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인데, 1도 모릅니다만
스티븐 더수자.다이애나 레너 지음, 김상겸 옮김 / 21세기북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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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생활에서 맡겨진 일을 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알이야 한다'는 압박감을 직접 겪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압력을 주었던 경험 또한 있을 것이다. 특히 권한을 가진 사람들은 해답을 알아야 하고 지시와 보호, 명령 등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중압감을 느긴다.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곱만큼도 모르고 있을 때조차 말이다. - '마틴 린스키 서문' 중에서

 

 

'모르는 것'의 장점에 대하여

 

저자 스티븐 더수자는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경영 교육자이자 영국 런던에 소재한 경영 컨설팅 기업인 디퍼 러닝의 이사다. 애쉬리지 경영대학원에서 조직컨설팅 석사 학위를 받고, 서른 살이 채 되기 전부터 투자 은행의 부사장을 역임하며 기업의 인사, 관리, 리더십, 체제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아왔다. 이러한 기업 경험을 교육 부문에 접목한 컨설팅 능력으로 세계 MBA 랭킹 1위로 꼽힌 IE 경영대학원의 경영연구원이 됐다.

 

이후 시카고 대학 부스 경영대학원

 

 

 

다이애나 레너는 국제적 컨설팅 기업인 언차티드 리더십연구소의 공동 창립자이자 낫노잉연구소(Not Knowing Lab)의 소장으로 경영 컨설턴트이자 강사다.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여러 나라를 망명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미지의 세계에 부딪히며 적응하는 삶을 살아온 경험은 그녀의 리더십 연구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복잡성 이론과 행동심리 연구를 통해 급변하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리더가 적응하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하버드 대학 케네디 행정대학원

 

 

 

 

 

 

 

 

 

 

 

 

특정 주제에 대한 전문 지식이 많을수록 우리는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중립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설명하기가 어려워진다. 문제를 정의할 때부터 이미 그 속에 자신의 관점이 내재되기 때문이다. 학식과 전문 지식이 다양한 관점과 가능한 해법의 탐색을 제한하기 때문에 우리는 수평적 사고를 하기 어렵고 '틀에 박힌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행동 경제학자들은 이를 기준점 편향이라고 부른다. 기준점 편향에서는 기존 지식에 의해 문제의 특성이 이미 규명돼 있거나 "고정돼 있다" 이처럼 기준점 편향은 똑똑하고 유능한 전문가가 빠지는 함정이다.

 

우리들은 사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

 

 

사고방식이 성공에 영향을 미친다

 

스탠퍼드 대학의 캐롤 드웩 교수는 왜 어떤 이는 성공하는 반면, 어떤 이는 그렇지 못한가를 연구해왔다. 그녀는 지능과 재능, 그리고 성공 간의 상관관계에 매우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자신의 저서 <성공의 심리학>에서 그녀는 능력보다는 사고방식이 성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놀라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서 우리들은 '사고방식(마인드셋)'이라는 말에 주목하자. 이는 우리의 지능과 학습 능력, 성격, 재능 등에 관해 우리들 자신에게 말하는 자기 암시적 독백으로, 우리가 아는 것을 고수할지 아니면 알려지지 않은 영역에 들어가 새로운 기술을 익힐지를 구체화한다. 그래서 그녀는 기본적 사고방식을 '고정형 사고방식'과 '성장형 사고방식'이라는 두 가지로 구분한다.

 

고정형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들은 인간의 지능과 재능, 특성 등은 이미 태어날 때 정해진다고 믿고, 이를 유전자나 문화적 조건화, 양육된방식의 유산이라고 간주한다. 따라서 이런 사고방식에 따르면 인간이 점차 향상될 수 있다손치더라도 그렇게 많이 변할 가능성은 없다고 단정한다. 반면에 성장형 마인드셋은 개개인의 타고난 재능과 특성이 다를지언정 순전히 연습과 끈기 있는 노력을 통해 이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성공할까 아니면 실패할까?"

"내가 이길까 아니면 질까?"

 

드웩의 주장에 따르면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증명하고,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에게 능력을 입증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방식을 갖게 되면 우리는 자신이 잘한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 일은 피하게 된다. 무언가 처음 시도할 때 우리는 완전무결하기를 원하고, 만일 결점이 있으면 당연히 그것을 숨기고 싶어 한다.

 

고정형 사고방식의 사람은 실패를 했을 때 수치심을 느끼고, 자신과 비교가 될 만한 사람들보다는 자신을 더 나아 보이게 할 사람들을 주변에 두고 싶어 할 것이다. 고정형 사고방식은 지식의 경계에 도달했을 때 치명적인 장애물이 된다.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실험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초심자의 마음가짐을 가져라

 

'모르는 것'은 참선 수행에서 강조되는 사항이다. 이를 '초심자의 마음'이라고도 한다. 전문가들은 어떤 주제에 대해 스스로 깊이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자신이 가진 선입견 때문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초심자들은 참신하고 편견 없는 눈으로 이를 볼 수 있다. 즉 초심자의 마음으로 실천한다는 것은 사전에 만들어진 생각이나 해석, 판단 등에 얽매이지 않고 충족하는 능력을 기른다는 의미인 셈이다.

