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경식 선생의 <나의 이탈리아 인문기행>을 천천히 읽었다. 그의 저서 중 <나의 서양 미술 순례>에 이어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만났던 미술 작품과 작가의 발자취를 찾아보고 쓴 기행문이다. 여행 지역은 로마, 페라라, 볼로냐, 밀라노, 토리노 등의 북부 지역이다. 서경식 선생이 유럽을 처음 여행한 것은 1983년이라고 한다. 1971년 한국에 들어와 서울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그의 두 형이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고, 그로 인하여 한국 여권을 발급받지 못해 해외로 나갈 수가 없다가 1983년 뜻밖의 기회로 유럽 여행을 할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그의 두 분의 형님들도 다행히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석방이 되었다. 형들이 투옥되어 있는 동안 형들과 편지를 썼는데 형들이 말한 미술 작품들을 홀로 유럽에서 직접 보고야 말겠다고 말한 대목에서 그의 심정을 일부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때 유럽을 돌아보면서 미술 작품들을 감상하고 남긴 책이 <나의 서양 미술 순례>이다. 그로부터 30 여 년이 지나 나이가 들어 다시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좋아하는 작품을 보러 가기도 하고 추억의 장소를 찾아 아내(책에서는 아내를 F로 지칭한다.)와 음식을 즐기고 그 여행을 이렇게 책을 남긴다는 것이 나에게는 굉장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어 넘 부러웠다. 물론 나는 관심은 있지만 미술 작품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물론 이탈리아 작가들에 대해 단편적인 지식 뿐이라 이런 책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인문기행"이라는 제목을 붙인다는 것이 넘 멋지지 않은가 말이다~~



"인문기행"이라는 제목이 붙은 만큼 나같이 단편적인 지식만 있는 독자들에겐 어려운 학술서보다 더 큰 지식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이탈리아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해서 이탈리아의 지리책을 볼 수도 없고, 정치, 경제 ,예술... 그리고 문학 작품을 얼마나 읽어야 알고 싶은 갈증을 다 해소할 수 있을지도 모를 뿐더러 특히 미술에 관한 한 더더욱 나의 한계를 절감하기 때문에 애초에 이탈리아를 알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음... 시도조차도 안한다. 그래서 나같은 문외한에겐 이 정도의 책이면 딱 적당하단 생각이 들었단 거다. 물론 그동안 읽은 책들이나 여행, 미술 전시회 등의 경험으로 이탈리아에 대해 극히 적은 부분을 알긴 하지만 어째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게 되고 다시 시작하는 듯한 한계에 부딪히게 되더라는... 어차피 광범위한 지식을 습득할 수는 없단 걸 알기 때문에 딱 이 정도로 시작을 하는 것도 나에겐 뭔지 모를 뿌듯함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덕분에 여러 미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면서 천천히 감상해 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작품에 대해 쓴 글들을 읽으면서 나름 유익한 시간을 가져 보았다. 특히나  이 책의 미덕이라면 너무 많은 문장으로 책을 모두 꽉 채우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난 이 부분이 특히 맘에 들어왔다. 글은 책의 오른쪽, 나머지 왼쪽 여백에는 관련 작가의 사진이나 작품, 장소, 사진 등을 실었는데 이것들을 하나하나 보는 재미가 정말 쏠쏠했다. 읽고 싶은 책들도 여럿 만나게 되어서 도서관 검색도 이용해 보고 장바구니에 담아 보기도 했다. 이만하면 이 책을 읽은 덕분에 투자한 시간 대비 가성비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가 아닐런지...




이탈리아 여행을 갔을 때 로마와 밀라노, 피렌체, 나폴리, 베니스 등의 대도시와 소도시들도 여러 군데 방문을 했었지만 '페라라'는 관광 상품에 들어가 있지는 않아서인지, 그리고 내가 검색해 보아도 '페라라'만의 특별함, 독특함, 아름다움 등 관광객들이 좋아할 만한 관광지는 아니기 때문에 조르조 바사니의 책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을 읽기 전까진 이 도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곳의 유대인들의 희생에 대해서도. 
















