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북 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정치적 의존성에도 불구하고 유다는매우 뚜렷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 P238

(광의의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역사의 전체적인 진행을 고려할 때 다윗과 솔로몬에 의해서 조성된 정치 - 종교적 복합체의 기본 요소들은 예루살렘, 즉 유다에 지속적으로 남아 있었다.
그것들은 다윗 왕정과 예루살렘 성전이다. - P238

이 두 가지 요소들은 예루살렘과 유다에 하나의 지속성을 보장했다. - P238

엘리야의 등장은 북 왕국 역사에서 특별한 위기의 시점에 이루어진다. 바알 숭배를 국가적으로 장려한 것은 이미 오므리 치하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합은 수도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건축하여(16:32) 바울 숭배에 중요한 지속적 동인을 제공했다. - P246

이런 발전에 대항하는 엘리야의 간섭은 엘리야를 사무엘에서 시작하여 나단과 갓을 지나 아히야에 이르는 이전 예언자들의 반열에 오르게 한다. 그들은 왕들의 정치와 종교적 정책들을 비판하였고, 아울러 정치적 발전의 방향에 영향을 주었고 그것을 변화시켰다. - P246

하나님은 자신의 진노를 "돌이키지 않으셨다." "그가 돌이키지 않으셨다"는 말은 앞선 구절에서 요시야는 "돌이킨" 왕이었다는 진술과 하나의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 P268

요시야의 돌이킴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 P268

사백 년 이상 이스라엘과 유다에 지속되었던 정치 구조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P269

더 이상 왕이나 국가의 주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적이며 정신적인 중심이었던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되었다. - P269

주민들 가운데 중심 부류의 사람들이 포로민이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 P269

이처럼 많은 점에서 하나의 공백이 당시 상황을 지배했고, 미래가 무엇을 가져다줄지는 예측할 수 없었다. - P269

이것을 통해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유다에서 이 수 세기 동안 살았던 삶의 내용들이 만들어 낸 모든 것이 파괴될 수는 없었다. - P269

그것의 결말에서 이런 질문이 제기되어야만 했던 이 책들은 정말이지 기록되었거나 편집되지 않았다. - P269

오히려 그 책들은 이전에 그토록 상세하고 그토록 참여적으로 기술되었던 모든 것의 종말과 실패를 회고적으로 고찰하고 애도하기 위하여 계속 전승되었다. - P269

"전기 예언서들"을 되돌아본다면, 그것들 안에서 실제로 실패에 관해서만 말하고 있지 않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 P271

그 책들은 전체로서의 이스라엘의 삶과 이로써 포로 이후의 삶을 위한 큰 의미가 있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의미가 있었던 몇 가지 기본적인 전통을 갖고 있다. - P271

오경에서 이미 이스라엘이 보유하고 있던 두 가지 근본적인 선물에 관해 말한다. - P271

즉, 그것은 모세를 통해 주어진 토라와 조상들에게 약속되고 이미 보증금처럼 주어진(창23장) 땅이었다. - P271

땅에 대한 약속은 "전기 예언서"의 시작에서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현실화된다. - P271

왕정기의 역사 서술에서 예언자들이 보여 주는 중요한 역할은 이스라엘이 실패한 것이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분명한 답변을 포함하고 있다. - P275

왕정은 자신의 임무에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했다. 그 임무는 왕정이 이스라엘의 "기본법"으로서 야훼 신앙을 요구한 것과 같이 그렇게 백성을 인도하는 것이었다. - P275

따라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정치적인 운명은 "이스라엘"이라는 정치적 실체의 실패로서 해석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해석되어야만 했다. - P275

그러나 동시에 이런 역사의 서술을 통해 매우 분명하게 의식된 사실은 거기에는 토라의 요구들과 일치하며 이스라엘을 "선택된 민족",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 되게 하는 다른 길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 P275

이것은 하나님이 이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강력한 확증임과 동시에 그분이 이 일을 행하실 이유에 대한 근거가 된다. - P311

왕이 다시 다윗의 왕위에 앉을 것이라는 사실, 그의 통치와 함께 평화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 무엇보다 다시 한번 공평과 정의가 지배할 것이라는 사실, 이 모든 것이 단지 이스라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일어날 것이다. - P311

그래서 그분은 이 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열정을 가지고 지켜보실 것이다. - P311

예상되는 미래의 통치자는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통치자보다 더 나을 것이며 그런 통치자와는 다를 것이라는 사실이 여기에서 완전히 분명해진다. - P312

그는 다양한 삶의 영역에 있는 백성을 이끌고 통치하기 위해 필요한 많은 자질을 갖추게 될 것이다. - P312

그리고 그의 판결은 - "보고 들을 바대로 판단하지 않고" - 확고하며 (3절), 특별히 사회적일 것이다. - P312

그는 공동체에서 매우 낮은 위치에 있는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위해 정의를 베풀고,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인 권력의 수단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자들로부터 그들을 방어한다(4절).

