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러기가 6주차에 진입했다. 처음 오른쪽 손목 안쪽에 앵두만 하게 부풀었던 것이 명자꽃처럼 커지더니 진달래처럼 피어 끝내는 모란처럼 온 몸으로 번졌다. 매일 주사 두 대와  하루 세 번 약으로 도무지 차도가 없어 침도 맞고 그마저도 시원치 않아 침과 약침을 동시에 맞고 나면 겨우 몇 시간 사람 꼴로 돌아온다. 이번 주에는 하루 세 번 먹던 약을 한 번에 먹으란다. 여섯 개의 알약을 한꺼번에 털어 넣으면 약만으로도 배부르다. 내 인생에 한 번도 꽃 핀적 없었으니 온 몸에 붉은 꽃이 창궐하는 구나 생각하다가도 또 이 두드러기를 지켜보며 생각을 모으다가도 가려움증이 살아나면 혀가 꼬이면서 감정의 두드러기같은 욕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내가 시에서 욕을 처음 대한 것은 최승자의 시에서였다. 하지만 그녀의 욕은 상쾌했다.




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


나는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었다

아니 떨어지고 있었다

한없이

한없이

한없이
…………
……

아 썅! (왜 안 떨어지지?)

쌍시옷이 입을 옆으로 찢으면서 이응으로 마무리되는 이 발음은 묘한 울림을 준다. 그리곤 뒤이어 오는 통쾌함과 파열하는 웃음이라니. 가장 경제적이면서도 효과만점의 언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런 통쾌함과 파열하는 웃음도 가려움증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두드러기는 내 몸을 긁고 잠을 긁고 밤을 긁는다. 긁을수록 드러나는 벌건 두드러기의 실체, 긁어도 긁어도 다다르지 못하는 가려움의 실체 앞에서 나는 건어물녀가 되어가고 있다. 
 

오늘은 배달되어온 문학 계간지를 뒤적이다가 유쾌한 욕을 또 만났다. 김상미 시인이다.

똥파리

영화 <똥파릴>를 보았다. <똥파리>속에는 ‘시발놈아’라는 말이 셀 수 없이 나온다. 그리고 그 말은 보통영화의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보다 훨씬 더 급이 높고 비장하다. 지랄맞게 울리고 끈질기게 피 흘리는 그 영화를 다 보고 나와 아무도 없는 강가에 가 소주 한 병을 마셨다. 그리곤 목이 터져라 ‘시발놈아’를 스무 번쯤 소리쳐 불렀다. 그랬더니 내 가슴 안 피딱지에 옹기종기 앉아 있던 겁 많은 똥파리들이 화들짝 놀라 모두 후두둑 강물 위로 떨어졌다. 시발놈들!

능청스럽게 영화 본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긴장을 풀어놓더니 느닷없이 시발놈들! 이라니. 혼자 시발놈 시발놈 하며 강가를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홍반처럼 떠올랐다. 모든 시인들의 가장 큰 결핍이며 동시에 축복인 것이 언어이다. 시인들의 결핍과 축복인 언어 만세! 그런데 약물도 잠재우지 못하고 온 밤을 긁고 있는 이 두드러기를 한방에 날려 보낼 언어의 백신은 어디 없나, 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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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6-09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놈의 두드러기들이 반딧불이님을 괴롭히고 있군요.
어쩌나요. 그냥 욕해버리세요.
(에잇, 쌍시옷같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