<나의 이탈리아 인문기행>에서의 페라라는 <핀치콘티니가의 정원>과 <성벽 안에서>에서 묘사하는 페라라의 모습들을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조르조 바사니의 기억, 작품 속 페라라와 서경식 선생의 페라라를 서로 번갈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거리를 상상하게 되고 사진으로 보았던 에스텐세 성과 에스텐세 성벽에 붙어 있는 1943년 11월 15일의 페라라 학살 사건의 희생자 추모 명판, 그리고 유대인 묘지, 또 서경식 선생이 다녔던 이름도 부르기 어려운 그 거리 이름들이 너무도 익숙해져서 마치 내가 지금 거길 간다 해도 그 거릴 쉽게 찾을 수 있을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조르조 바사니의 <성벽 안에서> 중에서 '1943년 어느 날 밤'은 에스텐세 성의 추모 명판과 이어지는 스토리이다. 1943년 11월 15일, "트럭을 나누어 타고 베로나와 파도바에서 들이닥친 파시스트군은 반파시스트 지식인, 변호사, 유대인 등 열한 명을 사살하고, 시신을 에스텐세 성의 해자 근처에 방치하며 본보기로 삼았다(이탈리아 인문기행, 129쪽)." 또한 추모 비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1943년 11월 15일 새벽, 시민 열한 명을 학살함에 따라, 전횡 체제가 나치 독일과의 공범 행위를 시작했다. 정치적 자유를 회복한 페라라는 정의와 신과 평화의 이념 아래, 이 비열한 범죄를 규탄한다.1945년11월15일(같은 책, 127쪽)." 이 사건을 알고 있고 조르조 바사니의 이 단편을 읽었다면 이 명판을 보고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지 도저히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관광객으로서는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총살이 있던 그 보도를 이용할 사람은 자신이 삼가면 좋을 행동을 하게 되리라는 걸 깨달게 될까? 

      그는 마침내 여행 안내서에서 머리를 들 것인가. 들지 않을 것인가?" 

                                                 (<성벽 안에서>의 다섯 번째 이야기 '1943년 어느 날 밤' 중에서, 223쪽)

서경식 선생은 거기서 어떤 전율에 휩싸이지 않았을까!! 이런 경험을 책으로 하고 있다니! 아. 진짜 너무 멋져서 말이 안 나온다~~~!




서경식 선생이 토리노에 간 이유는 당연히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프리모 레비, 그리고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무솔리니의 파시스트에 대항했던 체사레 파베세, 아드리아노 올리베티, 레오네 긴츠부르그 등의 레지스탕스들의 발자취를 돌아보기 위함이었다. 특히 프리모 레비의 묘지를 가장 먼저 보고 싶어했는데 하필 유대인의 안식일인 금요일과 토요일은 묘역의 문을 닫아버려 제대로 볼 수가 없었고 철책 너머로 예전에 본 적이 있는 그의 묘비만 눈에 담고 돌아왔다니 안타깝지만 이것도 여행자의 숙명이라면 숙명이겠지 싶어 미소 지을 밖에... 역시 프리모 레비와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책은 읽은 적이 없기 때문에 "급히" 책을 주문했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것이 인간인가>와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자전적 소설인 <가족어 사전> 두 권이다.


















