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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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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써 울음을 참느라 한동안 간호사실 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치통이 옆에서 나를 감싸 안아주었고, 그렇게 해준 그녀를 나는 지금도 사랑한다. 가끔 나는 테네시 윌리엄스가 블라이 뒤부아의 이런 대사를 썼다는 사실에 슬퍼진다. "나는 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하며 살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낯선 사람들의 친절을 통해 여러 번 구원을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도 범퍼스티커처럼 진부해진다. 나는 그 사실이 슬프다. 아름답고 진실한 표현도 너무 자주 쓰면 범퍼스티커처럼 피상적으로 들린다는 사실이.
(98p)


  맹장 수술 이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 때문에 병원에 9주 동안 누워 있는 루시 바턴은 그곳에서 자신에 대한 오랜 기억들과 대화를 나눈다. 옷 가게에서 만난 세라 페인과의 만남에서 루시는 자신을 위한 이야기를 쓸 것을 다짐한다. 나로 시작하는 이야기. 오직 나를 위한 나만을 향한 기억을 가진 이야기. 세라 페인은 말한다. "독자에게 무엇이 작중 화자의 목소리고 작가의 개인적인 견해는 아닌지를 알리는 건 내 일이 아니에요." 
  텔레비전도 없고 차고에서 살아야 했던 루시의 어린 시절을 지탱했던 건 따뜻한 난방이 나오는 도서실이었다. 그곳에서 책을 읽으면 보낸 시간 덕분에 루시는 숙제를 충실히 하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다. 성적은 나아졌고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에 들어갔다. 루시가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는 어떤 의미에선 좋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루시의 옷차림을 좋게 보지 않은 교수가 있었고 그에게선 사랑을 느꼈으나 그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결혼을 해서도 루시는 책을 쓰길 원했고 아이들이 자랄 때까지 틈틈이 단편 소설 두 편을 발표했다. 늘 글쓰기에 대한 갈망을 놓지 않았다.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루시의 엄마가 찾아왔다. 그녀는 루시 곁에서 쪽잠을 자면서도 루시와 대화했고 오랜 기억들을 나눴다. 대부분 아는 여자들의 결혼 생활과 그 이후의 일들이었다. 루시는 왕래가 없었지만 그리움으로 가득했던 엄마와의 시간들을 소중하게 기억한다. 
  루시가 퇴원하고 시간이 흐른 뒤 엄마의 임종을 지키러 갔지만 엄마는 루시에게 곧 떠나줄 것을 요청한다. 루시는 떠나오고 결혼 생활은 끝이 났다. 아이들은 올곧게 자랐고 루시는 작가로서 성공을 한다. 연락하지 않았던 오빠와 언니와 전화를 하고 언니가 요구하는 돈을 보내며 살아간다. 나를 이루는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보면서 루시는 자신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죽음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자신에게 친절하거나 그때는 몰랐지만 무례하게 굴었던 사람들의 면면을 떠올려 본다.
  엄마와 보낸 다섯 밤낮은 루시를, 루시의 글쓰기를, 루시의 삶을 왜곡하거나 미화하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 돌아보게 만든다. 간호사를 별명으로 부리는 엄마. 다정하지도 사랑한다는 표현도 하지 않은 엄마. 딸이 걱정되어 비행기를 타고 와 이야기를 나눠 주는 엄마. 루시는 완전하지 않은 가족의 모습에서도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만들어준 낡은 추억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기로 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삶에서 오로지 '나'를 들여다보고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병원에서 죽어가는 엄마와 보낸 시간을 통해 나 자신의 연약함과 미성숙함을 정면으로 마주 볼 수 있었다. 다인실에서 나누는 대화가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까봐 소곤거렸고 피곤해서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상태에서 엄마 곁을 지키는 동안 삶은 불편하고도 지루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친절한 사람들이 있었다. 울고 있는 루시를 안아주는 치통 간호사처럼.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엄마에게 주사를 주는 간호사. 이것저것 묻고 싶은 마음에 바나나 껍질을 까서 내미는 환자 보호자. 목욕을 해주고 머리를 깎아 주는 자원봉사자들. 보호자들을 위해 매주 한 번씩 점심을 마련해 주는 사람들. 너덜너덜해진 채 감사합니다를 말하곤 했지만 그때는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누구의 이야기일까. 이것은 내가 경험한 것을 그대로 기억해 쓴 것일까. 소설에서 영화에서 본 장면일까.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과 슬픔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삶의 기억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작업이다. 엄마가 죽고 나서 나의 삶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떨어져 살았고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유년은 짧았다. 나 대신 다른 이가 그 사랑과 함께 살았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미움과 분노의 감정이 몰려올 때 책을 읽거나 맥락이 맞지 않는 글을 쓴다. 가끔 슬프다. 주말이면 걸려오곤 했던 엄마의 전화가 없고 명절이면 갈 곳이 없다. 조금 기쁘다. 루시의 이야기를 통해 기억과 싸울 수 있고 슬픔을 이길 수 있어서.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읽어서 엄마 없는 추석이 쓸쓸하지 않을 수 있겠다. 
  잘 쓴 소설을 읽는다는 것.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금의 나를 과거의 나와 만나게 해주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은 2017년 최고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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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세사르 바예호 지음, 고혜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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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오늘 나에게 물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이 오후에 그 아무것도 내게 청하지 않았습니다.
(아가페 중에서, 세사르 바예호)


