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이 신경 쓰입니다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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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 안을 들여다봤다. 특이하게 그 편의점에는 고양이들이 산다. 반려동물 입장이 가능하다는 안내판이 있는 곳. 통실통실하거나 마른, 침을 질질 흘리거나 한 쪽 눈이 감긴 고양이들이 그곳에 있다. 오늘은 그동안 못 보던 고양이가 문 앞에 있었다. 너 어디서 왔니? 그리고 유제품이 있는 곳을 봤다. 좋아하는 덴마크 드링킹 요구르트가 있나 없나. 인기 제품이라 2+1 행사를 자주 하는데 운이 좋아야 다른 맛으로 세 개를 골라올 수 있다. 


뉴페이스 고양이 한 번 보고 유제품 코너 한 번 보고 집으로 올라왔다. 마스다 미리의 에세이 『사소한 것들이 신경 쓰입니다』를 읽고 나만 편의점 매대를 확인하는 게 아니었구나 안심했다. 제목답게 사소한 것들이 신경 쓰여 자꾸 확인한다. 하겐다즈 확인, 장바구니 확인, 밑반찬 확인, 텔레비전 편성표 확인 등 확인 시리즈가 연달아 펼쳐져 있는 사랑스러운 책이다. 


주식 상한가 확인, 부동산 거래가 확인, 코인 시세 확인을 하는 자본주의의 노예가 아니다. 그저 오늘을 살아낸 용사로서의 확인이다. 매일 나와의 싸움이다. 일어나기 싫은 나,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나머지 뭐부터 손대야 할지 몰라 모니터만 보고 있는 나, 하기 껄끄러운 말을 해야 하는데 망설이며 전화기만 보고 있는 나. 이런 나는 편의점 고양이 확인, 집 냉장고 확인, 앞에 가는 학생 가방에 달린 열쇠고리 확인을 한다. 


제일 자주 하는 확인은 단골 쇼핑몰에 들어가 할인 품목을 훑어보는 것. 필요가 아닌 필요를 만들어서 구매한다.  『사소한 것들이 신경 쓰입니다』는 책의 소개답게 읽고 나면 '일상이 조금 사랑스러워지는' 경험을 하게 해준다. 마트에 들러서 누군가의 장바구니를 보고 남의 집 현관에 있는 화분을 보는 그저 보기만 했을 뿐인데 마음이 포근해진다. 이상 기온으로 벚꽃이 일찍 피었더랬다. 


사람 많은 곳에 가면 피곤해지니까 꽃놀이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아침에 걸어가는 길에 공원에 핀 벚나무를 봤다. 우와와.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거야. 갓 지은 밥알 같은 꽃들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피어 있었다. 찰칵. 가까운 곳에서 벚꽃 확인. 멀리 가지 않아도 고개를 들면 꽃이 있다. 벚꽃 사진으로 이겨냈다, 피곤함을. 


주말에는 나가지 않는다. 평일에 주문한 책이 오기를 기다린다. 덜커덩 소리가 나면 현관문을 열어 상자를 들고 들어온다. 택배 상자 확인. 책이 구겨지지 말라고 비닐에 공기를 담아 보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사인본이었다. 책을 읽어야지 하다가 넷플릭스를 보고 있는 나. 넷플릭스 확인. 신작이 뭐가 나왔나. 나의 취향에 맞게 골라준 작품들 확인. 


사소한 것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하는 건 나이가 들었다는 뜻일까. 대단한 일 말고 사소한 일에 마음을 쓰는 하루.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머리 말리다가 새치 확인. 착실히 시간이 흐르고 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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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겨울 2022 소설 보다
김채원.성혜령.현호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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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시리즈를 읽으면 적어도 한 편 정도는 마음에 드는 소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 편 중에 한 편 정도는. 취향이란 확고하지만 설명 불가의 영역이어서 왜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논리적으로 접근하기 힘들다. 그냥 그날 느꼈던 기분이 소설에 투사되고 나도 모르게 감정이 이입되어 괜찮네, 괜찮았어 한다. 소설보다를 읽는 방법은 소설의 첫 문단을 읽고 읽어도 되겠어 안심이 되는 부분을 만난 소설을 먼저 읽는다. 


