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
노혜경 지음 / 아웃사이더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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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노혜경님은 이미 두권의 시집을 낸,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지만, 난 그분을 시인으로서가 아닌, 사회 참여적 문학인으로 좋아한다. 그런 나에게 그의 첫 저서가 나온 건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여성을 핍박하는 남근주의 사회에 저항하고, 친일시인에게 월계관을 씌우려는 문학권력의 음모를 폭로하며, 이 땅의 정치를 왜곡시키는 지역감정에 맞서 싸운다. 지식인들 대부분이 언론의 시녀로 전락한 작금의 현실에서 노혜경님의 존재는 더더욱 소중하다.

이 책의 제목인 '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는 안티조선을 표방하는 '우리모두' 사이트에 걸려 있는 구호다. 난 몰랐는데, 그게 내가 존경하는 김정란 시인이 만든 말이라고 한다. '우리모두'에서 그 구호를 볼 때마다 참 잘 지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책 제목으로도 썩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를 왜곡시키는 거대권력에 맞서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가져야 할 원칙이 그거 말고 또 뭐가 있담?

그분의 글이 늘 그랬듯 이 책 역시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며, 안일하게 살아온 나를 반성적 성찰에 이르게 한다. 언제나 옳은 사람은 없지만, 노혜경님의 말은 대부분 옳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대선 당시에 쓴 글들이 여기 묶여 있다는 것. 노혜경님처럼 나도 노사모의 일원으로 대선을 맞았고, 그의 당선에 환호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열달이 지난 지금, 그때의 감격은 이미 사그라들었고, 재신임과 이라크 파병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이 책에 나온 말들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예컨대 다음 대목을 보자.

[그(노무현)가 선택을 그르친 적은 없습니다....그건 노무현은 정략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자기의 진심을 다해 사고하며, 더 중요한 건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는 겁니다...모무현의 움직임은 그 어떤 비밀도 책략도 없는 투명하기 이를 데 없는 것(237쪽)]

우리가 노무현에게 바란 건 바로 이런 거였는데, 지금의 노무현이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고 있는 걸까?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삶에 관해 기술된 마지막 부분은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이라,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는 것도 나에게는 옥의 티였다. 그렇긴 해도 이 책이 '내 삶에 방향을 제시하는 책' 리스트에 등재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요즘 유행하는, 일회성의 감동을 주는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은 두고두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좋은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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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페포포 투게더
심승현 지음 / 홍익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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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이 찡- 해지는 흔치 않은 감성을 지닌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지나쳐버리기 쉬운 작은 것들.....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 나를 한번 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왠지 내 눈물이 책에 닿으면 흘러내릴 것만 같은 그림에 심장을 콕 찌르는 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책답게, 알라딘에 올라온 서평들도 거의 찬사 일색이다. 많이 팔리는 책을 읽는 것도 사회를 아는 한 방법이 되는지라,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1, 2권을 사서 읽었다. 두권을 읽는 데 걸린 시간은 두시간 남짓, 전혀 감동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겨우 그정도의 감동을 위해 15000원을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든다. <연탄길>을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이런 류의 책을 읽고 나면 허탈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감동이 메마른 사회라서 이렇게라도 감동을 받아야 하는 걸까? 그 감동은 어떤 긍정적 효과가 있으며,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

다들 감동적이라는데 나 혼자 이렇게 투덜대는 걸 보면, 내가 너무 무디거나, 삐딱한 성격일 것이다. 나이답지 않게 보수적이라, '책은 모름지기 두꺼워야 한다'는 고루한 생각에 빠진 탓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이게 외환위기 당시 우리 사회에 유행했던 [101가지 이야기] 시리즈와 틀린 게 뭐람? 그 시리즈는 두껍기라도 했지... 책을 읽는 목적이야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림이 많고 빨리 읽을 수 있는 얇은 책들이 점점 더 판매시장을 장악하는 현상은, 그나마 안팔리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저자는 2권이 1권의 성공으로 급조한 책이 아니며, 원래 기획되어 있던 책이라고 하지만, 2권을 먼저 읽은, 그래서 좀더 객관적일 수 있는 내가 보기에 2권은 1권이 주는 감동조차 주지 못하고 있다. 날더러 '신세대의 감수성을 모른다'고 비난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마지막 말에는 동의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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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이운경 옮김 / 한문화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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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로 철학하기>란 책을 읽었다. 매트릭스 2가 개봉될 즈음에 나온 책인데, 그렇게 시류에 영합하는 책은 대개는 엉성하기 마련인지라 살 생각이 없었지만, 저자가 그 유명한 슬라보예 지젝 등인 것만 믿고 사서 읽기 시작했다. 내 우려와는 달리 그 책은 매트릭스 1편에 관한 철학적 고찰이었고, 내용도 꽤 흥미로웠다. 이름있는 저자는 대개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법이다.

내가 매트릭스 1편을 본 건 2001년 여름인데, 그걸 보고 나서 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가 왜 흥행에 실패했지?' 알고보니 그 영화는 서울에서만 90만이 넘는 관중을 동원한 흥행작이란다. 하여간 비디오를 본 지 2년이 지났는지라 영화의 세부적인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났는데, 책을 읽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매트릭스 1 비디오를 빌렸다. 속이 안좋아 소주를 마시면서 비디오를 봤는데, 처음 봤을 때보다 몇배나 더 재미있는 영화가 있을 수 있다는 건 경이로운 발견이었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는 말은 불변의 진리, 난 2시간 동안 넋을 잃고 화면을 응시했고, 책에서 풀이된 대사들을 음미했다. 어느 한장면, 대사 한마디도 버릴 게 없는 완벽한 영화, 그제서야 난 내가 너무나도 재미있게 본 2편에 대해 사람들이 '1편보다 못하다'고 했던 이유를 이해했다.