  오늘 우리에게 쏟아진 파란 하늘의 햇살은 찬란했습니다. 미세먼지가 걷힌 가을 하늘에는 지나가는 새들의 운행이 있을 뿐 고요했습니다. 덥게 느껴지다가도 바람이 불어와 우리의 등을 식혀 주었습니다. 마음의 소리를 고요히 듣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버스에 앉아 열어둔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과 신호들에 잠깐 눈을 주기도 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제 읽다가 덮어둔 한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책장이 넘어가는 동안 오전의 시간은 다급하게 지나갔습니다. 절판된 시집이 다시 나오는 시간은 이십 년이 걸렸습니다. 페루의 가난한 시인의 시들은 절박하고 따뜻하고 걱정으로 가득했습니다. 세사르 바예호의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에 담긴 마음들을 가만히 떠올려 봅니다. 
  시집에 실린 시의 계절은 가을입니다. 9월의 밤과 풍경들이 등장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추억하는 밤과 비가 내리는 오후가 우리를 시의 현장으로 데려갑니다. 어떤가요. 시를 읽는 오전과 오후를 지나 밤으로 질주하는 하루를 갖고 싶지 않으신가요. 불안과 불확실한 추측으로 오해를 살까 전전긍긍하는 순간을 벗어나고 싶지 않은가요. 곧 돌아올 것이라는 부모님의 말만을 믿으며 물기 어린 밤을 보낸 우리는 젊은 시인의 시에서 급작스럽게 호출된 기억으로 슬픔에 휩싸입니다. 그 유년은 덥고 지루한 오후만 남았습니다. 텔레비전이 꺼진 오후를 견디느라 축축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고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질문을 받지 못한 유년은 뒤틀린 책상 위 말라가는 선인장처럼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형! 오늘 난 툇마루에 앉아 있어.
형이 여기 없으니까 너무 그리워.
이맘때면 장난을 쳤던 게 생각나. 엄마는
우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지. "아이구, 애들아···"
(나의 형 미겔에게-그의 죽음에 부쳐 중에서, 세사르 바예호)


