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쿠데타 - 우리가 뽑은 대표는 왜 늘 우리를 배신하는가?
엘리사 레위스 & 로맹 슬리틴 지음, 임상훈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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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5일 유럽의회 선거 당시, 절반이 넘는 프랑스인이 투표자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 단위 선거에서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이 제1당을 차지했다. 투표 당일 저녁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정치권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마치 입이라도 맞춘 듯, 정치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국민의 메시지를 들었다'든가, 이제는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든가 따위의 말들을 늘어놨다. 하지만 이런 멋진 말들을 쏟아 낸 지 몇 분도 안 돼, '늘 그렇듯' 그들은 원래 하던 대로 돌아갔다. 여야는 서로 상대방의 실패를 비난하면서 국민의 분노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기 급급했다. - '머리말' 중에서

 

 

민주주의 혁신을 위한 정치적 실험들

 

책의 공저자 엘리사 레위스는 기획자이자 에세이스트이며, 로맹 슬리틴은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정치학과 교수이자 컨설턴트다. 두 사람은 미래 사회의 정치경제 모델을 탐구하며, 민주주의의 혁신 방안들을 개발하고 실천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이 책은 두 사람이 2년 동안 전 세계에 걸쳐 일반 시민, 시민 활동가, 연구원, 해커, 지역 의원, 국회의원 등 80명에 가까운 민주주의의 실험가들을 만나 취재한 결과물이다.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염증이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시민 쿠데타'라는 제목을 붙였다.

 

두 사람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와 극우 포퓰리즘이 공존하는 기이한 현상을 바라보며, "대체 우리의 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생길 걸까?" 의문을 갖는다. 그리고 그 의문에 답하기 위해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났다. 프랑스에서부터 아르헨티나, 튀니지, 아이슬란드, 브라질, 스페인 등을 오가며 2년 동안 일반 시민, 시민 활동가, 연구원, 해커, 국회의원, 공무원 등을 포함해 80여 명을 만나 인터뷰했다.

 

이들이 지나간 장소는 민주주의의 막다른 골목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정치를 위한 혁신적 실험들이 꽃 피우고 있는 곳이었고, 이들이 만난 사람들은 그 실험실의 가장 열정적인 연구자이자 실천가였다. 상상력의 힘을 믿으면서 동시에 그 상상을 행동으로, 변화로 거침없이 일구어 내는 이들의 목소리들을 책 한 권에 오롯이 담았다.

 

 

 

 

왜 극우 정당에 투표할까?

 

유럽에서는 극우 정치가 '외부의 적들'을 표적 삼아 '우리'의 가치, '우리'의 사회적 모델, '우리'의 정치가 썩어 들어가고 있다고 선동하면서 성정하고 있다. 그리스의 황금새벽, 독일의 국가민주당, 헝가리의 요빅 같은 정당들이 빠르게 커 가고 있다. 2016년 4월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극우 정당 후보가 1차 선거에서 큰 폭으로 선두를 차지했으며, 결선투표에서도 아주 적은 표차로 패배한 것을 우리는 보았다. 

 

극우 정당을 향한 투표는 보통 정치에 대한 혐오의 징후이다. 포퓰리즘 정당의 지도자들은 민중의 목소리로 행세한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일반 시민들의 관심사를 대변한다고 자랑해도 실상은 가족 경영, 부패, 불투명한 재정 등 과거의 구습을 가장 잘 답습하고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소수집단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과연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을까? 어쨌든 시국이 어수선할 때면 극우 포퓰리즘은 민중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반향을 얻게 된다.

 

 

선거는 잊어라

 

우리는 투표가 정치 생활의 최종 도구이고 시민 활동의 유일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구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1968년 5월 혁명 당시 이미 '선거는 속보이는 계략'이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이 구호로 돌아가지는 못할망정 우리 시대 민주주의의 구호가 '국민은 투표, 나머지는 정치인'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비틀거리고 있다고 확신한다. 현재의 민주주의는 형식상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와 깊은 괴리가 있고 21세기 문화와 기술적 가능성에 견주어 충분하지 않은 '미완'의 체제인 것이다. 이제는 입헌주의자 도미니크 루소가 희망했듯이, 시민의 권력이 "두 선거철 사이에 놓인 시간 속에서도 지속적이고 연속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도구와 장치를 상상하는 방향으로 창조성을 자극하고 격려, 고무할 때다. 

 

 

새로운 정치를 코딩하라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는, 가슴에 훈장 단 고참 좌파 운동가들의 '총파업' 예를 들고 있다. 그들은 "콜 센터에서 일하거나 피자 배달, 또는 상점에서 일하는 젊은이들" 같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조의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고 실직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이글레시아스는 정치적 개념이, 시민들의 구체적 경험에 반향을 불러일으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포데모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진로를 공유한다.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겠다고 '자본주의'를 말하면 사람들은 바로 우리를 특정 범주에 넣어 버린다. 하지만 경제 민주주의를 논하면 같은 주제를 말하고 있지만 사람들을 더 공감으로 이끌 수 있다. 

 

 

"국회의원을 구합니다"

주요 선거에서 '선출될 수 있는' 자리는 이미 내정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원들은 필연적으로 소외된다. 그래서 당 지도층이 공약을 만들고, 공천을 행사하는 동안 이들에게는 거의 대부분 지도부의 감독하에 지역 모임 주관 등 비전략적인 임무가 주어진다. 선거는 일반 시민들은 접근할 수 없도록 굳게 닫힌 문 안에서 밀폐되고 계급화된 정당들의 볼모로 전락했다.

