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쇄 찍는 법 - 잃은 독자에서 읽는 독자로 땅콩문고
박지혜 지음 / 유유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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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일상이 반복되니 책에 대한 관심이 더욱 늘어납니다. 책 읽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상황과 환경에서 '책'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물어봅니다. 독자는 줄어들고, 출간되는 책은 넘치는 시대에서 출판사와 저자, 독자는 저마다 어떤 생각으로 책을 대할까요?


출간된 책이 여전히 유의미함을 나타내는 여러 지표 중 '중쇄'는 대표적입니다. 한 권의 책이 초판을 다 소진하게 된다면 동일한 내용으로 다시 인쇄를 하게 됩니다. 재고 소진이라는 부분도 분명 중요하지만, 중쇄를 함으로 작가와 출판사는 새로운 동력을 얻게 됩니다.


편집자로 13여 년을 일하다, 2020년에 1인 출판사를 창업한 이 책 『중쇄 찍는 법』의 저자 박지혜. 창업 2년 시점에 출판사 '멀리깊이'의 중쇄율은 70퍼센트였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출판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이 책을 펴내게 됩니다.


책은 무엇보다 책 본연의 힘이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팔로워가 많다고 하여 책이 잘 팔리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 도움은 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책 안에 있어야 합니다. 독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책 자체가 가진 힘이 있어야만 합니다.


저자는 책 자체의 힘이 있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꼭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바로 파격성(전복성)과 충분성, 미래지향성입니다. 더하여 중쇄의 황금비를 2할의 전복성, 7할의 충분성, 1할의 미래지향성으로 제시합니다. 이러한 어울림이 있을 때 적절한 조화가 이루어짐을 설명합니다.


'전복성'은 메시지 자체가 주는 충격입니다. 그것은 새로움일 수도 있고, 완벽한 검증일 수도, 반전일 수도 있습니다. 책 자체에 무엇인가 파격적인 메시지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기존의 통념을 깨는 무엇인가가 있을 때 독자들은 그 책을 읽고 싶어 하고, 구매하고 싶어 합니다.


'충분성'은 그 메시지의 온전한 근거입니다. 파격으로 눈길을 끌었다면, 이제 설득하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전복적인 요소만 강조된다면 그것은 혼란을 야기할 뿐입니다. 적절한 전복은 이제 신뢰할 만한 근거들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7할의 충분한 근거와 공감이 뒷받침될 때 신뢰할 만한 책이 완성됩니다.


'미래지향성'은 일종의 소명의식과 연결됩니다. 한 권의 책이 모든 문제를 다 감당할 수는 없겠지만, 일부분의 문제에 대해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함께 사는 이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 함께 모색할 수 있는 대안들이 담겨있어야 의미 있는 책이 될 것입니다.


책을 판매하기가 참으로 힘겹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하지만 생명력 있는 책은 그 와중에도 꾸준히 팔립니다. 저자는 여전히 책이 매우 매력적인 도구임을 강조합니다. 다양한 매개체가 지속적으로 책을 위협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매체들은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저자는 마지막까지 동료 출판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각자의 소명의식으로 이 자리까지 온 그들에게 끝까지 함께 하자며 그들을 응원합니다. 마음을 다해 책을 만들면 결국 그 책은 우리의 책이 됩니다. 고통을 모두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그 모든 것들이 지나가고서도 한 권의 책은 우리에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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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옹호하다 - 전통의 의미와 재발견, 회복에 관하여 비아 시선들
야로슬라프 펠리칸 지음, 강성윤 옮김 / 비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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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이 주는 신선함이 있습니다. 새로운 것은 이전의 것에 비해 발전된 듯하고, 좀 더 완성도가 높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새로움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것은 옛 것을 품고 있습니다. 그 안에 많은 역사와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전통'을 딛고 한 걸음 더 나아갈 때, '통찰'이 주어집니다.


