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개의 날 4 - 완결
김보통 지음 / 씨네21북스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


 개인적으로 드라마보다 원작 만화가 훨씬 좋았다. 드라마가 이야길 더 풍성하고 극적으로 풀어내려다 보니 다소 신파적이고 오글거리는 지점, 구교환이 연기한 한호열 상병 캐릭터가 완전히 판타지 그 자체였던 점 등 탐탁잖았던 부분이 있었던 반면 원작은 기승전결이 완벽했다. 단점이 있다면 너무 우울하단 점이겠지... 하지만 의외의 방식으로 결말이 나서 그만큼 여운도 상당했다.

 군대에 대한 비판과 통찰이 탁월하단 측면에서 <민간인 통제구역>과 더불어 정점을 이루는 작품이다. 두 작품 다 스릴러라 장르적 쾌감이나 완성도도 상당하고 결말이 씁쓸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지만 차이가 있다면 아무래도 <D.P.> 특유의 신선하고 아이러니한 전개를 꼽을 수 있겠다. 이 작품은 탈영병을 체포하는 D.P.의 시점에서 전개되는데 주인공 일행의 보직 특성상 군대 밖이 주무대이지만 탈영병들의 사연과 현재 처지를 쫓아가기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군대 안의 부조리함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안에선 당연하게만 보였던 철칙은 사회의 통념에 비춰보면 똥군기를 넘어 입에 담을 수 없는 심각한 범죄 행위일 뿐이었고 탈영병들에게 있어 탈영은 불가피하고 절박한 저항이었음을 이 작품은 수시로 주지시킨다. 물론 다양한 탈영병이 등장하는 작품이기에 정말 시답잖고 쓰레기 같은 이유로 탈영한 놈들도(;;) 나오지만 작품의 초점은 역시 기구한 사연의 탈영병들에 맞춰져 있다. 


 찰나긴 하나 나도 이등병 때 굉장히 안 좋은 생각을 했던 터라 작중 탈영병들의 처지에 적잖이 공감했다. 주인공의 방백에서 나온 '그가 탈영을 결심하게 된 상황이, 사건이 나에게는 찾아오지 않았을 뿐'이란 구절이 특히 그랬다. 흔히 탈영병을 두고 군대에 적응 못한 패배자라 일축하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군생활을 버텨냈다는 자부심이 지나치다 못해 일그러진 방향으로 부풀게 된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자기 땐 더 심했는데 요즘 것들은 하여간 빠져서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본인이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서비스업에 종사하다 보니 설령 내가 완벽하게 일을 해도 상대가 완벽하지 않기에 사람을 대하는 일은 재앙에 가깝다는 느낌을 매일 받곤 한다. 군대는 특히 사람을 상대하는 능력이 극단적으로 시험 당하는 곳인데 비극이 발생한 부대의 사례들을 놓고 보면 피해자가 사람을 대하는 게 서툴러서, 이른바 군대 생활에 영 적성이 안 맞는 경우도 많지만 반대로 가해자가 관용이 부족해서, 이 역시 마찬가지로 사람을 대하는 기술이 모자라서 빚어진 비극도 상당하다. 건방지고 개념 없고 어리바리한 후임들이나 그런 후임을 폭력과 부조리를 통해서만 소통하려 드는, 소통이라고도 할 수 없는 행위를 저지르는 선임들 모두 전역하고 시간이 지난 내 입장에서 볼 때 그저 미숙한 아이들에 불과하다.


