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번째 술

그저께, 초등 동창끼리 모였다. 3일간 술을 마셨더니 몸이 너무 안좋아,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1차를 하는 와중에 전화가 왔다. 어제 같이 마신 사람이다.

"지갑 다 찾아봤는데 없거든요. 미안해서 제가 오늘 한잔 대접하려는데, 한시간쯤 후에 괜찮으세요?"

난 지갑의 충격에서 이미 회복되었다고, 이미 그 일은 잊었다고 했는데, 그는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이따 전화나 해보세요"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도 다른 이들과 술을 마시고 있으니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겠지 싶었다. 동창들이 2차를 가는데 몸이 너무 피곤해, 먼저 간다고 하고 집에 갔다. 집에 가서 동창 여자애-유부녀다-가 생일선물이라며 준 박스를 뜯었다. 개 그림이 그려진 잠옷이었다. 지난 20년간 추리닝 차림, 혹은 러닝 차림으로 잠이 들곤 했었는데, 내게 잠옷이 생기다니. 몸에 잘 맞는다. 잠옷을 입고 자리에 누웠는데, 전화가 왔다. '그'였다.

그: 뭐하세요. 저 지금 독수리다방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나: 오늘만 좀 봐주면 안될까요? 죽을지도 몰라서...

그: 절대 안되죠. 빨리 나오세요. 애들도 다 보냈는데....

난 다시금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었다. 그날 내가 귀가한 시각은 오전 2시 43분이었다.

 

29번째 술 

지옥의 5연전 끝날이지만, 어젠 술을 마실 생각이 없었다. 몸은 오징어처럼 늘어지기만 했고, 계속 잠만 쏟아졌다. 약속장소인 xx으로 가는 기차에서, 난 못내릴까봐 별의별 방법을 다 써야 했다. 자리가 있는데도 문가에 가 서있거나-너무 피곤해서 관뒀다-사이다를 산 뒤 옷 속에 넣는 방법-조금 있으니 적응이 되어 효과가 없어졌다-수염을 하나씩 뽑기도 했다-너무 아파서 신경질이 막 났다. 그러다보니 xx역이었고, 무사히 내렸다.

친구-그 친구는 술을 싫어한다-를 만나 저녁을 먹는데, 몸이 너무 피곤해서 안되겠다. "여기 소주 한병 주세요!" 소주 석잔이 들어가자 혼미했던 내 정신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거 알콜중독 아닌가' 걱정이 된다. 하지만 술기운이 떨어지고 나자 다시금 피로가 쏟아져, 3차는 다시 소주집으로 갔고, 거기서 소주 한병 반을 마셨다. 두잔쯤 마시니 정신이 반짝 들어 언제 피곤했냐 싶어졌고, 이런 식이라면 세병도 먹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기차 시간 때문에 9시쯤 나와 집으로 갔다.

나름대로 푹 잤지만, 여전히 삭신이 쑤신다. 정말 힘든 한주였다. 오늘 쉬고 내일부터 다시금 5연전이 시작된다. 이렇게 체력이 약해졌다니, 운동을 좀더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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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연필 2004-02-22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을 열심히 할 게 아니라... 술을 줄여야 할 것 같은데요;;;

마립간 2004-02-22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시절에는 술을 많이 마신 편에 속했습니다. 사교성이 워낙 없는데, 그나마 술이 친구를 사귈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친구 네다섯명이 맥주를 마셨는데, 한 박스를 마셨던 적도 있습니다. 대학 졸업하던 해에 처음 필름이 끊켰는데 이후로는 술 마시는데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6급 은주에 해당합니다. 집에서 혼자 유유자적하게 마실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이때는 조금만 마셔도 선의 세계에 들어가니 술값도 적게 들고.

