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교수’라는 단어를 별반 좋아하지 않는다. 하는 일에 비해 지나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 때문인데, 남자 파악에 능한 술집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직업군이 교수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됨됨이로 따지자면 평균에 결코 미치지 못할 사람들이 왜 그리도 목에 힘을 주고 사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그들은 조교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는 존재가 아닌가.


아무리 학교 내에서 일어난 일이라 해도 수업과 무관한 걸 가지고 “나 교수인데”라고 말하며 기선을 제압하려는 행태를 난 특히 싫어한다. 언젠가 우리 학교 학생이 교내에서 치대 선생과 접촉사고를 낸 적이 있다. 서로 잘잘못을 가리던 중 치대 선생은 “나 교수야. 넌 뭐냐?”라고 했는데, 단과대도 다른데 그런 말에 기죽을 학생이 아니었는지라 별반 좋지 못하게 결말을 맺었나보다. 분이 안풀린 그 교수는 우리 대학 의학과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렇게 말했다.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는데, 당신 말야 학생 교육 좀 똑바로 시키라고.”

자기들끼리의 문제를 권력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거, 문제 있지 않는가. 나 같으면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뒤 무시했겠지만, 우리 의학과장은 나보다 훨씬 멋진 사람이었다.

“그 학생이 잘못했다고 치자. 하지만 이렇게 불쑥 전화해서 그딴 말을 하는 당신도 잘한 거 없다.”


오늘 낮, 의학심리학을 가르치는 러시아과 선생에게 전할 게 있어 인문대로 갔다. 그 선생 방에 갔더니 자리에 없다. 조교 선생에게 전해야겠다 싶어서 과사무실을 찾았더니 못찾겠다. 다른 과 사무실에 가서 러시아과 사무실을 찾았다. 당시 난 전날 집에 못간 탓에 무척 남루한 행색을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거기선 날 위아래로 보더니 “한층 내려가세요”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거다. 평소 스스로를 교수라고 하는 걸 부끄러워했지만, 이런 말이 나올 뻔했다. ‘나 교순데....좀 잘해 주면 안되겠니?’


3층에서도 러시아과 사무실은 찾기 어려웠다. 그러다 ‘러시아과’라고 쓰인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들어갔더니 학생 비슷한 젊은이 셋이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다. 정중하게 물었다.

“러시아과 사무실이 어디지요?”

젊은이 하나가 날 슥 쳐다봤다. 그리고는 컴퓨터 화면에 눈을 고정시키며 한마디 내뱉는다.

“옆에.”

조교를 만나 전할 걸 주고 의대로 오는 동안, 그 학생이 말한 ‘옆에’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무리 내 행색이 초라해도 자기보다 몇십년 위인데, 말버릇이 그게 뭔가.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나 여기 교수야. 엊그제 부교수도 됐어. 어따 대고 반말이야?”

무더위 속을 걸으면서 난 이런 말을 해주지 못한 걸 자책했다. 물론 오래지 않아 난 이성을 찾았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수업 외의 일로 생긴 문제에 교수라는 백을 동원하는 건 옳지 못한 일이니까.


그렇긴 해도 한가지는 결심했다. 인문대 갈 땐 빨간 모자는 쓰지 말고 가야겠다는. 그것 때문에 내가 너무 젊어 보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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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6-09-08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수님~~~ !

프레이야 2006-09-08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부교수님 되신거부터 축하드려요^^ 지금도 충분히 젊은 나이니까, 님, 너무 어려보여 그런 일 당하신거잖아요.ㅎㅎ 교수님~~~ 그래도 말을 뚝 잘라먹는 버릇, 학생이라해도 잘못된 거에요.. ^^ 친절까진 못하더라도...

비로그인 2006-09-08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어려보여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상대가 세살박이 어린아이였다 해도 말꼬리 뚝 잘라먹는 건 고쳐야 할 언어습관이에요. 아니 예의는 어따 두고 반말입니까, 반말이!