처음 장(1:8)부터 마지막 장(66:8)까지 시온이라는 이름은 이사야서 거의 모든 곳에서 나타난다. 여기에서 시온이라는 이름은 이사야 선포에 나타난 다른 중요한 낱말에 대한 연결을 통해 매우 특별한 강조점을 얻는다. - P315

즉, 그것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라는 표현이다.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써 예루살렘에 현존하실 것이라는 사실은 이사야서 메시지의 이 첫 번째 거대한 장을 끝마치는 희망 가득한 종결어다. - P315

다시 한번 이스라엘의 운명은 더 큰 역사적인 맥락 속에 놓인다. 하나님은 자신이 다윗에게 보이셨던 "신실한 은혜"를 기억하신다. - P340

이제 그분은 동일한 방식으로 이스라엘과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맺고자 하신다(55:3). - P340

예레미야는 자기 메시지로 인해 고통당하는 예언자다. 그는 자신의 백성이 임박한 재앙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 P371

그 재앙은 그의 마음을 찢어지게 한다(4:19). 그러한 예레미야에게 자신의 백성을 위한 중재가 허락되지 않는다. 이것은 예레미야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 중의 하나이다. - P371

이처럼 예언자를 상징으로 묘사하는 본문들은 그의 선포의 모든 폭과깊이를 포함한다. 즉, 그것은 모든 열방을 포괄하는 세계사로부터 예언자의 가장 개인적인 삶의 영역까지 이르고, 피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임박한종말에 대한 냉혹한 예고에서부터 살 보람이 있는 미래의 희망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까지 아우른다.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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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호기심, 도전정신 같은 자발적 동기만으로 끝까지 몰두해 해답을 얻거나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건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 보이는 가장 강력한 특징입니다. - P9

호기심이나 꿈, 재미, 보람 등 다양한 내적 동기. 그리고 명예, 인정, 직위, 인센티브 등 외부에서 부여된 외적 동기. - P9

이런 동기들에 지속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끝까지 천착하는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 P9

사회적 성취를 이루는 데 있어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가 잘 균형 잡힌 사람들이 세상을 의미 있게 변화시킨다고 합니다. - P9

처음 해보는 일은 계획할 수 없습니다. 혁신은 계획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 P25

혁신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 P25

중요한 건 계획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 P25

우리는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 P25

계획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않고, 끊임없이 바뀌는 상황에 맞춰 계획을 수정하면서 실행해나가는과정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습니다. 특히 처음 해보는 일에서는 계획보다 실행력이 더 중요합니다. - P25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는 한 발자국 떨어져 문제를 볼 필요가 있고, 실패하더라도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무조건 성공해야 하고 가장 높은 탑을 쌓아야만 한다면 시야가 좁아져서 ‘과제 집착형‘으로 다가가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여지없는 실패를 만들어낸다는 의미겠지요. - P31

새로고침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새로고침을 하려면 여러분의 습관을 바꿔야 합니다. 습관을 바꾸는 데는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지요. 새로운 습관을 얻기 위해 탐색해야 하고, 그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반복적 수행을 해야 합니다. 쉬운 일이 아니죠. - P142

그래서 여러분의 새해 결심은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고, 여러분의 삶은 어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고, 작년 이맘때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겁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행동하는 걸까요?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 삶을 예측 가능하게 해주고, 안전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 P142

여러분은 과거의 경험과 학습 내용을 가지고 그때그때 삶을 꾸러나가야겠지만, 그중 10~20퍼센트 정도는 새로운 탐색을 하는 삶을 살아보시길 권합니다. 그래야만 예전에는 못했던 일을 시도해볼 수 있고, 새로운 삶이 주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 P154

과거의 방식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면 빠르고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예측 가능한 수준의 결과는 얻겠지만, 새로운 시도가 주는 큰 즐거움과 뜻밖의 수확은 얻을수 없습니다. - P154