  시인은 죽은 형을 기억합니다. 그와 살았던 유년을 잊지 못합니다. 가까운 이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은 시인이 시를 써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 냈습니다. 시인은 죽은 어머니를 시 속으로 불러냅니다. 어머니와 함께 지냈던 집에서 식탁에서 그곳에서 나눴던 대화와 장면을 시로 복원합니다. 시를 쓰는 것은 견디기 위함입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사소한 일에도 가슴이 뛰는 날,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시인은 혼자서 점심을 먹습니다. 어머니의 다정한 말을 떠올리지만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아버지 역시 곁에 없습니다. 우리는 죽었습니다. 살아있다는 착각에 빠진 우리가 세계를 파괴합니다. 전쟁을 일으키고 소요를 만들어 냅니다. 
  체제와 이념이 다른 타인들이 서로를 향해 죽어라라고 외칩니다. 돈을 받으며 구호를 외치는 자들이 있고 명령을 받아 총을 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말[言]들이 죽어나가는 시대를 살아간 시인은 기록합니다. 내전의 참상과 죽어간 사람들의 얼굴을 그립니다. 고통은 우리를 살아가게 합니다. 이제 그립지 않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순간마다 그립고 아픕니다. 죽어간 자들이 죽은 우리를 위로합니다. 죽음으로써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시인은 정리합니다. 은유와 상징은 없습니다. 숨은 의미를 추론하느라 바쁜 시를 배우는 시간에 시는 죽습니다.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습니다. 글자를 읽고 숨을 쉬고 책장을 넘깁니다. 오직 숨쉬기에만 집중합니다. 햇빛을 만지고 바람을 가방에 넣습니다.


전투가 끝나고,
한 사람이 죽은 전사에게 다가옵니다.
"죽지 마!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러나 죽는 사람은 그냥 죽어갑니다.
(XII. 대중 중에서, 세사르 바예호)


  그냥 죽습니다. 죽음의 장소에는 원인도 결과도 남지 않습니다. 숨이 끊어졌다고 했지만 아직 따뜻한 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겨진 우리에게 이제 다정한 밥상도 소란스러운 휴일도 사라졌습니다. 시계를 쳐다보느라 바빠 허겁지겁 밥을 넘기는 노동의 시간이 길게 펼쳐집니다. 이 문장들은 비문일까요. 정확함과 완벽함을 따지는 세계는 모두 완전한가요. 완전하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시대에 시를 쓰고 읽는 일은 논리적인 답변이 되지 못합니다. 의문스러운 죽음이 있고 자연스러운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그냥 우리는 죽습니다. 
  현실에서 나는 나의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꿈일 것이라고 말해보았지만 나는 죽어 있었습니다. 음악도 대화도 없는 그곳에서 나는 눈을 감았습니다. 나무로 살아갈 것이라고 나직하게 읊조렸습니다. 신을 믿지 않는 나는 나를 사랑하는 단 한 사람에게로 갈 것입니다. 그늘을 내어주고 새들의 보금자리로 바람이 불어오면 잊지 않았다는 듯 잎들을 떨어뜨릴 것입니다. 단 한 사람의 시가 되어 머리맡에 놓일 것입니다. 이 모든 미래는 우리에게 펼쳐질 예정입니다. 


