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구미의 돈까스 취업 1 - 재일교포 2.5세 노란구미의 좌충우돌 취업 분투기
정구미 글 그림 / 거북이북스 / 2008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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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취업에 낙방한 뒤에 읽으니 전보다 내용이 깊게 스며드는 작품이었다. 예전에 처음 읽었을 땐 대학 졸업 직전이었는데 그때도 가볍지 않았으나 지금은 그렇게 내 얘기 같을 수가 없다. 물론 차이는 있지. 이 작품에서 작가는 거의 자발적으로 반다이 최종면접을 그르쳤다면 나는 그냥 면접 경험이 부족해서 그르친 거란 사실이다... 이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자세히 풀겠다. 이래저래 납득이 안 가기도 했고 반성하고 자책할 수밖에 없는 지점도 있고 해서 말이지.

 아무튼 일부 독자들 사이에선 후반부의 전개가 급작스럽다는 평이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작가)이 자신의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졸업이 아닌 취업을 해야 한다는 주변의 흐름에 등떠밀려 섣부른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는 전개를 가리키는 것일 터다. 그런데 나는 충분히 주인공이 그런 결정을 내리리라고 초반부터 잘 암시했다고 보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자신의 경험담을 만화로도 그렸으니 만화가의 꿈을 가지는 것이 극히 자연스런 수순이지 않나 싶었다. 꼭 지금 내 상황과 맞아서 그런 건 아니지만 다시 읽은 지금도 작가의 최고의 작품이라 말할 수 있고, 적성과 진로 사이에서의 고민은 대학 졸업 직전이나 취업 낙방 직후인 지금도 늘 하고 있기에 주인공의 선택에 적잖은 위안을 얻었다.


 재일교포 2.5세대의 정체성에 관한 작가의 통찰은 여전히 진중하게 다가와 흥미로웠고 짧은 분량 안에서도 발전한 작가의 그림체도 인상적이기 그지없었다. 실로 자연스런 변화라 눈치를 못 챘는데ㅋㅋㅋ 생각해보면 만화가들은 정말 대단하다. 글과 그림이 모두 뛰어난 인재들이 아닌가.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만화는 소설에 비해 늘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 저평가를 당하지만 난 항상 만화를 읽을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한다. 내가 그림에 전혀 재능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지. 허나 그림을 통한 연출은 때론 소설이나 영화와는 다른 감동을 선사할 수 있거니와 무엇보다 그림은 직관적인 전달력에 있어서 활자보다 우수하다. 게다가 영성과는 다르게 종이 위의 그림은 언제나 원할 때 감상할 수 있잖은가. 간편성이란 측면에서도 만화만큼 좋은 매체는 없다.

 내가 만화를 개인적으로 높이 평가해서 그런 걸까. 비단 이 작품의 주인공만이 아니라 주변에서 누구든 만화가를 꿈꾸는 사람이 있으면 걱정보단 부러움이 앞선다. 물론 모든 예술가가 그렇듯 성공하지 못하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하지만 그럼에도 만화가를 꿈꿀 만한 재능이 있다는 것은 부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사실, 내용이 어떻든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모두 아름답다. 우여곡절이 있든 없든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돌이켜보면 허무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주인공의 취업을 향한 여정도 마찬가지다. 훗날 정말 만화가의 꿈을 이뤄서 하는 말이 아닌 취업을 준비하면서 주인공이 자기 꿈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긍정하게 됐기에 하는 말이다. 그게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이고, 그래서 부럽고, 내게도 그런 깨달음의 순간이 오길 소망한다. 불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마음 한편으론 안심하기도 했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한 순간이. 

어둠 속에도 내 진심은 항상 있었다. 가늘어져서 안 보이게 돼도 다시 나타나는 저 달처럼.
저는 울었습니다. 허무하고 외로워서... 하지만 왠지 안심이 돼서... - 2권 #37 마음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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