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본래 이름 앞에 호 붙이는 것을 꺼려했다. ‘자기 이름 갖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호까지 붙여?’ 하는 거부감이었다.

대학시절, 문학동인 활동을 할 때 시 쓰는 친구가 어느 날부터 스스로 자기 호를 지어서 작품마다 이름 대신 활용하는 것을 보고는, 나는 속으로 얼마나 경멸했는지 모른다. 이런 경멸이었다.

자식. 그럴 시간에 시나 더 열심히 쓰지.’

이 자리를 빌려 그 친구한테 용서를 빈다. 정작 나 자신도 소설을 열심히 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후에 무심이란 호를 쓰는 문인이 됐기 때문이다.

 

사실 무심이란 호는 친한 후배가 몇 년 전, 같이 만나는 모임자리에서 내게 선사한 것이다. 후배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형님을 그 동안 쭉 지켜봤는데 이 호가 아주 잘 어울릴 듯싶습니다.”

격식을 갖춰 한지(韓紙)에 붓으로 써 선사한 호라 그랬을까? 나도 모르게 무심호를 즉각 받아들인 것이다. 그뿐 아니다. 이런 말까지 했다.

정말 내게 맞는 호일세. 하하하.”

그 날부터 모임자리에서 나는 무심선배 혹은 무심씨로 불리기 시작했다.

 

모임자리에서나 쓰이던 무심이 공식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아내가 남편의 문필생활의 매니저를 자임하고 나면서부터다. 아내는 내 앞에서 컴퓨터를 켜 인터넷 화면을 띄워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SNS로 당신과 책을 많이 알려야 하는데 문제는 당신과 같은 동명이인이 너무 많다는 거야. 국악 하는 이병욱, 의사 이병욱, 장어를 파는 이병욱. 이러니 그냥 이병욱 이름만 갖고는 절대 구분도 안 돼. 천생 필명을 따로 지어야 돼.”

필명까지는 그렇고그러잖아도 모임에서 나한테 무심이라 부르기 시작했거든.”

하면서 그간의 무심이란 호를 받게 된 과정을 털어놓았다. 놀라운 것은 아내의 반응이다. 박장대소하며 이랬다.

어쩜, 당신한테 딱 맞는 호를! 내가 결혼해 30년 넘게 살면서 그 동안 당신한테 느낀 심정을 그리도 잘 표현할 줄이야!”

 

무심(無心).

사실 얼마나 깊은 뜻의 한자어인가. 그 뜻을 제대로 풀이해 나가면 나 같은 범부(凡夫)는 결코 사용할 수 없는 단어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나는 무심 이병욱의 문학산책블로그에 짤막하나마 변명을 달았다. 다음은 그 중 일부다.

 

지인이 내게 '무심'이란 호를 붙여주었을 때 마음에 썩 들어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말했다.

"정말 내게 맞는 호일세. 그런데 내가 무심한 것은 사실, 워낙 유심하다 보니 그리된 거지."

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후략)

 

이제 돌이켜보니 더 알쏭달쏭한 무심해명을 늘어놓은 것 같다. 따지고 들면 한이 없다. 이 정도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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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5-29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심...너무 좋아요! 사모님께서 강력한 후원자이시네요 ㅎㅎ잘 지내시죠?

무심이병욱 2019-05-30 10:12   좋아요 1 | URL
그저 노후에는 아내 말을 잘 듣고 사는 게 최선입니다. 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05-30 12:00   좋아요 0 | URL
ㅎㅎㅎ그것이 평화의 첩경인가 봅니다 ^^
 

 

프랑스 뮤지컬 영화 쉘부르의 우산이 있다. 1964년 처음 상영돼 여배우 카트린느 드뇌브의 풋풋한 미모를 전 세계에 알렸다. 워낙 명작이라 반세기 넘은 지금도 주말 명화로 TV에 나오곤 한다

 

이번에 우리의 봉준호 감독이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그 시상식장에서 봉 감독에게 시상하는 늙은 여인이 있어서, ‘저 여인이 누구이던가?’ 알아봤더니 세상에, 카트린느 드뇌브란다.

봉 감독은 1969년에 출생한 분. 카트린느 드뇌브의 쉘부르의 우산첫 상영 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것이다.

역시 예술은 시간· 공간을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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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저 새들이 무슨 새지?”