여름, 나 이제 가련다. 오후의 
부드러운 네 손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늙었구나.
그런데 내 영혼에서는 그 누구도 볼 수 없을 거다
(여름 중에서, 세사르 바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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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공부지능 - 3세부터 13세 부모가 꼭 알아야 할 공부 잘하는 머리의 비밀
민성원 지음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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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은 일곱 살에 배웠다. 학교 갈 때가 되자 부랴부랴 웅변학원에 가서 글자를 익혔다. 국어 10칸에 자음을 쓰고 동화책을 베꼈다. 구구단을 못 외워서 늘 늦게까지 남았다. 선생님이 구구단 카드를 보여주면 바로 답을 말해야 하는데 통과하지 못했다. 해법수학 1000제를 답안지 보고 베끼다가 들켰다. 숫자를 보면 딴생각이 났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수포자가 되었다. 수학을 싫어한다고 변명처럼 말했다. 대신 평균을 잘 맞고 싶어서 국어, 사회,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중학교 3학년 마지막 시험 때 76점 맞은 수학 점수가 최고점이었다. 
  학원은 다니지 않았고 혼자서 공부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기간에만 열심히 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숙제하고 책 읽고 텔레비전을 봤다. 체계성은 없었고 좋아하는 과목 수업 시간에만 정신을 차리고 수업을 들었다. 수학 시간은 주로 창밖을 보거나 앞에 앉은 아이의 등을 보며 딴생각에 빠졌다. 
  『아이의 공부지능』속 공감이 갔던 것은 수학이 싫다는 말은 수학을 못한다는 말과 같다는 부분이었다. 이 책은 공부지능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나온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지능들을 총괄해서 만든 용어다. 흔히들 IQ가 높으면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한다. IQ가 낮아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어떤 요소들이 작용하는지 저자는 공부지능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요소를 크게 네 가지로 분석해 놓았다.
 공부지능에는 인지능력인 IQ와 정서지능인 EQ 외에도 집중력, 창의력이 작용한다.  IQ가 낮아도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이유에 EQ와 학생의 집중력, 창의력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아이의 나이를 구분 지어 각 시기에 맞는 학습법을 설명하고 있다. 지능이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동안의 정설을 반박하고 부모의 관심과 환경에 따라 아이의 영재성이 길러질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유전적인 요소 외에도 부모가 아이의 학습에 관심을 가지고 시기에 맞는 교육법의 예시를 설명한다. 
  암기는 반복이라는 것과 동기 부여로서 칭찬이 가지는 힘을 알려준다. 각 장마다 공부지능에 해당하는 IQ와 EQ, 집중력, 창의력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다양한 그래프와 도표 자료로서 설명의 이해를 돕고 있다. 외국어 공부를 몇 세에 시작하는 게 좋은지 선행 수학 학습은 언제가 적기인지 알려준다. 암기가 힘든 아이에게 필요한 학습법과 집중력을 기를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한다. 아이가 무엇을 원하고 잘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부지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공부가 싫다는 것은 공부를 못하는 것을 감추기 위함이었다. 공부를 잘하려면 IQ뿐만이 아니라 감정과 습관도 함께 좌우된다. 잘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자아를 기르는 힘도 필요하다. 아이가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 필요한 방식도 기술하고 있다. EQ를 지배하는 감정은 인지 지능과 함께 학습하고 반복해서 훈련할 수 있다는 조언도 들어 있다. 타인에게 나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들었을 때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원인 분석력의 힘을 말하고 있다.
  수학이든 영어든 매번 시작만 하고 중도에 포기한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반복을 통해서 암기력 향상이 된다는 내용은 큰 도움이 되었다. 암기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을 통한 훈련에 의해서 길러질 수 있다. 시작만 하고 꽂아둔 한자 급수 시험에 도전해야겠다. 공부를 잘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열심히 해서 잘 할 수 있게 만드는 꼼꼼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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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쁜 쪽으로
김사과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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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의 경우


  김치볶음밥을 내내 먹다가 얼마 전에 카레로 메뉴를 바꿨다. 김치볶음밥이나 카레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음식을 만드는 주체가 바뀌었다. 김치볶음밥을 먹는 주말은 흐리거나 비가 왔다. 얼마 전 생일을 맞이했는데 사람 많은 곳에서 허겁지겁 고기를 굽고 와서도 허기가 져 카레나 해 먹을까 충동적인 말 끝에 장을 보기 시작했다. 3분 카레가 아니다. 카레 가루가 있고 쇠고기 한 근을 사고 야채를 샀다. 왜 이렇게 배가 고플까. 항상 음식을 만들 때 물을 많이 넣곤 하는데 그날도 카레는 물이 많아 묽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만찬을 즐겼다. 이후로 3주째 카레를 먹고 있다. 야채를 다듬는 것이 귀찮은데 내가 하지 않으니까, 먹는 것에는 자신 있으니까, 맛있게 먹고 있다. 


내가 카레를 많이 먹는 것은 인정한다. 그 이유는 간편하고 맛이 있기 때문이다. 적당히 자극적이지만 라면보다는 몸에 좋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내가 먹는 것은 정통 인도식 커리 같은 게 아니고 동네 마트에서 묶음으로 싸게 파는 인스턴트 카레라는 것이다. 인도인에게 권한다면 코웃음을 치며 거절할 것이다. 하지만 나한테는 적절하다. 카레를 먹으면서 나는 이런저런 것을 한다. 세상을 연구하기도 한다.