 

사실 우리가 자신의 생각으로 가득할 때면, 새로운 배움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나 그대로의 현실에 대응할 능력을 잃게 된다. 초심자의 마음은 우리의 경험과 지혜를 없애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신선한 관점에서 상황을 보는 데 우리의 경험과 지혜가 오히려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돕는 마음가짐이다.

 

더 큰 성공을 거둘수록 우리는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안다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모든 프로젝트와 모든 문제는 각각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에 본 적이 있는 문제인 양 새로운 도전 과제에 접근해서 이미 알려지고 검증된 해법을 적용한다면 결국 실수를 범하게 될 것이다. 어리석게도 이렇게 말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모든 걸 다 알아요.

나는 오랜 경력을 쌓아왔고 경험해보지 못한 문제란 없어요"

 

 

 

통제하지 말고 신뢰하라

 

런던 웨스트민스터 경영대학원의 기업경영학 교수인 블라트카 흘루픽은 전통적인 명령과 통제 방식의 접근법에서 협력적인 접근법으로 전환한 조직을 전문적으로 연구한다. 그녀는 오랜 연구를 통해, 직원들에게 자신의 관심에 따라 조직을 자체적으로 편성하고 새로운 생각을 실험할 수 있는 자유를 주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성과를 내려는 동기를 부여받을 뿐 아니라 조직의 최종 결과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통제와 힘을 포기하면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여건을 창출할 수 있다.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으며, 더 많은 일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을 다루는 우리의 능력은 기꺼이 통제력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를 다루려는 마음가짐과 관련 있다. 우리의 도전 과제는 전문 지식만큼이나 무력함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이것은 허무주의의 공간이 아닌 겸손의 공간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전문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이 아는 것의 경계를 넘어서야만 이전에는 몰랐던 여러 가지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낫 노잉, 불확실성을 기회로 바꾸는 기술

 

일찌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우리들에게 무지함을 일깨우려고 "너 자신을 알라"라는 델포이 신전의 경귀를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다녔다. 스스로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바로 진정한 앎의 시작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 제목 '낫 노잉Not Knowing'도 마찬가지다.

 

크게 성공한 리더들은 불확실성, 즉 '모르는 것'을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여기서 길을 찾는다. 그런데, 1도 모르면서 '모르는 것'에 대한 탐구를 하지 않고 아는 척 하는 리더들이 많다. 비단 이는 리더들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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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대를 위한 사기 - 미래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권하는 인간학의 고전
사마천 지음, 김원중 엮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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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역사가이자 탁월한 문장가인 사마천이 궁형宮刑의 치욕을 견뎌 내고 자신의 혼을 담아 써낸 <사기史記>는 삶을 살아가는 지혜와 통찰이 깊이 밴 고전이다. '사기'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역사에 대한 기록을 뜻하는데 우리에게는 사기 가운데에서도 백미로 평가받는 <열전>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 '머리말' 중에서

 

 

73편의 명장면 이야기

 

동양의 명품 고전인 <사기>는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아들 사마천이 집필한 역사서다. 이 책은 중국 고대 전설상의 제왕 황제黃帝 시대부터 사마천 본인이 당시 살았던 한무제漢武帝 때까지 2천여 년의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다. 특히, 주나라의 붕괴 후 수많은 제후국 50개 중 마지막까지 존재했던 전국칠웅戰國七雄, 즉 진秦, 한韓, 위魏, 제齊, 초楚, 연燕, 조趙 등의 흥망성쇠 과정이 당시의 왕과 제후, 그리고 신하들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어서 한 편의 인간 파노라마를 감상하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한다면 당시의 문화, 제도, 가치관 등이 현대의 그것과는 분명 많은 차이가 있을텐데, 지금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 특히 새로운 세대들에게 과연 얼마나 중요할지 의심이 들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역사란 소위 '승자의 전유물'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말이다.

 

더구나 저자 사마천이 살았던 시기와 그 이전의 시기는 주로 전시戰時 상황이었다. 따라서 뭔가 혁혁한 전공을 세우지 않는 인물은 지배자의 눈 밖에 나기 일수였고, 심하면 죽음을 당하거나 사마천처럼 치욕적인 성기 절제라는 형벌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는 사관들에게 당연히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기록 자체가 승자를 위한 전시물이 되기 쉬웠다.

 

하지만 사마천은 달랐다. 그는 승자의 일만 기록하지 않았다. 즉 4천여 명의 등장인물들을 다루면서 성공과 실패 모두를 아우르고 양쪽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그 속에서 삶의 지혜를 발견해 후대인들에게 이를 전한다는 사실이 바로 보석처럼 빛나는 명품 고전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타인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는 치욕을 당하면서도 때를 기다린 한신, 화장실의 쥐와 곡간의 쥐가 행하는 행동을 보고서 삶의 이치를 깨달은 이사 등이 그러하다.

