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의 제물 - 인민교회 살인사건 명탐정 시리즈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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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스포일러 : 8%


 마술은 그 내막을 알고 나면 그렇게 실망스러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백조의 우아안 몸짓 아래에 있던 필사적인 발놀림이 백조의 우아한 이미지를 깨듯 마술을 실현시키고자 짜놓은 트릭이 경우에 따라선 마술의 신비로움에 비해 보잘것없고 구질구질할 수 있기에 하는 말일 것이다. 이는 마술만이 아닌 추리소설에도 해당된다. 때론 사건이 막 벌어진 직후에 퍼져 있는 불가사의한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던 것에 비해 트릭은 그저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명탐정의 제물>에선 총 세 번의 '해결편'이 나온다. 명탐정이 청중을 상대로 자신의 추리를 들려주는 해결편이 무려 세 번이나 나오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아주 실망스러웠다. 당연하지. 그 해결은 사실이 아니라 탐정이 의도를 갖고 지어낸 추리니까. 반대로 마지막 추리는 작가가 작정하고 만든 덕분인지 기대 이상이었다. 충격적이지만 논리적이었고 '진범'의 동기는 밝혀지는 그 순간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며 제법 신선하기까지 해 긴 시간에 걸쳐 읽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제목, 다소 길었던 서두의 존재 의의를 밝혀주기도 해 속된 말로 아다리가 맞을 때의 전율을 선사해주기도 했다.


 본격 미스터리를 표방하는 대다수의 작품이 어느 정도의 억지스러운 요소가 있기 마련이고 - 신자들이 과연 탐정의 추리를 그렇게 경청해줄까 하는 의문은 나만 갖고 있는 걸까 - <명탐정의 제물>도 그런 잣대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근래 출간된 일본 추리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 봐도 무방하지 않나 싶다.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더욱. 괜히 역대 가장 많은 득표수로 본격미스터리대상을 수상한 것이 아니었다!

 이 작품의 한줄평을 쓴다면 '믿음이란 밀실에 갇힌 자들의 몸부림은 그저 처절할 뿐' 이라 쓸 수 있겠다. 짐 존스의 집단 자살 실화는 나도 들은 적 있는데 이 실화를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 그것도 본격 미스터리에 어울리는 상상력을 가미해 풀어낸 것이 흥미롭게 읽혔다. 게다가 단지 충격 실화에 기대어 관심을 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소재를 철저히 연구해 사이비 종교의 폐단과 더불어 사이비 종교를 맹신하게 된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작가 나름대로의 통찰과 비판이 더해진 것도 흥미롭기 그지없는 부분이었다. 아마 작품의 연쇄살인의 진상에 대해 억지가 심하다고 반응할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불가사의할 뿐더러 한심하고 역겨운 일이 우리네 현실에 비일비재해 차라리 소설 속 진상이 제법 논리적이라며 감탄하기도 했다.


 비중과 활약을 막론하고 모든 캐릭터들의 개성이 특출났다. 거기다 인물들의 행동과 전개에 물 흐르듯 개연성이 있던 것과 캐릭터들을 퇴장시킴에 있어 주저함이 없는 작가의 성향이 맞물려 짧지 않는 분량임에도 결말이 날 때까지 도저히 전개에 눈을 땔 수 없었다. 복선을 교묘하게 던지고 회수하는 솜씨는 모범적이다 못해 이상적이었고 상술했지만 다소 긴 시간을 할애했던 서두에도 의미가 있어 작품의 결말이 더욱 빛이 났다.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믿을지 정하고 관철할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 앞에 장애물이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타협을 할 것인지 아니면 무시할 것인지, 혹은 양자택일에서 벗어나 제3의 답이 있는 것인지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결말이었다. 우리에겐 극단적인 두 가지의 선택지밖에 없다고 믿기에 그토록 잔인해지고 멍청해지는 것일 수 있다. 설령 세상이 그렇게 규정해도 나는 나만의 제3의 답을 찾고자 노력하면 최소한 사기꾼의 먹잇감이 되는 일만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미치오 슈스케의 <까마귀의 엄지>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기꾼은 인간쓰레기예요. 사람이 사람을 믿는 마음을 이용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기꾼은 인간쓰레기입니다.'

 최근에 지인이 길에서 선의를 베풀었는데 그게 사실은 미끼였고 시간이 지난 뒤에 현금 몇 만 원을 소매치기당한 걸 알았다는 얘길 듣고 떠올린 구절이다. 참고로 스페인이 아니라 한국 얘기다... 소매치기와 사이비 교주는 스케일이 다르지만 사람의 마음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쓰레기가 아닌가 싶다. 이런 쓰레기들 때문에 세상이 각박해져 우리는 점점 두 가지의 답만 있다는 믿음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작중의 인민교회 살인사건이 우리 일상과 마냥 동떨어진 얘기가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P.S 소재와 작품의 컨셉 때문에 이노우에 마기의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가 연상됐는데 그 작품보다 덜 오그라들고 덜 난잡하고 사이비 종교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 담긴 점에서 나는 <명탐정의 제물>의 편을 들어주고 싶다.

 P.S2 포스팅의 사진은 내가 요번 일본 여행 때 들렀던 도서관에서 원서를 찾아 번역본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요번 여행 내내 이 작품을 읽었는데 여행 못지않게 만족스러운 작품이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원서의 표지가 번역본보다 더 괜찮지 않나 싶다. 번역본의 표지는 작품 내용과 따로 노는 감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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