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감옥으로부터 사색을 비롯해서, 신영복 선생이 쓰신 강의와 담론을 읽었다. 깊은 사색과 철학적 사유가 그리워 다시 신영복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를 펼쳐 들었다. 얇고 그림도 많아서 부담 없이 펼쳐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전공이 역사고, 하는 일이 역사를 기르치는 일이라서 신영복 선생의 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역사적 사실과 어긋나는 일을 지나칠 수 없는 직업병이 도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도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거나, 소품이 시대와 맞지 않으면 그것이 거슬려서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이러한 모습은 책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전문 역사가가 아닌 신영복 선생의 글 속에서 역사적 사실과 어긋난 설명을 찾아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마는 직업이 직업인지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피라미드의 건설이 정치가 아니라, 피라미드의 해체가 정치라는 당신의 글귀"라는 문장이다. 많은 치적을 쌓기 위해서 무수한 인명을 해치고 백성을 괴롭혀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신영복 선생은 이러한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피라미드의 건설이 정치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피라미드를 신영복 선생은 노예가 건설했다고 믿는다.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농민들이 농한기를 이용해서 건설했다. 건설의 댓가로 빵과 맥주를 받았다. 농민들로서는 농한기에 일자리와 먹을 것을 얻은 셈이다. 일종의 뉴딜정책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피라미드의 건설은 정치일 수 있다. '억강부약(抑强扶弱)'이 정치라면, 농민들에게 일자리와 먹을 것을 주는 피라미드 건설은 좋은 정치이다. 피라미드 건설이 정치이기에 이집트 문명이 그렇게 장구한 세월 동안 존속할 수 있었다.

둘째, "'동의보감'의 찬술 자체가 허준의 기획이었고, 허준의 집필"이라는 문장이 나의 마음에 거슬렀다. 홀로 서는 나무는 없다. 나무가 더불어 숲을 이룰 때 나무는 나무로서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허준이라는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동의보감'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임진왜란이라는 전란 속에서 백성이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한 의서가 필요했다는 시대적 필요성에 동의한 수 많은 사람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허준과 같은 수 많은 나무들이 '동의보감' 저술에 참여했다. 소설 '동의보감'에서 허준을 괴롭혔던 양혜수도 그중 한사람이다. 내의원 의원들이 참여하다가 허준이 이를 유배지에서 완성한다. '동의보감' 저술을 허락한 선조와 완성된 '동의보감'을 출판할 수 있도록 명한 광해군도 그러한 나무 중에 하나이다.

신영복 선생은 허준을 가르쳐준 스승이 유의태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는 설명이다. 물론, 허준이라는 나무가 홀로 태어날 수 없기에 유의태와 같은 스승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허준의 스승이 유의태는 아니다. 유의태는 허준이 태어난지 200년 이후의 인물이다. 시신을 해부했다는 설화도 허준 덕분에 의술의 혜택을 받게 된 민중들이 그 고마움을 갚기 위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잡과라는 과거시험을 통해서 내의원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추천에 의해서 내의원에 들어간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소설은 소설일뿐 역사일 수 없다.

셋째, "하곡이 정작 자르고 왔던 것은 당시 만연했던 이기론에 관한 공소한 논쟁"이라는 표현이다. 하곡 정재두가 강화도로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기론 논쟁이 싫어서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하곡 정재두가 겉으로는 성리학자인 것 처럼 살았지만, 병이 들어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직감하자, 자신이 양명학자임을 밝혔다. 일종에 커밍아웃을 한 것이다. 그런데, 마음의 부담을 벗었기 때문일까? 하곡 정재두는 죽지 않고 병석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어쩌랴, 자신이 양명학자임을 밝혔으니, 주위의 성리학자들에게 배척을 당할 수 밖에....윤휴가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했던 역사적 사실을 상기해본다면, 양명학자임을 스스로 밝힌 그는 옥사에 휘말려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강화도로 찾아들었다. 신영복 선생의 표현이 진실일 수도 있으나, 나의 얇팍한 지식이 공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한다. 아는 것이 병이란다.

