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둘째 주말부터 시작된 송년회가 간간이 이어지더니 지난 수요일을 마지막으로 뚝 끊어졌다. 집안이 절간 같다. 전화벨도 며칠째 한 번도 울리지 않는다. 배터리가 나갔나 들여다보다가 지난겨울 받은 문자 메시지를 보았다. “눈 많이 와요.” 정확하게 2008년 12월 22일 22시 23분이다. 작년에도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눈이 내렸었구나 생각한다. 늦은 밤 저 문자를 받고 거실 창으로 내다보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감정은 일체 배제하고 객관적 사실만을 전하는 문자를 받고도 기뻤던 기억이 있다. 눈이 온다는 사실이 기뻤던 것이 아니다. 내리는 눈송이만큼이나 많은 사람들 중에 눈송이처럼 금방 사라질 소식을 전하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이 눈물 나게 고마운 순간이었다. 오늘 내리는 눈을 보면서 저 메시지를 나도 전할까 잠시 망설였었다. 그때의 기쁜 마음이 달아날까 저어되어 멀거니 창밖만 내다보았다. 외로운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까치 한 마리가 내 마음에 말없음표를 찍듯이 종종거리며 지나갔다. 이런 날은 외로움의 심지에 불을 붙이듯 시를 읽기로 하자.

 

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허연

 
불빛이 누구를 위해 타고 있다는 설은 철없는 음유시인들의 장난이다. 불빛은 그저 자기가 타고 있을 뿐이다. 불빛이 내 것이었던 적이 있는가. 내가 불빛이었던 적이 있는가.

가끔씩 누군가 내 대신 죽지 않을 것이라는 걸. 내 대신 지하도를 건너지도 않고, 대학병원 복도를 서성이지도 않고, 잡지를 뒤적이지도 않을 것이라는 걸, 그 사실이 겨울날 새벽보다도 시원한 순간이 있다. 직립 이후 중력과 싸워온 나에게 남겨진 고독이라는 거. 그게 정말 다행인 순간이 있다.

살을 섞었다는 말처럼 어리숙한 거짓말은 없다. 그건 섞이지 않는다. 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 다시 밖으로 나갈 자다.

세찬 빗줄기가 무엇 하나 비켜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남겨 놓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 비가 나에게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있었던가. 나를 용서한 적이 있었던가.

숨막히게 아름다운 세상엔 늘 나만 있어서 이토록 아찔하다.

 

혼자라는 자기 인식으로 시인은 타들어가고 또 젖는다. 살을 섞고 사는 아내도 남편도 실은 밖에 있는 사람이다. 언제나 오롯이 나만 남는다. 고독하다는 시인의 자기 인식앞에서 나는 아찔하고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고 모든 사물로 번져 가는 것에서 나는 한번 더 아찔하다.    


* 행갈이를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시인에게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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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레이] 나의 독서론

규칙입니다.
1. 독서란 [ ]다. 의 네모를 채우고 간단한 의견을 써주세요.
2. 앞선 릴레이 주자의 이름들을 순서대로 써주시고
3. 릴레이 받을 두 명을 지정해 주세요.
4. 이 릴레이는 6월 20일까지만 지속됩니다.
기타 세칙은 릴레이의 오상 참조   
 
   
  
  

* 릴레이 주자들
  • Inuit님 (독서란 자가교육이다) 
  • buckshot님 (독서는 월아이다)
  • 고무풍선기린님 (독서란 소통이다)
  • mahabanya님 (독서란 변화다)
  • 어찌할가님 (독서란 습관이다)
  • 김젼님 (독서란 심심풀이 호두다)
  • 엘군님 (독서란 삶의 기반이다)
  • 무님 (독서란 지식이다)
  • okgosu님 (독서란 지식섭식이다. ) 여기도 #개드립
  • hyomini님 (독서란 현실 도피다. )
  • Raylene님(독서란 머리/마음용 화장품 이다.)
  • 하느니삽형님(독서란 운동이다)
  • foog님(독서란 이다)
  • 토양이님(독서란 모르겠다.)
  • 파이랑님(독서란 새벽 3시다.)
  • Demian   님(독서란 여행이다.)
  • Forgettable 님(독서란 이다.)
  • 하이드 님 (독서란 [발견]이다. ) 
  • Jude 님 (독서란 [한밤중의 북풍] 이다.) 
  • 다락방 님 (독서란 하루키의 농담 이다)    
  • 마노아 님(독서란 이다)
  •  Turnleft님 (독서는 사유다) 
  • 프레이야님(독서는 자전거타기다)

     

     제가 마지막이군요. 앞서 하신 분들의 독서에 대한 정의 흥미로웠습니다. 내게 있어서 독서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프레이야님 이런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독서는 내 영혼의 이태리타월이다

