설이다. 모두 전부 죽는다. 이것만 알면 잘못도 후회도 남기지 않을 수 있다. 아직 어린 열세 살 선재라서 몰랐다. 언제나 곁에 할머니가 있을 줄 알았다. 나 역시 그랬다. 죽는다 죽는다고 해도 그 순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라서 싸가지 없이 굴었다. 


할머니를 잘 보내주기 위해. 남은 날들에 할머니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선재는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슬픔이 모이면 노래가 된다. 갇힌 슬픔을 풀어주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기억이 슬픈 사람들에게 바쳐지는 제물이다. 노래 부르게 해줄 테니 울지 마. 오늘 추석 선물로 장어 세트를 받아왔다. 왜 좀 더 나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할까. 됐다. 됐어. 그런 마음 갖지 말고 노래를 부르자. 선재가 부르는 노래를 이어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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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최현숙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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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방, 책상 꾸미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가만히 찬찬히 생각해 본다. 매일 책을 사들이는 일에 대해서도. 한 문단씩 글을 쓸 수 있게 나온 노트를 몇 권씩 장바구니에 담아 놓은 일까지도. 무언갈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대단한 사람이 아닌지라 뾰족한 답은 없다. 다만 짐작하기에 쓰지 못하는 일에 답답함을 소비로서 풀어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정도. 


쓸데없다고 하면 쓸데없는 일. 향이 괜찮은 방향제를 두 개 사서 방에 놓아 놓는 일. 냄새에 민감한 나로서는 방문객이 전무후무한 집이지만 집에 들어왔을 때 이상한 생활의 냄새가 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비슷한 옷을 사고서 잘 샀다고 나를 위로하는 일. 입고 싶을 때 입어야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안 그래, 지나가고 있을 젊음을 만끽하고 싶어서. 


무엇이든 쓴다는 아무 말이나 쓴다와 같다. 어차피 쓰는 거니까. 문제는. 문제는. 없다고 할란다. 내가 쓴다고 하는데 문제가 될 일일까. 최현숙의 산문집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를 읽다 보니 그 생각은 확고해졌다. 나에 대해서든 부모에 대해서든 쓴다. 살아오면서 부끄럽고 치졸했던 일도 쓴다. 글의 영향력은 쓰는 자의 영향력일진대 쓰는 자의 영향력은 없으므로 그냥 막 쓰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무언갈 마구 사들이는 일을 잠시 멈출 수 있지 않을까. 


엄마는 내게 이런 부탁을 한 적이 있다. 자기가 나이 먹고 돈을 못 벌면 한 달에 20만 원씩 부쳐 줄 수 있겠느냐고. 나는 그건 할 수 있지 했다. 결국 엄마는 나이 먹고 돈을 못 벌 수 있는 행운을 갖지 못했다. 살아 있어야 나이도 먹고 돈도 못 버는 시기도 갖는 게 아닌가.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는 엄마와의 그런 마음 아픈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다. 


어린 시절 돈을 훔쳐 스스로를 도둑년이라고 하던 때의 이야기부터 액취증의 기억, 가족과의 결별 스토리, 늙어가는 몸에 대한 단상, 노숙인들과 보내는 노년의 지금까지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는 거침없이 숨김없이 한 인간의 생애를 바라보며 들려준다. 자신을 자신이 조망하는 시선이 압권이다. 후회나 변명의 언어는 없다. 그때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같은 비루한 관점은 허락하지 않는다. 


걱정도 유전일까. 어느새 나도 그때의 엄마와 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 눈도 안 보이고 나이 많다고 나가라고 하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퇴사자들에게(딱히 궁금한 건 아니지만 묻는다. 예의상. 이제 뭐 하실 거냐고. 그들 역시 그냥 대답해 준다는 대충의 답으로 장사를 할 거라고 한다.) 농담으로 저 일 잘하니까 저 쓰세요 한다. 노후 대비책으로 말이다.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는 하찮은 농담을 하는 나에게 일갈한다. 늙음으로 찾아오는 불행은 소문일 뿐이라고. 카더라 식의 출처 없는 무성의한 농담조차도 되지 않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그렇군. 두려움을 심는 일. 자본주의 사회는 두려움으로 굴러간다. 넌 이제 늙을 거야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겠어. 보험 들고 대출받아서 집 사고 투자해야지. 결혼도 해서 아이도 낳고 그래야 노후가 편하지. 