『소설 보다: 겨울 2022』는 성혜령의 「버섯 농장」을 먼저 읽었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진화에게서 연락이 왔다.'로 시작되는 「버섯 농장」. 현실에서는 연락이 없던 이가 전화를 걸어오는 일의 사정이란 대부분 전화를 받자마자 거절을 해야 하는 경우다. 잠깐만 쓰고 돌려줄게. 우리 이모의 아는 누가 이번에 좋은 상품이 있다고 하는데 등. 아니나 다를까 소설 「버섯 농장」도 차라리 진화의 전화를 받지 않았으면 좋았을 기진의 이상한 하루를 보여준다. 


김채원의 「빛 가운데 걷기」는 딸을 잃은 노인이 딸이 남긴 아이를 돌보는 일상을 담는다. 걷고 잠깐 시야가 흐려지는 시간을 겪고 어디로 통하는지 모를 문을 여는 시간. 기억이 흐려지지 않기 위해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복기한다. 소설은 건조한 문체로 고여 있는 노인과 아이의 시간을 그린다. 「연필 샌드위치」에서 현호정은 꿈과 현실이 반복되는 서글픈 청춘을 이야기한다. 다이어트 중에 빵집에서 빵을 고르는 꿈을 꾸곤 하는데 소설에서는 복돼지 문구점으로 형상화한다. 


띄엄띄엄 붉은 등 아래에서 세 편의 소설을 읽었다. 소설의 문장을 길게 따라가지 못하고 집중력은 자꾸 흐트러져 갔다. 한 문장을 읽고 딴 생각. 대부분 나의 행동에 대한 자책과 모멸감을 되씹었다. 꿈과 환상, 추상 대신 현실적인 현실의 서사였다면 어땠을까. 소설을 읽는 3월의 밤은 길었고 끝나지 않는 엉망진창의 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었다. 나만 엉망진창이 아니구나. 모두 다 엉망진창이어서 다행이야. 


상실, 불신, 거식의 겨울을 빠져나온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낮잠을 자고 깨어난 봄에는 좀 더 나 같은 이야기가 도착해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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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나와 일 - 돈과 일, 그 사이에서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법
이원지 외 지음 / 얼론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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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이 자주 하고 있는 짓이 있다면 그건 수시로 은행 앱에 접속해 보는 일이다, 요즘에 내가. 돈 들어올 데라고는 한 달에 한 번밖에 없고 나갈 데는 수십 군데. 알림이 뜨면 그건 백 번에 백 번 돈이 나갔다는 알림. 설정을 잘못해둔 건지 광고 알림이 뜨기도 한다. 주식 계좌 개설 안내라든지 새 금융 상품이 나왔다고. 됐고. 관심 없고. 그래서 얼마 모았나.


모은 건 없고 한 달 소비 분석을 해준 화면으로 데려다준다. 3월에는 온라인 쇼핑을 많이 했다나봐요. 어느 배우의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두 가지 조건이라면 하나는 됐고(아무도 나를 모르고) 두 번째를 이루기 위해(돈이 많았으면) 쓰레기 같은 몸을 이끌고 언덕을 내려간다. 돈 벌러. 혹은 돈 쓰러. 


모니터를 보다가 눈이 시려서 대체 이게 뭐 하자는 건지 싶어 CCTV를 피해 핸드폰 앱을 실행. 들어가는 곳이래봐야 몇 군데 없다. 배민. 11번가. 알라딘. 예스24. 그래 오늘은 예스24. 전자책 신간이 뭐가 나왔나. 신간 목록에 있는 저자 이름을 보다가 어라? 내가 아는 유튜바 원지의 하루의 그 원지? 『돈과 나와 일』이라니. 돈을 벌려고 일하는 나의 이 모습을 사찰하고 있는 듯한 제목. 사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일하다가 현타와서 한 게 책을 사는 거라니(두 권 샀다. 다른 한 권은 염기원의 『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 지금 읽고 있는 중, 재미있을 예감.) 나 뭐지? 그날도 초과 수당 없는 야근을 하고 돌아와 오후에 산 책을 펼쳤다. 누워서. 제일 좋아하는 자세인 옆으로 누워서. 『돈과 나와 일』은 유튜버, 소설가, 사진가, 책방 주인, 기자, 배우 등 다양한 일에 종사하는 13인이 돈에 관한 자신만의 철학을 들려준다. 


고물가 시대를 살아가는 절약 팁 같은 건 당연히 기대하지 않을 거고 『돈과 나와 일』은 애증의 돈 앞에서 어떤 자세로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지의 마음가짐을 들을 수 있다.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는 게 돈이라고 그랬는데. 내내 없는 게 돈의 속성인 것 같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도 무의미한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개똥철학임이 밝혀졌고. 


