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눈동자에 건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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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눈동자에 건배 

 

 

9개의 이야기를 모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또 하나의 단편집

​단편집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예외를 두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에는 어떤 재밌는 이야기들이 있을지 기대된다.

 

 

차례

 

 

새해 첫날의 결심

정월 초하루를 맞아 다쓰유키와 야스요는 새해 첫 참배를 올리기 위해 이른 아침에 집 근처 신사를 찾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명한 신사에 가기 때문에 동네 신사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어지고 있다.

신사에 도착하고 야스요는 새전함 앞에서 복장이 이상한 사람을 발견하는데 그는 바로 그 지역 군수였다. 다쓰유키와 야스요는 경찰에 신고를 했다.

군수는 왜 신사에 그런 차림으로 쓰러져 있었을까? 하는 것이 이 이야기의 주된 사건이다.

군수의 일이 점차 해결되며 갖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나는 그 사건의 전말이 참 허무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이런 난리가 나다니...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경찰들의 태도도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연초에 성가신 일은 피하고 싶어 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듯한...

내 마음처럼 다쓰유키와 야스요도 점점 화가 나고...

아무튼 경찰의 그런 수사 태도도, 군수의 일도 마지막 부분에 비하면 그저 한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 읽는 순간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사연을 읽고, 결심을 읽고 그들에게 잘하셨다고 응원을 보낸다.

 

10년 만의 밸런타인데이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이야기의 연속이다.

쓰다 치리코와 미네기시는 헤어진 후 10년 만에 재회를 하게 된다.

그것도 발렌타인데이에.

10년 전, 치리코와 미네기시는 행복한 연인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미네기시는 치리코로부터 헤어지자는 메일을 받게 된다. 메일에는 헤어지는 이유도 쓰여있지 않았고 그 후에도 치리코와 어떤 연락도 닿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한 미네기시는 납득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치리코를 찾아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소설가의 길을 걸으며 성공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팬레터를 받게 되었는데 발신인이 '쓰다 치리코'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쓰다 치리코.

둘은 결국 만날 약속을 하게 되고, 미네기시는 이번에야말로 그때의 이유를 듣고 말겠다 생각했다.

단순히 연인의 사랑,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역시 상상하지 못 했던 전개가 펼쳐졌다.

오늘 밤은 나 홀로 히나마쓰리

홀로 집으로 돌아온 사부로.

아내 없이 텅 빈 집안이 쓸쓸한 느낌이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외동딸 마호마저 집을 떠나 홀로 생활하고 있는 집이다.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가족 마호가 시집을 간다고 한다.

그것도 엄청난 집안의 장남과 결혼해 멀리 가버린다고 한다.

사부로는 딸아이가 꿈이었던 직업도 포기하고 그런 집에 들어가 자신의 아내처럼 고생을 할까 싶어 걱정이다.

아내도 강한 성격을 가진 시어머니를 만나 고생을 많이 했다.

그리고 결국은 장기간의 스트레스로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딸아이도 분명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부로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다 알고 있었다 생각했지만 자신이 알고 있었던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참 따뜻했지만 딸이 결혼한 후 홀로 남아계실 아버지를 생각하니 쓸쓸한 느낌도 들었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

이십 대의 나이에도 한탕을 노리며 마권발매소를 들락거리는 사부로.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날도 마권발매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나가는 사람이 자신을 아는 척해 돌아보니 대학 동창 우치였다. 졸업 후 6년 만이었다. 우치는 젊은 나이에 마권발매소나 들락거리는 사부로를 마땅치 않게 여기면서도 그에게 미팅을 하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사부로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모모카라는 자신의 이상형에 가까운 여자를 만나게 된다.

서로 취미도 같아 이야기가 잘 통하는 듯하였으나 그녀는 개인적인 이야기는 잘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녀와 더 가까워지고 싶은 사부로는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관심을 표하지만 그녀는 거부할 뿐이다.

알고 보니 이유 있는 거부였다.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10년 만의 밸런타인데이'와 마찬가지로 결말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렌털 베이비

에리는 이번 휴가 기간 동안은 평범하지 않은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아기 로봇을 통해 실제 육아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고, 남자친구와 함께 아기 로봇을 키우기 시작한다.

아기 로봇은 피부, 배변활동 등 실제 사람과 비슷하게 만들어졌고, 아기를 키우며 일어날 수 있는 각종 돌발 상황들도 입력되어 있어 진짜 육아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일들을 경험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렇게 에리와 아키라는 열심히 육아에 적응하려 노력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야기에서 반전이 없는 이야기가 있었을까? 이번에도 방심했던 나는 또 한번 당했다.