 물론 위의 내 생각은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고 많은 사례에 들어맞지 않는다. 당장 이 작품에 나오는 가해자들만 해도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범죄자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다만, 어차피 다들 하는 수 없이 군대에 징집된 마당에 조금은 마찰을 줄이고 배려하면 편하지 않은가? 그 와중에 자신들이 더 꿀을 빨아야겠고, 혹은 자신들이 그간 당한 걸 보상받고 싶단 이유만으로 선임 병사와 간부들이 후임에게 자행하는 짓거리를 보노라면 안타깝고 한심한 걸 넘어 그저 미숙한 인간들의 이기적인 단면을 봤다는 실로 차가운 감상만이 남을 지경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린 결론, 군대 안에서의 문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원히 반복되리란 참담한 결론을 부정하긴커녕 나도 모르게 고갤 끄덕이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D.P.>가 무의미하고 공허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탈영병을 쫓기에 보다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군대의 문제적 단면을 날카롭게 들여다볼 수 있었고 이 작품을 접한 독자들이 자신의 깨달음을 부대에 조금씩이라도 반영하는 일이 분명 있을 것이다. 물론 수십년 동안 이어진 군대의 부조리와 인간의 이기심이 이룬 환장의 콜라보를 단시간에 변화시킨다는 건 정말 허무맹랑한 욕심에 불과하다. 게다가 다들 몰라서 바뀌지 못하는 게 아니라 싫어서 바꾸지 않는 것에 가까우니 상황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비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어쨌든 개미 눈썹만큼의 변화라도 변화는 변화다. 조금 이기적으로 말해본다면 결국 이런 작품들로 인해 내 아는 동생들이 최대한 덜 고통 받고 군생활을 이겨낸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마음 같아선 모든 동생들이 군대에서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길 바라지만 지금의 나로선 진심으로 그런 날이 오리라고 빈말로도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내일의 군대는 오늘보다 더욱 따사로운 곳이 되길 바란다. 그게 내가 현실적으로 바랄 수 있는 소망일 듯하다.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군대라는 곳 자체가 평범한 젊은이들이 가는 곳이니까. 평범한 젊은이가 어쩌다 탈영을 했을 뿐이다.
내가 특별히 선해서 탈영병을 쫓는 것이 아닌 것처럼 탈영병도 특별히 악해서 탈영을 한 것은 아니다.
그가 탈영을 결심하게 된 그 상황이, 사건이 나에게는 찾아오지 않았을 뿐이다. - 1권 63~64p

물론 탈영병은 돌아가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도망치며 살겠다 각오를 했을 수도 있다.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도망쳐 도착한 곳에서 더 나은 삶을 찾았을 수도 있다. 군대라는 곳, 군인이라는 신분은 도망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을 뿐, 이미 오래 전부터 도망을 꿈꿔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도망친 곳에서 불합리한 현실은 계속될 수 있으며, 도망자라는 처지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경에 처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쩌면,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도피가 끝나기를. 아니, 차라리 누군가 끝내주기를. 그래서라도 이 길고 버거운 피로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 3권 154~156p

왜 그는 먼 곳으로 떠나지 못했던 것일까.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다. 그래서 더 비참한 기분이 드는 것일지도.
탈영보다 더 큰 결단이 필요한 것일까. 가족에게서 벗어난다는 건. - 3권 180~181p

사병을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싶지가 않은 거지. 한 번 사람이라고 인정해버리면 존나게 골치 아파지거든. - 4권 194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탐정의 제물 - 인민교회 살인사건 명탐정 시리즈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9





 스포일러 : 8%


 마술은 그 내막을 알고 나면 그렇게 실망스러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백조의 우아안 몸짓 아래에 있던 필사적인 발놀림이 백조의 우아한 이미지를 깨듯 마술을 실현시키고자 짜놓은 트릭이 경우에 따라선 마술의 신비로움에 비해 보잘것없고 구질구질할 수 있기에 하는 말일 것이다. 이는 마술만이 아닌 추리소설에도 해당된다. 때론 사건이 막 벌어진 직후에 퍼져 있는 불가사의한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던 것에 비해 트릭은 그저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명탐정의 제물>에선 총 세 번의 '해결편'이 나온다. 명탐정이 청중을 상대로 자신의 추리를 들려주는 해결편이 무려 세 번이나 나오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아주 실망스러웠다. 당연하지. 그 해결은 사실이 아니라 탐정이 의도를 갖고 지어낸 추리니까. 반대로 마지막 추리는 작가가 작정하고 만든 덕분인지 기대 이상이었다. 충격적이지만 논리적이었고 '진범'의 동기는 밝혀지는 그 순간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며 제법 신선하기까지 해 긴 시간에 걸쳐 읽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제목, 다소 길었던 서두의 존재 의의를 밝혀주기도 해 속된 말로 아다리가 맞을 때의 전율을 선사해주기도 했다.


