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건의 암치료 관련기사가 1면 톱을 화려하게 장식한 바 있다...문제는 이러한 언론의 암 치료제 관련기사가 실제로 얼마나 국민보건에 기여했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언론을 장식했던 숱하게 많은 암 치료제 가운데 엄격한 임상시험을 거쳐 시판허가가 내려진 것은 전무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암 치료제 관련기사는 왜 용두사미로 전락하기 일쑤일까...우선 언론의 상업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알다시피...독자나 시청자에게 가장 휘발성 있게 어필하는 것은 암 치료제를 비롯한 건강관련 기사나 보도다....

지금까지 언론에 소개된 대부분의 암 치료제는 시험관 내 실험결과나 동물시험결과에 불과하다. 그것이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기사에서 그것이 아직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 의미를 분명히 명시해야 한다는 뜻이다(<의사들이 절대로 말해주지 않는 건강 이야기>, 293-299쪽)]

의학전문기자인 홍혜걸이 쓴 책의 한 대목이다. 난 이 책을 참 재미있게 읽었고, 그가 했던 말들에 대부분 동의했다. 하지만 다른 분들의 시각은 좀 다른가보다. 어떤 분의 리뷰다. "의료계 현실을 보는데 있어서는 의사로서의 시각을 강조했다는 것이 좀 안타까웠다" 또 다른 분의 글, "의사측면에서 불평 불만만 늘어놓고 있다" 글쎄다. 내가 보기에 홍기자는 책에서 환자의 건강을 먼저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의사들, 심지어 동기들 사이에서도 '배신자'라는 말을 듣고 있는데.... 뭐 여기서 그걸 가지고 얘기하고픈 마음은 없다. 다음은 그가 얼마전 낚은 특종의 한대목이다.

[국내 과학자들이 세계 최초로 사람의 체세포와 난자만으로 인간 배아(胚芽) 줄기세포를 만들어내는 개가를 올렸다...이로써 세계 의료계는 이식 거부와 윤리 문제를 동시에 뛰어넘어 각종 장기를 이용한 난치병 해결에 역사적인 발걸음을 내딛게 됐다...예컨대 치매나 심장병 등 수술로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가 줄기세포를 이식받으면 이 세포가 환부에서 정상 세포로 자라나면서 병이 완치되는 식이다....]

엠바고를 파기했느니 하는 논란이 되었던 바로 그 기사인데, 이걸 읽으면 치매도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종에 따르는 자화자찬도 이어진다.
[한국 과학자들이 세계 최초로 사람의 체세포와 난자만으로 인간 배아(胚芽)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 (본지 2월 12일자 1면)이 12일 세계 언론들에도 주요 뉴스로 소개됐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세포 치료는 수년 내 실용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장기에 생긴 질환엔 당장 응용이 어렵다. 세포를 장기 형태로 만드는 기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간이나 콩팥 등 이식용 장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암 환자의 생존율이 획기적으로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뭔지는 몰라도 '수년내 실용화'란 대목에 눈이 번쩍 뜨인다. 척수손상이나 치매로 고생하는 가족을 둔 사람들이 희망에 부풀만 하고, 암환자의 생존률이 커진다는 대목도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런데 홍기자 자신이 책에 쓴대로 이 기사가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았고, 실용화되려면 오랜 기간이 걸"린다는 걸 명시한 기사일까? 며칠 전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온 연구팀(아마도 황의석 교수?)는 "언제쯤 환자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겠느냐"는 손석희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가장 곤혹스러운 질문인데요....지금은 동물 실험에서 겨우 가능성을 발견한 단계구...국제 연구기관과 협력을 잘 한다해도 10년 정도 후에나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10년도 아마 최대한 짧게 잡은 것이리라. 그렇다면 '수년 내 실용화'는 홍기자의 희망사항이 아닐까 싶다. 이번 성과가 획기적인 업적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의학계의 특종보도를 비판한 홍기자 역시 특종의 욕심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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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4-02-22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자가 바라는 의학과 의사가 해 줄수 있는 의학의 괴리를 느낄 때 정말 괴롭습니다. 갈릴레이가 하늘을 보던 시절에는 돈과 관련없는 순수한 세계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하늘의 별을 보던 현미경으로 세포를 들여다 보던 간에 돈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으니, 세상이 좋아졌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나빠졌다고 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