  김사과의 소설집 『더 나쁜 쪽으로』에 실린 「카레가 있는 책상」의 한 장면이다. '나'는 고시원에 산다. 그곳의 특성상 요리를 제대로 해 먹을 수 없다. '나'는 간편하고 몸에 좋을 것 같다는 이유로 카레를 즐겨 먹는다. 인스턴트 카레의 경우 마트에서 자주 할인을 하기도 한다. 싸게 사서 오래 먹을 수 있다. 유통기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뜨거운 물만 있으면 조리가 된다. 칸칸이 나누어진 방에서 소리조차 낼 수 없는 곳에서 카레를 즐겨 먹는다는 이유로 '나'는 집단 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린치가 끝나면 방에서 나는 기침 소리들. 방 안에 갇힌 우울한 인간들이 내는 소리치고 비겁하고 크다. 
  비뚤어진 세상 속에서 현대인들은 어떤 꿈들을 꿀 수 있는가. 꿈을 꿀 수 있는 권리가 있을 수 있는가. 김사과 소설의 인물들은 도시에 갇힌 혐오주의자이다. 원하는 것이 될 수 없을 때 그들이 꾸는 꿈들은 짧은 잠 속에서 만나는 새와 거대한 건물들을 만나는 것이 전부이다. 『더 나쁜 쪽으로』속 소설의 시작들은 꿈을 꾸다 잠에서 깨는 것으로 종종 출발한다. 하늘을 날고 도끼로 커다란 나무를 베는 것을 목격하는 것. 꿈에서 깬 현실은 왜 좋아하는지 모를 남자를 만나러 가거나 길을 잃어버린 채 걷거나 에어컨이 꺼진 고시원 비좁은 방 안에 누워 있다. 
  청춘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나'들은 자살을 꿈꾸며 뉴욕으로 날아가고 불분명한 이유로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화려한 삶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학자금 대출을 갚는 것과 취직이 되기를 바라는 것 사이에서 경로가 지워진 지도를 쥐고 걷고 있다. 이 세계에 상시적으로 퍼져 있는 타인을 향한 이유 없는 혐오와 분노로 이루어진 젊음은 위태롭다.


사과하는 사과


  어떤 소설들의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의식은 흐름을 놓치고 인물들은 제멋대로 춤을 추고 있거나 죽음을 향해 여행을 시작한다. 놓쳐버린 의식을 붙잡는 문장을 만나면서 줄거리를 복기한다. 김사과의 소설집 『더 나쁜 쪽으로』를 읽다 보면 내 의식의 앞으로 달려드는 덤프트럭 같은 문장들을 만나게 된다. 문장이 문장을 부른다. 의식의 과잉이 불러온 참사라고 생각할 정도의 서사가 무너진 자리에 문장이 남는다. 인물들이 걷는 거리에서 독자는 추격을 멈추고 낯설게 펼쳐지는 사막에서 신기루를 발견한다. 일상의 말들이 소멸한 지면에서 고대의 언어가 행간을 차지한다.
  

"삶은 호텔 같았고 매일매일은 호텔의 욕실에 놓인 일회용 샴푸 같았다. 그것을 도대체 다 써버릴 수가 없었다.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새것이 놓여 있었다. 거기엔 오직 시작만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망쳤다. 시작하고 또 시작했다. 낮과 밤이 바뀌는 것을 눈치챌 수 없을 때까지 우리는 계속 시작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심지어 미쳐버리지도 못했다."


