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부기 셔플 - 2017 제5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이진 지음 / 광화문글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장강명의 <당선, 합격, 계급>을 읽던 중 그가 직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는 사례에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다. "<기타 부기 셔플>이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원고에는 마음이 가지 않았다"는 대목을 읽던 중 책을 잠시 접어 두고, 이 책을 바로 구매한 후 읽던 책을 계속 읽었다. 다른 이의 평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현역 작가가 '너무 재미있다'고 밝힐 정도면 정말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더욱이 <당선, 합격, 계급>에서도 나왔듯이, "새로운 작가의 새로운 장편소설을 읽고 싶어 하는 시대의 요구"는 이제 독자들이 책을 선택하는 트렌드 또한 'ㅇㅇ(문학)상 수상작'을 통해 검증된 선택을 하게 만들고, 나 또한 그러한 풍토에서 자유롭지는 않은 것 같다.


책을 그리 빨리 읽는 편은 아닌데, 하루만에 다 읽었을 정도로 흡입력이 강하고 전개가 빠른 소설이다. 우리의 과거사에서 서구의 음악이 유입되며 대중화되기 전의 시점을 포착하여, 한국전쟁 이후 피폐한 사회상 속에서 생계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었던 한 개인이 우연히 미8군을 대상으로 한 쇼단에 소속되어 음악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다. 먹고 살기도 힘든 재건 상황에서 음악을 통하여 생계를 해결하고 자아성취를 이룬 주인공(현)의 삶은 일반 국민들의 삶과는 다르고 이질적이다. 국가, 경제력, 인종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질화될 수 있는 유일한 요소인 언어, 그것을 둘러싼 음악의 힘이 그를 포함한 그룹(와일드 캐츠)을 한국에 속하지만 전혀 다른 영역인 캠프, 미합중국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에는 차마 생각할 수도 없었던 부와 인기를 누리게 된 그들의 앞 길에는 또다른 소멸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전쟁, 미군정, 군부독재, 유신과 같은 거시적인 비극은, 그 시대를 사는 한 개인의 삶에 맞닿아 구체화됨으로써 더 큰 비극으로 또는 전혀 다른 방향의 희극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책을 읽는 내내 과거로부터 이어진 현 시대를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내가 살아보지 못한 과거시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생경한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의 말을 읽던 중 현재의 낯섦과 부적응이라는 고독의 근원을 과거로부터 살펴본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시간을 들여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즐거움과 더불어 인생에서 나 자신에 대한 시공간을 재편해보려는 시도를 해봐야겠다는 삶의 숙제를 받은 것 같았다.

사람을 무대 위에 서게 만드는 근본적인 힘은 지극히 본능적이며 육체적인 것이었다. 모든 딴따라들의 영혼에 찍힌 낙인, 속된말로 ‘끼’라고 불리는 그 재능은 최초에는 이성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풋내기다운 욕망에서 시작한다. 쇼를 거듭해갈수록 그 욕망은 덩치를 부풀려 수백 수천 청중의 우레 같은 갈채를 갈구하게 된다. 무대라는 단상 위에서 기독교 부흥회의 장로처럼 접신을 한다. 인간을 초월하여 신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욕망. 딴따라의 야생적 끼가 도달하는 궁극적인 지점에는 역설적으로 종교적인 숭고함이 있었다. - 110

전쟁 이후 세상은 쭉 무저갱이었다. 혁명이 일어난 지 일 년 만에 또 다른 혁명이 일어나고,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새로운 법리와 규율들, 자고 일어나면 어제의 명사가 사형수가 되고, 가도를 헤매던 부랑아와 걸인들은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철철이 찾아오는 천재지변과 전염병 속에서 오직 재수와 요행수만이 개인의 운명을 판가름했다. - 132, 133

하지만 누가 노예일까? 따져보자면 꿈 한 번 못 꾸고 사는 쪽이 노예가 아닐까? 나는 스무 해를 살면서 단 한 번도 내 마음속에 노예를 품어본 적이 없어. - 186

예외가 존재하는 혁명이란 모순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모순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라 사람들은 의문을 제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 187

"키키도 아예 잊었어요? 형에게 키키는 뭐였나요?"
"키키? 음악이랑 똑같아. 전부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
대답하며, 강엽 형은 눈을 감고 벽에 기댄 채 천천히 모로 쓰러졌다. - 238

전부이되 아무것도 아닌 것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동경하고 사랑하지만 끝내 손에 쥘 수 없는 것, 그러기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것. - 242

내가 사는 시공간은 항상 낯설었다. 책과 말과 미디어로 배운 세상과 내 눈에 비치는 세상은 서툴게 깎은 톱니바퀴들처럼 아귀가 맞지 않고 어긋나 있었다. 때로는 내가 먼 미래에서 뚝 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정반대로 과거에서 온 미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예 사람이 아닌 존재인 것처럼도 느껴졌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공간에 의문을 품는다는 것, 사회에 부적응한다는 것은 그렇게 고독해지는 일이었다. - 256(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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