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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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스포츠에 관한 책이다. 대부분의 스포츠들이 그렇지만 축구, 야구와 더불어 가장 남초적인 스포츠인 하키선수들이 어떻게 싸우고 패하고 승리하는지를 흥미진진하게 그린 책이다. 이 책은 다른 세계에 관한 책이다. 승리하거나 패배하거나 두 가지의 상황 밖에는 없는 스포츠 경기에서 반정도 미쳐버린 십대 남자들로 구성된 집단들이 오로지 승리만을 갈구하고 그것을 쟁취해야만 하는, 일반인들과의 일상과는 또 다른 선수들의 세계를 쓴 책이다. 이 책은 태도에 관한 책이다. 호감의 표시를 곧 성(性)관계의 승낙으로 착각하는 남자에게, 그것들은 서로 구분되어야 하며 인간관계란 결국 상대방의 동의를 어림짐작으로 유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소통하고 그로 부터 이해와 승낙을 구해야 하는 관계임을 말하는 책이다. 이 책은 투쟁에 관한 책이다. 공동의 선을 위하여 침묵하는 이들 사이에서 그 지역 최고의 슈퍼스타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진실을 알리기 위하여 벌이는 한 소녀와 그 가족들의 힘겨운 싸움을 쓴 책이다. 이 책은 부조리에 관한 책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불편한 진실에 관하여 날조하는 무리들, 진실을 매수하려는 무리들, 침묵을 통하여 공동의 이익을 맛보려는 무리들에게 둘러싸인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는 책이다. 이 책은 가족과 우정에 관한 책이다. 세상 모두가 나에게 등을 돌려도 끝까지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유일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책이다. 


나이가 들면 가장 힘들어지는 것 가운데 하나가 너무 늦어서 바로잡을 수 없는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힘을 소유하고 있을 때 가장 안 좋은 게 가끔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 82

"아슬아슬하게 졌다고? 야, 배에 아슬아슬하게 못타는 것도 있냐? 배에 타든지 물에 빠지든지 둘 중 하나지. 다른 새끼들도 다 물에 빠졌는데 네가 맨 마지막에 빠지거나 말거나 상관하는 사람이 있을 줄 알아?" - 84

"재능이라는 건 풍선 두 개를 하늘로 띄워 올리는 것과 같아. 이때 관전 포인트는 어느 풍선이 더 빠르게 올라가느냐가 아니라 어느 풍선에 달린 줄이 더 긴가 하는 거지." - 86

어른이면 누구나 완전히 진이 빠진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을 겪는다. 뭐 하러 그 많은 시간을 들여서 싸웠는지 알 수 없을 때, 현실과 일상의 근심에 압도당할 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렇다. 놀라운 사실이 있다면 우리가 무너지지 않고, 그런 날들을 생각보다 더 많이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끔찍한 사실이 있다면 얼마나 더 많이 견딜 수 있을지 정확하게는 모른다는 것이다. - 88

고백하자면 부끄러운 노릇이지만 그녀는 출근길에 해방감을 느낀다. 스스로 일을 잘한다는 걸 알기 때문인데, 부모 노릇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심지어 가장 기쁜 날(휴가길에 페테르와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노닥거리고 모두들 웃으며 행복해하는, 그 조그맣고 아른아른한 순간들)에도 미라는 거짓 인생을 사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런 순간을 누릴 자격이 없는 듯한, 포토숍으로 꾸민 가족사진을 남에게 보여주는 게 목적인 듯한 기분이 든다. – 93

이 세상에 전직 하키 선수라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들의 체온은 일반인 수준으로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주변에서 사회 복귀를 도모하려 하지만 전우나 적군의 부재로 망연히 표류하는 귀환병 같다고 보면 된다. 페테르는 평생 스케줄과 버스 이동과 로커룸으로 쪼개진 인생을 살았다. 식단과 훈련 시간, 심지어 수면 시간까지 정해져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가르치기 가장 힘든 개념이 바로 ‘일상’이다. - 97

결혼 생활은 연수가 쌓이면 복잡해진다. 오래도록 결혼 생활을 유지한 사람들 대부분이 가끔 이렇게 자문할 정도로 복잡해진다. ‘내가 이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상대방을 여전히 사랑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새로운 누군가와 이만큼 알아나가는 과정이 귀찮아서일까?’ - 125

하지만 살다보면 물에 빠지거나 거기서 헤엄쳐 나오거나 둘 중 하나일 뿐, 다른 건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는 그런 시점이 찾아온다. - 142

"그럼 우리가 그 아이들한테 바라는 게 뭘까요, 라모나? 그 스포츠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게 뭘까요? 거기에 평생을 바쳐서 얻을 수 있는 게 기껏해야 뭘까요? 찰나의 순간들... 몇 번의 승리, 우리가 실제보다 더 위대해 보이는 몇 초의 시간, 우리가 불멸의 존재가 된 것처럼 상상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 그리고 그건 거짓말이에요.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 153

