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교육을 받는 도중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모범적으로 수업만 듣던 내가 왜 호명되었을까? 알고보니 사진을 안냈단다. 3장을 내라고 했다는데, 난 그 얘기를 까맣게 몰랐었다. 교육장 지하에 있는 즉석사진을 찍었다. 1분 완성이라고 씌여 있지만, 실제로는 5분쯤 걸렸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안좋았다기보다는, 나온 사진이 너무 맘에 안든다는 게 문제다. 원래 안생긴 얼굴이건만 이건 숫제 범죄자 현상수배 수준이다. 지하철 역에 있는 즉석사진기도 그렇지만, 1분 완성 치고 제대로 나오는 사람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사진관 사진이 무슨 조작을 가하는 것도 아닐텐데, 왜 즉석사진은 늘 맘에 안들게 나오는 것일까? 적나라한 실제 모습이 나오기 때문에? 하지만 아무리 봐도 실제 모습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드는 걸로 보아, 즉석사진은 실제를 극대화시켜 추한 부분만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나보다.
내가 못생긴 걸 알게 된 어린 시절부터 난 사진 찍기를 꺼렸다. 아무리 잘 찍는다 해도 그 얼굴이 그 얼굴이라고 생각을 했던 거다. 그러니 증명사진이라고 해서 특별히 신경쓴 적도 없다. 90년대 내 신분증의 대부분을 장식한 사진은 91년에 찍은 거다. 그 사진, 정말 끝내준다. 머리도 덥수록하고, 면도조차 안했다. 전날 술이 덜깨서 얼굴도 붓고 표정도 좋지 않은 그 사진이 한동안 내 운전면허증에, 그리고 공무원증에 매달려 있었다. 그 사진을 본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웃었다는 건, 실제 내 모습보다 훨씬 못하기 때문이었겠지. 외모를 이용한 개그는 저질이지만, 난 툭하면 그 사진을 보여주며 남을 웃겼다(그 사진은 지금 우리학교 홈페이지 교수소개란에 나와 있다. 내가 왜 이 사진을 낸걸까?).
문제의 사진
99년 학교에 임용서류를 낼 때는 도저히 그 사진을 쓸 수가 없었다. 무지하게 귀찮았지만, 5천원만 내면 48장을 준다는 사진관을 명함 한 장을 들고 찾았고, 별생각 없이 사진을 찍었다. 이럴 수가. 그 사진은 너무나도 잘 나왔다! 내가 날씬하던 때이니만큼 얼굴도 갸름하고, 면도가 말끔하게 된 모습, 난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더 사진을 찍어도 이것만큼 잘 나오지 못할 거라는 것을. 향후 십오년 이상 그 사진이 각종 증명서의 사진을 전담하리라는 것을. 난 필름을 챙겼고, 사진이 떨어질 때마다 그 사진을 현상해서 내곤 했다. 그렇게 6년째, 난 더 이상 날씬하지 않고, 피부도 그때의 피부는 아니다. 그러다보니 그 사진을 냈을 때 지금의 내 모습과 비교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그래도 난 그 사진을 포기할 수 없다. 사회적 지위가 올라감에 따라, 나도 "그 얼굴이 그 얼굴이지!"라는 자포자기적인 생각보다는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쪽으로 생각이 변해 버렸고, 무엇보다 그때보다 훨씬 더 게을러진 탓에 증명사진을 찍으러 간다는 게 너무도 귀찮기 때문이다.
아무리 즉석사진이라 하더라도 오늘 찍은 사진은 좀 너무했다. 기쁜 마음으로 2급 방화관리자 자격증을 받긴 했지만, 그 사진만 보면 기쁨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한숨만 푹 나온다. 난 지금도 믿고 싶지 않다. 사진 속의 인물이 진정 나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