미술 전시회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제대로 된 감상을 하는 것은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오는 그림들, 맘에 감동을 주는 그림들이 여럿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을 남겨야 한다면 두 작품이 떠오른다.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벅찬 감동이 일어 검색을 하게 만든 주세페 펠리차 다 볼페도의 『제4계급』, 그리고 '위대한'이란 수식어에 가려져 있던 미켈란젤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조각 작품 「론다니니의 피에타」이다. 『제4계급』은 교회(제1계급), 귀족(제2계급), 부르주아(제3계급)에게 학대 당해 왔던 제 4계급인 노동자들의 각성을 그린 작품이다. 그림 속에서 중앙에 남성 두 명과 아기를 안은 여성 한 명이 힘차게 걸어 나가고 있고 그 뒤를 이어 결의에 찬 걸음걸이로 행진하는 노동자들이 이들을 따라 걷는 모습이 가로로 긴 형태로 그려져 있는데, 그 힘차고 희망에 가득한 그 분위기.... 그 분위기가 마치 그 무엇이라도 이룰 수 있으리란 것을 보여주는 듯한 모습이어서 프랑스 혁명의 시민 봉기를 그림으로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보았을 때보다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및 유럽 전역의 진보파와 사회주의자들의 상징이 된 작품이기도 하고,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1900년」이라는 영화의 포스터로도 차용이 된 작품이다. 




이탈리아를 여행했을 때 바티칸 박물관에서 보았던 미켈란젤로의 미술 작품들과 천정화는 사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관광객에 떠밀려 또는 그 넓고 광대한 박물관을 틈 없이 채운 회화 작품들에 질려서 찬찬히 둘러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능력을 요하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리고 까마득히 높은 천정에 그려진 그림을 하나하나 자세히 본다는 것도 불가능했으므로 내가 그 작품들을 감상했다는 인식이 별로 없다. 아, 그리고 그곳 바티칸 성당에서 보았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피에타」상像. 너무도 아름답지. 유리 안에 갇혀 있어 안타깝기도 했고. 위대한 작품, 위대한 작가라는 것에 반론을 제기할 수는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지만 그것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경외감이라고 할까... 내가 미켈란젤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사실이 이런 정도였다. 그런데「론다니니의 피에타 」像은 그야말로 '미완성의 완성'을 보여주는 극치의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천상계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온, 그래서 말할 수 없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미켈란젤로가 89년의 생애의 고투 끝에 만든 마지막 미완성 작품"(305쪽)이며 "미완"이라고 썼지만 "완성"을 뛰어넘어버린 !  이 미완의 피에타로 남긴, 탈진해버린 미켈란젤로의 이 작품을 두고 일본의 역사 학자 하니 고로는 "누구라도 '이상하리만큼 비통한 인상'을 받는다"(309쪽)면서 자신만의 식견으로 이 작품을 감상해보기를 독려한다. 피에타 상은 대부분 마리아가 죽은 아들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지만(앉은 채로) 이 조각상은 어머니가 뒤에서 아이를 감싸 안아 올리듯 서 있다. 무덤 구멍으로부터 죽은 예수님의 모습을 들어 올려 세운 모습이 마치 지금 여기 이 지상을 떠나 '승천'하려는 듯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극도로 마른 예수님의 몸이 더 부각되어 보이는 것도 감동에 한 몫을 하고 있다. 혹 이 책을 만든 반비 편집자들도 너무 감동 먹어서 그런걸까. 이 작품이 296, 304 두 쪽에 똑같이 실려 있다.^^ 밀라노 스포르체스코 성 전시관에 있다는데(특히 이 작품 하나만 전시관 한쪽에 전시가 되어 있어 얼마나 더 아름답게 보일지 짐잠이 간다), 스포르체스코 성의 견고한 성채와 정원만 산책하고 돌아온 나는 대체 뭘 보고 온 것일까? 서경식 교수도 썼듯이 "건물 밖은 북적댔지만(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전시장 안은 관람자의 그림자마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조용했다."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이 '이상하리만큼 비통한' 미완의 「론다니니의 피에타 」상을 놓치고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나의 이탈리아 여행은 아쉬움이 참 많이 남지만 그것을 보충하고도 남을 책들이 있어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으니 또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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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장 차별과 차별금지:
로머 대 에반스 판결과 적의

내일 모레가 반납일인데 3주 가까이 여유부리며 읽다 발등에 불이 되어버림. 꼭 다 읽고 반납하고 싶다!
총 6장 중 이제 4장을 읽고 있다.
4장 읽다보니 이게 2장에서 읽었던 평등조항에 관한 법률근거 중에서 ‘위한의 의심이 가는 차별‘, 즉 ‘위헌의심차별‘이라 불리는 이 구분은 ‘합리성 심사기준‘과도 연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장으로 다시 돌아가 읽고 밑줄긋기 하기로 했다.
반납하고 나면 기억에서 지워지겠지.

