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을 패다가

 

 

                     정호승

 

 

장작을 패다가

도끼로 발등을 찍어버렸다

피가 솟고

시퍼렇게 발등이 부어올랐으나

울지는 않았다

다만

도끼를 내려놓으면서

가을을 내려놓고

내 사랑을 내려놓았다

 

 

 

 

 

 

스산한 생의 가을과 사랑을 데우려고 시인은 장작을 팼던가,

그러다가 도끼로 발등을 찍었던가,

비명은 커녕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던가,

그리하여 가을도 사랑도 내려놓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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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2-01-29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이세요, 잘 지내시죠?^^

전 옛날에 이 시를 읽으면서 아이러니컬하게도,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구절이 생각났었다는~ㅠ.ㅠ

반딧불이 2012-01-30 12:24   좋아요 0 | URL
네..나무꾼님 평안하시죠?

시인은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네요.저의 오독일 수도 있을거에요.
 

 

 

 

 

아침이면

 

 

                      김사인

 

 

 

귀뚜리는 밤새도록 방 밖에서 울며

아침이면 가장 눈부신 소리의 보석을 낳는다

이슬이다

 

 

 

 

 

 

 

 

이슬이 귀뚜라미가 울며 낳은 보석인 줄 이제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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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01-26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가을엔 귀뚜라미 저희집 방 안에서도 울었어요,,ㅠㅠ
귀뚜라미 소리가 낳은 보석이 이슬이었군요,,,명절 잘 보내셨지요??^^

반딧불이 2012-01-28 14:31   좋아요 0 | URL
넵, 나비님께도 물론 즐거운 명절이셨겠지요? 올 가을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시거든 다음날 아침 꼭 보석을 확인해보시오소서!

blanca 2012-01-27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쿠 같아요. 너무 예뻐요.

반딧불이 2012-01-28 14:31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지요? 블랑카님. 이래서 시를 읽나봐요.
 

 


상강





천 리 너머 대륙의 북풍

큰 하품을 하자

서리가

겨울로 가는 지름길을 냈다

내게로 오는 모든

따스한 바람이 묶이고

천지가 숙연하다

다시 한 철

외로움의 관절

하얗게

삐걱이겠다   

 

 

 

 

 

새벽 두시, 잠들기 직전 쓰레기를 버리고 왔더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언제부터 날씨가 이렇게 추워진게냐.
마음까지 춥지는 말아야 할텐데... 
구시렁거리며 절기를 보니 내일 모레가 한로, 24일이 상강이다.  
젠장, 벌써부터 마음까지 상강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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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0-07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뜸하신 동안 시를 쓰셨군요! 혼자 읽기엔 아까운 절창이라 오늘은 더욱 힘주어 추천을 누릅니다^^

반딧불이 2011-10-08 22:2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후와님. 다 들켰네요. 그런데 시도는 했지만 작황은 형편없사옵니다.

릴케 현상 2011-10-08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장자나 박지원의 호방함이 느껴지네요^^ 과연 고전으로 다져진 내공!

반딧불이 2011-10-08 22:23   좋아요 0 | URL
힛~ 이게 그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전을 읽으면 스스로가 먼지같은 존재가 되어서 쓸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긴 합디다.

쉽싸리 2011-10-20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품,지름길,묶이고,관절이 하얗게 삐걱이다...
초,절창입니다.

반딧불이 2012-04-19 15: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맨날 절창만 부르고 싶어지게 만드시네요.이러면 고단해질텐데.. 쩝
 

 

강화도에서 혼자 살던 함민복 시인이 결혼을 했다. 그의 나이 50이다. 오금의 주름이 다림질로도 전혀 펴질 것 같지 않은 츄리닝 바지 입은 모습을 보다가 턱시도 차림의 모습을 보니 딴 사람같다. 다른 사람보다 많이 늦었지만 늦은만큼 그의 결혼생활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자 위


성기는 족보 쓰는 신성한 필기구다 

낙서하지 말자, 다시는 

 

이미 오래전에 다짐했었지만, 이제 시인은 이런 시는 더 이상 쓰지 않을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 시인은 이미 <부부>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부부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부부가 어때야 하는지 이미 시인은 다 알고 있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다만 결혼 후에 시인의 시가 어떻게 변화할지 못내 궁금하다.