 

또한, 가문의 막강한 배경과 뛰어난 스펙을 갖춘 초나라의 항우는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임에도 실패의 순간을 뛰어넘지 못하고 자살로 젊은 나이를 마감하는 안타까운 장면은 수많은 실패자들에게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인지 그 길을 밝혀주는 지혜의 등불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 인간사에 거듭 반복되는 희노애락의 상황을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는지 교훈을 주기도 한다.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게 진정한 용기

 

이는 회음후 열전에 실린 내용이다. 회음후淮陰侯는 대장군 한신韓信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는 평민 시절 가난한 데다 방종한 인물이어서 타인의 추천만으로 관리가 될 수가 없었다. 또 장사를 해서 살아갈 능력도 없어서 항상 남을 따라다니며 먹고살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 대부분 그를 싫어했다.

 

일찌기 그는 마을의 우두머리인 정장亭長의 집에서 수차례 얻어 먹은 일이 있었다. 여러 달이 지나자 정장의 아내는 새벽에 밥을 지어 이불 속에서 먹어 치우고는 한신이 식사 시간에 맞춰 와도 밥을 차려 주지 않았다. 이후 한신은 화가 나서 그 집으로의 발길을 끊었다. 또 무명 빨래를 하던 한 아낙이 굶주린 한신이 하도 딱해서 빨래 작업이 끝날 때까지 수십 일 동안 밥을 준 일이 있었다. 이에 고마움을 느낀 한신은 나중에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하자, 그 아낙은 사내가 스스로 먹고살 능력이 없는 게 너무 가여워 그랬을 뿐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을 정도로 한심한 인물이었다.

 

이런 일화도 있다. 같은 마을에 사는 한 젊은이는 한신을 얼마나 업신여겼는지 "비록 키는 커서 칼을 잘도 차고 다니지만 마음속으로는 겁쟁이일 것이다"라고 말하며 "죽일 수 있으면 나를 찌르고, 죽일 수 없으면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 나가라"고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그럼에도 한신은 몸을 구부려 결국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왔다. 이 일을 목격한 시장 사람들은 모두 한신을 겁쟁이라고 비웃었다.

 

사실 이런 치욕을 견디는 자가 살아남을 기회를 잡는 법이다. 회사도 그렇다. 호기롭게 사직서를 던지는 사람이 처음엔 대단해 보일지 몰라도 나중을 보면 비록 진급이 늦더라도 끝까지 회사에서 버틴 사람이 더욱 성공하는 사례들이 더 많다. 한신도 그랬다. 묵묵히 자신의 실력을 길러 나중엔 크게 출세를 해서 가랑이 밑을 기도록 했던 자에게 벼슬을 주고, 빨래하던 아낙에게 보상도 했다. 이것으로 한신의 삶이 끝났다면 해피엔딩일 것이다. 그렇지 못했다.

 

대장군으로 임명된 한신은 대군을 이끌고 동북방을 원정, 조趙나라와 연燕나라를 평정했다. 한편, 유방은 동남쪽에 있던 제나라까지 군사력으로 정벌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되어, 역이기를 사신으로 보내 투항을 권유하도록 했다. 마침내 역이기는 설득에 성공했다. 이 소식을 들은 한신은 군대를 쉬게 하려 했다. 이때 모사 괴통이 한신을 부추겼다.

수만 대군을 이끌고 힘든 전투로 조나라 50여 성을 겨우 얻었는데 역이기가 세 치 혀로 제나라 70여 성을 얻는 알을 가만히 보고 앉았을 수 있냐고 말이다. 이에 한신은 제나라를 향해 '닥치고 공격'에 나섰다. 그러자 제나라 왕은 역이기를 솥에 삶아죽이고 도망쳐 항우의 원조를 청했다. 결과적으로는 한신의 대성공이었다. 항우가 보낸 20만 대군을 격파하고 제나라를 취했기 때문이다.

이후가 문제였다. 한신은 유방에게 사람을 보내 자신을 제나라 왕에 책봉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이유는 제나라 영토는 항우와 직접 마주치는 곳이라 불안한 제나라 백성의 민심을 안정시키려면 임시로 왕假王으로 책봉해야 안정적인 통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항우군의 포위에 둘러싸여 난처한 지경이었던 유방은 한신의 이런 요청에 화가 났지만 측근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진짜 왕을 하라고 했던 것이다.