비로그인 2004-02-22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옥의 5연전이 끝나자마자 또 연달아 5연전이라니요...오...듣기만 해도 아찔하네요. ^^;; 그래두 쉬는 오늘 하루, 푸욱~쉬고 체력회복 하시길...강아지가 그려진 잠옷, 너무 귀엽겠네요. ㅎㅎ

슈퍼곰돌이 2004-02-22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우와.........................대단하다..............그만큼 먹고 버틴 마태우스님도 대단해요..................ㅋㅋ

진/우맘 2004-02-23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제가 봐도 좀 너무했다, 싶네요. 말만 들어도 속이 메슥메슥...
마태우스님이 운동을 하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 열심히 체력을 단련해서 주량을 늘리기 위함!
제발...몸 조심 좀 하세요. 알라딘의 팬들을 위해서라도.^^
 

 

 

 

 

 

[3건의 암치료 관련기사가 1면 톱을 화려하게 장식한 바 있다...문제는 이러한 언론의 암 치료제 관련기사가 실제로 얼마나 국민보건에 기여했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언론을 장식했던 숱하게 많은 암 치료제 가운데 엄격한 임상시험을 거쳐 시판허가가 내려진 것은 전무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암 치료제 관련기사는 왜 용두사미로 전락하기 일쑤일까...우선 언론의 상업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알다시피...독자나 시청자에게 가장 휘발성 있게 어필하는 것은 암 치료제를 비롯한 건강관련 기사나 보도다....

지금까지 언론에 소개된 대부분의 암 치료제는 시험관 내 실험결과나 동물시험결과에 불과하다. 그것이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기사에서 그것이 아직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 의미를 분명히 명시해야 한다는 뜻이다(<의사들이 절대로 말해주지 않는 건강 이야기>, 293-299쪽)]

의학전문기자인 홍혜걸이 쓴 책의 한 대목이다. 난 이 책을 참 재미있게 읽었고, 그가 했던 말들에 대부분 동의했다. 하지만 다른 분들의 시각은 좀 다른가보다. 어떤 분의 리뷰다. "의료계 현실을 보는데 있어서는 의사로서의 시각을 강조했다는 것이 좀 안타까웠다" 또 다른 분의 글, "의사측면에서 불평 불만만 늘어놓고 있다" 글쎄다. 내가 보기에 홍기자는 책에서 환자의 건강을 먼저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의사들, 심지어 동기들 사이에서도 '배신자'라는 말을 듣고 있는데.... 뭐 여기서 그걸 가지고 얘기하고픈 마음은 없다. 다음은 그가 얼마전 낚은 특종의 한대목이다.

[국내 과학자들이 세계 최초로 사람의 체세포와 난자만으로 인간 배아(胚芽) 줄기세포를 만들어내는 개가를 올렸다...이로써 세계 의료계는 이식 거부와 윤리 문제를 동시에 뛰어넘어 각종 장기를 이용한 난치병 해결에 역사적인 발걸음을 내딛게 됐다...예컨대 치매나 심장병 등 수술로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가 줄기세포를 이식받으면 이 세포가 환부에서 정상 세포로 자라나면서 병이 완치되는 식이다....]

엠바고를 파기했느니 하는 논란이 되었던 바로 그 기사인데, 이걸 읽으면 치매도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종에 따르는 자화자찬도 이어진다.
[한국 과학자들이 세계 최초로 사람의 체세포와 난자만으로 인간 배아(胚芽)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 (본지 2월 12일자 1면)이 12일 세계 언론들에도 주요 뉴스로 소개됐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세포 치료는 수년 내 실용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장기에 생긴 질환엔 당장 응용이 어렵다. 세포를 장기 형태로 만드는 기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간이나 콩팥 등 이식용 장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암 환자의 생존율이 획기적으로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뭔지는 몰라도 '수년내 실용화'란 대목에 눈이 번쩍 뜨인다. 척수손상이나 치매로 고생하는 가족을 둔 사람들이 희망에 부풀만 하고, 암환자의 생존률이 커진다는 대목도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런데 홍기자 자신이 책에 쓴대로 이 기사가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았고, 실용화되려면 오랜 기간이 걸"린다는 걸 명시한 기사일까? 며칠 전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온 연구팀(아마도 황의석 교수?)는 "언제쯤 환자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겠느냐"는 손석희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가장 곤혹스러운 질문인데요....지금은 동물 실험에서 겨우 가능성을 발견한 단계구...국제 연구기관과 협력을 잘 한다해도 10년 정도 후에나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10년도 아마 최대한 짧게 잡은 것이리라. 그렇다면 '수년 내 실용화'는 홍기자의 희망사항이 아닐까 싶다. 이번 성과가 획기적인 업적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의학계의 특종보도를 비판한 홍기자 역시 특종의 욕심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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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4-02-22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자가 바라는 의학과 의사가 해 줄수 있는 의학의 괴리를 느낄 때 정말 괴롭습니다. 갈릴레이가 하늘을 보던 시절에는 돈과 관련없는 순수한 세계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하늘의 별을 보던 현미경으로 세포를 들여다 보던 간에 돈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으니, 세상이 좋아졌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나빠졌다고 해야 할지......
 