고장 난 시계

몇 개월째 실업상태인데다 집세까지 밀려 조급한 나는 A가 제안한 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소 위험한 일이긴 했지만 보수를 들으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버린다. 일이 꼬였다.

지시받은 사항에는 없는 일이다.

아르바이트만 잠깐 하러 갔다가 엄청난 일을 해버렸다.

역시 사람은 죄를 짓고는 못 산다.

사파이어의 기적

사고로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단둘이 어렵게 살아가는 어린 미쿠.

다른 아이들이 자꾸 부러워지기 때문에 방과 후에는 주로 혼자 있는 일이 많다는 미쿠는 돈이 생겨 엄마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다는 소망으로 근처 신사를 찾는다.

그러다 만난 길냥이 한 마리.

미쿠는 그 길냥이에게 이나리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분홍색 벨트도 달아주며 혼자라는 외로움을 이나리와 함께 하며 달래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항상 신사에서 보았던 이나리가 보이지 않는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미쿠는 길 건너편에서 익숙한 분홍색 벨트를 발견하게 되는데...

 

한 어린 소녀와 길냥이의 이야기가 과학을 만났다.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한 극단의 간판 배우인 쿠로스.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유명 여류 각본가 모미키 야요이.

그들은 15살이라는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사귀고 있다.

쿠로스가 이만큼 인지도를 얻는 데는 야요이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그에게 큰 고민거리가 생겼다. 다른 여배우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야요이와는 헤어지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혹시나 그녀와의 헤어짐이 자신의 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러던 중 그의 일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야요이와 헤어지는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그리고 실행에 옮기는데...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사람이 죄를 짓고는 못 산다. 그리고 완전 범죄는 없다!

수정 염주

미국에서 배우로 성공하기를 꿈꾸며 철판구이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나오키. 열심히 오디션도 보고 노력도 하지만 생각만큼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어느 날 일본에 있는 누나 기미코로부터 곧 아버지의 생신이니 일본에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지만 영화배우가 되겠다고 했을 때 생긴 아버지와의 다툼으로 사이가 좋지 않은 나오키는 망설인다. 하지만 아버지는 말기암이고, 이번이 아버지의 마지막 생신이 될 것이라는 말에 놀란 나오키는 망설이게 된다. 다음 날이 바로 중요한 오디션이 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일본에 가기로 한 나오키는 공항에 도착하자 아버지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고 끝까지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아버지에게 화가 나 그 길로 바로 미국으로 돌아가 버린다.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친척들이 다 모인 곳에서 나오키는 친척 어르신들로부터 수정 염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수정 염주는 와라타이가의 당대 당주에게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인데 특별한 힘이 있어 부를 부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나오키의 아버지, 할아버지도 그 수정 염주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유서에도 수정 염주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아무래도 미신 같은 그 이야기를 나오키는 믿을 수가 없다. 일단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공항으로 갈 신칸센을 타기 위해 역으로 간 나오키는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총 9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단편집.

예상을 빗나가는 반전이 있는 이야기도 있었고, 추운 날씨에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이야기도 있었다.

장편보다는 이야기가 짧으니 매일 한 편씩 읽어야지 생각했는데 결국 하루 만에 다 읽어버렸다.

사건 전개가 빠르다 보니 답답한 느낌도 없고 잘 읽혔다. 단편의 장점이랄까.

그래도 나는 단편보다는 장편이 좋은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간이 나왔다고 한다. 제목도 마음에 들고 줄거리도 재밌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장편으로 느긋하게 즐겨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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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루티드
나오미 노빅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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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판타지 장르를 좋아한다. 소설도, 영화도 판타지 장르가 나오면 항상 관심을 가지고 본다.

현실성이 없어서, 공감할 수가 없어서, 애들이 보는 것 같아서라는 등의 이유로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도 있지만 나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

마법이라든지, 동물들이 말을 한다든지 하는 것들은 현실에서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나의 온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그 환상적인 세계를 상상해 본다.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신나는 일이다. 