삶에서 80~90퍼센트 정도는 기존 방법을 적용하더라도, 10~20퍼센트 정도는 방법 탐색의 전략으로 살아보시길 바랍니다. - P154

인생의 목표가 성공이 아니라 성숙이라면,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습관은 안락하고, 포근하고, 안전하게 우리의 삶을 여기까지 끌고 왔지만, 새로고침이 주는 뜻밖의 재미, 유쾌한 즐거움은 여러분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줄 겁니다. - P154

이제 우리나라도 정답을 찾는 교육이 아니라, 좋은 문제를 정의하는 교육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 P242

정해진 답을 남들보다 먼저 찾는 교육이아니라 나만의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해답을 제시하는 능력이 더 존중받아야 합니다. - P242

높은 수준의 수학적 추론을 가르치고, 틀에 박힌 언어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 언어교육이 곧 사고와 철학 교육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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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이라는 인물은 그 이전이나 그 이후에 오는 다른 어떤 사람과도 쉽사리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출생과 어린 시절 이야기가 이미 이례적으로 상세하게 묘사되는 가운데 그의 시작의 특별함을 보여 준다. - P189

우선 사울과 다윗 사이에서 매우 파란 많은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것에 관해 보도하는 사무엘상 17장에서부터 사무엘하 1장에 이르는 기록들은 분명 여러 가지 종류의 전승 자료들이 결합된 것이며, 그것들은 다만 이따금씩 설명적인 암시들을 통해서 해석될 뿐이다. - P197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종교의 중심지가 된다. 나중에는 심지어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제의적 예배를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된다. - P204

현재는 이 모든 것이 아직 먼 미래의 일로 남아 있지만, 예루살렘으로 법궤를 가져온 것은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기초를 놓는 첫 번째 조치였다. - P204

법궤가 지성소 안에 안치된 후 시내산에서 일어난 바 있는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 - P217

즉, "구름"과 그 안에 있는 "야웨의 영광"이 성전을 가득 채운다. - P217

그래서 일찍이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제사장들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왕상 8:10 이하; 참조. 출 40:34 이하). - P217

이로써 하나님은 공식적으로 성전 안에 자신의 거처를 가지게 되신다. - P217

따라서 법궤뿐 아니라 전체로서의 성전이 시내산에서 이루어졌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만남과의 연속성 속에 놓이게 된다. - P217

그러나 그런 다음 다시금 상세한 재앙 예고를 포함하고 있는 "만일"이 뒤이어 나온다(6-9절). - P222

이때 솔로몬을 향하던 호칭 "너"가 전체로서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너희"로 바뀐다. - P222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난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셨던 땅에서 추방되고 성전도 파괴될 것이다. 이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 P222

이로써 솔로몬 통치의 두 번째 시기가 안내되거나 준비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재앙 예고는 솔로몬의 시대를 훨씬 넘어서고 있으며, 벌써부터 성전 파괴와 포로에 대한 경험들이 감지될 수 있게 한다. - P222

다윗은 기준점을 제공하는 이상적인 인물로 지칭된다. 후대의 모든 왕은 이런 다윗을 기준으로 평가된다. - P224

동시에 솔로몬은 이런 이상적인 인물상에 완전히 부합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첫 번째 인물로 등장한다. - P224

이런 중대한 국면에서 이제 한 예언자가 출현한다. 다윗의 후계자로 솔로몬이 지명될 때 예언자 나단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 P225

그러나 그 이후로 솔로몬의 이야기에는 어떤 예언자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 실로의 예언자 아히야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왕의 대항 세력으로서 나타난다. - P225

이것은 바로 하나의 극적인 전환점을 제공한다. "궁정 예언자"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 P225

지금으로부터 예언자들은 왕정에 반대하거나 개별 왕들을 반대하는 입장에 서서 행동한다. 아히야는 이런 예언자들의 긴 대열 중 첫 번째 사람이다. - P225

결국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시기에 대한 총괄적인 회고는 그것의 시작과 끝이 예언자들의 말들을 통해 결정적으로 각인된다는 사실을 또한 보여 준다. - P229

말하자면, 그 예언자들의 말들은 이 시기에 대한 하나의 틀을 형성한다. - P229

다윗은 사무엘에 의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삼상 16:1-13). 그리고 그가 기름 부음 받은 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거절당한 사울에 대한 대안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통해 특별한 중요성을 획득한다. - P229