 

 

 

 

 

"사각팬티가 지금처럼 유행하기 전 얘긴데, 일본에 갔더니 반바지를 아주 싸게 팔더라구. 몇개 사가지고 남편한테 입혔지. 남편은 '이거 반바지 맞아?' 이러면서도 잘 입더라구. 언젠가 남편하고 같이 옷을 사러 갔는데, 종업원이 갑자기 사장한테 가더니 이러는거야. 저사람 미쳤나봐요. 빤스만 입고 왔어요"

그녀가 입힌 건 그러니까 사각팬티, 아내 덕분에 남편은 스타일을 구기고 말았다. 살다보면 믿지못할 실수를 연발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제 만난 초등동창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동창 몇몇이 모여 식사를 했는데, 두시간 내내 그녀는 자신의 실수담을 얘기했다. 피로연장에서 초고추장을 짜다가 터뜨리는 바람에 신랑신부 옷을 작살낸 얘기, 얼굴의 반만 화장을 하고 나갔던 일화, 맨홀에 빠진 일, 공업용 미싱으로 손가락을 박은 얘기 등등...보통 사람은 일생에 한번 겪을까 말까한 일들을 그녀 혼자서 해치운 것에 우린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 헤어져 집에 가면서 난 살아오면서 어떤 실수를 했는지 생각을 해봤다. 유머를 잘하진 못해도 좋아하긴 하는 성격 탓에 실수를 많이 할 것 같지만, 난 그다지 실수한 게 없는 편이다. 그래도 기억나는 몇가지를 적어본다면 다음과 같다.

1. 초등학교 동창 모임을 나갔다. 동창이긴 해도 난 여자애들 앞에서는 좀 쑥스러움을 타는데, 투피스를 유난히 멋있게 차려입은 여자애가 내 앞에 앉았다. 아구찜을 먹었는데, 그 여자가 게 다리를 가위로 자르려고 한다. 난 잘보일 마음에 가위를 뺐어서 다리들을 잘랐다. 그러다 그만... 커다란 게 다리 조각이 튀면서 그 여자애의 투피스에 적중했다. 사태를 파악한 친구들은 그저 할말을 잃었고, "괜찮다"는 그녀의 말에도 난 죽고 싶어 어쩔 줄을 몰랐다. 그 때문은 아니지만 그녀는 동창 모임에 더이상 나오지 않았고, 지금은 미국에 있다.

2. 친구가 교육문화회관에서 결혼을 했다. 주례의 말이 너무도 길어지자 난 좀 따분했다. "아이 지겨워" 하면서 벽에 기댔는데, 그만 메인 스위치를 꺼버린 거다. 식장이 어두워지는 것과 동시에 난 밖으로 도망갔는데, 잠시 웅성웅성하긴 했어도 잘 수습이 되었다. 그 탓은 아니지만 그 친구와 별것 아닌 일로 싸웠고, 지금도 잘 못지낸다.

3. 복사카드라는 게 있다. 그걸 가지고 복사를 하고 소변을 보는데, 그만 그게 소변기에 빠져 버렸다. 물로 대충 씻은 뒤 원래 자리에 넣어 뒀는데, 나랑 같이 일하던 얘가 복사를 하러 가면서 그걸 입에 문다. 그저 놀랄 뿐,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4. 아주 어릴 적, 주사기의 피스톤을 빼면 "뽕" 소리가 나는 게 신기해 여러번 반복하다가 주사기 바늘로 남동생 이마를 찍었다. 동생은 곧 병원에 실려갔고, 집에 있던 난 그저 죽고 싶었다.