넷째, "황소가 당나라의 학정에 견디지 못하여 궐기한 농민장수인 한"이라는 문장이 눈에 거슬린다. 황소는 학정에 견디지 못해서 궐기한 농민 장수가 아니다. 그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다가 낙방하고는 반정부세력이된다. 이후, 소금 밀매업으로 큰 돈을 벌었던 황소는 소금 밀매업자는 사형에 처하는 엄격한 당나라의 형벌에 불만을 갖게 된다. 소금밀매업자 왕선지가 난을 일으키자 그도 난을 일으킨다. 민란이 일어나면 무조건 농민이 일으켰다고 생각하는 것도 역사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상상으로 학습하는 자의 어리석음이다. 민란의 참여자 대다수가 농민일지라도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않은 일자무식의 농민이 민란의 주도자가 될 수는 없다. 조직을 이끌려면 이론과 실제 두가지를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황소는 과거시험을 준비했을 정도로 머리에 학식이 있었으며, 소금밀매업을 통해서 조직을 움직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했기에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점령할 수 있었다. 실사구시라는 말을 자주한다. 실제 역사가 그러한지 찾아본 이후에, 올바름을 탐구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좌석을 구하려 분주히 버스를 헤매던 40대 여성이 드디어 자리를 차지했으나, 자리를 차지한 그때야 비로소 목적지를 지나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일화를 읽으며, ‘우리 삶도 이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성공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리다가, 인생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그 무엇을 놓치고 말았음을 뒤늦게 깨닫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내일을 위해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나는 오늘의 소중함을 잃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국의 시간 - 아픔과 진실 말하지 못한 생각
조국 지음 / 한길사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사회에서는 금기가 있다. 예전에는 색깔론에 대해서 맞서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색깔론이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시대가 되자,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시각이 금기가 되었다. 고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둘러싸고 박원순 시장을 옹호하는 발언 자체자 금기가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금기가 생겨났다. 조국을 옹호하는 발언 자체가 금기가 되었다. 조국 사태가 발생했을 때, 나도 숨죽였다. 이 사회의 금기를 깰 용기가 없었다. 단지 조국 교숙가 쓴 '조국의 시간'을 구입하며 '나는 조국을 지지한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조국 가족을 멸문지화의 위기로 몰아 넣은자가 야권의 강력한 대권후보가 되었다. 그의 민낯을 드러내는 연속된 실언과 망언이 계속되면서 다시 조국을 떠올렸다. 이제 '조국의 시간'을 읽을 용기가 생겨났다. 조국이 하고 싶었던 말! 내가 그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 우리 모두가 가슴속에 새겨 들어야하는 말들을 이제 읽어보자.


검찰개혁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꿈이었다. 정치 보복의 칼날 앞에서 쓰러져야만 했던 바보 노무현을 떠나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그중에 나도 있었다. 많은 시민들이 그의 운구행렬을 바라보며, 투표로 복수하자고 외쳤다. 그러나 박근혜가 정권을 재창출하면서 투표로 복수하자는 외침은 이뤄지지 않았다.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권이 탄생하면서 비로서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서 박영수 특권은 칼날을 휘둘렀다. 정의가 바로 선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박영수 특검에서 활약하던 윤석렬이 검찰총장이 되면서 정의로운 세상이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가시밭길의 시작이었다. 그 가시밭길을 조국일가는 온 몸으로 걸어야했다.

국감장에서 '혹시 조직을 사랑합니까'라는 질문에 '대단히 사랑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혹시 사람에게 충성하는거 아니에요'라는 질문이 이어지자,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라고 답했다. 여기서 조직이 검찰이라는 사실을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보수 정치인에 대해서는 사정의 칼날을 감추고, 조국을 비롯한 진보진영에게는 '인디언 기우제'식의 수사가 이뤄졌다. 그 가시밭길 속에서 수구 언론이 나팔수 역할을 했다. 언론의 무차별적 조국 비난보도에 많은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S대를 비롯한 서울지역 대학생들이 조국을 비난하는 시위에 참석했다. 그들의 논리는 '공정'이었다. 진보지식인이 사회적 특권을 이용해서 자녀를 명문대에 진학시켰고, 이것이 공정에 어긋난다는 말이다.

그래, 명문대를 진학하지 못한 이땅의 흑수저들은 그러한 비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울의 명문대생은 조국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진학을 담당한 경험이 있는 분들의 말에 의하면, 그 시절에는 부모를 통한 체험학습과 봉사활동이 대부분 이뤄졌다한다. 조국만이 아니고, 강남만의 일도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체험학습과 봉사활동의 폐해로 인해서 체험학습이 생기부에서 삭제되고, 해외봉사활동이 입력불가가되었다. 서울지역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 중에서도 부모의 인간관계를 이용한 체험학습과 봉사활동이 조국가족 이외에는 없었을까? 입시현실에 무지한 기자, 혹은 한쪽눈만 뜬 기레기들이 조국을 천하의 범죄자로 만들었다. 진보인사에게만 가혹한 도덕의 칼날에 무슨말을 할 수 있을까?

