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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1 - 형제의 의를 맺다 ㅣ 이희재 삼국지 1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8월
평점 :
<삼국지>에는 숱한
이야기의 물자리가 흘러갑니다. 잔잔한 수면 위의 파동이 일기도 하고, 장대비가 내리치며 홍수가 이는가 하면, 거센 파도가 밀려와 평온한 마음을
덮치기도 합니다. 사람과 사람, 세럭과 세력이 맞물리고 부딪히며 대륙을 질러가고, 산과 들을 굽이 돌아 흐르며 천지를 뒤흔듭니다. 1800여 년
전, 고대 중국에서 구름처럼 일었던 인물들의 이야기입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나누어진지 오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진지 오래면 반드시 나누어진다
저자 이희재는 1952년생으로 한국 만화에 리얼리즘의 기운을 불어넣은 만화가다. 완도의 신지섬에서 나고
자란 그는 열 살 때 읍내에 나가 처음 만홧가게를 발견했으며,
스무 살 무렵에 만화계에 입문해 십여 년의 습작기를 거치다가 1981년에 <명인>과 <억새>를 발표하며 만화가계에 등단했다.
어린이 만화 <악동이>를
그리고, 산업화 과정의 도시 주변부 인물들을 <간판스타>에 담아냈다. <한국의 역사>,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저 하늘에도 슬픔이> 등을 그리고, <나 어릴 적에>로 2000년 대한민국출판만화대상을, <아이코
악동이>로 2008년 부천만화대상을 수상했다. 지금은 사마천의 <사기
열전>을 그리고 있는데, 만화 그리는 것을 직으로 삼은 지 사십 년이 넘었다.
흔히 우리들은 살면서 <삼국지>를 한 번쯤은 꼭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책 속에는 세상살이의 온갖 지혜가 다 담겨 있기 때문이다. 즉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호걸, 의인과 악인,
대인배와 소인배, 충신과 간신, 충복과 배신자, 전략가와 술책가 등등을 통해 인간들의 심리를 읽어낼 수 있고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할지를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으로부터 약 1800년 전에 살았던 인물들의 이야기일지라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에게 똑같은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거울 속의 과거를 들추어 보는 시간 여행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아이를 둔 부모라면 인간에 대한 교육 자료로 활용할 만한 고전이다.
후한 말, 난세에는 영웅들이
생겨난다
기원전 770년, 주나라가 낙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춘추시대가 시작되었다. 이후 전국시대로 이어지며 드넓은 중국 땅엔 무수히 많은 나라들이 창업하고 망하기를 거듭했다. 즉 춘추전국시대의 약
550년 동안 가히 나라 간의 흥망성쇠가 각축을 벌인 셈이었다. 춘추시대는 주나라를 중심으로 제후국들이 때론 혐력하고 때론 경쟁을 했는데,
공자와 맹자 등 제자백가의 사상이 꽃을 피웠다. 이후 전국시대는 약육강식으로 통하는 전쟁의
시기였다.
춘추시대 초, 수백 개가 넘던 국가가 전국시대 후기에 접어들자 단 일곱 국가만 남는
형세가 되었다. 일곱 국가란 바로 진, 한, 조, 위, 연, 제, 초 등을 일컫는데 기원전 221년에
진나라 시황제가 하나로 통일했다. 하지만 진도 그리 오래가지를 못했다. 합치면 반드시 나누어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진이 패망 위기에 놓였을 때, 유방의 한나라와
항우의 초나라가 천하의 패권을 다투었다. 여기서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중국을 재통일했다. 한나라가 세워진 지
200여 년 지나 나라의 기운이 크게 쇠했다. 외척인 왕망이 황제의 자리를 빼앗아 신나라를 세웠지만 유방의 9대손
광무제가 왕망을 제압하고 다시 한나라의 왕조를 있는다. 이를 후한後漢이라고 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거짓이 없다.
후한 120년이 흐르자 다시 난세가 찾아왔다. 13살의 어린 영제가 즉위하자 환관들이 조정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태평도太平道가 등장하다
십상시十常侍라 불리던 환관들이 나라를 주무르자 백성들은
핍박을 당하게 되었고, 이를 견뎌내지 못하고 도적의 무리에 들거나 집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흉흉한 민심을 등에 업고 사이비 종교가
출현했다. 앉은뱅이 영감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 불치의 병도 치료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삽시간에 태평도는 굶주린
백성들 틈으로 급속히 파고들었던 것이다.