아내가 내게 물었다. 춘심산촌 농장이 산속에 있어서 주위에 새들이 많다. 참새처럼 자잘한 종류는 물론이고 꿩 멧비둘기 파랑새 왜가리 등 제법 큰 새들까지. 꿩은 모습 보이기보다는 '꿔엉꿔엉'하며 숲속에서 울 때가 많고  멧비둘기는 늘 두 마리가 짝을 지어 농장 안팎을 날아다니고 있고 파랑새는 간혹 가다가 나타나곤 한다. 왜가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주위에서 가장 높은 소나무 위에 나타나 이웃집 연못의 물고기를 노렸다. 가끔은 금붕어 따위를 사냥하는 데 성공해서 의기양양하게 날개를 활짝 펴고서 먼 하늘 어딘가로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오늘 아내가 내게 묻는 새는 처음 보는 놈들이다. 꿩보다는 작고 멧비둘기보다는 큰데 몸의 색이 검다.

까마귀 같은데.”

그 말에 아내가 반문했다.

까마귀는 까악까악울잖아? 그런데 쟤네들은 울지도 않는데?”

 

 

그럼 다른 새들인가?”

나는 그 새들의 정체 파악에 자신이 없어졌다. 까마귀는 지능이 아주 높아서 침팬지만큼 영리하며 게다가, 까악까악 우는 소리를 다양하게 함으로써 자기네끼리 간단한 대화도 나눈다고 했다. 그런데 아내가 지금 궁금해 하는 그 새들은 생김은 까마귀 같으나 한 번도 까악까악 울지들 않아서나는 영 정체 파악을 못하겠는 것이다. 나름대로 유식한 남편을 믿었다가 신통한 대답이 나오지 못하자 아내가 이랬다.

독수리인가?”

나는 어이가 없었다. 독수리는 저 새들 크기의 서너 배 이상 큰 새다. 게다가, 철원평야같이 특정 장소에 해마다 겨울에 월동하러 집단으로 나타난다. 그들의 원래 고향은 중국의 북쪽 추운 지방에 있다. 요즘 같은 초여름 날 춘천에 나타날 리 만무할뿐더러, 크기도 전혀 맞지 않는다. 색깔 또한 독수리는 거무칙칙한 데 비해 눈앞의 저 새들은 그냥 까만색이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까마귀 같다. 하지만 울지 않으니 어쩌나.

 

 

나는 생각다 못해 내 입으로 까악까악소리 내 보았다. 아내가, 남편 하는 짓이 애들 장난 같은지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쉬지 않고 까악까악했다. 그러자 그 검은 새들이 우리 부부가 앉아 있는 농막 쪽으로 좀 더 가까이 날아왔다. 구체적으로는 오동나무 가지에서 잣나무 가지로다. 그 잣나무 가지에서 우리 부부가 앉아 있는 농막과의 거리는 15미터쯤?

그러더니 놀랄 일이 벌어졌다.

까악까악까악!“

내 까악까악 소리에 응답한 것이다. 그리고는 천천히 멀리 날아가 버렸다. 짐작대로 까마귀들이 맞았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그 중 한 놈이(아무래도 수놈 같다.) 내게 그리 응답할 때 분명히 감정 내지는 간단한 의사(意思)가 느껴지던 것이다. 굳이 통역한다면 쓸데없이 까마귀인 척 하지 마!” 였다.

 

구봉산 밑 외진 산골짜기에서 밭농사 짓기 8년째. 주위의 새들이 친숙하게 여겨지다 못해, 이제는 놀러온 까마귀들이  감정 내지는 간단한 의사까지 나타낸다. 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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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한 것은 현실 속에서가 아니라, 관념(觀念, idea)의 세계에서만 이루어진다고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말했다. 

우리 집 아마릴리스가 빨간 꽃을 피웠다. 관념 속에 있어야 할 빨간색이 실수로 현실에 노출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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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섬에 간다는 건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설령 10분여 만에 닿는 섬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섬이 춘천에 있었다.

중도 

 

 

지금은 레고랜드를 세우기 위해 파헤쳐졌지만 나는 예전의 그 섬을 잊지 못한다. 잔디가 정갈하게 깔려 있었고 그 위로 자전거도 타고 혹은 나무 그늘에서 도시락도 먹었다. 그럴 때 배를 타고 떠나온 춘천 시가는 아득한 고향 같았다.

 

 

레고랜드 공사로 중도 뱃길이 사라지면서 선착장에 스산함이 깃든 지 몇 년째. 그곳에 춘천의 명소 「5 NOTE 카페」가 있다. 나는 그 카페를 떠올릴 때마다 스산한 장소를 일부로 찾아서 자리 잡은 게 아닐까?’의심한다. 그만큼 폐 선착장과 묘하게 어우러지는 멋진 카페다
   

 

이번 주에 서현종 화백이 「5 NOTE 카페」에서 '춘천 블르스 전 - 엄마의 꽃밭'을 연다. KBS에서 시작했는데 장소를 옮긴 것이다. 폐 중도 선착장 가에 위치한 아름다운 카페 5 NOTE」에서 그의 그림들은 5월을 빛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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