  끝이 없는 미래에 당도하기 위해 오늘이라는 꿈을 버렸다. 미처 갚지 못한 대출이 있어 통장 개설을 망설이는 현실의 여자들과 지내면서 가벼운 위로의 말도 내뱉지 못한다. 김사과 소설의 인물들은 가상의 세계에 살아가고 있지만 책을 뚫고 나와 현실을 부유하는 인물로서 존재한다. 그곳과 여기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소설의 문장들은 갑자기 끝이 난다. 그들은 웃고 마시고 죽음을 향한 꿈을 꾸고 헌 옷 수거함을 뒤진다.
  자본주의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허위와 위선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김사과의 소설들은 씁쓸하고 거칠다. 한국어와 영어를 혼재한 문장들 속에서 해석의 친절함을 주지 않는다. 실제 김사과의 소설을 읽는 동안 거친 꿈들을 꾸었다. 기억나지 않는 것이 태반이다. 어떤 꿈들을 꾸느라 다시 잠을 이어 잤고 그 꿈의 끝에서 마주한 오후는 미세먼지 가득이었다. 휴일은 터무니없이 적었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가혹한 무관심과 노동이다. 「박승준 씨의 경우」 운 좋게 얻은 명품 양복을 입고 나선 거리에서 마주한 같지도 않은 칭찬과 감정 없는 환대일 뿐이다.
  김사과 소설의 인물들은 세계의 종말을 스스로 받아들인 채 '더 나쁜 쪽을 향해 걷는다.' 그 길은 끝이 없고 시작도 없다. 스스로를 거대한 감옥에 가둔 채 하루에 카레만을 주식으로 삼아 무연히 그늘을 맞는다.
  카레의 경우 죽은 사람을 슬그머니 끼워 놓고 연락 없는 산 사람을 불러 놓고 꽃 한 송이를 나누며 조용히 썩어갈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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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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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사는 거 별거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루 일 다 해 놓고 누워 있다가 슬픈 소식을 들을 수도 있고 길 가다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갈 수도 있다. 비관적인 사람도 냉소적인 사람도 아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제멋대로 삶을 정의 내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사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인과 관계는 없다. 어느 날 갑자기,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으며 웃고 싶지 않아도 억지웃음 짓고 있는 나 자신이 슬프게 느껴졌다. 상대의 말에 반박도 하지 못하고 네 네 네만 연달아 말하고 집에 와서 짜증이 나 잠이 오지 않을 때도, 겨우 이거였어? 산다는 게? 회의감이 몰려왔다.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숙이고 말도 안 되는 높임 표현으로 문법을 무시하면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말은 하면 할수록 실수가 늘어났고 상대는 내 말을 듣는다기보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내기 위해 듣는 척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왜 이렇게 눈치를 보며 사는 걸까? 말도 안 되는 자격지심과 피해 망상의 원인은 무엇인지 고민해보았다.

  고민할 것도 없이 나를 둘러싼 사건의 원인은 나로부터 출발한다. 남 탓으로 돌리고 싶었지만 나라는 사람은 구제불능이었다. 단단하지도 못하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흔들리기 일쑤였다. 사기꾼에게 카드를 내밀고 주민등록증을 복사해 달라는 말에 네 네 그럴게요, 부정문을 내뱉지 못하는 얼간이였다.



"너 회사 잘 다니게 해달라고. 덜 힘들고, 덜 속상하고, 덜 지치면서, 사회생활 잘하고, 무사히 월급 받아서 나 맛있는 거 많이 사달라고." 



  『82년생 김지영』 씨에게 남자친구는 떨어지는 눈송이를 잡으며 소원을 빈다. 힘들고, 속상하고, 지치지만, 많이는 아니고 덜 힘들고 덜 속상하고 덜 지치게 해달라고. 감정이 너덜너덜해지도록 힘들겠지만 화장실에 들어가 눈이 빨개지도록 울음을 참겠지만 무사히 월급 받아서 맛있는 거 사달라고. 알아냈다. 눈치 보고 억지로 웃고 더러워도 참고 가식으로 좋아요를 말하는 이유는 월급 때문이었다.

