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스 고스트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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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스포일러 : 10~15%


 <페퍼스 고스트>는 이사카 코타로 특유의 엉뚱함과 그에 대비되는 잔혹함, 그리고 통찰력이 총망라된 최신작이다. 고양이 학대 영상에 후원한 사람들을 찾아 보복을 하는 2인조와 비말 감염을 통해 상대의 미래를 알 수 있는 주인공의 설정에서 작가의 통통 튀는 개성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이는 주인공의 미래 예지 능력과 예지 능력을 통해 보는 미래 장면을 '선공개 영상'이라 부르는 것도 탁월했다. 마치 영화의 예고편이 그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듯 주인공도 자신에게 비말을 옮긴 상대가 다음날 겪을 예정인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미리 볼 수 있다.

 작가의 다른 작품 <마왕>의 주인공도 초능력자였는데 차이가 있다면 그 작품에선 하찮아 보이는 능력도 마음먹기에 따라선 큰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에 비해 이 작품 <페퍼스 고스트>는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사람이 시달리는 무력함이 강조돼 상대적으로 스케일이 작은 사건이 다뤄진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아무튼 주인공이 행동력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가 발동이 걸리기 전까지 소소하게 능력을 활용해왔는데 중반부부터는 주인공이 자신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 변화의 과정을 독자가 몰입하며 공감할 수 있게 묘사하는 한편으로 소설을 예측불허하게 전개하는 작가의 노련함에 적잖이 감탄했다. 이게 다 미래를 볼 수 있는 주인공 덕분에 이 작품은 인과와 개연성에 대한 압박에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자유로운 덕분이다.


 인과를 비틀어버리는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엔 얼핏 인과를 벗어난 행동을 보이는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고양이를 학대하는 인터넷 방송인을 후원한 사람들이나 성급하고 무책임한 발언을 함으로써 인질 사건이 최악의 형태로 끝맺어진 것에 어느 정도 일조한 언론인처럼 책임 추궁이 미묘한 상대에게 복수심을 갖고 기어코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 그리고 중학생 소녀의 소설 속 인물들인 줄로만 알았던 러시안 블루와 아메쇼의 정체도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등 이 작품은 시종 사람들의 감정이나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의 원인과 결과는 완벽하게 설명하기 힘듦을 역설한다. 모름지기 소설이란 인과에 얽매이기 마련이지만 이 소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맥거핀이나 다름없던 몇몇 설정이나 긴 시간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설명됐음에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 소설의 결말은 이 소설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평소라면 허무했다고 여겼거나 용두사미라고 분개했을 텐데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작품의 제목인 페퍼스 고스트의 의미를 통해 작가가 뻔뻔스럽고 그럴싸하게 포장해 부정적인 감상은 남지 않았다. 대놓고 이 작품의 의도를 전달하고 있는 작가의 노력이 너무 필사적이라 오히려 읽는 입장에선 피곤했지만... 은근히 예측이 되지 않아 다음이 계속 궁금했던 이 작품 특유의 전개에 감명을 받았기에 기분 좋게 마지막을 덮을 수 있던 작품이다. 탁월한 오락적 재미가 호불호 갈릴 만한 주제의식과 결말을 잘 가다듬었다.


 작품을 볼 때 개연성과 인과를 굉장히 중요시했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관점이 많이 변하고 있다. 올해 극장에서 본 최고의 영화인 <플래시>나 얼마 전에 읽은 기욤 뮈소의 소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처럼 세세히 들여다보면 앞뒤가 안 맞지만 이야기를 통해 추구하고 말하고자 했던 바를 이해하니 인과의 개연성은 사사롭게 느껴졌다. 불확실하고 의문투성이인 현실 세계에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 픽션의 역할이라 생각했지만 완벽히 인과에 들어맞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해서 감동과 재미가 덜한 것은 아니다. 나는 어느덧 그런 작품들을 단지 무리수를 던져버린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그런지 <페퍼스 고스트>도 은근히 거슬림이 적었던 작품이다. 작가의 대표작 반열엔 들지 못하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독특한 시도를 했던 작품이라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듯하다. 인과라는 굴레에서 자유로운 걸 넘어 아예 이 작품만의 인과를 만들기까지 했으니... 작가의 필력이 발휘한 마법인 걸까? 혹시 이 소설의 모든 비현실적인 전개는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전개인지도 모른다. 현실에 사는 독자로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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