훗날 나단은 다윗에게 그의 왕조의 존속을 약속한다(삼하 7장). - P229

이스라엘 왕정의 첫 번째 시기에 대한 종결의 가능성은 우선 솔로몬에게 주어진 꿈의 환상 속에서 포착된다(왕상 9:1-9). - P229

그러나 그런 다음 실로의 아히야를 통해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다윗 왕조의 통치가 결정적으로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는 한 예언자가 등장한다(왓앙 11:29-39). - P229

이처럼 이 시기에 대한 시작과 하나님의 확증과 종결은 세 명의 예언자들에 의해서 각인된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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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하나님에 의해 특별한 방식으로 선택된 백성, 즉 ‘제사장과 같은" 백성이요 "거룩한"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만났다. - P115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매우 장엄하게 그 백성과 한 언약을 체결했다. - P115

그리고 결국 그 백성 자신은 자신들의 대표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았다." 이보다 더 높고 강력한 하나님과의 만남은 더 이상 상상하기 어렵다. - P115

성막의 설립은 한 장소의 조성(造成)을 의미한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 가운데 "거주하신다." - P116

그렇게 함으로써 일회적이고 다시는 되풀이될 수 없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과의 만남이 그의 대표자들을 통해서(24:9-11) 이루어진 후에도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현존하시기를 원하신다(25:8).

하나님은 이 언약을 목이 곧고 죄가 있는 백성에게 허락하신다. - P122

이것에 대한 토대는 순전히 하나님의 용서다. 여기에서 또 다시 노아 언약과의 평행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 P122

즉, "인간의 마음이 꾸며 내고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악하다(창 8:21). 이와 같이 이스라엘도 "목이 곧은" 백성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은혜로 이런 장애물을 극복하시고 새롭게 자신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다. - P122

그리고 첫 번째 언약의 보존이 사람의 행동에 존속되지 않는 것처럼, 시내산의 언약 역시 그렇다. - P122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죄성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복원시키셨기 때문이다. - P122

출애굽기 6:7 이하에 의하면 출애굽은 조상들에게 약속한 땅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기 위해서 일어났지만, 29:46에 의하면 "내가 그들 가운데 거주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 P126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자신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거주하심에 방향이 맞춰져 있다. - P126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의 거주하심은 동시에 그분의 "거룩함"의 지속적인 현존을 의미한다. - P127

그분의 "거처"는 그분이 직접 거룩하게 하시는(출 29:43 이하) "성막"이다. - P127

이제 이스라엘은 이 거룩함을 유지하고 또한 계속해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이 거룩함을 유지하고 또한 계속해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거룩함의 손상 이후 그 거룩함을 항상 다시 회복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P127

이런 거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직접 이스라엘에게 보조 수단으로서 규정들을 주신다.

민수기가 보도하는 시기는 뒤따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역사를 위한 본보기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 P138

이 시기에는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계명들과 이 계명들을 지키기에 역부족인, 계속해서 밝혀지는 이스라엘의 무능 사이의 긴장이 지배한다. - P138

광야 세대가 하나님의 위대한 현현과 시내산에서의 율법 수요에 참여하는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그들은 이 계명들을 따라 사는 삶을 포기했다. - P138

그들의 운명에서 두 가지 사실이 표본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첫째, 사십 년의 고난의 시기에서 표현된 하나님의 징벌이다.
둘째, 그것을 통해 결국 자신의 언약에 신실하시며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다.
이 두가지는 이스라엘 백성 역사의 이어지는 시기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된다. - P138

앞에 있는 오경의 다른 책들과는 달리 이 책, 곧 신명기는 서사적인 요소를 거의 포함하고 있지 않다. - P139

이와는 달리 연설뿐만 아니라 율법들도 이 낱말의 좁은 의미에서 "신학적인 것"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증거제시와 설명들, 그리고 논쟁적인 숙고들을 포함하고 있다. - P139

이런 점에서 신명기는 아마도 히브리어 성경 가운데 가장 신학적인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P139

게다가 이 책은 중심적인 위치를 통해 오경에 대한 전체 이해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와 더불어 히브리어 성경에 대한 전체 이해를 위해서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 P139

이스라엘은 토라를 통해서 규정된다. 이스라엘은 토라를 가진 백성이다. - P141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모든 다른 민족들과 구별되며(신 4:6), 동시에 이스라엘은 토라의 증여를 통해 동시에 자신의 하나님이 가까이하는 백성이다. - P141

이것은 그 어떤 "큰 민족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운 하나님의 모습이다(7절). - P141