판타지에도 충분히 공감할 내용들이 많다. 마법이라는 소재가 들어가 있을 뿐이지, 그 안에서도 권선징악이 있고, 우정이 있고, 사랑이 있고, 슬픔, 배신 등 우리가 살면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일들이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주인공이더라도 그 아이들의 순수함, 아이다움이 너무 귀엽다. 그 아이들이 커가면서 많은 일을 겪게 되며 깨닫는 것들이 우리가 살면서 얻는 교훈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판타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권할 필요는 없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좋아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업루티드 Uprooted

 

'테메레르'시리즈로 유명한 나오미 노빅의 새로운 판타지 소설 '업루티드'.

테메레르 시리즈를 아직 읽어보지 못한 나에게는 '업루티드'가 내가 읽은 나오미 노빅의 첫 소설이 되었다.

책을 읽기 전에 아마존에 들어가서 보니 평점도 꽤 높았고, 독자들의 평도 좋았다. 

나오미 노빅은 이 작품으로 2016년 네뷸러상까지 수상했는데, 작품성과 대중성 둘 다 인정받은 작품인 만큼 어떤 스토리가 될지, 어떤 그림들이 그려지게 될지 굉장히 궁금했다.

네뷸러상이란 미국 SF 판타지 작가 협회가 미국 내에서 출판 및 발표된 SF 작품을 대상으로 매년 수여하는 문학상이다. SFWA (Science Fiction and Fantasy Writers of America)소속의 작가, 편집자, 비평가 등 SF 전문가들이 선출하는 상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B%84%A4%EB%B7%B8%EB%9F%AC%EC%83%81)

 

<업루티드의 원서 표지>

(출처: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0558524&memberNo=4667860)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느 작은 시골 마을의 한 평범한 17살의 소녀, 아그니에슈카이다.

아버지, 어머니, 터울 많은 오빠 셋과 함께 살고 있고 카시아라는 친한 친구와 평범하지만 행복한 일상들을 보내고 있는 소녀였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까칠한 드래곤, 살칸

그는 백 년이 넘게 살아오고 있는 마법사이자, 불사의 존재이며 인간이기도 하다.

'우드'로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존재이며, 그 대가로 십 년마다 17살의 소녀 한 명을 그가 살고 있는 탑으로 데리고 간다. 드래곤이 사는 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다만 십 년이 지난 후 돌아오는 여자들의 말을 듣고 추측만 할 뿐이다.

'업루티드'가 판타지 소설이라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혹시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주실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잠깐!

수위가 높은 장면이 있으니 주의하시기를 부탁드린다.


 

'업루티드'는 주인공인 아그니에슈카의 시점으로 진행되며, 이야기의 배경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어느 시대이다.

'우드'라는 무서운 존재로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존재인 드래곤.

니에슈카의 말에 의하면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고마워는 하지만 제물, 즉 십 년마다 자신의 소중한 딸을 그에게 바칠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드래곤은 마법사이기도 하기 때문에 평범한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들과는 다른 존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미지의 세계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과 같은 것이 있지만 그렇다고 드래곤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드래곤이 데려가는 소녀는 특별한 소녀였다. 무조건 예뻐서도, 단순히 똑똑해서가 아니라 무언가 특이한 점이 있는 소녀였다.

이번 해가 바로 주인공이 17세가 되는 해였고, 그녀의 친구 카시아도 역시 17세가 되는 해였다. 그 둘 외에도 17세가 되는 아홉 명의 소녀들이 더 있었다. 총 열한 명의 소녀들 중에서 단 한 명만이 드래곤의 선택을 받는다. 그리고 그녀는 즉시 드래곤과 마을을 떠나 '우드'를 넘어 드래곤의 탑에서 십 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게 된다.

드래곤의 탑에서 십 년을 보낸 후 돌아오는 소녀, 아니 27살이 되었을 테니 여자들은 마을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마을을 떠났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들은 그녀들이 겪은 일의 일부를 말해주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다 믿지 않았다.

'우드'

마을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곳.

'우드'로 들어간 사람들은 다시 밖으로 나오는 일이 없다.

'우드'는 살아 움직이는 숲과 같은 곳이다. 우드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끊임없이 일을 벌이고, 기회를 엿본다.

 '우드'로부터 나오는 생명체에게 공격을 당하게 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죽음보다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이야기의 초반에는 편하게 읽어나갔다.

아그니에슈카가 들려주는 드래곤에 대한 이야기, 그녀가 살고 있는 마을 드베르닉을 비롯한 '우드' 근처의 마을 이야기, 마을 사람들, 그리고 '우드'에 대한 이야기 등을 읽으며 점점 이야기에 빠져들 준비를 해나갔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반쯤에 들어서기 시작하자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단순히 재밌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업루티드'는 굉장히 진지한 판타지 소설이다. 물론 재미까지 갖춘 진지함이다.