부유한 집안의 서울대학교 교수인 조국! 그가 시류에 영합하여 편히 살려했다면 그의 가족은 영화를 누리며 달콤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왜? 검찰 개혁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을까?


  "검찰개혁은 학자와 지식인으로서 제 필생의 사명이었고, 오랜 동안 고민하고 추구해왔던 목표였습니다."-265쪽

  "상설조직과 자체수사 인력을 갖춘 공수처가 있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MB는 대선전, 적어도 취임전 기소되었을 것이다."-117쪽


조국은 행동하는 지식인이다. 학자로서 지식인으로서 이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검찰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기초한 수사구조 개혁! 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조국은 가족을 희생양으로 내 놓아야했다.

언론 검찰, 보수시민들의 조리돌림 속에서도 그는 죽지않았다. 살아서 우리에게 왔다. 사실 조국 사태 속에서 조국이 제2의 노무현이나, 제2의 노회찬이 되지 않기를 바랬다. 제발 그가 살아서 우리에게 돌아오기를 고대했다. 만주의 항일무장투쟁을 공부하면서, '생존이 최고의 투쟁인 시기'라는 표현을 인상 깊게 읽었다. 그랬다. 조국에게 이 시간은 생존이 가장 큰 투쟁의 성과였다. 그가 살아서 '조국의 시간'을 썼다. 그의 고민을 시민과 공유하며,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되새긴다. 조국! 살아 돌아와서 고마워요!

조국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조형근 선생의 말을 해주고 싶다. 


  "위선이 악이 선에 바치는 경배"

  "위선은 역겹지만 위선마져 사라진 세상은 야만이다."-359쪽


조국은 강남의 금수저인 자신이 진보 지식인으로 활약하면서도, 기득권을 버리지 못한점을 이 책에서 반성한다. 일부 시민들은 기득권을 버리고 도덕군자처럼 조국이 살길 바랬나보다. 이들은 너무도 순진하다. 현실에서는 절대 선의 존재는 있을 수 없다. 속세를 버리고 산사로 들어가 홀로살아간다한들, 어찌 때가 묻지 않겠는가? 고려시대 사찰에서도 국왕을 따르는 승려와 문벌귀족을 따르는 승려 사이의 다툼이 있었다. 

단지 우리는 옷에 구정물이 튀어도 이를 부끄럽게 여기며,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떳떳하게 살아가려 노력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현실의 유혹에 고뇌하는 나약한 존재가 우리이다. 그러나, 우린 염치가 있고, 부끄러움을 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국민을 개, 돼지로 보는 세력과는 엄연히 다르다. 우리의 옷에 구정물이 묻었다고 우리를 버리고 국민을 개, 돼지로 보는 세력을 선택한다면, 결론은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조국은 재기할 수 있을까? 15년전, 공개 강좌에서 한 시민이 "'조국이 대통령감이다.' 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대통령에 도전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라고 질문했다. 그때, 조국 교수는 자신은 그럴 마음이 없다고 겸손해했다. 겸손한 사람, 정의를 지키려는 사람, 약자를 보듬어주려는 사람! 그 사람이 조국이다. 조국에게는 할일이 남아있다. 조국이 가족을 제물삼으며 공수처의 출발을 고대했지만, 공수처에 걸었던 기대는 실망으로 되돌아 오고 있다. 염치없지만, 조국에게 다시 정치로 뛰어들기를 부탁해야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조국이 복권되어 다시 이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길 바란다. 박근혜 처럼 대통령의 사면령이면 끝나는 일이 아니라서 깊은 탄식이 터져나온다. 조국! 그는 언제쯤 복권될 수 있을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2-01-10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나루 2022-01-13 16:16   좋아요 1 | URL
그때를 떠올리며 읽었더니 금새 다읽었습니다.
로스쿨가는 따님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겠네요.