미국 수정헌법과 관련한 평등조항. 그리고 젠더와 인종, 종교, 장애, 차별, 차별금지를 다루는 누스바움의 글을 읽다보니 요즘 뉴스에서 보여지는 부정적 이슈들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라는 나라와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평등보장조항에서는 어떤 집단에게 가해지는 체계적 불이익을 뿌리 뽑겠다는 생각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 만큼 이 조항은 위계질서나 차별과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특별히 높은 법령을 심리할 때 엄격한 심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돼왔다. 다시 말해, 이런 구분들은 평상시보다 더 강력한 근거로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한다. ‘위헌의 의심이 가는 차별suspect classification(이하 위헌의심차별이라 부른다-옮긴이)‘이라 불리는 이구분은 합리성 심사기준rational basis review뿐만 아니라 훨씬 더 엄중한 시험도 통과해야한다(합리성 심사 기준이란 그리 통과하기 어려운 기준이 아니다. 입법부가 그럴싸하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거의 모든
이유가 합리성 심사기준을 통과할 이유가 된다.) - P86

예컨대 인종이라는 기준을 필수적으로 활용해야만 압도적인 국익이 달성될 수 있다고 증명하지 못하는 한, 정부는 인종에 따라 사람들을 정당하게 구분할 수 없다. 젠더와 관련된 구분은 중간 정도의 엄격한 심사intermediate scrutiny를 통과해야 하며, 때때로 ‘준위헌의심차별quasi-suspect classification‘이라 불린다. - P87

앞으로 이 책에서는 엄격한 심사의 기준에 대해 매우 자세히 논의할 것이다. 성적지향이 위헌의심차별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만일 그렇다면 어떤 근거에 따라서 그런지를 놓고 많은 토론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본격적인 법적 논의에 들어가기 전부터도 엄격한 심사라는 이념의 일반적정신이 소도미 법이나 동성결혼 및 관련된 제반 문제를 생각할 때 적절히활용될 수 있다는 점만은 알수 있다. 사람들을 구분하는 몇 가지 방식은 위계서열화의 유산이다. 그러므로 대단히 중요한 국익이 걸려 있지 않는 한, 이러한 구분에 의거한 제한은 평등보장조항에 따라 허용될 수 없다. - P87

매우 중요하게도, 연방대법원은 어떤 법안이 민주적 다수의 의지를 반영한다고 해서 평등보장조항이 가하는 제한을 비껴날 수 있는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합의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설령 선거구 전체가 찬성한다 할지라도 연방헌법의 평등보장조항을 위반하는 도시 법안은 통과될 수 없음이 명백하다."

연방대법원은 다수가 어떤 법을 원하더라도 그 법이 오직 반감이나 혐오에만 의존하는 경우, 해당 법안은 평등보장조항에 따라 금지된다고 판시했다. 하기야 ‘농무부 대 모레노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이 내렸던 결정을 보면 이 결론은 이미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사건에서는 비전통적인 가족을 차별한 식료품 할인구매권 프로그램 federal foodstamps program이 문제가 되었다. 이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 모레노의 승소, 그러니까 농무부의 패소 판결했었다. 