세력이 급격히 팽창해진 태평도는 이 압력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184년, 마침내
장각이 이끄는 태평도의 무리들이 후한의 전복을 시도했다. 무리의 두목인 장각은 본디 벼슬길에 나섰다가 번번이
낙방하자(당시엔 환관들에게 뇌물을 바쳐야 벼슬에 나설 수 있었음), 그는 산으로 들어가 약초꾼으로 살다가 남화노선이라는 신선인 건네 준
<태평요술>을 독파하여 비와 바람을 부르는 도술을 익혀 태평도인으로 행세하며 민초들의 삶에 뛰어들어 환자들의 병을 치료하면서 크게
인심을 얻었던 인물이다.
조정에서는 머리에 누른 띠를 두른 황건적을 물리치기 위해 세 명의 토벌군 장군을
선발했다. 황보숭, 노식, 주준이 그들이었다. 황보숭은 조조를, 주준은 손견을, 노식은 원소를 각각 휘하 선봉장으로 삼아 황건적 진압에 나서게
되었다. 비로소 <삼국지>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조조가 등장한다.
영웅 유비와
도원결의
탁현 누상촌에 살고 있는 유비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정성으로 섬겨 그 효성이 지극했다. 워낙 가난한 집안이라 돗자리를 짜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한 황실의 후손으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그의 집 옆에는 50자가 넘는 아름드리 뽕나무가 있어서 풍수적으로 귀인이 나온다는 예언이 있어 왔다. 그래서 그는 15살에
숙부의 도움을 받아 객지를 돌며 공부를 했다. 이때 대학자 정현과 노식을 스승으로 모셨고, 공손찬을 동문 형으로
시귀었다.
유비의 탁현 고을에도 황건적과 싸울 군대를 모집한다는 방이 나 붙었다. 방을 읽은 유비는
나라가 어수선할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크게 한 숨을 쉬고, 이를 곁에서 본 장비는 왜 장탄식만 하느냐고 큰 소리를 치고, 마침
지나가던 관우는 사람들이 크게 놀라겠다고 장비의 큰 소리를 나무란다. 한편, 낙양 북부위가 되어 낙양성 출입을 감독하는
조조는 당시 권세가인 환관 건석의 아저씨를 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매로 다스려 반죽음을 만들어 그의 이름을 사방에
떨치고 있었다.
운명을 스스로 만들겠다는 조조
다시 탁현 누상촌의 동향이다. 돼지 고기를 우물 속에 넣고 무거운 돌로 뚜껑을 덮어
가격이 오를 때를 기다리는 장비는 돌 뚜껑을 들어올리는 사람은 고기를 꺼내 가져가라고 한다. 이때 관우가 뚜껑을 열고 고기를 골고루 나눠 준다.
이에 장비와 관우 간에 용호상박의 결투가 벌어진다. 두 고수의 싸움을 말리려고 유비는 고의로 바구니를 떨어트려 싸움을 중단시킨다.
이후 세 호걸은 주막에서 술자리를
가지며 통성명을 한다. 나리를 위해 할 일을 하자며 의형제를 결의한다. 유비가 맏형, 건우가 둘째, 장비는 셋째가 되었다. 다음날, 세 사람은
그 유명한 도원결의를 복숭아밭에서 가진다.
전공을 세우고 홀대를
받다
유비 일행은 당초 스승인 노식의 휘하에 들고자 길을 떠났지만 중도에 노식이 죄수가 되어
압송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발길을 돌려 장각의 아우 장보와 대치 중인 주준 장군의 휘하로 들어간다. 이들은 선봉을 맡아 장보의 군대를 격퇴한
후 성문을 닫고 버티는 장보를 계략으로써 제압하는 큰 공을 세운다. 즉 성 안으로 이미 장각과 아우 장량이 죽었다는 글을 화살로 날려보내어
장보의 부하가 장보를 죽이고 항복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소위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쟁을 한 셈이다.
낙양성에 개선했지만, 논공행상에 있어서 부당한 대접을 받고 만다. 주준 장군은 큰 벼슬을
얻었지만 유비에겐 끝내 벼슬이 없었다. 당시 벼슬은 환관들이 뇌물을 받고 매관하던 시절이었다. 우연히 친분이 있던 장균을 만나 이를 하소연한 후
마침내 정주 중산부 인의현의 현위 자리가 벼슬로 내려졌다. 강제로 빼앗긴 논밭을 되찾아주며 백성을 친자식처럼 돌봐줌으로써 칭찬이
자자했다.