성은이감사 2022-07-19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석열이 조직에 충성한다고는 증언한적은 없지요. 사랑합니까 물으니 예라 답 했을뿐. 본인의 기억왜곡은 좀 빼주세요

강나루 2022-07-20 04:15   좋아요 0 | URL
사람의 기억에 부분적 왜곡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서 확인하고 급히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책은 도끼다 - 박웅현 인문학 강독회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책은 도끼다.'라는 제목이 강렬한데, 여기에 '다시'가 붙었다. 사실 '책은 도끼다.'라는 책을 읽고 싶어서 책을 골랐는데, '다시, 책은 도끼다.'라는 책을 잘못 골랐다. 어쪄랴! 책을 읽어 내려갈 수밖에.... 그런데, 박웅현의 사진을 보면서, 나는 스님을 떠올렸다. 물론, 도올 김용옥 선생도 떠올랐다. 책을 읽는 동안 실제 스님들과도 교류를 하며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의 사유에 불교적인 사유의 흐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를 사로잡은 박웅현의 불교식 독서법을 살펴보자.

 

저자 박웅현은 책의 액기쓰를 짜내며 읽는 독서법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의미를 발견한 문장을 밑줄을 긋고 적어 놓았다가 이를 타이핑해 놓는 독서법이다. 그리고 그러한 문장들을 사무실에 걸어 놓기도하고, 따로 모아서 인문학 강독회를 열고 책으로 출판도한다. 팟캐스트 '인생내공'의 조우성 변호사도 이러한 방식으로 독서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산들은 팟캐스트 제작과 공개강의를 할 때 요긴하게 사용한다. 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체화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강연 및 출판에 이용한다는 점에서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use, OSMU)의 알뜰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박웅현은 '독서에 관하여'라는 책의 일부분을 인용하며 일상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강변한다.

 

"왜 꼭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있는 것만 예술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이야깁니다."-35

 

그렇다. 우리는 예술가라는 사람이 평범한 일상을 묘사한 것을 보고 예술이라 감탄한다. 우리의 일상이 예술인데 우리는 너무 멀리서 예술을 찾았다. 박웅현의 글귀를 읽으며 나는 임제스님의 법문이 떠올랐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된다면, 네가 서 있는 바로 그곳이 진리의 세계이다!! 나의 인생에서 주인으로 살면서 나의 주변을 바라보면 그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 곧 예술의 세계인 것이다. 머무르는 곳마다 진리의 세계가 될 수 있듯이 머루르는 그곳이 예술의 세계일 수 있는 것이다. 박웅현 자신은 모르겠지만, 그는 임제스님의 법문을 예술의 세계에 적용시켰다. 그의 사유에 불교적 사유가 흐르고 있기에 책을 읽으며 불교적 사유를 건져올리고 있다.

그렇다. 박웅현은 책속에서 진리를 건져 올렸다. 책속에는 그리고 세상에는 진리가 널려 있다. 그 진리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달은 어디에나 있지만 보려는 사람에게만 뜬다."-89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고,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진리는 어디에나 있지만, 진리를 보고자하는 마음이 없다면 진리를 볼 수도 찾을 수도 없다. 평범한 돌도 가치를 알아보는 자에게는 보석이 되지만,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자에게는 다이야몬드도 돌덩이일 뿐이다. 세상은 객관적으로 보이기보다는 주관적으로 보여진다. 각자 자신이 보고 싶은 것들을 볼 뿐이다.

그런데, '달은 어디에나 있지만 보려는 사람에게만 뜬다.'라는 문장 자체는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문장으로 보인다. 달은 하나이지만, 천개의 강에 떠오른다는 문장 자체가 모티브가 되어 '달은 어디에나 있지만 보려는 사람에게만 뜬다.'라는 문장에 영향을 주었다고 추리한다면 나의 억측일까? '월인천강지곡'은 세종대왕이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한글로 편찬한 찬불가이다. 부처를 달에 비유하고, 그 달이 하나이지만, 천개의 강에 떠오른다는 표현 자체는 무척이나 문학적이다. 박웅현이 불교적 사유가 내면에 흐르고 있었기에 이 문장이 그의 가슴을 울리지 않았을까?

박웅현이 불교적 사유에 깊이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문장이 있다.