클리번 판결과 모레노 판결은 성적 지향을 다룬 
‘로머 대 에반스‘ 사건의 선례로서 연방대법원의 획기적인 판례라 할 수 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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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매: 전체 4막 중 2막
베르시닌 알렉산드르 이그나티예비치:
중령, 포병 중대장
투젠바흐 니콜라이 리보비치: 남작, 중위

프로조로프 안드레이(세르게이, 안드류샤, 안드류시카)에게는 세 명의 여동생들이 있다.

올가(올랴, 올류시카, 올레치카)
마샤(마리야, 마셴카)
이리나(아리샤)

베르시닌 : 무슨 문제가 좋을까…………. 꿈을 꿔보는 건 어떨까요.
이를테면 우리가 죽고 2백 년이나 3백 년 뒤에 사람들은어떻게 살지....... - P136

투젠바흐 :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가 죽은 뒤 
사람들은기구를 타고 날아다닐 겁니다. 양복 모양도 달라지겠죠. 어쩌면 오감을 넘어서는 이른바 여섯째 감각을 일깨워 발달시킬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인생은 다를 바 없을 겁니다. 고단하고, 알 수 없는 일들이 가득하고, 때로 행복하기도 한 인생. 1천 년 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아, 인생은 고달파> 하며 한숨을 내쉴 겁니다. 그러면서 지금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지 않으려 하겠죠. - P136

베르시닌 : (잠시 생각한 뒤) 어떻게 말해 볼 수 있을까요? 지상의 모든 것은 점차 변해야 한다고 봅니다. 실제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우리가 보고 있지 않나요. 2백 년, 3백 년, 아니 1천 년 뒤, 이런 기간은 문제가 아니고요. 새롭고 행복한 인생이 다가올 겁니다. 물론 우리는 그런 인생을 살수 없겠죠. 그럼에도 그런 인생을 위해 지금 일하며 살고, 아, 또, 고생도 합니다. 그런 인생을 창조해 가고 
있는 겁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목적이고, 
우리 행복도 거기에 있겠죠.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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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아 손가락아 제발 좀 구부려져 주면 안되겠니??? 요즘 내가 간절히 바라는 한 가지... 바로 손가락이 잘 구부러지는 것이다.

양손이 다 부실하긴 하지만 하필 오른손잡이인데 오른손 중지와 약지가 잘 안구부러져서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다. 정형외과 단골이 되어가는 요즘이다. 손가락과 손목의 방아쇠 수지는 워낙 오래된 나의 고질병이긴 하지만 손목은 그럭저럭인데 손가락은 도통 나아질 기미가 안보인다. 내가 느끼기에 손가락에 가장 치명적인 집안 일은 칼을 잡고 써는 일이다. 손가락을 구부릴 뿐만 아니라 힘을 주어야하는 일이기 때문에 칼질을 좀 하고 나면 금방 무리를 했다는 느낌이 온다. 요 몇 년 사이 주사도 여러 차례 맞았고(이것은 자주 맞으면 특히 안좋다고 선생님이 하도 말씀 하셔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 자제중이다) 체외 충격파는 수시로, 파라핀과 물리치료도 수시로... 어찌보면 큰병은 아닌 거 같은데도 열심히 병원을 들락거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삶의 질이 이리 떨어질 수 있나 싶게 불편한 일 투성이라 우울해질 수 있지만...  덕분에 어지간한 집안 일은 패스~~~~ 최소한의 조리와 집안 정리만 하고 힘이 들어갈 일은 아들에게 미룬다. 공식적으로 못해도 되니 나름 편리한 점도 있다. 특히 1층과 2층의 3개 욕실은 3 식구가 각자 하니 이보다 좋을 수 있으랴 싶다. 그렇지만 가장 불편한 건 타이핑하기가 힘들어 리뷰를 자꾸 미루게 된다는 것과 좋은 문장들 필사하고 싶어서 무리하며 구입한 만년필을 써보지도 못하고 눈팅만 하고 있다는 것. 글씨 쓰기는 타이핑보다 더 고난이도의 미션이다. 지금 이 정도 살짝 구부러지는 거로는 택도 없지. 언제 만년필을 써 볼수 있으려나 싶어 애가 탄다. 거기다.. 난 솔직히 얼른 손가락이 나아서 화장실 청소 내가 다 했음 싶다. 내가 가장 신경 쓰이는 화장실 청소... 두 남자가 해놔도 맘에 안들어... 왜 청소했는데 더럽지...  확 다시 해버리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닌데 ... 참자 참아... 오늘 또 체외충격파 하고 왔는데 하루 걸러 연달아 해서 그런가 좀 부드러워져서 많이 안 구부려도 오늘은 타이핑이 된다. 