 

나중에 유방은 순시를 명목으로 한신의 땅에 도착해 영접나온 한신을 즉각 체포해 역모를 도모했다는 누명을 씌워 기름에 삶아 죽이라는 형벌을 내렸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고사 '토사구팽兎死狗烹'이다. 토끼 사냥이 끝나고 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는다는 뜻인데, 자신의 분수를 넘은 한신이 이런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유방을 도와 큰 공을 세운 공신이지만 이를 두고 사마천은 "한신의 한계였고 비극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쥐 두 마리를 보고 인생 지혜를 터득하다

 

이는 이사 열전에 실린 내용이다. 초나라 사람인 이사는 진시황을 만나 진나라의 통일 대업을 이루는 데 큰 공을 세워 재상까지 지낸 인물이다. 그가 젊었을 때의 일이다. 하급 관리로 지내던 시절 관청의 화장실에 거주하는 쥐들은 더러운 것을 먹다가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가면 놀라서 무서워 하는 꼴을 목격했다. 반면에 곡식 창고에 사는 쥐들은 사람이나 개를 전혀 겁내지 않고 편안하게 곡식을 파먹고 있었다.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가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이 처한 환경에 달렸을 뿐이구나"

 

이런 깨달음을 얻는 그는 즉시 관직을 버리고 순자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제왕의 기술을 배웠다. 공부를 마친 그는 고국인 초나라의 왕은 섬길 만한 인물이 못 되고, 여섯 나라는 모두 약소국인지라 진나라로 향했다. 당시 진나라의 실력자 여불위에게 신임을 얻은 후 진나라 왕에게 유세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 게으름을 피우고 서둘러 이루지 않으면 제후들이 다시 강대해져서 서로 모여 합종하기로 약속할 테고, 그렇게 되면 황제黃帝 같은 현명한 왕이 있을지라도 천하를 손에 넣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진나라 왕은 곧 이사를 궁궐의 일을 총괄하는 우두머리 관리로 삼고 이사의 계책을 듣고 은밀히 황금과 주옥으로 제후들에게 유세하도록 했다. 뇌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에게는 많은 선물을 보내 결탁하고, 말을 고분히 듣지 않는 사람은 예리한 칼로 찔러 죽였다. 또 군주와 신하 사이를 이간질하는 계략을 사용했다.

 

 

권토중래捲土重來

 

힘은 산을 뽑을 수 있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한데,

때가 불리하여 추가 나아가지 않는구나.

추가 나아가지 않으니 어찌해야 하는가!

우여, 우여, 그대를 어찌해야 하는가!

 

이는 항우 본기에 실린 내용으로, 밤에 한나라 군대가 사방을 포위해 초나라 노래를 부르자 크게 놀란 항우가 비분강개한 나머지 시를 지어 노래를 불렀다고 알려진 것이다. 여기서 란 항우가 타고 다니던 준마의 이름이요, 란 바로 늘 함께 있었던 절세미인 우 미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 밤에 한나라의 군대가 초나라 진영으로 불렀다는 노래는 지루한 전쟁에 지친 초나라 군대에게 귀향 본능을 불러 일으킨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이를 '사면초가四面楚歌'라고 한다. 팔년 동안 칠십여 차례의 싸움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던 항우는 명문가의 후예로 실력 하나 만큼은 당대 최고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아무리 짓밟혀도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는 잡초 같은 유방을 이겨내지 못했다.

 

생과 사라는 갈림길에 필연적으로 놓이는 전쟁에서 최선의 방책은 바로 '생의 추구'일 것이다. 하지만 명문가의 후손답게 정도正道만을 고집하던 항우에게 비겁한 항복과 도망이란 그에게 너무나도 큰 치욕이었을 것이다. 그는 결국 부하들에게 장수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는 최후의 죽음을 택했다. 사실 대장부란 때로는 치욕을 견뎌낼 수 있어야 빛나는 성공을 맛볼 수 있는 법이다. 항의 죽음은 정말 안타깝다. 시대가 진정한 영웅을 버리고 간교한 인물을 선택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후대의 시인들은 항우가 권토중래를 도모하지 않은 것을 너무나도 아쉬워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인데 말이다.

 

이기고 지는 것은 전쟁에서 기약할 수 없는데

치욕을 안고 견디는 것이 사나이다.

강동의 자제들 중에는 인재가 많으니

흙을 말아 올려 다시 오는 날을 알지 못한다.

 

-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제오강정題烏江亭>

 

 

<사기>는 인간학의 고전이다

 

중국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 초심자가 <사기>를 읽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은 매 편마다 김원중 교수의 <해설〉을 덧붙였기에 큰 도움이 된다. 73편의 명장면 속에 등장하는 합종연횡合從連衡, 와신상담臥薪嘗膽, 사면초가四面楚歌, 권토중래捲土重來, 토사구팽兎死狗烹 등의 고사성어 유래를 배울 수 있는 덤까지 얻을 수 있다.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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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1 - 형제의 의를 맺다 이희재 삼국지 1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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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는 숱한 이야기의 물자리가 흘러갑니다. 잔잔한 수면 위의 파동이 일기도 하고, 장대비가 내리치며 홍수가 이는가 하면, 거센 파도가 밀려와 평온한 마음을 덮치기도 합니다. 사람과 사람, 세럭과 세력이 맞물리고 부딪히며 대륙을 질러가고, 산과 들을 굽이 돌아 흐르며 천지를 뒤흔듭니다. 1800여 년 전, 고대 중국에서 구름처럼 일었던 인물들의 이야기입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나누어진지 오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진지 오래면 반드시 나누어진다

 

저자 이희재는 1952년생으로 한국 만화에 리얼리즘의 기운을 불어넣은 만화가다. 완도의 신지섬에서 나고 자란 그는 열 살 때 읍내에 나가 처음 만홧가게를 발견했으며, 스무 살 무렵에 만화계에 입문해 십여 년의 습작기를 거치다가 1981년에 <명인>과 <억새>를 발표하며 만화가계에 등단했다.