 본격 미스터리를 표방하는 대다수의 작품이 어느 정도의 억지스러운 요소가 있기 마련이고 - 신자들이 과연 탐정의 추리를 그렇게 경청해줄까 하는 의문은 나만 갖고 있는 걸까 - <명탐정의 제물>도 그런 잣대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근래 출간된 일본 추리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 봐도 무방하지 않나 싶다.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더욱. 괜히 역대 가장 많은 득표수로 본격미스터리대상을 수상한 것이 아니었다!

 이 작품의 한줄평을 쓴다면 '믿음이란 밀실에 갇힌 자들의 몸부림은 그저 처절할 뿐' 이라 쓸 수 있겠다. 짐 존스의 집단 자살 실화는 나도 들은 적 있는데 이 실화를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 그것도 본격 미스터리에 어울리는 상상력을 가미해 풀어낸 것이 흥미롭게 읽혔다. 게다가 단지 충격 실화에 기대어 관심을 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소재를 철저히 연구해 사이비 종교의 폐단과 더불어 사이비 종교를 맹신하게 된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작가 나름대로의 통찰과 비판이 더해진 것도 흥미롭기 그지없는 부분이었다. 아마 작품의 연쇄살인의 진상에 대해 억지가 심하다고 반응할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불가사의할 뿐더러 한심하고 역겨운 일이 우리네 현실에 비일비재해 차라리 소설 속 진상이 제법 논리적이라며 감탄하기도 했다.


 비중과 활약을 막론하고 모든 캐릭터들의 개성이 특출났다. 거기다 인물들의 행동과 전개에 물 흐르듯 개연성이 있던 것과 캐릭터들을 퇴장시킴에 있어 주저함이 없는 작가의 성향이 맞물려 짧지 않는 분량임에도 결말이 날 때까지 도저히 전개에 눈을 땔 수 없었다. 복선을 교묘하게 던지고 회수하는 솜씨는 모범적이다 못해 이상적이었고 상술했지만 다소 긴 시간을 할애했던 서두에도 의미가 있어 작품의 결말이 더욱 빛이 났다.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믿을지 정하고 관철할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 앞에 장애물이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타협을 할 것인지 아니면 무시할 것인지, 혹은 양자택일에서 벗어나 제3의 답이 있는 것인지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결말이었다. 우리에겐 극단적인 두 가지의 선택지밖에 없다고 믿기에 그토록 잔인해지고 멍청해지는 것일 수 있다. 설령 세상이 그렇게 규정해도 나는 나만의 제3의 답을 찾고자 노력하면 최소한 사기꾼의 먹잇감이 되는 일만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미치오 슈스케의 <까마귀의 엄지>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기꾼은 인간쓰레기예요. 사람이 사람을 믿는 마음을 이용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기꾼은 인간쓰레기입니다.'

 최근에 지인이 길에서 선의를 베풀었는데 그게 사실은 미끼였고 시간이 지난 뒤에 현금 몇 만 원을 소매치기당한 걸 알았다는 얘길 듣고 떠올린 구절이다. 참고로 스페인이 아니라 한국 얘기다... 소매치기와 사이비 교주는 스케일이 다르지만 사람의 마음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쓰레기가 아닌가 싶다. 이런 쓰레기들 때문에 세상이 각박해져 우리는 점점 두 가지의 답만 있다는 믿음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작중의 인민교회 살인사건이 우리 일상과 마냥 동떨어진 얘기가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P.S 소재와 작품의 컨셉 때문에 이노우에 마기의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가 연상됐는데 그 작품보다 덜 오그라들고 덜 난잡하고 사이비 종교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 담긴 점에서 나는 <명탐정의 제물>의 편을 들어주고 싶다.