담고 있는 내용이 절대 가볍지 않았다. 마법이라는 소재가 들어가 현실성이 없다고 여겨질 수 있으나 그것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재료일 뿐이지 절대 이야기를 가볍게 만들지 않는다.

마법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처음에는 해리포터를 생각하기도 했고, 이야기 초반에 나오는 부분에서 트와일라잇 같은 분위기려나 하고 생각했는데 둘 다 아니었다. '업루티드'는 그냥 '업루티드'였다.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없이 느꼈을 법한 여러 감정들이 녹아 있다.

시기, 질투, 우정, 사랑, 연민, 그리움 등... 그리고 그러한 감정들로 인한 고통의 여러 모습들.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깨닫는 순간 느껴지는 부끄러움, 고통.

전쟁의 참상들...

673페이지의 긴 이야기임에도 어느 하나 그냥 지나칠만한 부분이 없었다.

'업루티드'에서 '악'의 존재임이 분명한 '우드'

책의 후반부에서 밝혀지는 '우드'의 진실을 알게 되니 니에슈카가 내렸던 결정도, 그녀가 하는 일들도 이해가 되면서 그녀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끔찍한 존재이지만 무조건 '악'이라고 단정 지을 수가 없었다.

안타까웠다.

이야기에 유머러스한 요소보다는 다소 진지하고 무거운 내용이 이어지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업루티드'를 읽고 나니 먼저 나오미 노빅을 유명하게 만든, 현재에도 출간되고 있는 '테메레르'가 궁금해졌다. 작가가 글을 촘촘하게 잘 쓰는 것 같다.

'업루티드'가 시리즈가 아니니 아쉬운 김에 '테메레르'도 읽어봐야겠다.

아무래도 마법사가 등장하는 이야기이니 곳곳에서 등장하는 마법 주문들도 흥미로웠다.

나도 오늘 '리린탈렘!'으로 저녁을 먹고 싶은 마음이...

 

리린탈렘!!! 맛있는 저녁으로!!!

 

 

 

* 이 서평은 노블마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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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 노희경 원작소설, 개정판
노희경.이성숙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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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참 묘하다.

살아서는 어머니가 그냥 어머니더니,

그 이상은 아니더니,

돌아가시고 나니 그녀가

내 인생의 전부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녀 없이 세상이 살아지니 참 묘하다.

-노희경

 

 

요즘 tvn에서 방영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드라마를 챙겨 보았다. 예전에도 방송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 tvn에서 4부작으로 각색되어 방송되었다. 오늘이 그 마지막 방송이었다.

 

마지막 회를 보기 전에 원작 소설을 읽고 싶어 오늘 오전에 읽기 시작했는데, 뒷부분으로 갈수록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소설 속의 엄마의 인생이 우리 엄마와 비슷한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팠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수발을 들며, 무뚝뚝한 남편과 딸, 아들을 챙기고 속만 썩이는 동생까지 신경 쓰느라 엄마는 하루라도 마음이 편한 날이 있었을까?

 

항상 자신보다는 가족들이 먼저인 엄마.

엄마는 항상 자신보다 가족들을 먼저 챙겼는데, 정작 엄마는 어느 누구한테 먼저인 적이 없었다.

 

엄마는 어린 나이에 결혼해 남편은 공부하러 떠나 버리고 모질게 구는 시어머니와 둘이서 살았다. 딸을 낳던 날도, 아들을 낳던 날도 남편은 함께 있어주지 않았다. 남편도 없는 집에 혼자서 시어머니의 갖은 구박을 받으며 살았던 엄마는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살아오며 시어머니와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버린 엄마는 그 모진 세월에도 불구하고 치매 걸린 시어머니가 안쓰럽다.

 

무뚝뚝한 남편이다. 말을 걸어도 바로 대답하지도 않고 여러 번 물어야 돌아오는 대답마저 퉁명스러운 단답형이다. 집안일에도 도통 관심이 없어 언제나 엄마 혼자서 해왔다. 그래도 엄마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남편이고 아이들의 아버지이다.


사랑하는 딸 연수와 아들 정수. 엄마는 똑 부러지는 딸 연수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아버지 때문에 의대에 가기 위해 삼수까지 하는 아들 정수가 안쓰럽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는 연수.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고, 자식들에게 정을 보여주지 않은 아버지를 연수는 이해할 수 없다.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자신은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아버지와는 다른 정이 많은 사람을 만나 사랑받으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싶다. 그래서 연수는 다정한 영석을 만나 힘든 사랑을 하게 된다.