지난 달에 도서관에 바로 대출 신청했다 15일 경에 '예산소진'으로 신청할 수 없다는 멘트 떠서 멘붕 왔던지라 

이번 달은 3월 시작하자마자 얼른, 일단 3 권을 먼저 신청을 해버렸다.


















<8월에 만나요>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사후 10주기 생일인 올해 3월 6일에 전 세계에 동시 출간이 되었다.

<백년 동안의 고독>과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라는 그의 대표작은 몇 번 시도만 하다 결국 읽지 못했지만 이 작품으로 시작을 해도 좋을 거 같다. "<8월에 만나요>가 암시하는 바처럼, 주인공 아나 막달레나 바흐가 자기 어머니의 기일인 매년 8월 16일, 카리브해의 섬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나는 결혼한 지 27 년째가 된 남편과 아이들을 둔 평범한 주부다. 그녀는 어머니의 기일에 항상 글라디올러스를 사다가 어머니의 무덤에 바치고 하룻밤을 그 섬에서 묵고 온다. 매년 이어진 이 방문은 어느 덧 일 년 중 단 하룻밤 동안 다른 사람이 되라는 거부할 수 없는 매혹적인 제안이 된다. ... 규범이나 구속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마주하는 여성에게 바치는 마르케스적 찬가이며, 흔히 남성 위주로 다뤄진 주제를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출판사 책소개 발췌)." 


<천 척의 배>는 부제가 트로이아 전쟁의 여성들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 」와 「오딧세이아 」는 흔히 서구 문학의 효시이자 ''전쟁과 전사, 남성과 남성성의 토대를 닦은 위대한 텍스트'로 여져진다. 이런 평가가 전적으로 부당한 것은 아니나 <천 척의 배>는 지금껏 트로이아 전쟁에 관한 이야기에서 다뤄지지 않은 여성 캐릭터들의 영웅성과 서사성에 주목해 이 전쟁의 진정한 참상"을 그려낸다. 트로이아 전쟁이 무려 10 년간 이어진 참혹한 장기전이었는데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이 정녕 남성들만의 문제였을까. 아닐 것이다.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아내. 세 자매>는 안톤 체호프의 주요 작품 두 편을 엮은 선집이다. 「아내」는 "러시아 대기근 시기에 농민 구제 사업을 펼치려는 주인공을 내세워 어떻게 사람답게 살 것인가를 질문한다. 희곡「세 자매」는 체호프의 4대 장막극 중 하나로, 이상을 꿈꾸지만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하고 삶을 그저 인내하는 세 자매의 이야기를 다룬다(책 소개 발췌)." 요즘 러시아 소설에 대한 관심이 다시 솟아나 한 권, 두 권 책을 사모으고 있는데 그 와중이니 관심이 생길 수 뱎에...






어제 아침 수영 끝나고 병원을 가고 있던 중이었는데 어느 새 지나치고 중앙 도서관 앞에 와 있더라는.... 두 가지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데 왜 머릿 속은 한 가지만 입력이 되는 걸까. 이젠 멀티가 정말 안되는 걸까. 어쩜 그리 까맣게 잊을 수가 있는 거지??? 하마터면 병원에 늦을 뻔.

그래도 이왕 간거니 얼른 빌리고 가지 뭐.


