더이상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게 다인가보다. 역시 난 착실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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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2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갈대 2004-02-22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적, 동생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놓고 다트로 던져서 맞히려다가 동생 이마에 맞아서 다크가 이마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던 적이 있음. 집 안에서 뛰어 놀다가 거실 유리 몸으로 뚫은 적 있음(당시 동네사람들 우리집으로 다 모임) 좀 엽기적인가요?^^

비로그인 2004-02-22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2번은 정말 쉽게 일어나기 힘든 일인거 같은데요. ^^ 전 어릴때 문득 손에 가위가 잡혀서 서걱서걱 하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보니 여동생 머리에 땜통을 만들어논거 있죠. 그거말곤 그다지..ㅎㅎ

마태우스 2004-02-22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다트가 이마에... 상상을 하니 매우 엽기적이군요. 거실 유리를 뚫는 건 영화에도 많이 나와 엽기성이 떨어진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앤티크님/그거 말곤 별게 없으시다니, 정말 착하게 사셨군요. 그럴 줄 알았어요!^^

슈퍼곰돌이 2004-02-22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저는 동생하고 우산 버튼 눌르면 슝 나가는거 있잔아요;; 그걸로 동생 눈 앞에서 했는데
1,2 번은 뒤로가면서 쏴서 동생이 안다쳤는데 제가 한번만 더해본다고 하구서 눈 맞춰서
동생이 엉엉..ㅋㅋ 그래서 계란가지고 계속 문질러 줬어요

슈퍼곰돌이 2004-02-22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앤티크님은 하나라도 정말 대형사고를..ㅋㅋ

chaire 2004-02-23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수를 해도 역시 마태우스 님 답습니다. 어정쩡한 웃음은 용서하지 않는... ㅋㅋ
 

 

 

 

 

 

오늘 아침, 조카가 보내준 메시지를 확인하고, 잠시 멍했다. 내 책을 재미있게 읽은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조카가 이번에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라는 것. <해리포터>처럼 세대를 뛰어넘어 읽히는 책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내 책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며, 내 조카가 여느 초등학생과는 달리 높은 지성과 감성을 가졌다든지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래,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그게 내 책의 수준이라는 것을. 내 책을 출간한 출판사에서는 "기생충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30, 40대"를 타깃으로 잡고 있는 모양이지만, 아무래도 "기생충에 대해 전혀 모르는 초등학생"을 주 대상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사실 난 내 알라딘 서재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내 책의 존재를 모르길 바랐다 (무의식에서는 알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지만). 내 서재를 오가는 분들과 호형호제하며 알고 지내게 된 걸 큰 즐거움으로 알고 지냈는데, 그분들 중 몇분이라도 내 책을 읽는다면 언젠가 플라시보님이 그랬듯 즐겨찾기로 등록한 분들의 숫자가 추풍낙엽처럼 떨어지지 않겠는가. 더구나 알라딘 분들은 유명 저자들의 책도 매섭게 비판하는 고강한 내공을 가진 분들인데, 그런 분들이 내 책을 본다면? 상상만 해도 두렵기 짝이없다. 내 창작물이 과히 좋은 책이 아니라는 게 첫 번째 이유라면, 책을 감추고 싶은 두 번째 이유는 내 책의 존재를 알리는 게 마치 책을 사달라는 강요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는 것은 책을 통해 서로 소통하는 행위일테고, 책을 통해 어떤 유익함을 얻을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구매를 통해 저자를 돕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별반 유익함을 주지 못하는 내 책을 산다는 건, 그저 나를 돕는 것밖에 안될 것이다. 그게 난 미안했다.

그러나... 어찌어찌해서 내 책의 존재가 드러나 버렸다.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부디 모른체 해주시고, 예전처럼 잘 지내요, 네? 진우맘님은 내 책이 "문학부문 베스터 23위"라며 놀라시던데, 그건 전혀 놀랄 게 없습니다. 제 지인들에게 돌릴 책을 마련하기 위해 제 스스로 산 결과니까 말입니다. 어제밤 저희 어머니가 20권을 더 주문하셨는데, 그러고 나니까 오늘 아침에는 글쎄 10위더군요. 베스트순위에 있다고 절대 현혹되지 마시고, 예전처럼 편한 맘으로 제 서재를 찾아 주시길 바랍니다.