하지만 지방 관리의 잘잘못을 감찰하던 독우가 유비에게
내려와 온갖 협박을 하면서 뇌물을 요구해오자 화가 난 장비가 이를 참지 못하고 감찰관을 반쯤 요절내 버렸다. 그런 후 유비 일행은 후환이 두려워
현위 자리를 포기하고 대주 태수 유회를 찾아 잠시 몸을 맡긴다. 유회는 한의 종친이었다.
십상시의 난과 동탁의
등장
189년, 영제가 사망하자 유언에 따라 후궁 왕 씨의 소생인
협을 다음 보위에 잇도록 하기 위해 반대 세력인 하 태후(왕자 변의 어머니)의
친오라비인 대장군 하진을 죽여야만 했다. 이에 하진을 황제의 명으로 입궁케 하여 죽일 계획을 세웠지만 이를 눈치 챈 하진 장군이 오히려 거병을
일으켜 변을 황제의 자리에 올렸다. 그가 바로 후한의 소제다.
거사에 성공한 하진은 환관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하고 이를 원소가 실행에 옮기려 하자
당시 최고 실세였던 환관 건석에게 모든 죄를 씌우고 하 태후에게 뇌물을 주며 목숨만은 살려잘라며 충성을 다짐한다.
이에 태후도 오라비에게 원소의 말을 듣지 말고 더 이상 살상을 하지 말라고 한다.
겨우 목숨을 건진 환관 장양이 협의 할머니인
동 태후를 꼬드겨 어린 황제의 수렴청정을 하도록 설득한다. 이를 받아 들인 동
태후는 협을 진류왕에 봉하고 자신의 조카를 표기장군에 임명한다. 한편, 하 태후는 오라비 하진과 합세하여 동
태후를 대궐 밖으로 추방한다. 드디어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된 환관들은 이번에는 하진 장군의 어미와 동생에게 뇌물을 바치고 목숨을
구걸한다.
이후 동 태후가 독살당하자 환관들은 하진 장군이 독살했다고 소문을 퍼트린다. 이 소문을
들은 원소가 하진 대장군에게 이참에 환관들을 모두 척살해야 한다고 건의한다. 정보통인 환관들이 이 소식을 알아채고 하진의 동생에게 추가로 뇌물을
먹이고 목숨을 구걸한다. 그러자 원소의 계책으로 지방에 있는 동탁을 불러들여 환관을 일시에 정리할 계획을
수립한다. 이번에도 환관들은 이 정보를 하 태후에게 알리며 하진 장군을 궁궐로 입궁토록 모의한다.
무장도 하지 않고 궁에 들어온 하진 장군은 환관들의
칼에 죽음을 면치 못한다. 이어서 어린 황제와 진류왕을 납치한 이들의 사건을 역사는 '십상시의 난'이라고 한다.
하지만 뒤따라온 토벌군 원소에 의해 황제와 진류왕이 구출되고, 뒤이어 서량 자사 동탁 장군이 어가를 호위해 궁으로 무사히 돌아간다. 도성에
들어온 동탁은 여포 장군(적토마를 선물하고 양아들로 삼는다)을 앞세워 궁을 완전히 장악한 후 새 황제로 진류왕을
옹립한다.
참고로, 본디 하우 씨氏의 후손인 조조의 아버지 조숭은 당시 세력가인 환관 조등의 양자가
됨으로써 조조는 환관의 자손의 분류되어 쉽게 벼슬길에 나설 수 있었다. 그는 칠보검을 가슴에 품고 자신을 믿고 있는 동탁의 방에 들어 거사를
치르려다가 실패하자 잽싸게 도망을 쳤지만 성문 밖을 나가지 못하고 체포되고 만다. 이때 진궁이란 자가 조조의 큰
뜻에 반해 벼슬을 버리고 조조를 탈출시킨다. 이후 조조는 아버지의 의형제인 여백사의 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는데,
돼지를 잡고 술을 사오는 여백사를 후환이 두렵다고 매정하게 죽인다. 이를 목격한 진궁은 영웅이 아니라 잔인한 늑대와 같다며 조조를 남겨두고 몰래
홀로 떠나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