'전통'과 '통찰'은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를 무시한 채, 미래를 바라볼 수 없습니다. 수많은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합니다. '통찰'은 '전통'의 또 다른 목소리와 같습니다. 전통에 귀 기울일 때 더 나은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습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그리스도교 역사가인 야로슬라프 펠리칸(Jaroslav Pelikan)은 '그리스도교의 전통'에 대한 5권의 저술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교 전통』(The Christian Tradition)에서의 그의 방대한 사상을 이 책 『전통을 옹호하다』에서 간명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1983년 펠리칸의 제퍼슨 강연을 토대로 출간되었습니다. 그는 서문에서 평생의 연구를 돌아보며 이 강연을 준비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평생의 연구가 이 책에 녹아져 있음과 동시에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현장감이 느껴지는 언어로 그의 연구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마치 전통을 성서와 대립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펠리칸은 오히려 그리스도교의 전체 역사를 통해 보다 폭넓게 전통을 살펴보기를 요청합니다. 그리하여 유구한 전통 가운데 보다 풍요로운 조화가 있을 수 있음을 주장합니다.


전통을 면밀하게 관찰하다 보면 새로운 것은 이전의 것을 품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혹여나 전통과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는 관념이나 사상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새로운 논거는 기존의 사상을 전제하며, 부분적으로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의 재발견은 과거를 재발견하며 재구성합니다. 과거의 체계나 사상이 전통을 어떻게 선택하며, 해석했는지가 중요합니다. 펠리칸은 자신의 연구에서도 이를 중시했다고 밝힙니다. 즉 전통의 비언어 요소 혹은 개념으로 잡히지 않는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이죠.


전통에 대한 펠리칸의 개념은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교리의 발전을 이해했으며, 아돌프 하르낙(Adolf von Harnack)과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전통은 그 안에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를 그 안에 가두지 않습니다. 또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자신을 넘어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보편적 진리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전통은 그것을 안내하며 도와줍니다.


우리는 과거의 것에 사로잡혀 있는, 죽은 신앙인 '전통주의'는 멀리해야 합니다. 반면 살아있는 전통을 통해 통찰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전통을 올바로 계승할 때 우리는 풍요로운 유산을 통해 살아있으며, 더욱 깊이 있고, 힘이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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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는 것이 봄날 - 제1회 "어르신의 재치와 유머" 짧은 시 공모전 수상 작품집
성백광 외 지음, 김우현 그림, 나태주 해설 / 문학세계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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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몸은 쇠약해지나, 마음으로는 청춘처럼 살아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늙어가는 것은 보이지만, 정작 자신이 나이들어가는 것은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하나 둘 복용해야 할 약이 늘어납니다. 거뜬하게 오르내리던 길이었는데, 어느샌가 헉헉 거리게 됩니다. 이전에는 전자제품 최신 업데이트를 미리 챙겨봤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에 관심조차 없습니다. 새로나온 기능이 더 편리하다고 이야기하지만 기존의 것이 더 쉽게만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다보니 그들의 고민과 아픔을 깊게 알지 못합니다. 그저 추상적으로만 생각할뿐입니다. '힘드시고 외롭겠지' 정도로 생각하지만, 그들의 고통이 우리의 아픔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더 세심하게 그들의 마음을 살피지 않았던 것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이 봄날』은 (사)한국시인협회와 (사)대한노인회가 공동 주최한 제1회 "어르신의 재치와 유머" 짧은 시 공모전에서 발굴한 시를 엮은 시집입니다. 총 5,800여편의 작품 가운데 예심을 거친 100편의 작품이 본심(심사위원: 김종해, 나태주, 유자효)을 거쳐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만60세 이상의 어르신들은 솔직담백하게 자신들의 일상을 표현합니다. 유쾌하면서도 연륜이 묻어나는 문장들로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추리고 추려서 건져 올린 짧은 문장은 깊고도 따뜻합니다. 그 안에는 오랜 시간이 담겨 있고, 그들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아주 평범한 일상을 표현하지만 지혜가 담긴 비범함이 빛납니다. 유쾌하게 표현한 문장들 사이로 외로움과 서글픔, 서운함과 비통함이 묻어납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향한 양가감정이 절묘하게 교차합니다. 모든 문장은 생동감이 넘치며, 살아있음을 뽐내고 있습니다.