* 참고로 출판사에서는 제게 20권을 줬고, 그중 4권을 출판사 분들에게 싸인해서 드렸으니 16권을 받은 셈이지요. 그게 동이 나는 데는 하루면 충분했습니다. 제가 요즘 술을 많이 마시는 건, 책을 주고 같이 술한잔씩 하다보니 그리 된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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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2-21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제 신조는 여전히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재미!'입니다. 책이 유익해야 한다고, 책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누가 그럽니까! 여하간, 평소 마태우스님을 볼 때 재미는 거의 90% 이상 보장될 것이고...아마 덤으로 기생충에 대한 지식도 쌓을 수 있겠지요.^^
단 한 권도 무료배송 해 준다고 달랑 한 권 주문하기가 미안해서 아직 안 시켰는데, 여하간 순전히 내켜서 보는 것이므로 절대 우려하지 마시길!!!

쎈연필 2004-02-21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평소의 마태우스님의 글을 볼 때 재미는 거의 99% 보장이겠지요. 사서 봐야겠습니다. 건필하세요^^

mannerist 2004-02-22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생충 이야기? 설마하고 베스트셀러 명단 확인한 순간, 모든 의문이 풀렸습니다!(이 무슨 김전일스러운 멘트인지. ㅋㅋㅋ...)푸하하하... 이제야 닉넴이 매칭되는군요. 모처의 애독자라 간혹 님의 글 읽고 뒤집어지곤 했거든요. 어여 정좌하고 다시 읽어봐야겠군요. 윤문 작업 많이 하셨을 테니까 느낌이 많이 틀려졌겠죠?

왜 진작 몰랐을까요. ㅋㅋㅋ...
 

 

 

 

 

 

2승 7패. 그전까지 그와 싸워 이룬 전적이다. 전패를 했다면 더 이상 도전하는 것이 무의미할테지만, 그는 두 번이나 내 앞에서 고꾸라졌다. 그때의 기억이 나로 하여금 계속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게 하는가보다. 하지만 어제, 또다시 정신을 잃음으로써 전적은 2승8패가 되어 버렸다. 최근 들어 3연패. 부끄럽다.

잠에서 깼을 때는 새벽 4시. 컴퓨터 앞에 엎드려 잤나보다. 화면에는 알라딘 '나의 서재'가 떠 있다. 그렇게 취한 와중에 알라딘은 왜 들어갔을까? 정말이지 알라딘 폐인이 되어가고 있나보다. 손톱은 깨졌고, 손바닥에는 상처가 있다. 결정적으로 팔꿈치가 너무 아프다. 나중에 전화를 해보니 그가 나를 우리집까지 데려다 줬으며, 그 와중에 내가 여러번 넘어졌단다. 부끄럽다.

아주 잠깐이지만, 술을 먹던 그가 조는 기색을 보였었다. 난 쾌재를 불렀다.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된다는 생각에, 몇잔을 같이 원샷을 했다. 거길 나와 3차를 간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의 일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보나마나 엎드려 잤을게다. 패인이 뭘까? 그와 난 똑같이 술잔을 비웠고, 모르긴 해도 한두잔은 그가 더 마셨을텐데.

결정적인 패착은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것. 카드야 정지를 시켰지만, 그 안에 있는 교통카드는 하필이면 어제 충전을 한 거다. 주민증, 면허증도 그렇고, 하필이면 어제 천안에서 쓰는 회수권을 10장이나 산 건 안타까운 일이다. 전화카드도, 파파이스 카드도, 모두 다 아깝다. 돈은 얼마나 있었는지 기억에 없지만, 그것 역시 아까워 죽겠다.