지금의 안정적인 나 자신이 되기 전까지 돈과 싸웠던 일화를 들려주는가 하면 돈 앞에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과거를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프리랜서직의 애환도 들을 수 있었다. 일을 하고 돈을 받지 못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일이 들어오기 전 금액과 지급 시기를 논하기로 했단다. 자영업자로서 살아가는 비애, 일희일비하는 시간까지도 담담하게 들려준다. 


음식 단식에 이어 소비 단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잉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나의 소비 생활을 보자면 일상에 필요한 용품은 재고가 떨어지기 전에 사 놓는 편이다. 파워 P답게 즉흥적인 쇼핑을 즐긴다. 산책 나갔다가 아이패드 프로 11인치를 사는 식. 절제하는 몇 주를 보내다 스트레스 받아서 한꺼번에 무언갈 사는 식. 돈에 관한 철학이라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차라리. 돈이 있어도 해결이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알고 난 뒤로는 그냥 쓴다. 


그래서 나는 일을 하러 가기 전에 나를 달래기 위해 라이언이 그려진 화장지를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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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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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황정은이 떠올랐다. 이른 아침 알람을 꺼야 하는데 손은 움직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다시 눕고 싶을 때 말이다. 그해 겨울은 추웠고 신문을 사러 가는 길은 멀었다. 신춘문예 당선작이 실린 신문을 옆에 두고 떡국을 끓여 먹었다. 솜씨가 없는 요리였는데 옆 사람은 맛있게 먹어 주었다. 무얼 해준다고 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다리는 사람. 


황정은의 「마더」를 읽고 공책에 감상을 적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고 『연년세세』를 꺼내들었다. 책이 막 나왔을 때 사 놓고 읽어야지 했다가 잊어버렸다. 왜 잊었을까. 그런 건 기억에 남지 않고 책이 있다는 사실만을 기억해 냈다. 어제는 사무실로 가다가 멈춰 섰다. 비가 오고 다음날이라 하늘은 미세먼지 없이 맑았다. 벚꽃나무를 찍었다. 비가 오기 전에 모두 떨어질 꽃잎이 남아 있는 벚꽃나무를 향해 찰칵. 우리는 자정이 되기 전까지 업무 통화를 했다. 말 끝에 꽃도 못 보고 시간을 다 보내겠다는 상대의 한탄이 떠올라서. 


그곳에도 꽃은 피겠지만 이곳의 지금의 봄을 담아 보내도 될까요? 


『연년세세』에 실린 네 편의 단편은 겨울의 입김을 닮았다. 봄의 온기는 쉬이 느껴지지 않고 겨울의 한기가 소설 곳곳에 실려있다. 황정은은 작가의 말에서 '사는 동안 순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자주 만났'다고 밝힌다. 그가 자주 만난 여성 순자는 쉽게 단념하고 포기를 한다는 자각도 없이 생의 모든 면에서 포기를 단행한다.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두었고 지금은 큰 딸의 살림을 봐주면서 살아간다. 작은 딸과 외조부의 이장을 하러 가는 여정을 그린 「파묘」. 


순일의 큰 딸 한영진의 일상 풍경을 담은 「하고 싶은 말」은 입 밖으로 차마 뱉을 수 없는 말을 내내 참고 있는 한 여성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단어와 문장을 고르느라 자신을 아프게 해버리는 사람. 영진은 당신과 나이기도 하다. 「무명無名」에서 순일은 어린 시절 자신의 이름 순자를 기억해 낸다. 그리고 함께 한 시절을 보냈던 순자까지도. 나를 지키기 위해 잘못을 저질렀던 후회의 시간이 순자들에게 있었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란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하미영은 말했다. 이미 떨어져 더러워진 것들 중에 그래도 먹을 만한 걸 골라 오물을 털어내고 입에 넣는 일, 어쨌든 그것 가운데 그래도 각자가 보기에 좀 나아 보이는 것을 먹는 일, 그게 어른의 일인지도 모르겠어.