 

어린이 만화 <악동이>를 그리고, 산업화 과정의 도시 주변부 인물들을 <간판스타>에 담아냈다. <한국의 역사>,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저 하늘에도 슬픔이> 등을 그리고, <나 어릴 적에>로 2000년 대한민국출판만화대상을, <아이코 악동이>로 2008년 부천만화대상을 수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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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인생 - 저주가 아닌 선물
린다 그래튼.앤드루 스콧 지음, 안세민 옮김 / 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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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훨씬 더 길어졌다. 지금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본보기로 삼는 롤모델보다, 현재의 관행이나 제도적 합의보다 더 오래 살 것이다. 앞으로 많은 것들이 변할 것이고, 이러한 변화의 과정은 이미 진행 중에 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책을 쓰게 된 목적이다. - '서문' 중에서

 

 

100세 인생, 저주가 아닌 선물이 되려면

 

책의 저자 린다 그래튼리버풀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런던 경영대학원에서 경영 실무를 가르치며, 현재 <일의 미래>라는 과목을 담당하면서, '인적 자원 전략'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의 특별회원으로 활동했고, 경영학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싱커스Thinker 50에 5년 연속 선정되기도 했다. 2015년에는 런던 경영대학원에서 최우수 강의 교수로 뽑혔다.

 

그녀는 '한국의 독자들에게'라는 글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기대 여명이 가장 긴 나라 중 하나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기대 여명과 건강 기대 여명에 집중하면 한국은 세계 3위에 해당한다" 라고 말한다. 참고로 '2017 세계경제포럼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인 기대수명은 82.2세로 발표하고 있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인의 기대 여명은 28년 늘어났다. 실제로 100세 이상 인구가 최근 5년 동안 거의 2배 증가해 3,500명에 달하며, 2030년에는 1만 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처럼 빠르게 증가한다면 오늘 태어난 한국인 대다수의 기대수명은 107세를 넘게 된다. 아마도 현재 오십세 미만인 사람도 100세 인생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최근 이슈는 저출산, 저성장, 고령화 등이었다. 그런데, 고령화에 대한 논의는 주로 기대 여명이 길어진 데 따르는 문제에만 집중한다. 이에 따라 우리들의 수명이 늘어난 것을 선물이 아닌 저주로만 여겨질 때가 많다. 즉 몸이 아프고, 기억력은 떨어지고, 살림살이는 팍팍하고, 사회는 고령자를 외면하고 있으니 오래 살아도 사는 게 지옥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방향은 장수를 축복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령화 시대에 발맞추어 정부가 정책을 잘 세우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도 중요하지만, 실제로는 개개인이 이렇게 길어진 삶에 대응하여 적절하게 변화해야 한다. 나아가 이런 변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하겠다.

 

"이 세상에서 죽음과 세금 말고는 확실한 것이 없다"

- 벤저민 프랭클린

 

 

 

 

건강하게 나이들 것인가?

 

과거에는 장수란 오랜 세월 동안 늙은 상태로 지내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은 이런 의미가 완전히 반전되어 사람들이 젊음을 오랫동안 간직할 것이라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징후는 첫째로 18~30세의 젊은이들이 이전 세대의 젊은이들과는 다르게 행동하고 둘째로 유연성과 적응성을 통해 관습에 얽매이지 않으며 셋째로 나이와 단계가 일치하지 않으므로 세대 간의 교류가 더 많이 나타난다.

 

예전에는 환갑, 즉 나이 육십을 넘기면 잔치를 벌이고 축하햇다. 하지만 요즈음은 환갑 잔치라는 말자체가 없다. 그만큼 노인들의 수명이 과거에 비해 훨씬 길어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진화된 의료 시스템과 건강 보험 등으로 인해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고 진료함으로써 향후 기대 수명은 점점 더 늘어날 게 분명하다. 따라서 이젠 과거의 지표가 별로 의미가 없다. 길어진 수명에 걸맞게 건강을 유지하는 삶을 스스로 확보해야 한다. 

 

 

빠른 속도로 변하는 노동 환경

 

우리들은 이제 과거에 비해 더 오래 살게 되었기 때문에 삶을 누리는데 필요한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하는 기간을 반드시 늘여야 한다. 이처럼 일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고용 환경도 급격하게 변할 것이다. 따라서 길어진 삶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제대로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자면 급변하는 고용 환경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예로부터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은 개개인에게 숙명과도 같은 과업이다. 하지만 미래에 다가올 고용 환경의 변화는 불확실하다. 다만 지난 100년을 돌이켜보면 전기, 냉장고, 세탁기, 자가용, 진공청소기 등 커다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기에 앞으로의 삶을 예상한다는 게 무의미할지라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스스로에게 재교육과 재투자가 수반되어야 한다.