따지고 보면 내가 술을 마신 역사는 이런저런 잃어버림으로 점철되어 있다. 10년 전, 금융실명제가 시작되는 날, 난 엄청 술을 마셨고-실명제 때문은 아니다-깨어났을 때는 우리집 근처 골목에 앉아있었다. 지갑을 털린 채. 나중에 들은 얘긴데, 그날 내가 엄청 취한 상태에서 술값을 계산했단다. 휴, 다행이다. 어차피 잃어버릴 건데, 하는 생각을 그말을 듣고나서 했었다. 그땐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로 생활하고 있었기에, 그 후 한동안 생활고에 시달렸었다.

그것 말고도 많다. 지하철에서 자다가 종점까지 갔는데, 깨보니 지갑이 없었던 적은 대충 헤아려도 세 번인가 된다. 휴대폰은 더하다. 술먹고 휴대폰을 분실하는 건, 내게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새로산 휴대폰을 6개월쯤 쓰자 애들이 "이번엔 오래 가네"라고 할 정도니까. 열 번의 분실 중 내가 찾은 건 두 번밖에 없다.

생각해보니 어제 술값도 내가 그었다. 지갑도, 카드도 없으니 이젠 좀 건전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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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2-20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테우스님은 다른 면에선 안그러실 것 같은데, '술'에서만은 전투의욕이 불타시는 것 같네요.
저희 남편도 '술'에 관한 무용담이라면 지고 싶어하지 않는답니다. 아~ 그 끝없는 무용담!
그래도 지갑이나 집을 잃어버린 적은 없어서 다행입니다.
전 술 많이 마시면 담날 괴롭던데, 주당들은 잘도 버티는 것 같아요.
마치 '무보수 명예직'으로 여기는 것 같아요. ^^

참! 현재 세일즈 포인트 3080! 와우!
근데요, 도청장치를 주장했다는 청년(이건 실화)과 '유구낭충'은 실재로 연관되었나요? (나 으사 맞나 몰라... 그래도.. 궁금한것보다 쪽팔린게 낫죠...)

paviana 2004-02-20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증을 먼저 만드셔야 합니다.주민증이 있어야 면허증이 나옵니다.물론 여권이 있으면 면허증도 신청할 수 있지만요..글구 담부터는 주민증이나 면허증 둘중 하나만 가지고 다니세요..둘다 없으면 무지하게 괴찮답니다.시간도 훨씬 많이 걸리고..너무 속상하시겠어요...
글구 제가 굉장한 분의 서재에 무단침입한 거 같다는 생각이 마구 듭니다,.몰라뵈서 죄송해요.정말 모르고 들어 왔는데.^^ 괜찮지요?

waho 2004-02-20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면허증은 차에 두고 다녀요. 핸펀 잃어 버림 넘 속상하던데...전 거기다 연락처를 다 메모리 해놓는 버릇이 있어서...술 마시고 실수하면 뒷 일이 넘 귀찮죠? 전 술 마시고 가끔 그러는데 울 남편은 술을 못해서 이해를 못하죠

비로그인 2004-02-21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너무 슬픈 이야기네요. 상처까지 입구, 지갑도 잃어버리구, 패배도 하구. 그 와중에 알라딘 사랑은 정말 감격적이네요. ㅠㅜ 마태우스님의 화려한 승리를 한번은 바라고 있지만, 제발 옥체보존하시와요~~

마태우스 2004-02-21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도청장치와 유구낭미충은 사실 관계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근데 그 책에 보면 사실과 뻥이 혼재되어 있어, '무엇이 하늘이고 어디가 뭍인지' 저도 헷갈리더군요.

마태우스 2004-02-21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 굉장한 분이라니 무슨 말씀을!! 아, 술은 정말 굉장하게 먹죠. 신분증 다시 만들 생각을 하니 정말 심난하네요. 며칠만 기다려 보려고 해요. 혹시 압니까? 돌아올지...
강릉댁님/오오, 부군께서 술을 안드신다니, 그건 정말 좋은 거 아닙니까? 음...낭만을 모른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군요. 특히 님처럼 술을 잘 드시는 경우에는요...

마태우스 2004-02-2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티크님/제 슬픔을 이렇게 자신의 슬픔으로 느끼고 안타까워해주는 마음을 김상봉님이 어느 책에서 칭찬하던데요. 그런 면에서 앤티크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은 이미 주체의식을 가진 세계시민이십니다. 꼭 다시 재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