(황정은, 『연년세세』, 「다가오는 것들」 中에서)


순일의 둘째 딸 한세진의 순간순간은 「다가오는 것들」에 있다. 북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뉴욕으로 향한 세진. 그곳에서 세진은 자신이 일부러 두고 왔을지도 모를 과거를 만난다. 시간은 흐른다고 생각했다. 흐르고 흘러서 오늘로 도착한다고. 어른인 척 살아가는 오늘은 오늘이 아니라는 걸 『연년세세』의 순간이 말해준다. 어른의 얼굴로 지내는 오늘은 실수로 가득한 어제 얼굴의 반복. 어제와 오늘은 뒤섞이며 내일로 나아간다. 


잘못했고 틀렸다. 이런 말들을 듣는 오후는 병으로 죽어간 이의 얼굴이 스쳐간다. 진통제를 맞고 잠이 든 이는 한 번 정신을 차려 큰 소리를 내고 내내 눈을 감았다. 잘못했고 틀렸지만 살 수 있다, 살아간다. 잘못했고 틀렸지만 안심할 수 있는 건 그이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나의 잘못과 실수를 덮는 용도로 사용한다는 건 기만일 테지만 산 자는 이렇듯 뻔뻔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그러니 모두 죽지 마.


연년세세의 뜻은 '해마다, 매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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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엉 오늘의 젊은 작가 39
김홍 지음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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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는 질문에(이런 질문을 해주는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어서, 좋다. 계속 질문해 주시라.) 『엉엉』이라고 답했다. 엉엉? 응, 엉엉. 『엉엉』은 그런 책이다. 엉엉이라고 말하는 순간 엉엉 울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을 말한 듯해서 후련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계속 그런 시기가 있지 않은가. 내내 계속 엉엉 속으로 울면서 지내는 시간들이.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나의 본체가 떠난 이후의 일상을 그린다. 본체는 집이 좁고 더워서 떠난 듯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본체가 비상금까지 훔쳐서 나가고 나서 든 깨달음이다. 나의 집은 나와 본체를 담기에는 비좁다. 본체는 고지서로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고소장은 덤이고. 나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고 채무의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그러다 본체의 소식이 끊겼다. 고지서도 독촉장도 오지 않았다. 나는 집을 옮긴다. 지금보다는 넓은 집으로. 그 사이에 본체가 전화를 걸어오면 새 주소를 알려줄 텐데. 전화는 오지 않으니까 이사를 했다. 마스크 공장에서 일을 했다. 본체가 떠난 후로 계속 울었다. 울면서도 일은 하고 쿠팡에서 고양이 밥도 주문했다. 울어도 생활은 해야 하니까 울면서 살았다. 내가 울 때마다 비가 내렸다. 


건전지를 모아서 동사무소에 갖다주러 갔다가 '슬픈 사람 모이세요'라는 전단지를 발견한다. 나와 동그람 씨는 매주 모여서 과자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본체에게서 연락이 오고 본체를 잃어버린 사람들 틈에서 나는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지낸다. 이상한 사람들이 참 많다. 유튜브나 시사 프로그램을 보면서 여음구처럼 하는 말이다. 


그런 나도 이상한 사람. 이상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건 의외로 쉬운 일일 수도. 같이 이상해지면 되니까. 『엉엉』의 설정은 낯설지 않다. 내 안의 또 다른 나. 또 다른 나이지만 같은 나. 나를 혹은 나의 환경을 견디지 못해서 나의 나는 떠난다. 불법적인 일 같은 거 하지 않고 빚도 지지 말고 살면 좋을 텐데. 그러면 같이 행복해질 텐데. 본체는 내 안의 무수한 나들의 은유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내가 울면 하늘도 같이 운다는 설정 또한 은유라고. 내가 슬프면 세상도 같이 슬퍼야 하지 않겠느냐는 하소연 같은 거라고. 『엉엉』을 다 읽고 황정은이 떠올랐다. 『엉엉』의 쓸쓸과 황정은의 쓸쓸이 겹친다. 노력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남겨진 우리들은 고지서의 숫자를 볼 때마다 엉엉 울고 있다. 본체가 나를 떠난 이유를 생각하면 자꾸 슬퍼진다. 


소설은 모두의 근황을 알려주면서 끝난다. 이런 결말이 좋다. 그런 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어떻게들 지내고 있는지 소설 속으로 들어가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화를 내고 웃길 땐 웃으면서 계속 누워 있어도 죄책감 같은 거 갖지 말고 지내자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 본체가 떠나지 않으니까. 3월의 고지서를 받고 이체를 하면서 엉엉. 4월은 4월에 엉엉하자. 엉엉 울면서 살아보자.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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