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북 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정치적 의존성에도 불구하고 유다는매우 뚜렷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 P238

(광의의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역사의 전체적인 진행을 고려할 때 다윗과 솔로몬에 의해서 조성된 정치 - 종교적 복합체의 기본 요소들은 예루살렘, 즉 유다에 지속적으로 남아 있었다.
그것들은 다윗 왕정과 예루살렘 성전이다. - P238

이 두 가지 요소들은 예루살렘과 유다에 하나의 지속성을 보장했다. - P238

엘리야의 등장은 북 왕국 역사에서 특별한 위기의 시점에 이루어진다. 바알 숭배를 국가적으로 장려한 것은 이미 오므리 치하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합은 수도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건축하여(16:32) 바울 숭배에 중요한 지속적 동인을 제공했다. - P246

이런 발전에 대항하는 엘리야의 간섭은 엘리야를 사무엘에서 시작하여 나단과 갓을 지나 아히야에 이르는 이전 예언자들의 반열에 오르게 한다. 그들은 왕들의 정치와 종교적 정책들을 비판하였고, 아울러 정치적 발전의 방향에 영향을 주었고 그것을 변화시켰다. - P246

하나님은 자신의 진노를 "돌이키지 않으셨다." "그가 돌이키지 않으셨다"는 말은 앞선 구절에서 요시야는 "돌이킨" 왕이었다는 진술과 하나의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 P268

요시야의 돌이킴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 P268

사백 년 이상 이스라엘과 유다에 지속되었던 정치 구조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P269

더 이상 왕이나 국가의 주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적이며 정신적인 중심이었던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되었다. - P269

주민들 가운데 중심 부류의 사람들이 포로민이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 P269

이처럼 많은 점에서 하나의 공백이 당시 상황을 지배했고, 미래가 무엇을 가져다줄지는 예측할 수 없었다. - P269

이것을 통해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유다에서 이 수 세기 동안 살았던 삶의 내용들이 만들어 낸 모든 것이 파괴될 수는 없었다. - P269

그것의 결말에서 이런 질문이 제기되어야만 했던 이 책들은 정말이지 기록되었거나 편집되지 않았다. - P269

오히려 그 책들은 이전에 그토록 상세하고 그토록 참여적으로 기술되었던 모든 것의 종말과 실패를 회고적으로 고찰하고 애도하기 위하여 계속 전승되었다. - P269

"전기 예언서들"을 되돌아본다면, 그것들 안에서 실제로 실패에 관해서만 말하고 있지 않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 P271

그 책들은 전체로서의 이스라엘의 삶과 이로써 포로 이후의 삶을 위한 큰 의미가 있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의미가 있었던 몇 가지 기본적인 전통을 갖고 있다. - P271

오경에서 이미 이스라엘이 보유하고 있던 두 가지 근본적인 선물에 관해 말한다. - P271

즉, 그것은 모세를 통해 주어진 토라와 조상들에게 약속되고 이미 보증금처럼 주어진(창23장) 땅이었다. - P271

땅에 대한 약속은 "전기 예언서"의 시작에서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현실화된다. - P271

왕정기의 역사 서술에서 예언자들이 보여 주는 중요한 역할은 이스라엘이 실패한 것이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분명한 답변을 포함하고 있다. - P275

왕정은 자신의 임무에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했다. 그 임무는 왕정이 이스라엘의 "기본법"으로서 야훼 신앙을 요구한 것과 같이 그렇게 백성을 인도하는 것이었다. - P275

따라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정치적인 운명은 "이스라엘"이라는 정치적 실체의 실패로서 해석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해석되어야만 했다. - P275

그러나 동시에 이런 역사의 서술을 통해 매우 분명하게 의식된 사실은 거기에는 토라의 요구들과 일치하며 이스라엘을 "선택된 민족",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 되게 하는 다른 길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 P275

이것은 하나님이 이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강력한 확증임과 동시에 그분이 이 일을 행하실 이유에 대한 근거가 된다. - P311

왕이 다시 다윗의 왕위에 앉을 것이라는 사실, 그의 통치와 함께 평화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 무엇보다 다시 한번 공평과 정의가 지배할 것이라는 사실, 이 모든 것이 단지 이스라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일어날 것이다. - P311

그래서 그분은 이 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열정을 가지고 지켜보실 것이다. - P311

예상되는 미래의 통치자는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통치자보다 더 나을 것이며 그런 통치자와는 다를 것이라는 사실이 여기에서 완전히 분명해진다. - P312

그는 다양한 삶의 영역에 있는 백성을 이끌고 통치하기 위해 필요한 많은 자질을 갖추게 될 것이다. - P312

그리고 그의 판결은 - "보고 들을 바대로 판단하지 않고" - 확고하며 (3절), 특별히 사회적일 것이다. - P312

그는 공동체에서 매우 낮은 위치에 있는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위해 정의를 베풀고,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인 권력의 수단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자들로부터 그들을 방어한다(4절).

처음 장(1:8)부터 마지막 장(66:8)까지 시온이라는 이름은 이사야서 거의 모든 곳에서 나타난다. 여기에서 시온이라는 이름은 이사야 선포에 나타난 다른 중요한 낱말에 대한 연결을 통해 매우 특별한 강조점을 얻는다. - P315

즉, 그것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라는 표현이다.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써 예루살렘에 현존하실 것이라는 사실은 이사야서 메시지의 이 첫 번째 거대한 장을 끝마치는 희망 가득한 종결어다. - P315

다시 한번 이스라엘의 운명은 더 큰 역사적인 맥락 속에 놓인다. 하나님은 자신이 다윗에게 보이셨던 "신실한 은혜"를 기억하신다. - P340

이제 그분은 동일한 방식으로 이스라엘과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맺고자 하신다(55:3). - P340

예레미야는 자기 메시지로 인해 고통당하는 예언자다. 그는 자신의 백성이 임박한 재앙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 P371

그 재앙은 그의 마음을 찢어지게 한다(4:19). 그러한 예레미야에게 자신의 백성을 위한 중재가 허락되지 않는다. 이것은 예레미야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 중의 하나이다. - P371

이처럼 예언자를 상징으로 묘사하는 본문들은 그의 선포의 모든 폭과깊이를 포함한다. 즉, 그것은 모든 열방을 포괄하는 세계사로부터 예언자의 가장 개인적인 삶의 영역까지 이르고, 피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임박한종말에 대한 냉혹한 예고에서부터 살 보람이 있는 미래의 희망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까지 아우른다.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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