 

연이어 실패하는 입시에서 주눅이 든 정수. 의사인 아버지와 좋은 대학을 졸업해 떳떳한 직장까지 다니는 누나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는 한없이 작아 보인다. 그 와중에 아버지와의 관계도 그다지 좋지 못하다.

 

각자 따로 존재하는 듯한 가족들을 하나로 모아주고 항상 집안의 분위기를 밝게 유지했던 엄마다. 가족들은 그런 엄마의 모습을 겉으로만 보아왔다. 겉모습이 밝으면 엄마는 기분이 좋은가 보다 생각하고 그냥 그런 줄로만 알았다. 엄마는 잘 아프지도 않는구나 생각했다.  

 

그런 엄마가 암이란다. 암세포가 여기저기 퍼져 손을 쓸 수가 없단다. 의사인 남편도 남편보다 실력이 낫다는 친구 정 박사도 방법이 없다고 한다.  

 

아버지는 아내 인희가 암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이제껏 고생만 한 아내였다. 좀 있으면 그녀의 소원대로 살 집도 다 지어져 간다. 자신을 대신해 세세하게 신경 써 온 집이다. 그 집에 들어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죽는단다. 직업이 의사인 자신이 아내가 그 지경이 되도록 몰랐다는 것을, 그만큼 무신경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가족들은 엄마가 아프고 나서야 진짜 엄마의 모습을 하나하나 알아가게 된다. 엄마가 자신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제 엄마를 제대로 알아가려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난 남편한테 사랑받으면서 살고 싶어!' (p.32)

"… 전요, 아줌마, 전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사람은 다, 한 번은 다 죽는데, 우리 엄마가 죽게 될 줄은 정말 몰랐고, 딸들은 다 도둑년이라는데 제가 이렇게 나쁜 년인지 전 몰랐어요. 지금 이 순간두 난 우리 엄마가 얼마나 아플까 보다는 엄마가 안 계시면 난 어쩌나, 그 생각밖에 안 들어요. 엄마가 없는데 어떻게 살까, 어떻게 살까, 그 생각밖에 안 들어요. 나, 어떡해요, 아줌마?" (p.177)

"아버지, 전 엄말 이렇게 보내드릴 수가 없어요. 너무 미안해서, 미안해서… 안 돼요. 이렇게는 안 돼요. 미안해서, 죄송해서 안 돼요. 나두 딱 한 번만이라도 자식 노릇하게 해주세요. 나두 딱 한 번만이라도 엄마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요. 아버지 제발…." (p.219)

"어머니, 어머니! 나랑 같이 죽자! 나 죽으면 어떻게 살래? 나랑 같이 죽자! 애들 고생 그만 시키고, 나랑 같이 죽자! 어머니이…." (p.287)

"이런 말 하는 거 아닌데… 어머니, 정신 드실 때 혀라도 깨물어, 나 따라와. 아범이랑 애들 고생시키지 말고, 나 따라와. 기다릴게." (p.291)

"너는… 나야. 엄마는… 연수야." (p.309)

저것들이, 내 새끼들이 울며 간다. 먼발치에서 보아도 엄마는 눈에 선하다. 봐야 안다지만 엄마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것들의 어미인 까닭에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p.310)

"인희야… 정말… 고마웠다…." (p.317)

 

 

그렇게 가족은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족에게 서로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다는 것 정도일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속의 엄마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드라마에서 엄마 역을 맡은 원미경 님도 소설 속 엄마의 이미지와 너무 잘 어울렸고 말투도 생각했던 대로여서 더욱 감정이입을 해서 본 것 같다.

 

다시 한번 이 말이 생각난다.

"있을 때 잘 하자."

 

엄마, 아빠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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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
김소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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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
          엄마, 헤어짐의 기록 그리고 나의 딸과의 나날

 


"내 인생에서 엄마가 없었던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또 한 권의 모녀 이야기를 다룬 책을 읽었다. 추운 겨울이 와서 그런 것인지 엄마의 따뜻하고 애정 어린 손길이 더욱 그리워진다.

책의 제목을 읽고 잠시 생각해 본다.

'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

정확히 언제부터라고 할 수 없지만 언젠가부터 엄마와 나의 일상을 공유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엄마가 모르는 친구들도 점점 늘어났다.