끝이 있음을 인정하며 사는 겸손한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에 온 마음을 다하는 인생은 불행합니다. 비록 지금은 불편하고 힘들어도, 선물로 주어진 인생을 어르신들의 지혜로 채워나가다보면, 우리 삶도 충분히 아름답고 경이로울 것입니다.



*이 리뷰는 문학세계사(@munse_books)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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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너희 신이다 - 우상숭배 시대에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길
크리스토퍼 라이트 지음, 한화룡 옮김 / IVP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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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貪慾)을 당연시하는 시대입니다. 오히려 탐심(貪心)을 더욱 부추기며, 조장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돈'은 우상이 되었습니다. 명예나 권력, 이데올로기 등도 여전히 그 힘을 과시합니다. 우리의 일상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거짓 신에 우리는 이러 저리 끌려갑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우상을 섬기지 않음으로 인해 자신들이 하나님만을 경배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이 우리 내면 깊숙하게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우선되는 우상들이 우리 안에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신성한 것과 세상의 것을 분리하는 이원론(二元論)도 문제이지만, 더 심각한 것은 혼합주의입니다. 자신들의 욕구와 하나님의 뜻을 교묘하게 결합합니다. 부와 경건을 동시에 추구하면서도 인정받으려 합니다. 비록 사람들에게는 칭송받을 수 있겠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은밀한 탐욕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교』, 『현대를 위한 구약윤리』 등의 저술을 통해 구약의 메시지를 우리 삶에 적실하게 적용되도록 노력한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J. H. Wright). 그는 이 시대를 우상의 시대로 규정하며, 이러한 상황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할지를 이 책 『이것이 너희 신이다』를 통해 간명하게 제시합니다.


이 책의 1부는 라이트의 책 『하나님의 선교』에서 제5장 "살아 계신 하나님은 우상숭배와 대결하신다"를 편집하고 다듬은 내용입니다. 이외의 내용은 미국에서 있었던 공개 강연의 내용이 토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1부가 원리를 제시한다면, 2부와 3부는 보다 실제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물을 다스리시는 살아계신 야훼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말은 했지만, 실제의 모습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십계명의 1,2계명을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혼합주의의 핵심입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에 대해 말은 많이 하지만 우리의 욕구를 반영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다고 말을 할 때, 그것이 얼마나 인간적일 때가 많은지요. 우리의 언어에 제국의 관점, 세상의 가치관이 교묘하게 비집고 들어와 있을 때가 허다합니다.


저자는 구약에서 제국의 역사를 나열하며, 그들의 흥망성쇠를 분석합니다.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일관됩니다. 아무리 크고 강대하게 보이는 제국이라 할지라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모든 제국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 아래 있습니다. 그 손안에서 흥하기도 하고 쇠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제국이 종말을 맞이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습니다. 그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내적인 부패들 즉, 도덕적인 악행이나 경제적인 불평등이 있습니다.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이유들로 인한 외적 요인들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구약의 예언자들은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심판임을 강조합니다.


저자는 제국의 멸망에서 보이는 뚜렷한 몇 가지 모습들이 지금 현대 사회에도 보이고 있음을 경고합니다. 이는 제도적인 폭력이며, 빈곤과 불평등의 증가, 극단적인 포퓰리즘과 국수주의, 성적 혼란과 가족 해체, 생태학적 황폐, 거짓이 만연한 세상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거부하시는 우상들을 폭로합니다. 번영과 국가적 자부심, 자기 예찬의 우상은 구약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내적 우상입니다. 하나님 한 분을 신뢰하지 않고, 우상을 의지할 때 멸망은 필연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명백하게 묘사됩니다.


