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승 7패. 그전까지 그와 싸워 이룬 전적이다. 전패를 했다면 더 이상 도전하는 것이 무의미할테지만, 그는 두 번이나 내 앞에서 고꾸라졌다. 그때의 기억이 나로 하여금 계속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게 하는가보다. 하지만 어제, 또다시 정신을 잃음으로써 전적은 2승8패가 되어 버렸다. 최근 들어 3연패. 부끄럽다.

잠에서 깼을 때는 새벽 4시. 컴퓨터 앞에 엎드려 잤나보다. 화면에는 알라딘 '나의 서재'가 떠 있다. 그렇게 취한 와중에 알라딘은 왜 들어갔을까? 정말이지 알라딘 폐인이 되어가고 있나보다. 손톱은 깨졌고, 손바닥에는 상처가 있다. 결정적으로 팔꿈치가 너무 아프다. 나중에 전화를 해보니 그가 나를 우리집까지 데려다 줬으며, 그 와중에 내가 여러번 넘어졌단다. 부끄럽다.

아주 잠깐이지만, 술을 먹던 그가 조는 기색을 보였었다. 난 쾌재를 불렀다.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된다는 생각에, 몇잔을 같이 원샷을 했다. 거길 나와 3차를 간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의 일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보나마나 엎드려 잤을게다. 패인이 뭘까? 그와 난 똑같이 술잔을 비웠고, 모르긴 해도 한두잔은 그가 더 마셨을텐데.

결정적인 패착은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것. 카드야 정지를 시켰지만, 그 안에 있는 교통카드는 하필이면 어제 충전을 한 거다. 주민증, 면허증도 그렇고, 하필이면 어제 천안에서 쓰는 회수권을 10장이나 산 건 안타까운 일이다. 전화카드도, 파파이스 카드도, 모두 다 아깝다. 돈은 얼마나 있었는지 기억에 없지만, 그것 역시 아까워 죽겠다.

따지고 보면 내가 술을 마신 역사는 이런저런 잃어버림으로 점철되어 있다. 10년 전, 금융실명제가 시작되는 날, 난 엄청 술을 마셨고-실명제 때문은 아니다-깨어났을 때는 우리집 근처 골목에 앉아있었다. 지갑을 털린 채. 나중에 들은 얘긴데, 그날 내가 엄청 취한 상태에서 술값을 계산했단다. 휴, 다행이다. 어차피 잃어버릴 건데, 하는 생각을 그말을 듣고나서 했었다. 그땐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로 생활하고 있었기에, 그 후 한동안 생활고에 시달렸었다.

그것 말고도 많다. 지하철에서 자다가 종점까지 갔는데, 깨보니 지갑이 없었던 적은 대충 헤아려도 세 번인가 된다. 휴대폰은 더하다. 술먹고 휴대폰을 분실하는 건, 내게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새로산 휴대폰을 6개월쯤 쓰자 애들이 "이번엔 오래 가네"라고 할 정도니까. 열 번의 분실 중 내가 찾은 건 두 번밖에 없다.

생각해보니 어제 술값도 내가 그었다. 지갑도, 카드도 없으니 이젠 좀 건전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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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2-20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테우스님은 다른 면에선 안그러실 것 같은데, '술'에서만은 전투의욕이 불타시는 것 같네요.
저희 남편도 '술'에 관한 무용담이라면 지고 싶어하지 않는답니다. 아~ 그 끝없는 무용담!
그래도 지갑이나 집을 잃어버린 적은 없어서 다행입니다.
전 술 많이 마시면 담날 괴롭던데, 주당들은 잘도 버티는 것 같아요.
마치 '무보수 명예직'으로 여기는 것 같아요. ^^

참! 현재 세일즈 포인트 3080! 와우!
근데요, 도청장치를 주장했다는 청년(이건 실화)과 '유구낭충'은 실재로 연관되었나요? (나 으사 맞나 몰라... 그래도.. 궁금한것보다 쪽팔린게 낫죠...)

paviana 2004-02-20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증을 먼저 만드셔야 합니다.주민증이 있어야 면허증이 나옵니다.물론 여권이 있으면 면허증도 신청할 수 있지만요..글구 담부터는 주민증이나 면허증 둘중 하나만 가지고 다니세요..둘다 없으면 무지하게 괴찮답니다.시간도 훨씬 많이 걸리고..너무 속상하시겠어요...
글구 제가 굉장한 분의 서재에 무단침입한 거 같다는 생각이 마구 듭니다,.몰라뵈서 죄송해요.정말 모르고 들어 왔는데.^^ 괜찮지요?

waho 2004-02-20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면허증은 차에 두고 다녀요. 핸펀 잃어 버림 넘 속상하던데...전 거기다 연락처를 다 메모리 해놓는 버릇이 있어서...술 마시고 실수하면 뒷 일이 넘 귀찮죠? 전 술 마시고 가끔 그러는데 울 남편은 술을 못해서 이해를 못하죠

비로그인 2004-02-21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너무 슬픈 이야기네요. 상처까지 입구, 지갑도 잃어버리구, 패배도 하구. 그 와중에 알라딘 사랑은 정말 감격적이네요. ㅠㅜ 마태우스님의 화려한 승리를 한번은 바라고 있지만, 제발 옥체보존하시와요~~

마태우스 2004-02-21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도청장치와 유구낭미충은 사실 관계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근데 그 책에 보면 사실과 뻥이 혼재되어 있어, '무엇이 하늘이고 어디가 뭍인지' 저도 헷갈리더군요.

마태우스 2004-02-21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 굉장한 분이라니 무슨 말씀을!! 아, 술은 정말 굉장하게 먹죠. 신분증 다시 만들 생각을 하니 정말 심난하네요. 며칠만 기다려 보려고 해요. 혹시 압니까? 돌아올지...
강릉댁님/오오, 부군께서 술을 안드신다니, 그건 정말 좋은 거 아닙니까? 음...낭만을 모른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군요. 특히 님처럼 술을 잘 드시는 경우에는요...

마태우스 2004-02-2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티크님/제 슬픔을 이렇게 자신의 슬픔으로 느끼고 안타까워해주는 마음을 김상봉님이 어느 책에서 칭찬하던데요. 그런 면에서 앤티크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은 이미 주체의식을 가진 세계시민이십니다. 꼭 다시 재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