해리포터7 2006-09-08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빨간모자를 쓰신 마태우스 교수님~~~ 다 젊어보여서 그러신거라고 생각하시지요..ㅎㅎㅎ

진/우맘 2006-09-08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 참....대단하신 분이라니까요. 경직된 우리 교육계에서, 교정을 빨간모자를 쓰고 활보하면서 부교수가 되시다니~~~~^0^

아영엄마 2006-09-08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어려보이면 종종 황망한 일들을 겪죠! 대2쯤 휴학한 기간에 초등학교에서 임시직으로 다닌 적 있는데 아침에 출근한다고 학교 건물 현관으로 들어가는데 선생님이 소리치시더군요.
"야, 넌 왜 실내화 안 신어!!"
"엑, 저 학생 아닌데요..." 당황한 선생님과 주위 초등 학생들의 시선 집중...@@;;
근데 정말 학생도 나이 그정도 됐으면 상대에 대한 언어 예의는 지킬 줄 알아야죠.

해적오리 2006-09-08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왜 이케 웃기지요? 빨간모자 아저씨!

엔리꼬 2006-09-08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간모자'라는 국내 피자집 배달 아저씨로 착각한거 아닌가요? ==33

짱구아빠 2006-09-08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간모자의 진실"-----> 어려 보이시는 자랑하기 위한 염장성 뻬빠되겠슴다. 저처럼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보이는 인간은 그거 땜에 기분상하는 일이 많거들랑요...
어려보이시는 데다가 빨간 모자까지 착용하셨으니,"옆에"라고 말한 학생이 후배라고 볼만도 했을 듯... 아무리 그래도 "예의가 없는 것"이긴 하군요...

다락방 2006-09-08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끈 열받으며 읽어가다 보면 끝에 꼭 웃게 만드시네요. 하하.
왜 마태우스님은 국문과 교수가 아니라 의대교수인걸까요? ㅋㅋ

깐따삐야 2006-09-08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간 모자 아가씨였으면 정중하게 안내했을텐데 빨간 모자 아저씨라서...=3=3=3

마노아 2006-09-08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간모자 안 쓰고 파란모자 쓰는 건 아니죠? 너무 영한 부교수님 마태우스님께서 너그러이 이해하셔요^^

Mephistopheles 2006-09-08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찰 하나 맞췄드려야 겠어요... 부교수`마태우'

세실 2006-09-08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아직 학생으로 아는건가요? (이건 쫌 아니다~)아님 누구로 알아서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 걸까요???
이제 부교수님도 되셨으니 아무래도 의상에도 신경쓰셔야 할듯~ 코디도 구해야 되는건 아닌지... 부교수님이잖아요~~

비자림 2006-09-08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안(?)인데다 아이를 늦게 낳아 다들 어리게 볼 때가 많아요. 좀 친해진 동네 아줌마가 반말을 툭툭 하다가 기세좋게 제 나이를 물었는데 저보다 네 살 어리더군요. 저는 나이가 상관없었는데 그 아줌마가 많이 당황해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나저나 예의 없는 그 학생 말투에 적잖이 황당하셨겠어요.^^

paviana 2006-09-08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학과장님은 꼭 본받으세요..
춘님이 하신 명언이 생각나는군요.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험하다...
조교에게라도 한마디 하고 오셨어야죠.러시아과는 과사무실에 오는 사람들에게 모두 반말하는게 전통이냐고.....
이래서 님은 비서가 필요하세요. 험한 세상에 혼자 다니시기에 넘 여리시잖아요.
제 이력서는 잘 받으셨죠? 기억해주세요.ㅎㅎ

ceylontea 2006-09-08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간모자 부교수~~ 학교 게시판에라도 올리던지 해야겠어요.. ^^

달콤한책 2006-09-08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달의 기수로 본게 분명하군요...피자, 택배 등등 ㅋㅋ

maverick 2006-09-08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만 생각하니..
마부교수님이라고 불러 드려야 하나요 ㅋㅋㅋ ^^

기인 2006-09-08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인문학도라고 다 그런건 아니에요~~ 진정 인문학도라면 타인에 대한 예의와 세상에 대한 냉철한 시선과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겠죠!!
(물론;; 제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혹시 그 '러시아과' 학생이 유학생이라서 한국말이 서툴지도;;;; 아닐까요? ㅜㅠ )

비로그인 2006-09-08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건 인문학도라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기본이 없는 거 같네요. 괜히 찔리는 사회과학도-_-;;