엄마와 대화하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책을 읽으려다 문득 걱정이 앞섰다.

책 속에는 나와 다른 효녀 심청과 같은 딸의 모습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동안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니 갑자기 부끄러워지며 한순간 반성하는 기분이 되었다.

 

딸의 입장에서 보아온 엄마의 모습은 어떨까?

나도 딸이지만 항상 상냥하고 친절하기만 한 딸은 아니다.

점점 내 주장이 강해지면서 엄마와 말다툼하는 일이 생겼다.

엄마와 나의 말다툼은 항상 평행선이었다. 서로의 자존심만 내세웠다.

생각해 보면 다툼의 원인은 거의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좋게 말하고 서로 다름을 이해하며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왜 그렇게 날을 세웠을까 싶기도 하다.

요즘도 엄마와 나는 여전히 다툼과 화해를 간간이 반복하고 있다.

이젠 엄마를 좀 더 이해해 드려야지 하는 다짐을 잠깐 해본다.

 

 

차례

 

 

 

 

 

저자의 기억과 어릴 때부터 써온 일기를 바탕으로 쓰인 엄마와 딸의 이야기.

아이 셋을 키워낸 엄마와 이제 갓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딸.

 

p.60

물론 이 순간의 소중함을 기억하는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이 훨씬 더 많다. 살다 보면 더 많은 소중함을 잊고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문득 잠깐이라도 일상의 소중함을 곱씹는 순간들이 나로 하여금 엄마를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들고,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줄 것 같다. 잃고 나서 뒤늦게 소중함을 깨닫고 후회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p. 128

언젠가 솔이가 많이 자라면 혼자 하는 여유로운 산책도 다시 별것 아닌 일상이 되겠지. 하지만 왠지 그때가 되어도 나는 여전히 솔이를 바라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바라보고 싶을 것 같다. ~, 언제나 솔이가 궁금하고 보고 싶고 함께하고 싶을 것만 같다. 그때가 되면 솔이가 나와 함께해주지 않는 게 아쉽고 슬퍼질 것 같다.

외출하고 돌아오거나 나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 엄마가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귀찮을 때가 많았다. 엄마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내 모습이 얼마나 궁금했을까. 엄마는 언제나 우리를 보고 있었고 보고 싶어 했다. 정말이지 나는 솔이를 낳고 나서야 그 옛날 엄마 마음을 짐작해보며 혼자 뒷북치는 일이 너무나도 많다.

 

저자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서 '엄마'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를 낳아 진짜 엄마가 되면 그때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어른들이 항상 그러셨는데 그 말이 진짜였나 보다. 아이를 키우는 매 순간 엄마가 생각난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제 겨우 엄마가 된다는 것을, 엄마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게 되었는데 정작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은 오래 주어지지 않았다.

 

집안의 해결사이자 맥가이버 같았던 엄마였다.

언제나 강한 모습으로 곁에서 자식들을 지켜주실 것만 같았던 엄마였다.

그런 엄마의 약한 모습을 보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암으로 투병하시다 결국 오랜 시간 버티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신 엄마.

이제는 꿈에서 밖에 만날 수 없는 엄마를 저자가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느껴졌다.

저자가 담담하게 담아낸 글 한 줄에도 그 마음이 느껴져 읽으며 나도 같이 울어버렸다.

 

나도 나중에 엄마가 되면 엄마의 진짜 마음을 알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의 모습은 내 시선으로만 보는 엄마의 모습이고 내 기준으로만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이 아닐까?

 

먼저 엄마가 된 저자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 엄마의 진짜 마음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외출할 때마다 귀찮다 생각했던 엄마의 그 수많은 질문들이 이제는 마냥 귀찮은 질문으로 여겨지지 않게 되었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엄마는 내가 궁금하셨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엄마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저자의 엄마의 죽음을 통해 가족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에게 가족이 있어, 딸 솔이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든 순간에 혼자 남겨졌다면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싶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엄마가 모르는 저자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솔이가 읽은 '여우 나무'의 이야기처럼 서로 대화할 수는 없지만 다 지켜보고 계실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는 가족들을 멀리서 응원하고 계실 것이다.

 

나도 글을 읽으며 가족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나에게도 서로 아껴주는 가족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흔한 말이지만 잊지 말고 새겨둬야 할 말인 것 같다.

'있을 때 잘하기!'