 

"당신이 모든 것에 준비가 되어 있는 게 아니라면, 아무것에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 폴 오스터, 미국 소설가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들

 

돈으로 무형 자산을 살 수는 없지만, 무형 자산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돈과 재정적인 안정이 필요하다. 헬스클럽 회원권을 구매하거나 가족과 휴일을 보내거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가 시간을 즐기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있어야 무형 자산에 투자할 수 있고, 이러한 무형 자산이 재정적인 성공을 이룩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는 중요한 연관 관계이고, 이 두 가지의 적절한 조화는 100세 인생을 설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생산 자산~ 기술과 지식 등 직장에서 높은 소득을 얻게 한다

활력 자산~ 정신적, 육체적 건강과 웰빙(행복한 삶의 결정적 요소)

변형 자산~ 자기 인식, 다양한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 능력, 개방적 태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

 

앞으로 100년을 사는 동안 우리들은 최소 2~3개 이상의 직업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다양한 도시 심지어 다양한 국가에서 살게 되는 경우도 많아질 것이다. 20세기에는 교육을 받고, 직업 활동(고용)을 하고, 이후 퇴직을 하는 3단계 삶이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미래에는 다단계의 삶이 보편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삶이 길어지면서 3단계의 삶은 확실하게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많은 기회가 있다. 이에 저자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들을 그려보면서 무형 자산과 유형 자산의 균형을 달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물론 이런 시나리오들은 단순한 예시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가능하고도 바람직한 삶이 무엇인지, 이러한 삶이 시나리오의 세부 내용에서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성찰해보아야 한다. 결국 이는 개개인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새로운 일을 감행할 기회  

새로운 단계는 새로운 일을 감행할 기회를 창출한다. 그렇게 새로운 일을 감행하면 경험을 통해 배울 기회가 생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행위를 통해 배우는데, 이러한 새로운 단계는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고 나서 그것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를 곰곰이 생각할 수 있는 멋진 기회가 된다.

 

3단계의 삶에선 교육에서 고용, 고용에서 퇴직에 이르는 두 차례의 과도기가 있었다. 다단계의 삶에서는 이보다 더 많은 과도기가 있다. 즉 교육, 고용, 퇴직이라는 단계가 각자의 인생에서 여러 번 나타나고, 2~3개의 서로 다른 직업 활동이 겹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책에서 평생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 즉 '변형 자산'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시간의 재창조

 

책의 중심 주제는 추가로 주어지는 시간의 선물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시간을 어떻게 구성하고 배열할 것인가, 특별한 시간 속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시간을 한 덩어리가 아니라 1주, 1일, 1시간 심지어 1분 단위로 생각해 볼 것이다. 즉 추가로 주어지는 주, 일, 시간, 분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있다.

 

시간을 돈으로 전화하기 위하여 일을 할 것인가,

기술로 전환하기 위하여 강의를 들을 것인가,

그냥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볼 것인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시간이 고정되어 있고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시간에 대한 인식은 사회 관습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 관습은 삶을 단계로 나누는 일반적인 시간 모델에서 분명하게 나타나지만, 이보다 작은 단위의 시간에서도 나타난다. 하루에 일하는 시간, 1주일에 일하는 날의 수, 주말의 유무, 휴일의 수, 여가 시간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이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변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변해갈 것이다.

 

1930년, 저명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우리 후손의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글에서 경제가 발전하면 여가 시간이 많아져서, 인류에게는 이러한 여가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는 방법을 찾는 일이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혜안인가. 물론 케인스가 주장한 바는 장수長壽가 초래한 뜻밖의 횡재는 아니었지만 우리의 여가 시간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여가를 재창조의 시간으로 활용해야 한다.  

 

 

 


미래에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다양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100세 인생이라는 선물은 이러한 다양성에서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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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쿠데타 - 우리가 뽑은 대표는 왜 늘 우리를 배신하는가?
엘리사 레위스 & 로맹 슬리틴 지음, 임상훈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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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5일 유럽의회 선거 당시, 절반이 넘는 프랑스인이 투표자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 단위 선거에서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이 제1당을 차지했다. 투표 당일 저녁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정치권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마치 입이라도 맞춘 듯, 정치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국민의 메시지를 들었다'든가, 이제는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든가 따위의 말들을 늘어놨다. 하지만 이런 멋진 말들을 쏟아 낸 지 몇 분도 안 돼, '늘 그렇듯' 그들은 원래 하던 대로 돌아갔다. 여야는 서로 상대방의 실패를 비난하면서 국민의 분노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기 급급했다. - '머리말' 중에서

 

 

민주주의 혁신을 위한 정치적 실험들

 

책의 공저자 엘리사 레위스는 기획자이자 에세이스트이며, 로맹 슬리틴은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정치학과 교수이자 컨설턴트다. 두 사람은 미래 사회의 정치경제 모델을 탐구하며, 민주주의의 혁신 방안들을 개발하고 실천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이 책은 두 사람이 2년 동안 전 세계에 걸쳐 일반 시민, 시민 활동가, 연구원, 해커, 지역 의원, 국회의원 등 80명에 가까운 민주주의의 실험가들을 만나 취재한 결과물이다.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염증이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시민 쿠데타'라는 제목을 붙였다.