 P.S2 포스팅의 사진은 내가 요번 일본 여행 때 들렀던 도서관에서 원서를 찾아 번역본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요번 여행 내내 이 작품을 읽었는데 여행 못지않게 만족스러운 작품이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원서의 표지가 번역본보다 더 괜찮지 않나 싶다. 번역본의 표지는 작품 내용과 따로 노는 감이 있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란구미의 돈까스 취업 1 - 재일교포 2.5세 노란구미의 좌충우돌 취업 분투기
정구미 글 그림 / 거북이북스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7


 취업에 낙방한 뒤에 읽으니 전보다 내용이 깊게 스며드는 작품이었다. 예전에 처음 읽었을 땐 대학 졸업 직전이었는데 그때도 가볍지 않았으나 지금은 그렇게 내 얘기 같을 수가 없다. 물론 차이는 있지. 이 작품에서 작가는 거의 자발적으로 반다이 최종면접을 그르쳤다면 나는 그냥 면접 경험이 부족해서 그르친 거란 사실이다... 이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자세히 풀겠다. 이래저래 납득이 안 가기도 했고 반성하고 자책할 수밖에 없는 지점도 있고 해서 말이지.

 아무튼 일부 독자들 사이에선 후반부의 전개가 급작스럽다는 평이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작가)이 자신의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졸업이 아닌 취업을 해야 한다는 주변의 흐름에 등떠밀려 섣부른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는 전개를 가리키는 것일 터다. 그런데 나는 충분히 주인공이 그런 결정을 내리리라고 초반부터 잘 암시했다고 보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자신의 경험담을 만화로도 그렸으니 만화가의 꿈을 가지는 것이 극히 자연스런 수순이지 않나 싶었다. 꼭 지금 내 상황과 맞아서 그런 건 아니지만 다시 읽은 지금도 작가의 최고의 작품이라 말할 수 있고, 적성과 진로 사이에서의 고민은 대학 졸업 직전이나 취업 낙방 직후인 지금도 늘 하고 있기에 주인공의 선택에 적잖은 위안을 얻었다.


 재일교포 2.5세대의 정체성에 관한 작가의 통찰은 여전히 진중하게 다가와 흥미로웠고 짧은 분량 안에서도 발전한 작가의 그림체도 인상적이기 그지없었다. 실로 자연스런 변화라 눈치를 못 챘는데ㅋㅋㅋ 생각해보면 만화가들은 정말 대단하다. 글과 그림이 모두 뛰어난 인재들이 아닌가.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만화는 소설에 비해 늘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 저평가를 당하지만 난 항상 만화를 읽을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한다. 내가 그림에 전혀 재능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지. 허나 그림을 통한 연출은 때론 소설이나 영화와는 다른 감동을 선사할 수 있거니와 무엇보다 그림은 직관적인 전달력에 있어서 활자보다 우수하다. 게다가 영성과는 다르게 종이 위의 그림은 언제나 원할 때 감상할 수 있잖은가. 간편성이란 측면에서도 만화만큼 좋은 매체는 없다.

 내가 만화를 개인적으로 높이 평가해서 그런 걸까. 비단 이 작품의 주인공만이 아니라 주변에서 누구든 만화가를 꿈꾸는 사람이 있으면 걱정보단 부러움이 앞선다. 물론 모든 예술가가 그렇듯 성공하지 못하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하지만 그럼에도 만화가를 꿈꿀 만한 재능이 있다는 것은 부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사실, 내용이 어떻든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모두 아름답다. 우여곡절이 있든 없든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돌이켜보면 허무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주인공의 취업을 향한 여정도 마찬가지다. 훗날 정말 만화가의 꿈을 이뤄서 하는 말이 아닌 취업을 준비하면서 주인공이 자기 꿈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긍정하게 됐기에 하는 말이다. 그게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이고, 그래서 부럽고, 내게도 그런 깨달음의 순간이 오길 소망한다. 불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마음 한편으론 안심하기도 했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한 순간이. 