     한때는 책읽기가 찰나적 도피의 한 행태였다. 이런저런 골치 아픈 일이 있을 때 그것을 벗어나려는 핑계로 책을 집어들곤 했다. 한 때는 책읽기가 망원경이자 현미경이었다. 스텔라노바 지구본을 이리저리 굴리며 아침에는 로마로 저녁에는 갈라파고스 군도로 렌즈의 초점을 맞추곤 했다. 공간의 거리뿐 아니라 시간의 거리도 책의 망원경은 얼마든지 조절 가능했으므로 한 동안 잘 놀았다. 그러나 책읽기가 재물대위에 나 자신을 올려놓고 들여다보는 현미경의 역할을 할 때는 끔찍했다. 그 위에는 무지한 여자가 있었고 그 모습은 초라하고 아름답지 않았다. 또 한 때는 책읽기가 각성제이자 수면제였다. 책읽기는 세상을 향해 나를 깨어있게 하고 또 고요히 휴식을 취해야할 때를 일러준다. 최근에는 책읽기가 내 영혼의 이태리타월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언제 어떻게 이리되었는지 모르지만 잘못 교육되고 학습된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느낌이다. 여행갈때도 이태리타월부터 챙기듯이 아마도 시력이 허락하는 한 책을 통한 영혼의 때를 벗기는 일은 계속될 것 같다.  

  • 내게 책읽기는 도피의 한 행태이며, 망원경이자 현미경이며, 각성제이자 수면제이며 동시에 영혼의 때를 벗기는 이태리타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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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이야 2009-06-21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 역시 기대했던 대로 너무 멋진 독서론이에요.
    책읽기가 오히려 내게 현미경 역할을 하고 들여다볼 때 끔찍했다는 구절,
    동감합니다.^^
    잘 읽었어요!!

    반딧불이 2009-06-21 11:20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덕분에 저의 끔찍한 모습을 한 번 더 봤지 뭡니까. 하지만 정말 해볼만한 점검이었어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그리고 프레이야님 http://inuit.co.kr/1727 여기 가보셔요. 아주 재미난 결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2009-06-22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2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두드러기가 6주차에 진입했다. 처음 오른쪽 손목 안쪽에 앵두만 하게 부풀었던 것이 명자꽃처럼 커지더니 진달래처럼 피어 끝내는 모란처럼 온 몸으로 번졌다. 매일 주사 두 대와  하루 세 번 약으로 도무지 차도가 없어 침도 맞고 그마저도 시원치 않아 침과 약침을 동시에 맞고 나면 겨우 몇 시간 사람 꼴로 돌아온다. 이번 주에는 하루 세 번 먹던 약을 한 번에 먹으란다. 여섯 개의 알약을 한꺼번에 털어 넣으면 약만으로도 배부르다. 내 인생에 한 번도 꽃 핀적 없었으니 온 몸에 붉은 꽃이 창궐하는 구나 생각하다가도 또 이 두드러기를 지켜보며 생각을 모으다가도 가려움증이 살아나면 혀가 꼬이면서 감정의 두드러기같은 욕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내가 시에서 욕을 처음 대한 것은 최승자의 시에서였다. 하지만 그녀의 욕은 상쾌했다.




    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


    나는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었다

    아니 떨어지고 있었다

    한없이

    한없이

    한없이
    …………
    ……

    아 썅! (왜 안 떨어지지?)

    쌍시옷이 입을 옆으로 찢으면서 이응으로 마무리되는 이 발음은 묘한 울림을 준다. 그리곤 뒤이어 오는 통쾌함과 파열하는 웃음이라니. 가장 경제적이면서도 효과만점의 언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런 통쾌함과 파열하는 웃음도 가려움증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두드러기는 내 몸을 긁고 잠을 긁고 밤을 긁는다. 긁을수록 드러나는 벌건 두드러기의 실체, 긁어도 긁어도 다다르지 못하는 가려움의 실체 앞에서 나는 건어물녀가 되어가고 있다. 
     

    오늘은 배달되어온 문학 계간지를 뒤적이다가 유쾌한 욕을 또 만났다. 김상미 시인이다.

    똥파리

    영화 <똥파릴>를 보았다. <똥파리>속에는 ‘시발놈아’라는 말이 셀 수 없이 나온다. 그리고 그 말은 보통영화의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보다 훨씬 더 급이 높고 비장하다. 지랄맞게 울리고 끈질기게 피 흘리는 그 영화를 다 보고 나와 아무도 없는 강가에 가 소주 한 병을 마셨다. 그리곤 목이 터져라 ‘시발놈아’를 스무 번쯤 소리쳐 불렀다. 그랬더니 내 가슴 안 피딱지에 옹기종기 앉아 있던 겁 많은 똥파리들이 화들짝 놀라 모두 후두둑 강물 위로 떨어졌다. 시발놈들!