 

"그 오랜 세월의 몸부림과 분투 끝에 셰익스피어는 마침내 모든 희망으로 부터 해방되었다. (중략) 그렇게 그는 자유로워졌다."-211

 

이 글에서 "모든 희망"을 불교식으로 표현하자면 "욕망" 혹은 "집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해탈하고 열반에 들 수 있지 않을까? 불교의 중요한 화두인 집착을 버리라는 말을 카잔차키스는 '희망'이라 표현했다. 박웅현의 내면에 흐르는 불교적 사유는 이를 놓치지 않고 건져올렸다.

스님들은 너의 욕망을 버리고 너의 마음을 곧바로 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바로 '직지인심(直旨人心) '이다. 박웅현도 이와 비슷한 글귀를 놓치지 않았다.

 

"짧은 순간 동안 이 문장은 삶의 산문성을 가리는 커튼을 살짝 걷어 올린다."-220

 

밀란쿤데라의 이 글귀는 돈키호테의 죽음을 설명하면서 우리 인간의 본성을 곧바로 들여다보게한다. 돈키호테 주변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만하지 않는다.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질녀는 특히 그러하다. 보통의 문학작품들이 필요한 부분만 아름답게 조각하여 보여주지만, 돈키호테라는 작품은 우리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찢어버린다. 그리고 그 속성을 곧바로 보여준다. 이는 우리의 현실을 곧바로 보라는 불교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그렇게 박웅현은 불교의 관점에서 책을 읽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한알의 밀알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우리의 삶이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이 바로 불교의 가르침이다. 박웅현의 인문학 강독회와 이를 묶어서 편찬한 '책은 도끼다.''다시, 책은 도끼다.'라는 책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불교 철학의 깊이 있는 사유를 박웅현이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쉽고 재미있게 풀이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참선을 통해서 깨달음의 세계에 진입하는 스님의 모습을 박웅현의 모습에서도 발견한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12-09 15: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박웅현님 책
도끼! 리커버도 출간 되었네요^^

강나루 2021-12-10 06:0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좋은 정보도 감사해요^^

쎄인트saint 2021-12-09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강나루 2021-12-10 06:0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시길...

thkang1001 2021-12-09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리뷰에 선정 되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강나루 2021-12-10 06: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축하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하라 2021-12-09 1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강나루 2021-12-10 06: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12월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1-12-09 2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강나루 2021-12-10 06:02   좋아요 1 | URL
부지런한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러블리땡 2021-12-10 0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강나루 2021-12-10 06:03   좋아요 0 | URL
러블리땡님 감사합니다.

러블리땡님도 행복하게 주말 보내세요.

물감 2021-12-10 0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당선 축하해요😀
좋은하루 되시길요😉

강나루 2021-12-11 07:12   좋아요 1 | URL
물감님 감사합니다^^
 
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락방, 독서와 수업 사이에서 한 선생님이 '달까지 가자'라는 책을 읽고 가상화폐에 대해서 대화를 하고 싶다하였다. 내키지는 않지만 책을 읽어 내려갔다. 내가 소설책을 잘 읽지 않는 이유는 뻔한 줄거리 때문이다. 몇페이지만 읽어보면 결론이 눈에 들어오는 책들은 읽고 싶은 마음을 멸균시켜버린다. 장류진의 소설 '달까지 가자'를 읽으며,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쪽박차게되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러나, 장류진의 '달까지 가자'는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 그것이 이책을 읽으며 느낀 유일한 호감이다. 돈에 미쳐있는 대한민국에서 가상화폐라는 지극히 위험한 곳에 자신의 전재산과 빚을 끌어모아 투자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두둔하는 소설로 읽혔다. 장류진은 과연 '달까지 가자'라는 책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가 말하려는 의도와는 달리, '달까지 가자'는 청년들에게 가상화폐에 투자하도록 독려하는 역할을 하진않을지 걱정이 된다. 가벼운 문체에 가벼운 주제를 담아 가볍게 읽고 책을 던져버릴 수 있도록 책을 썼다. 우리의 삶이 가볍지 않을진데 가벼운 책을 읽은 것이 못내 씁쓸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거서 2021-09-02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상화폐에 대해 대화를 하려면 다른 책을 먼저 읽어야 하지 않나요. 소설이 아니라… 가상화폐의 근본적인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쪽박 차는 경우부터 가상화폐에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감히 말씀 드립니다만, 가상화폐를 투기의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첫 단추를 잘못 끼는 것과 다름이 없거든요.

