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바꾸는 아티스트
지승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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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쉬운 게 어디 있겠냐만은, 인터뷰는 철저한 사전 작업이 필요한 분야다. 오프라 윈프리는 인터뷰 대상이 정해지면 사전 질문을 250개 정도 뽑는다고 하는데, 그녀가 인터뷰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건 바로 그런 노력 덕분이다. 지승호님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나라도 제대로 된 인터뷰어를 갖게 되었다. 다행스런 일이다. 지승호님은 이 책에서 소개된 9명에게 '아티스트'란 호칭을 붙였는데, 내가 보기에 진짜 아티스트는 인터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지승호님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인터뷰의 가치를 인색하는 데 인색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제대로 된 인터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을거다.

이 책을 통해 평소 좋아하던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어 좋았는데, 특히 음반 다운로드에 관한 글들에 공감이 갔다. 공감했다는 건 내 생각과 일치되어 기분이 좋았다는 뜻, 나 역시 불법 다운로드 반대론자다. 왜? 내가 다운로드를 할 줄 모르니까. 신해철의 말이다.
'내가 지적하는 문제는 대중의 정신적인 태도다. 그들은 이미 기득권 집단이다.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게 싫어서 공짜로 다운받고자 하는 이익집단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운동으로 호도하려고 한다'

어느 사이트에서 지승호님이 '먹고 살아야 하니 이제 인터뷰는 그만하겠다'고 쓴 걸 봤다. 이해는 되지만 아쉬운 마음이 컸었는데, 이 책을 보니 지승호님이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인터뷰를 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많이 팔려서 그가 아무 걱정 없이 인터뷰를 할 수 있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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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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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는 베르베르, 이번에 나온 <나무> 역시 절찬리에 판매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한 '예약판매'라는 걸 할만큼 베르베르의 인기는 대단했다. 알라딘에 올라온 리뷰도 찬사 일색이다. '역시 베르베르!'라나? 하지만 베르베르의 팬으로 그가 낸 책은 거의다 읽은 나로서는 이번 책에 대해 별로 좋은 평가를 내리고 싶지 않다. 다 재미있다고 말하는데 혼자만 아니라고 하면 그 혼자가 이상한 사람이겠지만, 난 그래도 말하련다. 이 책, 하나도 재미 없었다고.

물론 그의 상상력은 기발하다. 왼손의 반란이라든지, 생각에만 집중하게 뇌를 떼어낸다는 '완전한 은둔자'도 그렇고, 사자를 애완동물로 쓰는 이야기 등은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뿐이다. 기발한 상상력은 그 자체로 끝이 나며, 그전 작품들에서 느꼈던 감동과 웃음을 주는 데는 실패한 듯하다. 소설은 상상력만이 다가 아니니까.

책을 다 덮고 나서 '이런 소설은 나도 쓴다!'고 말하고 싶었을만큼 내 실망은 컸다. 일전에 그가 그린 만화책 <EXIT>를 읽었을 때도 절망을 했는데, 작가의 이름만 보고 책을 고르는 건 위험한 것 같다. 물론 나에게 있어 베르베르는 아직도 최고의 작가이고, 그가 다음에 책을 내면 당연히 사겠지만, 높아진 기대가 베르베르의 나태함에 배신당한 것 같아 기분이 영 씁쓸하다.

어찌보면 개인의 영광일 뿐인 박세리의 우승에 환호하고 박찬호의 1승에 기뻐하는 건,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자긍심을 갖기보다는 타인, 특히 우리가 부자나라로 알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의 평가에 좌우된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나 역시 거기서 자유롭지 못해, 영화나 책에서 우리나라 얘기가 나오면 공연히 가슴이 뿌듯하다. 한국을 유난히 좋아하는 베르베르는 책에서 한국 얘기를 빼놓지 않는데, 이번 책에도 그런 대목이 있다.

[공중 그네 곡예사는 상냥하고 예쁘게 생긴 한국 여자였다. 그녀가 처음으로 손가락을 내밀어 내 살갗을 만졌다....(61쪽)]

모국 프랑스보다 그의 책을 더 많이 팔아준 한국에 대한 베르베르의 보은일 것이며, 그런 섬세함이 고맙기까지 하다. 하지만 책에 코리아를 등장시키는 것보다는 더 좋은 작품을 씀으로써 삶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 주는 게 천재 작가의 보다 나은 보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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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죽이기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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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8년 전, <김대중 죽이기>를 읽던 기억이 난다. 풍부한 자료들로부터 도출된 저자의 결론은 아무 생각없이 살던 내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난 그 책을 읽으면서 밤을 하얗게 지새웠는데, 그 책은 나로 하여금 강준만 매니아가 되는 데 일조했을 뿐 아니라 2년 뒤 대선에서 한때 '대통령병 환자'라고 욕했던 김대중에게 표를 던지게 만들었다. '정권교체가 세상을 바꾼다'는 강준만의 말과 달리 세상은 별로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남북 정상회담 등 눈에 띄는 가시적인 변화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수구 세력의 지배라는 우리 사회의 구도는 노무현의 당선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된다. 아니,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이후 수구세력은 더욱 극심한 '죽이기'에 들어가, 취임 넉달을 지냈을 뿐인 노무현에게 '하야' '재신임' 등의 말들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언론탄압' 운운하며 엄살을 피우지만,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실질적인 세력은 바로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종이신문이 아니던가.