    능청스럽게 영화 본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긴장을 풀어놓더니 느닷없이 시발놈들! 이라니. 혼자 시발놈 시발놈 하며 강가를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홍반처럼 떠올랐다. 모든 시인들의 가장 큰 결핍이며 동시에 축복인 것이 언어이다. 시인들의 결핍과 축복인 언어 만세! 그런데 약물도 잠재우지 못하고 온 밤을 긁고 있는 이 두드러기를 한방에 날려 보낼 언어의 백신은 어디 없나, 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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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이야 2009-06-09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놈의 두드러기들이 반딧불이님을 괴롭히고 있군요.
    어쩌나요. 그냥 욕해버리세요.
    (에잇, 쌍시옷같이~ ㅎㅎ)
     

     

    해마다 오월이면 햇차를 맛보는 것 같다. 우전은 간신히 맛만 보고 올해는 세작으로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내게는 사치란 생각을 떨칠 수 없지만 혼자 누리는 이 사치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없다. 작년에는 맛이 깊고 향기로웠는데 올해는 매끄러운 단맛이 더하다. 문태준 시인도 차를 즐기나보다. 시인의 성품이나 글맛이나 차맛이 일품으로 동일하다.

     

    햇차를 끓이다가


    멀리 해남 대흥사 한 스님이 등기로 부쳐온 햇차 한 봉지
    물을 달여 햇차를 끓이다 생각한다
    누가 나에게 이런 간곡한 사연을 들으라는 것인가
    마르고 뒤틀린 찻잎들이 차나무의 햇잎들로 막 피어나는 것이었다
    소곤거리면서 젖고 푸른 눈썹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차를 우려낼 때 “마르고 뒤틀린 찻잎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정말 차나무에 처음 잎이 나던 순간들처럼 연둣빛으로 서서히 피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은 온몸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시간이다. 내가 도자기로 만든 찻주전자보다 유리유전자를 더 선호하는 까닭은 차가 우러나는 “간곡한 사연”과 보낸 이의 마음까지 같이 우러나는 것을 보고 듣고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색은 이렇게도 맑은데 입 안 가득 번지는 향과 맛은 대체 어디서 오겠는가?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밥맛 나는 사람, 술맛 나는 사람, 차를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 각각이다. 이상하게도 술 마시는 사람들과는 차를 마시는 일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밥을 먹고 나면 차를 마시게 마련이지만 이때 차를 마시는 것은 그저 이어지는 코스의 한 형식이기 쉽다. 차를 마시기 위해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는 사람. 차를 마시다가 식사로 이어지고 그냥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다시 찻집을 찾게 되는 사람. 이런 사람 갖고 싶다.

    문득 고즈녁한 찻집에서 향기와 맛과 시간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아마도 서로에게 향기와 맛을 나눠주기 위해 오랜 시간 찻잎처럼 외로움으로 건조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찻잎이 따뜻한 물을 만나 향기로워 지듯이 그들도 서로에게 젖어 향기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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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6-07 0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07 0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6-07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시맛도 참 좋네요. 저도 차한 우려야겠네요.

    반딧불이 2009-06-07 02:27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은 어떤 차를 즐기세요? 낮에는 내내 세작을 우려내다가 방금 아름다운 가게에서 구입한 커피 '히말라야의 선물' 내렸답니다. 휘모리님 차맛에 시맛이 더해지시기를....

    무해한모리군 2009-06-09 19:23   좋아요 0 | URL
    저는 낮에는 보통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마시고, 집에오면 홍차도 마시고, 우롱차도 마시고, 겨울엔 보글보글 보리차도 끓여마시고 그래요..
    저도 오늘은 시집한권 빼 읽어봐야겠네요.

    프레이야 2009-06-07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방금 카페라떼 만들어 마셨네요. 차는 제가 먼저 찾게 되진 않고
    옆지기가 가끔 우려내어 권하면 마셔요. 차 한 잔의 사치, 좋아요.^^
    밥 먹고 나면 차 한 잔 같이 하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이고 싶네요.

    반딧불이 2009-06-07 22:57   좋아요 0 | URL
    그마음 오래 간직해주세요. 언젠가 프레이야님과 차를 나눌 기회가 꼭 있기를 기대할께요.

    파란여우 2009-06-07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뽕잎을 말려 뽕잎차를 만들었슴다. 마셔보진 않아서 맛은 모르겠구요.
    역시나 마당가에서 따서 말린 박하잎차도 있는데 이 역시 손님들만 드리고 전 안마셔서..
    전, 잎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그 대신 뿌리차를 좋아해요. 이를테면 둥글레, 칡...^^

    서정적인 글에 멋대가리 없는 댓글이라니...제가 요새 좀 이상해요.

