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조카가 보내준 메시지를 확인하고, 잠시 멍했다. 내 책을 재미있게 읽은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조카가 이번에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라는 것. <해리포터>처럼 세대를 뛰어넘어 읽히는 책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내 책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며, 내 조카가 여느 초등학생과는 달리 높은 지성과 감성을 가졌다든지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래,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그게 내 책의 수준이라는 것을. 내 책을 출간한 출판사에서는 "기생충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30, 40대"를 타깃으로 잡고 있는 모양이지만, 아무래도 "기생충에 대해 전혀 모르는 초등학생"을 주 대상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사실 난 내 알라딘 서재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내 책의 존재를 모르길 바랐다 (무의식에서는 알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지만). 내 서재를 오가는 분들과 호형호제하며 알고 지내게 된 걸 큰 즐거움으로 알고 지냈는데, 그분들 중 몇분이라도 내 책을 읽는다면 언젠가 플라시보님이 그랬듯 즐겨찾기로 등록한 분들의 숫자가 추풍낙엽처럼 떨어지지 않겠는가. 더구나 알라딘 분들은 유명 저자들의 책도 매섭게 비판하는 고강한 내공을 가진 분들인데, 그런 분들이 내 책을 본다면? 상상만 해도 두렵기 짝이없다. 내 창작물이 과히 좋은 책이 아니라는 게 첫 번째 이유라면, 책을 감추고 싶은 두 번째 이유는 내 책의 존재를 알리는 게 마치 책을 사달라는 강요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는 것은 책을 통해 서로 소통하는 행위일테고, 책을 통해 어떤 유익함을 얻을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구매를 통해 저자를 돕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별반 유익함을 주지 못하는 내 책을 산다는 건, 그저 나를 돕는 것밖에 안될 것이다. 그게 난 미안했다.

그러나... 어찌어찌해서 내 책의 존재가 드러나 버렸다.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부디 모른체 해주시고, 예전처럼 잘 지내요, 네? 진우맘님은 내 책이 "문학부문 베스터 23위"라며 놀라시던데, 그건 전혀 놀랄 게 없습니다. 제 지인들에게 돌릴 책을 마련하기 위해 제 스스로 산 결과니까 말입니다. 어제밤 저희 어머니가 20권을 더 주문하셨는데, 그러고 나니까 오늘 아침에는 글쎄 10위더군요. 베스트순위에 있다고 절대 현혹되지 마시고, 예전처럼 편한 맘으로 제 서재를 찾아 주시길 바랍니다.

* 참고로 출판사에서는 제게 20권을 줬고, 그중 4권을 출판사 분들에게 싸인해서 드렸으니 16권을 받은 셈이지요. 그게 동이 나는 데는 하루면 충분했습니다. 제가 요즘 술을 많이 마시는 건, 책을 주고 같이 술한잔씩 하다보니 그리 된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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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2-21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제 신조는 여전히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재미!'입니다. 책이 유익해야 한다고, 책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누가 그럽니까! 여하간, 평소 마태우스님을 볼 때 재미는 거의 90% 이상 보장될 것이고...아마 덤으로 기생충에 대한 지식도 쌓을 수 있겠지요.^^
단 한 권도 무료배송 해 준다고 달랑 한 권 주문하기가 미안해서 아직 안 시켰는데, 여하간 순전히 내켜서 보는 것이므로 절대 우려하지 마시길!!!

쎈연필 2004-02-21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평소의 마태우스님의 글을 볼 때 재미는 거의 99% 보장이겠지요. 사서 봐야겠습니다. 건필하세요^^

mannerist 2004-02-22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생충 이야기? 설마하고 베스트셀러 명단 확인한 순간, 모든 의문이 풀렸습니다!(이 무슨 김전일스러운 멘트인지. ㅋㅋㅋ...)푸하하하... 이제야 닉넴이 매칭되는군요. 모처의 애독자라 간혹 님의 글 읽고 뒤집어지곤 했거든요. 어여 정좌하고 다시 읽어봐야겠군요. 윤문 작업 많이 하셨을 테니까 느낌이 많이 틀려졌겠죠?

왜 진작 몰랐을까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