타락한 시대에서 우상은 보다 더 교묘하게 우리에게 스며듭니다. 이러한 세상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삶 곳곳에 있는 우상에 대해 인지하는 것입니다. 거기로부터 돌아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저자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가야 하는지에 대한 세 가지 차원을 살펴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이야기로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 세 가지를 상기하며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상의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허망한 세상의 욕구는 더 깊은 차원의 공감과 환대, 사랑으로만 대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함께 울어주고, 아파하며, '너'의 필요를 채워주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갈 때 우상은 폭로되고, 하나님은 경배 받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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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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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일탈 행동을 '너'의 문제로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너'라는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습니다. '너' 혼자의 문제로 남겨두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문제가 될까 봐 마음 졸이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를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 앞에 내가 원하는 정도의 배려만이라도 상대방에게 적용해 본다면, 대다수의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표면적인 행동 이면에 외로움과 고립감, 무기력과 절망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채준다면요.


한 사람의 배경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지만 정작 이것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오랜 시간 곁에 머물며 그 사람을 주의 깊게 관찰할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관계를 맺고 많은 대화를 주고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성장 과정까지도 지켜보기를 원한다면 엄청난 수고가 요구됩니다.


25년 경력의 교사이자 청소년 정책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 책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의 저자 강지나는 이 어려운 일을 묵묵하게 수행합니다. 빈곤가정에서 자란 여덟 명의 아이들과 10여 년간 만남을 지속하며, 그들이 겪은 청소년 문제와 교육 문제, 사회 문제 등을 적극적으로 탐사합니다.


저자는 오랜 시간 교사로 일하며 빈곤의 현장에서 경험했던 막막함을 담담하게 진술합니다. 가난을 겪는 아이들에게 공부나 성장은 우선순위가 아니며, 이들은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 살아가야만 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에게 사회의 안전망보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무엇보다 저자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여덟 명의 친구들이 스스로 들려준 그 이야기가 울려 퍼지도록 배려합니다. 저자는 어른과 사회의 시각에서 판단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정직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도록 돕습니다. 그들 또한 진솔하면서도 용기 있게 자신이 경험한 막막함과 힘겨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실상 자연스럽게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과 교류합니다. 이웃을 돌보고 섬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돌아보아야 할 이웃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이 책의 이야기가 필요한 것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아파하며 힘겨워하는 소외된 '너'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인터뷰 이후에 적실한 사회학 이론과 심리학 이론들을 곁들이며 여러 문제들을 해석합니다. '가난'이라는 문제를 다층적으로 분석합니다. '가난'은 재화의 부족 이상입니다. '가난'이라는 문제는 원만한 가족관계를 경험하지 못하여 내면을 파괴하고, 심리적인 위축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곧 지속적인 관계 맺기의 실패로 귀결됩니다.


건강한 관계 형성과 욕구 발현의 기회가 수없이 좌절되고 박탈되면 누구나 사람은 문제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닙니다. 빈곤의 대물림으로 인한 소외와 불평등의 경험이 내면에 축적되어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처할 곳이 없습니다. 그들의 빈약한 사회적 자본은 위기의 순간에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가난'이라는 것은 개인이 겪는 문제로 축소될 수 없습니다. 여러 조건과 환경, 학습, 습속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책이 의미 있는 것은 문제를 속속들이 밝혀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러한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의 인터뷰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힘겨웠기에 멈출 것이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고, 여러 사람들과 기관들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아직은 온전하거나 만족스럽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 아이들이 희망을 잃지 않은 이유는 '나'만 생각하지 않는 '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이웃'이 되어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제약이 많은 환경이지만, 그런 한계를 넘어설 때 오히려 훨씬 더 큰 성장과 기쁨이 있음도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배려 받고 환대 받으며, 섬김을 받은 사람은 또다시 누군가에게 그 사랑을 흘려주고자 합니다. 오랜 시간 함께 곁에 머물며 따뜻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한 저자의 사랑이 그러하며, 힘겨운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들이 받은 사랑을 다시금 전해주고자 하는 이 아이들의 마음도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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