    반딧불이 2009-06-07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서울 한복판에 사는 저도 올해 감잎차를 만들어보았어요. 첫잎으로 만든 첫차가 나름 훌륭합니다. 제 느낌으론 여우님과는 맑고 깨끗한 잎차가 더 어울릴것 같은데...의외에요. 잠수만 안타시면 어떤 댓글이라도 환영함다~
     

     




    뻐꾸기는 지빠귀나 때까치의 둥지에 허락 없이 몰래 알을 낳는다. 위탁모를 제 맘대로 정하는 것이다. 물론 수고료를 지불하는 것도 아니다.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들은 용서받지 못할 패악을 저지른다. 지빠귀나 때까치가 먹이를 구하러 나간 사이에 그들의 알을 밀어 떨어뜨리는 것이다. 먹이를 독차지 하려는 까닭이다. 눈도 뜨지 못하고 털도 없는 뻐꾸기 새끼들이 등으로 다른 알을 밀어내는 것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난 후에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리면 귀를 막고 싶었다.

          

    뻐꾸기는 울어야 한다

     

    초록에 겨워
    거품 물까 봐
    지쳐 잠들까 봐
    때까치며 지빠귀 혹여 알 품지 않을까 봐
    뻐꾸기 운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은 뻐꾸기가
    할 일은 할 수 있는 일은
    울음으로 뉘우치는 일
    멀리서 울음소리로 알을 품는 일
    뻐꾸기 운다

    젊은 어머니 기다리다
    제가 싼 노란 똥 먹는 어린 세 살
    마당은 늘 비어 있고
    여름이란 여름은 온통 초록을 향해
    눈멀어 있던 날들
    광목천에 묶여 있는 연한 세 살
    뻐꾸기 울음에 쪼여 귓바퀴가
    발갛게 문드러지던 대낮들 
     

    그곳 때까치 집, 지빠귀 집
    뻐꾸기가 떨어뜨려 놓고 간 아들 하나
    알에서 나와 운다
    뻐꾸기 운다


    아들이 핸드폰을 두고 나갔다. 뒤집어진 풍뎅이처럼 바닥을 밀어내는 전화기를 보다 못해 꺼버리려다 보고 말았다. 잘못 누른 단축번호 1번 김팀장 016-255-xxxx, 호기심에 눌러 본 2번 안사장 011-9703-xxxx. 엄마 아빠도 아니고 이름도 아니고 김팀장, 안사장이라니! 나도 남편의 이름대신 ‘동거인’,  아들은 ‘보물 1호’ 딸 이름 앞에는 ‘예쁜이’이라고 입력해 놓았었다. 물론 단어의 일차적 의미가 우선이지만 부차적으로는 프로이트적 해석이 가능하기도 하다.

    시인은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놓은 뻐꾸기는 때까치며 지빠귀가 혹여 알을 품지 않을까봐 울고, 울어야한다고 한다. 내가 뻐꾸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귀를 막고 싶었던 것은 텔레비전에서 본 뻐꾸기 새끼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뻐꾸기 울음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까닭은 자본주의의 뻐꾸기가 내 둥지에 넣어놓은 알을 내 알 인줄 알고 키워온 지빠귀였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먹여 키워놓았더니 엄마를  김팀장이라고 부르는 싸가지 없는 자본주의의 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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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로그인 2009-05-21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 중에는, 특히 남자들에게는 단축번호에 자주 쓰는 즉 편의상의 순서를 정해놓은 이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반딧불이님.
    자본주의와 연관지어 쓰신 글에 슬쩍 미소가 머금어집니다. 딸보다 아들을 보물 1호라 하시고는 '프로이드적으로 해석..가능하기도하다'라 언급하신 부분에서도 슬쩍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더불어 아마 나중엔 따님이 분명 보물 1호의 호칭을 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오지랖 넓은 추측도 잠깐 해보았습니다--딸과 엄마는 결국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는 것 같아서요.>


    아드님의 마음 속 단축번호는 김팀장은 "결단코" 아닐꺼예요. 아드님에게 어머니이신 반딧불이님은 삶 그 끝까지 가슴아리고 소중한 존재이시니까요.


    반딧불이 2009-05-21 22:47   좋아요 0 | URL
    현대인들님. 위로 고맙습니다. 괘씸한 녀석이라고 욕해주시면 더 위로가 되었을텐데말이죠~ㅎㅎ

    마늘빵 2009-05-21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여친 자리로 단축번호 자리를 항상 비워두었는데 언젠가부터는 귀찮아서 입력순으로 놔둬요. ^^ 별 의미가 없을 거에요.

    반딧불이 2009-05-22 02:04   좋아요 0 | URL
    제가 언어에 민감할걸까요? 정말 별의미가 없겠죠? 근데 녀석이 가끔 "엄마 계모아냐?"혹은 "엄마 계모 맞지?"라고 물을때는 저도 '그래..니 엄마 누구니?' 묻고 싶어진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