<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의 책을 한 때 열심히 읽었던 때가 있엇다. 하지만 리뷰는 거의 남겨놓지 않았고 어떤 책을 읽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속죄>는 분명 읽었는데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어봐도 도통 줄거리도 기억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읽었던 장류진의 <달까지 가자>는 분명히 읽으면서 줄거리가 생생하게 기억이 났는데 리뷰는 고사하고 읽은 책으로도 남겨놓지를 않았더라는... 출간 된지 그리 오래된 책도 아니건만... 정말 읽기만 하고 최소한의 리뷰도 남기지 않는 나의 독서 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자각하게 되었다. 이번엔 리뷰도 좀 남겨봐야겠다. 근데 밀린 리뷰가 너무 많네 ㅠ

리 차일드의 잭 리처 콜렉션 <퍼스널>도 한 권 빌렸고, 거기에 한국 문학도 두 권 빌렸다.

오랜만에 조남주 작가의 소설 <그녀 이름은>, 그리고 성해나 작가의 <빛을 걷으면 빛>이다. 





새벽에 써 놓았던, 그리고 임시저장까지 눌렀었는데 나의 페이퍼는 다 어디로 날아간 걸까. 난 새벽에 무슨 생각을 했었던가 .

마지막 한 권 남은 바로 대출은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를 생각했던 거 같다. 번뜩 떠오르는 쇼펜 하우어. 고등학교 때 처음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을 읽고 절망하다 대학 때 다시 읽었는데 역시 이해 안되긴 마찬가지여서 다시 더 깊은 절망. 요즘 다시 쇼펜하우어 열풍이 불고 있어서 다시 읽어볼까 싶어졌다. 너무 어려운 거 같아서 읽기 쉬운 책 사 놨는데 안 읽고 있다. 깐*리 님의 서재에서 만난 <길 위에서 만나는 쇼펜하우어>와 입문서로 읽기 좋은 아르테의 서가명강 시리즈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빌려서 읽는 책들은 열심히 읽을 수 밖에 없다. 길어야 3 주. 그 기간 동안 열 권 이상의 책들이 대기하고 있으니 쫓기듯 읽게 된다. 물론 도저히 안 읽어지는 책들도 많다. 그냥 반납하면서 그 책에 대한 미련도 깨끗이 버리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사 모으는? 책들은 자꾸 뒤로 밀린다. 그럼에도 자동으로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 그리고 신간이 아닌 이상 읽고 싶은 책이 보이면 도서관 검색을 하고 있는 손길을 멈추지 못해 오늘도 15권의 빌린 책이 내 눈 앞에 쌓여 있다. 부담감과 뿌듯함 그 사이 어디쯤이다~~^^ 아우... 내 손가락아... 찌릿찌릿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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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혐오의 정치: 실제, 이론, 역사

혐오: 신뢰할 수 없는 감정
혐오의 ‘원초적 대상‘은 인간의 동물성과 유한성을 일깨워주는 존재들이다. 배설물과 체액, 시체가 여기에 포함된다. 끈적거린다든가 냄새가 나고 진액이 흘러나오는 등, 체액이나 시체를 연상시키는 동물과 곤충들도 혐오의 원초적 대상이 된다. 로진은 모든 혐오의 근저에 다름 아닌 인간 자신의 오물과 악취에 대한 혐오가 깔려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인간이 가진 모든 동물성이 혐오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자. 예를 들어 힘이나 민첩성 등은 혐오스럽지 않다." 사람들이 혐오하는 것은 죽음 및 부패와 관련된 동물성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혐오란 모든 인간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동물적 속성에 대한 기피의 표현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속성을 떠올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자신을 오염시킨다고 느끼며, 그러한 속성들을 숨기고 싶어 한다. - P52