 

두 사람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와 극우 포퓰리즘이 공존하는 기이한 현상을 바라보며, "대체 우리의 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생길 걸까?" 의문을 갖는다. 그리고 그 의문에 답하기 위해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났다. 프랑스에서부터 아르헨티나, 튀니지, 아이슬란드, 브라질, 스페인 등을 오가며 2년 동안 일반 시민, 시민 활동가, 연구원, 해커, 국회의원, 공무원 등을 포함해 80여 명을 만나 인터뷰했다.

 

이들이 지나간 장소는 민주주의의 막다른 골목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정치를 위한 혁신적 실험들이 꽃 피우고 있는 곳이었고, 이들이 만난 사람들은 그 실험실의 가장 열정적인 연구자이자 실천가였다. 상상력의 힘을 믿으면서 동시에 그 상상을 행동으로, 변화로 거침없이 일구어 내는 이들의 목소리들을 책 한 권에 오롯이 담았다.

 

 

 

 

왜 극우 정당에 투표할까?

 

유럽에서는 극우 정치가 '외부의 적들'을 표적 삼아 '우리'의 가치, '우리'의 사회적 모델, '우리'의 정치가 썩어 들어가고 있다고 선동하면서 성정하고 있다. 그리스의 황금새벽, 독일의 국가민주당, 헝가리의 요빅 같은 정당들이 빠르게 커 가고 있다. 2016년 4월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극우 정당 후보가 1차 선거에서 큰 폭으로 선두를 차지했으며, 결선투표에서도 아주 적은 표차로 패배한 것을 우리는 보았다. 

 

극우 정당을 향한 투표는 보통 정치에 대한 혐오의 징후이다. 포퓰리즘 정당의 지도자들은 민중의 목소리로 행세한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일반 시민들의 관심사를 대변한다고 자랑해도 실상은 가족 경영, 부패, 불투명한 재정 등 과거의 구습을 가장 잘 답습하고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소수집단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과연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을까? 어쨌든 시국이 어수선할 때면 극우 포퓰리즘은 민중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반향을 얻게 된다.

 

 

선거는 잊어라

 

우리는 투표가 정치 생활의 최종 도구이고 시민 활동의 유일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구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1968년 5월 혁명 당시 이미 '선거는 속보이는 계략'이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이 구호로 돌아가지는 못할망정 우리 시대 민주주의의 구호가 '국민은 투표, 나머지는 정치인'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비틀거리고 있다고 확신한다. 현재의 민주주의는 형식상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와 깊은 괴리가 있고 21세기 문화와 기술적 가능성에 견주어 충분하지 않은 '미완'의 체제인 것이다. 이제는 입헌주의자 도미니크 루소가 희망했듯이, 시민의 권력이 "두 선거철 사이에 놓인 시간 속에서도 지속적이고 연속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도구와 장치를 상상하는 방향으로 창조성을 자극하고 격려, 고무할 때다. 

 

 

새로운 정치를 코딩하라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는, 가슴에 훈장 단 고참 좌파 운동가들의 '총파업' 예를 들고 있다. 그들은 "콜 센터에서 일하거나 피자 배달, 또는 상점에서 일하는 젊은이들" 같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조의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고 실직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이글레시아스는 정치적 개념이, 시민들의 구체적 경험에 반향을 불러일으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포데모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진로를 공유한다.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겠다고 '자본주의'를 말하면 사람들은 바로 우리를 특정 범주에 넣어 버린다. 하지만 경제 민주주의를 논하면 같은 주제를 말하고 있지만 사람들을 더 공감으로 이끌 수 있다. 

 

 

"국회의원을 구합니다"

주요 선거에서 '선출될 수 있는' 자리는 이미 내정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원들은 필연적으로 소외된다. 그래서 당 지도층이 공약을 만들고, 공천을 행사하는 동안 이들에게는 거의 대부분 지도부의 감독하에 지역 모임 주관 등 비전략적인 임무가 주어진다. 선거는 일반 시민들은 접근할 수 없도록 굳게 닫힌 문 안에서 밀폐되고 계급화된 정당들의 볼모로 전락했다.