 

<나의목소리>는 미리 정해진 당파도, 정치적 이데올로기도 없다. 이런 것들이 사전에 정해지면 토론을 경직시킨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치란 틀에서 벗어나면 안 되고, 동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기존 정당의 모델로부터 해방되는 데 있다고, 즉 '안정 지역'을 넘어서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네트워크 당

 

네트워크 당은 겨우 창당 두 달 만인 2013년 10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지방선거에 참가함으로써 제도권 정치에 뛰어들었고 22,000표(총 유권자의 1.2%)를 얻어 2차 투표까지 올라갔다. 비록 의석을 차지하기엔 모자랐지만 유권자들에게 그 존재와 정신을 각인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네트워크 당의 멤버 아나-리스 로드리게스 나르델리는 "우리 당 후보가 당선된다면, 그들은 우리 공동체의 회원으로서 데모크라시 OS플랫폼에 나타난 전체 의지를 제도권에 전달하는 일꾼이 될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 네트워크 당 의원들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결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의석에 앉아서 시민들이 원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 사항을 전달하며 그들이 지지하는 시민단체의 결정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들이다.

 

 

디지털 시대, 유동하는 민주주의


대의정치 모델로 액체 민주주의가 갖는 이점은 새로운 리더십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며 조직적이고 수평적인 신뢰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식은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시민과 대표자 사이의 간극을 좁혀 줄 해답을 제공하며 개인 간의 상호 협동을 도와서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해 민주적 토론에 적합한 모델이기도 하다.

 

"액체 민주주의는 뛰어난 집단 지능 도구예요"

- 줄리아 레다 의원, 유럽의회 해적당 대표

 

 

 

온라인 플랫폼은 공개된 곳에서 협력을 가능하게 하며, 여기에서 시민들은 공공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법률을 제안하고 토론하고 작성한다. 시민 발의제는 시민사회 프로젝트와 헌법적 권리가 창의적으로 결합한 형식으로, 효과적으로 '민주주의를 민주화'한다.

 

 

크라우드 소싱 시대의 법률

 

우리는 이제 협력 입법 혹은 법률 크라우드 소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몇 안 되는 선출직 대표나 엘리트가 아닌 수천 명 시민들이 법률 제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최대한 많은 개인들이 입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세계 여러 곳에서 열렬한 활동가들이 방법과 도구를 개발하고 개선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토론이 완료되면 투표장이 만들어지고, 여기에서 각자 자신의 입장을 정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의원이 해당 법안에 '찬성' 표를 던지는지 '반대' 표를 던지는지 확인할 수도 있다. 데모크라시 OS는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를 인터넷으로 재창조하여 모든 사람이 모든 법을 집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토론할 수 있게 한다.

 

 

시민 입법부

고대 아테네 인들은 비전문인에 의해 다스려지는 입법 시스템의 효율성을 경험으로 증명했다. 한편으로는 권력의 집중과 소모적 정치 논쟁을 피하면서, 더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그들의 정치적 인식과 책임감을 고양시켰다. 법률 제정 권한을 가진 시민은 종종 복잡한 사안을 두고 회의를 반복해야 했고, 이때 강조된 미덕은 토론협력이었다.

2009년 들어선 아이슬란드의 첫 좌파 정부는 직접 시민 대표를 뽑아서 이들에게 개현 법안 마련의 권한을 주기로 결정한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국민 스스로 헌법 토대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에스토니아와 아이슬란드의 경험은, 일반 시민들의 토론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잘 보여 준다. 정치에 문외한인 시민들이 모여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과 상반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여 노력함으로써 결국 매우 적절하고 구체적이며 훌륭한 제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다양한 과정을 통해 시민들을 선출했고 디지털 방식을 도입해 시민 참여가 더욱 쉬워졌다. 참가자들의 집단 지성은 한층 더 고취될 수 있었다.

 

 

자기 땅의 주인이 된다는 것

 

자기 땅의 주인이 된다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 핵심이다. 민주주의는 사람이 살고 일하고 자라는 곳, 그들이 서로 알아 가고 인정하며 미래를 함께 건설해 나가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정치는 불가능의 예술이라는 고정 관념에 맞서서 우리는 구체적인 유토피아, 다시 말해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다시 걸머지고 개척해 나가는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섰다.

그르노블에릭 피욜 시장은 "우리가 진정으로 시민들에게 결정 권한을 주기로 한다면, 안락하고 편안한 우리의 안전지대로부터 빠져나올 용기가 필요합니다"라고 강조한다. 이어서 시민 참여 정책 담당관인 파스칼 클루에르는 이렇게 말한다. "기존의 전통적 대표들은 빠른 결정권을 잃었지만, 대신 우리는 행동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집단적 힘을 얻었습니다"

 

 

모든 것이 정치다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는 인권 운동가 출신으로 2011년 서울시장에 당선된 박원순 시장'서울시 나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서울시의 대도시화로 발생한 사회 경제적 문제를 해소하고 주민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려는 데 있다. 서울시는 스타트업 업체와 일반 시민들이 시 당국의 공개된 공공 데이터를 활용하여 사회적·경제적 목적의 협력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도록 지원한다.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하여

 

정치 개혁은 오로지 정치 책임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오래 전부터 우리는 우리의 시민권을 포기하고 그저 대표들이 우리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기만을 바라 왔다. 더는 이런 수동적인 태도로 바라는 결과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할 수 없다. 우리는 확신과 끈기를 가지고 다양한 혁신을 시도하고 실현함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민주주의를 함께 이루어 나가야 한다. - '맺음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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