마태우스 2006-09-08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대생님/아앗 저도 그런 뜻으로 쓴 건 아니어요. 의대 쪽은 다 저를 알기에 모자 써도 관계가 없지만, 인문대에선 절 모르니까 그런 거였어요...
기인님/여대생님한테도 썼지만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믿어 주세요... 의대 애들이라고 뭐 예의가 바르나요. 글구 그 학생, 아마 유학생일 거예요^^
올리브님/제말이.... 우린 서로 호형호제하고 살아요^^
매버릭님/아이 부끄럽게.... ^^
달콤한책님/그럴지도...하지만 배달의 기수 치곤 너무 피부가 좋지 않나요?^^
실론티님/모자는 맨날 바뀌니까 게시판에 올려도소용없음^^
파비님/글쎄요 좋은 비서가 하나 필요하긴 한데... 강의준비 대신 해줄 비서!!
비자림님/님 사진 봐서 동안인 거 알죠. 학생 같더이다^^
세실님/님 의상이 더 걱정입니다. 님의 미모를 손상시키지 않을 옷이 이 땅에 얼마나 있을지....^^
메피님/호호, 그럼 진짜 학생 같을걸요^^
마노아님/초록, 검정, 파랑.... 골고루 바꿔서 씁니다^^
깐따삐야님/그, 그랬을까요??? 치마입고 가볼까...
다락방님/제가 의대니까 이렇게 설치고 다니지 국문과였다면 존재 자체가 없었을 거예요. 국문과의 뛰어난 감수성을 제가 어찌 감당하겠어요...
짱구아빠님/오옷 아니어요 절대로 자랑이 아니어요 그냥 그거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어려보여서 그렇다고 생각하련다, 이런 페퍼죠!!
서림님/아, 오랜만이네요! 하지만 손에 피자를 들고 있지 않았다는 거~^^
해적님/그건 님의 마음이 따뜻해서 그런 거랍니다. 섭시 97도 되겠습니다^^
아영엄마님/세상 사람들 모두가 자신이 동안이라 우겨도 아영엄마님 앞에서는 다들 까빡 죽습니다. 님의 피부와 초롱한 눈을 어찌 따라가겠습니까...^^
진우맘님/호호, 님 만날 땐 모자 안썼었는데...올해 2월부터 갖게 된 취미랍니다
해리포터님/그렇게 생각하고 기분 풀어야죠 뭐^^
주드님/제말이 그말입니다. 님같은 미녀분도 그러시는데 그죠??
배혜경님/미소라도 한번 지었으면 모르겠지만, 한번 슥 보고 다시 컴 모니터 보면서 한마디 내뱉는 그 센스, 좀 불쾌했답니다. 신하균에게 부탁해볼까...
매직님/부교수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잖습니까^^ 신혼생활에 대한브리핑 써주세요!

춤추는인생. 2006-09-08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간모자가 문제일꺼예요..
저는 왜 이글은 읽는동안 분에 안차고 동안이신 님의 얼굴에 부러움만 느껴지는지.
ㅎㅎ

딸기 2006-09-08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간 모자에 '교수'라고 써붙이고 다니셔요 ^^

제가 아는 어떤 친구는 올봄에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됐는데,
아무리 갓 졸업해 취직한 새내기라도 그렇지...
교장선생님이 계속 이름부르며 반말한대요. 기본이 안 된 사람들...

모1 2006-09-08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모자를 썼든 안썼든 그 학생들 기본이 안되있네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런 반말을...
(근데 그 치대교수님도 대단하시네요. 사고난것이랑 교수랑 무슨 상관??)

산사춘 2006-09-08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두루두루 씹새들입니다. (갑자기 서재 없어지면 제 욕질 때문입니다.)

승주나무 2006-09-09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 님의 페이퍼에 등장하는 책들은 어디서 따오는 건가여? 한 번도 구경해보지 못한 것들이라... 전공 서적인가여?(궁금)

2006-09-09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6-09-10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ㄹ님/그러니까 자주자주 들리셔야죠^^ 좋은 소식 많이 준비해 놓을께요^^
승주나무님/호홋, 전공서적은 아니구요 페이퍼용 서적이죠. 페이퍼를 위해 준비된...^^
산사춘님/님과 한잔 하고픈 마태입니다
모1님/제말이 그말입니다 사고난 거랑 교수는 아무 관계 없죠...
딸기님/들들 왜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좋은 사람끼리만 모여살면 좋겠다는...^^
춤추는 인생님/님은 제 나이 되어도 20대 같으실 걸요 어찌 아냐구요? 호호, 다 아는 수가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