구술생애사 작가, 소설가, 홈리스 행동가 최현숙은 그 모든 두려움을 소문으로써 날려버린다. 오래 살아남은 자의 조언이자 충고이자 잔소리 같은 말이라서 더더욱 신뢰가 간다. 그가 말하는 족과 관련된 관혼상제 건너뛰기, 원가족과 단절하기, 비급여 항목 정확히 묻기, 반려동물의 이견 지지하기, 간단한 삶에 수긍하며 살기 등 두려움을 소문으로 여길 수 있는 항목을 알뜰히 취해야겠다. 늙을 수 있다는 건 특권이다. 어느덧 그런 사회가 되어버렸다. 늙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므로 매일 책을 사는 일에 자책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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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 어딘가에는 @ 있다 시리즈
한인정 지음 / 포도밭출판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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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문제 아니다. 다음 문장에 비어 있는 곳에 낱말을 채워보자. 어딘가에는 ○○이 있다. 무엇무엇이라고 읽을 텐데. 혹은 땡땡이라고. 생각나는 게 있는지. 곧바로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 어딘가 시리즈 중 하나인 책의 제목이다.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느 곳인 어딘가에는 무엇이든지 있을 수 있다, 무엇이든지 있다. 


짐작하기 어렵고 확신할 수 없지만 어딘가, 무엇무엇은 있다. 싸우면서 소리치는 자들의 외침이 있다고 한다면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는 충북 옥천군에 사는 이주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온 여성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실명 대신 나무, 바다, 새벽, 여름으로 불리는 그녀들은 자신이 겪어온 삶을 이야기한다. 


미디어는 이주 여성의 삶을 전부 보여주고 알려줬을까. 방송에서 보여준 대로 극적이거나 자극적인 부분에 속지는 않고 있나.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는 그동안 이주 여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국적만 얻고 도망가는 여성들이라는 편견이 있지는 않은지. 결혼의 목적은 돈을 받아 고향에 보내기 위함이 아닌지. 


그녀들은 말한다. 도망을 가는 모습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도망을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알아야 한다고. 그런 행동을 하기까지 어려움에 처한 환경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돌봄 노동과 가사 노동에 이어 직업 노동까지 하는 그녀들의 삶의 모습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녀들의 어려움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환경에 있었다. 


결혼하기 전 남편의 직업은 이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후에는 다른 것이었다는 것. 모국어를 쓰지 못하게 하는 시집 사람들. 단순히 외모만 보고 하대하는 사람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겪어야 했던 차별은 그녀들로 하여금 목소리를 내고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알려야 하는 이유를 만들게 했다. 그리하여 '옥천군 결혼이주여성협의회'가 생겨난다. 


옥천에는 이주 여성들이 산다. 옥천에는 '옥천군 결혼이주여성협의가'가 있다. 어딘가에는 하라면 하라는 대로 했다가 좌절을 겪은 이주 여성들이 만든 단체가 있다. 남편에게 맞아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 상황을 설명하지 못할 때 무조건 빈 몸으로 나가라는 남편에게 맞설 때 집을 나와 갈 곳이 없어졌을 때의 어려움을 알기에 만들어졌다. 


공간이 필요하다. 모여 있을 자리가 필요하다. 나의 말로 말할 때 이해해 주고 도와줄 누군가 필요하다. 어딘가에는 그런 곳이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사는데 힘이 된다. 고민 없이 사 마실 수 있는 커피, 사 입을 수 있는 바지와 같은 맥락이다. 고민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 나의 어려움을 말할 수 있는 곳이면 된다. 고민 없이 무언갈 할 수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살아가진다. 더 이상 밤의 거리를 서성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어딘가에는 그런 곳, 그런 곳들이 많아야 한다. 옥천과 그 어딘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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