어둠 속에도 내 진심은 항상 있었다. 가늘어져서 안 보이게 돼도 다시 나타나는 저 달처럼.
저는 울었습니다. 허무하고 외로워서... 하지만 왠지 안심이 돼서... - 2권 #37 마음의 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러진 용골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8.5


 10년 전에 읽었을 땐 상당히 이색적인 추리소설이라며 감탄했지만 다시 읽으니 오히려 그 이색적인 특성이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설정은 여전히 참신하고 추리의 과정과 반전 모두 논리적이고 납득이 가능하나 작중에서 나오는 마법들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형편에 맞게 최소한의 개연성만 갖춘 터라 독자 입장에선 아무래도 공정하게 추리가 가능하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다. 이렇게 말하니 꼭 추리하며 읽는 독자 같지만 정작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읽는 독자다.;;

 허나 그런 내 눈에도 이 소설은 아슬아슬하게 공정함과 불공정함을 넘나들고 있어 읽으면서 불안했다. 추리소설의 미덕을 공정함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으니까 말이다. 다른 건 몰라도 할 엠마의 정체나 팔크 피츠존의 턱에 난 상처에 대한 복선은 영 미묘했던 것, 저주 받은 데인인의 생각보다 썰렁한 활약 등 마음에 걸리는 지점이 있어서 용케 이 작품이 일본추리작가협회상(장편부문)을 수상했구나 싶었다. 처음에 읽었을 땐 어느 정도는 무시할 수 있는 단점이었지만 다시 읽으니 더욱 눈에 밟혔던 것 같다.


 시간대는 지금으로부터 10세기는 더 옛날이며 배경은 영국 인근의 가상의 섬이다. 데인인의 위협에 맞서 용병을 모으는 도입부나 마치 정말로 존재한다는 듯 마법을 묘사하는 태도와 논리적인 추리가 곁들여진 전개는 제법 흥미로웠다. 작중에선 마법이 거의 과학의 역할을 대신하지만 한편으론 마법이라 칭할 수밖에 없을 만큼 신비로운 묘사(저주, 투명화)가 많아 일반적인 추리소설이 아닌 판타지 장르에서나 느낄 수 있는 매력 또한 겸비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또 중세 시대의 분위기와 개성적이고 비중 있는 캐릭터들, 그리고 대규모 전투 장면은 이 작품에 대해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겠다. 이게 추리소설이 갖춰야 할 장점은 아니지만 이 작품에선 꼭 중요한 요소들이었기에 이 요소를 모두 충족시킨 요네자와 호노부의 필력에 새삼 감탄했다. 요네자와 호노부가 '빙과' 시리즈 같은 일상 계열의 추리소설만 쓸 줄 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을 꼭 추천하고 싶다. 다방면의 장르를 소화하는 작가의 저력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으론 이 소설을 작가의 최고의 작품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보틀넥>, <추상오단장> 같은 일상, 성장이 강조된 추리소설들이야말로 요네자와 호노부의 진면목을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부러진 용골>은 뭐랄까... 대놓고 후속작을 암시하는 결말에 반감이 생겼던 걸까, 아니면 생각보다 맥거핀이 남발된 것 같고 반전이 허무하게 다가와서, 어쩌면 제목의 정체가 별 대수롭지 못했던 탓인지 이래저래 여운이 남지 못했다. 어설프지 않은 세계관 묘사와 더불어 작가의 필력이 폭발하는 듯한 전투 장면에 비해 막상 추리소설의 묘미는 덜 부각돼 그 점이 아쉬웠다.


 그래, 이게 다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란 타이틀이 문제다! 늘 말하지만 이 상을 받은 작품치고 추리소설다운 추리소설 같다는 인상을 주는 작품이 얼마 없는 것 같다. 오죽하면 아야츠지 유키토가 <시계관의 살인>으로 이 상을 받을 때 '추리소설이라고밖엔 할 말이 없는 작품으로 이 상을 수상해서 영광이다' 라고 말했겠는가. 그 작가한테 이 상을 디스할 마음은 없었을지 몰라도 난 그 소감에 적잖은 공감을 했다.

 이 작품 이후로 요네자와 호노부는 상당히 대중적인 작가로 발돋움하고 내는 작품마다 여러 문학상과 랭킹 1위를 석권한 것으로 알고 있다. 판타지처럼 원래 전문 장르가 아닌 작품을 완결했더니 더욱 필력이 상승한 모양이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1위를 한 작품이 참 많던데 그 작품들을 찾아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퍼스 고스트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3


스포일러 : 10~15%


 <페퍼스 고스트>는 이사카 코타로 특유의 엉뚱함과 그에 대비되는 잔혹함, 그리고 통찰력이 총망라된 최신작이다. 고양이 학대 영상에 후원한 사람들을 찾아 보복을 하는 2인조와 비말 감염을 통해 상대의 미래를 알 수 있는 주인공의 설정에서 작가의 통통 튀는 개성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이는 주인공의 미래 예지 능력과 예지 능력을 통해 보는 미래 장면을 '선공개 영상'이라 부르는 것도 탁월했다. 마치 영화의 예고편이 그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듯 주인공도 자신에게 비말을 옮긴 상대가 다음날 겪을 예정인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미리 볼 수 있다.