"스포츠가 우리에게 주는 건 찰나의 순간들뿐이지. 하지만 페테르, 그런 순간들이 없으면 인생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 - 154

아이들이 어렸을 땐 아이스링크 관중석에서 이성을 잃는 수많은 부모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아이들의 취미 생활은 단순히 아이들의 취미 생활에 그치지 않는다. 부모도 몇 년에 걸쳐 그만큼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희생하고 엄청난 돈을 쏟아붓기에 그들의 이성까지 마비가 된다. 그것이 상징하는 바가 확대되고, 보모의 실패했던 기억을 보상하거나 강화하기 시작한다. 미라도 이게 얼마나 한심한 소리인지 안다. 그녀도 이게 한심한 스포츠의 한심한 시합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오늘은 페테르와 청소년팀과 구단과 이 마을을 감안해서 마음을 졸이는 게 아니라 그녀도 내심 조마조마하다. 그녀도 저 밑바닥에는 뭐라도 하나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 - 155, 156

어떤 팀의 자부심은 다양한 데서 생길 수 있다. 장소에 대한 자부심,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 아니면 한 사람에 대한 자부심. 우리가 스포츠에 몰입하는 이유는 우리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와 더불어 스포츠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위대해지는지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 170

하키를 종교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착각이다. 하키는 믿음과 같다. 종교는 나와 타인들 간의 문제고 해석과 이론과 견해로 가득하다. 하지만 믿음은... 나와 신의 문제다. 심판이 센터 서클로 미끄러지듯 나와서 두 선수 사이에 설 때, 스틱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까만 원판이 그 사이로 떨어지는 게 보일 때 느껴지는 무엇이다. 바로 그때 그것은 나와 하키만의 문제가 된다. - 178

사람들은 가끔 슬픔은 정신적인 것이고 갈망은 육체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는 상처고 다른 하나는 절단된 팔이나 다리, 꺾인 줄기에 달린 시든 꽃잎이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바짝 붙어서 성장하다보면 결국에는 한 뿌리를 공유하게 된다. 우리는 상실을 논하고 치유하고 시간을 두고 기다릴 수는 있지만 생물학적인 특성상 특정한 원칙에 맞춰서 살아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가운데가 부러진 식물은 치유가 되지 않는다. 그냥 죽는다. - 193

한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추락은 서열에서 밀려나는 것이다. - 197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똑같이 걱정하는 결정적인 시기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고 있다. 십대는 유년기를 거치고 서로가 동등해지는 짧은 시기다. 이후에는 추가 기울어서 부모가 마야를 걱정하기보다 마야가 부모를 더 많이 걱정하는 나이가 될 것이다. 조만간 마야가 미라의 귀여운 딸이 아니라 미라가 마야의 귀여운 엄마가 될 것이다. 아이를 놓아주려면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 모든 게 필요하다. - 211

가해자에게 성폭행은 몇 분이면 끝나는 행위다. 피해자에게는 그칠 줄 모르는 고통이다. - 245

가장 끔찍한 사건들은 한 가족에게 그런 영향을 미친다. 모든 게 무너지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순간을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도록 만든다. 충돌하기 직전의 순간, 사고가 나기 전에 주유소에서 먹은 아이스크림, 집으로 돌아와서 진단을 받기 전에 휴가지에서 한 마지막 수영. 우리의 기억은 밤이면 밤마다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자문하도록 강요한다. ‘내가 뭔가를 바꿀 수 있었을까? 내가 왜 행복해하면서 돌아다녔을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았다면 내가 막을 방법이 있었을까?’ - 256

누구에게나 비극이 벌어지기 전에는 수천 가지 소원이 있지만 그 이후에는 딱 하나로 바뀐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그 아이가 최대한 특별하게 자라주길 꿈꾸지만 병에 걸리면 모든 게 평범해지길 바라는 것으로 갑자기 소원이 바뀐다. 이삭이 세상을 떠난 뒤로 몇 년 동안 미라와 페테르는 웃을 때마다 가슴을 후벼 찢는 끔찍한 죄책감을 느꼈다. 아직도 그들은 행복을 느낄 때 수치심의 습격을 당하고, 아이가 떠났을 때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던 게 아이에 대한 배신일지 궁금해진다. 슬퍼하지 않으면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게 상실의 가장 끔찍한 부작용이다. - 256, 257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 사회에서 허용하는 대로 하지." - 291