최근 몇년간, 해마다 열권 가까이 나오는 강준만의 책들을 읽다보니 이젠 남의 도움 없이도 언론의 왜곡된 기사에 대해 비평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졌고, 인터넷으로 여러 신문을 모니터하는 게 일상생활이 되었다. 그런 나에게 이번에 나온 <노무현 죽이기>는 별로 새로울 게 없었고, <김대중 죽이기>에서 느꼈던 만큼의 감동을 느끼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의미가 없는 건 아닐게다. 내가 아마츄어인 데 반해 강준만은 엄연히 프로, 내가 미처 몰랐던 것들을 깨우쳐 준 대목이 여러 곳이다. 더구나 지금까지 조선일보만 봐온 분들이라면 이 책이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바보들은 항상 언론 탓만 한다'는 발언으로 조중동에 대서특필된 강성구 의원처럼, 요즘은 노무현만 물어뜯으면 무조건 크게 써주는 분위기다. 신문에 이름 한번 나볼까 안달하는 의원들이 부쩍 막말을 많이하는 건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고자 함인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표현이 이런 세태에 적합할 듯하다. 강준만의 책을 읽을 때마다 언론개혁이 없이는 우리나라의 미래는 없다는 말을 되씹게 되는데, '외환위기보다 더 어렵다'면서 연일 경제위기를 조장하는 우리 수구언론들은 언제나 정신을 차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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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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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을 탄 베케트의 작품이다. 칸느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를 보지 않듯, 난 노벨상을 받은 책에도 어느 정도의 거부감을 갖고 있다. 노벨상 수상작 중 내가 읽은 건 오엔 겐자부로의 <만년 원년의 풋볼>과 야스나리의 <설국> 등 극소수에 불과한데, 그 책들 역시 노벨상에 대한 내 거부감이 옳았음을 보여줬다. 이해가 안가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노벨의 심사위원들이 파악한 심오한 의미를 깨달을 수 없어서였다.

그럼에도 난 이따금씩 노벨상을 탄 책을 산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 나도 문학의 심연을 맛보고 싶다는 욕망이 언뜻언뜻 들기 때문인데, <고도를 기다리며> 역시 나의 내공을 향상시키자는 불순한 의도에서 집어든 책이다. 목욕제계를 하고, 잔뜩 긴장을 하곤 첫페이지를 폈는데, 예상외로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물론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걸 깨달았느냐, 하면 별로 할말이 없지만, 노벨 문학상을 탄 책을 재미나게 읽었다는 자체가 내겐 중요했다. 희곡을 읽은 건 세익스피어 이래로 처음인데, 여기 나오는 대사나 상황 설정이 너무 재미있어서 연극으로도 한번 보고픈 마음이 생겼다.

고도가 뭐냐는 질문에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했단다. 그러니까 작가는 자신도 모르는 얘길 쓴 것, 정답이 없는 문제니 각자 나름대로의 답을 생각하면 될 터이다. 나의 고도는 무얼까? 로또에서 1등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너무 좀스러워 보이니 평화통일이라고 고쳐 말하련다. 베케트의 책에서 고도는 열심히 기다리지만 영원히 오지 않을 그 어떤 것 같은데, 베케트의 고도와는 달리 통일은 가까운 미래에 왔으면 좋겠다. 우리 민족의 영달을 위해, 우리의 굴절된 역사를 이제라도 바로잡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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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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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배운 국사책은 일제시대가 끝이었다. 역사라는 게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현재를 조직하는 거라면, 지금 우리들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던 현대사를 수박 겉핥기로 넘어간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내가 살아왔고, 살아가야 할 이 땅이 슬픈 역사를 잉태하고 있다는 건 분명 마음 아프지만, 가슴아픈 역사도 엄연히 역사이며, 역사의 진실과 대면할 때만이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건설할 토대가 마련되는 게 아닐까.

혹자는 이런다. 현대사의 사건들은 아직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았다고, 그래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선 안된다고. 그런데 그 역사적 평가라는 건 과연 언제 끝나는가? 누구에게든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가 과연 있는 걸까. 우리가 배운 조선시대의 역사 역시 당시 지배층의 시각으로 본, 승자의 기록이 아니던가. <대한민국사>에 실린 역사 이야기들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격동의 현대사를 아주 흥미롭게 서술해 놓고 있다. 알라딘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니 50위 안에도 이 책의 제목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좋은 책을 놔두고 다들 무슨 책을 읽는 걸까? 책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몇개만 소개해 본다.

[정부는 성조기를 불태운 학생들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태극기를 태운 것도 아니고, 정작 미국에서는성조기를 불태우는 행위가 표현의 자유로 인정받는데 말이다(1권, 60쪽)]

[노근리 학살을 거론하고, 맥아더의 동상에 시비를 거는 게 배은망덕이라고? 입장을 바꾸어 북한이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의 동상을 세웠다면 얼마나 꼴불견일까?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라지만,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노병의 동상을 보며 나는 자꾸 숨이 막힌다(1권 211쪽)]

[국방의 의무를 지러 간 젊은이들을 전경으로 차출하여 치안유지에 돌리는 위헌을 일삼은 자들은 그것도 모자라 전경들을 미군기지 앞에 배치한다. 이 세상 어느 천지에 경찰이 군대를 지켜주는 꼴은 있어 본 적이 없다. 더구나 미군은 언필칭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있다는 존재가 아닌가?(1권, 246쪽)]

[할일없는 예비군에 어떤 일을 시킬까 궁리하던 정부는...예비군을 방범활동에 동원하기도 했다... 87만명의 예비군이 동원되어 37명의 범인을 검거하는 혁혁한 전과를 거두기도..(2권 203쪽)]

이 책을 덮으면서 느낀 것 하나. 한국전쟁 때 자행된 민간인 학살, 녹화사업 등 독재정권 시절에 있었던 수많은 의문사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는 보수언론들이 대북송금 의혹에 대해서는 '국민의 알 권리'라면서 길길이 뛰는 이유가 뭘까? 돈이 생명보다 더 중요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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