강나루 2021-09-03 19:45   좋아요 0 | URL
네 공감합니다.
제가 가상화폐에 관심이 없어 깊이 있는 책부터 읽자는 제안을 안했네요
 
마음의 부력 - 2021년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승우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대 예술이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예술 분야만의 일은 아니다. 시가 더 이상 대중과 가까이 있지 못하고, 소설도 비평가들이 좋아하는 작품과 대중이 좋아하는 작품이 같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많은 소설을 읽었던 내가, 대학 진학후 소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설을 만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이상문학상 작품집 '마음의 부력''을 꺼내들었다. 비평가들에게 대중의 눈에 맞추라고 요구할 수 없기에 나의 눈에 맞는 작품을 뽑아 보기로 했다. 2021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소개된 작품에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을까?


  제44회 당선작들은 대부분 가족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 작품들이다. 대상 수상작도 가족간에 있을 수 있는 어머니와 아들, 형제간의 미묘한 갈등을 소재로한 이승우 작가의 '마음의 부력'이다. 우리 영화에서 흥행 코드는 '어머니'이다. 어머니의 희생을 소재로한 작품은 한국인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치매 초기의 어머니와 먼저 저세상으로 간 형이라는 소재는 흥행에 적격이다. 게다가 미스터리를 풀어가듯 단서들을 찾아서 진실을 밝히는 전개 형식은 독자를 빨려들게 만들었다. 이러한 이승우 작가의 서술방식은 '부재증명'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나의 존재를 스스로 증명하지 못해서 타인에게 이를 부탁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담긴 소설 '부재증명'을 읽으며, 주인공이 혹시 헤리성 성격장애이거나, 아버지의 배다른 동생이 금천에 실존했을 가능성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이승우 작가만의 흡입력은 탁월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개방식과 눈물샘을 자극하는 소재는 영화에 익숙한 대중들에게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사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어머니의 존재는 '신과 함께 1'에서 보았던 내용이고, 단서를 토대로 진실에 다가가는 전개방식은 외국의 많은 영화들에게 흔히 보았던 전개 방식이다. 이승우 작가의 작품은 훌륭하지만, 내가 심사위원이라면 그의 작품을 대상의 반열에 올려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수작 중에서 재미있는 작품이 많았다. SF 소설을 읽는 듯한 박형서 작가의 '97의 세계'는 무한 타임루프 속에서 딸을 구하기 위한 아버지의 부성에가 느껴졌다. 윤성희 작가는 누가나 가진 가해자로서의 양심의 가책을 소재로 잔잔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블랙홀'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장은진 작가의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은 작품을 읽는 동안 아련한 짝사랑의 기억을 소환시키며 옛 추억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천운영 작가의 '아버지가 되어주오'라는 작품은 희생자로만 비춰질 수 있는 어머니의 삶을, 어머니 입장에서 새로운 '사랑의 삶'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 속에서 감동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러나, 제44회 이상문학상 우수작들은 모두 훌륭했지만, 나의 마음에 깊숙히 다가왔던 작품은 한지수 작가의 '야심한 연극반'이었다. 어머니로 알았던 존재가 아버지였으며, 우토로라는 공간을 소재로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작품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 전개와 한일간의 아픈 역사를 상기시키는 소재, 성 소수자에 대한 성찰 등은 타작품과 분명히 비교되었다. 조그만 일상에 갖혀서 오늘의 삶에만 관심을 갖는 소설과는 달리, 한일관계의 아픈 역사를 생각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색다른 관심을 불러 일으키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의 전개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소설은 끝났지만, 소설 이후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 소설이 사소설로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섞인 말을 자주 듣는다. 2021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으며 이러한 우려를 떨쳐내지 못했다. 심사위원들이 생각하는 대상 작품에 공감하기 보다는 깊은 성찰을 하도록 나를 끌어 당기는 한지수 작가의 '야심한 연극반'이라는 작품에 대상을 주고 싶다. 심사위원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 소설이 사소설로 빠져들고 있다는 걱정은 당신들의 안목이 대중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한지수!! 그녀의 '야심한 연극반'을 내가 뽑은 대상작품으로 선정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8-21 11: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말씀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한지수 작가님의 ‘야심한 연극반‘ 때문이라도 이번 44회 작품집 꼬옥! 읽어봐야 겠네요

강나루 2021-08-21 12:13   좋아요 4 | URL
빗소리를 들으며 읽기 좋은 단편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