 

 결혼식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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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3-12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네요. 일본 지진 소식에 멍해 있었는데 덕분에 웃었습니다^^

반딧불이 2011-03-12 01:31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시인이기도 하죠. 저도 일본의 지인이 연락이 안되어서 걱정하고 있습니다. 별일 없어야 할텐데요.

프레이야 2011-03-12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쁜 소식이군요. 쉰살의 두분 얼굴이 참 좋아보입니다.
뒤로 당기지않고 서로를 향해 앞으로, 거꾸로된 줄다리기를 하며
살겠다는 말을 한 시인, 참 미더워 보이네요.

반딧불이 2011-03-12 22:11   좋아요 0 | URL
미더워 보인다는 말, 참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말씀이네요. 잘 사실것 같죠?
프레이야님께서 기뻐해주시니 틀림없이 행복하게 사실거에요.

노이에자이트 2011-03-12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민복 씨가 저렇게 생겼군요...아담하고 귀엽게 생기셨네요.

반딧불이 2011-03-12 22:11   좋아요 0 | URL
웃는모습도 아이처럼 맑고 귀엽더군요.

릴케 현상 2011-03-12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선천성 그리움>을 덧붙여야 좀 더 흐뭇할 것 같네요. 축하합니다^^*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반딧불이 2011-03-13 00:15   좋아요 0 | URL
앗, 여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했네요. 고맙습니다. 우리끼리 뒤늦게 마구 축하하는 분위긴데요. 평안하시죠?
 

 

굴뚝 

 

아궁이에서 굴뚝까지는 
입에서 똥구멍까지의
길 

비좁고,
컴컴하고,
뜨겁고,
진절머리나며, 
시작과 끝이 오목한 길 

무엇이든지 그 길을 빠져나오려면
오장육부가 새카매지도록
속이 타야한다 

그래야 세상의 밑바닥에 닿는다, 겨우 

 

저 빈집의 굴뚝을 들여다보면
매캐한 슬픔이 타는 아궁이가 있을 것 같고, 아궁이 앞에 사타구니 벌리고 앉아 불을 지피는 여자가 있을 것 같고, 불꽃이 혀를 날름거리며 눈가의 주름을 핥을 것 같고, 아이들은 대여섯이나 바글바글 마루 끝에서 새처럼 울 것 같고, 여자는 아이들 입에 뜨신 밥알 들어가는 것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릴 것 같고, 

 

그러나 지금 굴뚝의 비애는
무너지지 않고 제 자지를 세우고 있다는 거 
 

쌀 안치는 소리,
끝없는 잉걸불의 열정,
환한 가난의 역사도
뱉고 토해낸 지 오래된
 

저 굴뚝은 사실 무너지기 위해
가까스로 서 있다 
삶에 그을린 병든 사내들이 
쿵, 하고 바닥에 누워
이 세상의 뒤쪽에서 술상 차리듯이
 

  

지난 며칠 내 속도 저 아궁이에서 굴뚝까지의 거리와 다르지 않았다. 아마도  삶의 구들장 어딘가로 매캐한 연기가 새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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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3-10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어릴 적 친구 시골집에 놀러갔다가 본 아궁이 생각이 나네요. 아궁이 냄새도 떠오르구요. 아궁이 안을 두려운 마음으로 들여다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음, 별일 없으시죠?

반딧불이 2011-03-11 12:12   좋아요 0 | URL
저는 거기 들여다보면 불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더라구요. 갑자기 고구마 구워먹고 싶다는 생각이...
저 잘 지내고 있어요. 후와님 글을 자주 읽을 수 있으면 더 잘 지낼 수 있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