페테르가 그 긴 세월 동안 하키를 하면서 인간의 천성에 대해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거의 모든 선수가 자신을 훌륭한 팀 플레이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군집의 동물이라는 발상이 워낙 뿌리 깊게 박혀 있어서 우리들 대다수가 단체 생활에 젬병이라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우리들 대다수가 협동을 모르고, 이기적이며, 무엇보다도 남들이 싫어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되뇐다. ‘나는 훌륭한 팀 플레이어’라고. 거기에 따르는 대가는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서 스스로 그렇게 믿을 때까지 계속 되뇐다. - 297

페테르는 여러 팀에 몸을 담았고 팀원이 되려면 어떤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지 안다. ‘개인보다 팀이 더 중요하다’는 말은 스포츠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상투적인 문구다. 스포츠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진실이다. 거기에 부합하는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원지 알기 때문이다. 원치 않는 역할에 순응하고, 묵묵히 쓰레기 같은 일을 하며, 골을 넣고 스타가 되기보다 수비수로 뛰는 것. 단체를 사랑하기에 팀원들의 가장 끔찍한 면모조차 받아들일 수 있으면 팀플레이어가 됐다고 볼 수 있다. - 297, 298

농담은 그런 면에서 강력한 도구다. 우리를 인사이더로 만드는 동시에 남들을 아웃사이더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남들을 순식간에 가를 수 있다는 점에서. - 312

어렸을 때는 유일한 소망이 시간이 빨리 흐르는 거였는데, 이제는 시간이 더디 흐르는 것으로 바뀌었다. 시간이 멈춰서 마야가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다. - 318

자발적인 선택이었건 강요에 의한 선택이었건 리더가 되면 가장 먼저 터득하는 것이, 리더는 무슨 말을 할지 선택하는 것 못지않게 무슨 말을 하지 않을지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 335

"다른 건 전부 신경 쓰지 말고 바꿀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하라고요." - 341

누군가가 필리프의 엄마에게 왜 뭐라고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녀는 뭔가를 사랑하려면 모든 면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건 하키에도 해당되지만 친구에게도 해당된다. - 355

증오는 매우 자극적인 감정일 수 있다.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친구와 적, 우리와 그들, 선과 악으로 나누면 세상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훨씬 더 무서워할 수 있다. 한 집단을 똘똘 뭉치게 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어렵다. 요구사항이 많다. 증오는 간단하다.
그래서 갈등이 벌어지면 우리는 제일 먼저 편을 정한다. 양쪽의 생각을 같이 하는 것보다 그러는 편이 더 쉽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의 믿음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는다. 평범한 일상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위안이 될 만한 증거를 찾는다. 그런 다음에는 적에게서 인간성을 거세한다. 그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간단한 방법이 이름을 제거하는 것이다. - 374

어떤 집단이건 가장 높은 바위에서 가장 먼저 뛰어내리고 달려오는 열차를 앞에 두고 가장 마지막으로 선로를 점프해 건너는 등, 도가 지나친 친구가 한 명씩 있기 마련이다. 그 아이는 가장 용감한 게 아니라 그냥 가장 겁이 없는 거다. 그리고 어쩌면 남들보다 잃을 게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벤이가 항상 강렬한 육체적인 감각을 추구한 이유는 그것으로 다른 모든 느낌을 지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들레날린이 솟구치고 입안에서 피 맛이 느껴지며 통증으로 온몸이 욱신거리면 머릿속은 기분 좋게 웅성거렸다. 그가 겁이 나는 상황으로 자기 자신을 몰고 가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겁에 질리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378

살다보면 내가 위선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 힘든 일은 거의 없다. - 401

‘어떤 사람이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다른 사람들이 따라가면 뭐라고 하는가? 리더십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숲속으로 혼자 걸어 들어가면 뭐라고 하는가? 산책이라고 한다.’ - 427

바깥의 어둠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으려면 자기 안의 더 큰 어둠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 454

"전쟁이 그렇게 시작되는 거야. 한쪽이 자기 보호에 돌입하면 다른 쪽은 더 심하게 자기 보호를 하고 우리의 공포와 저들의 협박을 맞바꾸기 시작하고. 그러다 서로 총을 쏘기 시작하는 거지." - 456

싸움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걸 시작하고 멈추는 게 어려울 뿐이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거의 본능적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싸움을 벌일 때 까다로운 부분은 첫 방을 날리는 용기와 이기고 난 뒤에 마지막 한 방을 참는 자제력이다. - 468

그러고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너는 혼자였던 적이 없어. 함께 어울릴 친구를 선택하는 눈만 기르면 돼. - 478

결국 우리가 서로에게 바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모든 걸 알 수는 없지 않느냐고 인정하는 것. - 495

‘의리’처럼 설명하기 힘든 단어도 없을 것이다. 의리는 항상 좋은 걸로 간주된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푸는 수많은 호의가 의리에서 비롯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저지르는 가장 나쁜 짓도 바로 그 의리에서 비롯된다는 거다. - 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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