철학이란 단어만 들어도 머리가 아파오는 나지만, 이렇게 생활 속에서 설명되어지는 철학은 그래도 재미있다. 최고의 엔터테이너인 김용옥이 평소 같으면 거들떠도 안볼 <논어>를 대중화시켰듯, 인문학도 얼마든지 재미있을 수 있다. 이정우 교수의 철학 강좌가 인기를 얻는 이유도 그의 철학이 형이상학적 세계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삶 속에 녹아있는 철학적 요소를 알려주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인문학의 위기라는 것도 기득권을 쥔 사람들이 상아탑이라는 폐쇄적인 장소에서 대중들의 삶과는 무관한 지적 유희를 벌이기 문이 아닌지? 그들이야 펄쩍 뛸 일이지만, 내가 보기엔 영화 한편에 철학의 온갖 요소들을 담아낸 워쇼스키 형제가 그분들보다 훨씬 더 훌륭한 철학자다. 이땅의 수많은 철학자 분들도 지젝처럼 낮은 곳으로 내려와 대중과 소통하는 게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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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파괴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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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멜리 노통의 책을 읽느라 하루가 짧다. 존 그리샴 하면 법정 스릴러, 베르베르는 과학 미스테리가 떠오르지만, 노통의 소설은 어디로 튈지 읽기 전까지는 모른다. 이번 소설 역시 그랬다. 자신의 중국 체험을 소설화한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 위에 앉아 나는 선풍기들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그때 내 나이 일곱살...]

일곱살 애가 말을 타? 워낙 희한한 일을 많이 벌이는 노통인지라 진짜 그런가 하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자전거를 말이라고 하는 거였다. 그는 왜 하는지도 모르겠는 전쟁에 참여하고, 그 와중에 자기보다 훨씬 이쁜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시종 무관심한 이쁜 여자애에게 몸달아하던 노통은 결국 그 여자애가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게 만드는데, 그 비결은 무관심이었다.

[나는... 베이징의 겨울만큼이나 차갑게 엘레나를 대했다. 내가 그 방침에 집착하면 할수록 엘레나는 그 큰 눈에 사랑을 담아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139쪽)]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이건 자신이 충분히 매력적이라 상대가 빠져들 가능성이 있을 때나 써야 한다. 예컨대 나같은 사람이 그런 방법을 쓴다고 해보자. 십년을 기다려도 상대방은 신경도 안쓸거고, 오히려 좋아할 거다. 희한한 것은 노통도 여자고 엘레나도 여자라는 것. 아무리 성 구분이 희미한 어릴때라고 해도,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고보니 노통은 남자를 아주 쓸데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음 대목을 보자.

[나는 그들(남자)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들의 두 다리 사이에는 괴상망측한 것이 달려 있었다. 그들 자신은 그것에 대해 딱하게도 자부심을 갖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그들을 더욱 우스꽝스럽게 만들 뿐이었다(93쪽)]

그 괴상망측한 걸 빌미로 자부심을 갖는 남자들의 행태는 나도 끔찍히 싫어하는 바이지만, 어차피 이 세계는 남자와 여자가 공존해야 하는 곳이 아닐까? 모르긴 해도 노통의 책을 사는 독자들 중에는 남자들도 꽤 있을텐데 말이다. 비록 소설이지만, 엘레나 얘기가 사실인 것처럼 주인공의 견해들은 노통 자신의 얘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에 대한 '무시'도 그렇지만, 고독을 좋아하는 것 역시 노통의 실제와 가깝지 않을까 싶다.

[친구들이란 만나서 터무니없는, 나아가 괴상하기 짝이 없는 태도를 취하거나...쓸데없는 행동을 하는...사람들...친구들을 갖는다는 것은 퇴화의 징후...친구를 사귀는 것이 내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49쪽)]

소설을 쓰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고, 창조자는 대개 고독하다.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는 이유로 친구와 절교까지 하는 쥐스킨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노통 역시 그런 고독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책날개에 실린 노통의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을 보면, 고독과 노통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려면 어떠랴. 지금처럼 재미있는 책만 계속 써주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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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
이사야 벌린 지음, 안규남 옮김 / 미다스북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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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분으로부터 이 책을 받고난 후, 다 읽기까지는 실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마도 골치아픈 걸 싫어하는 내 성향 탓인 것 같은데, 막상 읽어보니 그다지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하기사,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이 어렵지, 그의 생애를 기술한 책이 어려울 게 뭐가 있담? 책 중간중간에 마르크스가 썼던 글들이 발췌되어 있고, 그럴 때면 진도가 더디게 나가기도 했지만, 별다른 인문학적 기초가 없는 내가 읽기에는 적당한 수준이었던것 같다.

[지금까지의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가지로 해석해 왔을 뿐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246쪽)]
마르크스의 위대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백년 후 막을 내리기는 했지만, 마르크스가 주창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며 자본주의를 한층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구실을 했다. 새천년이 도래할 무렵, 지난 천년간 가장 위대한 인물이 누구냐는 설문조사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마르크스가 1위를 차지한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위대한 인물들이 대개 그렇듯이 마르크스도 아부를 좋아했다]는 점과 가정부를 임신시켜 애까지 낳은 일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위대함이 손상될 것 같지는 않다. [믿음과 행위는 하나이다. 행위가 스스로 인정한 믿음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거짓이다(246쪽)]는 대목과,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한다(222쪽)]는 말은 아직도 전근대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쉬운 점 하나. 다 읽고 난 뒤 읽고 나서 머리에 남은 게 그다지 많지 않은 건, 어느 분의 지적처럼 '지나친 압축'과 '명쾌하지 못한 문장'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머리가 나빠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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