  김지영 씨는 나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다. 흔한 이름이다. 초등학교 때 아토피를 심하게 앓아 손과 얼굴이 빨간 아이, 피아노를 잘 쳐서 집에 놀러 가면 곧잘 피아노를 쿵쾅 거려주던 내 친구의 이름도 김지영이었다. 한 반에 큰 지영, 작은 지영이 있을 정도의 흔한 이름. 『82년생 김지영』의 소설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제목을 보니 보편성으로 승부하려는 느낌이 들 뿐이었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영 씨는 평범한 여성이다. 평범한 게 어떤 건데라고 따져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이제 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여성으로 딸 하나와 남편이 있는 주부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홍보대행사에서 일을 하다가 아이를 낳으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지영 씨에게 평범하지 않은 일이 찾아온다. 빙의가 된 것처럼 죽은 선배와 지영 씨의 어머니의 말투로 말을 하는 것이다. 남편 정대현 씨는 술에 취해서 혹은 웃기려고 지영 씨가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넘긴다. 추석이 되어 시댁에 갔을 때 지영 씨는 모두를 기겁하게 할 말로 대현 씨가 병원을 찾아가게 만들었다.

 

 

"사돈어른,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올릴게요. 그 집만 가족인가요? 저희도 가족이에요. 저희 집 삼 남매도 명절 아니면 다 같이 얼굴 볼 시간 없어요. 요즘 젊은 애들 사는 게 다 그렇죠. 그 댁 따님이 집에 오면, 저희 딸은 저희 집으로 보내 주셔야죠."

 

 

  소설 내내 김지영 씨는 해야 할 말,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는다. 남녀 차별에 관한 보고서라고 해도 무방한 이 소설은 김지영으로 대변되는 여성의 말들을 억압하는 사회를 향한 빈정거림이다. 김지영 씨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조는 신문기사와 보고서를 인용하여 각주를 달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사건을 전달한다. 지영 씨의 삶을 연도별로 나누고 지영 씨가 겪는 일들을 감정을 배제한 채 들려준다. 

  짝꿍이 괴롭히는 것은 지영 씨를 좋아해서라는 선생님의 말을 지영 씨는 이해할 수 없고 관대한 얼굴로 지영 씨를 씹다 버린 껌으로 정의하는 남자 선배를 똑바로 볼 수 없다. 인간적인 예의를 갖춘 것뿐인데 흘리고 다녔다며 한밤중 지영 씨를 쫓아오는 남학생, 19금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는 거래처 사람들은 술을 마구 권한다. 남자 동기들과 연봉이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출구 없는 미로에 갇혀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뭐든지 구분하고 편을 나누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82년생 김지영』을 페미니즘 소설로 규정하겠지만 이 소설만은 성격을 나누고 정의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하라고 만들어 놓은 입 일 텐데 하고 싶은 말도 못하면서 마음에도 없는 말만 내뱉고 있는 불쌍한 입들에 관한 슬픈 전설 같은 이야기, 『82년생 김지영』이 이룩한 업적은 거룩해서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만 좀 떠들고 입 좀 다물어, 지영 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다들 상대의 궤변에 시원하게 쏘아붙이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침묵을 강요 당하는 사회에서 말하기는 정신줄을 놓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미친 사람이 돼서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학도 나오고 부모한테 사랑도 받고 남한테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고 배불러가며 일 다니고 지하철로 이동하는 지영 씨의 모습은 이게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나의 현재이고 미래의 모습이다. 정말 사는 거 별거 없어서 미래 따위는 생각도 안 하지만 소설에서 만난 지영 씨의 삶은 없는 미래마저 암울하게 만들었다. 

  같은 언어로 생각을 전달하면 되는 대화는 자주 어긋나고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어느 지점에서 상대가 화를 내는지도 모르는데 나 화났어라는 불편한 감정을 여실히 드러낸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성차별은 이런 것이다. 대 놓고 말하진 않지만 화가 나고 감정이 상했다는 것을 분위기로 전달한다. 혹시 화난 거 아니에요?라고 물어보면 아닌데요, 제가 화가 난 것처럼 보이나요? 아님 말고 할 수도 없는 게 누가 보더라도 상대는 화가 나 있다. 혹시 차별하는 거 아닌가요? 아닌데요, 제가 차별하는 사람처럼 보이나요? 

  한국 사회에서 여성차별은 드러내지 않고도 상대를 모멸감과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치심을 주는 음침한 자라지 못한 어른들의 입들이 벌이는 짓이다. 타인의 입을 빌려서야 말하기의 자유를 얻은 김지영 씨는 82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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