 

 

속의 글들이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어 금방 읽어 버렸다.
깔깔 웃느라, 엉엉 우느라 잠시 멈추기도 했지만 책장을 덮고 나니 엄마를 그리워하는 그녀가 안타까워지기도 하고, 엄마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랬다.
​소소한 일상 속이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 어느 곳에도 엄마는 존재했다.
그녀의 어린 시절 일기를 읽으며 나의 어린 시절은 어땠었나 생각도 해보았다. 
 


딸이 모르는 엄마의 모습을 담은 앨범을 그림으로 그려 놓았다.
알록달록 예쁘게 채색된 그림인데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아서 그런지 그림을 보는 내내 자꾸 눈물이 흘렀다.
나도 미래 언젠가 엄마의 사진들을 보며 엄마를 그리워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엄마가 없는 시간들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지 아직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거실에서 엄마와 나란히 앉아 TV를 본다. 엄마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듣는다. "엄마가 어렸을 때는 말이지, ..."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만의 생각으로 빠져든다.
'엄마도 아이였을 때가 있었지, 엄마도 분명 사춘기였을 때가 있었지, 엄마도 젊은 청춘일 때가 있었을 텐데...'
결혼해서 엄마가 되어버린 후에는 자신은 없어지고 가족만을 생각하는 엄마가 되어 버렸다.

자식들이 어느 정도 크면 다른 엄마들은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분들도 계신다.
하지만 우리 엄마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시간이다. 편찮으신 할머니를 모시고 계셔 한시도 자리를 비우실 수 없는 우리 엄마는 언제쯤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으실까?
나는 우리 엄마의 삶이 세상에서 제일 애달프다.

늦은 듯하지만 이제라도 엄마만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챙겨드려야겠다.

​p.43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철없는 딸로서 존재하는 엄마가 보고 싶다. 내가 알고 있는 엄마보다 더 자유롭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그런 엄마를 멀리서 한 번쯤 지켜보고 싶다. 그리고 어린 엄마가 그리는 꿈과 미래를 온 마음으로 응원해주고 싶다. 엄마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 이 서평은 위즈덤하우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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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잊지 말아요 -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와 함께한 딸의 기록
하윤재 지음 / 판미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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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는 한 분이지만 그 존재감은 단순히 한 사람 이상이다.

나는 이제껏 엄마가 계시지 않는 삶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니, 의도적으로라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눈이 계속 침침하다 하시던 엄마를 모시고 안과에 간 적이 있다.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데 안과 입구에서 보건소에서 나오신 분들이 '치매 바로 알기'에 대한 홍보를 하고 계셨다. 평소 자주 깜박하시는 엄마는 항상 본인이 치매인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하셨기에 자가 테스트를 해보기로 하셨다. 다행히 치매 소견은 없었다.

그때 자가 테스트지를 읽으시며 체크를 하고 계시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 나는 잊지 말아요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와 함께한 딸의 기록

 

 

'엄마의 기억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 상실의 1기,

장소 상실의 2기,

인물 상실의 3기, 즉 말기.

 

1기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엄마의 기억은 어느새 말기에 다다랐다.

 

자신의 삶을 하나둘

잊어 가는 모습을 보며

엄마를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목차

 

엄마는 요즘도 가끔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전혀 기억을 못 하시거나, 불 끄는 것을 잊어버리시거나 머리가 아프시거나 또는 티비에서 치매 관련 방송이 나오거나 할 때면 본인이 아무래도 치매에 걸릴 것 같다고 거의 확신하시다시피 말씀하시곤 한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되면 집에서 돌볼 생각하지 말고 요양원으로 보내라는 말씀도 매번 잊지 않으시고 하신다. 편찮으신 외할머니를 18년 동안 직접 모시고 돌보신 엄마는 자식들이 본인 때문에 그런 힘든 과정을 겪기를 원치 않으신다고 하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쓸데없는 소리 하신다고. 엄마가 왜 치매에 걸리시냐고. 그런 말씀 마시라고 하며 그냥 넘겨 버린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 사실,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 이제는 두렵다. 엄마가 혹시라도 치매에 걸리실까 봐. 그리고 내가 그 병을 감당할 수 없을까 봐. 종합병원이라고 할 만큼 여러 곳이 안 좋으신 엄마 때문에 수년 전부터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한시도 걱정하지 않은 날이 없다. 마음이 너무 무겁다.

