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잊지 말아요 -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와 함께한 딸의 기록
하윤재 지음 / 판미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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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는 한 분이지만 그 존재감은 단순히 한 사람 이상이다.

나는 이제껏 엄마가 계시지 않는 삶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니, 의도적으로라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눈이 계속 침침하다 하시던 엄마를 모시고 안과에 간 적이 있다.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데 안과 입구에서 보건소에서 나오신 분들이 '치매 바로 알기'에 대한 홍보를 하고 계셨다. 평소 자주 깜박하시는 엄마는 항상 본인이 치매인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하셨기에 자가 테스트를 해보기로 하셨다. 다행히 치매 소견은 없었다.

그때 자가 테스트지를 읽으시며 체크를 하고 계시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 나는 잊지 말아요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와 함께한 딸의 기록

 

 

'엄마의 기억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 상실의 1기,

장소 상실의 2기,

인물 상실의 3기, 즉 말기.

 

1기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엄마의 기억은 어느새 말기에 다다랐다.

 

자신의 삶을 하나둘

잊어 가는 모습을 보며

엄마를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목차

 

엄마는 요즘도 가끔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전혀 기억을 못 하시거나, 불 끄는 것을 잊어버리시거나 머리가 아프시거나 또는 티비에서 치매 관련 방송이 나오거나 할 때면 본인이 아무래도 치매에 걸릴 것 같다고 거의 확신하시다시피 말씀하시곤 한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되면 집에서 돌볼 생각하지 말고 요양원으로 보내라는 말씀도 매번 잊지 않으시고 하신다. 편찮으신 외할머니를 18년 동안 직접 모시고 돌보신 엄마는 자식들이 본인 때문에 그런 힘든 과정을 겪기를 원치 않으신다고 하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쓸데없는 소리 하신다고. 엄마가 왜 치매에 걸리시냐고. 그런 말씀 마시라고 하며 그냥 넘겨 버린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 사실,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 이제는 두렵다. 엄마가 혹시라도 치매에 걸리실까 봐. 그리고 내가 그 병을 감당할 수 없을까 봐. 종합병원이라고 할 만큼 여러 곳이 안 좋으신 엄마 때문에 수년 전부터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한시도 걱정하지 않은 날이 없다. 마음이 너무 무겁다.

나는 엄마가 편찮으시다고 요양원에 보낸다는 생각을 감히 할 수가 없다. 엄마가 그러지 않았고, 나는 그것을 계속 봐왔고, 나는 그런 엄마가 안쓰러워서라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러던 중 '엄마, 나는 잊지 말아요'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엄마, 나는 잊지 말아요'는 저자가 치매 어머니를 모시며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를 위해, 그리고 그런 엄마를 모시며 엄마와 함께 하는 과정을 기록해 나가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이다.

저자의 어머니는 2007년 처음 치매 진단을 받게 되신 후 2017년 현재 10여 년이 흘렀다.

10년... 그것도 치매이신 어머니... 치매의 무서움을 말로만 들은 나는 그 현실이, 진짜 생활이 어떨지 너무 궁금했다. 책 소개를 읽으며 언젠가 내가 겪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 생각하니 글자 하나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미리 정신적 예방주사를 맞고 마음의 준비라도 하고 싶었다.

저자의 외할머니, 친할머니 두 분 모두 치매이셨다고 한다. 누구보다 치매가 어떤 병인지 잘 알았을 텐데 자신의 어머니까지 치매에 걸리셨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할 수도 없다.

하지만 저자는 무조건 무너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마음을 다잡고 어머니를 살펴 드려야 했다.

치매가 한 단계씩 더 진행되고 있는 동안 어머니의 모습을, 그 변화를 매일매일 지켜보며 힘들었음에도 기억을 잊어가는 어머니 대신 어머니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록들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그녀의 기록들이 어머니와 그녀가 함께하는 과정이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놓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p.45

치매 환자에게는 보호자의 직업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으로, 소위 잘나가는 직업을 가지고 경제적 혜택을 드리는 것보다 영세한 자영업을 하더라도 일상을 공유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치매 환자를 집에서 보살피는 가족들에게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일까 하니 '가족의 눈을 피해 자꾸만 밖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언제 나갔는지,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고, 간혹 교통수단을 이용해 멀리 가버리면 전국으로 찾아 헤매야 하기 때문이다. 수시로 연락받고 찾으러 다녀야 하니 정상적인 직장 생활을 하기 힘들다고 한다.

 

p.85

엄마의 치매는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보다 엄마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내 오만에 대해 하나하나 일깨워 주고 있다. 더불어 있는 그대로의 엄마에게로 나를 데려다준다. 그토록 두려워하고 증오했던 엄마의 치매라는 병이.

​그동안 엄마만 알고 있는, 숨겨온 것들이 가감 없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한다.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어떤 기분이신지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내실 것이다.

그때가 되어야 엄마의 진심을 알 수 있을까.

내가 엄마에 대해 알고 있다고 확신했던 것들이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것은 아닐까.

 

p.122

다만 옆에 있는 그 누군가를 지그시 들여다보는 습관이 몸에 배면, 가까운 사람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고, 불치병 같은 외로움 역시 점점 옅어지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p. 131

하지만 그 책에는 부모가 무너진 모습을 본 자식이 얼마나 충격을 받는지, 가슴은 또 얼마나 아픈지 쓰여 있지 않았다. 참담한 상황이 지속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자식이 어떤 위로를 받아야 되는지도 쓰여 있지 않았다.

​치매 관련 책들이 아무래도 치매 환자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그런가 보다.

환자를 보살피는 가족의 마음은, 슬픔은 어떻게 위로받아야 할까...

가족들도 분명 위로가 필요하다.

​아무리 사랑과 정성을 다해 보살펴 드려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이 있다.

헤어지는 날이 분명 올 것이다.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당황한 나머지, 슬픔에 빠져 어떤 인사도 없이 헤어지는 것은 싫다.

그때 엄마에게 길지 않으면서 내 마음을 잘 표현할 말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뭐라고 해야 할까... 아직 정하지 못했다.

 

저자는 그날이 마지막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녀가 고민하여 찾은 마지막 인사말.

엄마에게 전할 마지막 인사말.

 

"엄마, 다음 세상에서 우리 또 만나!" 

 

저자는 자신처럼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가정에서 가족들이 최대한 책임을 지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려움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 너무 힘겨워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부모님을 위한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일들이 결국 자신을 위하는 것이며, 곧 자신에게 작은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저자의 말이 나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조금은 누그러뜨린다. 힘이 된다.

 

 

이번 주말엔 항상 고생만 하시는 엄마를 모시고 가까운 곳이라도 바람 쐬러 다녀와야겠다.

 

 

 

 

 

* 이 서평은 판미동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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