이스라엘이 이를 통해서 바로 강대국들의 변화무쌍한 패권이 그 특징으로 나타나는 주변 세계 안에서 "큰 백성"이 되지는 않는다. - P141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작은 백성 이스라엘에게 관심을 기울이시고, 그분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조상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다(37절). - P144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심도(37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는 요구처럼(40절), 이스라엘 조상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고 있다. - P144

이처럼 신명기 4:1-40의 단락은 신명기 신학의 중요한 기초들을 매우 상세하고 동시에 집중적으로 전개한다. - P144

한 장소에 희생 제사를 집중화하는 것은 신명기의 결정적인 원칙들 가운데 하나이다. - P149

언약책은 이미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특정한 장소들에서 "알리실"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말했다(출 20:24). - P149

이 본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찾아 오셔서 그에게 복 주실 여러 장소를 추론하게 한다. - P149

그러나 여기 신명기에서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된 곳은 오직 한 장소이다. 다른 모든 장소는 명백히 배제된다(13절 이하). - P149

한 장소에 대한 제의 집중화의 요구는 ‘쉐마 이스라엘‘에서 설명되었던 바와 같이 첫 번째 계명에 대한 하나의 구체화이다. - P149

즉, 한 분 하나님, 하나의 제의 장소이다. 예루살렘으로의 제사 집중화는 신명기에서 가장 오랫동안 효력을 발생시키는 계명들 가운데 하나이다. - P149

정경의 첫 번째 부분, 즉 "토라"의 마지막에서 "예언자" 모세의 특별한 위상을 중요한 의미를 갖도록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어서 정경의 두 번째 부분, "예언서들"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통해서 토라에 대한 결정적인 강조점을 갖게 한다. - P163

현재 예언서는 토라 다음에 놓여 있고 동시에 토라에 귀속되며 토라 아래에 위치하게 된다. - P164

오경, 즉 "토라"는 정경으로서 히브리어 성경의 기초이며 핵심이다. - P165

정경으로서의 히브리어 성경의 다른 어떤 부분도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자기 이해에 관한 중심적인 진술들을 이렇게 풍부하고 집중적으로 포함하지 않고 있다. - P165

이뿐 아니라 다른 어떤 부분도 이렇게 집중적이며 다양한 방법으로 편집되고 형성되지 않았다. - P165

이런 생성사로 인해 오경은 끊임없이 놀라운 방식으로 다음 두 가지를 보여 준다. 즉, 내적인 긴장들과 심지어 대립들까지 그리고 동시에 거대한 통일성과 완결성을 보여 준다. - P165

오경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가장 먼저 정경적 최종 형태가 완결된 부분이다. - P165

이런 사실에서 오경 안에 포함된 전승들의 수집과 구성적인 형태를 갖추게 한 것에 인정되었던 중요한 의미가 드러난다. - P165

동시에 오경은 정경으로서의 히브리어 성경의 다른 부분에 대해 토대를 제공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P165

대부분의 다른 책들은 오경에 대한 지식 없이 결코 완전하게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그 책들은 직간접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오경과 연관된다. - P165

죄인된 인간은 이스라엘이 그랬듯이, 하나님이 언약 체결을 통해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긍휼하심 위에서만 살 수 있다. - P167

이것은 이스라엘 후대를 향한 모세 전승의 결정적인 메시지 중 하나다. 즉, 그것은 이스라엘이 오직 한 사람에 의해서 인도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사람은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에 있고, 이 관계를 통해서 이 백성의 인도를 위해 필요한 지시 사항을 받는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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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는 모세의 위치는 "자신의 주인에게 신실한 자이며 자기 주인의 모든 ‘살림‘을 위임받은 최고로 높은 종의 위치"와 비교된다. - P102

하나님은 세계의 창조자이시고, 이로써 동시에 열방의 창조자이시다. - P104

하나님은 자신과 특별히 관계를 맺기 위해 어떤 백성을 부를지를 자유롭게 결정하실 수 있다. - P104

이로써 이스라엘의 역사는 창조와 함께 시작된 세상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갖게 된다. - P104

이런 특별 위치는 아브라함의 부르심에서 이미 구상되어 있었고, 이제는 공식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확장된다. - P105

이런 이스라엘의 특별 위치의 결과는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될 것이다. - P105

이스라엘의 해방은 그 자체로 자유롭게 하시는 하나님에대한 배타적 관계를 포함한다. - P106

다른 신들과의 모든 관계는 이스라엘에게 자유의 근거가 되고 또한 이로써 존재의 근거가 되신 이 한 분 하나님에게 직접적으로 대항하는 것이 될 것이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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