그런데 원초적 대상에 대한 혐오는 이후 이성적인 검토를 거의 거치지 않고 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확장된다. 이렇게 확장된 혐오를 ‘투사적 혐
‘오‘라고 부른다. 로진은 투사적 혐오가 작용하는 원칙을 "공감적 주술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그처럼 미신적인 개념 중 하나는, 만일 A가 혐오스러운 대상인데 B가 A와 비슷하게 생겼다면 B 역시 혐오
스럽다는 것이다. - P54

역겨운 속성을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전가하는 투사적 혐오는 여러 형태를 취하는데, 이른바 혐오스러운 집단이나 사람을 어떻게든 혐오의 원초적 대상과 연관시킨다는 점만은 같다. 어떤 경우에는 해당 집단이 원초적대상과 실질적으로 가깝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 강조된다.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불가촉천민" 중 일부는 변소를 청소하거나 시체를 처리하는 사람들이었다. - P55

하지만 혐오가 확장되는 보다 많은 경우에는 
망상이 개입한다. 이는 악취와 진액, 부패, 세균이 많음 등 원초적 대상에서 역겹다고 느껴지는 속성을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에 전가하는 방식이다. 
전형적인 경우 이러한 투사에는 아무런 실제적 근거도 없다. 유대인들은 실제로 끈적끈적하지도, 구더기와 비슷하지도 않다. 그러나 히틀러 본인을 포함한 독일의 반유대주의자들은 유대인들이 끈적끈적한 구더기라고 말해왔다. 흑인들이라고 해서 다른 인종보다 체취가 심한 것은 아니지만, 인종차별주의자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원초적 대상과 연관이 있다는 많은 사람들도 따져보면 더럽다거나 오염된 존재로 여겨질 이유가 전혀 없다.  - P56

사회에는소수자들에게 낙인을 찍는 수많은 방식이 있으며, 혐오만이 낙인을 찍는 유일한 방법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혐오는 낙인을 찍는 강력하고도 중심적인 방식이며, 혐오가 사라지는 경우에는 위계질서도 함께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인종적 소수자와의 신체 접촉을 피하는 일이 사라지면 인종차별도 함께 사라진다.  - P56

성애의 영역에서 혐오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섹스에는 체액의 교환이 포함되며, 섹스를 통해 인간은 천상의 초월적 존재가 되기보다 육체적 존재로서 흠집이 남게 된다. 그러므로 섹스의 영역은 동물적이고 유한한 인간의 본성을 애증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불안한 공간이다. 섹스도중 인간이 맞닥뜨리는 정액, 땀, 배설물, 생리혈등의 신체적 물질은 많은 경우 혐오스러운 오염원으로 간주된다. 그런 만큼 원초적 대상에 대한 혐오는 성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P57

따라서 투사적 혐오가 성적인 영역에서 지배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아니다. 
거의 모든 사회에서, 사람들은 특정한 성적 행동을 하는 집단을 "정상적"이고 "순수한 성적 행동을 한다는 사람들과 대조하여 혐오스럽고 병적인 존재로 여겨왔다("정상적"이고 "순수한" 성적 행동을 한다는 사람은 주로 누군가를 혐오스럽고 병적이라고 여기는 사람 자신, 혹은 그가 속한 집단을 포함한다). 
이러한 낙인찍기는 여러 형태를 취한다. 대부분의 문화에서는 성관계를 맺을 때 발생하는 투사적 혐오의 한 형태로 여성혐오가 나타난다. 성관계를 맺을 때 남성은 여성과 체액을 교환하며, 이때 체액을 받아들이는 여성에게 불편감을 느낀다. 혐오는 남성이 그 불편감으로부터 거리를 두려고할 때 발생한다. 정말이지 남성들은 여성혐오를 통해 자신의 신체에 대한 불편감을 해소해왔다. 남성들은 냄새 나고, 진액이 흘러나오고, 의문스러운액체로 가득 찬 존재라며 여성을 경멸적으로 묘사했고, 이처럼 여성을 혐오스러운 존재로 만듦으로써 자신의 동물성과는 거리를 둘 수 있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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