 작가의 다른 작품 <마왕>의 주인공도 초능력자였는데 차이가 있다면 그 작품에선 하찮아 보이는 능력도 마음먹기에 따라선 큰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에 비해 이 작품 <페퍼스 고스트>는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사람이 시달리는 무력함이 강조돼 상대적으로 스케일이 작은 사건이 다뤄진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아무튼 주인공이 행동력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가 발동이 걸리기 전까지 소소하게 능력을 활용해왔는데 중반부부터는 주인공이 자신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 변화의 과정을 독자가 몰입하며 공감할 수 있게 묘사하는 한편으로 소설을 예측불허하게 전개하는 작가의 노련함에 적잖이 감탄했다. 이게 다 미래를 볼 수 있는 주인공 덕분에 이 작품은 인과와 개연성에 대한 압박에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자유로운 덕분이다.


 인과를 비틀어버리는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엔 얼핏 인과를 벗어난 행동을 보이는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고양이를 학대하는 인터넷 방송인을 후원한 사람들이나 성급하고 무책임한 발언을 함으로써 인질 사건이 최악의 형태로 끝맺어진 것에 어느 정도 일조한 언론인처럼 책임 추궁이 미묘한 상대에게 복수심을 갖고 기어코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 그리고 중학생 소녀의 소설 속 인물들인 줄로만 알았던 러시안 블루와 아메쇼의 정체도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등 이 작품은 시종 사람들의 감정이나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의 원인과 결과는 완벽하게 설명하기 힘듦을 역설한다. 모름지기 소설이란 인과에 얽매이기 마련이지만 이 소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맥거핀이나 다름없던 몇몇 설정이나 긴 시간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설명됐음에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 소설의 결말은 이 소설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평소라면 허무했다고 여겼거나 용두사미라고 분개했을 텐데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작품의 제목인 페퍼스 고스트의 의미를 통해 작가가 뻔뻔스럽고 그럴싸하게 포장해 부정적인 감상은 남지 않았다. 대놓고 이 작품의 의도를 전달하고 있는 작가의 노력이 너무 필사적이라 오히려 읽는 입장에선 피곤했지만... 은근히 예측이 되지 않아 다음이 계속 궁금했던 이 작품 특유의 전개에 감명을 받았기에 기분 좋게 마지막을 덮을 수 있던 작품이다. 탁월한 오락적 재미가 호불호 갈릴 만한 주제의식과 결말을 잘 가다듬었다.


 작품을 볼 때 개연성과 인과를 굉장히 중요시했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관점이 많이 변하고 있다. 올해 극장에서 본 최고의 영화인 <플래시>나 얼마 전에 읽은 기욤 뮈소의 소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처럼 세세히 들여다보면 앞뒤가 안 맞지만 이야기를 통해 추구하고 말하고자 했던 바를 이해하니 인과의 개연성은 사사롭게 느껴졌다. 불확실하고 의문투성이인 현실 세계에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 픽션의 역할이라 생각했지만 완벽히 인과에 들어맞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해서 감동과 재미가 덜한 것은 아니다. 나는 어느덧 그런 작품들을 단지 무리수를 던져버린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그런지 <페퍼스 고스트>도 은근히 거슬림이 적었던 작품이다. 작가의 대표작 반열엔 들지 못하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독특한 시도를 했던 작품이라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듯하다. 인과라는 굴레에서 자유로운 걸 넘어 아예 이 작품만의 인과를 만들기까지 했으니... 작가의 필력이 발휘한 마법인 걸까? 혹시 이 소설의 모든 비현실적인 전개는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전개인지도 모른다. 현실에 사는 독자로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