나는 엄마가 편찮으시다고 요양원에 보낸다는 생각을 감히 할 수가 없다. 엄마가 그러지 않았고, 나는 그것을 계속 봐왔고, 나는 그런 엄마가 안쓰러워서라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러던 중 '엄마, 나는 잊지 말아요'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엄마, 나는 잊지 말아요'는 저자가 치매 어머니를 모시며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를 위해, 그리고 그런 엄마를 모시며 엄마와 함께 하는 과정을 기록해 나가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이다.

저자의 어머니는 2007년 처음 치매 진단을 받게 되신 후 2017년 현재 10여 년이 흘렀다.

10년... 그것도 치매이신 어머니... 치매의 무서움을 말로만 들은 나는 그 현실이, 진짜 생활이 어떨지 너무 궁금했다. 책 소개를 읽으며 언젠가 내가 겪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 생각하니 글자 하나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미리 정신적 예방주사를 맞고 마음의 준비라도 하고 싶었다.

저자의 외할머니, 친할머니 두 분 모두 치매이셨다고 한다. 누구보다 치매가 어떤 병인지 잘 알았을 텐데 자신의 어머니까지 치매에 걸리셨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할 수도 없다.

하지만 저자는 무조건 무너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마음을 다잡고 어머니를 살펴 드려야 했다.

치매가 한 단계씩 더 진행되고 있는 동안 어머니의 모습을, 그 변화를 매일매일 지켜보며 힘들었음에도 기억을 잊어가는 어머니 대신 어머니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록들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그녀의 기록들이 어머니와 그녀가 함께하는 과정이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놓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p.45

치매 환자에게는 보호자의 직업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으로, 소위 잘나가는 직업을 가지고 경제적 혜택을 드리는 것보다 영세한 자영업을 하더라도 일상을 공유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치매 환자를 집에서 보살피는 가족들에게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일까 하니 '가족의 눈을 피해 자꾸만 밖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언제 나갔는지,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고, 간혹 교통수단을 이용해 멀리 가버리면 전국으로 찾아 헤매야 하기 때문이다. 수시로 연락받고 찾으러 다녀야 하니 정상적인 직장 생활을 하기 힘들다고 한다.

 

p.85

엄마의 치매는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보다 엄마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내 오만에 대해 하나하나 일깨워 주고 있다. 더불어 있는 그대로의 엄마에게로 나를 데려다준다. 그토록 두려워하고 증오했던 엄마의 치매라는 병이.

​그동안 엄마만 알고 있는, 숨겨온 것들이 가감 없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한다.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어떤 기분이신지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내실 것이다.

그때가 되어야 엄마의 진심을 알 수 있을까.

내가 엄마에 대해 알고 있다고 확신했던 것들이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것은 아닐까.

 

p.122

다만 옆에 있는 그 누군가를 지그시 들여다보는 습관이 몸에 배면, 가까운 사람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고, 불치병 같은 외로움 역시 점점 옅어지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p. 131

하지만 그 책에는 부모가 무너진 모습을 본 자식이 얼마나 충격을 받는지, 가슴은 또 얼마나 아픈지 쓰여 있지 않았다. 참담한 상황이 지속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자식이 어떤 위로를 받아야 되는지도 쓰여 있지 않았다.

​치매 관련 책들이 아무래도 치매 환자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그런가 보다.

환자를 보살피는 가족의 마음은, 슬픔은 어떻게 위로받아야 할까...

가족들도 분명 위로가 필요하다.

​아무리 사랑과 정성을 다해 보살펴 드려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이 있다.

헤어지는 날이 분명 올 것이다.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당황한 나머지, 슬픔에 빠져 어떤 인사도 없이 헤어지는 것은 싫다.

그때 엄마에게 길지 않으면서 내 마음을 잘 표현할 말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뭐라고 해야 할까... 아직 정하지 못했다.

 

저자는 그날이 마지막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녀가 고민하여 찾은 마지막 인사말.

엄마에게 전할 마지막 인사말.

 

"엄마, 다음 세상에서 우리 또 만나!" 

 

저자는 자신처럼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가정에서 가족들이 최대한 책임을 지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려움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 너무 힘겨워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부모님을 위한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일들이 결국 자신을 위하는 것이며, 곧 자신에게 작은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저자의 말이 나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조금은 누그러뜨린다. 힘이 된다.

 

 

이번 주말엔 항상 고생만 하시는 엄마를 모시고 가까운 곳이라도 바람 쐬러 다녀와야겠다.

 

 

 

 

 

* 이 서평은 판미동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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