 

<나의목소리>는 미리 정해진 당파도, 정치적 이데올로기도 없다. 이런 것들이 사전에 정해지면 토론을 경직시킨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치란 틀에서 벗어나면 안 되고, 동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기존 정당의 모델로부터 해방되는 데 있다고, 즉 '안정 지역'을 넘어서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네트워크 당

 

네트워크 당은 겨우 창당 두 달 만인 2013년 10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지방선거에 참가함으로써 제도권 정치에 뛰어들었고 22,000표(총 유권자의 1.2%)를 얻어 2차 투표까지 올라갔다. 비록 의석을 차지하기엔 모자랐지만 유권자들에게 그 존재와 정신을 각인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네트워크 당의 멤버 아나-리스 로드리게스 나르델리는 "우리 당 후보가 당선된다면, 그들은 우리 공동체의 회원으로서 데모크라시 OS플랫폼에 나타난 전체 의지를 제도권에 전달하는 일꾼이 될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 네트워크 당 의원들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결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의석에 앉아서 시민들이 원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 사항을 전달하며 그들이 지지하는 시민단체의 결정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들이다.

 

 

디지털 시대, 유동하는 민주주의


대의정치 모델로 액체 민주주의가 갖는 이점은 새로운 리더십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며 조직적이고 수평적인 신뢰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식은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시민과 대표자 사이의 간극을 좁혀 줄 해답을 제공하며 개인 간의 상호 협동을 도와서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해 민주적 토론에 적합한 모델이기도 하다.

 

"액체 민주주의는 뛰어난 집단 지능 도구예요"

- 줄리아 레다 의원, 유럽의회 해적당 대표

 

 

 

온라인 플랫폼은 공개된 곳에서 협력을 가능하게 하며, 여기에서 시민들은 공공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법률을 제안하고 토론하고 작성한다. 시민 발의제는 시민사회 프로젝트와 헌법적 권리가 창의적으로 결합한 형식으로, 효과적으로 '민주주의를 민주화'한다.

 

 

크라우드 소싱 시대의 법률

 

우리는 이제 협력 입법 혹은 법률 크라우드 소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몇 안 되는 선출직 대표나 엘리트가 아닌 수천 명 시민들이 법률 제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최대한 많은 개인들이 입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세계 여러 곳에서 열렬한 활동가들이 방법과 도구를 개발하고 개선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토론이 완료되면 투표장이 만들어지고, 여기에서 각자 자신의 입장을 정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의원이 해당 법안에 '찬성' 표를 던지는지 '반대' 표를 던지는지 확인할 수도 있다. 데모크라시 OS는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를 인터넷으로 재창조하여 모든 사람이 모든 법을 집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토론할 수 있게 한다.

 

 

시민 입법부

고대 아테네 인들은 비전문인에 의해 다스려지는 입법 시스템의 효율성을 경험으로 증명했다. 한편으로는 권력의 집중과 소모적 정치 논쟁을 피하면서, 더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그들의 정치적 인식과 책임감을 고양시켰다. 법률 제정 권한을 가진 시민은 종종 복잡한 사안을 두고 회의를 반복해야 했고, 이때 강조된 미덕은 토론협력이었다.

2009년 들어선 아이슬란드의 첫 좌파 정부는 직접 시민 대표를 뽑아서 이들에게 개현 법안 마련의 권한을 주기로 결정한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국민 스스로 헌법 토대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에스토니아와 아이슬란드의 경험은, 일반 시민들의 토론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잘 보여 준다. 정치에 문외한인 시민들이 모여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과 상반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여 노력함으로써 결국 매우 적절하고 구체적이며 훌륭한 제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다양한 과정을 통해 시민들을 선출했고 디지털 방식을 도입해 시민 참여가 더욱 쉬워졌다. 참가자들의 집단 지성은 한층 더 고취될 수 있었다.

 

 

자기 땅의 주인이 된다는 것

 

자기 땅의 주인이 된다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 핵심이다. 민주주의는 사람이 살고 일하고 자라는 곳, 그들이 서로 알아 가고 인정하며 미래를 함께 건설해 나가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정치는 불가능의 예술이라는 고정 관념에 맞서서 우리는 구체적인 유토피아, 다시 말해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다시 걸머지고 개척해 나가는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섰다.

그르노블에릭 피욜 시장은 "우리가 진정으로 시민들에게 결정 권한을 주기로 한다면, 안락하고 편안한 우리의 안전지대로부터 빠져나올 용기가 필요합니다"라고 강조한다. 이어서 시민 참여 정책 담당관인 파스칼 클루에르는 이렇게 말한다. "기존의 전통적 대표들은 빠른 결정권을 잃었지만, 대신 우리는 행동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집단적 힘을 얻었습니다"

 

 

모든 것이 정치다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는 인권 운동가 출신으로 2011년 서울시장에 당선된 박원순 시장'서울시 나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서울시의 대도시화로 발생한 사회 경제적 문제를 해소하고 주민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려는 데 있다. 서울시는 스타트업 업체와 일반 시민들이 시 당국의 공개된 공공 데이터를 활용하여 사회적·경제적 목적의 협력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도록 지원한다.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하여

 

정치 개혁은 오로지 정치 책임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오래 전부터 우리는 우리의 시민권을 포기하고 그저 대표들이 우리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기만을 바라 왔다. 더는 이런 수동적인 태도로 바라는 결과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할 수 없다. 우리는 확신과 끈기를 가지고 다양한 혁신을 시도하고 실현함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민주주의를 함께 이루어 나가야 한다. - '맺음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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